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학기 성적표

 

 

 

 

 

 

 

 

 

 

 

  오늘 2011학년 2학기 최종성적이 공개되었다. 작년 학기도 열심히 공부한만큼 성적도 잘 나왔다. 원래 목표한 성적이 6과목 중에 4과목만 A+ 받는 것이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 교수님들 대부분 학점 짜게 주기로 학부생들 사이에서 알려졌는데 특히 2학기 때 수강한 <인사행정론>과 <행정통제와 개혁> 같은 경우에는 학부생들이 꺼려하는 과목으로 악명이 높았다.

 전자의 과목의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논술형 약술식 문제와 많은 내용의 답안을 요구하는 논문형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아무리 암기력 좋은 학생이라도 기껏 잘 해봤자 A, A- 정도 받는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유독 여학생들에게 성적을 잘 준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되는 유명한 교수님이었다.

 후자의 과목 역시 시험문제가 어렵기로 알려졌다. <행정통제> 교수님은 어떤 과목을 가르치든 항상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셨는데 학생 성적의 변별력을 위해서 몇 문제는 어렵게 내는 편이다. 간혹 공부했던 교과서에 없는 내용들이 보기에 나오는 문제들을 출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필자도 이 교수님 수업만은 많은 공부의 시간에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작년 2학기 성적은 예상외로 좋은 성적이 나왔다. 솔직히 <인사행정론>과 <행정통제>에서 이렇게 좋은 점수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문제의 두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4과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반대로 만만히 봤던 <복지행정론>에서 가까스로 B+이라는 학점을 받았다. <복지행정론>에만 A+을 받았으면 전 학기 최고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다. 

 

 

 

 

 국가장학금과 '반값 장학금'

 

 그래도 거의 3년 여만에 성적등수 1등을 하게 되었다. 2007년년도 1학기 때 1등을 시작해서 2학기 때는 5등 그리고 작년에 복학을 하여 2011년 1학기 때 2등을 했다.

 성적 1등 했다고해서 그것이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할수록 등록금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는 이전에는 성적우수장학금을 100% 주는 규정이었다. 1등은 등록금 전액이고, 2~3등까지는 등록금의 1/2, 1/3씩으로 지급되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전국 모든 대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 신청 의무화가 되면서부터 교내 성적우수장학금액 범위의 규정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지급하는 기존의 성적우수장학금은 70% 지급하되 나머지 30%은 국가장학금으로 수혜받게 되었다.

 국가장학금은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서 정부에서 만든 장학제도인데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작년에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반값 등록금 논의가 결렬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마련된 장학금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국가장학금 신청 의무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성적우수장학금액이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100% 혜택을 받던 성적우수장학금이 올해부터 갑자기 70%로 축소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국가장학금은 가계소득이 7분위 이내인 학생들에게 수혜를 받을 수 있는데 만약에 7분위 이내가 아닌 경우라면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사실 작년 12월부터 정부에서부터 언론, 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는 학생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국가장학금 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은 교내 모든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공지하였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게 되면 소득분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학교 측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국가장학금 수혜 신청한 학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부가 학교에서 지원하는 재정 혜택이 많아지게 된다.  

 필자가 다니는 D 학교 같은 경우에는 국가장학금 신청 공지사항이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12월 초에만 해도 그것을 신청하는 학생 수는 대략 1100여 명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대학교의 총 학생 수가 1만 명을 넘는다고 추산하면 국가가 지원하는 장학제도에 자발적으로 신청한 학생 수가 1천 여명에 불과한다는 것은 무척 적은 인원이다.

 국가장학금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적다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적어서 정부가 지원하는 등록금 충당 재원을 많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교의 대대적인 국가장학금 신청 홍보와 불신청 시 교내장학금 수혜 불이익이라는 경고(?) 덕분에 모든 전교생들이 국가장학금을 신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청을 한다해도 가계소득 7분위 이내에 들지 못하면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 바뀐 '성적우수장학금 70% + 국가장학금 30%' 제도에 대해서 학생들이 반발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원했던 학생들이 국가장학금 제도 때문에 '반값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장학금에 관련한 바뀐 규정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적우수장학금은 정말 열심히 학업에 노력한 학생들이라면 받고 싶어하는 장학금 중의 하나이다.  갑작스레 성적우수장학금이 수혜 범위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그동안 성적우수장학금 혜택을 받았다거나 그것을 목적으로 공부했던 학생들에게는 맥 빠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교내 게시판에 바뀐 장학금 제도에 대해서 몇 몇 학생들 사이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교내 장학복지팀 측에 의하면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예산 범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교내 장학금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적우수장학금의 예산범위를 변경했다고 밝혔다.

  

 

 

 

 롤즈의 정의 제2원리

 

 필자는 회계학적 지식이 무지한데다 이에 대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어떤 제도의 효과에 대해서 따져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이번에 바뀐 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서 옳은 건지 잘못된 것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혜택을 늘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제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환영한다.

 

 

 

 

 

 

 

 

 

 

 

 

 

 

 

 

 

 

 아직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만 교내 장학금 제도의 변경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존 롤즈가 말했던 정의의 제2원칙이 생각이 났다.

