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그냥 책이 사고 싶은 마음에 간 것이 아니었다.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가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5년, 줄여서 ‘사우것’)이었다. 카버의 또 다른 작품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문학동네, 2004년)와 최근 개정판이 나온 『대성당』(문학동네, 2014년)은 예전에 구입했다. 이제 『사우것』만 사면 국내에 번역된 카버의 모든 작품집을 소장하게 된다. 운이 좋았다. 서점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이 책을 사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서점에서 산 책들을 책장에 꽂았다. 참으로 못된 버릇이다. 책을 사자마자 바로 읽는 성격은 내 서재에 나간 지 오래됐다. 내가 그동안 사서 읽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내 방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지만 사방에 책상, 서 너 개의 책장을 세울 수 정도로 적당하다. 내가 두 다리를 뻗어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방 내부의 공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창문 바로 앞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1인용 소파가 있다. 이 정도면 책장을 둘러싸인 좁은 방도 꽤 만족스러운 서재가 된다. 책상에서 한 발짝만 움직여도 내가 원하는 책들이 한 눈에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내 방을 보는 외부 사람이라면 넓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서재를 갖춘 방이 딸린 집을 12년째 살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내 방이 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 근래 내 방에 책이 점점 많아지면서 넓은 서재의 중요성을 느끼고 시작했다.

 

앞으로 사야 할 책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책을 꽂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아동도서나 동화 전집, 대학생 때 산 전공도서 그리고 다시 읽을 기회가 없는,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을 종이박스에 담아 옷장 겸 잡동사니를 보관한 창고가 된 내 동생의 방에 보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 이젠 책을 꽂는다기보다는 책을 쌓는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책이 다 꽂혀 있는 책장 받침에 책을 누워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튼튼한 목재 책장이라면 상관은 없지만, 만든 지 연도가 오래된 목재 책장이라면 책의 무게에 감당하지 못한다.

 

 

 

 

 

 

 

사진 속 여닫이가 있는 책장은 부모님이 신혼 시절에 구입한 것이다. 27년째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 나오는 목재 책장에 비교하면 튼튼함이 떨어진다. 책장 받침을 지탱하고 있는 나사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오랜 세월로 인해 썩게 되고,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두 달 전에 책장을 정리하는 도중에 책장 받침이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상태를 발견했다. 책 한 권을 꽂으면 ‘삐걱’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책장 받침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책장 제일 윗칸은 받침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책 꽂을 공간이 저렇게 충분한데도 어쩔 수 없이 책을 꽂지 못한 채 그냥 저 상태로 놔두고 있다.

 

 

 

 

 

 

 

 

 

 

 

 

 

 

 

 

 

오카자키 다케시『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 2014년)에 자신의 책으로 가득한 목조건물이 무너질까봐 괴로워한다. 일부 독자는 오카자키의 괴로움에 쉽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목조건물이 많은 것도 아닌데다 지진의 위험성이 아직은 덜한 편이다. 오카자키 같은 장서가의 괴로움은 일본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래된 목재 책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오자카지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다음에 책장을 새로 사게 되면 나사가 없는 것을 살 생각이다. 

 

사실 이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책 건망증’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사우것』을 구입하던 날이었다. 추석 연휴동안 집에서 쉬게 될 동생이 읽을 책이 있는지 내 방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러자 책장에 꽂힌 『사우것』을 발견했다. 동생은 그 책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나는 동생이 그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생은 책장에서『사우것』을 빼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오빠, 왜 이 책이 책장에 꽂혀 있어? 이거 예전에 내가 읽는다고 빌려갔잖아? 같은 책을 또 산거야?”

 

아뿔싸, 내가 같은 책을 두 권이나 사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사우것』을 산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을 깜빡 잊고 같은 책을 사고 만 것이다. 심지어 동생이 『사우것』을 빌려 간 일도 같이 잊고 있었다. 처음에 동생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천천히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니 한 달 전에 교보문고에서 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짓말을 해도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었다. 나의 실수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도 있었다. 동생은 자신의 가방 속에 있는 또 다른 『사우것』을 꺼내 보여줬다. 두 권의 『사우것』은 책 표지만 같은 것도 아니었다. 2013년 12월 2일에 찍은 1판 10쇄였고, 교보문고에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도장자국도 남아 있다. 살면서 이런 우습고도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를 줄이야.

