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는 분명 좋은 책이지만, 다소 아쉬운 구석이 있다. 특히 내가 인용한 다음 문장에 역주가 없는 점이 불만족스럽다.

 

 

 페루, 리마의 플로라 트리스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처음 생겨난 페미니스트 단체들 중 하나이다. (53)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이 문장에 역주가 없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만약에 내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번역을 맡았다면, ‘플로라 트리스탄이 누군지 설명하는 역주를 써넣을 것이다. 플로라 트리스탄은 사람 이름이다. 플로라 트리스탄은 여성 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인물이다.

 

 

 

 

 

플로라 트리스탄(Flora Tristan, 트리스탕으로 표기하는 책도 있다). 그녀는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보다 훨씬 더 앞서서 여성과 노동자 운동에 헌신했다. 체트킨과 룩셈부르크가 고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라면, 트리스탄은 초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이다. 트리스탄의 사회주의 운동, 체트킨과 룩셈부르크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도한 여성해방운동의 목표는 비슷하다. 이 세 사람은 남성의 지배여성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이 두 가지 문제가 여성을 억압한다고 봤다. 그런데 어째서 트리스탄은 초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가? 트리스탄의 업적을 이해하려면 먼저 19세기 유럽을 수놓은 다양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열린책들, 2012)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을유문화사, 2007)

    

 

 

 

 

 

 

 

 

 

 

 

 

 

 

 

 

* 로버트 오언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 (천줄 읽기)(지만지, 2012)

* 샤를 푸리에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외(책세상, 2007)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소설 유토피아에서 사유재산제를 폐지하는 과격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래서 모어를 공상적 사회주의의 원조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로버트 오언(Robert Owen), 생시몽(Saint Simon),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19세기 사회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19세기는 유토피아 사상이 만발했다. 산업혁명으로 물질문명은 발달했지만, 삶은 더욱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상적 노동이 가능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다. 오언은 농업과 산업이 모두 발전하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인디애나 주에 땅을 사들여 뉴 하모니라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었다. 푸리에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자급자족하는 팔랑스테르를 세웠다. 사회주의자들은 계몽과 설득을 통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자본가들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콧방귀를 뀌었다.

 

 

 

 

 

 

 

 

 

 

 

 

 

 

 

 

 

 

 

 

 

 

 

 

 

 

 

 

 

 

 

 

* [품절]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상에서 과학으로(새날, 2006)

* 리오 휴버먼 리오 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

*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그린비, 2010)

* [품절] 욜렌 딜라스-로세리외 미래의 기억 유토피아(서해문집, 2007)

 

 

 

 

마르크스엥겔스는 오언, 푸리에 등의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로 분류하여 그들의 입장을 현실적 기반을 갖지 못한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엥겔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를 비판할 땐 가차 없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훼손되지 않고 굳게 뿌리내리기 위해 과학적 공산주의로 분류했다. 트리스탄은 오언과 푸리에와 가까이 지냈다. 과학적 공산주의가 실패했더라도 트리스탄의 업적이 덜 알려지거나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트리스탄의 여성해방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리스탄은 스페인계 페루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는 공장 노동, 판화를 채색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했다. 트리스탄은 페루에 생활하면서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는 노예들의 열악한 처우를 목격했고, 이를 고발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그녀는 푸리에의 사회주의 사상 속에 담긴 여권 옹호론에 주목했다. 푸리에는 네 가지 운동과 일반적 운명에 대한 이론이라는 글(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외수록)에 여성의 경제적 자유와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남성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해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부르주아 여성들까지도 비판했다.

 

 

 

플로라 트리스탄의 삶과 주요 활동을 간략하게 언급한 책들

 

 

 

 

 

 

 

 

 

 

 

 

 

 

 

 

 

 

 

 

 

 

 

 

 

 

 

 

 

 

 

 

* 안체 슈룹, 파투 그림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숨쉬는책공장, 2016)

*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젠더와 사회(동녘, 2014)

* [절판] 수잔 앨리스 왓킨슨 페미니즘(김영사, 2007)

* [품절] 이효재 엮음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창비, 1989)

 

 

 

 