 롤즈에 따르면 정의의 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법칙'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상, 양심, 언론, 집회의 자유, 보통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 등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2원칙에서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하고 있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지위가 결부되어어야 함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등록금 문제를 롤즈의 정의 제2원칙 입장에서 비추어 본다면 학교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부담 완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성적우수장학금 예산범위 변경을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사실 이번 등록금 변경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의 이면 속에는 학교 내 재정력에 대한 불신도 반영되어 있다. 필자의 학교는 오래전부터 사학재단의 존재 때문에 말썽이 많았으며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교 증축 투자에만 추진한 것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지금도 사학재단의 무분별한 학교재원 사용으로 인해서 학교 재정이 파탄이 이르렀거나 재정 부실 학교로 전락, 퇴출되는 사례가 많다.

 학교가 재정력이 탄탄하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 필자의 학교는 아직 재정적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날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사학재단의 권한을 제재하지 않고 학교 재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게 되며 학교의 재정력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국가장학금 제도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모든 대학교에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것만 아니라 지원받은 대학교가 그 예산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자했던 반값등록금 논의가 물거품이 되었기에 국가장학금 제도가 등록금 마련에 제일 부담이 많았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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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알라디너들은 A+ 성적표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대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저런 성적표를 받을까요?
국가장학금이 현실에선 그렇게 적용되는군요.
울아들도 3월에 신청해봐야겠어요.

cyrus 2012-01-07 23:16   좋아요 0 | URL
올해 대학생이 되는 신입생들은 3월 2일부터 3월 15일까지
신청기간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국가장학금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꼭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장학재단'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오해할 수 있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국가장학금이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학교의 장학금 제도가 축소, 변경되는거
아닙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만 이례적으로 제도가 변경되었을뿐이지
다른 학교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장학금 수혜 범위를 확장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제가 다니느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답니다. ^^;;

이건 뭐,, 변경이라고 하기 보다는 장학금 축소에 가깝기 때문이죠..

잘잘라 2012-01-0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아- 저런 저런 저런 성적표는 정말이지 생전 처음 봐요. 못볼걸 본 기분이랄까. 흐흐흣 그나마 복지행정론 비뿔 아니었으면 cyrus님 외계인인줄 알았을겁니다. 크하하.

축하드려요. cyrus님^^

cyrus 2012-01-07 23:19   좋아요 0 | URL
포핀스님, 제가 작년까지만해도 2학년이었는데 사실 2학년 학생들 중에는
저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별로 없어요,
저희 과 3학년 같은 경우에는 1등이 올 A+인 4.5점을 받았고요...

제가 다니는 과가 야간인데 주간 학생들의 성적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주간 행정학과 2학년에서 1등에서 6등까지는 거의 학점이
4.0을 넘을 정도라니 성적우수장학금 받는게 어려렵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전쟁인거죠 ^^;;

제가 속한 야간 같은 경우에는 정말 4.0을 넘는 학생이 한 학년에 많아야 세 명 정도에요 ㅎㅎ

비로그인 2012-01-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역시나. 훌륭한 성적이 눈앞에 펼쳐지는군요 ^^

배경은 그린에 붕어빵.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배경이겠지만. 밝아보여서 좋습니다.
또한 학교 공부에, 책도 많이,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으시는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장학금 받게 되시는 것이지요? 우선은 축하 드립니다 !!!

cyrus 2012-01-09 19:36   좋아요 0 | URL
작년 1학기 때는 노력한만큼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2학기 때는 다행히도(?) 성과가 좋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말은 있어도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말이 없는 걸로 보니, 그 이상을 동시에 잡는다는게 쉽지 않은가봐요.
대학생활에 있어서 연애도 하면 좋을텐데 말이죠.
제가 복학하기 전에 바람결님이 저에게 연애 꼭 하시라고 바랬던
댓글이 기억나네요. 도서관에서 그저 공부만 하다보니
예쁜 여자 한 명도 보지 못하고 말았네요 ㅎㅎ ^^;;

세도나 2012-01-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와 같은 생각이시네요. 전 국가장학금 신청기간을 놓쳐서 이번에 교내장학금 반액 놓치게 될 사람입니다...;
시간있으시다면 제 글도 한번 읽어주세요...;제 블로그 입니다.
http://blog.naver.com/songsiw/70128511270
 

 

 

 뉴스나 신문을 보게 되면 정부 최측근 비리 사건과 관련된 소식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MB의 멘토', '방통대군'이라는 불리면서 정권의 언론통제를 주도해온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최측근 인사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비리 혐의를 받게된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과 방통위는 사실무근이라면서 부인을 하고 있지만 일단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한 이상 결과를 지켜봐야할 거 같다.

 

 작년 2학기 때 <한국정부론>이라는 수업을 듣었는데 그 때 기말시험으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관련하여 현 정부의 언론통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말시험이 '한국정부'에 대한 자유 주제에다가 오픈테스트 형식으로 치뤄진 것이라 '정부의 언론통제'라는 주제를 정해서 각종 신문기사와 참고문헌 속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약술형 시험은 논술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서론-본론-결론'식으로 쓰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약간 자랑을 좀 하자면 중간고사 때도 오픈테스트형으로 시험을 치뤘는데 그 때 쓴 글이 작년에 서재 블로그에 썼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두 개의 역사>였다.  나름 열심히 독서와 자료 수집 덕분인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점수가 잘 나왔다. 중간, 기말 모두 30점 만점에 둘 다 27점을 받았다. 내심 29, 30점을 받기를 바랬지만 27점도 그렇게 부족한 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꽤 높은 점수를 받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라고 생각한다. 결론에 이를수록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정부론>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한국정부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고 한국정부의 행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각설하고, 기말고사 시험 때 썼던 답안을 올려본다. 글 중에 잘못된 내용에 대해서 댓글로 지적하는 것을 환영한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이나 통제와 관련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전 정부보다 늘어났다는 응답이 줄어들었다는 응답의 5배에 이르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이나 통제가 이전 정부보다 늘었다는 응답이 45.1%, 이전보다 줄었다는 응답이 9.5%, 비슷한 수준이라는 응답이 29.4%로 조사됐다. ‘잘 모른다’는 응답은 16.1%로 나타났다.

