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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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65]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 선 인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고 은 <문의 마을에 가서> 중에서 -  

 

넓은 호밀밭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잡아주는 일,
천국에서도 추락하려는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파수꾼이 된
J.D. 샐린저

끝까지 '무소유'의 사상을 전파하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

옷 한 벌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천국에서도 펼치고 있을 거 같은 순백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신들이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 산으로 떠난 소설가
이윤기

하나님의 부름심을 듣고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옥한흠 목사님

   

올해도 참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평안의 안식처로 떠났다. 이 지구상에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자신만의 위대한 대제국을 만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용감한 알렉산더 대왕도, 거대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리의 역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Vanitas, Vanitas

레프 톨스토이가 쓴 3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죽음><세 죽음><습격>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세 편의 이야기가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품 속 분위기도 어둡기만 하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사망선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두고 있는 평범하기만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심신이 쇠약해지다가 결국에는 극심한 투병 끝에 천상의 빛을 따라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튼을 달다가 넘어지게 됨으로써 생기게 된 어깨의 혹으로 인해서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반 일리치의 일상을 표현하는 장면은 별다른 사건 없이 흐르고 있다.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 사고계에서의 모임, 새 부임지인 시골로 내려와 화려한 장식품으로 거실 꾸미기, 동료들과 함께 한 카드놀이 등. 독자들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간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 허무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바티나스(Vanitas)' 라는 미술 양식이 유행하였다. Vanitas는 '헛되다.' 즉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바티나스 그림에는 거울, 책, 악기, 과일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보편적인 물건들과 그 물건들 사이에서 해골을 배치함으로써 모두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일리치가 점점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이전에 전개된 주인공의 행복한 삶은 독자들에게 삶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신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이 자신을 죄어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려고 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카드놀이를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잠깐이나마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죽음 앞에 선 '인간' 일리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참관 이후 자신도 일리치처럼 죽게 된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모습은 우리 삶에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방관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은 인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알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나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 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41 -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따라오면서도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막상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죽음의 신이 찾아 오지 않을거라는 모순된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카드놀이를 하듯, 인간도 즐거운 일을 통해서 우울한 마음들을 떨쳐내려고 한다. 인간은 죽기 전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불행한 인생이 일찍 마감되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직전에 과도하게 음주를 즐겼는 것처럼 말이다. 수십 병의 독한 술을 들이켜부은 포는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신과 마주쳤다.  

죽음을 잊기 위한 행동들은 부질 없는 일이다. 두렵기만한 죽음의 손길을 피할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죽음의 손길로 향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 이반 일리치가 참여한 카드놀이는 죽음의 신과 함께한 쾌락의 오락이었다. 카드놀이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일리치의 마음 속에 불현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비쳤던 것은 24시간 그의 곁에는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미학 : 삶과 죽음의 경계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세 죽음><습격>의 결말에는 독특하게도 공통적으로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 죽음>에서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사망자가 한 자리에 묻어 있는 무덤가 주위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숲은 온통, 햇살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차갑고 흐릿하게 이슬에 덮여 있었다. 옅은 구름에 가려진 둥근 하늘에 희미한 빛이 어리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땅 위의 풀잎사귀도 공중의 나뭇가지도 고요히 제자리를 지킬 뿐 작은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무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나 사락사락 땅 밟는 소리만이 이따금 숲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자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하고 낯선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숲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 <세 죽음>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176 -

 
   
  
  
<습격>의 결말 장면은 이야기 전개상 맞지 않아 보인다. 알라닌 소위가 죽어가는 장면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요새로 돌아오는 길 주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부대의 병사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을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요새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나게 음악을 부르고 있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
   
 

눈 덮인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감춘 태양이, 맑고 투명한 지평선 위로 미동도 없이 떠 있는 길고 가는 구름에, 저물어가는 장밋빛 햇살을 비추었다. 눞 덮인 산들은 보랏빛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만 빨갛게 타는 일몰 속에서 놀랍도록 또렷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풀과 나무의 녹음은 거무스름해졌고 그 위로 이슬이 내려앉았다.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군대의 무리들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풀이 무성한 초원을 따라 행진했다. 사방에서 탬버린 소리, 북소리 그리고 즐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제2테너가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풍부한 감정과 힘으로 충만한 말고 낭랑한 테너의 목소리가 투명한 저녁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 <습격>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235~236 -  

 
   

두 작품 속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법한데, 왜 마지막 장면에는 자연 풍경을 삽입하였을까?  자연 풍경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여 작가 본인의 필체를 과시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톨스토이는 오만한 작가가 아니다.  

