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 평전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 이광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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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엥겔스의 러브스토리  

컴퓨터를 켜면 항상 찾는 곳이 있다. 알라딘 서재와 가입되어 있는 출판사 공식 카페 두 군데.  

이런 온라인 공간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이라기보다는 적지 않은,,, ;;;;) 사람들 덕분에 인생 공부를 하게 되고 이전에 접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알라딘 서재와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인생 선배인 동시에 독서 선배인 분들을 통해서 좋은 책을 알게 되는 횡재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13929 

 

W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카페 매니저분께서 쓰신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 리뷰를 읽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엥겔스가 참 멋지다고 적으셨다.   

       '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 , , , ? '

엥겔스라면, 마르크스와 함께 세계 흐름의 판도를 뒤바꾼 저서 <공산당 선언>을 쓴 사상가 아닌가.  유명 인사들의 러브 스토리는 그들의 사상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부르짖은 혁명가답게 불꽃 같은 열정의 사랑을 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뷰를 읽은 것에 대한 댓글을 적으면서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 살짝 궁금하다고 적었을 뿐인데, 매니저님은 친절하게, 그것도 너무 상세하게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답글로 무려 4개나 달아주셨다.  (<야성의 사랑학>의 구절을 인용하면서까지, , , 이 글에 소개되는 엥겔스 이야기는 <엥겔스 평전>의 내용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젊은 엥겔스는 영국의 맨체스터에 위치한 방적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메리 번즈라는 여성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는 당시 사회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엥겔스는 방적공장의 사장인 부르주아였으며 메리 번즈는 그 방적공장 안에서 방적 기계나 다름 없었던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였던 것 이었다.  이들의 만남에 대해서 기성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간혹 메리 번즈를 대동하기도 했었는데, 주위 부르주아들 입장에선는 심기가 불편했다.  돈 많은 자본가가 거지나 다름없는 노동자와 사귀고 있으니 , 당연히 좋게 볼리가 없었다.  설상가상,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이들의 교제는 환영받지 못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이 적대시하는 부르주아의 위치에 서 있기도 하였다. 이렇다보니 이전부터 부르주아 방적 사장이 프롤레타리아 여성 노동자를 꼬셔서 사랑 놀음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의 절친한 동지인 마르크스마저도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를 무척 껄끄러워 하였다.  유대인의 피에서 흐르고 있는 도덕적 엄격성을 지닌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엥겔스가 여자친구를 대동한다는 것은 격식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눈치에 엥겔스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결국, 메리 번즈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밤에만 몰래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엥겔스는 단지 그녀를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교제를 통해 부르주아 자본가들에 의해 비참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 역시, 엥겔스의 사상에 동조하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였다.  

 

 

  엥겔스의 이중생활  

이 분의 엥겔스에 대한 댓글을 읽고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트리스트럼 헌트의 <엥겔스 평전> 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때마침, <엥겔스 평전>이 출간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다.  목수정의 에세이집 <야성의 사랑학>에서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만 소개되어 있지만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봐서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이번에 나온 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상가에 대한 자질구레한 삶의 기록들이 세밀하게 공개하고 있다.  엥겔스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마르크스이다보니, 이 책에서는 엥겔스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실생활 역시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실, 내가 이 600페이지 정도 되는 엥겔스의 일대기를 읽어보고 싶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면서도 왜 부르주아 자본가 생활을 해야했던 것일까?' 

앞에서 소개된 엥겔스의 러브스토리를 읽어보신 분들도 한 번 이런 궁금중이 일어났을 것이다. 메리 번즈와의 교제가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모임, 둘 다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역사적인 인물의 은밀하고도 이중생활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적인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대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존경하고 선호하던 위인이 알고보면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어느 위대한 인물을 그린 ' 평전 ' 이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  ' 평전 ' 이라는 장르에는 한 인물의 일생에 대한 저자 자신의 평론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난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생을 가지고,  ' 좋다, 나쁘다' 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며 그들처럼 우리 역시 이중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평전에 대한 평가는 우리 스스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가 되어버리는 꼴이다.  

사실, 엥겔스는 부유한 자본가 출신이다.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화려하고 풍족한 부르주아 생활의 매력을 엥겔스라는 사람 역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과 당구를 즐겼고, 그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체셔 여우사냥 대회였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의 기록에는 엥겔스가 얼마나 여우사냥을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 그는 말을 정말 잘 탔고, 여우사냥용 말을 따로 갖고 있었다. 지역 신사와 귀족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기수 전원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는 한 번 도 빠진 적이 없었다. " 

 - <마르스크 평전> p 347 -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빛나게 해준 2인자 엥겔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엥겔스는 ' 방적공장 사장 엥겔스 ' 로 죽지 않았다. 부르주아적 유흥과 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의 사회 건설에 대한 염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영국의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급진적인 아들의 성격을 고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보수적이면서도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적인 삶을 강조하는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엥겔스 역시 한 때,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가업에 대한 수련을 쌓았지만 아버지 몰래 사회 개혁에 대한 사상의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짓눌리고 있는 억압적이면서도 엄격한 가풍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오죽했으면, 아버지에 대한 엥겔스의 기록에는 아버지를 돈만 밝히는 속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년시절의 엥겔스의 모습은 단란한 분위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엥겔스 본인의 기록에서는 아버지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이 방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엥겔스의 사회개혁에 대한 꿈을 키워주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방적공장 사장으로서의 엥겔스는 부르주아 세계의 매력을 헤어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수입을 마르크스의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가족을 재정 지원해주었다.   엥겔스의 든든한 재정지원 덕분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엥겔스는 자신의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기보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인정해주었고, 그의 사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와의 관계에 대한 은밀한 사실(?)들은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학문적인 동지 이상정도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엥겔스에게는 마르크스는 친척이나 다름 없었으며 마르크스의 딸들 역시 엥겔스를 천사표 '둘째 아버지 ' 라고 표현할 정도로 엥겔스와 마르크스와의 돈독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마르크스에 대한 엥겔스의 우정도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마르크스에게는 자신의 가정부와의 불륜이라는 좋지 않은 과거와 자신의 사생아를 냉정하게 홀대한 좋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이 사생아의 친부임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해줘야만 했으며 숨을 거두기 전에 마르크스의 친딸에게 숨겨왔던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만약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만나지 못했더라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라는 이름 역시 세계사 교과서에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마르크스보다는 인지도가 낮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르크스라는 존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엥겔스의 노고 덕분이었다. 

 

  엥겔스의 은밀한 매력

여타 인물들의 평전을 읽고난 뒤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엥겔스와 같은 훌륭한 인물도 결국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를 밝힌데다가 부르주아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여우 사냥을 엄청 좋아하는 엥겔스의 모습은 그 역시 남성적인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를 자신의 사상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 속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생을 즐길줄 아는 멋진 속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꼭 이런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서도, 성적만큼은 우수한 학생말이다.  이런 학생은 놀 땐 놀 줄 알고, 공부할 때는 확실히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 멀티플레이어' 학생들을 보면 무척 얄밉게 생각한다.

