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여러 가지이다. 현대적 의미의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창한 사람은 라마르크이다. 이어 다윈이 종별 속성에 따른 자연 발달과 획득 형질의 유전을 골간으로 하는 라마르크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자연 선택’이라는 새 이론을 제시하면서 진화 연구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제창했다. 용불용설은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여 유전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여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용불용설은 진화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는 매우 폭넓은 가설이었지만 증거가 없어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다윈이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단서로 삼아 가시적인 증거를 추가함으로써 지금의 진화론으로 살아남게 됐다.

 

 

 

 

 

 

 

 

 

 

 

 

 

 

 

 

 

그런데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이미 누군가가 먼저 주장했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1794년에 <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을 통해 종의 변이 개념을 제시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1809년에 발표된 『동물철학』(지만지고전천줄, 2009)에 소개되었다.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출판사, 2013)의 저자 양자오는 다윈 이전의 진화론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라마르크의 학설을 반박하고 있지만, 자신보다 먼저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내용 중에 진화론을 처음 이해하는 독자에게 혼동을 주는 문장이 있다.

 

『종의 기원』을 펼치면 「이 책의 초판이 간행되기 전,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글이 나온다. 이 표제는 다윈이 이 책의 출간 전에 나온 학설을 정리하여 어떤 관점으로 종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바라봐야 하는지 정리했음을 의미한다. (양자오  『종의 기원을 읽다』 중에서, 69쪽)  

 

『종의 기원을 읽다』 69쪽부터 70쪽까지는 『종의 기원』에 수록된 ‘이 책의 초판이 간행되기 전,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줄여서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글 일부를 인용하면서 다윈이 라마르크를 인정하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최근에 한길그레이트북스 133번째로 새 번역으로 나온 『종의 기원』(한길사, 2014)을 읽은 독자라면 69쪽의 내용이 무척 의아할 것이다. 한길사판 『종의 기원』에는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오가 언급한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종의 기원』 제3판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문 앞에 실려 있다. 그래서 서문과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서로 다른 글이다.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진화 학설을 간략하게 정리한 개요에 가깝다. 두 글 다 본문 앞에 배치하고 있다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서 서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양자오는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을 『종의 기원』 서문이라고 썼고(원문을 번역한 역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자신이 인용한 글이 『종의 기원』 3판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종의 기원』을 읽지 않은 독자였다면 라마르크를 언급하는 다윈의 글을 『종의 기원』 초판에 있는 서문으로 오해할 수 있다.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간되었다. 다윈은 생전에 『종의 기원』을 내용을 거듭 고치고, 실험과 관찰로 발견한 사실을 추가하여 여러 번 개정해서 펴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개정 횟수만 해도 총 6번. 2판은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1860년에 나왔다. 책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자, 또 내용 일부를 수정하여 3판을 출간했다. 4판은 1866년, 5판은 1869년, 6판은 1872년에 나왔다. 한길사판 『종의 기원』은 1859년 초판이다. 송철용 중앙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은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책에 ‘종의 기원에 대한 학설 그 진보의 역사 간추림’이라는 글이 있는데 이것을 양자오가 인용했다. 현재 표지가 다른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이 총 3권이 있는데 내용과 편집 방식은 비슷하다. 다만 옥스퍼드 컬러판은 진화론을 쉽게 정리한 컬러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양자오의 착각은 이것뿐만 아니다. 그는 『종의 기원』 3판 개요에 라마르크의 견해를 먼저 주장한 할아버지의 책을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윈이 틀렸다고 주장한다.(『종의 기원을 읽다』 70쪽) 그러나 나는 양자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다윈이 할아버지가 쓴 책을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비록 개요 본문에 할아버지가 아닌 라마르크를 언급했지만, 자신이 쓴 주석에 할아버지가 쓴 책을 소개했다.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을 읽어보면 다윈의 주석을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이 할아버지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모른 체하는 못난 손자는 아닐 것이다.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옥스퍼드 컬러판)에 발견된 오류 하나. 진화론의 역사를 컬러 화보로 정리한 내용이 시작되는 첫 장에 그리스 신화 속 한 장면을 소개하는 작은 글이 있다. 아폴론이 에로스의 화살에 맞아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쫓아가 잡으려는 순간, 다프네는 신에게 월계수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다프네가 기도를 올린 신은 대지의 여인 가이아가 아니다. 즉, 가이아가 다프네를 월계수로 변신시킨 것이 아니다. 다프네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이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읽어보면, 아폴론이 싫은 다프네가 아버지인 페네이오스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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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13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마치 조선시대때 필사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듯 흥미로웠어요 거듭된 개정판과 개정판에의해 내용이 거듭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두 새롭구요 ^^

cyrus 2015-01-13 18:55   좋아요 0 | URL
끝까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용에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사실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를 끝까지 다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한데 제대로 된 개론서 몇 권 읽으면 충분히 이해가 될듯합니다. ^^

oren 2015-01-16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자오가 쓴 『종의 기원을 읽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책 소개글`을 읽오 보다가 그 가운데 일부 내용에 대해 `무척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있답니다. cyrus 님께서 이 글에서 지적하신 바로 그 부분이지요. 제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알라딘 책소개>에 나와 있는 그 내용을 여기에 덧붙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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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한 책을 집필하면서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와 얽힌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3장 다윈 이전의 진화론」에서 저자는 다윈 이전의 진화론으로 라마르크를 짧게 언급하고 다윈의 가족을 살핀 후 『종의 기원』의 제목이나 그의 논문 등에서 나타난 기묘한 점을 짚으면서 그가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에게 상당히 영향을 받았을 텐데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다윈은 자기보다 앞선 생물학자 라마르크에 대한 존경도 책 곳곳에 피력하고, 자기보다 먼저 자기와 유사한 글을 발표하려 했던 앨프레드 월리스에게도 관대했지만 정작 자신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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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동서문화사에서 나온『종의 기원』을 읽어 보면 거기엔 분명히 찰스 다윈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에 대해 `주석`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해 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제가 그 당시에 마침 쓰고 싶었던 글이 바로 cyrus님께서 이번에 쓰신 글과 엇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저는 그냥 별 생각없이 글쓰기를 포기하고 지나갔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글로서 밝히고 싶었던 내용`과 무척이나 닮은 글을 cyrus 님의 글에서 발견하게 되니 정말 묘한 생각이 들고 재미있다 싶어 이렇게 긴 댓글을 남겨 봅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왜 그토록 `진화론`과 닮았으면서도 결국 `폐기`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마도 제 생각으로는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설명이 가장 명쾌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철학자의 생각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구요. 결국 라마르크가 `희대의 실수`를 한 셈이었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제가 2년 전에 썼던 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시면 참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마침 그 글에는 찰스 다윈이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ㅎㅎ)
☞ http://blog.aladin.co.kr/oren/6067699


cyrus 2015-01-16 19:54   좋아요 0 | URL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군요. 지난주에 유유출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사실을 알렸어요.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답변이 왔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다윈의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찾아보기 쉽지 않았는데 Oren님의 글 덕분에 호기심을 풀 수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