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 TV 드라마 <X 파일(The X-Files)>의 프로그램 타이틀에 나오는 말이다. 극 중에서 FBI는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 사건들을 묶어 ‘X 파일로 분류한다. 이 드라마가 유명해지면서 ‘X 파일미공개 사건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라는 문구는 유령을 믿는 사람들이 회의론자의 비판을 방어할 때 쓸 수 있다. ‘유령의 실체를 증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유령이 있을 것이다라고 어물쩍 대답하는 꼴이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유령의 자연사저 너머에 있는 진실’, 유령의 실체를 믿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을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작가들이 싸구려 유령 이야기, 실제 인물의 유령 목격담을 보면서 유령의 실체를 믿는다. 계몽주의적 이성만 믿는 사람들에게 미신이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미신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지만,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오히려 더해갔다. 낭만주의 운동은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고딕 소설(Gothic fiction)은 낭만주의 시대에 성행한 대중소설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고딕 소설은 진실의 형식을 빌려 허구적 세계를 제공해 독자의 말초적 감성을 유발했다.

 

유령의 자연사에는 유령 문학(literary Ghost Story)’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유령 문학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유령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령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심리 속에 유령을 바라보는 대중심리가 작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영국인들의 유별난 유령 사랑을 이해하려면 유령의 자연사유령 문학으로 언급된 작품들을 읽어봐야 한다.

    

 

 

 

 

 

 

 

 

 

 

 

 

 

 

* 정선숙 역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3(자유문학사, 2004)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영국의 최초 유령 이야기를 쓴 사람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를 쓴 작가다. 디포는 1706년에 익명으로 엄청나게 긴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캔터베리에서 있었던, 미세스 빌이 사망한 다음 날에 바그레이브 부인 앞에 나타난 미세스 빌의 유령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장형 제목을 단 책들이 나왔다. 《로빈슨 크루소》도 출판업계의 유행을 따른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목은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디포가 쓴 유령 이야기의 제목은 <빌 부인의 망령>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이 영국 최초의 유령 이야기라서 무서운 이야기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 보면 <빌 부인의 망령>은 너무나도 평범한 유령 이야기다. 바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의 영혼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빌 부인의 망령>은 서구 공포 문학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작품이다. 일단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빌 부인의 망령>을 읽은 독자들은 유령과 담소를 나눈 부인의 이야기를 실화로 인식했다.

    

 

 

 

 

 

 

 

 

 

 

 

 

 

 

* 호레이스 월폴 오트란토 성(황금가지, 2002)

    

 

 

오트란토 성은 고딕 소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은 이 작품의 제2판에 고딕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성. 오트란토 성의 영주인 만프레드의 아들이 결혼식을 거행하기 전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 영주의 아들은 거대한 투구에 깔린 채 숨을 거두었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한 영주는 오트란토 성에 오랫동안 지배한 가문의 저주를 떠올리게 되고, 점점 광기에 사로잡힌다. 한편, 하인들은 죽은 영주의 아들로 보이는 유령을 목격하기도 한다. 오트란토 성에도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장면이 많지 않다. 음산한 분위기가 지배한 성, 그 속에 숨겨진 비밀 통로, 그리고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날수록 이성을 잃어버리는 인물들의 모습 등은 고딕 소설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독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18세기 영국 독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딕 소설의 매력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오트란토 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만프레드의 행동과 심리 변화를 주목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만프레드는 낭만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들의 죽음 이후로 종족 번식(자신의 대를 이어줄 장자가 있어야 가문이 유지된다)에 대한 욕구를 느껴, 아들의 결혼 상대자인 이사벨라와 재혼하려고 한다. 만프레드는 이성의 구속에 벗어난 감정 상태에 빠져 있고, 그에겐 사랑이란 이성이 아니라 느낌에 충실한 것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자가 생각했던 낭만주의적 사랑이다. 물론, 만프레드가 이사벨라를 대하는 반응과 태도는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재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처를 무시하는 만프레드의 모습에서 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가부장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만프레드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방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억압을 포장한 것이므로 절대로 낭만화할 수 없다.

