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禁하다 - 금제와 욕망의 한국 대중문화사 1945-2004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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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시절 많은 과목 중에 특히 근·현대사를 좋아했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왕 순서나 왕의 업적을 외우는 국사파트보다 조선이 끝나고 일제강점기때 일어난 독립운동의 연도는 더 잘 외웠다. 이 과목에서 배울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전투도 많이 나오는 독립운동사를 배우며 뭔가 국뽕(?)에 취해 이야 우리나라 대단하네 라며 감탄하며 신나게 공부했었다. 당연히 이 부분을 좋아했으니 그 당시 적국인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다. 일본의 횡포에 부글부글 민족적 감정이 끓어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와 함께 어릴때 부터 나에게 영향을 많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일본문화였다. 특히 만화(망가)라던가 일본에니메이션(아니메메)였는데 당시엔 일본국적의 만화/애니메이션인지도 모르고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것 인지 알고 봤던게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일본문화개방이 있기 전이였기에 등장인물에 대한 이름도 현지화해서 한국이름이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아니라 '강백호'거나 피구왕 통키(불꽃의 투구아, 돗지 단페이)의 주인공이 '이치게키 단페이'가 아니라 '나통키'였던 것 처럼.  


역사과목을 통해 일본을 미워했으면서도 (몇몇은 일본문화인지도 모른채)일본문화에 영향을 받은 이런 나의 이중성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어느정도 설명해준 것이 이 책『일본을 禁하다』였다. 

이 책은 일본문화 개방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문화사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는 '금지'담론을 생산하는 정치 영역에서는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 '위험한 손님'이었지만, 실제 대중문화를 둘러싼 경제적·문화적 현장에서는 매우 복잡한 시선과 욕망이 중층적으로 투영된 대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금지와 월경이 동시에 작동했던 근저에는 경제 발전과 근대화의 상징의 척도였던 자본주의 문화와 그것이 생산하는 현대성을 둘러싼 욕망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p. 43)


광복 후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광복 후 대한민국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을 잡은 미국의 전략적인 무시인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일본 대중문화가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전파가 되고 있는 중이였다. 공식적으론 일본 문화를 금지하고 정치적으로도 반일을 외쳤던 시대였지만 특히 한국의 상층부나 정권을 잡고 있는 쪽에선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우리보다 앞서 경제 고성장 중인 나라인) 일본을 내심 부러워한 것을 넘어 일본 문화를 늘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은 시작을 반일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그 본인도 일본 메이지유신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고 우리나라보다 앞서 경제 고성장 중인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로망(이 것은 단순하게 친일정권이였나를 넘어 당시 북한보다도 못 살았던 한국의 처지를 볼때 고위층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우리의 미래는 일본이다라던지 가장가까운나라인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만이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현실적인 전략과  동아시아에서의 반공블럭의 축인 일본과 하루빨리 외교관계가 복귀하는 것이 나쁠 것이 없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일에 대한 전체적인 국가 분위기를 시민들과의 합의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채 위로부터의 강압적인 정책 추진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를 바탕으로 (지금도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사건인) 1965년에  한일 국교화 정상화를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켰다. 하지만 아직 시민들은 '반일'을 갑자기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기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는 왜색이라며 비난하면서도 일본문화는 비공식적이거나 교묘하게 수입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97년 공식적인 일본문화개방 전 까지 유지가 되었는데 특히 수입된 일본애니메이션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기모노라던가 신사가 나오는 장면은 아예 통편집되거나 극중에 나오는 일장기는 어설프게 태극기로 그려넣는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었던 이유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일본 대중문화는 단순한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침략으로 인식되었으나 ('문화 제국주의 비판'으로서의 정당성), 동시에 일본 대중문화를 미국 대중문화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화의 하나의 모델로 인식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화의 하나의 모델로 인식했던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일본 대중문화를 배제하는 대신 국적을 지우고 적극적 모방, 표절하는 방법으로 산업적 성장을 피했다('산업적 근대화'로서의 정당성).

