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술 모임에 대한 단상

며칠 전, P 출판사에서 주최한 강연회 참석을 통해서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출판사 카페 회원분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는 카페 회원분들끼리 술과 안주를 함께 뒷풀이도 하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카페에서 만나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 터라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 분들이라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대화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어 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면 낯을 가리게 되는 나 역시 책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회원분들과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화의 주제는 폭 넓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인생 이야기나 지금까지 본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회원분들의 대화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영화 관련 대화와는 수준이 달랐다. 그 때 대화에서 언급되었던 영화들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한 분이 얼마 전에 개봉되었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기억이 난다. 홍상수 감독 , ,,,  그의 이름과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영화제목들은 많이 들어봤는데 , , ,  살면서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의 대화를 열심히 경청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머릿속으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거기에다가, 서로 영화 한 편의 내용에 대한 감상을 대화 주제로 나누는 모습도 무척 놀라웠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느꼈던 감상이 술 모임의 대화 주제가 될 수 있다니 , , ,   지금까지 수많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가 뭐였더라 , , , ?      음 , , ,   기억이 안 난다. -_-;;   

아니, 술 마실 때에는 대화란게 없었던 거 같다.  만나자마자, 여러 명 둘러 앉아 소란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주문한 술들 다 억지로 비워내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 부르고, 3차는 당구장으로 향하는,  이 획일화된 술자리 루트(?)에서는 폭음의 충격을 진정시켜줄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없었다.   그나마 술 모임에서 했던 대화는 선, 후배나 동기 뒷담화하거나 그동안 살면서 쌓여왔던 불만들을 토로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술자리에는 항상 마무리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 개 ' 가 되는 것처럼,  내 주위에 술만 들이켰다면 '개' 로 변하는 친구들 덕분에 술자리가 '개판' 이 되기 쉬웠다. 

 

   

  나에게는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  

사실, 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성격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랑할 사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본 게 횟수로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안 본 지 2년 된 거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들 대부분은 헐리우드 출신의 영화들이라서 남들 앞에서 영화 이야기할 때는 나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는 편이다.   

간혹, TV에서 24시간 영화만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영화를 본다고는 하지만, 그 때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다. 재미있는 액션 혹은 스실러 영화 한 편 보게 되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게 되니까.  나에게 영화란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오락거리 혹은 잠시나마 우울과 불안함 따위를 해소시킬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발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다보니, 영화 한 편 보고 난 뒤에 내 머리 속에 남는 건 줄거리일뿐이었다.  내가 왜 이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 ,  

  

 

  

  세대를 초월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듯이 영화 역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영화 한 편 가지고도 1시간은 거뜬히 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의 청자가 영화 매니아가 아닌 이상,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 영화 ' 란 주제는 구태의연한 대화 분위기 띄우기용에 불과하다.  요즘 흥행을 이루고 있는 영화 한 편 이름 살짝 던져주고, 이 영화의 관람 유무를 따진 다음에 자신만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분법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 재미 있다, ' 혹은 ' 재미 없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그리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긴, 꼭 영화를 영화 비평가처럼 분석하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거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나처럼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다거나 주제에 대해 막연하게 꺼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에 관한 대화는 영화 매니아들만 사이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대화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면서 하는 대화가 영화 이야기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집에 있으면 가족 간에 서로 대화를 잘 안 하는 대한민국 가족의 분위기를 비추어보면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와 그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에 대한 대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에다가, 이들이 언급하고 대화 주제로 삼는 영화들 역시 보는 이들에게는 감탄을 하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가 태어날 때 나온 1940, 50년대 영화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영화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유명한 명작들까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이루어진 옛날 영화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쯤에 나온 최신 영화 (이들이 대화를 나눈 시기와 대담을 책으로 나온 연도가 2009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최신 영화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들도 소개되고 있다.  

