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통역사는 영국의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이 쓴 단편소설이며 셜록 홈즈의 회상록(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에 셜록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Mycroft Holmes)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 셜록 홈즈의 회상록(엘릭시르, 2016)

* 셜록 홈즈의 회고록(코너스톤, 2016)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회상록(문예춘추사, 2012)

* 셜록 홈즈의 회상(시간과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록(황금가지, 2002)

    

 

 

마이크로프트는 홈즈보다 일곱 살 많고, 홈즈 본인이 자신보다 추리력과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다. 홈즈는 왓슨(Watson)에게 친형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형을 기괴한 사람 또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디오게네스 클럽은 런던에서 가장 기괴한 클럽이고, 형은 가장 기괴한 사람 축에 들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중에서, 311~312)

 

 

 디오게네스 클럽은 런던에서 가장 특이한 클럽이고 마이크로프트 형 또한 아주 특이한 사람이지.”

 

(셜록 홈즈의 회상중에서, 정태원 번역, 279~280)

 

 

이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Diogenes Club is the queerest club in London, and Mycroft one of the queerest man.”

    

 

‘queerest’‘queer’의 구어이다. ‘기괴한’, ‘특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지만,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홈즈 시리즈의 화자는 왓슨이다. 작품 속에서 왓슨은 홈즈가 해결한 사건들을 기록하여 책을 펴내는 작가이다. 그러므로 홈즈가 대화중에 꺼낸 ‘queerest’는 왓슨이 글을 쓰면서 표현한 단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홈즈 또는 왓슨은 ‘queerest’동성애자와 무관한 의미로 썼을까?

 

 

주석판(주석 달린 셜록 홈즈 2》)‘queerest’에 대한 학자의 견해를 인용한다. 그레이엄 로브라는 학자는 1894년에 이미 ‘queerest’는 속어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인 통역사18939<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발표되었다. 1895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체포되었고, 2년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와일드는 1891년에 스무 살의 옥스퍼드 대학생 앨프레드 더글러스(Alfred Bruce Douglas)를 만나 사귀었다. 더글러스의 아버지인 퀸즈베리 후작(Marquess of Queensbury)은 아들의 비행에 못마땅했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챘다. 결국 후작은 ‘snob queer(속물 동성애자)’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로 인해 와일드는 명성뿐만 아니라 가족과 전 재산까지 잃어버렸다.

 

    

 

 

 

 

 

 

* [절판]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한길사, 1999)

    

 

 

주석판은 그레이엄 로브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퀸즈베리 후작이 1894년에 와일드를 비난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와일드가 퀸즈베리 후작의 비난으로 인해 동성애 혐의를 받은 연도는 1894년이 아니라 1895년이다. 와일드의 생애 전반을 소개한 오스카 와일드(한길사)에는 퀸즈베리 후작이 와일드를 ‘sodomit’의 오자인 ‘sondomit’라고 부르면서 비난했다는 내용이 있다. ‘sodomit’남색가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이다. 오스카 와일드를 쓴 저자가 독일인이라서 영국인 후작이 ‘sondomit’를 사용했다는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영국 출신 후작이 ‘sodomy(남색가를 뜻하는 영단어)를 놔두고, 왜 틀린 철자의 독일어 ‘sondomit’를 써야만 했을까? 그 점이 궁금하다.

 

다시 홈즈 이야기로 돌아가서, ‘queerest’로 인해 홈즈 연구가들은 홈즈 형제의 성 정체성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홈즈를 여성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홈즈가 동성애자라서 여성을 싫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971년에 <셜록 홈즈의 성적 모험>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왔는데, 여기에 나오는 홈즈 형제와 왓슨 모두 동성애자이다.

