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에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사진과 팔 할은 허세로 이루어진 글을 볼 수 있고, 눈이 민망해지는 자극적인 사진이 공유된다. 그래도 페이스북은 무익한 내용만 가득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하는 소셜 네트워크는 아니다. 그 속에서도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모임이 있다. 좋은 책을 서평으로 소개하고, 정기적으로 독서 토론 모임을 하는 그룹도 있다. 내가 가입된 독서 관련 모임 중에 ‘독사모’라는 비공개 그룹이다. ‘독하게 독서하는 모임’의 준말이다. 여기 독서 모임에 단 한 번도 참석해본 적이 없다. 거기에다가 독사모 회원들의 서평이나 독서 모임 소식들을 눈으로만 확인하는 유령 회원이다.
지난 주 금요일 밤에 독사모 그룹에 이런 글이 올려졌다. 잠깐! 글쓴이의 가명을 뭐로 하지? 그래, ‘그 녀석’이라고 하자. 절대로 글쓴이에 대한 악감정이 있어서 이런 가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냥 생각하는 단어가 ‘그 녀석’뿐이다. 요즘 ‘무한도전’에서 출연하지 않는 ‘그 사람’을 의미하는 가장 핫한 별명 아닌가.
그 녀석은 독사모 모임이 이름만큼 전혀 독하지 않다면서 처음부터 도발적으로 글을 시작했다. 자신은 독사모에 한 달에 책 100권을 읽는(!) 회원이 있고, 좋은 책 추천과 서평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독사모의 정체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른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 녀석이 원하는 독하게 독서하는 모습은 이런 것이다. 자신이 읽은 책의 서평을 남기고, 독자 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는 것. 결국, 그 녀석은 독사모 자체가 뜬구름 잡는 모임이라고 자체 평가했다.
그러자 또 다른 독사모 회원 한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그 녀석 당신이 원하는 좋은 책이 무엇이며 도대체 ‘controversial'한 책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나는 페이스북 그룹 안에 회원들끼리 댓글 논쟁을 주고받는 상황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분명히 이 문제의 글 하나가 불타는 금요일 겨울밤에 어울리는 화끈한 댓글 전쟁터로 변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 녀석이 어떤 답글을 남기는지 지켜봤다. 그런데 그 녀석은 답글을 남기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독사모를 은근히 까는 듯한 글을 남긴 채 스스로 그룹을 탈퇴한 것이다. 확실한 건 그 녀석은 독사모의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룹을 탈퇴했다. 그 녀석이 답글을 달면 나도 이 댓글 전쟁터에 참전하고 싶었는데 아무 일 없이 독사모의 평화는 유지되었다.
사실 나도 그 녀석이 생각하는 독하게 독서하는 기준이 무척 궁금했다. 특히 한 달에 책 100권 읽기에 관해서 묻고 싶었다. 그 녀석은 자신이 한 달 네이버 전자북 결제 이력이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한 달에 무려 1000권 정도의 전자북을 결제한다고 언급했다. 나는 그 녀석이 전자북을 결제한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그걸 다 읽기는 했었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전자북 결제 이력을 공개하려면 책 제목도 화끈하게 보여줘야 했다. 그 녀석이 그토록 선호하는 ‘controversial'한 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북 가격이 100원, 900원인 걸로 봐서는 그 녀석이 결제한 전자북이 어떤 내용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네이버 북스 앱스토어에서 100원, 900원으로 결제할 수 있는 분야는 장르소설이다. 전자북으로 만들어진 판타지, 무협 소설의 대여 가격 또는 구매 가격이 100원부터 300원까지 있다. 아니면 웹툰을 결제했는데 일부러 책을 샀다는 식으로 거짓말 했을 수도 있다.
그 녀석이 장르소설을 독하게 읽는 것을 잘못 읽었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다. 너무 장르소설에만 치중해서 읽는 편식 독서는 문제가 있지만, 그 녀석 본인이 이런 독서 자체를 즐기고 만족하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무턱대고 무시하거나 비난해선 안 된다. 본인이 어떤 분야든지 간에 독서 자체를 좋아하고 있다면 간섭하고 싶지 않다. 괜히 이런 책만 골라 읽느냐고 핀잔을 주면 상대는 그저 허세 덩어리가 잔뜩 낀 잔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그런데 내가 그 녀석에게 정말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 달에 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걸 자부심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전자북 결제 이력을 친절하게 인증샷으로 첨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인증샷을 올려봤자 그 녀석이 한 달에 책 100권을 읽는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 일 년에 책 100권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 달에 100권을 읽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것을 ‘근자감’, 즉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독서 토론을 위한 책이 꼭 양 극단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독서 토론은 책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상대의 의견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해서 반박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내 생각과 다르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여도 될 일을 ‘내 생각과 다르니까 너는 틀렸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라는 전투적인 마음으로 독서 토론을 하고 싶다면 정치나 사회 관련 토론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낫다. 그곳에서도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다. 다만 마음 단디해야 한다. 전투력과 방어력을 상승시켜 줄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즐비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그 녀석은 독서 토론에 직접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독서 모임에 가본 적이 있더라도 저런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은 상대 입장에서는 무척 피곤하다.
마지막으로 책 한 권 읽고 난 뒤에 서평을 써야만 완벽한 독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적인 생각이다. 한 달에 책 100권 읽고, 그 100권에 관한 서평을 썼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사진을 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독하게 책 읽는 훌륭한 자세일까. 하루에 소셜 네트워크나 여기 알라딘을 포함한 온라인 서점에 수많은 서평이 등재된다. 공개된 상태에서 작성된 엄청난 수의 서평들 중에 분명 누군가는 타인이 쓴 서평 한 편을 읽는다, 자신이 예전에 읽었던 책 서평이라면 상대방의 평가가 궁금해서 읽을 수 있고, 언젠가 읽어보고 싶은 책 서평을 발견하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어서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타인의 서평을 읽는다. 다만 서평이 모든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타인이 내 서평을 읽는 것이 원하지 않는다면 비공개로 설정해도 된다. 또 서평을 작성할 시간이 부족하면 안 써도 되고, 그냥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으면 안 써도 그만이다. 올바른 독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서평 쓰기가 의무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 선택이다. 앞에서도 내가 강조했지만, 책 읽는 행위 자체를 본인이 즐겁게 느끼고 있다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를 하고 있다는 마음의 증거이다. 독서 후 서평 작성에만 신경을 쓰이면 오히려 독서의 재미를 반감할 수 있다. 특히 한창 책을 읽어야 할 청소년들이 그렇다. ‘독서+서평=올바른 독서’라는 단순한 인식을 책 안 읽는 아이들에게 알려준다면, 글쓰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 ‘독서+서평=지루한 독서’라는 의도치 않은 답으로 유도할 수 있다.
나는 그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페이스북 계정을 확인했다. 자신이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몇 편의 추리소설 서평을 봐서는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혼자서 여러 권 책을 즐겨 읽다 보니 남들과 함께 책 한 권을 깊이 있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스스로 '고독한 애서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혼자 독서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책 한 권을 읽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독서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만의 방에 조용히 책 읽는 것도 좋지만, 되도록 광장에 나가서 여러 사람과 책을 읽는다면 책 속에 있는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인연도 만날 수 있다.
그 녀석이 남긴 글 덕분에 지금까지 내 독서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 속에 지식만 찾으려다가 그만 거기에 갇혀버려 빠져나올 수 없는 위험한 독서를 경계할 것. 고정 관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책 밖에 있는 사람마저 보이지 않는 어리석은 맹인이 된다. 독서 맹인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