故 스탠리 큐브릭,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폴락 등 내노라하는 영화의 거장들과 최근에 감독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훌륭한 족적을 남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 대해서 논하며, 영화 관련 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시모네의 관객들이 몰랐던 영화 작업의 뒷이야기등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폭이 넓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아온 모자지간끼리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서로 통하는게 있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단순히 영화 한 편에 대해서 비평가처럼 평가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세대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영화 역시 세대를 초월하는 것처럼, 이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 역시 수십 년 차이의 세월의 벽을 허물고 있다. 영화 그리고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그래서, 모자지간의 영화 이야기는 거실에 따뜻한 커피 한 잔 함께 하는 일상적인 대화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책과 영화는 동격  

책 한 권 다 읽고 그냥 책장에 꽂아버리는 사람과 반대로 한 권을 다 읽고난 뒤에 읽으면서 느껴던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적어두는 사람 그리고 책을 읽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의 독서와 그냥 유행 따라 베스트셀러만 읽는 사람의 독서에 차이점이 있듯이 영화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는 유익한 정신적 영양분이 될 수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지론을 밝히고 있는데, 책과 영화는 동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 책과 영화는 동격 ' 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그 가르침은 그녀의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자식에게 영화를 접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만 골라 보지는 않았으며 아들에게도 자신의 영화 취향을 따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영화라는 장르에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들의 취향을 인정해주었다. 아들이 만화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시오노 나나미 역시 아들과 함께 만화영화를 같이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 할수록 영화 장르에 대한 관심사에도 변화가 찾아오면, 그녀도 따라 변화된 아들의 영화 취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런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교육(?) 방식은 자녀의 정신적 성장까지 자라게 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줄뿐만 아니라 영화 보는 방법 그리고 재미까지도 터득하게 된다.  장점은 이것뿐만 아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하는 시간까지 저절로 생기게 된다.  

단, 유의해야할 점이라면 본인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녀에게도 영화 보는 것을 강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시모네가 만화영화를 많이 즐겨보는 것처럼 어린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녀가 만화만 본다고 해서 타박을 주는 것보다는 자녀가 보는 만화를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이런 교육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은 부모와 자녀가 보는 영화의 취향은 무조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훈은 한 집안의 전통적 도덕관이기 때문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켜야하지만, 영화는 꼭 가족들이 모여 보란 법은 없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아버지 손을 잡고 목욕탕이나 야구장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근처에는 가보지 못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케이블 영화 채널을 즐겨 볼 정도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신데 아마도 폐쇄되고 어두운 실내의 극장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탓일 수 있겠다. 아니면, 어린 내가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유해하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극장에 안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본다. 

분명,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녀가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 한 편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면 나중에 학습에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유독 TV 속 만화를 즐겨 보는 이유가 브라운관에서 비쳐오는 화려한 색상과 음향이 어린이의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하루종일 집에서 만화영화만 보게 되면 한창 뛰어놀아야 할 때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 않게 되며 신체적 성장도 늦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녀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녀의 나이에 걸맞는 만화영화를 시청하되, 단순히 보여주기보다는 부모 역시 자녀와 함께 시청을 함녀서 만화영화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 <로마에서 말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p 26 -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던 것처럼 가족 간의 대화에 물꼬를 트일 수 있는 기회, 아니 세대 간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타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가족과 함께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봤던 영화를 주제로 아버지와 함께 술 안주 삼아 대화를 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해줄 수 있는 동시에 영화 보는 안목까지도 생기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긴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아버지나 어머니 중에서 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극장으로 같이 가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그런데, 아버지는 주말에 등산 모임에 참석하고, 어머니는 영화 따위에 도통 관심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보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기약은 없다지만,  먼 훗날,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게 되면, 어린 자식의 손을 꼭 잡고 영화 보러 극장에 가야겠다.  

  

P.S> 이 책의 분야는 내용만 봐서도 예술, 에세이 중간쯤에 속하는데 글은 엉뚱하게도 가정 교육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다. -_-;;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12-2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이러스님의 글을 보면서 말이죠,
진짜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좋았을건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나이차는 좀 나지만
그래도 같이 술 한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면 재미있겠다 싶어서요.

저는 영화 좋아합니다만, 감정에 질질 끌리는 영화나
너무 사랑 타령하는 영화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은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랍니다. 오늘은 해리포터, 25일은 황해 예약해놨어요. 아하, 신나라~

cyrus 2010-12-23 13:56   좋아요 0 | URL
저는 술 마시며 아무 주제나 수다 떨고 듣는 건 좋아하는데,,
좀 재미없고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걱정입니다.^^;;

마고님은 멜로영화를 좋아하실거 같은데,,^^;;
사실 저도 주로 즐겨보는 영화는 액션, 스릴러 위주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판타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영화 해리포터는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황해,,, 요즘 급 끌리는 영화인데,, 크리스마스날에
보시는군요. 부럽습니다. 크리스마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다이조부 2010-12-23 17:3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마고님은 시리스님 만 편애하시는 구나~

느끼해서 이런 말 하기 주저하게 되는데 인형의 꿈 노래 생각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