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 평전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 이광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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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엥겔스의 러브스토리  

컴퓨터를 켜면 항상 찾는 곳이 있다. 알라딘 서재와 가입되어 있는 출판사 공식 카페 두 군데.  

이런 온라인 공간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이라기보다는 적지 않은,,, ;;;;) 사람들 덕분에 인생 공부를 하게 되고 이전에 접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알라딘 서재와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인생 선배인 동시에 독서 선배인 분들을 통해서 좋은 책을 알게 되는 횡재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13929 

 

W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카페 매니저분께서 쓰신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 리뷰를 읽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엥겔스가 참 멋지다고 적으셨다.   

       '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 , , , ? '

엥겔스라면, 마르크스와 함께 세계 흐름의 판도를 뒤바꾼 저서 <공산당 선언>을 쓴 사상가 아닌가.  유명 인사들의 러브 스토리는 그들의 사상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부르짖은 혁명가답게 불꽃 같은 열정의 사랑을 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뷰를 읽은 것에 대한 댓글을 적으면서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 살짝 궁금하다고 적었을 뿐인데, 매니저님은 친절하게, 그것도 너무 상세하게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답글로 무려 4개나 달아주셨다.  (<야성의 사랑학>의 구절을 인용하면서까지, , , 이 글에 소개되는 엥겔스 이야기는 <엥겔스 평전>의 내용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젊은 엥겔스는 영국의 맨체스터에 위치한 방적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메리 번즈라는 여성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는 당시 사회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엥겔스는 방적공장의 사장인 부르주아였으며 메리 번즈는 그 방적공장 안에서 방적 기계나 다름 없었던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였던 것 이었다.  이들의 만남에 대해서 기성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간혹 메리 번즈를 대동하기도 했었는데, 주위 부르주아들 입장에선는 심기가 불편했다.  돈 많은 자본가가 거지나 다름없는 노동자와 사귀고 있으니 , 당연히 좋게 볼리가 없었다.  설상가상,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이들의 교제는 환영받지 못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이 적대시하는 부르주아의 위치에 서 있기도 하였다. 이렇다보니 이전부터 부르주아 방적 사장이 프롤레타리아 여성 노동자를 꼬셔서 사랑 놀음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의 절친한 동지인 마르크스마저도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를 무척 껄끄러워 하였다.  유대인의 피에서 흐르고 있는 도덕적 엄격성을 지닌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엥겔스가 여자친구를 대동한다는 것은 격식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눈치에 엥겔스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결국, 메리 번즈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밤에만 몰래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엥겔스는 단지 그녀를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교제를 통해 부르주아 자본가들에 의해 비참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 역시, 엥겔스의 사상에 동조하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였다.  

 

 

  엥겔스의 이중생활  

이 분의 엥겔스에 대한 댓글을 읽고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트리스트럼 헌트의 <엥겔스 평전> 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때마침, <엥겔스 평전>이 출간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다.  목수정의 에세이집 <야성의 사랑학>에서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만 소개되어 있지만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봐서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이번에 나온 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상가에 대한 자질구레한 삶의 기록들이 세밀하게 공개하고 있다.  엥겔스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마르크스이다보니, 이 책에서는 엥겔스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실생활 역시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실, 내가 이 600페이지 정도 되는 엥겔스의 일대기를 읽어보고 싶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면서도 왜 부르주아 자본가 생활을 해야했던 것일까?' 

앞에서 소개된 엥겔스의 러브스토리를 읽어보신 분들도 한 번 이런 궁금중이 일어났을 것이다. 메리 번즈와의 교제가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모임, 둘 다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역사적인 인물의 은밀하고도 이중생활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적인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대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존경하고 선호하던 위인이 알고보면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어느 위대한 인물을 그린 ' 평전 ' 이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  ' 평전 ' 이라는 장르에는 한 인물의 일생에 대한 저자 자신의 평론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난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생을 가지고,  ' 좋다, 나쁘다' 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며 그들처럼 우리 역시 이중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평전에 대한 평가는 우리 스스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가 되어버리는 꼴이다.  