(p. 231)


97년 일본문화개방전까지 한국에서 트랜디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은 대개 일본 드라마나 프로그램의 형태와 매우 유사한 형태였는데 좋게봐주면 모방이겠지만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도 상당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 시기를 지나 나중에 일본문화를 정식으로 접했을 때 한국문화와 전혀 위화감을 갖지 못했을 때의 충격은 한국 프로그램 포맷이 일본 포맷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어찌됬건 이러한 과정들이 결국은 한국문화의 성장도 이끌어와 내가 어렸던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 자라고 있는 어린세대들은 일본 문화는 일본 문화인채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거니와 k-적인(?) 대중문화를 더 쉽고, 많이 접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문화보다 더 좋다고 느끼고 있으니 한국의 대중문화의 위치가 변했긴 했나보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일본이라는 타자가 '과잉된 존재'였다면, 전후 일본에서 한국이라는 타자는 자이니치在日나 북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줄곧 '부재'해온 것이다.

(…)

냉전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함께 미국을 욕망하고, 고도성장과 발전주의를 경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의 '현대'가 갖는 다양한 문제를 공감하고 공유하기를 꺼려한 두 나라의 억압된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화적 관계는, 그렇기 때문에 '65년 체제'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 235)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중엔 예전 박근혜 정부때 한-일 관계가 좋았었는데 말이지라고 회상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시절이 결코 좋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당시가 일본 쪽에서 볼 때 우리를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한-일관계가 좋았다고 하기엔 한국이 정치적으로 피해를 많이 봤다. 지금의 일본의 아베정권을 보고 있자면 한숨만 나오는데 언젠가 합리적인 정치세력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생각보다)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나라이면서도 알면 알수록 어려운 나라인 일본과 언젠가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얽힌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해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도 되면서 진짜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이 책의 독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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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3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대중문화(일드, 일본영화, 음악, 만화까지)를 정말 청소년기에 아주 열심히 섭취하면서 자란 저로서도 흥미로운 주제예요. 의식은 반일이었지만, 정말 문화는 일본 문화 좋아했었더랬죠~.
 

어느덧.. 4월 마지막 날이다..

자, 여러분들과 함께 읽기로 했던 4월의 책 『여성성의 신화』를 얼만큼 읽었나 봤더니.. 반도 못읽었다. ㅠㅠ

마지막날을 이렇게 보낼 수 없기에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게 겨우(!) 하나의 페이퍼를 쓰고 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 밀리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5월 초에 이 책을 다 읽기로 다짐을 하기로 하고..


지금도 다니고 있는 일본어 회화반 수업에서 생겼던 일화로 한번 시작해보고자 한다.

몇주 전쯤에 수업중에 원어민 선생님꼐서 학생들과 '일본과 한국의 다른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뭐. 일본인들은 친절하다. 일본은 깨끗하다라는 식의 다 알만한 대답이 오가던 와중, 

(아마 나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했던거 같다.;;)

한 남학생이 한국은 방송에서 제약이 많은데 일본은 그런게 없이 프리하다고 말했다.

대답하는것을 들어보니 여성에 대해서라던지 그런주제에 대해 이야기할때 일본방송은 자연스럽게가 가능한데 한국은 제약이 많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아 요즘 남학생들은 그렇게 보고 있구나..그 제약없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닌데.. 그런 관점이 이상하다는 것을 사회가 혹은 교육에서 잘 지도가 되어야할텐데라며 걱정을 한적이 있었다. 확실히 예전 방송들을 우연히 보게되면 엥? 저런 발언들이 가능했었었나?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야. 저 땐 방송하기 편했었는데 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잘못된 것이였고 백번양보해서 그 때가 잘못된 것이 몰랐던 때였다면 알고 있는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요즘은 티비나 심지어 컴퓨터조차 이용빈도가 적은 대신 스마트폰이나 테블릿으로 유튜브로 많은 것들을 보고 있는시대다. 그 수많은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들중 연반인(!)이라는 위치에 계신 '제재'라는 사람이 있다. 말그대로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니면서도 유명인인데 그분의 직업은 SBS PD다. 그는 유튜브영상에서 다양한 분들과 인터뷰를 하시는데 특히 아이돌 팬들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있다. 아이돌 팬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재재와 인터뷰하는 아이돌들이 편하게 방송하고 있구나를 정말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스트를 대할 때의 태도일 수 있겠는데 아이돌들과 인터뷰할 때 사전 정보들을 세세하게 숙지한 상태로 기존 방송에서 볼 수 있었던 애교라던지 자칫 무례할 수도 있는 것들을 강요하지 않으며 단어선택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사용하는 점이다. 기존의 방송사에서도 인기가 있다는의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최근엔 재재가 타방송사에도 게스트로 나오기도 하더라. 하지만 아직은 왜 인기가 있는지까진 잘 모르는게 문제지만 말이다. 