 

 

“요사이 찾는 책을 발견할 확률이 점차 낮아져 분명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오거나 서점에서 다시 사오는 일이 심심찮게 있다. 위험한 것은 다시 사오거나 빌려온 책마저 장서의 파도에 떠밀려 ‘해저 깊은 곳’에 잠겨버리는 일이다.”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중에서, 18쪽)

 

 

아직 내 서재는 오카자키만큼 2만 권이나 되는 ‘장서의 파도’에 떠밀릴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서재에 있는 책이 그렇게 적은 권수는 아니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난 후부터 서재에 몇 권의 책이 있으며, 어떤 책이 있는지 엑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모범장서가 공모를 진행하고 있어서 다음에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소장 도서 목록을 미리 만들고 싶었다. 책이 꽂힌 책장 한 칸 한 칸씩 사진을 찍어 일일이 확인해가면서 엑셀에 기록했다. 도서 목록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많아야 400권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한 것보다 권수가 많았다. 오카자키가 말했던 최상의 보유 권수인 500권을 넘었다. 지금도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 중인데 800권을 넘은 상태다. 6년 전에 구입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세트를 포함한다면 1000권은 거뜬히 넘었다. 엑셀에 기록된 800권의 도서는 아동용 도서를 제외한 것이다.

 

독서를 전문적으로 하는 서평가들이 소장한 책의 권수에 비하면 1000권은 아직 장서가로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성인이 읽는 책을 읽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작년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렇게 많이 책을 샀을 줄 꿈에도 몰랐다.

 

사실 도서 목록을 작성하면서 1000권을 샀다는 사실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작성중인 도서 목록은 그 많은 책들 중에 제대로 읽은 책이 많지 않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기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3년 독서 인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책들도 눈에 띄었다. “아, 나로 예전에 이런 책을 샀구나!” 갑자기 몇 년 전에 다 읽었거나, 혹은 읽다 말거나 그리고 아예 종이 한 장도 펼치지 않았을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나는 그동안 세월의 파도에 떠밀려 망각의 심해 깊은 곳에 잠겨버리고 있는 책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오늘도 도서 목록을 작성하면서 잠겨 버린 채 내 기억 속에 사라질 뻔한 책들을 한 권씩 한 권씩 건져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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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9-11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뿌리칠 수 없는 삶의 동반자, 책이겠지요? 고은 시인께서는 책이 자신을 못 살게 군다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cyrus 2014-09-12 14: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흔적님. 책에 대한 표현에 동의합니다. 책은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하면서 한편으로 괴롭게 만드는, 두 얼굴의 아내 같기도 합니다.

blanca 2014-09-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같은 책 읽으셨군요, 반가워요 !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언젠가는 엑셀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답니다.^^;; 저는 개방형 책장이라 책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이더라고요. 햇빛으로 변색도 되고요. 다음에는 님처럼 덮개가 있는 책장을 사야 하나 이러고 있어요. 아, 저도 책욕심 요새 줄이느라 의도적으로 있는 책 다시 읽자, 이러고 있는데 솔직히 읽었던 책을 또다시 읽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아요.

cyrus 2014-09-12 15: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고 저 이외에도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흡족하게 생각해요. 덮개형 책장을 오랫동안 사용해본 저로선 느겼던 것이지만, 약간의 단점도 있답니다. 일단 덮개를 열면 소리가 나는데다가 유리라서 아이들이 직접 덮개를 열고 닫는다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책등이 다 보이는 개방형 책장이 나은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라면 절대로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하루 자고 나면 읽고 싶은 신간도서들이 많이 나오는데 전에 산 책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죠... ^^;;

