일을 배우는 시기를 지나, 정말로 일을 하면서 부터는 일 빼고 별다른 생각이 안생길 정도로 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야하는 프로젝트들. 더 책임감을 키우고, 비판에는 귀를 열어야 한다. 전에 비하면 많이 관대해진 편이지만 어쨌든 스스로를 볶아대는 스타일이라 이래저래 압박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열심히 성장하고 능숙해지면 수월해질 줄 알았는 데. 몹쓸. 나는 잊을뻔 했다. 나를 갈아(!) 고작 ‘생존’해야 하는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것을.

“(180)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곤 했지요. ‘남들이 너를 이용해 먹지 않도록 해라. 너의 권리를 힘주어 말하되 일은 제대로 해주어라. 그네들이 너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올바르게 대하도록 요구하거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을 그만두면 된단다’.”


내가 처리하는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갈 수록 위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커졌다. 일에 대한 통제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통제이기도 해서, 업무처리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이런저런 잡다한 것이 많이 섞여있는 평가의 말들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말만 들을 뿐인가. (혼도 나고 욕도 먹고) 투사가 분명한 감정 표현들도 겪어내야 하고, 실제로 요구되는 어떤 모습은 당장 고쳐야만 하며, (이게 가장 힘든 데) 평소라면 빻아서 상대도 안할 (개)소리들을 허허 웃어넘기기도 한다. 어쨌든 “일은 제대로 해준”다. 언제든지 그만두면 되긴 하지만 그게 사실 어려우니, 권리를 말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는 곱씹으면서.


*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빌런은 나의 일터에도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빌런들에 비하면 원체 대놓고 타노스급의 절대 빌런이라 나는 내심 다행이다 느꼈더란다. 이분법은 쉽고, 절대악을 굳이 에너지를 들여 이해할 필요도 없으므로. 너는 너. 나는 나. 일은 일. 삶은 삶. 당연히 걸러듣고, 원래처럼 적당히 연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것 역시 순진했다. 아무리 피아가 구분된다고 하더라도, 학대가 오랜시간 지속된다면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다는 걸.

길고 긴 5월 첫주의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날의 저녁. 일찍 자려 누웠는 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몸이 떨렸다. 내 몸이 왜 이러지? 경미한 공황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더란다. 

지금 나는 뭔가가 불안하다. 그건 대체 뭔가...? 답은 쉽게 나왔다.
“내일 일가기 싫어서.”
오랜만에 쉼을 맛본 내 몸이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튕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랑비 젖듯 스며든 나를 의심하게 하던 언어들.
잘못이 아닌 내 잘못들.

항상 피아를 의식하는 삶이라니, 언제나 전투상태인 몸이라니, 그것 역시 나에게는 몹쓸짓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울었다.
의지할 수 있다면 의지하고 싶고, 의존할 대상이 있으면 한껏 의존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게 얼마나 독이 되는 마음인지 알아서, 안돼 안돼 머리 저으면서.
혼자서 씩씩한 것은 가끔 너무 힘들어.

“(211)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은 자립의 중요한 측면인 경제적 자립성을 존중의 요구와 연결한다.예를 들어, <존중하라>에서 아레타는 “당신의 키스는 꿀보다 달콤해요. 그렇지만 내 돈도 그렇지요”라고 노래하면서 흑인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고 흑인 여성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

아직은 일터를 당장 박차고 나올 만큼의 능력이 내게는 없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만족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생각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류의 방식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가까운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괴롭히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페미니즘을 통해 얻게된 생각이다. 나는 사회생활의 괴로움을 이유로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가부장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힘들어도 열심히 일을 할 거고, 그래서 결국은 일을 잘하게 될거고, 또 그 와중에 악착같이 책을 읽을 거고, 삶을 해석하기 위한 능력을 키울 거다.

조금 울고 난 그날 밤에 나는 일기장에 두가지 문장을 적었다.
- 학대에 익숙해지지 말자.
-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213) 주인공이 자신에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의미심장하게는 자신의 무능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히 환경 제약과 자신의 한계에 구속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오로지 이전에 구획된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직접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바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법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혼동과 우연성의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자신의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서만, 유의미한 삶을 건설하는 법을 독자에게 가르쳐준다.”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의 5장, 특히나 이 구절이 좋아서 나는 몇번이고 읽었다.
삼십살이 훌쩍 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무능을 존중하게 된 것 같다.
비록 어떤 경계를 뛰어넘지는 못했고, 유의미한 삶이 무엇인지는 오히려 하나도 모르게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책에서 말하는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너무나도 정확한 문장을 찾았다.

“(214)[그녀는]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인물”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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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5-29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르르..... 쟝쟝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

공쟝쟝 2020-05-29 08:12   좋아요 1 | URL
저는 격렬한 표현이 좋으니까, 일의 환희(...그런게?)와 좌절로 하자...

다락방 2020-05-29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고통을 거쳐서 비로소 창작이 되고 또 아름다워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쟝쟝님의 글을 보니 노동의 고통 때문에 글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몹쓸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글 따위, 필요없이 고통이 없는 삶이 가장 좋을텐데요...

쟝쟝님, 오늘은 금요일. 힘냅시다. 화이팅!

공쟝쟝 2020-05-29 08:15   좋아요 0 | URL
요즈음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느낄새가 없는 류의 고통이라......흑흑.... 오늘은 금요일 흑페상을 다 읽어야 한다!! 화륵🔥

비연 2020-05-29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생활의 비애와 고통은... 흑.

공쟝쟝 2020-05-29 20:51   좋아요 1 | URL
부서지지 말아요 우리, 비연님❤️

수연 2020-05-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페상 페이퍼 중에 제일 심금을 울리는! 저도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페이퍼. 공장쟝님 힘.

공쟝쟝 2020-05-29 20:52   좋아요 0 | URL
힘이 아니날리 없는 댓글과 금요일 저녁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주 행복감만땅입니다. 수연님도 힘! (코로나 물럿거라)

감은빛 2020-05-30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터라는 건 일의 객관적인 노동강도와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나 일요일 저녁에는 우울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월요병을 견디고, 무기력한 수요일을 버티고, 금요일의 해방감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선택해왔고, 비교적 일을 즐기는 편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잘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냥 일은 일이고, 아무리 상대적으로 좋은 일터라도 일터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더라구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입장에서 늘 압박감과 우울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삶은 현대인의 큰 불행이 아닐까 싶어요.

공쟝쟝 2020-05-31 21:14   좋아요 0 | URL
해방의 금요일이 가고, 슬픈 일요일 저녁입니다. 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책읽고 글쓰는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길!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