두 작품의 결말에 그려진 '자연 세계' 는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생(生)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숙명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작품 속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곧 삶과 죽음이 가까스로 이어지는 있는 지점이다. 인적이 드문 고요한 자연 세계의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두렵게 하기보다는 죽음의 엄숙성을 잔잔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습격>의 결말에서 부대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면서도 결국에는 인간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있는 이들도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삶은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해골로 상징되는 죽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땔래야 땔 수 없는 죽음과 삶

 
톨스토이의 세 작품은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생기는 공포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문학으로 통해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얻게 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숨을 쉬면서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를 갖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에 대해 두렵다거나 무시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된다면 막상 찾아온 죽음의 신을 두렵게만 느껴지게 할 뿐이다.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의 전제하에,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용하여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http://blog.daum.net/jidam55/13864340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죽음의 무도> http://blog.daum.net/gluon/7324899 

한스 홀바인 <대사들>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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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2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하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중단편을 권하고 싶어요.위에 소개한 작품들 참 괜찮거든요.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에게 꼭 읽히고 싶어요.그리고 톨스토이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군복무한 경험을 그린 작품들도...

cyrus 2010-10-21 23: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톨스토이 작품에서 몇 년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단편집 밖에
안 읽었는데 그 책들이 청소년 독자들로 겨냥한 내용이다보니
톨스토이라는 이름의 대문호의 명성에는 약간 떨어진거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읽는데
그리 어렵지가 않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이 언급하신 작품의 제목이 <카프카스의 포로>가
맞는지요?? 알라딘에 검색해봤는데 없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2 15:39   좋아요 0 | URL
예.그것도 있고요, 또 중편으로 '하지 무라드'도 있어요.그외에도 몇 편 더 있는데 지금 기억은 안 나네요.하지 무라드는 러시아에 귀순한 체첸의 지도자였어요.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러시아를 일본으로 체첸을 조선으로 대입해 놓고 읽으면 재밌어요.

cyrus 2010-10-22 16: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서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나니까 톨스토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지네요. 정성들인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4:28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그렇게 길지도 않고, 작품 주제도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습니다.
역시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 같았습니다^^

2010-10-2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10-2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작가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6:0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작품
<크로이처르 소나타>와 <무도회가 끝난 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0-10-2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프리디히리, 그리고 바니타스.. 몇몇의 단어들이 묘하게 얽혀 뭔가 제게 전해주네요! 오늘도 뭔가 생각할 거리와 책의 느낌을 좀 얻어 갑니다. ^^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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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序): 기 우

열자(列子)의 ‘천서편’이라는 내용에는 고대 중국의 기(杞) 나라 사람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기 나라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면 피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는 그 사람이 너무 딱하게 여겨 ‘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마땅히 떨어지지 않는다.’ 고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기 나라 사람은 친구의 말에 근심을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 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의 ‘기우’(杞憂)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지금은 쓸데없거나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Homo anxietas  

 

사람들도 살다보면 기 나라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살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본 사람에게는 재난영화처럼 비행기가 날다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고, 외출을 하기 위해서 새로 산 옷을 입으려 하는데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괜히 두근거리기도 한다. 심지어 기 나라 사람처럼 2012년에 지구 종말이 닥쳐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사실 열거한 사례들 이외에도 현대인들은 살면서 크던 작던 많은 걱정을 한다. 그러나 걱정이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걱정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예상되는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심리적인 경보(警報)이다. 단지 현대인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 및 심리적 요인들에 쉽게 휘둘러서 너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 걱정만 머릿속에 달고 사는 Homo anxietas, 즉 걱정하는 인간이다. 살면서 너무 걱정만 하게 된다면 사회 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준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한 심리 상태를 도스또예프스끼의 『분신』에 등장하는 골랴드낀을 통해서 잘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하인 뻬뜨루쉬까에게 온갖 불만과 잔소리를 다 해놓고선 나중에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 직장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 혹은 단체 내에서 선배 입장인 사람들에게는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이나 후배에게 잔소리를 하고나면 나중에 자신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필자도 군 생활 시절에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많았다. 나보다 계급이 아래인 후임병에게 심한 갈굼(잔소리, 꾸중, 혼내기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군대 은어)을 하고나면 이 녀석이 심하게 갈굼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병영 생활 조사 설문지에 나를 영창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 이름을 적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걱정 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랴드낀의 기우는 자신의 분신이 막장으로 행동하면서 돌아다닐수록 심해진다. 막돼먹은 분신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던 골랴드낀은 해괴망측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신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분신에게 기가 눌린 골랴드낀은 자신의 의사를 강경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온순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표현한다. 막상 편지를 다 써놓고는 혹시나 또다시 분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한다.   
 