korin 2014-09-18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수집광 혹은 애서광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만족하는 독서가로 남을 것인지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매년 책을 읽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꺼내놓은 책들에 책상이 점령될 때마다 책속에 길을 잃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이른 아침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지난달 성황리에 끝난 국립중앙박물관의 오르세미술관전을 관람하고 있을 때였다. 전시회  기간 막바지라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입장객이 많았다. 일렬로 줄 서서 그림을 봐야 할 정도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특히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과 조각상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통로 중앙에 위치한 「무용복을 입은 발레리나를 위한 누드 습작」이 발레리나 그림보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린 발레리나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다음 동작을 취하려고 한다. 이제 곧 발레가 시작되기 전에 흐르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드가의 조각 작품을 보다가 내 옆에 서 있는 어느 젊은 커플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친구에게 드가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많이 그렸대. 그런데 지난주에 서프라이즈에서 본건데 드가가 여성을 무척 싫어했어.신기하지?” 그 여자친구가 언급한 ‘서프라이즈’는 매주 일요일에 하는 TV 방송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지난 달 17일에 방영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줄여서 ‘서프라이즈’)에 드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드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가 즐겨 그렸던 발레리나지만, 작품과 상반되게 여성 혐오자로도 유명하다. 드가는 “여자의 수다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울어대는 양 떼들과 함께 있는게 낫다”며 공개적 자리에서 여성 비하를 서슴없이 나타냈다. 결국 드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무엇 때문에 그가 평생 여성을 혐오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부부」  1868~1869년경

 

 

지난 달 17일에 방영된 ‘서프라이즈’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드가는 여성을 흉측한 모습으로 그렸다. 한 번은 드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부인 쉬잔이 함께 있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평소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쉬잔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마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친구의 완성된 그림을 본 마네는 부인의 얼굴이 흉측하게 그려진 것에 화를 냈다. 심지어 아내의 얼굴이 있는 그림의 오른쪽 부분을 캔버스로 세로로 잘라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그림이 훼손된 것을 자존심 강한 드가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이 사건 이후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한동안 단절되었다.

 

 

 

 

그의 이런 여성혐오증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외도와, 그로 인한 아버지의 몰락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림에 여성을 혐오스럽게 표현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했던 것이다.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주로 그려 명성을 얻은 드가의 그림들은 한눈에 보기에는 매우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레리나들의 얼굴이 모두 추악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나는 ‘서프라이즈’에 역사적 인물들의 숨겨진 일화를 소개하는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려고 사실에 맞지 않은 내용을 방송하기도 한다. 최근 영화 ‘아이언맨’에 출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편이 완전히 틀린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내보내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사실 드가의 여성혐오증을 소개한 방송도 문제가 있다. 사실적인 정보와 거리가 먼 내용을 그대로 전파에 내보냈으니까. 드가가 여성혐오증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방송은 드가의 여성혐오증을 부각시키려고 그의 그림에 억지로 연관성을 만들어 설명하려고 했으며 심지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 지금부터 ‘서프라이즈’ 드가 편 방송 장면을 하나하나 반박하려고 한다.

 

 

 

 반박 1. 드가의 여성혐오증은 어머니의 외도 탓이다?

 

 

 

 

 

 

 

 

 

 

 

 

 

 

 

 

드가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한 눈에 소개한 책으로 두 권이 있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 65번 앙리 루아레트의 『드가: 무희의 화가』(시공사, 1998년)와 마로니에북스 Taschen 베이직 아트 시리즈 17번 베른트 그로베의 『에드가 드가』(마로니에북스, 2005년)다.

 

드가의 어머니는 184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열세 살의 드가에게 이른 어머니의 죽음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 후로 드가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그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드가의 아버지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드가의 아버지는 재혼을 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홀로 지내는 바람에 은행이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은행은 파산되고 말았다.

 

 

 

 

 

 

 

 

 

 

 

 

 

 

.