 

    

 

 

 

 

 

 

 

 

 

 

 

 

 

* 몬터규 로즈 제임스 몬터규 로즈 제임스 :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현대문학, 2014)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는 고대 및 중세 필사본을 연구한 서지학자이면서도 유령,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 고딕 소설의 향수가 조금 남아있지만, 앞서 소개한 밋밋한두 작품(<빌 부인의 망령>, <오트란토 성>)과 비교하면 한층 더 세련되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로 가득하다. 유령의 자연사의 저자 로저 클라크는 일본 영화 <>을 분석했는데, 그는 <>의 특정 장면이 제임스의 여러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학교 괴담, 울부짖는 우물, 유령 들린 인형의 집, 포인터 씨의 일기장을 읽어보면 된다.

    

 

 

 

 

 

 

 

 

 

 

 

 

 

 

*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005)

    

 

 

유령의 자연사14장에 몽스의 천사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령 이야기가 나온다. 이 유령 이야기를 알기 전에 아서 매켄(Arthur Machen)의 짤막한 소설 궁수를 읽으면 좋다. 궁수몽스의 천사들이야기와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스의 천사들이야기가 매첸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자, 매첸은 자신이 쓴 궁수가 허구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은 천 리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몽스의 천사들은 영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존재로 순식간에 급부상했다. 그 당시 몽스의 천사들을 모르는 영국인은 간첩으로 취급받았다. 우스갯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애국심에 사로잡힌 영국인들은 조국을 보호해준 천사가 있다고 믿었다.

 

유령의 자연사에 소개된 그 밖의 유령 문학 작품으로는 헨리 제임스(Henry James)나사의 회전,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크리스마스 유령,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캔터빌의 유령 등이 있다. 이 작품들에 대한 평을 쓰고 싶었으나 그걸 여기다 적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이 글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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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9 15:18   좋아요 0 | URL
옛날 사람들은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듯한 제목을 짓는 것을 좋아했어요.. ㅎㅎㅎ

sprenown 2017-12-0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유령문학 작품펑 기대합니다^^!

cyrus 2017-12-09 15:19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유령>은 읽어봤는데, <나사의 회전>은 한 번도 안 읽었어요. 번역본 문장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8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트란토 성을 읽고 몬터규 로즈 제임스와 아서 매켄을 좋아하는 동류의 인간으로서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앨저넌 블랙우드나 앰브로스 비어스,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인물들은 안 나오나요??^^

cyrus 2017-12-09 15:20   좋아요 0 | URL
제 기억으로는 <유령의 자연사>에 블랙우드, 비어스, 포는 언급되지 않았어요.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영국 출신 작가를 많이 소개했어요. ^^
 