엥겔스의 인생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멀리플레이어' 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앵겔스는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결국, 꾸준한 노력은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주의의 틀을 확립한 사상가로 자리잡았다.  마르크스는 평생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연구에 몰두하였지만, 엥겔스는 밤새도록 놀면서도 자신이 해야하는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였다.  나름 터프한 성격의 마르스크 입장에서는 엥겔스의 이런 모습이 속으로 무척 얄미웠지도 모른다. 우리가 ' 멀티플레이어' 학생을 은근히 질투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엥겔스의 이런 이중적이고 은밀했던 삶을 질투한다거나 혹은 생각했던 것만큼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엥겔스가 참으로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낮에는 유흥을 즐기줄 아는 플레이보이, 밤에는 사회개혁을 위한 사상 연구에도 전념할 줄 아는 모범생이 될 줄 알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겸손히 여기줄 아는 엥겔스는 참으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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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이건 뭐 700여쪽에 달하는 평전을 다 읽은 듯합니다. 재미있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만큼이나 반딧불이님도 많이 관심이 가는 책이었는데,,
제 글이 반딧불이님에게 스포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직접 읽어보시면 이 글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으실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평으로 미루어 보건대 헌트는 엥겔스에게 반한 모양입니다.

소련 맑스 레닌주의 연구소의 엥겔스 전기는 국역본으로 두 권 합해서 750쪽이 넘습니다(이건 구하기 힘듭니다.저는 운좋게도 10년 전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만).그래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 전기보다는 읽기가 더 낫더군요. 맑스 엥겔스 공동전기로 동독의 하인리히 겜코브가 쓴 <두 사람>은 지금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냉전시대의 공산권에서 나온 전기와 냉전 이후 서방국가에서 나온 전기의 차이점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는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자가 대체적으로 엥겔스는 좋게 보고 있어서, 자이트님 말씀대로
반한 것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기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헌책방에 가보면 심심찮게 8, 90년대에 번역된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이 눈에 띄던데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네요.
사실, 프랜시스 윈과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마르크스 평전 내용의 에센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맥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사야 벌린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12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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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의 대표작이 될뻔한 미완성 소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 , ,  '  

도스또예프스끼가 한 작품을 열심히 집필했더라면 자신의 대표작 <죄와 벌><카마라조프 가의 형제들>과 맞먹을 수 있는 장편소설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이 작품이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생소하기에 짝이 없는 소설 제목은 한 번에 기억하기가 쉽지가 않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작가 생활 초창기 때 쓰여진 미완성 소설이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을 '장편소설' 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분량만 봐도 중편소설 쯤으로 보인다. ( 지금도 '장편' 과 '중편' 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사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안나' 이며, '네또츠까' 는 애칭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어느 러시아 소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소녀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작가는 이 소설을 장편 '대작' 으로 집필할 계획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대한 집필 계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집필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아예 처음부터 완성할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24세라는 나이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소설 한 편으로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지만, 뒤이어 <분신>이 발표된 이후부터는 문단의 반응은 시들어져만 갔다. 이전과 다른 문단의 반응에 젋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데뷔 때 누렸던 달콤한 명성의 시절이 그리웠다.  작가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는 단기간동안 꽤 많은 단편소설들을 써내왔지만, 이 역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렇다보니, 소설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입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작가로서의 명예와 그 뒤에 따라오게 되는 물질적인 부(副)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빈곤한 형편 속에서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소설 말고도 여러 잡지를 통해서 잡문을 쓰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장편소설을 쓸 환경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다난한 상황 속에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도 비평가로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부족한 구성력과 지나치게 많은 독백 설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이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데도 힘들었다)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20대의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아직 문학적 원숙미가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 러시아 내에서 유행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 뻬뜨라셰프스끼 모임 ' 이라는 비밀 모임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사상은 왕정을 타도하려는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 찍히고 있었다.  결국, 이 모임에 연루되어 도스또예프스끼는 체포되어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겪어야 했다. 

 

 

  어느 불행한 음악가의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은 네또츠까이지만,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소설의 제1부는 자신의 계부인 예피모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피모프의 직업은 음악가(바이올린 연주가)인데, 1부가 가장 기억남는 줄거리이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예피모프는 훌륭한 음악적 재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음악가' 로서의 명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초창기 소설이 다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선배 작가들의 소설들의 플롯을 모방하고 있다.  명예에 눈이 먼 불행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강바라>와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번역할 정도로 발자크의 문학에 심취하였다)  

예피모프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자신보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 하는 음악가를 불 같이 질투하는 동시에 한계에 부닥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좌절하고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그의 지나친 열정은 후에 집착으로 변하게 된다.  1부에서 예피모프 다음으로 불쌍한 인물이 네또츠까의 어머니이며 예피모프의 부인이다.   

네또츠까의 어머니는 자신의 미래가 이미 보장되었다고 승승장구한 예피모프의 모습에 현혹되어 결혼하고 만 것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 예피모프의 초라한 현실를 마주하게 된 어머니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삶에 절망해야 했다.   하지만, 예피모프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가난한 생활고의 원인을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망쳐 버린 것 또한 아내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예전과 같은 예술적인 재능을 상실했다는 지나친 과신, 거기에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외부적인 이유로 전가하는 예피모프의 모습은 자신 스스로 파멸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과신에 속아 결혼하게 된 아내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예피모프는 아내의 싸늘한 주검을 놔둔 채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피모프는 네츠또까와 함께 도망치면서 아내의 죽음은 자신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기 혼자 아내의 주검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도중 갑작스런 정신 착란 증세로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 자신을 위한 ' 오마주

갑작스런 예피모프의 죽음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떻게든 1부를 마무리하려는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피모프의 죽음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광적인 믿음으로 가득한 자에 걸맞은 최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예피모프의 일생을 보게 되면 젊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실루엣이 비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시기는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도 훌륭한 소설 한 편 쓸 수 있다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희망적인 불씨가 남아 있었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를 쓰고 있을 무렵에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열심히 쓰고 있어.  항상 난 우리 문학계와 잡지들, 비평가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조국 수기]에 실릴 내 3부작 소설(네또츠카 네즈바노바)로 나에게 악의만 가득한 사람들의 면전에서 올해 나의 우월함을 확신시킬 거야.  

 - 1846년 12월 17일 편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주3, p 26 -  

편지가 쓰여진 1846년은 <분신> 발표 이후 비평가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을 시기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집필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헛된 자만감에 눈이 먼 나머지 앞날이 캄캄한 자신의 미래 앞에서 청년작가는 불안했던 것일까?  다음 편지에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내 문학 경력의 세 번째 해야. 나는 안개처럼 살고 있어. 삶이 보이지 않고, 제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어. 그들은 회의적인 평을 하고 있어. 이 지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어. 가난, 삯일, 그것만이라면 난 쉬었을 텐데!  