푸리에가 지적한 대로 19세기 유럽 남성들은 생각하는 여성에 반감을 드러냈다. 트리스탄의 남편도 그런 부류의 남성이었다. 트리스탄의 남편은 그녀를 학대했다. 그 시대에 여성은 이혼할 권리가 없었다. 트리스탄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여행길에 올랐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딸의 후견 문제로 남편과의 법적 싸움이 이어졌고, 남편은 트리스탄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사생아’, ‘혼혈아’,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내라는 삼중 굴레 속에서도 트리스탄은 영국,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

 

 

 

영국에 체류한 그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트리스탄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1843년에 <노동자 연합>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트리스탄은 노동자 중심의 협동조합에서 나오는 기금으로 병원, 학교 등을 설립한다면 여성 해방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연합>은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보다 먼저 영국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과 생활상을 분석하고 운동 방향을 제시한 문헌이다. 트리스탄의 견해에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있었으나 남성 사회주의자와 일부 남성 노동자들은 여권을 주장하는 트리스탄의 견해에 반대했다. 또 남성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트리스탄의 노력을 무마하려고 했다. 트리스탄은 자신을 노동해방의 걸림돌’, ‘공장을 망치려는 여성으로 바라보는 남성 사회주의자와 남성 자본가들의 냉담한 반응을 이해하고 있었다.

 

 

거의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합니다. 남자들은 내가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기 때문이고, 기업주들은 내가 임금노동자의 해방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37)

 

 

트리스탄은 자신의 의견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도보로 여행을 하고, 자신이 쓴 책을 홍보했다. 강행군을 펼친 트리스탄은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결국,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녀는 열병으로 쓰러지고 말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트리스탄을 지지한 세탁부와 중산층 부부가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노동자들은 트리스탄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그녀를 위한 성대한 장례식을 준비할만한 돈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트리스탄의 기념비가 있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손수 기부금을 갹출했다. 1848년 혁명 이후 여전히 트리스탄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은 그녀의 무덤에 찾아가 조의를 표했다. 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플로라 트리스탄은 무덤이 필요하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몇 년 동안 노동가들의 애송가로 알려졌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페루 리마에 그녀의 이름을 딴 페미니스트 단체가 세워졌다.

 

 

 

 

 

 

 

 

 

 

 

 

 

 

 

 

 

 

* [품절]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람기획, 1999)

* 프랑수아즈 카생 고갱 : 고귀한 야만인(시공사, 1996)

 

 

 

트리스탄이 세상을 떠나고 4년이 흐른 뒤에 그녀의 손자가 태어났다. 손자는 할머니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된다. 그 손자의 이름은 폴 고갱(Paul Gauguin)이다. 고갱은 회고록에 어린 시절에 전해 들은 할머니에 대한 모습과 생전 활동을 언급했다.

 

 

  우리 외할머니는 호인이며 묘한 여인이었다. 그분의 이름은 플로라 트리스탕이라고 하며, 프루동(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의 말에 따르면 재능 있는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실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프루동의 말만 믿을 뿐이다.

  그분은 수많은 사회주의적인 것을,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노동자들은 그분에게 감사하며 보르도의 묘지에서 기념비를 세웠다.

나는 진실과 꾸민 이야기를 조금도 구별할 수 없을 듯해서 그저 있는 그대로만 얘기할 따름이다. 그분은 1844년에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는 많은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그래도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플로라 트리스탕이 참으로 예쁘고 기품 있는 부인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또 그분이 늘 여행을 했고, 노동자의 송사에 전 재산을 사용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175~176)

 

 

플로라 트리스탄은 마르크스, 엥겔스, 클라라 체트킨의 노동해방운동에 영향을 준 선구자다. 그런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다. 트리스탄의 업적을 생각하면 부당한 평가이다. 왜 아무도 트리스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을까? 트리스탄이 공상적 사회주의자라서? 아니면, '남성 지식인보다 뛰어난 여성'이라서? 어쩌면 지금도 세상은 그녀를 반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단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특히 마르크시즘보다 비교적 온전한 사회주의마저 불온한 사상으로 몰아세우는 우리나라에서는 트리스탄을 빨갱이로 취급할 게 뻔하다. 마르크스에 경도된 좌파들은 그녀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의 준말)’으로 취급할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부터 시작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만 집중 조명하는 우리나라의 풍토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저평가 받게 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근대적 페미니즘의 시작에 자유주의자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이를 개선해나간 사회주의자들도 여성 운동에 뛰어들었다. 너무 많이 늦었지만, 플로라 트리스탄은 기념비가 필요하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이 좌파라면 트리스탄을 모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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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2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파가 아니라도 ‘트리스탄‘ 이라는 이름은 기억해야 겠네요! 훌륭한 삶을 사신분으로...

