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겨울날의 하얀 추억, 그 결정(結晶) 위에 수정(水晶)처럼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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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를 읽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1808~1879)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에는 대상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 기법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어둡고도 진실된 면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슈미트는 도미에의 회화적 기법을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근대회화의 선구자 또는 시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미술사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근대회화 또는 근대미술의 시점 역시 의견이 분분한데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립된 19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이 때 등장한 미술사조가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 미술을 지향하는 일명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자 했다.

 

 

 

 

클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 1872년

 

 

전통적인 회화기법과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색채ㆍ색조ㆍ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데, 특히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와 자연에서 순식간적으로 일어나는 인상을 포착하려고 했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본질은 서양미술의 뿌리인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방론의 원리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클로드 모네가  「인상 : 해돋이」를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서 출품된 시점, 다시 말하자면 인상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이 시기를 근대회화의 출발점과 동등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에두아르 마네  「팔레트를 든 자화상」 1879년

 

 

하지만 나는 근대회화의 진정한 선구자를 도미에, 모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위대한 작품을 먼저 남긴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이다. 마네가 1863년에 살롱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프랑스 미술계를 떠들석하게 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때야말로 근대회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마네는 도미에와 모네에 비해 제작 활동을 빨리 한 편이며 이들보다 먼저 유명세를 탔다. 모네가 1874년 인상파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에 비하면 마네는 이미 9년 전에 화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에서 보수적인 프랑스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도미에는 1830년에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의 삽화가 활동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지만 판화, 유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879년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년

 

 

재미있게도 마네는 인상파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다. 모네와 일부 화가들과의 약간의 교류만 있을 뿐 마네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살롱전 출품을 고집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기성회화를 압축하고 있는 살롱에서 그 당시 새로운 근대적 회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1863년 살롱전에 출품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당시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정장 차림의 두 남자들 사이에 한 여인이 벌거벗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그 도발적인 모습은 비평가들은 물론 관람객들까지 몹시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그림에 말할 수 없는 혹평이 쏟아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지만, 아카데미 풍의 작품들을 선호하던 19세기 중반의 보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 그림은 전통 양식에 대한 불손한 도전이자 보는 이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외설에 지나지 않았다. 살롱에서 낙선한 이후 마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은 '목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회에 선보여졌지만, 이번에는 대중들의 비웃음을 샀다.

 

이 그림에서 핵심은 나체 여인이다. 하지만 아카데미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가 아니라, 균형감 없는 몸매로 투박하고 천한 느낌을 주는 누드라서 우선 불쾌감을 주었다. 고전적인 누드화처럼 서 있거나 누워있지도 않고 제멋대로 앉아 있는 자세도 왠지 선정적이어서 호감을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여체의 모습이 아닌 사실적인 여인의 나체가 불쾌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장 차림의 신사들을 등장시킨,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구도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음란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파문을 몰고 왔지만, 실은 부르주아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면서 비난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견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춘을 즐기는 부르주아의 가식과 이중성에 대한 마네의 고발이라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구도 보다 화가의 의도라는 비평이 주를 이루면서 마네는 부르주아를 자극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따라서 당대에 이 그림은 매우 '부적절하고 위험한 욕구'를 지닌 그림으로 평가되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마네가 근대회화의 선구자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풀밭 위의 점심 식사」논란이 종식된 지 얼마 안 되어 마네는 자신이 그린 누드화 한 점으로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이슈의 중심이 된 그 작품이 바로 「올랭피아」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여성 누드의 스타일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출품한 지 2년 후,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는데 2년 전 논란에 맞먹을 정도로 대형 스캔들이 일어났다. 마네는 「올랭피아」를 제작하기 위해 과거 고전주의 화가들의 누드화를 참고했는데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티치아노(1488?~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앵그르(1780~1867)의 「그랑 오달리스크」등이 있다. 그러나 마네는 선배 화가들의 도상학적 주제를 참고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누드화를 선보였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마네 이전의 나체는 신화와 역사 속 인물인 비너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현실의 나체이기보다는 인간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추상적 존재의 나체상인 것이다. 마네는 이런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에서 남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동시대 여성의 누드화를 그린 것이다. 이상과 추상적 존재의 전통 누드화인 비너스와는 확연히 다른 세속적인 나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네는 현실 속 여성, 즉 매춘부를 통하여 차갑고 세속적인 프랑스 사회의 리얼리티를 선사했다.

 

이 두 작품 때문에 미적 양식을 고양하고 아름다움에 심취하려던 사람들의 심리를 거스르고 되레 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는 이유로 당대에 마네는 퇴폐적이고 불경스런 화가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회화 양식으로 인해 오늘날 그는 '최초의 근대 화가' 내지는 '현대 회화의 시조'로 평가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고전적 구조를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올랭피아」는 근대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야외 회화에 대한 마네의 선구자적 안목으로 인해「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모네보다 먼저 인상주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네는 신화나 관념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일상의 가치를 환기시키며 회화 전통과도 결별을 고했다. 그의 업적은 '근대회화의 혁명을 알린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해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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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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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놀이’라는 게임이 있다. 사회자가 신호를 보내면 즐겁게 춤추며 돌던 놀이의 참가자들은 개수가 하나 모자란 의자로 달려가 앉아야 한다. 의자는 하나씩 줄어들고, 결국 둘이서 하나의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거기서 즐거운 춤추기는 끝난다. 어릴 적 즐거웠던 의자 뺏기 놀이가 어른이 되면서 '경쟁'으로 인식된다. 마지막 의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봐야하는 것을, 어린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노조의 ‘의자 뺏기 놀이’는 끝났다. 그러나 너무나도 길었던 의자놀이에 최후의 승자는 없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모두 잔인한 상처만 남았을 뿐이다.