 

 지나친 불안이 만들어낸 분신   

 

 

사람이 너무 걱정에 집착하여 살게 되면 심리적 상태도 불안정하게 된다. 결국에는 사고(思考)와 감정에 이상이 생기고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는 정신 분열증으로 발전한다. 골랴드낀의 행동에도 정신 분열증 환자의 전형적인 증세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걸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순히 포기할까, 말까? 그래. 괜찮겠지? 

  그래, 좋았어. 멀찌감치 서서 내가 아닌 듯 구는 거야.> 골랴드낀 씨는 계속 생각했다. 

 <그냥 다 흘려 보내는 거야. 내가 아니야. 그러면 돼. 그자도 제멋에 사는 사람이니.  

 물러설지도 몰라. (중략) 위험은 무슨? 여기 어디 위험이 있다는 건지 내게 가리켜  

 보라지! 시시한 일이야! 별거 아냐.....!>

 - 도스또예프스끼 『분신』, 석영중 역, p 129 -

정신 분열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미쳤다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골랴드낀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될 대라는 식’으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골랴드낀은 너무 불안과 걱정에 지나친 나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행위의 주체인 자아마저 분열되고 말았다. 오리지널 골랴드낀은 현실적 자아이며 분신 골랴드낀은 내면적 자아인 것이다. 분신 골랴드낀은 오리지널 골랴드낀이 했던 방약무인한 행동들을 따라 한다. 그러나 오리지널 골랴드낀은 분신의 행동에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으며 쩔쩔매고 있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골랴드낀에게는 현실적 자아만 남고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결국 두 개의 모순된 자아의 분열이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분신』에서 보여주는 세밀한 심리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그러나 이 작품 발표 당시 반응은 너무 싸늘했다.『가난한 사람들』발표 이후로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비평가 벨린스키마저도 이 작품을 외면했으며 심지어 번역가인 석영중 교수도 역자 후기에서『분신』의 전체적인 미흡함을 지적하고 있다. 자고 난 뒤 한 유명인이 되어버린 젊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자신의 능력에 자뻑에 빠지다보니 문학적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러시아 문단에서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이 나온 시기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하고 난 이듬해에『분신』을 발표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인기를 더 얻기 위해서 집착하다보니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너무 조급했던 것일까? 만약 그가 조그만 더 참고 마무리 교정만 열심히 했었더라면 냉담한 평가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분신』이 발표하기 전에 11년 전에 니콜라이 고골은『코』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는데 두 작품은 플롯과 전개가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작품의 주인공의 직업은 하급 관리이다. 고골의 작품은 주인공의 코가 갑자기 떨어져나가 자신의 분신인 마냥 관리 행세를 한다는 내용인데 비현실적인 전개와 분신 모티브는 나중에 발표된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과 비슷하다. 도스또예프스끼 본인도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작품에서 나왔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고골이 러시아 문학에 끼진 영향은 어마어마하며 그도 고골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권위 있던 비평가 벨린스키는 『분신』을 읽고 난 뒤, 고골을 모방했을 것 같은 졸작의 구린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러니 벨린스키로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차기작에 대해서 너무 기대했던 나머지 정작 읽고나니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7080 노래 제목 중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라는 것이 있다. 한번쯤 겪은 실패의 고통은 훗날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진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가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입장에서는『분신』의 실패가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하기 싫은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경험한 문학적 실패 덕분에 앞으로 나오게 될『죄와 벌』과『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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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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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cafe.naver.com/openbooks21/742  

 

 네끄라소프처럼 독서하기 
  

새벽 2시, 밤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편의점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진열된 물품뿐이다. 조용하다 못해 너무 고요하다. 딱 잠이 몰려올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이다.  