사실, 엥겔스는 부유한 자본가 출신이다.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화려하고 풍족한 부르주아 생활의 매력을 엥겔스라는 사람 역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과 당구를 즐겼고, 그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체셔 여우사냥 대회였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의 기록에는 엥겔스가 얼마나 여우사냥을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 그는 말을 정말 잘 탔고, 여우사냥용 말을 따로 갖고 있었다. 지역 신사와 귀족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기수 전원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는 한 번 도 빠진 적이 없었다. " 

 - <마르스크 평전> p 347 -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빛나게 해준 2인자 엥겔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엥겔스는 ' 방적공장 사장 엥겔스 ' 로 죽지 않았다. 부르주아적 유흥과 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의 사회 건설에 대한 염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영국의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급진적인 아들의 성격을 고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보수적이면서도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적인 삶을 강조하는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엥겔스 역시 한 때,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가업에 대한 수련을 쌓았지만 아버지 몰래 사회 개혁에 대한 사상의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짓눌리고 있는 억압적이면서도 엄격한 가풍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오죽했으면, 아버지에 대한 엥겔스의 기록에는 아버지를 돈만 밝히는 속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년시절의 엥겔스의 모습은 단란한 분위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엥겔스 본인의 기록에서는 아버지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이 방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엥겔스의 사회개혁에 대한 꿈을 키워주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방적공장 사장으로서의 엥겔스는 부르주아 세계의 매력을 헤어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수입을 마르크스의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가족을 재정 지원해주었다.   엥겔스의 든든한 재정지원 덕분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엥겔스는 자신의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기보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인정해주었고, 그의 사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와의 관계에 대한 은밀한 사실(?)들은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학문적인 동지 이상정도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엥겔스에게는 마르크스는 친척이나 다름 없었으며 마르크스의 딸들 역시 엥겔스를 천사표 '둘째 아버지 ' 라고 표현할 정도로 엥겔스와 마르크스와의 돈독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마르크스에 대한 엥겔스의 우정도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마르크스에게는 자신의 가정부와의 불륜이라는 좋지 않은 과거와 자신의 사생아를 냉정하게 홀대한 좋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이 사생아의 친부임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해줘야만 했으며 숨을 거두기 전에 마르크스의 친딸에게 숨겨왔던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만약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만나지 못했더라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라는 이름 역시 세계사 교과서에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마르크스보다는 인지도가 낮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르크스라는 존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엥겔스의 노고 덕분이었다. 

 

  엥겔스의 은밀한 매력

여타 인물들의 평전을 읽고난 뒤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엥겔스와 같은 훌륭한 인물도 결국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를 밝힌데다가 부르주아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여우 사냥을 엄청 좋아하는 엥겔스의 모습은 그 역시 남성적인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를 자신의 사상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 속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생을 즐길줄 아는 멋진 속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꼭 이런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서도, 성적만큼은 우수한 학생말이다.  이런 학생은 놀 땐 놀 줄 알고, 공부할 때는 확실히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 멀티플레이어' 학생들을 보면 무척 얄밉게 생각한다.

엥겔스의 인생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멀리플레이어' 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앵겔스는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결국, 꾸준한 노력은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주의의 틀을 확립한 사상가로 자리잡았다.  마르크스는 평생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연구에 몰두하였지만, 엥겔스는 밤새도록 놀면서도 자신이 해야하는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였다.  나름 터프한 성격의 마르스크 입장에서는 엥겔스의 이런 모습이 속으로 무척 얄미웠지도 모른다. 우리가 ' 멀티플레이어' 학생을 은근히 질투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엥겔스의 이런 이중적이고 은밀했던 삶을 질투한다거나 혹은 생각했던 것만큼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엥겔스가 참으로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낮에는 유흥을 즐기줄 아는 플레이보이, 밤에는 사회개혁을 위한 사상 연구에도 전념할 줄 아는 모범생이 될 줄 알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겸손히 여기줄 아는 엥겔스는 참으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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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이건 뭐 700여쪽에 달하는 평전을 다 읽은 듯합니다. 재미있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만큼이나 반딧불이님도 많이 관심이 가는 책이었는데,,
제 글이 반딧불이님에게 스포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직접 읽어보시면 이 글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으실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평으로 미루어 보건대 헌트는 엥겔스에게 반한 모양입니다.

소련 맑스 레닌주의 연구소의 엥겔스 전기는 국역본으로 두 권 합해서 750쪽이 넘습니다(이건 구하기 힘듭니다.저는 운좋게도 10년 전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만).그래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 전기보다는 읽기가 더 낫더군요. 맑스 엥겔스 공동전기로 동독의 하인리히 겜코브가 쓴 <두 사람>은 지금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냉전시대의 공산권에서 나온 전기와 냉전 이후 서방국가에서 나온 전기의 차이점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는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자가 대체적으로 엥겔스는 좋게 보고 있어서, 자이트님 말씀대로
반한 것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기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헌책방에 가보면 심심찮게 8, 90년대에 번역된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이 눈에 띄던데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네요.
사실, 프랜시스 윈과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마르크스 평전 내용의 에센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맥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사야 벌린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