어찌됫든 2020년의 한국은 한쪽은 변화하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거 같고 그의 반해 한쪽은 어느새 새 트렌드를 주도해 자리잡고 있다.  


















돌고돌아(?) 베티프리단의 책 『여성성의 신화』를 살펴보자.


15년이 넘도록 여성을 위해 쓰인 많은 글이나 남편들이 방 한 쪽에 앉아서 직장이나 정치 또는 새 정화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여성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아이들이나 아이들의 학교에 관한 문제나 남편을 기분 좋게 해주는 법, 닭고기 요리법, 예쁜 의자 커버를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이었다. 아무도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논박을 하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를 뿐이었다. '여성 해방'이나 여성의 '직업 경력career'이라는 말은 이상하고 어색하게 들렸고, 몇 년동안 아무도 이런 단어를 쓰지 않았다. 시몬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펴냈을 때, 어느 미국 평론가는 보부아르가 '인생을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데다가 이 이야기는 프랑스 여성에게만 적용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여성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p.67)


프리단이 이 책을 썼던 당시 미국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1세대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권을 비롯한 법적, 정치적 권리획득을 위해 싸웠고 결국 1920년대에 여성참정권을 쟁취했다. 그러나 법적, 정치적인 권리는 얻었지만 지위자체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계2차 대전을 통해 많은 미국 남성들이 전장으로 투입되었고 여성 일자리를 꺼려했던 기존의 산업계로서도 노동자 하나가 아쉬운 와중에 여성인력들을 대거 늘려야 해야만 했다. 결국 실제 여성고용률이 높아지고 여성이 산업의 한축을 차지하게되었다. 하지만 종전과 함께 남성들이 미국이 돌아오게 되면서 다시 자연스럽게 노동의 자리를 뺏겨야만 했고 다시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전장을 누비며 돌아온 남편들이 편안하게 일상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가정에 충실한 가정주부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성의 강요속에 점차 많은 여성들 또한 자기 삶의 꿈을 가정에서 남편을 잘 보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마치 자기가 원해서 가정주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산층의 교외의 가정주부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된 프리단이 이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들'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여성성의 신화』를 썼던 것이다. 


고전인 이유는 언제든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때문일 것이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해서 전체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다 읽으면 2020년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2020년 한국을 보면서도 간극을 느낄 수 있었는데 느낌상으론 현재 10대인 어린세대들은 간극이 더 넓은 것 같다. 전세대인 나의 잘못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1960년대의 미국을 살았던 프리단은 자신이 느꼈던 간극을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좀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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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1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재재 잘 몰랐어요. 그런데 피디였군요! 저도 여유가 되면 재재 방송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요즘은 일본 av 에 대해서도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말들이 많은데 그 학생은 아직 흐름을 못읽는 것 같네요. 읽기 싫은 걸 수도 있고요...

블랙겟타 2020-05-02 23:14   좋아요 0 | URL
네네. 다락방님. PD긴 한데 편집, 진행, 섭외등등 다 하는 거 같더라구요.

음.. 사실 저도 몇년 전까지도 포르노그거 암묵적으로 불법(한국의 경우)보느니 차라리 합법화하면 안될까 생각했었는데요.. 지금껏 책 같이 읽기를 하면서 불법이나 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닌 애초에 잘못된 틀안에서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어 그동안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더라구요..

공쟝쟝 2020-05-01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재의 문명특급 좋아해요! 반도 못읽은 겟타님!! ㅋㅋㅋㅋㅋ 페이퍼를 읽으니 디아워스 라는 영화가 생각 나요~! 혹시 보셨나용?