    

 

 

 

 

국내에 오스카 와일드의 평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 없다. 한길로로로 시리즈오스카 와일드는 평전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와일드의 삶과 문학 세계를 반 정도 축약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 [품절] 플로랑스 타마뉴 동성애의 역사(이마고, 2007)

* [품절] 도미니크 페르낭데즈 가니데메스 유괴(수수꽃다리, 2004)

 

 

 

와일드의 동성애를 비중 있게 분석한 책도 많지 않다. 동성애의 역사(이마고)가니데메스 유괴(수수꽃다리)는 서양 문학과 예술에 나타난 동성애 코드를 시대별로 정리한 책이다. 동성애의 역사에 따르면 와일드가 동성애 혐의를 받기 전에 그가 동성애자라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남성이 표현하는) 여성화된 미학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동성애자인 척 연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니데메스 유괴를 쓴 프랑스의 작가 도미니크 페르낭데즈(Dominique Fernandez,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콩쿠르 상을 받은 중견 작가이다)는 와일드의 동성애 성향을 기성 사회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해석한다. 우리나라에선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그가 냉소적인 문장으로 삶을 통찰했던 촌철살인의 면모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듯하다. 또 우리나라에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동성애자 작가 오스카 와일드보다는 동화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동성애 코드를 완전히 떼어내면서 와일드의 문학 세계를 본다는 건, '문호'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그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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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의 거짓말 - 여성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바보가 되는가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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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카페인 금단 현상을 병으로 여긴 사람은 없었다. 하루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섭취량이 줄이면 카페인 금단성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카페인 금단 현상은 절대 방치해선 안 될 증상이 됐다. 실제로 2013년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 ‘카페인 금단 증상’이 새로운 장애로 추가됐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은 탈모, 생리가 시작되기 전부터 슬슬 찾아오는 통증은 ‘생리전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치료 대상이 됐다. 중년 여성은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는 ‘갱년기 증후군’을 겪는다.

 

호르몬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직 ·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호르몬은 인체의 내분비샘 등 여러 기관에서 만들어지며 분비되는 일종의 화학물질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호르몬의 종류만도 40여 종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 몸 자체가 거대한 호르몬 생산 공장인 셈이다. 호르몬은 신경계는 물론 다른 체내 기관들과의 작용을 통해 몸의 대사를 조절하고 몸에 해로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호르몬은 과다 분비되거나 분비량이 적어지면 건강에 적신호를 보낸다. 인류가 호르몬제를 개발해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과연 호르몬요법은 만병통치약일까? 호르몬요법은 그동안 화끈거림, 식은땀 등 완경기(폐경기) 여성의 증상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노화 현상을 막아주는 건강보조제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중년 여성을 위한 호르몬요법이 유방암과 뇌졸중, 심장 마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사실 호르몬요법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호르몬요법의 위험성을 제기한 의사들이 있었지만, 대중 매체들은 치료제의 치명적인 부작용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호르몬 결핍과 관련된 새로운 질병들이 나오고, 여기에 맞춰 의료업계와 제약회사 들은 새로운 호르몬요법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바람몰이’에 나섰다.

 

《호르몬의 거짓말》여성의 신체적 · 심리적 반응에 ‘호르몬 이상(과다 또는 결핍)’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치료와 약을 권하는 ‘호르몬 신화’가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1970년대 초부터 많은 학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르몬 신화’는 수천 년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함께 가부장제를 견고하게 떠받쳐주었으며 의료업계와 제약회사에 의해 부풀려졌다. 여성이 ‘질병 없는 환자’가 되는 배후에는 제약 회사와 의사 집단의 결탁이 있었다. 음모론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거대 기업 수준의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의 학술논문과 세미나 등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수많은 질병과 치료제를 ‘발명’해내고 있다. 질병이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약이 질병을 만드는 것이다.

 