 -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 주11, p 72 -  

젊은 작가에게는 명예와 부,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에는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무척 셌던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예피모프가 자신의 가난함을 아내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본인 능력의 한계를 외부적인 이유로 찾아냄으로써 욕구 불만을 해소시켰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펜과 종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소설에서 자기 자신을 묘사하였다. 그 사람이 바로 예피모프이다.  

발자크, 고골처럼 러시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대문호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설이었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눈을 통해 본 현실세계를 재창조하는 이야기 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능력과 불행하기 짝이 없는 상황과 유사하는 가공의 주인공 예피모프를 탄생시켰다.  비록, 결말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소설 속 화자인 네또쯔까가 아버지 예피모프에 대해서 연민과 동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모방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피모프를 통해서 젊은 나이에 러시아 문단을 뒤흔들어놓은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예피모프는 발자크나 고골 같은 선배 작가들을 향한 존경어린 오마주라기보다는 반대로 언젠가는 이들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을 위한 오마주일 수도 있다. 예피모프라는 오마주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켜주는 동시에 대작가가 되려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만의 염원과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학 연구자인 나폴레온 힐은 성공하고 싶어하는 소원이나 갈망을 종이에 적어두고 지갑에 보관하면서 틈만 나면 들춰봤다고 한다. 성공을 바라는 소원이 적힌 종이를 계속 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성공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그런 강렬한 마음의 자세 덕분에 성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자신의 성공을 적어놓은 종이가 일종의 부적인 셈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유형 생활을 끝나고 난 뒤에도 중간에 쓰다 만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열중하였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내용으로 마무리짓는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해소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오마주가 등장하는 이 미완성 소설이 먼 훗날, 자신에게 가져올 명예, 그리고 죽어서도 고골과 발자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명성를 부르는 부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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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cyrus 님의 자세한 소개 덕분에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D
이 소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 볼 수 있겠군요~

cyrus 2010-12-23 19:13   좋아요 0 | URL
지금 연도순으로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고 있는데,,,
참으로 매력적인 작가인거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바람결님이 읽어보신면 좋은 소설인거 같습니다.
1부의 예피모프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예술소설 같은 느낌도 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12-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 겁니다.열린책들 이전에 70년대 초에 정음사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나왔는데 헌책방에서 몇 권 구했지요.하지만 이 작품이 든 권은 구하지 못했습니다.페트라셰프스키 사건 이전의 작품이면 젊은 시절 것이로군요.

cyrus 2010-12-23 23:48   좋아요 0 | URL
네, 그 사건 이전에 집필하고 있었답니다.
자이트님의 세계문학에 대한 내용의 댓글을 보면 지금보다 예전 세계문학
출판이 풍성한 느낌이 드네요. 정말 열린책들이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소개되지 못했을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4 17:40   좋아요 0 | URL
40여년 전에 번역되고 그 이후엔 절판된 명작들이 꽤 있어요.이런 건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하는 게 상책이죠.저는 소설 외에 역자의 작품소개나 작가소개도 정독하는 편입니다.시대적 배경에 관심이 많으니까요.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전기는 시중에도 꽤 나와 있는 편이죠.저도 다섯권을 가지고 있고 그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다룬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아무래도 그가 반동적인 종교관이나 반혁명관을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보니 다른 이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어떻게 해석하는 가도 알고 싶어 이런저런 책들을 모아 읽지요.

blanca 2010-12-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너무 놀랐어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미완의 것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는 것도요. 나폴레옹 힐 책은 제가 애장했던 책인데^^ 막 줄 긋고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cyrus 2010-12-23 23:50   좋아요 0 | URL
이 사실이 블랑카님에게 또 한 번 놀라게 해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낭만주의적 요소를 시도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역자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저는 이 사실에 놀랍더라고요.
도스또예프스끼와 낭만주의라면 매치가 안 되는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2-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편과 장편을 나누는 경계선이라.....

보통 책 1권으로 통째로 나오면 장편소설 이라고 하죠

중편은 애매한게 100페이지 내외로 알고 있어요~ 단편과 중편을 가르는 기준이 종종
애매할때도 있죠~

cyrus 2010-12-24 14: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단편과 중편을 구분할 때도 헷갈려요^^;;

2010-12-24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술 모임에 대한 단상

며칠 전, P 출판사에서 주최한 강연회 참석을 통해서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출판사 카페 회원분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는 카페 회원분들끼리 술과 안주를 함께 뒷풀이도 하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카페에서 만나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 터라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 분들이라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대화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어 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면 낯을 가리게 되는 나 역시 책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회원분들과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화의 주제는 폭 넓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인생 이야기나 지금까지 본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회원분들의 대화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영화 관련 대화와는 수준이 달랐다. 그 때 대화에서 언급되었던 영화들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한 분이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기억이 난다. 홍상수 감독 , ,,,  그의 이름과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영화제목들은 많이 들어봤는데 , , ,  살면서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의 대화를 열심히 경청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거기에다가, 서로 영화 한 편의 내용에 대한 감상을 대화 주제로 나누는 모습도 무척 놀라웠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느꼈던 감상이 술 모임의 대화 주제가 될 수 있다니 , , ,   지금까지 수많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가 뭐였더라 , , , ?      음 , , ,   기억이 안 난다. -_-;;   

아니, 술 마실 때에는 대화란게 없었던 거 같다.  만나자마자, 여러 명 둘러 앉아 소란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주문한 술들 다 억지로 비워내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 부르고, 3차는 당구장으로 향하는,  이 획일화된 술자리 루트(?)에서는 폭음의 충격을 진정시켜줄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없었다.   그나마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는 선, 후배나 동기 뒷담화하거나 그동안 살면서 쌓여왔던 불만들을 토로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술자리에는 항상 마무리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 개 ' 가 되는 것처럼,  내 주위에 술만 들이켰다면 '개' 로 변하는 친구들 덕분에 술자리가 '개판' 이 되기 쉬웠다. 

 

   

  나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  

사실, 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성격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랑할 사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본 게 횟수로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안 본 지 2년 된 거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들 대부분은 헐리우드 출신의 영화들이라서 남들 앞에서 영화 이야기할 때는 나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는 편이다.   

간혹, TV에서 24시간 영화만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영화를 본다고는 하지만, 그 때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다. 재미있는 액션 혹은 스실러 영화 한 편 보게 되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게 되니까.  나에게 영화란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오락거리 혹은 잠시나마 우울과 불안함 따위를 해소시킬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발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다보니, 영화 한 편 보고 난 뒤에 내 머리 속에 남는 건 줄거리일뿐이었다.  내가 왜 이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 ,  

  

 

  

  세대를 초월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듯이 영화 역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영화 한 편 가지고도 1시간은 거뜬히 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의 청자가 영화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 영화 ' 란 주제는 구태의연한 대화 분위기 띄우기용에 불과하다.  요즘 흥행을 이루고 있는 영화 한 편 이름 살짝 던져주고, 이 영화의 관람 유무를 따진 다음에 자신만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분법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 재미 있다, ' 혹은 ' 재미 없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꼭 영화를 영화 비평가처럼 분석하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거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나처럼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다거나 주제에 대해 막연하게 꺼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에 관한 대화는 영화 매니아들만 사이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대화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면서 하는 대화가 영화 이야기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집에 있으면 가족 간에 서로 대화를 잘 안 하는 대한민국 가족의 분위기를 비추어보면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와 그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에 대한 대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에다가, 이들이 언급하고 대화 주제로 삼는 영화들 역시 보는 이들에게는 감탄을 하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가 태어날 때 나온 1940, 50년대 영화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영화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유명한 명작들까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이루어진 옛날 영화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쯤에 나온 최신 영화 (이들이 대화를 나눈 시기와 대담을 책으로 나온 연도가 2009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최신 영화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들도 소개되고 있다.  