수연 2020-05-02 18:55   좋아요 1 | URL
저는 봤어요 공쟝쟝님!!!! 진짜 좋아하는 영화.

블랙겟타 2020-05-02 23:18   좋아요 1 | URL
디아워스라고 하시길래.. 어? 들어본거 같은데라며 검색해봤더니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건 디 아더스였더라구요..^^:;;

그럼 안본거 맞습니다 ㅠ 이 글을 그 영화를 보고 쓰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쟝쟝님 추천으로 곧 찾아서 챙겨볼려구요.
수연님도 좋은영화라고 하시니.. ㅋㅋㅋ

수연 2020-05-02 1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재는 보지 못했는데 페이퍼를 읽고보니 궁금한 마음에 휘리리릭 찾아보았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반짝반짝 먼지 한톨 없는 깨끗하고 깔끔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리 쓸고 닦아보아도 금세 개판이 되는 저희집 풍경을 보다말고 역시 물건이 없어야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 깨달아요. 저는 여성성의 신화 읽는 동안 공쟝쟝님이 말씀하신 디 아워스 계속 떠올랐는데 아직 안 보셨다면 강추해요 블랙겟타님!!

블랙겟타 2020-05-02 23:20   좋아요 1 | URL
아마 영상을 보시면 수연님도 금방 재재님이 좋은 진행자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대로 디 아워스도 꼭 보겠습니다!! ㅎㅎㅎ
 

국가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행해지고 있는 요즘.. 

그래 이럴 때 일수록 집 안에서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겠다라곤 하지만.. 의외로 집에선 책이 잘 안 읽힌다는 결과가 벌어지니 오히려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서 책은 잘 읽었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보려고 해도 내가 가던 도서관은 휴관이고..(온라인 대여신청이 가능하긴 하지만 도서관에 가서 읽어야 읽는 느낌이 들어 패스..) 그렇담 역시 책장을 확대하는 수 밖에... ㅋㅋㅋㅋ 

3월말에 알라딘에서 3권을... 동네서점에서 2권을 지르고 나서 며칠 뒤 집에 도착한 책을 보고 있자니 흐뭇해진다. ㅎㅎㅎ


1. 알라딘에서 산 책 



먼저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 는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4월의 선정도서라서 샀다. 작년에 『여성주의 고전을 읽다 를 읽으면서 당시 내가 쓴 페이퍼에 언급했었던 여성주의자 중엔 베티 프리단이 있었다. 다음에 『여성성의 신화』 를 읽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야-드디어 4월에 읽어보는구나.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 내가 같이 읽기 모임에 추천 했었다고 한다. (정작 나는 까먹고 있었...;;;;) 

두껍기도 해서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어쨌든 잘 부탁한다. 내머리야. 


두번째로 『장제우의 세금수업』은 내가 연 초에 들었던 팟캐스트에 소개를 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몇 주전 시사IN을 읽다가 이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운명의 데스티니다. 그래서 샀다.


세번째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라는 책인데 이전에 잘 읽었던 『아이들의 계급투쟁』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의 신작이라 선택했다. 영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기도 한 저자가 계층의 격차와 다문화 문제로 신음하는 영국의 사회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러한 문제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은 결코 영국 만의 문제도 아니며 한국도 곧 비슷한 문제들이 벌어질 것이라 보인다.






























2. 동네서점에서 산 책



 바로 3월에 읽었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의 또 다른 책 『에코 페미니즘』을 샀다. 나중에 여성주의 같이 읽기에서도 읽을 책이라 미리(?) 구비해두려구 사두었다. 이전 책을 인상깊게 읽어 다른 책은 어떨까하고 그새를 못참고 사버렸다.