2년간의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뒤, 사회로 복귀하여 3개월째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카운터로 일하고 있다. 군인 시절에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던지라 전역을 하고나면 원 없이 잠을 실컷 잘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야행성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르바이트 모집 전에 편의점 사장님과 면접을 하면서 군 생활 시절에 많이 밤새봤다면서 나를 고용해달라고 자신 있게 어필했었건만 진짜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줄이야.....   

편의점 안에 혼자서 카운터에 앉는 것도 그리 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속도는 느리지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다. 심심하면 간혹 열린책들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으니깐. 그러나 쏟아져오는 잠을 못 이기지 못해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은 항상 느끼게 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많지 않은 잠으로 지쳐있는 정신을 회복시키고 점심시간에 일어나면 그 때 몰려오는 피곤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낙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도 나름 장점이 있긴 하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멍 때린다거나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와 독서를 한다. 새벽 2~3시 이후부터는 손님이 드문드문 오게 되고, 편의점 내부는 조용해서 공부와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편의점에서 읽었던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처녀작『가난한 사람들』이다. 광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 지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관련된 일화가 재미있다. 러시아의 시인 네끄라소프가 밤 새워 가면서 이 작품을 끝까지 완독하자마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권위 있는 문예 비평가였던 벨린스키에게 원고를 주면서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당시 신인 소설가였던 도스또예프스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 봤던 것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기에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신인 소설가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걸까?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나도 네끄라소프와 심정을 느끼면서 그의 처녀작을 밤 새워 읽게 되었다.  

네끄라소프도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책은 새벽 2시부터 읽기 시작했다. 간혹 몇 몇 손님이 들어와 흐름이 끊기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독서를 하는 도중에 피곤함이라는 불청객은 찾아오지 않았다. 4시 10분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러시아의 우석훈이 나타났다.” 

  

 


 공포 경제학적 소설

작품 속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에는 당시 러시아 빈곤층의 현실과 애절함이 숨어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상대적 박탈감이다.『가난한 사람들』속에 숨겨진 공포의 경제학을 발견하면 서늘한 진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88만원 세대』출간했던 당시, 우리나라 기성세대들 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들까지 우석훈 박사의 지적에 대해서 당혹감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3년 전, 어느 경제학자가 쓴 독특한 제목의 책이 서점가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름은『88만원 세대』. 이 한 권의 책은 우리나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과 이로 인해서 발생한 세대 간의 경제학적 갈등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석훈 박사의 단독 저작이 아니라 박권일이라는 사회부 기자와 함께 쓴 것이다. 그래서 박 기자 특유의 취재의 눈은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어두운 생활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88만원 세대』출간 이후에도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포함해서 4권 정도 나왔다. 그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불편한 사회적 진실들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비판, 분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연구 활동을 ‘공포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스또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일종의 공포 경제학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적인 작품 구성은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역시 가난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의 연애 모드로 설정하고 있다. 서술도 두 사람 간의 서신 교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그냥 가난한 연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가볍게 읽을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편지 내용에는 두 인물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는 구절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제부쉬낀은 넥타이와 셔츠 하나도 일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정도의 가난한 상태이다. 재미있게도 알렉세예브나는 그런 제부쉬낀을 동정하면서도 제발 가난한 티를 내면서 살지 말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신도 제부쉬낀을 동정하고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부유한 입장도 아니고 그럴 잔소리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가난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알렉세예브나가 시골 농장 대지주인 비꼬프와 청혼하기 때문이다. 알렉세예브나의 청혼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보낸 제부쉬낀의 마지막 편지에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처지와 사랑의 실패가 제부쉬낀을 두 번 죽이게 된 셈이다.  
 

 

  

 

 가난이 죄인가요?