故 스탠리 큐브릭,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폴락 등 내노라하는 영화의 거장들과 최근에 감독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 대해서 논하며, 영화 관련 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시모네의 관객들이 몰랐던 영화 작업의 뒷이야기등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폭이 넓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아온 모자지간끼리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서로 통하는게 있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단순히 영화 한 편에 대해서 비평가처럼 평가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세대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영화 역시 세대를 초월하는 것처럼, 이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 역시 수십 년 차이의 세월의 벽을 허물고 있다. 영화 그리고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그래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는 거실에 따뜻한 커피 한 잔 함께 하는 일상적인 대화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책과 영화는 동격  

책 한 권 다 읽고 그냥 책장에 꽂아버리는 사람과 반대로 한 권을 다 읽고난 뒤에 읽으면서 느껴던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적어두는 사람 그리고 책을 읽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의 독서와 그냥 유행 따라 베스트셀러만 읽는 사람의 독서에 차이점이 있듯이 영화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는 유익한 정신적 영양분이 될 수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지론을 밝히고 있는데, 책과 영화는 동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 책과 영화는 동격 ' 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그 가르침은 그녀의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자식에게 영화를 접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만 골라 보지는 않았으며 아들에게도 자신의 영화 취향을 따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영화라는 장르에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들의 취향을 인정해주었다. 아들이 만화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시오노 나나미 역시 아들과 함께 만화영화를 같이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 할수록 영화 장르에 대한 관심사에도 변화가 찾아오면, 그녀도 따라 변화된 아들의 영화 취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런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교육(?) 방식은 자녀의 정신적 성장까지 자라게 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줄뿐만 아니라 영화 보는 방법 그리고 재미까지도 터득하게 된다.  장점은 이것뿐만 아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하는 시간까지 저절로 생기게 된다.  

단, 유의해야할 점이라면 본인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녀에게도 영화 보는 것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시모네가 만화영화를 많이 즐겨보는 것처럼 어린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녀가 만화만 본다고 해서 타박을 주는 것보다는 자녀가 보는 만화를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육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은 부모와 자녀가 보는 영화의 취향은 무조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훈은 한 집안의 전통적 도덕관이기 때문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하지만, 영화는 꼭 가족들이 모여 보란 법은 없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이나 야구장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케이블 영화 채널을 즐겨 볼 정도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신데 아마도 폐쇄되고 어두운 실내의 극장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탓일 수 있겠다. 아니면, 어린 내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유해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극장에 안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본다. 

분명,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녀가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 한 편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나중에 학습에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유독 TV 속 만화를 즐겨 보는 이유가 브라운관에서 비쳐오는 화려한 색상과 음향이 어린이의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하루종일 집에서 만화영화만 보게 되면 한창 뛰어놀아야 할 때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 않게 되며 신체적 성장도 늦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녀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녀의 나이에 걸맞는 만화영화를 시청하되, 단순히 보여주기보다는 부모 역시 자녀와 함께 시청을 함녀서 만화영화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 <로마에서 말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p 26 -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던 것처럼 가족 간의 대화에 물꼬를 트일 수 있는 기회, 아니 세대 간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타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가족과 함께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봤던 영화를 주제로 아버지와 함께 술 안주 삼아 대화를 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해줄 수 있는 동시에 영화 보는 안목까지도 생기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긴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아버지나 어머니 중에서 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극장으로 같이 가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그런데, 아버지는 주말에 등산 모임에 참석하고, 어머니는 영화 따위에 도통 관심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보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기약은 없다지만,  먼 훗날,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게 되면, 어린 자식의 손을 꼭 잡고 영화 보러 극장에 가야겠다.  

  

P.S> 이 책의 분야는 내용만 봐서도 예술, 에세이 중간쯤에 속하는데 글은 엉뚱하게도 가정 교육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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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이러스님의 글을 보면서 말이죠,
진짜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좋았을건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나이차는 좀 나지만
그래도 같이 술 한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면 재미있겠다 싶어서요.

저는 영화 좋아합니다만, 감정에 질질 끌리는 영화나
너무 사랑 타령하는 영화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은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랍니다. 오늘은 해리포터, 25일은 황해 예약해놨어요. 아하, 신나라~

cyrus 2010-12-23 13:56   좋아요 0 | URL
저는 술 마시며 아무 주제나 수다 떨고 듣는 건 좋아하는데,,
좀 재미없고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걱정입니다.^^;;

마고님은 멜로영화를 좋아하실거 같은데,,^^;;
사실 저도 주로 즐겨보는 영화는 액션, 스릴러 위주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판타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영화 해리포터는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황해,,, 요즘 급 끌리는 영화인데,, 크리스마스날에
보시는군요. 부럽습니다. 크리스마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다이조부 2010-12-23 17: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마고님은 시리스님 만 편애하시는 구나~

느끼해서 이런 말 하기 주저하게 되는데 인형의 꿈 노래 생각나네요 ㅋㅋ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시대를 위로한 길거리 고수들 이야기
안대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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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희노애락을 느꼈을까?  

요즘은 텔레비전을 켜면 TV 프로그램들을 부족함 없이 볼 수 있다. 케이블 방송과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TV 프로그램들을 방영하고 있다.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찾는게 리모컨이고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키게 된다. 모든 이들이 잠든 새벽에도 텔레비전을 켜면 케이블 방송에서는 오락 프로그램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들이 재방영된다. 텔레비전은 컴퓨터와 더불어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다.  시청자의 눈과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텔레비전은 '바보 상자' 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조건 좋은 효과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 시청자들의 교육에 유해할 수 있는 잘못된 언어 남발과 단순히 방송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설정된 요즘 방송 프로그램의 등장은 TV의 대표적인 단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TV가 시청자를 '바보' 로 만드고 정서에 좋지 않은 고철 덩어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TV를 통한 유용한 교양 및 지식 전달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TV를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TV를 통해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시청자인 우리도 운동선수들처럼 승리의 열광을 맛보게 되고, 인기 드라마 속 착한 주인공을 끝까지 괴롭히는 악역 캐릭터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감정에 몰입되어 화가 나게 된다.  부모 없이 동생과 단칸방에 사는 불우이웃을 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펼쳐지는 희극인들의 개그는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이렇듯, TV는 우리 생활에 땔래야 땔 수 없는 필수품인 것이다.  TV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지,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TV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았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들의 삶에도 우리들의 삶처럼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을법한데 희노애락의 감정을 전달해준 그들이 누구였을까?   