그다음으로 산 책은 『처음 만난 오키나와』라는 책인데 일본 같으면서 일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지녔던 오키나와, 날씨 따뜻하고 일본의 휴양지로 손 꼽히는 그런 아름다운 섬이지만 대규모의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거슬러 올라가면 차별의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팟캐스트에서 오키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책으로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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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5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6월 도서까지 사두시다니. 겟타님, 제가 정말이지 겟타님을 애정합니다.
우리 4월, 5월, 6월, 7월 모두 열심히 함께 읽어봅시다. 잘자요! (흐뭇해진 다락방)

블랙겟타 2020-04-12 17:35   좋아요 0 | URL
동네서점에 간 김에 5월 책은 없구..6월 책은 있어서요.. ㅋㅋㅋㅋㅋ
넵넵!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0-04-0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도서 샀다고 자랑했는데 그는 이미 6월도서 샀어..

블랙겟타 2020-04-12 17:36   좋아요 0 | URL
정확히 말하면 5월은 아직 안샀구요.. 6월 책 한권만 더 산거라서요..
물론 5월 책도 사신 쟝쟝님도 훌륭하십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4-06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차분하고 침착한 아름다운 책구매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블랙겟타 2020-04-12 17:37   좋아요 0 | URL
왼손만 거들뿐인데.. 어느새 책이 땋! 있네요. (언제 산거지 하며.. ㅋㅋㅋㅋ)
 

예전엔 부산에 신발공장들이 많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굴지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들의 하청공장들이 부산에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찍혀 나온 운동화들. 그 당시는 정작 한국에서 이 운동화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 한국의 사람 가격이 쌀 때다. 당시 대부분 신발 공장의 노동자들은 여자들이었다. 어쨋든 몇 수십년이 흘러 부산엔 신발 공장은 이전하던가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그만큼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 왜냐면 임금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 옷등에서 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는 보기 힘들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나이키 신발을 보니 메이드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이라고 적혀있구나. 동남아권 나라에서 많이 생산된다. 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은 중국에서 만든 것일테지? 내가 어릴적만하더라도 걸어다니면서 컴퓨터못지않은 것들을 들고 다닐거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또 어릴적엔 옷을 이모집에서 보내주신 소포안에 있었던 옷들을 많이 물려 받아 입었었다. 지금은 SPA브랜드의 등장도 있거니와 옷도 타협만 잘하면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질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기에 색이 바래거나 닳아지면 (예전같으면 기워서 사용하면 되지만) 지금은 버리고 새로 사는게 더 간편하고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금은 소비의 시대다. 소비할 것이 넘쳐난다. 넘쳐나다 못해 주체를 못해 버려야 새로운 것 사야하는 지경이다. 버리기도 많이 버리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폭증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근원에는 여성에 대한 '착취'에서부터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은 여전히 근대 과학의 기초이며, 물질적 힘과 결합된 지식이다. 화약, 향해술, 나침반 등 기술발명의 많은 것이 사실 전쟁, 정복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전쟁의 기술'은 인쇄술처럼 지식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폭력은 신남성이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수립하는 데 사용된 핵심 단어이자 핵심 방법이다. 이런 폭력수단은, '옛날처럼 자연의 작용을 부드럽게 인도하는 것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이 수단들을 자연을 정복하고 종속시킬 힘, 그 뿌리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p. 201)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이 주장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결국 자연이란 인간이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지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베이컨으로 시작된 경험주의 철학은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자연에 대한 인식이 함께 사는 곳이라기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해(정복, 파괴등) 인간을 위해 쓰여져야했다. 이는 곧 남성-여성간의 지위에도 적용이 되었다. 인간(Man)은 자연(Nature)을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에 대한 인식 또한 아이를 출산하는 신성한 존재, 인간(Man)에서 볼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로 여겨지며 이전부터 이미 여성이 자연과 동의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또한 동등한 주체가 아닌 정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녀사냥은 아프리카에서도 위세를 떨쳤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 특히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처럼 노예무역에 한때 연루되었던 나라에서 분열의 핵심수단으로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도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자원을 둘러싼 강력한 투쟁으로 인한 여성의 지위 하락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캘리번의 마녀』, p. 341)


이런 흐름은 예전에 읽었던 『캘리번의 마녀』에서도 보았듯, 유럽에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에서도 마녀사냥의 형태로 자연에 대한 정복욕구가 끔찍하게 나타났다.