유령의 자연사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령 현상에 대하여
로저 클라크 지음, 김빛나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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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령이 많이 출몰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은 헨리 8(Henry )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유령이다. 그녀가 참수된 런던탑 주변에 밤마다 목 없는 앤 불린의 유령이 떠돈다는 도서 전설이 있다. 유령을 믿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로저 클라크(Roger Clarke)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영국 심령연구학회(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 회원이 되었다. 클라크는 유령이 자주 목격되는 고스트 스팟(Ghost Spot) 여러 군데를 방문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하여 클라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유령은 한 차례 목격된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유령의 실체를 규명하는 대신에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시대별로 유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반응을 확인했다. 유령의 자연사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내면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에 관한 책이 맞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무시무시한 유령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서 유령의 자연사를 읽어보려고 한다면, 나는 말리겠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을 주제로 한 책이지, ‘유령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따라서 끔찍하고 무서운유령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심령사진이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령사진으로 알려진 레이넘 홀의 브라운 레이디(The Brown Lady of Raynham Hall)’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작한 것으로 판명된 가짜 심령사진들이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책 소개 단신에는 이 책을 유령 백과사전으로 소개했다.[1] 어디서 구라를!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절대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저자는 유령 이야기를 즐기는 옛사람들의 대중심리를 간파하여 유령의 실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흔히 유령이라면 하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령의 자연사는 이 통념을 반박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령은 감정의 영역[2]이다. 유령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과 열광이 만들어낸 그림자.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유령이라는 그림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고 뒷걸음질 친 것이다. 고스트 헌터(Ghost Hunter)의 원조는 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악령의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악령에 맞설 수 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강신술, 교령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령을 불러들이는 영매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연히 유령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령이 목격되는 장소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령을 내세워 돈 좀 벌어보려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개인의 출신 배경과 직업 등에 따라 유령의 개념을 인식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유령을 믿는 성향이 강하고, 중산층은 유령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계급을 초월하여 전 국민이 유령을 믿는 흠좀무(‘,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한 상황이 나올 때도 있다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전역에 알려진 몽스의 천사들(Angels of Mons)’쇼비니즘(chauvinism, 맹목적 애국주의)이 만든 유령 이야기다. 몽스라는 지역에서 독일군과의 혈투를 벌인 영국군은 궁지에 몰렸지만, 하얀 형상의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승리했다. 몽스 전투에 참전한 영국 군인들은 이 기적 같은 일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천사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국 정부와 언론은 몽스의 천사를 영국군의 수호성인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몽스의 천사를 의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믿지 않으면 반애국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에 접하면 확실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곧 그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유령 목격담에 쉽게 흥분한다. 과학이 발달해도 유령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누군가는 명성을 얻기 위해 유령을 만들고, 그 유령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결국, 유령은 망자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인류의 감정 안에 탄생하는 욕망 덩어리. 지금도 사람들은 조작과 착각이 뒤섞인 욕망 덩어리를 보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유령을 보려는 헛된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기만하는 욕망 덩어리는 재생산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비슷한 유령을 만들어 낸다. 정말 유령은 만들어 내기가 쉽다.

 

 

      

 

[1] [<책꽂이-새 책200> 유령의 자연사] 서울경제, 20171111

 

[2] 유령의 자연사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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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8 17:01   좋아요 1 | URL
<처녀귀신>이라는 제목의 문화사 분야의 책이 있습니다. <유령의 자연사>와 <처녀귀신>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서양인이 유령을 보는 관점과 우리 조상님들이 귀신을 보는 관점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
 
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비둘기는 귀소본능과 방향감각이 뛰어나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특별해 옛날부터 군에서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연어는 민물 하천에서 알을 까고 태어나 하류로 여정을 떠나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는 산란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났던 상류로 거슬러 오른다. 연어는 태어난 곳으로 가기 위해 거센 역류를 헤쳐 나가야 하고, 때로는 폭포를 뛰어오르기도 한다. 민물에 도착한 연어는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연어는 일주일 이내에 죽는다. 동물들의 귀소 본능은 어떻게 발달하였을까.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까지 물속을 헤엄치거나 하늘을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능력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 태양의 각도나 별의 위치 · 지형지물 등을 이용한다거나, 지구에 흐르는 자기장을 활용한다는 등 다양한 연구결과들만 나오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꿈에도 잊지 못할 곳이라고 고향을 표현했다. 누가 고향을 어머니 품과 같다고 했던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벅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일상에 지친 그들이 영혼의 안식처로 찾아가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인간도 귀소 본능이 있는 동물이라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잊지 못한다. 미국의 동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는 동물과 인간의 귀소본능을 같은 의미로 봤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물의 보금자리는 (home)’이다. 동물은 서식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번식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집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이동한다.

 

 

 

 

 

큰뒷부리도요라는 새는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고된 날갯짓을 한다. 이 새가 한 번 쉬지 않고 이동한다면 하루 평균 최대 1,500km까지 비행하는 셈이다. 작은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큰뒷부리도요는 자신의 체중을 불린다. 살집에 비축된 체지방은 장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에너지다. 그들이 계속 날갯짓을 할 때마다 체지방뿐만 아니라 몸속에 있는 단백질까지 소진된다.