 

지난 2009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77일간의 옥쇄파업은 경찰의 강제 진압을 거쳐 노사가 해고자 일부를 무급휴직으로 돌리는 데 합의하면서 상황은 마무리됐다. 쌍용차 사태의 개요다. 시간이 3년 넘게 흐르면서 잊힌 기억을 되살린 건 ‘죽음 행렬’이다. 그 기간 쌍용차 관련자 중 22명이 사망했고, 그 중 12명은 자살했다. 파업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리해고란 경영이 악화한 기업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할 때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 정리해고하려면 사전에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며, 해고 50일 전에 해당자에게 알리고 고용노동부에도 신고해야 한다. 노동법은 근로자들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대신 사측엔 정리해고나 직장폐쇄 등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단체 등은 ‘해고는 일종의 살인’이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이에 대해 기업 측에선 정리해고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결국은 회사가 망해 모두가 피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쌍용차 문제는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고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회사와 그 종업원, 그리고 이 회사에 투자한 주주, 채권자들의 시각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쌍용차는 노사합의 사항을 이행하고, 적반하장격의 노조와해 시도를 멈춰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적극적인 치유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경영진에만 달린 게 아니다. 노사가 신뢰와 타협의 토대 위에서 힘을 합쳐 피와 땀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고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노동자들에게 내미는 일이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진행된 ‘의자놀이’를 대중과 언론은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처절한 목소리를 우리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이 워낙 강해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도록 이미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대기업에서 추락했다는 무기력증과 사회적으로 봉쇄됐다는 생각 등이 겹치면서 해고노동자들에게 이중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현존 국가와 자본의 구조가 갖는 폭력성과 그 비인간성도 문제이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미 공감의 능력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다. 쌍용차 사태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만 여긴다고 해서 공감이라고 할 수 없다. 감성에 매몰된 대중과 정치의 관심은 눈물 언저리만 맴도는 공감을 가장한 방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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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알라딘 블로그를 시작한 기간이 꽤 오래된 것도 아닌데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동률의 노랫말처럼 '2년만에' 다시 블로그 활동으로 하기 위해 돌아왔다. 2학기 막바지에 다다른 12월 학교 일정이 너무나 바쁜 탓에 급하게 오늘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신간도서 추천 페이퍼를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연말에 들어 글도 많이 안 쓴 것도 있고, 신간도서를 자주 확인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첫 신간평가 페이퍼는 소박하게 정말 읽고 싶은 두 권만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1.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 엘도라도  

 

'죽음'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가장 두려운 테제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이성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도 초월할 수 없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주제는 금기시되고 있다. 죽음은 우리들에게 대답할 수 없는 혹은 대답하기 불편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종교적 해석이나 심리적 믿음을 완전히 배제하고 논리와 이성의 측면으로만 죽음의 정의를 소개하고 있다. 죽음은 우리가 일상 안에서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시간적으로 제한된 존재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죽음 앞에서도 삶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일말의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 행복의 경제학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중앙북스 

 

내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전공(행정학과)과목 중에 '발전행정론'라는 것이 있다. 수강 내용 중에 세계화가 가져온 불행에 대해서 토론하고 공부한 적이 있었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증가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세계화가 가져온 또 다른 폐해는 천연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이다. 수입과 수출,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오염물질과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도 북부의 오지 라다크가 개발과 환경 파괴로 인해 무너지고 공동체가 분열되는 과정을 기록한 『오래된 미래』는 서구 산업사회에 경종을 울린 고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번 신간에서 세계화는 경쟁으로 우리를 불안하게하고 자원 낭비와 기후변화를 가속화했으며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규모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지역 공동체와 지역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똑같은 제품을 서로 낭비하면서 생산할 것이 아니라 문화와 종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문화생태학이 정한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오히려 세계적 차원에서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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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2-15 15:53   좋아요 0 | URL
우앗, 시루스님 안녕. 요즘 다시 뜸해졌네요. 방학했나요? 시험은 잘 봤고요? 쫌 와봐요!!!

cyrus 2012-12-15 19:54   좋아요 0 | URL
시험 끝나가요..ㅠㅠ 20일까지..ㅋㅋㅋ 얼른 시험 끝났으면 좋겠어요 ^^;;
 

 

 르네상스 미술의 정의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또는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15~16세기 유럽에서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술로 확대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미술과 문학을 재평가하였고, 해부학이나 투시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체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 봉건제의 몰락, 상업의 성장, 인쇄술․항해술 등과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의 등장 및 발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미술가들은 미술의 소재를 인간에서 구하여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등 세 사람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융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르네상스 미술

 

 

 

 

 

 

 

 

 

 

 

 

 

 

 

 

 

특히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가와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또한 이들이 피렌체에서 만나 서로 전문지식을 교류하면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 피렌체는 여러 학문과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예술가와 학자들을 아낌없이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메디치 가문의 혜안과 통찰력은 개방을 통한 ‘융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융합의 원리는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단순히 회화 한 분야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들의 융합을 통해 매우 독창적인 표현이 창출되었다.