 

 

   18세기 조선시대의 ' 스타킹 '

 일요일 오후에 모 방송국에서 하는 시청자 오디션을 표방하고 있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스타킹' 이 있다.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독학으로 악기 연주를 배움으로써 전문가 수준 실력을 갖추게 된 40대 주부 등 우리 삶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숨겨왔던 재능을 우리는 시청자로서 보고 있다. 

우리는 TV로 전파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재능과 끼를 보면서 웃음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구경하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의 등장은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유교 계급의 영향이 붕괴되고 신흥 상인들의 등장으로 도시와 시장이 형성된 18세기 때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몰락과 동시에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양반 중심의 문화는 18세기에 이르러 평민들도 참여하는 문화로 변화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양반 중심의 유교사회에서 '책' 은 양반 식자층들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서민들은 책이란 것을 읽어볼 수도 없었으며 평생 조선 시대의 사람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모르는 문맹으로 살아가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도 책을 읽을 수 읽게 되었다. 특히, 지금 ' 고전소설 ' 이라고 불리우는 <홍길동전><춘향전><심청전> 등의 등장은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조선의 문맹률 때문에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평민은 극소수였다.  

<홍길동전><춘향전> 등은 조선 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평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평민들이 대중적인 소설을 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의 등장이다. 평민들은 한문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 말 ' 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번화가 곳곳에서는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자들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 대다수 문맹자인 평민들에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으며 이들에게도 교양과 지식을 제공하는 ' 지식 교류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평민들은 이들 덕분에 '독서' 라는 행위를 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 특유의 대중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老 = 怒

  내 이름은 삼월이, 조선의 당찬 老처녀    

주위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노처녀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 내 이름은 김삼순 ' 이 '김삼순 신드롬' 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노처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못한) 채 ' 노처녀, 노총각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살아야 하는 30대를 넘어선 남녀들은 주위 시선에 부담스러워 했듯이, 혼인할 시기를 넘어선 조선남녀들도 사회로부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었다.  

요즘 대한민국 남녀들에게는 결혼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 한다. 결혼을 함으로써 짊어져야 할 가정을 먹여살려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결혼 기피 1순위로 꼽고 있는 것은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은 현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남녀의 결혼관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결혼 기피도 역시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특히 평민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삶의 관문은 우러러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높았다. 혼인을 하는데 필요한 혼수를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없으면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노처녀, 노총각 평민들이 많아지게 되자, 조정 관리들도 근심할 정도로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조정에서는 결혼 못하는 백성들의 증가는 사회적 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노처녀, 노총각들을 장가갈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적인 제도 도입만으로 이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런 결혼 제도는 조선남녀들로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제도까지 마련했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 조선남녀들은 평생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혼 못하는 남녀는 곧 ' 돈 없는 가난한 사람 ' 이라는 이미지가 성립되었다. 특히 노처녀들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관점은 그 때 당시 천시받았던 과부와 맞먹을 정도로 심하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 노처녀 ' 라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는, 요즘 말로 말하는 '용자' 가 있었으니, , ,   일부 문헌 속에 등장하고 있는  ' 삼월이 ' 라는 여자이다.  

조선 시대에서 존재했던 독특하고 기이한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는 삼월이를 50살의 노처녀로 기록하고 있다.  조수삼의 기록에 의하면 삼월이는 언제나 처녀 복장을 한 채 시장 한가운데서 떡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여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사용하였다.  50살의 할머니나 다름 없는 삼월이가 처녀처럼 화장을 하고 다닌 것은 조선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남편으로 여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가치관에서 반영된 것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눈길을 안 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게 되었으며 그녀와 관련된 민요도 나오게 되었다.   돈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부족했던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과 다르게 삼월이는 직접 스스로 돈을 벌어 연애보다는 자신의 외모 가꾸는데만 인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보면 조선 시대의 'OL족' 였던 것이다.  OL족이란 소득수준은 중간계층이면서도 소비수준은 최상류층에 맞먹게 행동하는 직장여성을 가리키며 이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처녀인데 남편이 많다는 / 동구 밖 삼월이. 

   -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안대회, 한겨레출판, p 149 -  

 

삼월이에 대한 조수삼의 기록은 단 몇 줄 밖에 안 되어서 그녀의 자세한 일대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삼월이에게도 '노처녀 = 가난한 여자' 라는 콤플렉스를 시달리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경제적 자립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땅에 제대로 박혀버린 노처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 혼자서 상대하기가 버거웠을 터이다. 그녀에 대한 <추재기이>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술에 취한 삼월이가 교수형에 처해져서 목만 덩그러이 매달려 있는 죄수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삼월이의 일화를 통해서 조수삼은 삼월이 특유의 다부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처녀' 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아야 하는 조선 사회에 향한 일종의 분노 표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외모만 가꾸는데만 좋아하는 삼월이의 마음 속에도 한 여자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녀의 기이한 행동은 50살 할머니가 되어서 진정 자신을 사랑해준 이성을 찾지 못해서 일어난 히스테리일 수 있겠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장애인 노래꾼, 통영동이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에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찾아 배따라기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도는 나그네가 등장한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배따라기를 구슬프게 부르면서 전국을 방황하는 소설 속 나그네처럼 조선 역사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물이 실제로 살았었다. 

자신의 성과 이름 대신에  스스로 '통영동이' 라고 불렀던 무명씨는 자신이 열 살 때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면서 전국을 떠돌게 되었는데, 무명씨는 생활하는데 온전치 못한 장애인이었다.  전해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통영동이는 두 눈은 실명하였으며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는 불구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가 실명된 이유에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밤낮동안 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영동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수많은 노래들을 부르고 구걸 행위를 하였다.

'통영동이' 라는 별칭에는 통영 출신이라는 뜻만 있을 뿐, 그에 대한 기록은 너무 간략할 정도로 자세하지 않다. 그리고 그가 전국을 떠돌아 구걸을 하면서 불렀다는 노래는 온갖 새를 묘사한 <백조요>라는 곡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가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동생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통영동이는 김동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 배따라기 ' 나그네처럼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자신만의 구슬픈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가 불렀다던 노래들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쉽지만, 통영동이의 애절한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불우한 인생사를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조선을 웃게 만든 유쾌한 예능인들, 길거리 재주꾼  

<추재이재>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길거리 재주꾼들에 대한 묘사가 많다.  앞에서도 언급한 소설 읽어주는 낭독자처럼 도시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보여줌으로써 돈을 벌면서 살아갔다.   

입 하나만으로 온갖 새 종류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구기(口技)의 달인,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는 재담꾼, 훌륭한 기교를 갖춘 길거리 악기 연주자 등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특기를 직업 삼아 살아갔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정도로 조선의 '인기 스타' 였다. 