cyrus 2018-03-30 16:17   좋아요 0 | URL
짧으면서 굵게 사신 분이죠. 트리스탄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나 그녀가 쓴 저서를 읽어보고 싶어요. 당분간은 이런 책들이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

2018-03-30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30 16:18   좋아요 0 | URL
‘고갱의 외할머니’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기억되는 것처럼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트리스탄’으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

2019-05-02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2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5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5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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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한 뒤 내용을 수정하여 이름을 바꿔 내놓은 것인데 첫인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연인 사이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엘리자베스 베넷(애칭은 ‘리지’)은 부유한 신사 피츠윌리엄 다아시의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처음 만나 느낀 그의 오만한 태도에 못마땅하여 청혼을 거절한다. 엘리자베스는 첫인상이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아시가 사려 깊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줄거리 자체보다는 대화 내용이나 인물의 행동과 성격묘사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오스틴의 뛰어난 묘사력과 사회 비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오만과 편견》을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이 반영된 작품’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이는 고증에 맞지 않는 평가이다. 1817년에 오스틴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를 ‘섭정 시대’라고 부른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면서 섭정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아직 오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엄격한 도덕주의와 ‘성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강인한 신사’의 반대편에는 ‘(신사에게) 보호받아야 할 천사’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 여성상이 등장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점점 주변화되어 스스로 그늘진 존재로 머무른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9쪽)

 

 

세계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언급할 때 《오만과 편견》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첫 문장만 보더라도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깊은 혜안을 확인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 그렇다. 이 첫 문장은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던 여성이 자신을 부양할 남편을 만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아야 했던 섭정 시대 사회상을 압축하고 있다.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동시에 강요하는 여성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고, 빅토리아 시대로 이어져서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문화가 지배한 시대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으로 취급받았고, 자신의 진실한 욕망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런 시대가 만든 틀을 은근슬쩍 비꼬고 이를 거부한 여성이 많지 않은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오스틴이다. 그녀는 첫 문장 하나로 ‘누구나 보편적인 진리’를 점잖게 비꼰다. 《오만과 편견》이 ‘로맨스의 고전’으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독자들은 첫 문장부터 보여준 작가의 사회 비판 의식을 간과한다.

 

오스틴은 ‘결혼에 목숨을 건 남성과 여성’을 풍자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결혼에 목숨을 건 남성’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다가 거절당한 성직자 윌리엄 콜린스이고, ‘결혼에 목숨을 건 여성’은 엘리자베스에게 퇴짜 맞은 콜린스의 두 번째 청혼을 받아들인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 루카스다. 결혼을 신분 상승의 기회(샬럿) 또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기회(콜린스)로 삼는 것은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을 썼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든 결혼을 성사하려는 콜린스와 이를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의 대화, 그리고 ‘결혼’에 대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엘리자베스와 샬럿의 대화는 자의식이 뚜렷한 엘리자베스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제가 결혼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저처럼 생활에 걱정이 없는 성직자라면 누구나 훌륭한 결혼 생활의 모범을 교구민들에게 보여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결혼이 저의 행복을 훨씬 더 증진시켜 주리라는 것을 제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콜린스, 152쪽)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재차 청혼을 받을 가능성에 자신의 행복을 맡길 만큼 그렇게 무모한 아가씨들과는 다릅니다. 그런 아가씨들이 있기는 있다면 말이지요. 제 거절은 진지한 거절이에요. 당신과 결혼해서 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엘리자베스, 155쪽)

 

 

 결혼은 언제나 그녀(샬럿-cyrus 주)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중략]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이야. 그리고 콜린스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엔 우리에게도 다른 어느 커플 못지않게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샬럿)

 

[중략]

 

  콜린스 씨의 아내인 샬럿, 정말로 창피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창피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샬럿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웬만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177, 180, 181쪽)

 

 

 

엘리자베스는 결혼이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라고 여기는 인습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과 관점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할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다. 비록 그녀도 인습적인 결혼제도를 수용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여성의 감정을 억압하는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하나뿐인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스틴은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이 (남성 중심의) 세상 앞에 떳떳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엘리자베스의 당당한 모습은 투박하거나 거칠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주변 인물의 심성을 꿰뚫을 정도로 섬세하다.