 

오감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본능적인 감각이 후각이다. 귀소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후각을 동원하여 고향으로 이동한다. 산 너머 꿀을 따러 날아간 은 정확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집에서 꿀이 있는 곳까지의 비행경로를 스스로 찾아내거나 동료로부터 전달받은 비행경로를 습득한다. 일벌들은 자신의 몸에서 생성되는 밀랍으로 벌집을 만든다. 비버는 강 속에 둥지를 만들어 그 주위에 나무를 잘라 댐을 쌓는다. 이렇게 하면 이동이 쉽고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지음으로써 위험을 피하고 번식의 기회를 늘린다.

 

귀소 본능은 먹이를 찾고, 번식하고,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생활방식이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동물의 귀소 본능 속에 집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확인한다. 단순해 보이는 동물의 보금자리에도 복잡한 원리가 숨어 있다. 동물들은 짝짓기와 새끼 기르기에 들어갈 노력을 고려하면서 최적의 보금자리를 찾아다닌다. 따라서 동물의 귀소 본능과 집짓기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알고 보면 동물들도 우리처럼 생존 욕구가 강하다. 고향을 찾아 먼 길을 이동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생존에는 필수적인 욕구이며 중요한 기술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역시 집에 있을 때 몸과 마음이 편하다. 평생 한집에서 계속 쭉 살면 좋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기존에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마련해야 한다. 동물들은 감각적 지식을 통하여 자기 종족들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 가를 정확히 알고 그것만을 먹고 살아간다. 반면 인간은 태어날 때 감각적 지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그의 이해를 통해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즉 지식은 피와 살이 되는 생존 전략이 된다. 과연 인간과 동물의 삶 중 누가 제일 힘들어 보이는가? 한 가지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로? 내 생각엔 둘 다 탄탄대로의 삶이라 볼 수 없다. 어차피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다. 집 나가면 고생한다. 동물 주변에는 생존 욕구에 강한 천적들이 도사린다. 게다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수록 고향으로 가는 여정이 점점 험난해진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동물과 인간은 옛집을 떠나 새집을 찾는 동안 고생한다.

 

    

 

 

Trivia

 

* 108쪽 본문 맨 밑에 스콕홀름이라는 괴랄한 단어가 박혀 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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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7 09:53   좋아요 0 | URL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애인’이라면, 세계 불가사의한 장소는 ‘내 집’입니다. 도대체 애인과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
 

 

 

위대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지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만 알려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을 먼저 닦고 거친 스승의 식견은 그 자체로 제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드물지 않다. 청출어람(靑出於藍).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공자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았던 제자 안회(顔回)를 총애하였다. 예술에서도 청출어람의 예를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 겸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서 미술 수련을 받았다. 도제 생활 6년 이상을 한 제자는 스승의 그림 작업에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로키오는 도제 생활 6년도 채 안 된 다빈치에게 자신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다빈치는 그림 왼쪽에 있는 천사를 그렸다. 어린 제자의 훌륭한 그림 솜씨에 감탄한[1] 베로키오는 천부적인 재능 앞에 좌절했고,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 발터 니그 조르주 루오(분도출판사, 2013)

* 임식순 루오(서문당, 1992)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관계는 보는 이에겐 애틋하다. 모로는 제자들의 재능과 개성을 존중하는 스승이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제자들의 실력을 파악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매우 즐겁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나는 여러분이 밟고 지나가는 다리다.”  [2]

 

 

모로는 매주 일요일에 제자들을 만나 예술에 관한 토론을 했다. 토론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 중 한 명이 조르주 루오였다. 그는 그 당시 스승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승의 인품에 감탄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가르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는 인정이 많았으며, 그가 갖고 있던 생명과 뉘앙스에 대한 섬세한 경의는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켰던가.”  [3]

 

 

젊은 루오는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아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모로는 제자의 심정을 이해했으며 루오에게 그림을 급하게 그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모로는 루오가 추구하게 될 예술적 성향을 간파했다. 그는 루오가 우울하면서 검소한 분위기가 감도는 종교적 예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루오는 종교적 심성을 담은 그림을 남겼다. 모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업실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모로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루오가 임명되었다. 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받는 월급이 적었지만, 루오는 금전적 혜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미술관을 관리하는 데 힘썼다. 루오에게 모로는 스승 이상의 존재였다. 루오는 모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하게 대했다. 모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대담한 묘사를 선보여 야수주의(Fauvisme)를 탄생시켰다.

