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2012년의 대선이 (덧붙이자면, 모두의 예상을 엎고 박근혜가 문재인을 이겼다. 박정희 대 노무현이었으며 경제성장에 대한 대중적 갈망의 승리였다.) 소환되어 나도 같이 멘붕한 2024년. 아점 읽기.

분명 사는 것은 그때보다 더 각박해졌는데, 당시 멘붕한 사람들의 누구도 자신들의 욕망에 깔린 무의식까지 파내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실은 진즉에 투항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자신을 바꾸지 않기로 한 균형점을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그러니까. 사실은. 살만하다는 것. 살만하지 않음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나는 아주 비뚤어져 버렸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텍스트의 아래 ‘피해자의 오만’이라는 정희진의 워딩을 넣어보자.

“(301) 피해자에게도 자원이 있다. 유일한 자원, 도덕적 우월감이다. 그러나 이 자원은 피해자가 됨으로써 자동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성장 불가능성*, 즉 진짜 피해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성찰은 가해자의 회개, 사회적 처벌만큼이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 우월감은 특정 사건에서 단지 가해자가 아니기에 부여된 피해자 정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사람은 없다.”

가해자들의 피해의식과 싸우는 일 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어느덧 피해자를 자처하는 듯한 이들의 지독히도 성장하지 않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175)과연 그 메시아는 목숨을 걸만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력함이 진해질수록 환상은 커지게 마련이니까. 목숨을 거는 사람의 절박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 한번도 없었다.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으나, 나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시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로 연예인으로 비트코인으로 로또로 주식으로.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우리는 믿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준거 그대로의 준거자체. 믿기로 약속한 것이 언어이며 언어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니까. 무엇을 믿을래.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그걸 부단히 바꿔가면서 우린 늙어갈 것이고 아프고 병들어갈 것이며 죽을 것이다. 죽음 이후는 내가 논하고 싶은 영역이 아니다. (불가지론) 나는 그래서 늙고 아프고 병드는 것이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해결을 돈(각자도생)이 아닌 돌봄의 윤리…로 찾아야 한다는 쪽에 배팅을 걸어볼 생각이다. 그것은 능력주의와는 별개이며 젠더에 대한 진지한 공부 없이는 하나 마나 한 헛소리라는 것도.

사실 나는 이 책을 애도하기 위해 읽는 중이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애도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겠다. 이미 하던 것들에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 뭐 그 정도.

#애도의애도를위하여
#밀양각본집
#피해자의오만과숭고한실패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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