 

 

 

 과학과 미술의 융합,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 1487년경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B.C. 80년경~B.C 15년경)의 저서를 접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다.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남성의 인체를 원과 정사각형의 선으로 둘러 그 안에 인체가 완벽히 합치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드로잉을 통해 인체 비례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과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에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담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훗날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인체를 만물의 척도로 바라보는 관점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로잉은 인간 중심의 과학이 예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보티첼리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출판되어 유행한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다. 총 4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첫 번째 그림, 1483년경

 

 

그림 속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스타조란 청년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크게 실의에 빠진다. 그림에는 두 명의 나스타조가 등장하는데 가장 왼쪽에 이제 막 숲에 들어선 나스타조는 젊은 시절 모습이고, 옆의 나스타조는 시간이 약간 지난 후 모습이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숲속을 산책하면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백마를 탄 기사가 칼을 들고 한 여자를 쫓아오고, 사냥개들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나스타조는 급한 대로 나뭇가지라도 들고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첫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두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여자는 땅에 쓰러지고 기사는 말에서 내려 그녀의 등을 갈라서 내장을 꺼낸다. 그리고 개들에게 그녀의 내장을 던져준다. 왼쪽에는 질겁하고 도망가는 나스타조가 있다. 그러나 나스타조가 목격한 장면은 환상이다. 그 여인이 살아있을 때 그 기사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 벌로 매일같이 기사에게 쫓기며 개들에게 내장을 뜯기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두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세 번째 그림, 1483년경

 

 

 

 

나스타조는 꾀를 내서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을 초대한다. 장소는 바로 잔인한 장면이 벌어졌던 그 숲이다. 어김없이 쫓기는 여자와 기사, 사냥개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스타조가 바라보는 여성이 짝사랑한 여자이고 둘은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즉 나스타조는 “너도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일종의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네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나스타조는 원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신부는 바로 왼쪽 테이블에 나스타조와 마주보고 앉아있다. (네 번째 그림)

이 그림은 원래 명문가의 부탁을 받고 그린 것으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신부를 위한 그림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이라도 참고 견뎌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의 도상을 중심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그림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적 삶의 교훈을 전달하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철학과 미술의 융합, 라파엘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의 '서명(署名)의 방'을 꾸미기 위해 철학, 신학, 시학(詩學), 법학 등 당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개 분야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벽화 제작을 라파엘로에게 주문했다. 그 중에 철학 즉 '인간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바로 <아테네 학당>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0~1511년

 

 

 

길이가 8m에 달하는 거대한 이 작품에는 54명의 고대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화면 중앙의 두 인물은 서구 문화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은 왼손에는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은 세계의 본질을 논하는 형이상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운 처신을 논하는 윤리학이다. 플라톤이 현상을 초월하는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상에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이 취한 자세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철인의 철학을 상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특징적인 상황설정과 함께 묘사했다. 주요 인물만 예를 들어보면,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녹색 옷의 소크라테스가 무리들 틈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고, 맨 앞줄 좌측에는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오른쪽에는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가 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와 고대 그리스를 서로 대응시켜 두 시대의 위인들을 향한 작가의 존경심을 표현하면서 고대의 부활에 의한 인문주의의 찬미를 드러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찾는 창조적 역량

 

최근 우리 사회에 각광받고 있는 키워드는 융합이다. ‘통섭’(統攝)이라 불리기도 하는 융합은 하나의 분야에 다른 것들을 접목하고, 섞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융합은 이미 수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피렌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융합의 사고를 지닌 인물을 ‘르네상스 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르네상스 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우리는 그를 미술가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천재적인 과학기술자로도 알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술, 수학, 물리학, 공학을 망라한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시대에 앞선 천부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융합의 사고는 꼭 학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해결해야 할 새로운 융합주제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어려서부터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줄 아는 훈련이 된다면 창조적 예술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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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혹시 <데카메론>을 읽었나요? 우리 같이 시작, 하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어보는 게 어때요? 혼자는 시작을 못하겠어요(!) 자주 와요. 자주!!!

cyrus 2012-11-23 18: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연말 학교 생활이 더 바빠서 글도 자주 올리지 못하게 되었네요. ^^;; 데카메론은 아직 안 읽어봤어요. 아이리시스님과 같이 읽는다면 당장 책 구입해서 읽을 수 있어요~!! 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11-27 00:59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내년에 해요ㅎㅎㅎ(미루기 대마왕!!)

cyrus 2012-11-27 11: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