 

 

 

 

 

 

 

 

 

 

 

 

 

 

 

 

 

 

 

 

 

 

 

 

 

 

 

 

 

 

 

 

* 알렉상드르 라피에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민음사, 2001)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이명옥 센세이션-세상을 뒤흔든 천재들(웅진지식하우스, 2007)

 

 

 

 

제자의 앞길을 가로 막은 나쁜 스승이 있다.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화가의 친딸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화가의 딸은 열일곱 살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그녀는 벌써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런데 타시는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했다. 그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다. 하지만 타시의 제안은 자신의 강간죄를 덮기 위한 비열한 꼼수였다. 타시는 자신이 내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타시를 고발했다. 딸의 순결은 가문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였다. 아버지는 타시를 강간죄가 아닌 명예훼손죄로 고발했다. 세상은 아르테미시아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녀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심지어 타시는 그녀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소송 끝에 강간죄가 입증돼 타시는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타시가 받은 죗값은 고작 1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타시에게 그림을 주문한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판을 승리로 이끈 아르테미시아였지만, 남은 건 상처였다. 모진 고문과 수모는 그녀가 가진 재능의 날개를 꺾이게 만들었다. 아르테미시아는 불행을 딛고, 붓을 다시 쥐었다.

 

 

 

 

 

 

그녀의 대표작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화가의 개성이 충만한 걸작이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Judith)는 적장의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쥔 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팜 파탈(femme fatale)’에 가까웠으며 치명적 매력으로 적장을 유혹해 그를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르테미시아는 남성적 범주에 속한 유디트를 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의식을 담은 아르테미시아를 그렸고, 유디트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

 

 

 

 

 

 

 

 

 

 

 

 

 

 

 

 

 

 

 

 

*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동녘, 2017)

 

 

 

스승은 제자들 중 한 두 사람을 선택해 총애했다. 자신의 지식이 왜곡되지 않고 순수하게 애제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집착한 스승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최악의 스승은 제자의 재능을 죽일 뿐만 아니라 제자의 인생마저 망가뜨린다. 중국 명나라 말기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진정한 스승이 되려면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제자와 함께 공부한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면 스승은 새로운 것을 배울 줄 알아야 하며 제자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또 스승은 제자의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제자는 스승의 인도(引導)를 믿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제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스승. 그 모습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언급한 스승의 파레시아(Parrhesia)’[4]라고 할 수 있겠다.

 

 

 

 

 

 

[1]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베로키오가 소년 다 빈치의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에 화가 났다고 썼다.

 

[2]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10~11

    

[3] 같은 책, 10~11

 

[4] 미셸 푸코 진실과 담론(동녘, 2017)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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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7:13   좋아요 0 | URL
미술사에 ‘나쁜 스승-좋은 제자’ 조합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스승’은 제자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제자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스승입니다.

sprenown 2017-12-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스러워 하시니 더이상 칭찬과 감탄의 댓글은 달지 않을 게요.^^. ㅎ. 안목과 식견이 있으신 분들의 비판적 댓글을 기대합니다.^^..

cyrus 2017-12-06 17:16   좋아요 0 | URL
제가 매일 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서 부담스러우면 ‘좋아요’ 안 눌러고 되고, 댓글 달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에 관심 가질 만한 주제의 글이 아니라면 ‘패싱’해도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있어선 안 되지만, ‘사이러스 패싱’은 괜찮습니다. ^^

sslmo 2017-12-06 17:34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패싱‘ 완전 우껴요.
사실 저도 ‘좋아요‘를 좀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좋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잘 읽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요번 ‘비회원 좋아요‘ 사건으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
.
.
애니웨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전 ‘좋아요‘에 인색하진 않을렵니다~ㅅ!

