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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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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한 뒤 내용을 수정하여 이름을 바꿔 내놓은 것인데 첫인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연인 사이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엘리자베스 베넷(애칭은 ‘리지’)은 부유한 신사 피츠윌리엄 다아시의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처음 만나 느낀 그의 오만한 태도에 못마땅하여 청혼을 거절한다. 엘리자베스는 첫인상이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아시가 사려 깊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줄거리 자체보다는 대화 내용이나 인물의 행동과 성격묘사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오스틴의 뛰어난 묘사력과 사회 비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간혹 《오만과 편견》을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이 반영된 작품’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이는 고증에 맞지 않는 평가이다. 1817년에 오스틴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를 ‘섭정 시대’라고 부른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면서 섭정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아직 오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엄격한 도덕주의와 ‘성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강인한 신사’의 반대편에는 ‘(신사에게) 보호받아야 할 천사’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 여성상이 등장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문화 속에서 점점 주변화되어 스스로 그늘진 존재로 머무른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9쪽)
세계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언급할 때 《오만과 편견》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첫 문장만 보더라도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깊은 혜안을 확인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 그렇다. 이 첫 문장은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던 여성이 자신을 부양할 남편을 만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아야 했던 섭정 시대 사회상을 압축하고 있다.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동시에 강요하는 여성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고, 빅토리아 시대로 이어져서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문화가 지배한 시대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으로 취급받았고, 자신의 진실한 욕망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런 시대가 만든 틀을 은근슬쩍 비꼬고 이를 거부한 여성이 많지 않은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오스틴이다. 그녀는 첫 문장 하나로 ‘누구나 보편적인 진리’를 점잖게 비꼰다. 《오만과 편견》이 ‘로맨스의 고전’으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독자들은 첫 문장부터 보여준 작가의 사회 비판 의식을 간과한다.
오스틴은 ‘결혼에 목숨을 건 남성과 여성’을 풍자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결혼에 목숨을 건 남성’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다가 거절당한 성직자 윌리엄 콜린스이고, ‘결혼에 목숨을 건 여성’은 엘리자베스에게 퇴짜 맞은 콜린스의 두 번째 청혼을 받아들인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 루카스다. 결혼을 신분 상승의 기회(샬럿) 또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기회(콜린스)로 삼는 것은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을 썼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든 결혼을 성사하려는 콜린스와 이를 거부하는 엘리자베스의 대화, 그리고 ‘결혼’에 대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엘리자베스와 샬럿의 대화는 자의식이 뚜렷한 엘리자베스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제가 결혼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저처럼 생활에 걱정이 없는 성직자라면 누구나 훌륭한 결혼 생활의 모범을 교구민들에게 보여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결혼이 저의 행복을 훨씬 더 증진시켜 주리라는 것을 제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콜린스, 152쪽)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재차 청혼을 받을 가능성에 자신의 행복을 맡길 만큼 그렇게 무모한 아가씨들과는 다릅니다. 그런 아가씨들이 있기는 있다면 말이지요. 제 거절은 진지한 거절이에요. 당신과 결혼해서 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엘리자베스, 155쪽)
결혼은 언제나 그녀(샬럿-cyrus 주)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중략]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이야. 그리고 콜린스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엔 우리에게도 다른 어느 커플 못지않게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샬럿)
[중략]
콜린스 씨의 아내인 샬럿, 정말로 창피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창피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샬럿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웬만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177, 180, 181쪽)
엘리자베스는 결혼이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라고 여기는 인습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과 관점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할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다. 비록 그녀도 인습적인 결혼제도를 수용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여성의 감정을 억압하는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하나뿐인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스틴은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이 (남성 중심의) 세상 앞에 떳떳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엘리자베스의 당당한 모습은 투박하거나 거칠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주변 인물의 심성을 꿰뚫을 정도로 섬세하다.
《오만과 편견》에는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는 시대적 제약’과 ‘전통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습’ 등 매우 진지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일반적인 로맨스의 기승전결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은 독자적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 작가에 향한 예우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만과 편견》을 ‘고전적 연애소설’로 느껴지지 않으려면 영화보다 원작소설을 먼저 봐야 한다. 소설과 영화는 별개의 매체이다. 영국 사회의 보수적인 인습과 거기에 지배당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 등에 대한 오스틴의 세밀한 묘사는 오로지 소설을 통해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