 

《오만과 편견》에는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는 시대적 제약’과 ‘전통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습’ 등 매우 진지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일반적인 로맨스의 기승전결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은 독자적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 작가에 향한 예우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만과 편견》을 ‘고전적 연애소설’로 느껴지지 않으려면 영화보다 원작소설을 먼저 봐야 한다. 소설과 영화는 별개의 매체이다. 영국 사회의 보수적인 인습과 거기에 지배당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 등에 대한 오스틴의 세밀한 묘사는 오로지 소설을 통해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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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면 짚신도 제 짝있다는 말은 별로 맞는 말이 아니거나
엄청난 진실을 내포하는 말이거나 둘중 하난 것 같아.ㅋ

cyrus 2018-03-29 17:23   좋아요 0 | URL
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ㅎㅎㅎ 비혼주의자들은 그 말을 들으면 코웃음 칠 겁니다.. ^^;;

oren 2018-03-29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는 아무래도 찰스 디킨스(1812~1870)가 아닐까요?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뒤를 이은 대표적인 영국 작가가 바로 그였으니까 말이지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오만과 편견‘을 모두 극복하고 난 뒤에 마침내 펨벌리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나눴던 대화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군요.^^

˝그렇지만 처음에 어떻게 시동이 걸렸죠?˝

˝시동을 건 시각이라든가, 장소라든가, 표정이라든가, 말이라든가 하는 것을 꼭 집을 수는 없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내가 시작했구나 알았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더군요.˝

cyrus 2018-03-29 17:27   좋아요 0 | URL
부끄럽게도 올해에 제가 오스틴의 작품 중에 처음으로 읽은 게 <오만과 편견>입니다. 오늘 독서모임 때문에 드디어 오스틴의 대표작을 읽게 되었어요.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읽으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디킨스를 읽기 위한 시동이 언제 걸릴지 모르겠어요. ^^;;

2018-03-29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9 17:30   좋아요 0 | URL
저도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끔 지인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결혼 언제 하냐?”라는 말이 툭 나옵니다. 또 기혼자 지인을 만나면 자식 출산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고요. 이래서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습이 무서워요. ^^;;

레삭매냐 2018-03-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인 오스틴은 <설득> 읽고 보고 한 게
전부네요.

<오만과 편견>은 읽겠다고 일단 사두긴 했
는데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산 건 을유문화사 버전입니다.

오렌님이 언급해 주셨습니다만 우리나라에
서는 어째 디킨즈가 인기가 없는지 모르겠
습니다.

cyrus 2018-03-29 17:32   좋아요 0 | URL
<에마>,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그리고 작년에 나온 초기작 및 미발표작을 수록한 번역본을 제외하면 오스틴의 소설을 가지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마음잡고 오스틴 전작 읽기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

transient-guest 2018-03-3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은 그저 사회상을 보여주는 소설로 봤지 날카로운 풍자는 묘사 이상의 수준으로 보지는 못했네요. 제 critical reading능력에 역시 많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8-03-31 15:27   좋아요 1 | URL
책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봐야 책 속에 숨어있는 진가를 볼 수 있어요. 저를 제외한 독서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오만과 편견>을 두 번 이상 읽었어요. 영화와 드라마도 봤고요. 시간이 흐른 뒤에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집안의 노동자 -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56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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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 전역을 덮친 대공황은 많은 사람을 실업과 가난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작은 정부’ 중심의 자유주의를 고집했다. 후버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는 꼴이 됐다. 물가는 계속 폭락했고, 실업자도 날로 늘어나 수천만 명에 이르는 파산자가 속출됐다. 후버의 뒤를 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으로 무너진 미국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왔다.