그런데 두 권의 책은 드가 어머니의 외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이택광의 『인상파, 파리를 그린다』에서는 드가의 불행한 가족사를 상세하게 언급한다. 드가의 어머니는 남편의 남동생과 외도를 했는데 아버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알면서도 묵인했다. 어머니의 사망이 아버지가 폐인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다. 서프라이즈 드가 편에 소개된 내용과 비슷하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내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드가가 여성혐오증을 가지게 만든 원인을 어머니의 외도 탓으로 확정짓는 것보다는 또 다른 추측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즉, 어머니 때문에 드가가 여성혐오자가 되었다는 내용은 무조건 100% 사실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반박 2.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에 여성혐오증을 표출했다?

 

아무리 드가가 주위 동료 화가들에서 잘 알려진 여성혐오자라고 하지만, 왜곡된 여성의 얼굴 그림을 드가가 의도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드가가 발레리나의 얼굴을 이상하게 그린 이유가 인공조명에 의한 빛의 효과를 노려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드가는 인공조명의 빛과 어둠이 만나서 생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레리나의 무대에서 발견했고,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조명의 효과는 캐리커처처럼 왜곡된 여성의 얼굴에 더욱 역동성을 띄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발레리나들의 연기가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에 여성혐오증을 표출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반박 3. 드가의 『개의 노래』는 여성을 개의 앞다리와 입모양을 묘사해 비하했다?

 

 

 

 

 

드가의 『개의 노래』는 카페 앙바사되르에서 노래를 부르는 엠마 발라동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드가가 엠마 발라동을 개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만듦으로써 여성 비하의 증오심을 표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여성의 증오심을 담은 드가의 표현이라는 근거가 없다. 그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엠마 발라동은 자신이 부르는 노랫말에 나오는 개를 흉내 내고 있다. 드가는 발라동의 자세를 혐오스럽게 표현했다기보다는 유행가의 통속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리고 관람객들이 가수의 몸짓에 몰입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발라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 드가 또한 발라동의 노래에 열광했다. 

 

 

 

 

 

에드가 드가  「개의 노래」  1875~1877년경

 

“발라동의 커다란 입이 열리자 관능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 인간의 목소리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베른트 그로베, 『에드가 드가』중에서, 58쪽)

 

드가의 『개의 노래』는 발라동의 멋진 노래 실력을 예찬하는 화가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을 여성 혐오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서프라이즈’의 방송 내용은 사실을 왜곡한 거짓이다.

 

 

 

 

 

에드가 드가  「욕조」  1886년

 


이번 오르세미술관전은 드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많이 알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드가 편은 방송의 재미를 위한 부각시키려다가 그만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평소에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여성을 증오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드가의 삶이 평범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을 연관 지어 보게 된다면 드가의 독창적인 표현력을 간과할 수 있다. 드가의 여성혐오는 화가의 사소한 정보에 불과하다. 드가는 생각보다 여성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발레리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인에서부터 벌거벗은 채 목욕하는 여인까지 연작 형태로 제작했다. 개인적으로 여성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목욕하는 여인의 누드화를 손꼽히고 싶다. 평범한 여체를 형성하는 곡선 위에 더해진 빛의 효과로 인해 드가의 누드화는 관능적이다. 여성혐오자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성 혐오자라는 이유로 드가의 멋진 그림들이 말도 안 되는 선입견과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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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된 에드거 앨런 포의 유일한 단편소설 전집 『우울과 몽상』을 읽으면, 무성의에 가까운 번역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포가 발표한 모든 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장점만 아니었다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몇 몇 서평에 책의 번역에 대한 지적 사항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정판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중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수록한 『꿈을 빌려드립니다』가 새로운 표지를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의 출판사는 『우울과 몽상』펴낸 ‘하늘연못’이다.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1996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올해 나온 개정판은 다시 한 번 번역을 새롭게 교정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1997년에 나온, 녹색 바탕색으로 된 개정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알라딘 서지정보에 소개된 초판 출간 시기가 제각각이다. 올해 개정판에는 1996년, 2006년에 나온 개정판은 200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개정판이 1997년, 2006년 그리고 올해 이렇게 세 번 나온 것이다.