정신과에 갈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중년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딱히 병명도 없는 우울증을 겪는다. 생리 전이나 출산 뒤, 수유 기간, 완경기 전후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지며 이런 때에 우울증이 걸리기 쉽다. 그런데 대부분 의학 전문가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이 많은 이유를 남녀 간의 뇌의 구조적 차이, 월경,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호르몬의 차이 등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의 우울증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호르몬이 주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기분 변화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우울증은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나타난다. 생리전증후군, 청소년 우울증, 산후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등 여성의 삶에서 우울증에 시달려야 할 일이 많다.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우울증은 치료받아야 할 ‘질환’으로 명명된다. 정신의학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성은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존재로 묘사된다. 이를테면 임산부는 기억력이 떨어지고, 수유기 여성은 쉽게 산후우울증에 걸리며 폐경기 여성은 신경질적이며 쉽게 짜증을 낸다는 식으로 거론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태도나 행동들이 여성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호르몬의 거짓말》은 이제까지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남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의학계는 결국 남성의 잣대로 여성을 재단하면서 그 건강과 생명을 위협해 왔다. 남성을 위주로 임상 실험한 결과물을 가지고 여성을 진단하고 치료하게 되면, 여성은 자신의 증상을 둘러싼 외적 요인을 말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의사 앞에 선 여성은 자신의 몸을 관리하지 못하는 취약한 존재가 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과학의 이름으로 생산되어 온 건강에 대한 지식(또는 편견)이 어떤 식의 잘못된 근거에 기초하여 생산되곤 하였는지, 또 어떤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 그래서 왜 의학계가 결국 여성들의 건강 현실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도 ‘병’ 또는 ‘장애’라는 이름을 단 외우기 힘든 의학 용어에 넘어가 약을 처방받는 ‘가짜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사이에 병원과 제약 회사는 살찌우고, 의료 체계를 세금으로 지탱해나가는 시민들의 지갑은 얇아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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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3-2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이 <호르몬의 거짓말> 책을 알게되고 알라딘 상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cyrus님의 글을 발견(!)해서 이제야 댓글을 남김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

cyrus 2019-03-22 12:39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멤버 중 한 분이 <호르몬의 거짓말>을 가지고 있어서, 그 분 덕분에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
 

 

 

<가십 걸(Gossip Girl)>은 맨해튼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재벌 2세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미국 드라마다. 2003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6개의 시즌으로 방영되었다.

 

 

 

 

 

 

 

 

 

 

 

 

 

 

 

 

 

 

 

 

 

 

 

 

 

 

 

 

 

 

 

* 세실리 본 지게사 《가십 걸》 (황매, 2005, 2008)

* 캐서린 하킴 《매력 자본》(민음사, 2013)

*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 2018)

 

 

 

‘가십 걸’은 극 중 재벌 2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재되는 익명의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자이다. <가십 걸>의 주인공은 좋은 학교에 가고, 명품을 사 모으고, 멋진 남자들과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는 젊고 진취적인 여성이다. <가십 걸>은 이야기가 탄탄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는 형식 자체가 연예인들의 온갖 사생활을 전달하는 할리우드 연예 뉴스와 같다. 이야기 이외에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여배우들의 옷이나 장신구는 PPL(Product Placement, 간접 광고)이다. 이야기를 떠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패션 자체는 화젯거리가 된다. 10대, 20대 여성층들은 <가십 걸>의 주 시청자이면서 가장 충성스러운 소비자이다. 소비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의 생활방식을 그린 <가십 걸>은 화려한 상류층 여성의 이미지만 보여주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린다.

 

페미니즘은 종종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의 한 양상으로 오해받곤 한다. <가십 걸>에 열광한 젊은 여성들은 기존 페미니즘이 비판했던 외모 가꾸기 등을 스펙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매력 자본(Honey Money)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Catherin Hakim)은 아름다운 용모, 건강미와 활력 등을 ‘매력 자본’이라고 규정했다. 사회, 문화, 경제적 자본처럼 외모도 하나의 자본으로 작용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매력 자본은 단지 잘생긴 외모나 멋진 옷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머, 예의범절, 미소, 건강한 활력, 춤 실력 등이 포함된다. 하킴은 매력 자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지능처럼 노력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소득자, 상류층은 외모와 여가문화 등의 자본을 더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외모에 투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혼과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력 자본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는 이러한 현상을 ‘시장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어떻게 포장되며, 대중문화를 통해 페미니즘 본래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하는지 보여준다.

 

 

 

 

 

 

 

 

 

 

 

 

 

 

 

 

 

 

* [절판] 에드가 모랭 《스타》(문예출판사, 1992)

 

 

 

‘가십(gossip)’은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소문을 보도하는 기사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십이 강력한 위세를 부리는 곳은 연예계다. 기존에는 신문 등 대중매체가 취재해 가십을 유통했다면 이제는 연예기획사나 연예인 스스로 가십의 생산자로 나서고 여기에 방송이 매개 역할을 하며 인터넷, SNS 등이 확대 재생산해 대량으로 유통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이 쓴 《스타》(문예출판사)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연예인의 가십을 만드는 대중문화의 허상과 폐해를 지적한 저자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모랭은 가십을 ‘스타 시스템을 키우는 플랑크톤’이라고 표현했다. ‘스타’가 된 연예인은 대중의 우상이 된다. 스타를 추종하는 팬들에게 스타가 사는 세계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다른 별천지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 시청률 보증수표와도 같다. 이들을 스타 또는 공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부와 인기를 누리는 대신 일정 부분 자신의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측면도 포함돼 있다. 스타는 ‘꿈의 빵’이라고 했던 모랭의 지적처럼 연예인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팔리는 특수 상품이다. 따라서 가십이 유통되지 않으면 연예인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지 않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 조지프 엡스타인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 2013)