cyrus 2017-12-07 10:01   좋아요 0 | URL
To. 양철나무꾼님 / 저도 ‘글 잘 읽었습니다.’, ‘글 한 편 쓰느라 고생했어요.’, 이런 의미로 ‘좋아요’를 눌러요. 제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분의 글에는 무조건 ‘좋아요’를 눌러요. ‘좋아요’를 받은 만큼 ‘좋아요’로 돌려주는 식이죠. ^^

sprenown 2017-12-06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왜이러세요...댓글은 달지 않더라도(못하더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꼼꼼히 끝까지 읽고, ‘좋아요‘는 누를 거예요.ㅎㅎ

cyrus 2017-12-06 17:2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편한 대로 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항상 느끼지만 꼼꼼한 자료와 종합해서 내놓는 글은 참 좋군요. 아르테미시아 사연을 듣고 그림을 다시 보니 확실히 달라보이네요. 유디트를 그린 다른 남성 작가들과의 차별성이 느껴집니다..

cyrus 2017-12-07 09:55   좋아요 0 | URL
원래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습니다. 사실 검색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

psyche 2017-12-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림이 달라보여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봐요.

cyrus 2017-12-07 09:57   좋아요 0 | URL
화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그림이 좋아요. 화가의 삶만 안다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그림은 어렵지 않고, 공감하기 쉬워요. ^^

yamoo 2017-12-0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디트에 관한 그림이 좀 있는 걸로 압니다. 그중에서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가 가장 유명하죠. 저도 미술사 관계된 책에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는 읽었습니다. 명화는 그에 얽힌 신화나 이면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게 그림 이해에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할 수 있어요~
 
여성과 미술 -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
주디 시카고 &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지음, 박상미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에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이 나온다. 그녀들의 이름은 무사이(Mousai). 문학, 음악, 역사 등에 능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뮤즈(Muse)는 무사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미술관(Museum)은 본래 무사이가 머무는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사이 중에 미술에 능숙한 여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여성은 미술의 세계에 동참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여성이 드물었고,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다고 해도 누드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남성들은 누드화 그리는 여성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정작 그들은 여성 누드화를 마음껏 그렸고 누드화 감상을 즐겼다. 그렇다 보니 미술사에 여성은 없었다. 남성 미술은 미술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높이 인정받았지만, 여성 미술은 낮게 평가받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의 어느 지점에서든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르네상스에 활동한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는 성공한 여성 화가였다. 그녀는 스페인 왕비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은 초상화 분야에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화가이다.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단체인 로열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유명한 여성이다.

 

 

 

 

 

    

 

진정한 여성 미술 태동은 70년대부터다. 여성 미술가들이 모여 젠더구조와 여성 문제를 의식해 단체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미술사가 조명받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페미니즘 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979년 그녀가 제작한 디너파티(The 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사, 아니 현재를 포함한 미술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대한 삼각형 식탁 위에 클리토리스 모양의 서른아홉 개의 접시가 놓여 있다. 이 만찬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페니스를 과시하는 남성은 디너파티의 초대 제외 대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디너파티가 단지 외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관객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까지 시카고를 비난했다. 하지만 시카고는 미술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 남성 중심의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남성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Edward Lucie-Smith)와 함께 남성 중심 미술사가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여성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발굴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 훌륭한 작업성과는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이 책의 100자평에 따르면 책 내용이 오래된 것’(정확히 표현하면 오래전 글’)이라서 요즘 시대와 안 맞는다고 했다. 원서는 1998년에 발표되었고, 12년이 지나서야 번역본이 나왔다(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다). 100자평 작성자는 이 책에 크게 실망했는지 별점 두 개를 부여했다. 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페미니즘 미술은 오래됐고,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은 7, 80년대에 반짝 유행한 철 지난 예술사조가 아니다. 페미니즘 미술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의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퀴어(Queer) 문제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표현을 시도한다. 흑인 페미니즘 미술, 레즈비언 미술은 페미니즘 미술 2세대에 속한다. 국내에선 페미니즘 미술 2세대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다. 고맙게도 시카고와 루시-스미스는 신세대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활동도 충실하게 소개했다.