 

이 정도 열정적인 출판 자세라면 『우울과 몽상』도 개정판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미국문학을 전공한 번역자가 새로 교정할 필요가 있다. 포의 대표작 ‘모르그 가의 살인’에 휘스트라는 체스 게임이 언급되는 부분을 완전히 누락한 점은 지금도 이 책에 있어서 최악의 번역으로 회자되고 있다. 두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번역체는 독서의 몰입감을 방해한다. 번역자는 포의 소설전집이 환상소설과 풍자소설이라는 보석이 빛을 발하기를 바라지만, 보석은커녕 오역의 불순물이 섞인 모조품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에 『우울과 몽상』을 다시 읽다가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 제목으로도 유명한 ‘아른하임의 영토’라는 작품에 나오는 문제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실제 세계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화폭 위에서 빛을 발하는 낙원을 발견할 수 없다. 자연 경치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에도, 언제나 결함이나 과도함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예술가들은 그러한 결함이나 과도함을 기술로 극복해 왔으며, 그 배열 방식은 점점 더 진보해 왔다. (100쪽)

 

다음 문장 중에서 어색한 내용을 찾아보라. 잘못된 문법에 의한 어색한 문장을 고르라는 건 아니다. 포의 작품이라면 절대로 언급될 수 없는 인물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클로드 모네’다. 클로드 모네라면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내가 인용한 문장은 화려한 낙원 풍경을 모네의 정원 그림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내용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포는 1809년 미국에서 태어나 1849년에 사망했다. 모네는 1840년에 태어났다. 생전에 포가 펴낸 단편소설집은 총 두 권이다. 1839년에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 1845년에 <이야기들>이다. ‘아른하임의 영토’가 두 권의 단편소설집 중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면 집필 시기는 처음으로 포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830년에서 1845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모네가 1840년 이전에 태어나 화가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소설 속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포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9년 전에 태어난 어린 모네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어째서 이 소설에는 클로드 모네라는 이름이 버젓이 언급될 수 있을까? 정말 작품의 원문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출판사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번역자의 실수일까? 포의 소설에서 엉뚱하게 모네가 언급되는 이 문제의 문장을 보면 볼수록 기분이 색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다. 다시 한 번 새로운 번역과 편집교정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클로드 로랭  「나르키소스와 에코가 있는 풍경」  1644년

 

 

 

작품의 원문을 읽어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생각으로선 ‘아른하임의 영토’의 화자가 언급하려는 화가는 혹시 클로드 모네가 아니라 ‘클로드 로랭’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클로드 로랭(1600~1682)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다. 로랭의 풍경화는 광활한 자연을 이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 속 화자가 말한 ‘빛을 발하는 낙원’에 가까운 그림이라면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가 적합하다. 화자의 친구 앨리슨이 소유하고 있는 비밀스럽고도 원초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른하임의 영토와 잘 어울린다.

 

금태섭 변호사는 『우울과 몽상』 서평에서 이 책이 원문과 반대되는 해석을 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소설 원문에 ‘클로드 로랭’이 맞는다면(혹은 다른 화가의 이름이라도) 번역자와 편집인이 생소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대중적으로 친숙한 풍경화가 ‘클로드 모네’로 둔갑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솔직히 원문을 읽지 않더라도 포의 작품에 절대로 ‘클로드 모네’가 언급될 수가 없다. 번역자와 해당 출판사 편집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로 그냥 받아들이면서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런 엉터리 번역으로 십 년이나 넘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개정을 하지 않은 출판사가 유감스럽다. 금태섭 변화사의 『우울과 몽상』 서평 제목처럼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다.

