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의 외사랑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가슴 아픈 사랑은 겪어 봤을 법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어렵다. 10대든, 40대든 사랑은 정답이 없어 보이는 미로이다. 인간은 미로 속에 펼쳐지는 길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런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용기를 무릅쓰고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어 본다. 하지만 복잡한 미로 속에 헤매게 되면 영영 탈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위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미로를 즐긴다.

 알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싹 틔어 사랑의 감정으로 형성해보지만 자신의 반려자로 만들기에는 쉽지가 않다. 실연이라는 가슴 아픈 사랑이 낳은 결과를 경험했음에도 인간은 또 다른 상대로부터 사랑을 갈망한다. 미로 속에 갇히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로를 즐기듯이 사랑 역시 그런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했는지 측정하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겠다.

 UV'Who am I'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누군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누가 사랑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애매하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몰랐는데 정말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대방에 대한 일편단심적인 애정의 감정만 쏟아 붓다가 실패하고 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런 애정의 감정을 키워나가면서 반려자로서의 관계의 결실을 맺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봐야할지...

 필자는 살면서 전자의 입장만 경험해봤는데 이것 역시 ‘사랑’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개인적인 입장으로 봐서는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외사랑’ 쪽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지만 받아주지 않는 것이 외사랑이다. 상대방이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적인 사랑이다. 외사랑으로 인한 실연 역시 짝사랑의 실패처럼 가슴 아픈 결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극복하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십전팔기 끝에 성공하는 커플도 드물게나마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갈망하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가 쉽지 않다.

 

 

 

 

 

 

 

 

 

 

 

 

 

 

 

 

 

 

 

 

 

 외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불운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샤를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일 것이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주인공 로테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실의와 좌절 끝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비극적인 젊은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불행한 베르테르의 모습 속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 시절의 괴테뿐만 아니라 역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또 다른 인물이 투영되어 있다.

 제3의 인물이란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괴테는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다시피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예루살렘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베르테르의 모습이 젊은 괴테라면, 소설 결말부에 자살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듯이 오늘날에는 베르테르를 ‘사랑의 감정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무모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사랑도 실패해버린 인생 실패자’라는 평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테가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베르테르가 경험한 사랑은 젊은 시절 꼭 겪어야 하는 청춘의 일부분이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삶과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심지어 소설 속 베르테르가 입고 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를 모방하는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베르테르에 대한 동경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퍼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애독했으며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런 현상 덕분에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는 자살과 관련된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삽화 중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는 장면, 민음사판 pp 211)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내게 손수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pp 209~210)

 

 

 

 

 죽음의 철문을 두드리다니...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편지 속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의 갈망에 허덕이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결단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낭만주의자답게 사랑의 조건은 오직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간에 오히려 인간의 사랑을 제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합리적인 규범, 인습적인 제도 그리고 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베르테르의 자살은 결코 나약한 인생의 실패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죽음으로 승화시켜 이성에 갇혀버린 감정을 해방시킨 진정한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하이네의 낭만적 아이러니

 

 

 

 

 

 

 

 

 

 

 

 

 

 

 

 

 

 

 

 

 

 그러나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역시 독일 출신의 시인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아픈 경험을 괴테와는 다르게 좀 더 다른 입장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이네라고 하면 간결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애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쓴 서정시로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문학을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 역시 독일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문학가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낭만주의적 분위기와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낭만주의에 대해서 문학적 갈등관계를 맺었다.

 하이네의 <노래의 책>을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하이네의 문학을 ‘낭만적 아이러니’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의 전조에서부터는 환상, 감정 등이 포함된 낭만주의적 요소들로 표현하고 있지만 마지막에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파괴해버리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하이네는 아이러니를 통해 시를 구성함으로써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환상, 마술, 유령’ 등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미사여구의 허구적인 정체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매일 밤 꿈속에서 너를 본다.

다정히 인사하는 너를 본다.

그러면 난 엉엉 울면서 너의

사랑스런 발 앞에 쓰러진다.

 

 

너는 가엾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조그만 금발머리를 가로젓고,

너의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넌 살며시 내게 은밀한 말과 함께

측백나무 꽃다발을 건네준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꽃다발은 간데없고

네가 한 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 하이네 『노래의 책』‘서정적 간주곡’ 중 No. 56 , pp 150 -

 

 

 

 

 ‘서정시인’으로서의 하이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시가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낭만적 아이러니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시적 화자는 처음에는 낭만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서 슬퍼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혁 교수의 해설대로 하이네는 ‘낭만주의 세계의 허황됨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눈을 돌려 현실을 직시할 것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상과 현실 속에 갈등했던 하이네

 

 하이네가 이런 역설적인 감정으로 축약된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역시 괴테처럼 젊은 시절에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촌누이인 아말리에라는 여인을 사랑했었는데 그녀는 하이네의 애정공세를 무시하고 하이네보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하이네의 첫 번째 사랑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연이 남긴 정신적인 상처가 아물기 전에 하이네는 이번에 아말리에의 여동생인 테레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실패로 끝남으로써 다시 한 번 불행한 사랑의 실패를 겪는다. 두 번의 실연은 하이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으며 그러한 심리적 태도는 그의 시에 반영되어 있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실패한 사랑의 현실을 인식하여 일종의 환멸과 증오심으로 전환되는 결말을 택하기 위해서 아이러니를 구사했던 것이다.