 

루스벨트는 가난한 하층민을 상징하는 ‘잊힌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잊힌 사람들을 위한 뉴딜 정책’을 천명했다. 뉴딜 정책은 국정 운용과 경제의 틀 자체를 변화시켰다. 루스벨트 정부는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 대신 정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 케인스 경제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연방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확대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쳤다. 또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등 노동자의 복지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역사학자들은 뉴딜 정책이 대공황으로 위험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복지국가체제의 기틀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뉴딜 정책 신화’에 가려진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 진실은 시간이 지나서야 명백해진다. 뉴딜 정책의 일부 사회보장제도가 실제로는 여성과 흑인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경제의 ‘경’ 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설득력 있게 쓴 책이 1983년에 나왔다. 이탈리아의 여성 운동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집안의 노동자》(갈무리, 2017)이다.

 

이 책에서 코스따는 루스벨트 정부가 시행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과 그 결과를 제시한다. 루스벨트 정부가 경제성장의 기폭제로 내놓은 것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계획(TVA)이다. 뉴딜 정책 일환으로 추진된 TVA는 테네시강 본류와 지류에 26개 대형 댐을 건설하고 남부 내륙 운하를 설치하는 대형 토목공사였다. 루스벨트 정부는 공공 일자리를 만들면 노동자의 임금이 향상되고, 내수 소비가 살아나서 생산과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뉴딜 정책이 창출한 일자리 대부분은 ‘백인 남성’이 차지했다. 정부는 백인 남성‘에게 가족과 국가를 재건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흑인 남성은 여전히 열악한 근로환경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여성은? 여성은 ‘집안의 노동자’로 전락했다.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집안일, 가족을 돌보는 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등의 가족과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노동을 의미한다. 대공황의 여파로 망가진 경제는 가족의 해체를 불렀다. 돈이 없어서 자식에게 일을 시키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증가했다. 정부는 경제위기가 초래한 가족 해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에게 집안의 노동을 직접 담당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겼다. 정부는 여성에게 ‘가정학’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며 가사노동을 ‘사랑으로 하는 노동’으로 포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코스따는 여성을 위한 뉴딜 정책이 여성에게 ‘집안의 노동자’ 역할을 부여한 전략적 기획이라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남편은 바깥일, 아내는 집안일’이라는 성별 노동 분업이 미국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정부는 가족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여성의 노동을 착취했다. 이렇게 여성의 가사노동은 ‘특별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 ‘당연히 여성이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게 되고, ‘집안의 노동자’는 뉴딜 정책 신화에 가려져서 ‘잊힌 여성(The Forgotten Woman)’이 되었다.

 

남성의 노동력은 가족 내 가사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여성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에 의지하게 되고, 여성의 가사노동 및 임금은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없다는 전제로 설정된다. 뉴딜 정책 시기의 미국 여성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받는 차별뿐만 아니라 ‘집 밖의 일’을 얻는 기회조차 받지 못했고, 저임금을 받는 이중, 삼중의 차별까지 겪었다. 남성 노동자 파업에 동참하거나 파업을 주도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순히 노동에 따른 보상을 받기 위한 일이 아니다. 재생산노동을 남성들의 임금노동 하위에 위치시키면서 가사노동을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여성 노동력을 ‘0원’으로 만드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저항이다.

 

《집안의 노동자》는 뉴딜 정책 시대의 남성과 여성의 성별 분업 구도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집안의 노동자》을 읽으면 지금도 변함없는 여성 노동 문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면서 일해본 적이 없다. 물론, 한때 ‘알파 걸’, ‘슈퍼 우먼’ 같은 일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유행했지만 사회는 ‘집 밖의 노동자’가 되어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집안의 노동자’ 역할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결혼과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가는 재생산노동의 책임을 여성에게 일차적으로 부여하면서 여성 노동력을 비정규직 형태로 노동시장에 흡수하려는 정책을 고집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여성들은 성별 분업을 조장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맞서 자신을 저항주체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힘겹지만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여성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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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8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9 13:45   좋아요 0 | URL
네.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에 참정권을 준 국가입니다. 뉴질랜드 내에서도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운동이 펼쳐졌는데요, 미국과 영국 페미니스트들의 참정권 운동이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 이 중요한 사실을 다룬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요.

sprenown 2018-03-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때문에 어쩔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요즘은 집안일만 하는 여성이 더 눈총받는거 같아요^^.비정규직이나 시간제라도 돈벌어오기 바라죠. 씁쓸한 현실..

cyrus 2018-03-29 13:50   좋아요 1 | URL
문제는 비정규직, 시간제 근무 여성을 위한 고용 보장이 열악해요. 기본적인 노동 3권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회사가 많아요.