 

서지정보가 있는 책 뒤편 맨 끝에 ‘잘못 만들어진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우울과 몽상』은 번역자와 출판사에 의해서 잘못 만들어진 책이다. 더 나은 번역과 교정을 통해서 잘못 만들어진 책을 스스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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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4-09-0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도 이거 격하게 공감해요. 아주 오래전 함정과 진자 때문에 샀다가 번역 때문에 그냥 찢어버리고 싶더군요. 중고로 샀기에 망정이지. 생각해보니 알라딘 중고샵에서 처음 산 책이로군요.ㅠ ㅠ
아무튼 사이러스님 추석 잘 보내요~^ ^

cyrus 2014-09-06 20: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헤르메스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몇 년 전에 반값할인으로 구입했어요. 포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냥 꾹 참고 읽습니다. ㅋㅋㅋ 헤르메스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
 

 

 

 

 

 

 

 

뿌리서점 지하 내부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붙여진 故 장영희 교수의 칼럼. 뿌리서점 주인 어르신께서 필독을 추천한 ‘책에 대한 최고의 예찬’이다. 하지만 이 글의 핵심은 ‘책’이 아니다. 장 교수가 말한 '세 명의 왕자'는 이제 강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되었다. 그것은 창조교육을 강조한답시고 문학과 예술, 심지어 실용성과 거리가 먼 진짜 인문학을 소위 ‘돈 안 되는 학문’이라는 이유로 쫓아버리는 오늘날의 대학가 모습이기도 하다.

 

 

이 글이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에 수록되어 있는지 확인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이 글을 발견했다. 정말 좋은 내용의 칼럼인데 단행본에 소개되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세 명의 공주, 세 명의 왕자]

 

가끔 TV에 스타들의 멋진 집이 나온다. 으리으리하고 전망 좋고 아름다운 집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런데 거실은 물론 침실까지 구석구석 보여 주는데 집집마다 옷방은 있어도 서재는 없다. 서재는커녕 아주 작은 책꽂이나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삶의 풍경 안에 책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이다. 사방 벽에 책이 가득 꽂혀 있다면 아무리 비싼 가구나 대형 TV라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읽지 않을 책이라면 뭐 하러 꽂아 놓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윈스턴 처칠은 ‘책을 읽지 않으려면 그냥 냄새 맡고 만지고 쓰다듬기라도 하라’고 했다. 책을 읽지 않고 단지 제목만 보아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 속에 책이 존재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데 책을 읽는다 쳐도 요즈음은 실용서만 나돌고 인문학 서적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인문학’ 다음에 꼭 따라 나오는 말이 있다. 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고 돈이 나온다. 아니, 요새는 문학을 해야 밥도 나오고 돈도 나온다.

 

 

문학을 하면 밥과 돈이 나온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는 말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하버드대 졸업장도 아니고(그는 하버드대를 스스로 중퇴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아니고 내 어머니도 아니다.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거장인 그가 재미있는 말을 덧붙인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결코 컴퓨터가 책을 대체할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최고경영자(CEO) 중 70% 이상이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나왔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CEO들도 스스로 독서광이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원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금 정보시대를 지나 생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누가 더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누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느냐가 성패를 가름한다. 이제는 다섯 살짜리 꼬마도 컴퓨터 키 하나만 클릭하면 정보는 물밀듯이 쏟아진다. 정보 자체로 남는 정보는 전혀 쓸모가 없다. 누가 더 그 정보를 창의적으로 조합하고 디자인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 즉 누가 ‘플러스알파’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요즈음 학생들은 ‘영상세대’이다. 그만큼 책, 즉 종이라는 매개체를 거북해하고 무엇이든 스크린을 통해 해결하려고 든다. 하지만 TV나 인터넷 정보는 비판력을 기르기보다 두뇌의 수용성만을 조장할 뿐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 긋고 한 번 생각해 보고 아까 읽었던 부분 다시 찾아보고, 중간에 피곤하면 졸기도 하고…. 그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우리 학생들은 영어를 참 잘한다. 미국에서 살던 학생, 어학연수 갔다 온 학생은 물론이고, 영어권 나라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어도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은 말은 잘하는데 글쓰기는 못한다. 아니, 글은 쓰는데 영 생각이 없다. 작품 분석을 하라면 줄거리만 얘기한다. 나도 영어 가르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영어 능력은 단지 의사소통 기술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생각이 없는 사람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영어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라면 미국 거지들은 왜 거지이겠는가.