 

책 본문 전체를 루시-스미스가 집필했고, 본문 옆에 있는 곁다리 글모두 시카고가 썼다. 시카고의 글이 부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곁다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 사실 이 책에서 곁다리가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카고는 남성 미술가 또는 남성 미술 비평가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를 재차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피부색, 민족에 관계없이 미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여성을 부당하게 재현하는 남성 중심의 미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에 불편한 형님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미술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미술이 아니다. 남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고 생각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눈치를 챈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표현의 원본은 벨 훅스(Bell hooks)의 저서 제목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 2017)이다. 시카고는 여성과 미술서문에서 벨 훅스가 제안한 대항적 시선(oppositional gaze)’이라는 개념을 빌려 미술 현장에 팽배해 있는 남성 중심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남녀, 성 소수자 모두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는 미술적 사회운동이다. 남성 · 이성애 중심의 미술은 여성 · 성 소수자들의 창작 기회를 제한한다. 특히 성 소수자 예술가는 여성 예술가보다 많이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카고와 루시-스미스의 글쓰기는 공통으로 여성 미술에 주목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가끔 서로를 밀당(밀고 당기는)’한다. 루시-스미스는 여성만이 여성 미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표방하는 방식이 페미니즘 미술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는 루시-스미스도 남성 미술비평가처럼 여성 미술을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디스한다. 두 사람 말이 옳다. 우리나라에 나혜석, 천경자 같은 독보적인 여성 예술가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협동 정신으로 무장한 단체 행동주의 성격의 페미니즘 미술이 주목받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 같은 행동하는 페미니즘 미술 단체가 나올 수 있을까? 남성 고유의 시각을 넘어서는 여성 예술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녀들의 도전을 남성 혐오로 격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대안적 이해의 틀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술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넓혀질 수 있다.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Trivia

 

 

 

  

 

* 시카고는 서문에 미국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저서 <역사는 왜 중요한가> 문장을 인용했다. 아마도 이 책은 1997년에 나온 <Why History Matters>일 것이다. 그런데 번역본에는 이 책이 ‘1977에 발표했다고 잘못 소개했다. 역자는 원서명을 역사는 왜 중요한가라고 옮겼는데, 책 주제의 특성상 역사는 왜 문제인가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책은 왜 여성사인가?(푸른역사, 2006)로 번역되었다.

 

 

* 40쪽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70쪽 밀레의 이삭줍기도판이 원본과 다른 좌우 반전형태로 나왔다. 미술 관련 분야 책을 주로 만드는 출판사답지 않은 실수이다.

 

 

* 98쪽 영국 출신의 예술가 수 코우(Sue Coe)의 출생연도를 ‘1651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고치면 ‘1951이다.

 

 

 

 

 

* 146쪽에 이브 엔슬러(Eve Ensler)<보지 되찾기>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보지 되찾기>는 여성 성기에 관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낸 연극 작품이며 원제는 <The Vagina Monologues>,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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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3:11   좋아요 1 | URL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제대하고 직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은 다시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전시에 동원된 여성의 노동력은 애국심으로 포장되었어요. 그래서 여성의 노동력이 남성 노동력만큼 인정받지 못했어요.

sprenown 2017-12-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밀고 가세요. 재능을 버리지 마시고, 길게 보세요! 훌륭합니다.^^.

cyrus 2017-12-06 13:13   좋아요 1 | URL
항상 저를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좋은 소리만 들으면서 성장하는 것보다 가끔은 쓴소리도 듣고,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

2017-12-0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뭘 알아야 쓴소리를 하지요. 그냥 아마추어 입장에서 cyrus님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 글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이지요.^^..

cyrus 2017-12-06 13:56   좋아요 1 | URL
무조건 많이 알고 있어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저도 아마추어예요. 전문가들이 확인한 지식을 이용하고 편집해요. 이 과정에서 지식을 잘못 사용할 수 있고, 엉뚱한 내용이 전달될 수 있어요. 비판하기의 시작은 의문과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심 쩍으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