 한국의 언론 역사는 언론통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언론은 유신독재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으며,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연행하고 고문하는 등 언론 자유를 억압했다.

 전두환 정권 때는 언론기관통폐합으로 1000명이 넘는 기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또 언론사의 등록을 문화공보부 장관이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언론기본법으로 언론통제의 기초를 마련하고, 일상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산하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했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정책은 ‘언론 장악·통제’‘보수언론 특혜’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언론특보인 김인규씨를 KBS 사장에 앉힌 것과 종합편성방송채널 사업자에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친여보수언론을 선정한 것은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언론장악은 '지배구조 개편-측근 낙하산 투입-비판 언론인 숙청' 수순으로 진행됐다. 첫 단추는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이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쳐서 신설된 방통위는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 어느 기관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했지만 정부는 합의제 기구에 독임제 성격을 가미해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씨를 수장으로 앉혔다.

 이후 언론장악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동의대가 KBS 이사인 신태섭 교수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하자 방통위는 신 교수를 KBS 이사에서 내쫓았다. 감사원은 KBS 특별감사에서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의 배임을 주장하며 해임을 권고했고 KBS 이사회는 권한에도 없는 사장 해임을 강행했다. 이병순씨와 김인규씨가 사장에 앉으면서 KBS에 정권 홍보·찬양 프로그램이 넘쳐났고 이에 반대하는 사원들에 대한 해고와 징계가 줄을 이었다.

 YTN은 방송특보인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이를 반대한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6명이 해직됐다. MBC도 김재철씨가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PD수첩」 등 비판적 프로그램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일상화됐다.

 언론통제는 5공화국 수준으로 강화됐다. 청와대는 사사건건 엠바고를 내세워 정당한 언론보도를 통제했고 기자단이 엠바고에 동의를 하지 않아도 출입정지 등 징계를 강행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보도 엠바고 파기 논란과 관련, 청와대는 부산일보 등 해당 언론사 출입기자의 등록 취소 및 범정부적인 제재를 강행하기도 했다.

 언론통제 와중에도 입맛에 맞는 보도를 일삼는 보수언론에는 ‘당근’을 내주었다. 친여보수언론 조·중·동에 방송사업권을 주기 위해 미디어법 개정안을 불법·탈법 논란 속에 날치기 통과시켰고 결국 지난해 말 조·중·동은 모두 종편 사업자에 선정됐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은 방송장악과 비판적인 신문의 통제로 여론시장을 독점하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에는 특혜를 베풀어 자발적 협조를 얻어내고, 비판적인 언론은 철저히 옥죄는, 이중적인 ‘프레스 프렌들리’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에는 정부광고를 주지 않았고, 특히 진보성향의 인터넷 언론의 경우 이 대통령 초청 편집국장단 간담회 등에 철저히 배제됐다.

 과거 정부들의 언론통제 사례를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정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언론을 강제로 통, 폐합을 한다거나 정부에 반하는 기사 내용들은 암묵적으로 삭제 및 탄압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제악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언론의 힘이 정치적 권력을 넘어서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현 정권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이념이라는 프레임으로 인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일명 ‘조중동’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비판하였고 반대로 진보적 관점의 ‘한겨레’ 또는 ‘경향신문’은 노무현 정권을 옹호라는 입장으로 기사를 전달, 서술하고 있다. 이념 대립의 양상으로 치닫는 언론의 행보는 지금의 MB 정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보수적인 MB 정부가 들어서게 되자 조중동은 현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적 입장의 언론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이렇듯 정권이 변화함에 따라 정권의 성격에 따라 언론의 입장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국민들에게 균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제약을 줄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편향적인 언론의 행보 속에 정부마저도 자신의 정당성을 보호해주고 옹호해주는 언론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중립적인 뉴스 전달이나 기사를 보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방송사 내에서 친정부적인 인사를 채용하는 점은 암묵적으로 언론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MB 정부의 친정부적 언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호의는 최근에 불거진 종합편성채널 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조중동의 영향력이 이제는 방송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문제는 MB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종합편성채널의 채널 번호 선정이 유리하도록 개입했다는 특혜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특혜 의혹 논란이 일어나자 최 위원장 본인은 종편 채널 번호 선정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여론의 비판을 무마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일으킨 불을 완전히 끄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국민들에게 균형적이고 올바른 방송을 전달하는 환경 여건을 조성해야 할 방통위원장이 정부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방송을 편성하도록 만든다면 언론뿐만 아니라 방송마저도 보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인 성향분석’, 불리한 기사에 대한 외압 행사, 비판적인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과 ‘소송 위협’,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동원한 공영방송 장악 시도 등등 과거 군사독재정권 뺨치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더 강력한 언론통제 수단을 찾으려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데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비협조적인 언론 환경’과 ‘홍보 부족’이 국정운영의 걸림돌이자 지지율 폭락의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비협조적인 언론을 협조적인 언론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사에 ‘전화’도 걸어보고, ‘소송 카드’도 꺼내보고, ‘대책회의’도 해보지만 이런 언론통제 시도가 계속 폭로되면서 국민의 비난 여론만 키우고 있다.