요즘과 같으면 그들은 '연예인' 과 유사하다. 입으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조선의 구기 연기인들은 1970년대 성대 모사의 달인이었던 원로 개그맨 남보원이나 연예계에서 가장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줄 안다는 개그맨 정종철를 보는거 같다. 그리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자신들의 말을 귀 기울이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입담을 가진 재담꾼은 대한민국 최고의 MC 유재석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김제동 급인 것이다.

  

 

   ' 조선의 폴 포츠' 달문, 추남 거지에서 조선 최고의 광대가 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다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는 연예인의 굴곡된 인생 경로 역시 조선 시대의 재주꾼들에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양반들과 기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광대 달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못생긴 외모를 가진 추남 거지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못 생겼으면 연암 박지원도 자신의 글에서 자신이 직접 본 달문은 못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못생긴 외모와 거지라는 천한 신분은 달문의 출세에 커다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겉모습은 추했지만 속은 무척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문은 주위 거지들과 어울리는 동안 그 당시 유행하던 각종 연희들을 습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재능에 대한 소문은 길거리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달문은 조선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광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착한 성품과 전국으로 떠도는 소문통에 의해서 달문은 조선 최고의 스타 광대가 된 이유도 특이하지만, 결혼도 못할 법한 못생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최고의 광대가 된 과정 역시 예전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연상하게 한다. 이 두 사람에게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회의 선입견을 깨뜨리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 하나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광대 달문은 조선의 ' 폴 포츠 ' 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대중들의 시선과 인기가 너무 과하게 되면 자칫, 자신의 연예인 활동 혹은 인생 전부를 한 순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독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전국 연희 공연을 통해 나름 짭짤한 수입을 거둔 달문은 주위의 권유로 인해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달문은 돈의 달콤한 맛에 맛들어버렸다. 그리고 기방에 자주 드나들어 기생의 치마폭에 둘러싸이는 일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큰 인기에 비해서 그는 그렇게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에서 얻은 어마어마한 수익만으로도 달문도 양반층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완전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문에 대한 기록에서는 그가 부유한 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 그의 공연과 기방에서 노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로 인해서 인기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가십거리 역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고 심지어 왜곡되어 전해지기 마련이다.  

달문은 생뚱맞게도 역모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었다.  역모를 꾀한 이들이 당시 달문의 스타일을 흉내낸 것도 있었지만, 그들 중의 주모자가 자신이 달문의 동생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관련 없는 달문은 설상가상으로 곤혹을 치러야 했다.  오랜 심문 끝에 달문은 역모 사건에 관련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역모를 일으키게 할 정도로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죄목으로 달문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가벼운 형벌이었기에 그의 귀양살이는 짧았으며 풀려난 뒤에도 다시 광대 활동을 했지만,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달문이 종적을 감추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간히 전해져 내려오는 달문의 인생은 연예인으로서의 인생사를 보는 거 같기도 하다.  한 순간의 경험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마는 불행한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조선 후기를 장식한 조선 문화의 아웃사이더

이 책에서 소개된 조선의 길거리 재주꾼들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조수삼의 <추재기이>에서 인용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조수삼의 <추재기이>와 같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으로 통해 전해내려오는 소문들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어서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아서 아쉬운 단점이기도 하다. 평민들을 주체로 한 살아 숨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선의 사대부 의식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이렇다보니 길거리 재주꾼들은 대중들의 많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는 대접은 부족하였으며 역사적 기록에서도 의도적으로 많이 배제되어야만 했다.  

세계적인 명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인생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라고 말하였다.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를 통해서 이들의 재주를 지켜본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무척 즐거운 희극으로 보았지만, 반대로 타인에 의해 기록되어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내밀한 일상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되면 조선 문화의 ' 아웃사이더 ' 로 살아간다는 인생의 서러움과 자조감이 묻어나 있는 비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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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좋은 리뷰!

조선 시대 하면, 머랄까 국사 책에서 배운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허구의 대상처럼 느껴지잖아요. 이야기 속 인물같고, 우리같이 자잘한 고민을 했을까 싶구. 그런데 <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엄청나게 웃으면서도 한층 가까와진 느낌을 받았었답니다.
지금 읽으신 책에 대한 리뷰도 그런 느낌이네요. ^^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서 덜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모두 책=지식=(돈 또는 혁명) 등의 공식이 가능했잖아요. 그래서 금했나봐요. 책이란 곧 힘인거잖아요. 아마, 인류가 홀랑 망하고, 몇 안 되는 사람만이 남으면 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희안한 상상 중~)

cyrus 2010-12-17 17:22   좋아요 0 | URL
사실 이런 역사책 리뷰는 지루하기 마련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고님의 상상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보는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멸망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책을 소유하고,
또 그 책은 특권층만의 소유물이 될 수 있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거리가 왕조사나 제도사에 치중한 역사보다 더 재밌지요.어차피 생활사를 모르면 역사는 맹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장터 같은 데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성대보호를 위해 무슨 약을 먹었을까요...

일제시대만 해도 20대 초반이 넘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고 80년대만 해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노처녀였죠.요즘은 애기 낳을 수 있는 마지막 연령까지도 노처녀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아무래도 평균수면이 길어질수록 노처녀 연령도 더 느슨해진 것 같아요.환갑도 못넘기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옛날엔 노처녀의 기준이 훨씬 더 엄격했겠지요.

cyrus 2010-12-19 19:37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사 같은 경우에는 풍속사, 생활사가 더 끌리더군요. 선조들의
삶을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그러고보니 저 역시 노자님의
궁금중에 대해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의 저자인 안대회 교수가 옮긴
<추재기이> 역시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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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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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게, 젊은이들 잘 들어 두게나.
 우리 늙은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 러시아 노래, 알렉산드르 뿌쉬낀 <대위의 딸>에서 인용 -  

  

  

  양치기 소년의 네 번째 거짓말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양치기를 하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사는 마을에는 방목으로 양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을의 넓은 초원에는 수많은 양들이 모여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소년 역시 수많은 양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마을 내에서 나이가 어린 편이라서 마을사람들의 양까지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르르 몰려 있는 양들을 지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양을 잡아 먹기 위해서 종종 마을에 내려오는 늑대 때문이었습니다. 양 한 마리라도 늑대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마을사람들이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양을 지키기로 하였던 것이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양치기 소년이 초원에 있는 양들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양을 돌보는 날에는 늑대가 내려온 적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년은 점점 늑대에 대한 긴장감이 풀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 떼들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초원 위에서 딴 짓거리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이 일에 대해서도 지겨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소년은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싶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한 끝에  마을사람들에게 늑대가 온다고 거짓 신호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소년은 마을사람들이 있는 밭을 향해 아주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 " 

밭을 갈다가 때마침 멀리서 소년의 외침을 들은 농부들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괭이와 몽둥이를 둘고 양 목장 쪽으로 허겁지겁 올라왔습니다.  늑대를 잡지 않으면 자신들의 양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년의 외침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목장 쪽으로 왔지만 소년이 말한 늑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들은 아무 일 없다는듯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요. 마을의 농부들은 소년의 외침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이 소년 때문에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에 당황하였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어른들의 멍한 표정에 속으로 낄낄거리면서 웃었습니다.  어른들은 다음부터는 이런 쓸데없는 거짓말이나 하지 말고, 양들이나 잘 지키라고 엄중히 경고만 하고 다시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 한 마디로 많은 어른들을 속아넘어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동을 일으킨지 얼마 안 되어 소년은 또 다시 외쳤습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이번엔 진짜 늑대다! "  

' 늑대 ' 라는 단어에 민감해진 농부들은 어김없이 목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소년이 또 한 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온 모습을 본 소년은 그저 배를 잡고 구르며 웃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소년의 장난에 또 다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다시 한 번 경고를 했습니다.