AgalmA 2018-04-01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육아, 가사 일을 여성이 잘 한다고 본성이나 특성으로 틀로 만든 경향이 있죠. 생물학 보면 호르몬상의 차이는 분명 있는 거 같지만 사회 생활 속에서 같이 분담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착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여성이 사회생활에 진출하니 어디 얼마나 잘 하나 감시 & 평가가 아니라 서로서로 도와야죠. 평등과 평화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cyrus 2018-04-01 19:43   좋아요 1 | URL
여성이 취업하는 과정을 보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이 많아요. 특히 면접 때 남성 면접관은 여성 구직자에게 결혼 계획이나 남자친구 유무를 묻습니다. 회사는 결혼하는 여성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걸 꺼려하죠. 여성 직원은 일처리가 미숙하다는 남성 직원의 편견도 여성의 ‘가정주부화‘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알쏭달쏭한 단어’가 있다.

 

 

 

 

 

 

 

 

 

 

 

 

 

 

 

 

 

토지 없고 가난한 인도 여성의 노동과 우유가 빨려 나가가는 이런 과정,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에서 (‘흥건하게 되는’ 것은 도시이고, ‘진액이 빨려나가는 것’은 촌락과 여성이다) ‘우유홍수작전’이라고 불리는 과정에 대한 분석은 인도에서 자본주의 우유 생산에 연루되어 있는 가난한 여성에 대한 극도의 착취와 유럽 공공시장에서 우유의 과대생산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짧게라도 살펴보아야 온전한 분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85쪽)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 이게 무슨 말인가? ‘오웰’은 그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제 남은 건 ‘신조어 전통’이라는 생소한 표현이다.

 

 

 

 

 

 

 

 

 

 

 

 

 

 

 

 

 

 

 

 

 

 

 

 

 

 

 

 

 

 

 

 

 

 

 

 

 

 

 

 

 

 

 

 

 

 

 

 

 

 

* [에디터스 컬렉션] 조지 오웰, 김병익 역 《1984》 (문예출판사, 2018)

* [스페셜 에디션] 조지 오웰, 이기한 역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14)

* 조지 오웰, 권진아 역 《1984》 (을유문화사, 2012)

* 조지 오웰, 박경서 역 《1984》 (열린책들, 2009)

* 조지 오웰, 김기혁 역 《1984》 (문학동네, 2009)

* 조지 오웰, 이기한 역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조지 오웰, 김병익 역 《1984》 (문예출판사, 2006)

* 조지 오웰, 정회성 역 《1984》 (민음사, 2003)

 

 

 

 

오웰의 대표작 《1984》빅 브라더는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고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신어(Newspeak, 新語)’를 만들어낸다. 을유문화사 판본의 역자는 ‘Newspeak’를 순우리말 ‘새말’로 옮겼다. 소설의 부록으로 실린 『신어의 원리』라는 글에 따르면 신어는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신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 신어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쓰던 표준 영어(구어, Oldspeak)는 줄어들어 폐기된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표준 영어를 폐기하면 통치 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의식이 줄어든다. 신어 정책에 지배당한 국민은 전체주의 독재자로부터 위협받는 자유를 지켜내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아예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역자는 ‘신어’를 ‘신조어’라고 번역했다. 물론, 신어와 신조어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신조어는 말 그대로 ‘새로 만든 말’이다. 빅 브라더가 고안한 신어 중에 두 개 이상의 단어를 합쳐 새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하지만 신어 창안의 목적은 ‘이단의 뜻을 가진 표준 영어를 삭제(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을 '정책'으로 바꿔 쓰면 단어의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진다. 따라서 ‘오웰적인 신조어 전통’은 《1984》가 보여준 ‘신어’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역자가 《1984》의 부록을 알고 ‘오웰적인 신어 정책’ 또는 '《1984》의 신어 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알쏭달쏭한 단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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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2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해당 페이지를 찾아보니 실제로 그렇게 씌여있군요 ㅎ ㅎ 번역이 좀 아쉽네요!