 

 

‘생각의 시대’ 창의력 교육 절실

 

그래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영어마을은 많이 생기는데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독서마을은 안 생긴다. 모두 다 공유하고 있는 정보에 창의적인 ‘플러스알파’를 더해서 정말 밥 나오고 돈 나오는 길을 찾는 법을 우리는 가르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세 명의 늙은 공주(문학, 사학, 철학)가 세운 나라를 이제는 세 명의 젊은 왕자(경영, 과학, 기계공학)가 통치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늙은 공주들을 무조건 늙었다고 쫓아낼 게 아니라 젊은 왕자들이 그들에게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야말로 진정한 미래가 있는 좋은 나라이다.

 

 

 

* 출처: 동아일보, 2007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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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1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장영희 교수님이 그립네요....
 

 

 

 

 

빠르면 이번 달 말에 MID출판사에서 정말 흥미로운 책이 출간된다. 아마도 그 책 제목에는 ‘젖가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성 독자라면 “어머나!”라고 살짝 얼굴이 붉어지면서 놀라고, 남자 독자는 벌써부터 어떤 내용이 있을지 호기심이 발동할 것이다. 그러나 제목만 가지고 야한 내용이거나 여성 가슴을 크고 아름답게 돋보이기 위한 미용 관련 도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젖가슴을 음란한 시선이 아닌 과학, 특히 진화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익한(?) 과학도서다.

 

처음으로 출판사 프리뷰어(Previewer) 활동을 하게 되었다. 프리뷰어란 책이 최종 형태로 나오기 전 상태, 즉 가제본을 읽고 원고, 편집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독자를 의미한다. 내가 읽어야 할 가제본이 바로 ‘젖가슴’에 관한 책이다.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가제 또한 ‘젖가슴’이다.

 

읽어야 할 책이 수두룩한데 오늘 가제본을 택배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아! 혹시 가제본 속에 ‘사진’이 있는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특히 남자 독자라면 이 책 속에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 제일 궁금했을 것이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동지들이여. 사진은 있다. 내가 받은 가제본은 흑백 사진으로 나왔는데 정식으로 출간될 때는 ‘올컬러’로 나온다. 기대하시라.

 

이 책 <젖가슴>은 사진만 좋은 건 아니다. 내용도 상당히 믿을 만하고, 남녀 독자 모두 알아두어야 할 가슴에 대한 최신 정보들이 가득하다. 일단 이 책의 주요 내용 중에 특히 눈여겨 볼 것이 바로 ‘모유’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유는 신생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영양분이 가득한 최고 물질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었던 상식을 반박한다. 이 책의 저자는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이름의 여성 과학자인데 자신이 키운 자식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유럽에 자란 아이들이 영양소 가득한 모유가 아닌 ‘독’을 먹고 자랐다고 주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여성의 진화학적 용도와 그 과정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내세우는데, 젖가슴이 성적 기능을 위해서 진화했다는 남성 중심적 가설을 반박한다. 남성 중심적 가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데즈먼드 모리스가 있다.

 

사실 프리뷰어를 신청할 때부터 나는 무조건 선정될 것 같은 자신감에 가슴에 관한 책을 알아보고 읽기 시작했다. 엉큼한 마음으로 읽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정말 가슴을 과학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젖가슴을 알기 위한 독서를 지적으로 돋보이려고 ‘공부’라는 단어를 써봤는데 어감이 이상하다. 젖가슴을 공부한다?)

 

 

 

 

 

 

 

 

 

 

 

 

 

 

 

 

그런데 ‘공부’의 의미로 독서를 시작한 것은 내 손을 가슴에 얹고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프리뷰어 선정 발표가 나기 전부터 데즈먼드 모리스의 <벌거벗은 여자>(휴먼앤북스, 2004년, 절판)와 나탈리 앤지어의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문예출판사, 2004년)를 읽기 시작했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은 현재 절판되는 바람에 전자북으로 구입해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알라딘ebook' 앱으로 읽기 시작했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여성 가슴을 양육과 성, 두 가지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본다. 그러나 ‘가슴’을 설명하는 장을 끝까지 쭉 읽게 되면, 그의 주장은 어느새 양육이 아닌 성적 기능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여성 가슴이 수유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점을 내세워 이를 진화 과정의 결함으로 본다. <젖가슴>의 저자 플로렌스 윌리엄스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 독자들에게는 모리스의 주장이 여성의 양육 기능을 폄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젖가슴>의 1장에 모리스와 나탈리 앤지어의 책이 잠깐 언급된다. 혹시 <젖가슴>이 정식으로 출간될 때 두 저자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여성 가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가면서 읽을 수 있다.