  " 이번에도 이런 거짓말을 하기만 해봐라. 그랬다간 크게 혼날줄 알아라. "  

분을 삭히지 못한 채 농부들은 다시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소년은 두 번이나 어른들한테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늑대가 왔다' 는 거짓말로 외쳤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거짓말에 재미들린 것이거죠.  소년의 외침을 듣게 된 농부들은 속는 셈 치고 다시 목장으로 냉큼 달려왔지만 소년이 또 거짓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소년에게 세 번이나 속은 농부들은 이번에도 화가 난 채 밭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년은 다음부터는 이런 거짓말은 안 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예전처럼 양 떼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무시무시한 늑대 한 마리가 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번엔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소년은 생전 처음 보는 늑대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양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밭 쪽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 이번엔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 

그러나, 농부들은 소년의 외침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있던 밭 일을 계속 했습니다. 

   ' 저 녀석,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네. 우리가 또 속을 줄 알아? '  

 ' 지금 식구 먹여 살리기 바쁜 마당에 저 녀석은 거짓말이나 하고 있다니,, '

하지만, 소년의 네 번째 외침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려 있던 늑대는 배 터지도록 양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소년은 간신히 숨어서 늑대의 포식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배부를 정도로 제대로 포식한 늑대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사라졌으며 소년은 선혈이 낭자한 초원을 보면서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했다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밭일을 마무리하고 자신들이 키운 양을 확인하러 농부들은 소년이 지키고 있던 목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죽은 양들의 사체와 핏빛으로 물든 초원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였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농부들에게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세 번의 거짓말을 하고 난 뒤에 얼마 안 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서 진짜로 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한 거짓말에 대해서 크게 반성하고 있으며 그 전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뒤늦은 사과로는 소년은 잃어버린 신뢰의 이미지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평생 '거짓말 하는 양치기 소년'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답니다.  

  

 

 

  ' 진보 주치의' 조국, 몸살 앓는 조국(祖國)의 병세를 진단하다  

나는 지금까지 20년 정도를 살면서 ' 정책 ' 이니 ' 진보 ' , ' 보수 ' 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문을 즐겨 보기는 하지만,  국정에 관한 기사 부문을 진지하게 읽어본 적도 없었다.  정치인들이 ' 꼴통 보수' 니 ' 빨갱이 좌파 ' 라고 서로 육두문자까지 나오면서 으르렁거리는 걸 보게 되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작태를 보면서 한심하다는듯이 혀를 차고 눈살을 찌푸렸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진보' 와 '보수' 의 정의 그리고 침을 튀겨가며 주장하는 그들의 생각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왜 싸우는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신문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도 하였다. 하루에 배달되는 신문을 꼬박꼬박 읽어도 국내 사회의 흐름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시간만 낭비인 셈이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진지하게 알고 싶었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입장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어 쉽고,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무척 간절했다.   

운이 좋게도,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책이 나옴으로써 우리나라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진보집권플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이름이 범상치 않은 조국 서울대 교수와 인터넷뉴스 <오마이뉴스> 소속 기자인 오연호 씨가 만나 지금 현재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동시에 진보가 다시 한 번 정권을 탈환하는(?) 방법에 대해서 대담을 펼치고 있다.  

제목부터 두 사람의 대담의 주제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진보가 대한민국을 집권하기 위해서 준비해야할 플랜(Plan).  그래서 이들의 대담을 읽게 되면 현 정권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해서 진보측 정당에 대해서 정말 노골적으로(?) 까대고 있다.  이전부터 쭉 진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으며 더 나은 진보를 위해서라면 비판도 서슴치 않았던 조국 교수의 경력이 그의 대담에 묻어나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조국 교수와 오 기자의 대담이 그렇게 딱딱하지가 않았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의 대담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질문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말발은 환자에게 병명에 대해서 요목조목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친철한 의사와 같았다.  오랫동안 병들어 골골거리고 있던 '대한민국'이 앓고 있던 병명을 진단하여 이를 나을 수 있는 치유법과 함께 예방법마저 제시하는 '진보' 주치의였다.  

  

 

  '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 되어버린 현 정부  

조국 교수는 진보를 먼저 비판하기 전에 현재 정부의 실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 세력이 지지를 받는 MB 정부는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는 중도적인 정책에 대해서 조국 교수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수시로 친서민, 중도실용, 관용과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이죠.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친서민이라는 구호 아래 실제 어떠한 정책이 이루어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 <진보집권플랜> 조국 & 오연호, 오마이북, p 30 -

지금까지 시행한 정책 사례들까지 열거하면서 그토록 강조했던 친서민 정책을 정부는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 ‘전문계 고교의 교육비 전액지원’  등 지금까지 친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이 쏟아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보금자리 주택' 의 경우, 서민보다는 건설회사를 위한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의 여론이 생기고 있으며 '미소금융' 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여전히 빈곤과 금융채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나름 친서민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여러 개 도입을 했지만, 도리어 서민들 입장에서는 정책의 효과를 접하지 못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하나같이 체계적이지도 않고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마을사람들' 이 된 진보 세력 

조국 교수는 진보 세력이 허무하게 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점,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차갑게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을 현 정부의 문제점과 결부시켜서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입장에 서 있는 진보 세력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점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진보 세력 입장에서는 화려하고 달콤했던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 집권은 오히려 독(毒)이 되어버린 것이다. 

진보 집권 시기의 말기였던 2007년 대선 시즌에는 진보 세력이 한 번 더 집권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차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너무 안일하게 낙관적으로 전망하였다. 대선 시즌 도중에 이명박 대통령 후보과 관련된 BBK 비리가 터지게 되면서 진보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희망적인 예상을 뒤엎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말았다.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과 현재 걷고 있는 정당의 노선 등이 부족한 점 투성이고, 실제적이지 않음을 알면서도 너무 착한(?) 진보 세력은 눈꼴사나운 장면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볼멘소리가 나기 시작난다거나 혹은 눈에 보이는 허점이 드러나면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언성만 높은 비난을 할 뿐이었다.  

