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단발머리님과 이 책,『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함께 읽었었다.(뒤늦게 우리가 함께 읽는 것(?)임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이미 책은 작년에 다 읽었지만 이제야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나의 게으름과 읽었던 것마저 잠시 잊고 지냈던 나의 덕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뭘까 해서 당시 좀 찾아봤었다.
'자기가축화'는 동물사회학자들 사이에서 hot한 이론이다. 개가 언제부터 인간들이랑 친해졌을까? 그리고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을까? 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주류는 1만2천년 정도 전(신석기 혁명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 그 시기에 개가 인간주변의 여러가축들 중 처음으로 가축이 되었으리라는 설이다.
기존의 견해는 피노키오 가설로 사람의 필요에 따라 회색늑대(개는 흔히 회색늑대에서부터 진화했다는 설이 다수)의 새끼를 거둬서 훈련을 계속해서 시키고 말 잘 듣는 암수를 교배시키고 그러면서 점점 사람이 원하는 가축의 성질과 형상을 만들어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동물학자인 로나 코핑거-레이먼드 코핑거부부가 기존의 견해에 대해 반박을 하였다. 2001년 저서에서 사람이 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 스스로가 가축화되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때 즈음, 인간들에게 정착지가 생겼다. 그러면서 일부 배부른 사람들은 잉여 음식물을 남기기 시작했고 그때 당시 회색늑대의 조상들중 일부는 야생에서 다른 포식자들과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저 인간이라는 동물의 뒤를 따라다니며 남기는 음식물을 취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남는 일이라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당시의 몇몇 늑대들이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배회하며 인간들이 남긴 음식물을 먹으면서 인간과 개의 조상 사이에서의 관계가 처음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인간 입장에서도 남긴 음식물 처리문제는 늘 골칫거린데 저 동물들이 먹어서 치워주는구나고 느끼며 쓸모있는 용도로 인식했다. 개들도 인간들의 남긴 음식물을 차지하기 위해 인간의 정착지를 지켜주었고 인간에게 친근하게 표현(재롱을 떤다던지)을 해주니 더 좋아해주고 잔반이 아닌 멀쩡한 음식을 내어주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간이 늑대를 선택해서 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개가 인간주변에 어울려서 스스로 가족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이렇게 인간-동물간의 관계를 기존의 우열관계가 아닌 능동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우리 공동체 일원으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로 보아야한다는 오늘날의 인식변화의 흐름에 큰 의미를 준다.
저자인 브라이언헤어는 이 가설을 토대로 가축이된 동물(개, 고양이등)의 특징을 알아보았더니 상당히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개골과 뇌의 크기가 작아지고 성격이 온순해졌으며 야생동물에 비해서 발달속도가 느린점, 혈중의 호르몬 농도가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낮아졌다는 특징등이다. 이렇게 가축화 신드롬의 영향을 받는 동물들 중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중에서는 누가 있을까라고 조사하던 중 유인원의 일종인 보노보에서 특징이 발견이 되었다.
보노보는 유인원의 종류(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보노보)중 하나로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피그미침팬지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덩치가 컸기때문)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선 게 약 550만 년 전, 그 침팬지와 보노보가 약 250만년 전에 갈라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침팬지와 보노보는 달라도 너무 다른데 동물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우리 인간에게 침팬지와 유인원 둘 다 들어있다고도 하였다.
먼저 침팬지는 부계사회로서 무리에 강력한 수컷 한마리가 모든 것을 독점한다. 심지어 어느정도냐면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해 다른 자식을 낳아버리면 찢어죽일 정도다. 영아살해도 서슴지 않는 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 간의 권력투쟁이 장난이 아니다. 그 알파수컷은 매 순간 지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나머지 수컷 침팬지들이 침탈할 기회를 늘 노리고 있다. 그래서 알파수컷이 부상을 당하거나 병 드는 순간 바로 무리로 부터 내쳐지거나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교미를 거절하는 암컷에게 폭력을 가하고 영역을 넘어온 다른 침팬지를 공격하기도 하고 다른 무리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등 동족살해도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을 따로 모아서 본다면 침팬지의 날 것의 모습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반면, 보노보들은 모계사회로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암컷이 그 무리의 왕이다. 보노보 사회에서도 당연히 갈등은 있지만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특징이 있다. 성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서로 싸우는 가 싶으면 어느샌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성관계를 암컷과 수컷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암컷과 암컷, 수컷과 수컷, 성체와 어린 개체등 다양한 파트너조합으로 관계를 가진다. 성관계만 하는 것은 아니고 스킨쉽도 한다. 이러한 특징때문에 침팬지와 다르게 보노보 무리안에서는 영아살해가 일어날 수 없다. 누구 애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계사회답게(?) 수컷들은 발언권이 없으며 암컷이 지정하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수동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침팬지의 수컷과 보노보의 수컷중 비교하면 보노보 수컷이 오래산다.