 <노래의 책>은 1817년부터 1826년까지 하이네가 젊은 시절에 발표했던 시들을 모은 시집인데 여러 시 곳곳에서 젋은 시절에 겪었던 실패한 사랑가 남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밤은 고요하고, 골목엔 인적이 끊겼다.

이 집에 그 옛날 나의 사랑이 살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녀는 이 도시를 떠났지만,

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

 

 

거기 한 남자가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밀려드는 고통에 두 손을 비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두려움이 앞선다.

달빛에 드러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에.

 

 

이 도플갱어야! 너 창백한 친구야!

너는 무엇 때문에 그 옛날 많은 밤을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괴롭혔던

내 사랑의 고통을 흉내 내려 하느냐?

 

 

 

- 같은 책, ‘귀향’ 중 No. 20, pp 181 -

 

 

 

 

 

 

이 외로운 눈물은 무얼 바라는가?

나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나의 두 눈에

남아 있는 이 눈물은.

 

 

이 눈물에게도 한때 반짝이는

자매들이 있었지, 나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어둠과 바람으로

모두 흘러가버린 자매들이.

 

 

푸른 별들도 마치 안개처럼

흘러가버렸네, 그 옛날 내게

기쁨과 고통의 미소를 가슴에

선사해주었던 그 작은 별들도.

 

 

아, 나의 사랑마저도

덧없는 바람처럼 사라졌네!

너, 지난날의 외로운 눈물아,

너도 이제는 사라지거라!

 

 

- 같은 책, ‘귀향’ 중 No. 27, pp 186~187 -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그의 시 속에는 유독 여인 또는 자매가 등장하는데 자신에게 실연을 안겨준 아말리에와 테레제, 두 자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하이네를 ‘연애시인’, ‘사랑의 감정을 읊조릴 줄 아는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네에게 문학은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 수단이었다. 사랑 앞에서 순수한 감정을 두 번 죽어야했던 이 시인의 말 못하는 고통을 아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이네는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부터 감성으로 치우친 낭만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理想)이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하이네의 시 시계는 현실을 지향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독일의 정치, 사회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견지된 참여시의 창작으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태생이 낭만주의자였던 하이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이 내적 갈등을 겪은 듯하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는 지나간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과 동시에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서글픈 감정이 묻어나 있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대는 문학 속에서 언제나 젊게, 거의 매우 젊게 움직여온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채겠는가?  어느 한 작가가 우리의 눈앞에서, 모든 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같은 책, 머리말 중에서(1837년), pp 11 -

 

 

 

 

 

 머리숱에 흰 머리카락이 늘어날수록 하이네는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했다. 반면 자신의 문학적 대선배인 괴테는 죽을 때까지 ‘사랑은 열정’이라는 모토를 실천했다. (그는 평생 9명의 여성들과 애정 관계를 맺었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서 하이네는 괴테를 ‘영원한 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사랑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의 법칙에 순종하면서도 여전히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하이네의 역설적인(irony) 감정이 함축된 경구는 이제 막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이라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애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태양은 아직은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지만 결국에는 질 수밖에 없겠지!  (p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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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청춘의 사랑>....왜 이 구절이 맘에 콕~박히죠? ㅎㅎㅎ
잘 지내고 계세요? 공부는 시작하셨나요? 방학인데 공부를 시작하시려니...여러모로 부담이 되는건 아니신지.

뭐. 저야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곱씹고 있을 겨울이지만, cyrus님은 청춘의 사랑을 시작하셔야 하는 시절이 아닐까요? 공부도 좋지만요..^^

cyrus 2011-12-30 21:55   좋아요 0 | URL
아직 구체적은 계획은 없고요, 일단은 가볍게 컴퓨터 자격증 공부는
하고 있는 중이에요, 방학동안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해요^^
그런데 공부만 하기에는 사는게 너무 지루하고 답답할거 같아요,
현맘님 말씀대로 청춘의 사랑을 시작해봐야하는데 말이죠^^;;

stella.K 2011-12-3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천일의 약속을 다 봤는데,
남자 주인공 나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멋있긴 한데
결론은 사랑은 부서지는 거로구나 싶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겠는가 였다.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건강, 조건 뭐 이런 거 다 따지고 하는 사랑이잖아.
그거 없으면 말짱꽝이고. 그것 역시 사랑은 아닌데
부서져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ㅎ

cyrus 2011-12-30 22:00   좋아요 0 | URL
<천일의 약속>, 저는 그 드라마 보지는 않았는데 호응이 꽤 좋은가봐요.
여주인공인 수애가 불치병이라면서요, 제가 알기로는 새드엔딩이라는데
결국 김래원은 수애 죽는 날까지 사랑의 신의를 지켰는가 보군요.
그런 상황의 사랑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네요 ^^

stella.K 2011-12-31 11: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드라마 보고 말해.
처음에 그들도 뭐 어려울까 싶어 결혼했지.
그래서 사랑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겪어보지 않아도 절절히 다가와.
내가 드라마 많이 보진 않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란 생각이 들어.
김수현 작가 아무리 욕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손들었다.
뒷마무리만 잘 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뒤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도 100점 만점이 96점은 주겠다 싶어. 기회되면 함 봐. 수애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