 

 ‘언론통제 시도→진실 폭로→여론 악화→더 강력한 언론통제 시도’로 이어지는 ‘프레스 프렌들리’ 정부의 언론통제 악순환이 야기되고 있는 언론통제의 문제점이 무척 심각하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언론과 정부를 ‘협조관계’로 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지지율 폭락이 ‘언론 탓’, ‘홍보부족 탓’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80년대식 언론통제가 통할 수 있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에 ‘쓴소리’를 하고 있는 진정한 비판언론들의 조언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가 감행하려는 언론장악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이를 막아내기 위해 통제, 감시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근본에서부터 위협당하는 현실에 대해 시민사회가 감시를 게을리 한다면 그 피해는 공동체 전부가 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개혁 진영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편법, 위법을 불사한 현 정부의 언론 장악은 이미 진행됐다. 정권의 홍보에 긍정적인 언론에게는 자유를, 이에 반하는 언론에게는 단호한 채찍을 통해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정부가 정보를 권력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존 언론 뿐 아니라 SNS의 폭발적 성장과 확장으로 인해 이제 정보는 통 안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재료의 성격을 벗어났다. 지금 정보는 수많은 관계망을 통해 유통되는 흐름 그 자체이며, 이에 대한 활용과 판단 또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자체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으려 하고, 이를 위해 공권력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되려 하고 있다. 이른바 통제를 통한 정보독재를 꿈꾸는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해 예상되는 민주주의의 훼손이 심각할 것이다. 오직 해법은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는 것뿐이다. 우선적으로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민주적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 참고도서

 

 

 

 

 

 

 

 

 

 

 

 

 

 

 

 

 

 

 * 참고기사

[YTN 사장 ‘날치기 통과’ 등 新권위주의 정부 ‘언론장악’]  경향신문 2008.7.17

[최시중 방통위원장 연임 확정 ‘MB식 언론장악’은 계속된다]  한겨레 2011.3.4

[툭하면 주의·권고… '공안 방송 통제' 도 넘었다]  부산일보 2011.8.5

[비판 언론 겁박하는 원칙 없는 사후 검열]  미디어오늘 2011.9.22

["최시중 위원장 압력에 조중동매 종편 '황금채널' 꿰차"]  프레시안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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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루스님은 공무원 시험 준비가 아닌 기자 시험 준비를 해야하는게 아닐까요? 지금부터 알라딘 활동도 열심히 하지만, 언론의 일반인 기자로 뛰어보는게 어때요?

그런데 한가지,
노무현 대통령 때 한겨레나 시사인, 경향에서 반드시 노무현 정부를 옹호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완전히 등을 돌리다시피 할 때도 많았죠. 그렇기에 노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후, 진보(?) 언론에서 무척 죄송해했구요.

여기에서 참 이율배반적인 생각인데,
보수의 반대편(진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이 탄생하면 진보 언론이 무조건 편들지 않고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치면 비판을 하죠. 그런데 보수 언론은 엄청 똘똘 뭉치잖아요,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분명 진보 언론이 잘하는건데, 그로 인해서 진보 및 중도의 힘이 흩어진단 말이죠. 그렇다고 잘못한 것을 무조건 잘했다고 하랄 수도 없고, 참 어려워요..

cyrus 2012-01-06 21:14   좋아요 0 | URL
기자로서의 직업은 한번도 생각해본적은 없어요. 기자도 체력이 요하는
직업인데 체력에서는 안될거 같아요 ^^;;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 언론의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군요, 그때는
제가 중딩이라서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라 제가 착각하고
있었네요. ^^;;
 

 

 

 

 

 "내가 브랜드니까"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에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제목이 '아내를 존경하게 된 순간'이라는 글이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아내를 존경하게 된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SNS를 캡처한 사진이 공개한 것인데 일본인이 트위터에 올린글을 캡처한 뒤 번역하여 소개되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일본인의 트위터 글에는 "어떤 술자리에서의 일. 명품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물어봐서, 아내가 했던 한 마디. ‘내가 브랜드니까’ 마음으로부터 아내를 존경한 순간이었습니다"라고 쓰여있다.

 짧은 말이지만 긴 여운이 감도는 글이다. 남편이 기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명품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재치있게 말한 아내의 임기응변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멋진 아내를 둔 남편이 부럽기도 하다.

 여성들은 남성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선물이 '명품 브랜드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선호하고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그동안 원했던 고가의 브랜드메이커가 있는 명품 백이나 구두를 사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성 176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고 싶은 설문조사에서 1위로 명품가방(38%, 67명)이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커플링, 향수, 귀고리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명품 가방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값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상대방이 어떠한 브랜드, 어떠한 디자인을 좋아할지에 대해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둔 남성 입장에서는 특별한 기념날이나 여자친구의 생일날이 다가올수록 두려워질 법하다. 오죽하면 선물을 사주는 것도 싫어하는 못된 마음도 가지게 된다.

 한 달 전 쯤에 SBS 라디오 '컬투쇼'에서 소개된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의류 및 액세서리 매장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직접 겪은 실화를 담은 사연이 많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어느 날 매장에 한 커플이 방문했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신용카드로 액세서리를 구입하게 된다. 사연을 보낸 아르바이트생이 남자에게 서명을 해줄 것을 요구하자 남자는 또박 또박한 글씨체로 '사주기 싫다'라고 적은 후 "영수증은 버려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남성들마다 입장에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와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이 남자친구로부터 고가의 명품 백을 선물 받기를 원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경제적 여건이 어느 정도 되며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값비싼 명품 백 하나는 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사준 값비싼 선물을 통해 자신 주변에 있는 여성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전형적인 심리다.  

