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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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을 받든, 존경을 받든 어떠한 형태로라도 절대 잊히지 않을 마르크스가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발달의 필연적인 산물로 규정했다.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의 생산력은 급속히 성장하지만,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라는 생산 관계의 모순을 심화하여 빈곤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모순 극복을 위해 생산수단의 사유폐지와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강조했다. 엥겔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이라는 책에서 원시 사회는 사유재산 없는 모계사회였지만 잉여재산과 상속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일부일처제의 탄생은 부계제도에 기초한 가족의 출현을 동반했으며 계급사회의 출현을 촉진했다.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의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산 활동은 가정에서 분리된다. 그래서 가정과 일이 분리되는 ‘성별 노동 분업’이 생겼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독일의 사회주의자 클라라 체트킨, 아우구스트 베벨 등은 “여성해방의 첫 번째 전제는 모든 노동자 여성을 계급 투쟁에 참여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혁명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계급이 해방될 때 곧 여성이 해방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을 배제한 채 참정권을 요구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를 비판했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계급 해방 이후의 노동자 여성을 가사노동과 양육 등 보살핌 노동을 전담하는 존재로 보았다. 여성 평등권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해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의 여성해방론은 가부장제 철폐를 위한 실천적인 여성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1986년에 나온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자본주의 체제의 여성 착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명 생산’으로 명명되는 여성의 노동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만 비판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가 결탁하여 서구 여성, 제3세계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평등만을 주장하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마리아 미즈의 비판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본과 권력 모두 쥔 남성(서구 남성, 아시아 남성, 제3세계 남성)은 여성(서구 여성, 아시아 여성, 제3세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어 가부장적 권력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주부’가 된다. 미즈는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이 ‘가정주부화’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가정주부가 된 여성은 저임금 또는 무임금 노동을 하게 되고, 남성 노동과 여성 노동 간의 임금 격차는 커진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진행되는 자본주의 체제는 성별 노동 분업을 강화한다. 이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면 여성의 사회 · 경제적 불평등이 좀처럼 완화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경제’ 체제 안에서 여성의 삶이 착취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여성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 성장중심주의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미즈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생태주의적 관점으로 대안 경제모델을 제시한다. 그 대안 경제모델의 핵심은 ‘자급’이다. 여성은 여성 노동을 착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제품, ‘가정주부’,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여성성 모델을 강조하는 상품 등을 소비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필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급’은 ‘완전한 자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자급사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미즈도 이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부분적 자급’ 활동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출간 이후로 지금까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자급 활동이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대안 생리대’는 여성의 몸을 위한 자급 활동 중 하나이다. 자급 활동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즈는 자급 경제모델 내에서 남성도 가사 노동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하며 여성과 함께 자급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사노동은 고된 노동이라기보다는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부차적인 활동으로 이해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한테 가정은 쉼터지만 여성들은 자신의 일터인 집안에서 일해야만 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긴밀히 결합하여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는 타의에 의해 가정에 속박당하는 여성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여성해방의 첫 단추는 전 세계에 꽉 묶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매듭을 풀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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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8 10:48   좋아요 0 | URL
세상이 문명사회 이전으로 회귀해도 남성의 경쟁심, 지배 욕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

마립간 2018-03-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도 단편적으로 언급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문명지향적입니다. 여성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합니다. 여성이 (남녀평등적) 페미니즘을 위해 그런 사회(, 예로 부탄으)로 이주한다면 보편적 사건이 아닌 예외적 사건이죠.

cyrus 2018-03-28 16:4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여성들은 문명지향적인 존재이며 열심히 일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기를 원하고, 사회적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가사노동보다 ‘집 밖의 일’에 관심을 보이면 경계하고 반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