* 강준만 《교양 영어 사전 2》(인물과사상사, 2013)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

 

 

 

‘가십’과 마찬가지로 ‘가십 걸’도 영어사전에 있는 단어이다. 영어사전에 나오는 ‘가십 걸’의 뜻은 이렇다. 수다를 떠는 여자,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뒷얘기를 좋아하는 여자. 그런데 ‘가십 보이’는 영어사전에 없다. 남자들도 은근히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동성끼리 모여서 뒷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가십은 원래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했다. 집안에 머무르면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들은 외출하면서 이웃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6세기에 가십은 ‘여성 친구’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여성들의 대화를 경멸하는 뉘앙스가 없었다. 과거의 가십은 사회 집단 내 일원들끼리 주고받는 유용한 정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단적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가십에 쉽게 끌린다. 검증되지 않은 가십임에도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열을 올린다. 진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은 더 빠져들고, 또 다른 이에게 옮겨질 때는 강도가 더 커진다.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은 내 귀에 달콤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가십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타인이 숨기고 싶은 내밀한 부분을 엿듣고 싶은 욕구가 있다. 치명적일수록 효과가 배가되고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가십은 우리 눈과 귀를 유혹하는 달콤한 초콜릿과 같다.

 

누구든지 가십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십은 여성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부정적으로 가리킬 때 사용되어 왔다. ‘가십 걸’의 ‘걸’은 ‘연예계 가십에 관심이 많은 여성’, ‘가십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미숙한) 여성’이다. 그 단어 속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과 차별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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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에 미국 정부는 스탠딩 록 수(Standing Rock Sioux) 부족 등 원주민들이 반대해온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Dakota Access Pipeline) 건설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사업은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4개 주를 잇는 대형 송유관 건설 사업으로 총 38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 사업은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관통해야 했는데, 식수원과 주요 성지(聖地)를 잃게 되는 수족 등 원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2016년 3월부터 수족은 아예 공사장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100여 개의 원주민 부족들도 동참했다. 여러 환경운동가와 인권운동가들까지 시위에 가세해 점차 전국적 원주민 저항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미국 정부와 미 육군은 송유관 건설 사업 시공사인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ETP)에 원주민 보호구역 주변에서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에 투자했고, 해당 회사 CEO에게 기부금도 받은 트럼프는 송유관 건설을 허용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육군은 불과 2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송유관 건설을 다시 허가했다.

 

 

 

 

 

 

 

 

 

 

 

 

 

 

 

 

 

 

*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2018)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스탠딩 록에서 온 빛』이라는 글에서 ‘스탠딩 록 집회’가 전 세계에 보여준 연대의 힘을 상기시키면서 분노와 저항을 근간으로 하는 축적의 시간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글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에 수록되어 있다. 변화를 꿈꾸는 연대는 국경과 국민의 테두리를 비웃으며 넘나들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이며, 관료적 위계에 묶인 형식이 아닌 희망의 에너지가 생산되고 넘쳐나는 체험이다. 연대는 지금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 언어이며 행동 양식이다.

 

『스탠딩 록에서 온 빛』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파와 백인 우월주의가 승리를 뽐내는 지금, 우리는 많은 증오범죄 이야기를 듣는다. 구타, 모욕, 스와스티카, 협박 등등.