 다만 남자친구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허영심만 채우기 위해서 값비싼 명품을 선물로 받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점이다. 그것은 진심어린 애정이 담긴 선물이 아니다. 선물이란 남자친구가 자신을 향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가늠할 수 있지만 단지 자신외면적인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한 물질적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품 백 하나 못 사주는 남자친구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직설적으로 무시를 한다거나 일방적인 이별통보 사유가 되기도 한다.  

 

 

 

 

 

 "내 브랜드는 내 아이들입니다"

 

 최근에 소개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아는 배려심이 강하고 똑똑한 현모양처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는 고대 로마의 전설에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일명 '대(大) 스키피오'라고 불리우며 포에니 전쟁을 통해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무찌른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인 코르넬리아다.

 세계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더욱이 그녀가 로마 공화정 때 농지개혁을 추진하다가 보수파 원로원들에게 살해당한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파도바니노 (추정) <그라쿠스 형제의 어머니 코르넬리아> 17세기경

 

 

 

 코르넬리아는 고귀한 성품을 지닌 여성으로서 고대 로마 여성의 완벽한 표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현모양처'라고 보면 될 듯하다.

 자신의 남편이 죽은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집안을 지켰으며 자녀의 교육에 헌신하였기에 그라쿠스 형제는 뛰어난 자질과 개혁적인 정열을 지닌 형제 정치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와 관련하여 그녀가 위대한 여성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지금도 전해내려 오고 있다.

 

  코르넬리아는 어린 그라쿠스 형제와 함께 친분이 있었던 귀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 귀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보석들을 과시하면서 손님인 코르넬리아도 가진 것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과시를 하게 된다. 그러자 코르넬리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아들들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보석은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

 

 

 코르넬리아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남편을 잃은 과부로서 평생을 살다 갔지만 위대한 로마의 영웅을 배출한 가문에 시집을 왔다고 해서 남들에게 과시를 하지 않았으면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보석이란 훗날 로마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하게 되는 아들들이었다. 코르넬리아에게 아들들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보석보다 더 오래토록 빛날 수 있으며 남들에게 그 위대함을 자랑할 수 있는 그녀만의 가치 있는 브랜드였던 것이다.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도 곱다

 

 지금까지 소개된 일본 트위터의 문구와 코르넬리아의 일화를 통해서 여자친구 혹은 아내를 두고 있는 남성분이라면 공감을 한다거나 그동안 여자친구와 아내에 대한 무심한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성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지금까지 여자친구라고는 한 번도 사귀지 못한 미혼남이지만 지금도 글을 쓰면서도 남녀 간의 사랑이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만약에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상도 남자가 자신의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일본인 아내가 처한 상황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고~~ 지X하고 자빠졌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입장을 이해해주고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크는 법이다. 하지만 애정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될수록 그런 입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볼 것도 다 본(?) 연인 관계라면 한창 사랑의 감정에 빠졌을 때의 느낌을 유지한다는 게 어렵다.

 남편이 아내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가 무능한 경제적 능력을 자신을 친구남편과 비교를 한다거나 '돈 적게 번다'고 잔소리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야!, 너!'와 같이 반말로 대화를 시작해서  "~해라"는 식의 명령조로 대화를 끝내는 것 그리고 '뚱뚱하다, 못생겼다'라는 식으로 외모를 핀잔줄 때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지속될수록 식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한 방법은 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담겨 있는 애정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연인,  자기만 가질 수 있는 브랜드로 보일 수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연인의 감정과 입장을 조금만 더 존중해주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다면 당연히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도 고와지게 된다.. 아내, 여자친구를 존경하게 되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녀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멋진 남편, 남자친구라는 아내, 여자친구만의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기사

 

[여자친구 선물로는…스테디셀러 `가방`]  한국경제 201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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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1-0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좋은 부모,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자녀' 과연 '좋은~ '이라는 말을 붙인 부모, 남편, 아내, 자녀 외에도 좋은 남자 친구와 좋은 여자 친구를 추가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좋은'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는 '훌륭한'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인데...이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위에 보이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마치 공중부양 중인 누군가의 뒷모습 같아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cyrus 2012-01-04 21: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좋은'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도 차이가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 유지할 수 있다고 봐요 ^^

노이에자이트 2012-01-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품백을 선물받고 싶은 여자는 많으나 명품백을 사 줄 능력이 있는 남자는 적다는 것...그게 비극이죠.

cyrus 2012-01-04 21:15   좋아요 0 | URL
수요는 많은 반면에 공급이 안 된다는거죠 ^^;;
 

 

 

 흑룡의 진실

 

 

 

 

 

 

 

 2012년을 여는 첫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올해 같은 경우는 유독 부산스러운 느낌이 든다. 임진년(壬辰年), 그것도 그냥 단순한 용이 아닌 60년 만에 온 흑룡의 해라고 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길하면서도 특별한 해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용이라는 동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십이지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구름과 비를 만들고 물과 바다를 다스리며 자유자제로 자신을 숨기고 또 변신할 줄 아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나 최상의 비상을 염원하는 고시 준비생들에게 “용꿈 꾸었지?”라며 용기와 희망이 담긴 격려의 메세지를 던져준다. 처지가 어렵다거나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크게 성공하여 걸출한 인물이 되었을 경우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용꿈 그리고 용의 상징은 진정 좋은 의미의 상스러운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하도 '흑룡의 해'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흑룡'이라는 게 정말 좋은 줄 알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기업들은 흑룡을 이용한 마케팅을 펼쳐 고객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용은 '흑룡'뿐만 아니라 백룡, 청룡, 황룡, 적룡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황룡, 청룡과 백룡이야말로 길한 의미를 지닌 반면에 흑룡과 적룡은 불운을 몰고 올 수 있는 '폭룡'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적룡은 반란을 주도하는 역신(逆臣)이라면 흑룡은 백룡도 이기지 못하는 반란을 도모하는 역장(逆將)이라고 한다.

