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 걸(Gossip Girl)>은 맨해튼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재벌 2세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미국 드라마다. 2003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6개의 시즌으로 방영되었다.

 

 

 

 

 

 

 

 

 

 

 

 

 

 

 

 

 

 

 

 

 

 

 

 

 

 

 

 

 

 

 

* 세실리 본 지게사 《가십 걸》 (황매, 2005, 2008)

* 캐서린 하킴 《매력 자본》(민음사, 2013)

*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 2018)

 

 

 

‘가십 걸’은 극 중 재벌 2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재되는 익명의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자이다. <가십 걸>의 주인공은 좋은 학교에 가고, 명품을 사 모으고, 멋진 남자들과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는 젊고 진취적인 여성이다. <가십 걸>은 이야기가 탄탄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는 형식 자체가 연예인들의 온갖 사생활을 전달하는 할리우드 연예 뉴스와 같다. 이야기 이외에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여배우들의 옷이나 장신구는 PPL(Product Placement, 간접 광고)이다. 이야기를 떠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패션 자체는 화젯거리가 된다. 10대, 20대 여성층들은 <가십 걸>의 주 시청자이면서 가장 충성스러운 소비자이다. 소비를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의 생활방식을 그린 <가십 걸>은 화려한 상류층 여성의 이미지만 보여주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린다.

 

페미니즘은 종종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의 한 양상으로 오해받곤 한다. <가십 걸>에 열광한 젊은 여성들은 기존 페미니즘이 비판했던 외모 가꾸기 등을 스펙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매력 자본(Honey Money)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Catherin Hakim)은 아름다운 용모, 건강미와 활력 등을 ‘매력 자본’이라고 규정했다. 사회, 문화, 경제적 자본처럼 외모도 하나의 자본으로 작용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매력 자본은 단지 잘생긴 외모나 멋진 옷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유머, 예의범절, 미소, 건강한 활력, 춤 실력 등이 포함된다. 하킴은 매력 자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지능처럼 노력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소득자, 상류층은 외모와 여가문화 등의 자본을 더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외모에 투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혼과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력 자본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는 이러한 현상을 ‘시장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어떻게 포장되며, 대중문화를 통해 페미니즘 본래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하는지 보여준다.

 

 

 

 

 

 

 

 

 

 

 

 

 

 

 

 

 

 

* [절판] 에드가 모랭 《스타》(문예출판사, 1992)

 

 

 

‘가십(gossip)’은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소문을 보도하는 기사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십이 강력한 위세를 부리는 곳은 연예계다. 기존에는 신문 등 대중매체가 취재해 가십을 유통했다면 이제는 연예기획사나 연예인 스스로 가십의 생산자로 나서고 여기에 방송이 매개 역할을 하며 인터넷, SNS 등이 확대 재생산해 대량으로 유통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이 쓴 《스타》(문예출판사)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연예인의 가십을 만드는 대중문화의 허상과 폐해를 지적한 저자의 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모랭은 가십을 ‘스타 시스템을 키우는 플랑크톤’이라고 표현했다. ‘스타’가 된 연예인은 대중의 우상이 된다. 스타를 추종하는 팬들에게 스타가 사는 세계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다른 별천지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 시청률 보증수표와도 같다. 이들을 스타 또는 공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대중의 사랑과 관심으로 부와 인기를 누리는 대신 일정 부분 자신의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측면도 포함돼 있다. 스타는 ‘꿈의 빵’이라고 했던 모랭의 지적처럼 연예인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팔리는 특수 상품이다. 따라서 가십이 유통되지 않으면 연예인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지 않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 조지프 엡스타인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 2013)

* 강준만 《교양 영어 사전 2》(인물과사상사, 2013)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

 

 

 

‘가십’과 마찬가지로 ‘가십 걸’도 영어사전에 있는 단어이다. 영어사전에 나오는 ‘가십 걸’의 뜻은 이렇다. 수다를 떠는 여자,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뒷얘기를 좋아하는 여자. 그런데 ‘가십 보이’는 영어사전에 없다. 남자들도 은근히 남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동성끼리 모여서 뒷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가십은 원래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했다. 집안에 머무르면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들은 외출하면서 이웃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6세기에 가십은 ‘여성 친구’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여성들의 대화를 경멸하는 뉘앙스가 없었다. 과거의 가십은 사회 집단 내 일원들끼리 주고받는 유용한 정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단적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가십에 쉽게 끌린다. 검증되지 않은 가십임에도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열을 올린다. 진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은 더 빠져들고, 또 다른 이에게 옮겨질 때는 강도가 더 커진다. 《성난 초콜릿》(함께읽는책)은 내 귀에 달콤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가십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타인이 숨기고 싶은 내밀한 부분을 엿듣고 싶은 욕구가 있다. 치명적일수록 효과가 배가되고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가십은 우리 눈과 귀를 유혹하는 달콤한 초콜릿과 같다.

 

누구든지 가십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십은 여성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부정적으로 가리킬 때 사용되어 왔다. ‘가십 걸’의 ‘걸’은 ‘연예계 가십에 관심이 많은 여성’, ‘가십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미숙한) 여성’이다. 그 단어 속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과 차별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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