마녀사냥으로 유럽 여성을, 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이야기의 다른 측면'은 유럽과,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처음 부를 축적한 계급의 여성이 사치품과 부의 소비자와 과시자로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가중주부의 단계로 가는 이야기다.

(p. 227)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 그 대륙들의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것또한 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결과적으로 북미나 유럽의 여성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고 그들또한 가정주부화시켜 저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소비만 하는 존재로 종속시켜버렸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가정주부라고하는 이런 신비화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다. 이는 이 노동분업을 순조롭게 기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는 세계시장을 위해 착취 혹은 극도의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여성이 조직화되지 못하도록 한다. 여성을 개별화한다. 이는 관심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미지로, 말하자면 남성의 부양을 받는 '진짜' 가정주부로 쏠리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대다수 여성에게 실현될 수 ㅇ벗는 일일 뿐아니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파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p.261~262)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사실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남성'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전혀 여성에 대한 '착취'를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고 별 탈없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먼저 남성으로서 폭력적인 '여성'착취의 과실을 따먹기도 한 존재였고 두번째, 한국인으로선 개발도상국등지의 여성들의 '착취'로 인해 생산되는 값싼 상품들을 소비해온 나로선 이 내용들이 두렵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바꿔야할까. 내가 남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과 실제 어떠한 형태로든 '착취'당해온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의 질은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동아시아권에만 머무를 것만 같았던 전염병 유행이 현재 유럽-미국에서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전지구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의 특징으로 비롯된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화된 산업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글로벌한 전 세계 산업네트워크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으며 또한 금융은 어떤가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에 대한 맹신과 폭발적인 팽창과 함께 금융또한 전세계가 전 지구적인 금융사슬로 묶여있다. 코로나 국면이 진정되더라도 기존의 리먼브라더스사태등의 이전의 경제위기와는 또다른 형태로 찾아올 것같다. 새로운 형태의 위기에 사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은 없는 것 같다. 어쨋든 기존의 자본주의하의 단기적 처방 방법대로 전세계가 돈을 풀기 시작했다. 이 해법이 어느정도 통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 위기의 근원을 좇아가면 생태 위기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자연을 인간이 정복해야한다는 대상으로 본 자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누리는 지금은 분명 빛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착취'가 있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존과 다른 뭔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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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3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저는 여자로서도 다른세계의 여자를 착취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괴롭더라고요. 그렇다면 길게 보고 마리아 미즈가 말한것처럼 소비를 내가 조절해야 하는것이구나 싶고요.

3월의 마지막날, 한 편 더 쓰셨네요, 블랙겟타님. 고생하셨습니다.

블랙겟타 2020-03-31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껏 과학과 기술의 발전 혜택을 듬뿍 받고 사는 사람이라 당장 어떻게 해야될지는 두렵고 어렵기도 하네요.

나중에 읽을 <에코 페미니즘>을 통해 마리아 미즈의 구체적인 주장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 •ᴗ•)
 

예전에 경제학 배운다고 노동경제학쪽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노동경제학에서 중요한 관심주제중 하나는 임금격찬데 그 중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설명하지 않아도 일반사람들도 존재하다는 걸 다 안다. 왜 생길까는 지금도 여러가지로 경제학계에선 연구하고 있지만 완벽한 대안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몇몇 중엔 남성과 여성의 몸의 차이, 즉 신체에서 나오는 선천적인 차이로 인해 남성은 뭔가 육체 노동영역(1,2차 전통적인 산업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 예를 들면 돌봄이라던지 가사영역, 서비스영역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격차가 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즉, 이부분이 경제학에서는 설명할 수 있는 격차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하지만 경제학은 왜 성별 분업이 이루어졌는지 신체적 특징때문에 그렇다고 했지만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는 여성에게도 노동시장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어 좋은 일자리에 많이 유입이되게끔하고 정치영역에도 여성이 많이 진출해서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만들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정부에 압력을 가해 여성에게 좀 더 많은 사회 복지 혜택을 주도록 하는 것을 통해, 혹은 노동시장에서, 특히 좋은 일자리에서 여성에게 평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것을 통해, 혹은 여성이 정치나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을 통해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기대했던 페미니스트는 모두 기대가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그들은 평등과 자유에 대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권리도, 여성과 관련해서는, 여건이 좋을 때만 보장되는 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권리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자본이 축적을 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유보시키겠다고 하면 유보되고 만다.