 

이제 읽기 시작한 상태지만, 정말 <젖가슴>은 남녀 독자 모두 읽어봐야 할 책이다. 내가 프리뷰어라고 해서 출간 예정인 책을 벌써부터 대놓고 홍보한다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가제본을 끝까지 읽어보고, 저자의 주장에 의문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서평에서 확실하게 언급할 것이다. 내 이견이 잘못되었으면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출판사로부터 부탁받고 서평을 쓰는 것처럼 프리뷰어 활동에 관련된 글도 대충 쓰고 싶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 미흡한 내용이 있으면 서평을 통해 둘 다 균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독자들이 좋은 책을 선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너무 책의 장점만 부각시켜도, 그렇다고 악의적인 의도만 가지고 단점만 부각시켜도 좋지 않다. 전자는 홍보성 짙은 서평에 가깝고, 후자는 몰상식에 가까운 서평이다. 그만큼 서평 쓰기가 쉽지 않다. 서평이 일차적으로 책을 읽은 나 자신만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이 곳 알라딘과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공개된다면 책에 관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특수적인 목적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서평 쓰기가 많이 활성화되어야 독자들이 저절로 책을 찾으러 서점으로 향한다.

 

<젖가슴>이 정식 출간되면 책 앞면에 프리뷰어로 활동한 30명의 이름이 나온다고 한다. 그 중에 내 실명도 있다. 내 이름 석 자가 부끄럽지 않게 좋은 책을 만들고,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열혈 독자가 되도록 열심히 ‘젖가슴’을 공부하겠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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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14-09-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가슴을 공부해야 하는 건가요? 선천적으로 학습되어 있는거 아니가? 그런 거라면 저도 같이 공부하고 싶네요.

cyrus 2014-09-04 13: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멜기세덱님. 저도 여성 가슴 정말 좋아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 가슴을 (남성들을 위한) 성적 기능으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이런 책들을 읽어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어요. 모유에 아기에게 좋은 성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요. MID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게 되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stella.K 2014-09-0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항상 널 보면 생각하는 거지만
아무래도 넌 출판 일을 업으로 하게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언제 또 프리뷰어까지..!ㅎ
난 가제본 별로라 프리뷰어는 좀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가제본이 저렇게 나오나 보지?
껍데기 누런 거 아니었나? 괜찮네...

여자 젖가슴 갖고 뭔 할 말이 많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남자고 학자라 할 말이 많은가 보군.
하여간 학자들은 별 것 다 연구해. 그지?ㅋㅋ



cyrus 2014-09-05 23:21   좋아요 0 | URL
페이스북에 출판사 공식 페이지가 많아요. 인터넷 카페처럼 비슷하게 신간도서를 홍보하고 있어요. 페이스북 접속이 시간 낭비일 때가 많지만, 최고의 장점이라면 알라딘보다 빠른 신간도서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요. 가끔 이런 활동도 알리곤 하죠.

책 표지는 아직 정해진 건 아니에요. 지금 표지안이 세 개인데 그 중 하나랍니다. 뒷표지는 여백이고요. 참고로 저 책의 저자는 여자랍니다. 그래서 가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어요. ㅋㅋㅋㅋ

saint236 2014-09-0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감이 이상하기는 버자이너 문화사도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저는 꿋꿋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가제본 판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더라고요...

cyrus 2014-09-05 23:2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세인트님. 다음번에 그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ㅎㅎㅎ 사실 그 책도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