 

 

(『스탠딩 록에서 온 빛』 중에서, 280쪽)

 

 

‘스와스티카(swasticka)가 뭔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내가 참고한 사전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이다. 스와스티카는 불교의 상징인 ‘卍(만)’ 자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행운’을 뜻하는 ‘스바스티카(svastika)’에서 유래했다. 스와스티카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됐으며 특히 힌두교 경전에서는 행운과 힌두교 최고의 신 브라마(Brahma), 또는 부활 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스와스티카는 힌두교 구조물과 인도 수공예품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불교와 자이나교, 아시아와 유럽, 미국 원주민 문화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스와스티카는 고대 그리스 · 로마 · 중국 등 고대 문명이 찬란하였던 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스와스티카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태양이나 번개의 신, 불의 신을 상징 한다는 설도 있으며 회전하는 북두칠성의 형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 허균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 2000)

 

 

 

다양한 사찰 조형물과 장식 문양의 상징적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한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라는 책은 우리나라 미술에 나타난 스와스티카 문양을 소개한다. ‘卍’ 자를 좌우로 뒤집은 ‘卐’ 자도 스와스티카다. 우리나라 무속 신앙에서 스와스티카는 우주와 인간의 삶과 죽음, 환생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이란 뜻으로, 불교에선 부처의 마음 또는 중생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불성을 뜻한다. 그런데 이 상서로운 상징이 어째서 ‘증오 범죄’의 상징이 되었을까?

 

좋은 뜻이 있는 스와스티카가 최악의 상징으로 돌변한 것은 독일의 히틀러(Hitler)가 자신의 소속 정당인 나치(Nazis)의 상징으로 채택하면서부터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스와스티카는 ‘갈고리 십자가’를 뜻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로 알려지게 됐고, 수많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현장에서 나부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조상인 아리안(Aryan)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스와스티카를 나치 문양으로 정했다. 요즘 네오 나치나 백인 우월주의 집단, 일본 극우 집단이 써먹고 있다. 전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스와스티카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스와스티카를 보면 하켄크로이츠를 연상하는 유럽인이 많다고 한다. 히틀러가 스와스티카를 왜곡해서 사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스와스티카 사용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 히틀러가 반유대인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문양을 오용했다는 점이 스와스티카의 평화적 사용까지 금지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는 스와스티카의 의미를 알려주는 주석이 달려 있지 않다. 독자들이 ‘좋은 만(卍, 스와스티카)’ 자와 ‘나쁜 만(卍, 하켄크로이츠)’ 자를 혼동하지 않도록 상세한 주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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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0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불교에서 쓰이는 卍(만)자와 나찌 독일의 문양인 卐(하켄크로이츠)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 계통이 완전히 다른줄 알았는데 cyrus님 글을 읽은 덕분에 모두 브라만교(혹은 힌두교)에 근원을 둔 문양이란것을 알았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cyrus 2018-12-03 12:3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만 자 문양을 쓴 고대 문명이 많았어요. 고대 그리스인, 켈트인들도 만 자 문양을 썼어요. 의미는 다르지만, 동서양 공통 문양으로 보면 됩니다. ^^

transient-guest 2018-12-04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방향이 다르니까 조금만 양식이 있으면 혼동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트럼프와 함께 다시 분리/인종주의가 나온 건지, 이들이 다시 준동하는 것이 트럼프라는 괴물로 결과가 나온 거지 이론이 분분합니다만, 좋지 못한 시대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게 일종의 헤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후 대략 70년 이상 이어진 서방세계의 평화시기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시작되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cyrus 2018-12-04 14:09   좋아요 0 | URL
내년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됩니다.. ^^;;

소요 2018-12-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 주셔서 책 사서 열심히 보겠습니다

cyrus 2018-12-04 14:13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을 사시는지 모르겠지만, 소요님이 만족하셨으면 좋겠네요. ^^

레삭매냐 2018-12-0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서 스와스티카하고 만자를 헷갈려
했던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정말 답이 없네요. 어렵게 이뤄낸
공사 중지 명령을 무효화하고 깽판을 쳐대
니...

글 내용과 좀 거리가 있지만,
헤르메스님이 추천해 주신 리베카 솔닛의
<폐허>를 읽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올해
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내년에 읽어 볼까 합니다 ~

cyrus 2018-12-04 15:52   좋아요 0 | URL
오바마 정부 말기에 송유권 건설 중지 결정이 내렸으니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어요. 민주당의 힐러리가 대통령이었으면 중지 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저는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읽어보고 싶어요. ^^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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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아닐지언정 언제라도 죽음은 찾아올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말을 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내 침묵은 나를 지켜 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 주지 않을 것입니다.