 흑룡의 길한 상징만 부각되는 각종 언론과 기업 마케팅의 홍보 때문에 임진년 흑룡의 무서운(?) 진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다.

 흑룡은 우리 말로 하면 검은 용이다. 검정색에서 발하는 어두움은 부정, 불행과 연관되는 색이다. 그래서 언론과 기업 광고에서 홍보하고 있는 길운을 불러일으키는 흑룡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흑룡이 반란을 일으키는 역장을 의미한다고 했으니 길한 상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임진년에 일어난 역사적 변고

 

 실제로 과거에 흑룡의 임진년에는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다고 한다. 1232년에는 몽골의 제1차 침입으로 인해 고려의 도읍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고려는 또 한 번 몽골의 침입을 받게 되어 몽골와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2012년 종말설까지 다시한 번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2011년 말, 북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남북 관계 그리고 전쟁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어서 2012년의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1898년

 

 

 

 

 그런데 임진년은 과연 우리나라에만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던 것일까?  필자는 그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세계사 연표를 통해 임진년에 일어난 세계사적인 변고가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봤다.

 사실 오랜 세계사에 임진년에 일어난 변고가 일어난 해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임진년의 불운과 관련해서 눈길이 가는 흥미로운 연도가 있다면 바로 135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760년 전인 1351년에는 전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한 해이기도 하다.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의 사회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약 2천 5백만 명 정도의 유럽 인구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실제로는 흑사병 기간동안 일어난 학살들은 마녀사냥처럼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었다.

 흑사병은 유럽인들의 종교적인 사고에도 영향을 주어,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흑사병으로 심판하니 고행을 함으로써 죄를 씻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당시만해도 흑사병은 세계를 멸망하게 이를 수 있는 '신이 내려주신 무서운 형벌'이었다.

 

 

 

 

 새해 새희망 용솟음치는 해가 되기를... 

 

 요즘 흑룡의 해라고 떠들석하길래 '한 때'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용띠라고 여겨졌던 '88년 용띠'인 필자가 임진년의 흑룡에 대해서 글을 써보게 되었다.

 새해가 시작하는 마당에 2012년 첫 해의 글을 흑룡에 대한 불길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글을 보는 분들에게는 내용에 대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은 용기와 희망을 상징하며 힘차게 비상하는 동물로 믿어왔다. 용은 십이지신의 동물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활기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흑룡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들만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례들은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는 호사가들이 좋아할 법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용띠의 해에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의미있고 좋은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1952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고 해서 흑룡 임진년과 관련된 역사적 재난으로 보고 있는데, 1952년이 아니라 1950년에 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6.25 전쟁 발발 연도를 모르거나 착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내용과는 반대로 1952년에는 비록 휴전선이지만 2년동안 진행된 6.25 전쟁이 휴전할 수 있는 물꼬를 텄으며 필자가 태어난 1988년에는 6.29 민주화선언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렸으며 동시에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이다. 그리고 2000년에는 15년 만에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으며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글에 다룬 내용만 가지고 벌써부터 2012년에 대한 쓸데없는 기우(杞憂)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진년 올 한해는 모든 사람들이 잦은 용꿈으로 건강하고 늘 행운이 함께하는 다복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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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년이 용띠해였군요^^
전 그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ㅎㅎㅎㅎ
cyrus님의 해인만큼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랄께요!!

cyrus 2012-01-03 23:51   좋아요 0 | URL
현맘님도 건강하시고 좋을 일만 가득하길 바라요 ^^

이진 2012-01-0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룡이 그냥 이름만으로도 멋있고, 또 이미지화 하면 포스가 장난아니라서 그러는게 아닐까요 ㅎㅎㅎ 그런데 페스트라... 무섭습니다. 페스트 무척 흥미있어하는 사람인데 저 그 림은 무척 마음에 들어요

cyrus 2012-01-03 23:5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도 맨처음에 흑룡이 길한 상징이라고 해서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답니다. ^^;;

검색창에 '뵈클린'이라고 쳐보시면 제가 소개한 것 이외에도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화가는 '죽음', '환상'을 주제로 한
어두운 표현이 강한 그림을 그려서 유명합니다.

비로그인 2012-01-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밤에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을 보게 되는군요.
어떤 음반 표지에 나와 있던 그림이 생각납니다.