 

제부쉬낀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겨냥한 알렉세예비치의 잔소리가 불편했던 것일까? 결국에는 참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을 편지 통해서 털어 놓는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소릴  

  한다고  화를 내지는 말아요. 제 가슴속은 번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 선천적으로 그래요. 이미 옛날부터 느끼고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들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 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 도스또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역, p 129 -

이 구절을 보게 되면 인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뛰어난 관찰력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쓰고 있을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수 백 년이 지난 지금의 빈곤층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단지 '가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하는 따가운 시선은 빈곤층들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에 빈곤층 자녀일수록 정서 불안이 심각하다는 통계의 기사를 접했다. 특히 열 명중 한 명 꼴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빈곤층 자녀와 ADHD 발병의 상관 관계의 원인을 자녀를 향한 빈곤층 부모의 소홀한 훈육과 일반 가정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낮은 경제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권위 있는 연구소의 자료라도 그냥 믿어버리지 말고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단순하게 빈곤층 가정 입장 쪽으로 원인으로 몰아가는 주장을 그대로 믿게 되버리면 오히려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꼴이 된다. 정신학계에서는 ADHD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밝혀진 바가 없으며 다만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원인을 추측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정서 박탈 같은 심리 사회적인 요인도 정서 장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빈곤층 아이들에게 향하는 주위의 시선들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봉원 어린이의 추억

 

그런 예를 쉽게 들어보자면, 8월 18일에 방영된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개그맨 이봉원 씨가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 사실은 지금과 같이 성격이 쾌활하지도 않았으며 의외로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했다고 밝혔다. 허름한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 정도로 집안이 너무 가난했었고 얼마나 가난했었으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 가면 옷도 만날 같은 것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봉원 어린이(?)의 짝꿍은 당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예쁜 여자아이였는데 가난한 티를 내고 다니는 봉원 어린이를 무척 싫어했던가 보다. 얼마나 싫어했었으면 책상에 선을 그어 봉원 어린이에게 선 넘어 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대부분 남성이라면 옛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그래서 여자 짝꿍의 어이없는 으름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책상 권리(?)를 찾기 위한 대립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심한 봉원 어린이는 그만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라도 짝궁의 책상 범위로 넘어오지 않기 위해서.....  이봉원 씨는 녹슬지 않은 재치있는 개그로 썩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풀어놓았지만 지금의 빈곤층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은 아마도 어린 봉원 씨가 느꼈던 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서 이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이제 옛 말?

 

지금은 과거보다 경제도 좋아졌고 대부분 잘 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봉원 씨와 같은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당시 못 살았고 소박했던 시대의 재미있는 추억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교육을 할 것이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짝꿍과 어울리면 괜히 자신도 가난한 아이로 볼게 될까봐 책상 위에 선을 그었던 것처럼 그런 부모들은 자신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마음껏 뛰어 놀고 어울려야 할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도 선을 그어놓는다. 더 무서운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습성이다.

그런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부모의 못된 생각을 되물림받게 된다. 자신의 이상형은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하며, 대기업 임원과 같은 생활이 보장되는 사람을 만날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성격보다는 우선적으로 배우자의 직업, 재산 보유 그리고 집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먼저 따지고 보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인 사람들에게는 결혼은 그림의 떡이다. 이제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꿈꿀 수도 없는 사치스러운 연애일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

이 시처럼 가난하고 애틋한 추억의 감정이 있는 사랑은 이제 옛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 구절처럼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한다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우리보다 힘든 생활고에 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분들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진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만 그런 분들이 있기에 차갑기만한 현실 속에서도 아직도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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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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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장미 -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
오도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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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왜.....” 
 
최근 인터넷에서 한 어린이가 쓴 짤막한 시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 연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어느 연예인이 초등학생들이 직접 쓴 동시들을 낭독하게 되면서 그 중에 이 시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가 낭독된 이후, 남성 연예인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웃었지만 그들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지자 그들의 얼굴에는 씁쓸함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아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린이가 말한 이 시 속의 '아빠'도 될 수 있기에.....   

이 시가 TV에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들도 올라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의 제목을 보게 되면 한 편의 어설픈 삼류 멜로 드라마 속 대사를 상기시킨다.  '이 기사 읽어보세요.'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 제목에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구들을 연발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시가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울리다.'   