이런 보노보에게 가축화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는 왜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에게 이런 특성을 지니게 되었을까라고 의문을 가졌다. 브라이언 헤어의 설명에 따르면 200만 년전에 일부 보노보집단이 콩고 남쪽에 격리가 되었다고 한다. 보노보를 노리는 포식자들로 부터도 떨어질 수 있게 되었고 먹이의 경쟁상대였던 고릴라와도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 곳은 보노보의 먹을거리가 풍부했었던 특징도 있었다. 브라이언 헤어가 보기엔 이 곳은 먹을거리가 넘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폭력, 종 간 경쟁, 종 안에서의 경쟁이 불필요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보았다. 이런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게 종족이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런 것을 지향하는 애들이 오래살아남지 않았을까라고 보았다. 그렇게 그 보노보들이 우세종이 되어 지금의 보노보의 특징이 된 것은 아닌가라고 브라이언 헤어는 이야기하는데 이런 이유로 보노보가 스스로 자기가축화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보노보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인간도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사냥에 필요한 덩치나 근육, 싸움 능력보다 오히려 다른 인간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협동능력, 힘을 합쳐 포식자들에게 대항하는 능력등이 중요지지 않았을까? 무리의 우두머리를 뽑을 때 자기가 무력으로 휘어잡으려는 횡포한 그런 인간보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려는 인간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폭력적인 인간보다 포용적인 인간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서 나은 자식은 이러한 부모의 성질을 물려받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적을 만들어내는 인간, 힘이 센 인간이 아니라 협력을 잘 하는 사람, 다정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의 우리 인간이 아닐까? 결국 인간의 사회성, 공동체 문명을 꾸리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자기가축화'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브라이언 헤어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정한 사람으로 발전되어왔다면 왜 오늘날에도 폭력이 끊이질 않은 걸까?
브라이언 헤어는 '자기가축화'는 같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그 안에서만 강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무리가 아니라면 적으로 상정해 나나 나와 여러가지 관계를 맺고 있는 공동체 안전을 위해서는 배격해야할 집단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축화로 인한 고도의 사회성이 이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외부인이나 타자에 대해 극단적인 폭력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본성을 길들이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우리 내면에 최악의 속성의 씨앗을 뿌린 것도 동일한 뇌 부위에서 모두 일어나는 일이다.
(p. 195~196)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 인간들이 자기 가축화를 통해서 점점 다정한 동물로 진화해왔듯 지금의 이런 갈등 고리들도 충분히 끊을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희망적으로 보았다.
지금 상황을 보더라도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고 걱정이 들 때가 많다. 몇 년 전엔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며 세계 모두가 고통받았으며(지금도 진행중이다) 한 쪽에선 전쟁이 일어났고(뿐만아니라 지금은 세계적인 군비증강의 시대다) 그로 인한 유통 연결고리가 깨지고 전 세계 물가가 오르고 이러한 위기 속에 여러나라에서 극우세력이 점점 득세할 기세다. 착각이길 바라지만 모두가 불행한 시대인 것 같다. 20세기부터 이어진 세계화의 흐름이 한풀 꺾이면서 자유무역 시대도 점점 저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군사적 동맹관계를 경제블럭화해서 힘의 지위를 높이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인건가. 이런 흐름을 보며 이 책에서 보았던 '우리끼리' 영역이 공고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든다. 저자가 희망적으로 봤던 인간의 역량을 그 어느때보다 믿어보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