 

- 오드리 로드,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 중에서[주]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로 문화와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는 ‘밈(Mem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 언어나 문화와 같은 부문도 유전자처럼 진화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문화 유전자가 생물학적 유전자 진화 속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는 것이다. 밈은 ‘모방’이라는 형태로 복제하기 때문에 유전자에 비해 정확한 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자마다 다른 변형을 가지게 된다. 힘을 얻은 밈은 복제되면서 널리 퍼지고 세대를 초월해 영향을 미친다.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폭력 스캔들이 알려진 후 미국에서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미투(#MeToo)’ 운동이 확산하였다. 유명 배우들과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나도(Me too)’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음을 말하면서 와인스타인의 행태뿐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젠더 불평등과 폭력을 고발했다. 미투 운동은 미국 밖으로도 번져나갔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여성들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성범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남성들 사이에 성폭력 사실을 자백하는 ‘내가 그랬다(#IDidThat) 캠페인과 남성들의 의식 변화를 촉구하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HowIWillChange) 캠페인이 등장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여러 사람의 동참과 반성을 이끌어내고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올바른 밈’이다.

 

 

 

 

 

 

한편 반대의 예도 있다. ‘잘못된 밈’이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예인들의 친척이 자신의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언론들은 미투 운동과 ‘빚’을 합성해 ‘빚투 운동’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해시태그 ‘#빚too’도 등장했다. 채무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예인 가족의 채무 불이행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빚을 갚지 않은 연예인 가족들, 즉 가해자의 목록을 늘리고 있을 뿐이다. 언론의 지나친 보도는 ‘폭로전’으로 번진다. 미투 운동은 가해자 처벌을 원하는 ‘폭로전’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미투’라는 단어만 가져와서 막연하게 사용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진정한 취지를 왜곡하는 일이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겪은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소리치고 분노하는 여성들 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들은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 시작한 피해 여성들’이 아니라 침묵을 거부하고 외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녀들의 언어와 목소리는 ‘침묵’을 먹고 커져버린 불합리한 관행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이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자신의 책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서문에서 멕시코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Marcos)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의 말은 우리들의 무기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침묵의 성채에 향해 던지는 ‘언어’의 힘에 주목한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건 그것의 숨겨진 부정적인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부정적인 진실에 의해 형성된 ‘비정상적인 상식’을 폐기하거나 바꾸려면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폭력’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대중적으로 쓰인 건 1990년대 들어서다. 그때도 여전히 여성은 침묵, 금기, 왜곡에 포위됐다. 비정상적인 현상은 존재했지만 ‘무기로서의 언어’가 부재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제한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솔닛은 ‘언어의 위기’를 우려한다. 특정 세력은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그럴듯한 언어’를 내세운다. 이러한 언어들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갈등과 혼란을 만들어 낸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역차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양성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젠더 이퀄리즘(Gender Equalism)이라는 말을 소환한다. 이 말은 페미니즘을 비난하고 대체하는 근거로 사용됐다. 심지어 진보주의자들도 이퀄리즘을 옹호했다. 그런데 이퀄리즘은 학계에 존재하는 말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인터넷 누리꾼들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이퀄리즘을 ‘서구에서 페미니즘을 대체한 개념’인 것처럼 사용했다. 자신이 만든 말에 학문적 권위를 스스로 부여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보편적 언어’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가짜 정보’가 너무나 손쉽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실’로 간주하여 공유되는 ‘언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언어를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쓰지 않으면 ‘빚투’와 같은 ‘끔직한 혼종’이 나온다. 모든 것을 정확한 말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세상뿐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무기보다 더 막강한 말의 힘이다. 우리가 ‘정확한 이름’을 부르기 위해 부당한 현실에 대항해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침묵하는 다수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말했듯이 침묵은 나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주]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4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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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0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사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발 빠르십니다.

cyrus 2018-12-02 12:35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어요. 책 속에 좋은 구절이 많았어요. ^^

북프리쿠키 2018-12-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팅 제목이 맘에 쏙 듭니다^^

cyrus 2018-12-02 12:36   좋아요 1 | URL
오드리 로드의 글 제목을 인용해서 살짝 바꿔봤습니다. ^^

2018-12-03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3 12:38   좋아요 0 | URL
돈 빌려놓고 잠수 타는 사람들이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