  '초등 2년생의 시에 눈물젖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짧은 시에 담긴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기사의 출처와 작성한 기자가 각기 다른데도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감성적인 문구를 타이틀로 내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사문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하나같다.  

'가정을 위해서 밤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  

'일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준 적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주말에 쉬는 날이면 평일 직장 생활 때문에 피곤해서 아이들과 제대로 논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어느 기사의 마지막 글에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지어서 우울한 기사문의 반전을 꾀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번 초등학생이 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씁쓸한 웃음만 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직장 없는 아버지들은 이 시를 보자마자 쓴웃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일을 하지 못해서 슬픈 비정규직 근로자 부모님들  

이 시를 쓴 초등학생은 일 나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놀아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집에서 놀아주는 어머니를 비교하여 집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쓴 시의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는 '근로자'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다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직장을 되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벌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노동자)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오늘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투쟁중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한다. 적은 보수이지만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직장을 가진 근로자였다가 한순간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어버렸는데, 대부분 회사가 갑작스럽게 파산을 맞게 되면서 직장을 잃어버렸다거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생해서 일하다가 결국에는 보수나 재정적 가치는 한 푼도 받지도 못한 채 퇴직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라는 속담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생한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보람조차도 느끼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버지들만 있는 것인가?  아이들을 예뻐해 주는 어머니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맡았다거나, 대학교 내 청소 용역, 학습지 교사 등 직업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얻은 것이 신체를 망가뜨린 '병' 그리고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꼬리표를 다면서 생긴 '마음의 상처'였다.  

특히 부부중에 자식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쏟은 사람이 어머니다. 제 자식 좋은 교육 받게 해서 좋은 대학 보내주고 싶은 마음은 자식을 향한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된 애정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하루하루 24시간 공장 밖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피켓을 든 채 울부짖는 비정규직 근로자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함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마음도 병이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만든 초등학생의 시 
  

  대기업이 건설하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보세요.
  이곳에 살면 삶이 참 안락하고 행복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에 시달려요.    

  - 『밥과 장미』 [어느 아파트 건설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 오도엽, 삶이 보이는 창, p 142 -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처럼 잘못될 대로 잘못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아버지들의 삶과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50%의 아버지들은 늦은 시간동안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게 되면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집에서만 여유롭게 일에 대한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는 집에 오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의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행복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50%의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은 오히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니, 자신들도 정규직 근로자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할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마음 한 구석에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돈을 벌오기는커녕 하루종일 노조투쟁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식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학교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써놓은 공간에 당당히 '비정규직'이라고 쓰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러고 사는지, 그리고 왜 있는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초등학생의 시 한 편 가지고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일 할 권리조차 얻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무력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잔인한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햇새벽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절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일부 - 
  

지금도 박노해 시인의 시 내용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절망적인 삶의 벽인 노동 현실을 분노하면서도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몸부림만 하다가 하루가 저물 즈음에는 소주로 분노를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슬픔을 이겨야 하겠다는 깡다구와 오기가 서려 있다. 그런 독한 정신이 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근로자답게, 아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되는 햇새벽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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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 - 무엇이 남자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황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부부 동반 분만  

만삭의 배우자가 이제 막 출산이 임박하려고 한다.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크게 걱정하기 시작한다. 산부인과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침대에 눕히어 분만실로 향한다. 아내가 무척 걱정이 된 남편 역시, 아내가 향하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싶어 하였다. 진통으로 힘들어 하지 않게 아내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남편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만실에 입장할 수 없다면서 막아섰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분만실 밖에서 혼자서 대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부부들은 이런 경우 공감하실 것이다. 배우자가 초산이라면 남편 분들이 크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분만실에 입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TV 드라마에서의 출산 장면에서도 분만실에는 임산부와 몇 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오고, 그 임산부의 남편은 대기실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부들도 젊은 층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임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출산 경험이 있는 부부들을 중심으로 임신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분만실과 부부가 동반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부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남편도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출산의 기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산부인과도 있다. 또,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남편이 직접 갓 세상에 나온 신생아의 탯줄도 자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신생아의 배꼽에 달려 있는 탯줄을 남편이 직접 자름으로써 이제는 ‘남자’가 아닌 ‘아버지’가 되었음을 알리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출산 풍경은 극히 일부분이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산부인과도 있고, 초보 부부들 사이에서는 가족 동반 분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를 움직이는 9가지 호르몬 

