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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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놀이’라는 게임이 있다. 사회자가 신호를 보내면 즐겁게 춤추며 돌던 놀이의 참가자들은 개수가 하나 모자란 의자로 달려가 앉아야 한다. 의자는 하나씩 줄어들고, 결국 둘이서 하나의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거기서 즐거운 춤추기는 끝난다. 어릴 적 즐거웠던 의자 뺏기 놀이가 어른이 되면서 '경쟁'으로 인식된다. 마지막 의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봐야하는 것을, 어린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노조의 ‘의자 뺏기 놀이’는 끝났다. 그러나 너무나도 길었던 의자놀이에 최후의 승자는 없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모두 잔인한 상처만 남았을 뿐이다.

 

지난 2009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77일간의 옥쇄파업은 경찰의 강제 진압을 거쳐 노사가 해고자 일부를 무급휴직으로 돌리는 데 합의하면서 상황은 마무리됐다. 쌍용차 사태의 개요다. 시간이 3년 넘게 흐르면서 잊힌 기억을 되살린 건 ‘죽음 행렬’이다. 그 기간 쌍용차 관련자 중 22명이 사망했고, 그 중 12명은 자살했다. 파업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리해고란 경영이 악화한 기업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할 때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 정리해고하려면 사전에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며, 해고 50일 전에 해당자에게 알리고 고용노동부에도 신고해야 한다. 노동법은 근로자들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대신 사측엔 정리해고나 직장폐쇄 등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단체 등은 ‘해고는 일종의 살인’이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이에 대해 기업 측에선 정리해고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결국은 회사가 망해 모두가 피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쌍용차 문제는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고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회사와 그 종업원, 그리고 이 회사에 투자한 주주, 채권자들의 시각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쌍용차는 노사합의 사항을 이행하고, 적반하장격의 노조와해 시도를 멈춰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적극적인 치유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경영진에만 달린 게 아니다. 노사가 신뢰와 타협의 토대 위에서 힘을 합쳐 피와 땀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고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노동자들에게 내미는 일이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진행된 ‘의자놀이’를 대중과 언론은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처절한 목소리를 우리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쌍용차 출신’이라는 낙인이 워낙 강해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도록 이미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대기업에서 추락했다는 무기력증과 사회적으로 봉쇄됐다는 생각 등이 겹치면서 해고노동자들에게 이중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현존 국가와 자본의 구조가 갖는 폭력성과 그 비인간성도 문제이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미 공감의 능력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다. 쌍용차 사태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만 여긴다고 해서 공감이라고 할 수 없다. 감성에 매몰된 대중과 정치의 관심은 눈물 언저리만 맴도는 공감을 가장한 방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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