cyrus 2018-03-29 13:52   좋아요 0 | URL
읽다 보면 원문을 직역한 듯한 긴 문장도 보여요.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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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을 받든, 존경을 받든 어떠한 형태로라도 절대 잊히지 않을 마르크스가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발달의 필연적인 산물로 규정했다.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의 생산력은 급속히 성장하지만,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라는 생산 관계의 모순을 심화하여 빈곤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모순 극복을 위해 생산수단의 사유폐지와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강조했다.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이라는 책에서 원시 사회는 사유재산 없는 모계사회였지만 잉여재산과 상속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일부일처제의 탄생은 부계제도에 기초한 가족의 출현을 동반했으며 계급사회의 출현을 촉진했다.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의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산 활동은 가정에서 분리된다. 그래서 가정과 일이 분리되는 ‘성별 노동 분업’이 생겼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독일의 사회주의자 클라라 체트킨, 아우구스트 베벨 등은 “여성해방의 첫 번째 전제는 모든 노동자 여성을 계급 투쟁에 참여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혁명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계급이 해방될 때 곧 여성이 해방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을 배제한 채 참정권을 요구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를 비판했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계급 해방 이후의 노동자 여성을 가사노동과 양육 등 보살핌 노동을 전담하는 존재로 보았다. 여성 평등권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해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의 여성해방론은 가부장제 철폐를 위한 실천적인 여성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1986년에 나온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자본주의 체제의 여성 착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명 생산’으로 명명되는 여성의 노동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만 비판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가 결탁하여 서구 여성, 제3세계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평등만을 주장하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마리아 미즈의 비판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본과 권력 모두 쥔 남성(서구 남성, 아시아 남성, 제3세계 남성)은 여성(서구 여성, 아시아 여성, 제3세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어 가부장적 권력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주부’가 된다. 미즈는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이 ‘가정주부화’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가정주부가 된 여성은 저임금 또는 무임금 노동을 하게 되고, 남성 노동과 여성 노동 간의 임금 격차는 커진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진행되는 자본주의 체제는 성별 노동 분업을 강화한다. 이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면 여성의 사회 · 경제적 불평등이 좀처럼 완화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경제’ 체제 안에서 여성의 삶이 착취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 성장중심주의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미즈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생태주의적 관점으로 대안 경제모델을 제시한다. 그 대안 경제모델의 핵심은 ‘자급’이다. 여성은 여성 노동을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제품, ‘가정주부’,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여성성 모델을 강조하는 상품 등을 소비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필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급’은 ‘완전한 자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자급사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미즈도 이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부분적 자급’ 활동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출간 이후로 지금까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자급 활동이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대안 생리대’는 여성의 몸을 위한 자급 활동 중 하나이다. 자급 활동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즈는 자급 경제모델 내에서 남성도 가사 노동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하며 여성과 함께 자급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사노동은 고된 노동이라기보다는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부차적인 활동으로 이해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한테 가정은 쉼터지만 여성들은 자신의 일터인 집안에서 일해야만 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긴밀히 결합하여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는 타의에 의해 가정에 속박당하는 여성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여성해방의 첫 단추는 전 세계에 꽉 묶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매듭을 풀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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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8 10:48   좋아요 0 | URL
세상이 문명사회 이전으로 회귀해도 남성의 경쟁심, 지배 욕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

마립간 2018-03-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도 단편적으로 언급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문명지향적입니다. 여성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합니다. 여성이 (남녀평등적) 페미니즘을 위해 그런 사회(, 예로 부탄으)로 이주한다면 보편적 사건이 아닌 예외적 사건이죠.

cyrus 2018-03-28 16:4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여성들은 문명지향적인 존재이며 열심히 일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기를 원하고, 사회적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가사노동보다 ‘집 밖의 일’에 관심을 보이면 경계하고 반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