얘기하신 것처럼 흑룡하니, 좀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좋은 일이 좀 많았음 좋겠네요~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뵈클린의 그림을 표지로 쓴 음반이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레퀴엠 혹은 미사곡의 표지로
사용했을거 같아요 ^^;;

차트랑 2012-01-0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입니다. 더불어 추천도 한 방^^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

stella.K 2012-01-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내 큰 조카하고 나이가 같은 것 같아.
조카의 정확한 나이도 가물가물 하지만.ㅠ
그렇지 않아도 임진왜란을 생각했는데
올해가 참 의미가 많아 보이네.
잘 살게 되려나? 뿌잉뿌잉~ㅋㅋ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올해는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도 있고 올림픽도 있고요ㅎㅎ
벌써부터 2012년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요 ^^;;

맥거핀 2012-01-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상이 불순해서 흑룡 하니까 조폭만 연상되는데..흑룡파..;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ㅎㅎ 흑룡파라... 이름만 들어도 포스가 무시무시한데요 ^^
 

 

 

 베르테르의 외사랑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가슴 아픈 사랑은 겪어 봤을 법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어렵다. 10대든, 40대든 사랑은 정답이 없어 보이는 미로이다. 인간은 미로 속에 펼쳐지는 길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런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용기를 무릅쓰고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어 본다. 하지만 복잡한 미로 속에 헤매게 되면 영영 탈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위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미로를 즐긴다.

 알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싹 틔어 사랑의 감정으로 형성해보지만 자신의 반려자로 만들기에는 쉽지가 않다. 실연이라는 가슴 아픈 사랑이 낳은 결과를 경험했음에도 인간은 또 다른 상대로부터 사랑을 갈망한다. 미로 속에 갇히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로를 즐기듯이 사랑 역시 그런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했는지 측정하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겠다.

 UV'Who am I'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누군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누가 사랑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애매하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몰랐는데 정말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대방에 대한 일편단심적인 애정의 감정만 쏟아 붓다가 실패하고 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런 애정의 감정을 키워나가면서 반려자로서의 관계의 결실을 맺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봐야할지...

 필자는 살면서 전자의 입장만 경험해봤는데 이것 역시 ‘사랑’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개인적인 입장으로 봐서는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외사랑’ 쪽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지만 받아주지 않는 것이 외사랑이다. 상대방이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적인 사랑이다. 외사랑으로 인한 실연 역시 짝사랑의 실패처럼 가슴 아픈 결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극복하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십전팔기 끝에 성공하는 커플도 드물게나마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갈망하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가 쉽지 않다.

 

 

 

 

 

 

 

 

 

 

 

 

 

 

 

 

 

 

 

 

 

 외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불운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샤를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일 것이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주인공 로테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실의와 좌절 끝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비극적인 젊은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불행한 베르테르의 모습 속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 시절의 괴테뿐만 아니라 역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또 다른 인물이 투영되어 있다.

 제3의 인물이란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괴테는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다시피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예루살렘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베르테르의 모습이 젊은 괴테라면, 소설 결말부에 자살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듯이 오늘날에는 베르테르를 ‘사랑의 감정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무모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사랑도 실패해버린 인생 실패자’라는 평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테가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베르테르가 경험한 사랑은 젊은 시절 꼭 겪어야 하는 청춘의 일부분이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삶과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심지어 소설 속 베르테르가 입고 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를 모방하는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베르테르에 대한 동경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퍼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애독했으며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런 현상 덕분에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는 자살과 관련된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삽화 중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는 장면, 민음사판 pp 211)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내게 손수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pp 209~210)

 

 

 

 

 죽음의 철문을 두드리다니...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편지 속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의 갈망에 허덕이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결단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낭만주의자답게 사랑의 조건은 오직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간에 오히려 인간의 사랑을 제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합리적인 규범, 인습적인 제도 그리고 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베르테르의 자살은 결코 나약한 인생의 실패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죽음으로 승화시켜 이성에 갇혀버린 감정을 해방시킨 진정한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하이네의 낭만적 아이러니

 

 

 

 

 

 

 

 

 

 

 

 

 

 

 

 

 

 

 

 

 

 그러나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역시 독일 출신의 시인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아픈 경험을 괴테와는 다르게 좀 더 다른 입장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이네라고 하면 간결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애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쓴 서정시로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문학을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 역시 독일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문학가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낭만주의적 분위기와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낭만주의에 대해서 문학적 갈등관계를 맺었다.

 하이네의 <노래의 책>을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하이네의 문학을 ‘낭만적 아이러니’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의 전조에서부터는 환상, 감정 등이 포함된 낭만주의적 요소들로 표현하고 있지만 마지막에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파괴해버리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하이네는 아이러니를 통해 시를 구성함으로써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환상, 마술, 유령’ 등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미사여구의 허구적인 정체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매일 밤 꿈속에서 너를 본다.

다정히 인사하는 너를 본다.

그러면 난 엉엉 울면서 너의

사랑스런 발 앞에 쓰러진다.

 

 

너는 가엾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조그만 금발머리를 가로젓고,

너의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넌 살며시 내게 은밀한 말과 함께

측백나무 꽃다발을 건네준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꽃다발은 간데없고

네가 한 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 하이네 『노래의 책』‘서정적 간주곡’ 중 No. 56 , pp 150 -

 

 

 

 

 ‘서정시인’으로서의 하이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시가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낭만적 아이러니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시적 화자는 처음에는 낭만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서 슬퍼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혁 교수의 해설대로 하이네는 ‘낭만주의 세계의 허황됨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눈을 돌려 현실을 직시할 것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상과 현실 속에 갈등했던 하이네

 

 하이네가 이런 역설적인 감정으로 축약된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역시 괴테처럼 젊은 시절에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촌누이인 아말리에라는 여인을 사랑했었는데 그녀는 하이네의 애정공세를 무시하고 하이네보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하이네의 첫 번째 사랑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연이 남긴 정신적인 상처가 아물기 전에 하이네는 이번에 아말리에의 여동생인 테레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실패로 끝남으로써 다시 한 번 불행한 사랑의 실패를 겪는다. 두 번의 실연은 하이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으며 그러한 심리적 태도는 그의 시에 반영되어 있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실패한 사랑의 현실을 인식하여 일종의 환멸과 증오심으로 전환되는 결말을 택하기 위해서 아이러니를 구사했던 것이다.