뇌 연구가이자 『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의 저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임신한 아내와 사는 남편의 심리 상태를 뇌의 특정 호르몬 발현 작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남자의 뇌에 작용하는 중요 호르몬 9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뇌과학에 대해서 전무하다거나, 나름 뇌에 관해서 좀 안다는 남자와 여자 독자들은 저자가 설명하는 9가지 호르몬에 관한 내용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의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여자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을 말해보라고 하면 테스토스테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잘못돤 상식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이전에 여자의 뇌에 관한 대중과학 도서를 쓴 적이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남자의 뇌에 대해서 책을 쓴다고 하자,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재미있다. "남자의 뇌는 단순해서 이번 책은 쓸 분량이 적겠네요."  

그러나 저자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남자의 뇌 역시 여자의 뇌 구조처럼 복잡하고 여러가지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뇌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뮬러관억제물질(MIS),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에스트로겐, 도파민, 코르티솔, 안드로스테네리온, 프로락틴이라는 것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많은 사람이 다 알다시피 목표지향적이며, 권위적인 남성적 특징을 발현하도록 한다. 뮬러관억제물질(MIS)는 여성적 해동과 감정을 발현하기 위한 회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은 공감과 애정 회로를 형성하게 하는데,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 관계 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제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가족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나게 해준다. 에소트로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많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특징르 발현하게 하는 여성적인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이고, 역할은 적지만 남성에게도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으며 그 적은 역할은 남성 성격 형성에 중요한 임무이다. 옥시토신을 자극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이 있어야 옥시토신을 자극하여 남성들도 공감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도파민은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며 다른 호르몬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어른들이 도박에 쉽께 빠지는 것도 이유가 있다. 코르티솔은 쉽게 화를 내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래서 남성이 이성적인 여성보다 순간적으로 화를 쉽게, 잘 내는 편이다. 안드로스테네리온은 성적 매력을 풍기게 한다. 여성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게 되고, 결혼을 성립하게 만드는 나름 큰 역할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프로락틴 

마지막 호르몬 프로락틴은 앞에서 언급한 부부 동반 분만과 관련이 깊다.  

배우자가 출산을 앞두게 되면 남편의 뇌에는 프로락틴이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의 출산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고, 그 임신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를 '쿠바드(Couvade) 증후군' 이라고 한다. 원래 '쿠바드'는 남편이 아내의 출산 전후에 출산에 부수되는 일을 행하거나 흉내내는 원시 사회의 풍속을 뜻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만(擬娩)' 이다. 그래서 프로락틴이 한창 생성되는 시기에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에 대해서 각별하게 신경을 쓰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내의 출산에 대한 걱정이 다른 가족들보다 많은 것도 뇌에 프로락틴이 작용되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남성들은 심리적인 변화만 겪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도 겪게 된다. 출산 경험이 있는 저자는 출산 임박 당시, 남편의 몸무게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락틴은 단순히 아내의 임신을 공감하게하는 심리적 역할을 넘어서 성적 욕구를 감소하게 만들어 아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해준다. 즉, 남자는 스스로 '아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나 다름없는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빠가 되는 것이 아니라,아기가 아내의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남성은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에 모든 남녀들이 읽어야 할 책 

평소에 뇌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의 수준이 초, 중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누구나 알만한 남성의 뇌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종의 '남성 뇌 탐구생활'이라고 해야되나. 저자의 전작 베스트셀러인『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과 겸하여 읽으면 '남녀 뇌 탐구생활'이 된다.

그러나, 남자 아이를 키우는데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 남성들은 섹스에만 밝히는 본능적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왜 그런지 모르는 여성들은 꼭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왜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 프로락틴의 작용과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내용에 염두하여 이제 막 아빠가 되려는 남성들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아내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부부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이 되었고, 갓 태어난 아이가 이제부터 가정의 일원이 되었으면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남성을 보여줘야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겉으로만 남자다움을 강조하여 남자라고 만날 백번 부르짖기는 보다는 왜 남자다워야 하는지, 남자답게 만드는 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실이 있는 남자가 진짜 남자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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