조국 교수는 현재의 진보 세력은 과거의 김대중, 노무현 집권 세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말로만 진보 집권 세력을 비판을 가하면서도 이를 대응할만한 혁신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소년에게 세 번이나 거짓말에 속아넘었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준 소년을 제대로 꾸짖지 못하고 소또 다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어떤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마을사람들의 안일한 대응방식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의 병명 :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신종 복합 질병

 

 희망으로 가득찬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TV에서 전파되는 어느 공익광고의 문구이다. 문구 앞에 있는 '희망으로 가득찬' 이라는 부분을 빼버리고 읽어보자. (아니면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든지...) 

그러면 '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 라는 문구의 반이 남게 된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이다. 국민들은 현 정부 집권 전부터 터진 이명박 후보의 불법비리에 화를 냈으면서도 표심은 이명박 후보로 향했다.  그러고는 집권한 지금, MB 정부에 대해서 한층 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은 여당인 진보 세력으로 민심이 향하기 마련이지만, 진보 세력 역시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들을 추모하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진보 세력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독재 정권 시절에 이루어낸 민주화운동의 족적을 내세워 대중들에게 어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진보, 자신들의 정치적 어필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대중들을 무턱대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중들이 왜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지, 그리고 대중들이 혹할 수 있는 생각들을 내놓고 있는지 과거의 집권 시절을 비추어 진보 스스로 반성해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진보집권플랜이라는 나무를 자라기 위한 한 개의 씨앗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진보 세력 스스로 DJ와 盧가 남긴 영광을 쿨하게 이별해야만 한다.  

대중들은 지금 자신들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어느 누가 가만히 앉아서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는가?   대중들에게 필요하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취업이 우선이다.  보수든 진보든 대중들을 위한 좋은 정책을 내세운다고해도 대중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막상 그들의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거라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과거의 경험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살기에 바쁜데 정치인들의 허무맹랑한 목소리에 들어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양치기 소년이 진실의 목소리를 외쳤음에도 세 번이나 속은 농부들이 소년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농부의 무관심이 재산이나 다름없던 양들의 희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훗날 좋은 정책에도 큰 호응을 낳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대중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대중들이 피부로 공감할 수 있는 핵심 정책안을 구상하고 있어야 한다.  

집권 예상 하에 정책 플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를 꼭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한다.  그런 간절함이 언젠가는 대중들도 통할 날이 오리라. 

조국 교수는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면 이미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깊이 확신을 주는 동시에 세력을 공고히 하게 만드는 '제도적 말뚝' 을 박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과 보다 나은 국정 개선을 위한 '제도적 말뚝' 이 필요한 시점인 마당에 지금 진보 세력은 정당의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주먹' 부터 내밀고 있으니..... 

'진보 주치의'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이 그냥 사회문제 개선을 위해 구상된 희망적인 '시나리오' 로 남게 될지, 아니면 훗날 새로운 집권을 통해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 P.S  서문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기본적인 이솝 우화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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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1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과격한가 봐요.
진보로는 심심해서 거짓말 하는 양치기의 마인드를 바꿔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양도 잃어 보고, 목숨이 위태로워 보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마인드를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cyrus 2010-12-14 21:46   좋아요 0 | URL
현재 집권하고 있는 보수나 권력을 재탈환하려는 진보 입장이 지금
필요한 것이 우리나라 국정의 현실이나 민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아직 사회 물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터라 나무꾼님 댓글에 대한 답글로는 부족한거 같네요.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맥거핀 2010-12-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MB정권의 연이은 삽질이 진보를 결집하도록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진보 정권(그런데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책에서 말하는 '진보 세력'이란 어느 범위를 지칭하는지..)이 집권에 이르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이 많아 보입니다. 진보 세력이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안을 구성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유연성에만 휘둘려 핵심을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0-12-14 21:46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조국 교수가 언급하는 진보 세력에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진보 입장의 정당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막 쓰다보니
중요한 정의를 빼먹어버렸네요..^^;;

마녀고양이 2010-12-1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으려 했는데,
양철나무꾼님, 아이리시스님에 이어 사이러스님의 리뷰까지 읽고 나니,
봐야겠어요. 그리고 진보의 순수한 이상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더 현실적일 필요와 영악해질 필요는 있는거죠.
또한 카리스마나 능력이란게 조금 구리다 할지라고,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중도 성향이 맞죠. 우리나라 보수가 엉터리거든요. ^^

cyrus 2010-12-14 21: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조국 교수도 마고님처럼 현재 진보의 모습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나 삼성 재벌 특권 같은
문제에 대해서 비난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요. 그래서 지금의 진보는 본의 아니게 보수에게 손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었다고 해야되나요? 신자유주의의 장점을 진보 세력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진보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거 같습니다. ^^

다이조부 2010-12-15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프가 이 책을 읽고 했던 감상이 너무 쎄게 다가와서 패스할라고요~

친구도 너까지 굳이 읽을 필요는 없겠다고 하네요 ㅎ

근데 제 친구는 심드렁했던 책인데 알라딘에서 평은 상당히 호의적이네요.
진보 와 보수 프레임 설정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로 분류될수 있는가? 의문이 드네요 쩝

cyrus 2010-12-15 09: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막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알고 있느 걸음마 수준이라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진보와 보수와 관련된 정치 도서를
자주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책에서 조국 교수가 유시민에 대한 평이 흥미로운데,
유시민을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라고 평가하면서도
단점이라면 남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 유시민 특유의 비판적 태도를
지적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직도 노무현에 대한 애착이 큰 것도
문제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cyrus 2010-12-15 09:39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혹시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되신다면
제가 소개한 <시학> 강연에 참석해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저 지금,,, 어떻게든 강연회 한 번 가보려고
변명거리를 모색하고 있답니다...^^;;

지금, 알라딘 문화초대석 서재에 가보면 <시학> 강연 참여 댓글다는
곳이 있을 겁니다. 참고로, 강연 참여 댓글을 다신 분들 중에서
펭귄클래식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 분들도 좀 있어서,,,


cyrus 2010-12-15 09:39   좋아요 0 | URL
강연이 끝나고 나면 카페 가입한 분들끼리 다과회도 할 예정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 입장에서는
서먹하실 수 있을겁니다. 강연회 참가하는 이유 역시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친분을 쌓아왔던 회원분들을
만나기 위한 것도 있거든요.

혹시 강연에 참여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올렸던 강연 관련 페이퍼에 꼭 댓글로 남겨주세요.^^

2010-12-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2-16 20:48   좋아요 0 | URL
아,, 서울 물가 좀 쌔다고 들었는데,,,
왠만하면 소소한 곳이면 좋을거 같아요^^

다이조부 2010-12-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만 춥지 않으면 노상 까는것도 나쁘지 않을 듯 ㅋㅋㅋ

아 진짜 나도 큰일이다 ㅎㅎ

cyrus 2010-12-17 00:23   좋아요 0 | URL
아,, 이거 큰일났네요. 이제와서야 안 간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