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정치·사회적 격동기였던 1979년, 한 일본인이 서울의 한 대학교 일본어 강사로 부임하며 겪은 일상을 담은 소설 『계엄』은 한 시대의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 작품입니다.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실제로 해당 시기에 한국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어, 이 소설은 자전적 성격이 짙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단순한 허구라기보다는 '한 외국인의 서울 체류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이방인의 시선, 1979년 서울을 기록하다
주인공은 일본인의 시선으로 박정희 정권 말기의 한국을 바라봅니다. 당시의 정치 상황, 사회 분위기, 지역 간의 인식 차이까지 다양한 관점을 담고 있어, 단순히 한 사람의 체험기를 넘어선 사회적 기록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라도와 경상도 간의 인식 차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다룰 때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려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종로, 이문동, 잠실 장미아파트 등 도시 곳곳에 대한 묘사도 매우 생생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소설이지만 에세이처럼 읽히는 이유
『계엄』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 전개보다는 현실의 묘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보다 극적인 사건에 휘말렸다면 서사적으로는 더 긴장감 있고 흥미로웠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담백함이 오히려 저자의 진심과 체험을 더 깊이 느끼게 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방어적인 어조, 정치적으로 조심스러운 서술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한국 독자를 의식한 듯한 문장들이 몇몇 눈에 띄었는데, 이방인의 시선이 주는 날카로움, 비판적 시각이 더 드러났다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것 같습니다.
책이 남긴 울림
소설 『계엄』은 정치와 역사에 무관심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정치적 상황이 개인의 삶과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AI나 신기술만 좇던 제게, 역사를 공부하고 현재를 성찰할 필요성을 일깨워준 점에서 의미 있는 독서였습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이 책을 접한 것은 시의적절했고,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게 했습니다.
소설 계엄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계엄』은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뿐 아니라,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서사의 힘이 강한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고,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까지도 스스로 던지게 됩니다.
책 표지는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으나, 내용은 의외로 부드럽고 쉽게 읽힙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을 원하시는 분들께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