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번역된 에드거 앨런 포의 유일한 단편소설 전집 『우울과 몽상』을 읽으면, 무성의에 가까운 번역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포가 발표한 모든 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장점만 아니었다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몇 몇 서평에 책의 번역에 대한 지적 사항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정판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중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수록한 『꿈을 빌려드립니다』가 새로운 표지를 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의 출판사는 『우울과 몽상』펴낸 ‘하늘연못’이다.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1996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올해 나온 개정판은 다시 한 번 번역을 새롭게 교정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1997년에 나온, 녹색 바탕색으로 된 개정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알라딘 서지정보에 소개된 초판 출간 시기가 제각각이다. 올해 개정판에는 1996년, 2006년에 나온 개정판은 200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개정판이 1997년, 2006년 그리고 올해 이렇게 세 번 나온 것이다.

 

이 정도 열정적인 출판 자세라면 『우울과 몽상』도 개정판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미국문학을 전공한 번역자가 새로 교정할 필요가 있다. 포의 대표작 ‘모르그 가의 살인’에 휘스트라는 체스 게임이 언급되는 부분을 완전히 누락한 점은 지금도 이 책에 있어서 최악의 번역으로 회자되고 있다. 두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번역체는 독서의 몰입감을 방해한다. 번역자는 포의 소설전집이 환상소설과 풍자소설이라는 보석이 빛을 발하기를 바라지만, 보석은커녕 오역의 불순물이 섞인 모조품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에 『우울과 몽상』을 다시 읽다가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문장을 발견했다.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 제목으로도 유명한 ‘아른하임의 영토’라는 작품에 나오는 문제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실제 세계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화폭 위에서 빛을 발하는 낙원을 발견할 수 없다. 자연 경치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에도, 언제나 결함이나 과도함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예술가들은 그러한 결함이나 과도함을 기술로 극복해 왔으며, 그 배열 방식은 점점 더 진보해 왔다. (100쪽)

 

다음 문장 중에서 어색한 내용을 찾아보라. 잘못된 문법에 의한 어색한 문장을 고르라는 건 아니다. 포의 작품이라면 절대로 언급될 수 없는 인물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클로드 모네’다. 클로드 모네라면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하다. 내가 인용한 문장은 화려한 낙원 풍경을 모네의 정원 그림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내용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포는 1809년 미국에서 태어나 1849년에 사망했다. 모네는 1840년에 태어났다. 생전에 포가 펴낸 단편소설집은 총 두 권이다. 1839년에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 1845년에 <이야기들>이다. ‘아른하임의 영토’가 두 권의 단편소설집 중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면 집필 시기는 처음으로 포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830년에서 1845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모네가 1840년 이전에 태어나 화가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소설 속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포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9년 전에 태어난 어린 모네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어째서 이 소설에는 클로드 모네라는 이름이 버젓이 언급될 수 있을까? 정말 작품의 원문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출판사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번역자의 실수일까? 포의 소설에서 엉뚱하게 모네가 언급되는 이 문제의 문장을 보면 볼수록 기분이 색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다. 다시 한 번 새로운 번역과 편집교정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클로드 로랭  「나르키소스와 에코가 있는 풍경」  1644년

 

 

 

작품의 원문을 읽어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생각으로선 ‘아른하임의 영토’의 화자가 언급하려는 화가는 혹시 클로드 모네가 아니라 ‘클로드 로랭’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클로드 로랭(1600~1682)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다. 로랭의 풍경화는 광활한 자연을 이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 속 화자가 말한 ‘빛을 발하는 낙원’에 가까운 그림이라면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가 적합하다. 화자의 친구 앨리슨이 소유하고 있는 비밀스럽고도 원초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아른하임의 영토와 잘 어울린다.

 

금태섭 변호사는 『우울과 몽상』 서평에서 이 책이 원문과 반대되는 해석을 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소설 원문에 ‘클로드 로랭’이 맞는다면(혹은 다른 화가의 이름이라도) 번역자와 편집인이 생소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대중적으로 친숙한 풍경화가 ‘클로드 모네’로 둔갑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솔직히 원문을 읽지 않더라도 포의 작품에 절대로 ‘클로드 모네’가 언급될 수가 없다. 번역자와 해당 출판사 편집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로 그냥 받아들이면서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런 엉터리 번역으로 십 년이나 넘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개정을 하지 않은 출판사가 유감스럽다. 금태섭 변화사의 『우울과 몽상』 서평 제목처럼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다.

 

서지정보가 있는 책 뒤편 맨 끝에 ‘잘못 만들어진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우울과 몽상』은 번역자와 출판사에 의해서 잘못 만들어진 책이다. 더 나은 번역과 교정을 통해서 잘못 만들어진 책을 스스로 바꿔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E-9 2014-09-0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도 이거 격하게 공감해요. 아주 오래전 함정과 진자 때문에 샀다가 번역 때문에 그냥 찢어버리고 싶더군요. 중고로 샀기에 망정이지. 생각해보니 알라딘 중고샵에서 처음 산 책이로군요.ㅠ ㅠ
아무튼 사이러스님 추석 잘 보내요~^ ^

cyrus 2014-09-06 20: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헤르메스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몇 년 전에 반값할인으로 구입했어요. 포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냥 꾹 참고 읽습니다. ㅋㅋㅋ 헤르메스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