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에 미국 정부는 스탠딩 록 수(Standing Rock Sioux) 부족 등 원주민들이 반대해온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Dakota Access Pipeline) 건설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사업은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4개 주를 잇는 대형 송유관 건설 사업으로 총 38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 사업은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관통해야 했는데, 식수원과 주요 성지(聖地)를 잃게 되는 수족 등 원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2016년 3월부터 수족은 아예 공사장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100여 개의 원주민 부족들도 동참했다. 여러 환경운동가와 인권운동가들까지 시위에 가세해 점차 전국적 원주민 저항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미국 정부와 미 육군은 송유관 건설 사업 시공사인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ETP)에 원주민 보호구역 주변에서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에 투자했고, 해당 회사 CEO에게 기부금도 받은 트럼프는 송유관 건설을 허용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육군은 불과 2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송유관 건설을 다시 허가했다.

 

 

 

 

 

 

 

 

 

 

 

 

 

 

 

 

 

 

*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2018)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스탠딩 록에서 온 빛』이라는 글에서 ‘스탠딩 록 집회’가 전 세계에 보여준 연대의 힘을 상기시키면서 분노와 저항을 근간으로 하는 축적의 시간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글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에 수록되어 있다. 변화를 꿈꾸는 연대는 국경과 국민의 테두리를 비웃으며 넘나들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이며, 관료적 위계에 묶인 형식이 아닌 희망의 에너지가 생산되고 넘쳐나는 체험이다. 연대는 지금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 언어이며 행동 양식이다.

 

『스탠딩 록에서 온 빛』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파와 백인 우월주의가 승리를 뽐내는 지금, 우리는 많은 증오범죄 이야기를 듣는다. 구타, 모욕, 스와스티카, 협박 등등.

 

 

(『스탠딩 록에서 온 빛』 중에서, 280쪽)

 

 

‘스와스티카(swasticka)가 뭔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내가 참고한 사전은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이다. 스와스티카는 불교의 상징인 ‘卍(만)’ 자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행운’을 뜻하는 ‘스바스티카(svastika)’에서 유래했다. 스와스티카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됐으며 특히 힌두교 경전에서는 행운과 힌두교 최고의 신 브라마(Brahma), 또는 부활 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스와스티카는 힌두교 구조물과 인도 수공예품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불교와 자이나교, 아시아와 유럽, 미국 원주민 문화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스와스티카는 고대 그리스 · 로마 · 중국 등 고대 문명이 찬란하였던 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스와스티카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태양이나 번개의 신, 불의 신을 상징 한다는 설도 있으며 회전하는 북두칠성의 형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 허균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 2000)

 

 

 

다양한 사찰 조형물과 장식 문양의 상징적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한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돌베개)라는 책은 우리나라 미술에 나타난 스와스티카 문양을 소개한다. ‘卍’ 자를 좌우로 뒤집은 ‘卐’ 자도 스와스티카다. 우리나라 무속 신앙에서 스와스티카는 우주와 인간의 삶과 죽음, 환생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이란 뜻으로, 불교에선 부처의 마음 또는 중생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불성을 뜻한다. 그런데 이 상서로운 상징이 어째서 ‘증오 범죄’의 상징이 되었을까?

 

좋은 뜻이 있는 스와스티카가 최악의 상징으로 돌변한 것은 독일의 히틀러(Hitler)가 자신의 소속 정당인 나치(Nazis)의 상징으로 채택하면서부터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스와스티카는 ‘갈고리 십자가’를 뜻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로 알려지게 됐고, 수많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현장에서 나부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조상인 아리안(Aryan)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스와스티카를 나치 문양으로 정했다. 요즘 네오 나치나 백인 우월주의 집단, 일본 극우 집단이 써먹고 있다. 전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스와스티카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스와스티카를 보면 하켄크로이츠를 연상하는 유럽인이 많다고 한다. 히틀러가 스와스티카를 왜곡해서 사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스와스티카 사용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 히틀러가 반유대인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문양을 오용했다는 점이 스와스티카의 평화적 사용까지 금지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는 스와스티카의 의미를 알려주는 주석이 달려 있지 않다. 독자들이 ‘좋은 만(卍, 스와스티카)’ 자와 ‘나쁜 만(卍, 하켄크로이츠)’ 자를 혼동하지 않도록 상세한 주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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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0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불교에서 쓰이는 卍(만)자와 나찌 독일의 문양인 卐(하켄크로이츠)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 계통이 완전히 다른줄 알았는데 cyrus님 글을 읽은 덕분에 모두 브라만교(혹은 힌두교)에 근원을 둔 문양이란것을 알았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cyrus 2018-12-03 12:3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만 자 문양을 쓴 고대 문명이 많았어요. 고대 그리스인, 켈트인들도 만 자 문양을 썼어요. 의미는 다르지만, 동서양 공통 문양으로 보면 됩니다. ^^

transient-guest 2018-12-04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방향이 다르니까 조금만 양식이 있으면 혼동하지는 않겠죠? 어쨌든 트럼프와 함께 다시 분리/인종주의가 나온 건지, 이들이 다시 준동하는 것이 트럼프라는 괴물로 결과가 나온 거지 이론이 분분합니다만, 좋지 못한 시대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게 일종의 헤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후 대략 70년 이상 이어진 서방세계의 평화시기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시작되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cyrus 2018-12-04 14:09   좋아요 0 | URL
내년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됩니다.. ^^;;

소요 2018-12-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 주셔서 책 사서 열심히 보겠습니다

cyrus 2018-12-04 14:13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을 사시는지 모르겠지만, 소요님이 만족하셨으면 좋겠네요. ^^

레삭매냐 2018-12-0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서 스와스티카하고 만자를 헷갈려
했던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정말 답이 없네요. 어렵게 이뤄낸
공사 중지 명령을 무효화하고 깽판을 쳐대
니...

글 내용과 좀 거리가 있지만,
헤르메스님이 추천해 주신 리베카 솔닛의
<폐허>를 읽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올해
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내년에 읽어 볼까 합니다 ~

cyrus 2018-12-04 15:52   좋아요 0 | URL
오바마 정부 말기에 송유권 건설 중지 결정이 내렸으니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어요. 민주당의 힐러리가 대통령이었으면 중지 결정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저는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읽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