(p. 69~70)


위의 이런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냐면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이전에도 분명 이런 생각했었고 잠시 이뤄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여건 좋을 때 선심성으로 내놓았고 그마저도 다시 퇴보한 적이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왜 매번 이런 결과로 이어질까? 그것은 남성에 의한 '착취'라는 근본적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남녀관계를 말할 때 착취를 말하지 않는다면, 억압과 종속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공중에 붕 뜬 것이 될 것이다. 얻는 것이 없다면 왜 남성이 여성에 대해 억압적이겠는가? 착취와 관계되지 않는 억압 혹은 종속은, 그렇다면 순전히 문화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된다. 어느 정도는 타고난 남성의 공격적이고 새디스트적 경향 등을 언급하지 않고는, 그 근원을 알아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착취가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범주라고한다면, 그 기초에 남녀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부족과 사회에 의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달라 코스타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의 착취에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성은(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서도) 남성에게 착취당한다. 그리고 자본에 의해 가정주부로 착취당한다. 만약 여성이 임금 노동자라면 [자본에 의해] 임금노동자로서도 착취를 당한다. 그러나 이 착취조차도 다른 두 가지의 연결되어 있는 착취 형태에 의해 규정되고, 강화된다. 

(p.107)


저자인 마리아 미즈는 남녀관계를 착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이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달라코스타를 인용한 부분을 읽다가 비슷한 주장을 다른 책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아! 찾아보니 작년에 읽었던 『캘리번과 마녀』에서 였다.
















달라 코스타의 말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착취, 즉 "임금 노예제"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졌고, 이 무임노동이 임금 노예제의 생산성의 비결이다(1972:31).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한다.

(캘리번과 마녀, p. 21)


『캘리번과 마녀』의 서문에도 적혀있듯이 특히 자본주의적 축적에서 이러한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이 필수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 달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도 비슷하게 말하길 보이지 않는 무급의 가사, 돌봄 노동으로 인해 자본주의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 남녀관계는 남성의 여성'착취'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나의 순진한 생각과 다르게 여성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준다거나 여성이 정치적 힘을 가진다고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럼 어떻게? 우선 '착취' 역사를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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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28 15: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블랙겟타님 한달동안 이 책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독하셔서 너무 멋집니다. 으하하핫. (나도 완독함)
이렇게 정리해주신 것도 좋고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읽고 정리까지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이 생각나고 저 책이 생각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색다르거나 특별한게 없었는데도 읽는동안 또 충격이더라고요. 아 맞아, 아 그렇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저는 인도 여성들의 처참한 폭력과 살해-페미사이드-앞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책에서 왜 페미사이드가 나와야 하는걸까, 잠깐 어지러웠었어요. 결국 연결되어 있지만요.

자, 우리 힘내서 3월 도서도 읽어봅시다.

블랙겟타 2020-03-31 14:02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저는 이 책이 읽은 것중에 손꼽힐정도의 책이었어요.

여성주의 책을 매달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당연히 이 의미는 새롭게 알아서 기쁜것과 부끄러움이 같이 있어요.

다락방님 그런데.. 3월 도서는 다 읽었는데여? ㅋㅋㅋㅋㅋㅋ 당연히 ‘4월’로 찰떡같이 알아들을게요~(σ^∀^)σ

다락방 2020-03-31 14: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요 4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찰떡같이 알아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하긴, 이제 우리가 그럴 사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4-03 0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진했던 겟타... 저 역시 순진했던 구좌파(적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로서 책을 읽으며 계속 끄덕끄덕 했더랬죠.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너무 멋지지 않나요?

블랙겟타 2020-04-05 21:58   좋아요 1 | URL
네. ^^
자본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도 슬쩍 눈길을 준 적이 있었는데요.. 여기도 확실한 대안이다라고 하기엔 알면 알수록 한계가 보여서 어떤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충격도 받았고 새로운 고민거리를 얻었어요 ^^;; 물론 멋졌기도 했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