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필적학이 범죄학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도둑질을 하기 전에 도둑을 체포할 수 있게 됩니다. 필적만으로 그가 물건을 슬쩍하는 이차 특질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그대로 유치장행인 거죠. 정말 환상적인 미래 아닙니까? 말씀드린 대로 이건 입증된 과학입니다.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카렐 차페크  「필적 미스터리」 중에서,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74~75쪽)

 

 

카렐 차페크의 소설 「필적 미스터리」에 나오는 필적학은 글씨체만으로 상대방이 도둑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허무맹랑한 가짜 학문이다. 범죄는 좋건 싫건 인간 활동의 한 부분이다. 사람 사는 곳이면 범죄는 반드시 있다. 그런 만큼 범죄가 왜 저질러지는지를 학문적인 연구가 시도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에 등장한 범죄이론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선천적인 범죄자, 이른바 ‘범죄형’은 하나의 정설로 믿었다.

 

 

 

 

 

 

 

 

 

 

 

 

 

 

 

 

 

롬브로소는 수많은 범죄자를 조사한 뒤 선천적인 범죄자의 얼굴을 가려내 발표했다. 그는 범죄자의 얼굴에서 원숭이의 특징을 찾으려 했고,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선천적인 범죄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원숭이의 특성은 큰 턱이나 튀어나온 광대뼈, 벌어진 엄지발가락과 같은 외모뿐 아니라 지독한 게으름이나 무책임성과 같은 성격까지 포함되는 것이었다.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은 당시 과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범죄 행위가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롬브로소의 주장은 편견이 가득한 위험한 이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도 막연히 범죄형 얼굴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견이 남아 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의 외모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롬브로소의 기괴한 논리는 여전히 통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편견과 권력을 만나 배제와 억압의 명분과 학문적 근거를 제공했다. 특히 편견과 권력이라는 나쁜 친구를 잘못 만나 고생한 과학자가 다윈이다. 처음부터 다윈은 이들과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윈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있다.

 

다윈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개념이 '적자생존'일 것이다. 강한 생물일수록 환경에 오래 살아남고, 반면 약한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다윈 진화론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설명으로 꼭 '적자생존'의 사례를 언급하거나 '적자생존' 이론을 다윈이 창안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거나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은 진짜 진화론이 아니다. 가짜 진화론이다. '적자생존=진화론'이라는 인식은 다윈과 전혀 상관이 없고, 진화론을 위험한 학문으로 치부하게 하는 치명적인 착각이다. 

 

 

 

 

 

 

 

 

 

 

 

 

 

 

 

 

'적자생존'은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만들었다. 펜서는 진화의 생존경쟁이 인간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이 소멸하는 것이 자연법칙의 순리라고 강조했다. 원래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여 변이를 거치는 과정을 '자연선택'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다윈과 함께 진화의 비밀을 발견한 앨프레드 월리스는 다윈에게 '자연선택' 대신에 '적자생존'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186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 5판에 처음으로 '적자생존'이 언급되었다.

 

다윈과 '적자생존'의 잘못된 만남은 훗날 제국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원흉이 되었다. 가만히 있었던 다윈은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고, 진화론은 자신이 생각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지고 말았다. 다윈의 고종사촌 프랜시스 골턴은 우수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를 늘리고 열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를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우생학을 만들었다. 다윈의 아들 레너드 다윈은 1911년부터 1925년까지 영국 우생학협회 회장을 맡았다. 히틀러의 인종 대청소도 우생학의 뒤틀린 결과다.

 

 

 

 

 

 

 

 

 

 

 

 

 

 

 

 

제국주의를 옹호한 사회진화론이나 인종주의를 정당화한 우생학은 피식민지에 가하는 사상적 폭력이다. 그들에게 굴복당한 피식민지 지식인들은 국력을 길러서 강해야만 살아남는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진보라고 믿었다. 제국주의 세계 질서를 지탱해준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비판 없이 이식받기 시작했다.

 

중국인 최초로 영국을 유학한 사상가 옌푸(엄복, 嚴腹)는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정리한 《천연론》(소명출판, 2008)을 썼다. 원래 옌푸는 스펜서의 책을 번역하려고 했으나 방대하면서도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천연론》 집필에 참고한 책이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산지니, 2012)였다. 그런데 다윈 진화론마저 몰랐던 옌푸는 헉슬리의 문장을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삭제했다. 중국에 소개된 헉슬리의 생각은 엉뚱하게도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 지식인들은 옌푸가 소개한 사회진화론을 다윈 진화론과 동등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생물 시간에 아이들은 진화를 강한 생물이 살아남는 자연의 원리라고 배우고 있을 것이다. 잔인한 자연의 원리를 비정한 사회를 정당하기 위해서 적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과학은 학문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덧칠된 과학주의다. 다윈을 믿고 따르던 동료 과학자들은 다윈의 위대한 생각을 널리 알리려는 열정이 너무 지나쳤다. 다윈이 생각했던 이론을 자신의 입맛대로 엉뚱한 방향으로 편집, 왜곡해버렸다.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 2013)를 쓴 양자오는 다윈의 진화론이 다윈주의로 변하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윈이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 A이고, A를 증명하는 과정을 a라고 한다면, a에서 새로운 B를 도출한 사람이 다윈주의자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B는 과학으로 볼 수 없는 다윈주의다.

 

 

 

 

 

아직 다윈주의는 죽지 않았다. 다윈을 나쁜 학자로 만들어 놓은 짝퉁 진화론으로 인해 유전자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선량한 사람을 사회적 약자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어설픈 논리가 되기도 한다.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에 관상으로 종북주의자를 구별하려는 한 편의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한다. 롬브로소가 무척 좋아하겠다. 과학주의와 관상의 조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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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티브이보면 어이없고 위험한 방송이던데 관상으로 자기들 맘에 안드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았나봐요
너무나 어이없네요

cyrus 2015-01-12 11:58   좋아요 0 | URL
김씨 `돼지`의 관상까지 본 적도 있어요. (북)조선 TV인 줄 알았어요.

해피북 2015-01-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섬뜩한 이야기예요 요즘은 개인의 논리로 세상을 판단해버리고 무서운 사건 사고가 생겨나고 말이죠ㅠㅠ아 그런데 유유 출판사 종의기원 읽어보셨나요? 양자오 저자가 좋아져서 읽어보려고 서점갔더니 책이 없더라구요-,.-

cyrus 2015-01-12 19:23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제가 가는 도서관에도 양자오의 책이 없어요.. ^^;; 양자오의 <종의 기원을 읽다>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쉽게 해설한 책이에요. 읽어보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