 <노래의 책>은 1817년부터 1826년까지 하이네가 젊은 시절에 발표했던 시들을 모은 시집인데 여러 시 곳곳에서 젋은 시절에 겪었던 실패한 사랑가 남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밤은 고요하고, 골목엔 인적이 끊겼다.

이 집에 그 옛날 나의 사랑이 살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녀는 이 도시를 떠났지만,

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

 

 

거기 한 남자가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밀려드는 고통에 두 손을 비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두려움이 앞선다.

달빛에 드러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에.

 

 

이 도플갱어야! 너 창백한 친구야!

너는 무엇 때문에 그 옛날 많은 밤을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괴롭혔던

내 사랑의 고통을 흉내 내려 하느냐?

 

 

 

- 같은 책, ‘귀향’ 중 No. 20, pp 181 -

 

 

 

 

 

 

이 외로운 눈물은 무얼 바라는가?

나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나의 두 눈에

남아 있는 이 눈물은.

 

 

이 눈물에게도 한때 반짝이는

자매들이 있었지, 나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어둠과 바람으로

모두 흘러가버린 자매들이.

 

 

푸른 별들도 마치 안개처럼

흘러가버렸네, 그 옛날 내게

기쁨과 고통의 미소를 가슴에

선사해주었던 그 작은 별들도.

 

 

아, 나의 사랑마저도

덧없는 바람처럼 사라졌네!

너, 지난날의 외로운 눈물아,

너도 이제는 사라지거라!

 

 

- 같은 책, ‘귀향’ 중 No. 27, pp 186~187 -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그의 시 속에는 유독 여인 또는 자매가 등장하는데 자신에게 실연을 안겨준 아말리에와 테레제, 두 자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하이네를 ‘연애시인’, ‘사랑의 감정을 읊조릴 줄 아는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네에게 문학은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 수단이었다. 사랑 앞에서 순수한 감정을 두 번 죽어야했던 이 시인의 말 못하는 고통을 아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이네는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부터 감성으로 치우친 낭만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理想)이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하이네의 시 시계는 현실을 지향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독일의 정치, 사회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견지된 참여시의 창작으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태생이 낭만주의자였던 하이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이 내적 갈등을 겪은 듯하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는 지나간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과 동시에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서글픈 감정이 묻어나 있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대는 문학 속에서 언제나 젊게, 거의 매우 젊게 움직여온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채겠는가?  어느 한 작가가 우리의 눈앞에서, 모든 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같은 책, 머리말 중에서(1837년), pp 11 -

 

 

 

 

 

 머리숱에 흰 머리카락이 늘어날수록 하이네는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했다. 반면 자신의 문학적 대선배인 괴테는 죽을 때까지 ‘사랑은 열정’이라는 모토를 실천했다. (그는 평생 9명의 여성들과 애정 관계를 맺었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서 하이네는 괴테를 ‘영원한 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사랑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의 법칙에 순종하면서도 여전히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하이네의 역설적인(irony) 감정이 함축된 경구는 이제 막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이라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애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태양은 아직은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지만 결국에는 질 수밖에 없겠지!  (p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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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청춘의 사랑>....왜 이 구절이 맘에 콕~박히죠? ㅎㅎㅎ
잘 지내고 계세요? 공부는 시작하셨나요? 방학인데 공부를 시작하시려니...여러모로 부담이 되는건 아니신지.

뭐. 저야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곱씹고 있을 겨울이지만, cyrus님은 청춘의 사랑을 시작하셔야 하는 시절이 아닐까요? 공부도 좋지만요..^^

cyrus 2011-12-30 21:55   좋아요 0 | URL
아직 구체적은 계획은 없고요, 일단은 가볍게 컴퓨터 자격증 공부는
하고 있는 중이에요, 방학동안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해요^^
그런데 공부만 하기에는 사는게 너무 지루하고 답답할거 같아요,
현맘님 말씀대로 청춘의 사랑을 시작해봐야하는데 말이죠^^;;

stella.K 2011-12-3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천일의 약속을 다 봤는데,
남자 주인공 나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멋있긴 한데
결론은 사랑은 부서지는 거로구나 싶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겠는가 였다.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건강, 조건 뭐 이런 거 다 따지고 하는 사랑이잖아.
그거 없으면 말짱꽝이고. 그것 역시 사랑은 아닌데
부서져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ㅎ

cyrus 2011-12-30 22:00   좋아요 0 | URL
<천일의 약속>, 저는 그 드라마 보지는 않았는데 호응이 꽤 좋은가봐요.
여주인공인 수애가 불치병이라면서요, 제가 알기로는 새드엔딩이라는데
결국 김래원은 수애 죽는 날까지 사랑의 신의를 지켰는가 보군요.
그런 상황의 사랑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네요 ^^

stella.K 2011-12-31 11: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드라마 보고 말해.
처음에 그들도 뭐 어려울까 싶어 결혼했지.
그래서 사랑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겪어보지 않아도 절절히 다가와.
내가 드라마 많이 보진 않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란 생각이 들어.
김수현 작가 아무리 욕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손들었다.
뒷마무리만 잘 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뒤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도 100점 만점이 96점은 주겠다 싶어. 기회되면 함 봐. 수애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