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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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151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동안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들을 남겼다. 그가 종이에 기록된 내용들은 한 사람이 알기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 동물학, 식물학에서부터 토목공학과 기계 등 그의 관심 영역이 광범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다 빈치 자신의 왼손잡이임을 이용하여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뒤집혀진 문자, 일명 '거울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노트들은 현재 6000여 장, 총 10권이 현존하고 있으며 각각 노트에 붙여진 이름명이 다르다. 다 빈치가 활동하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이들을 묶어 책으로 만든 필사본을 코덱스(Codex)라고 불렀는데 다 빈치가 남긴 코덱스들은 전 세계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1995년, MS 회장 빌 게이츠‘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 원본을 3500만 달러(한화 약 350억 원)에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하기도 하였다. 빌 게이츠 본인 스스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가 남긴 노트의 보존 가치가 높다. 
 

빌 게이츠가 사들인 코덱스 레스터에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 잠수함, 낙하산 등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시대로서는 앞서가는 훌륭한 아이디어들이다. 하지만 다 빈치는 무수히 쏟아낸 아이디어들을 종이에만 기록할 뿐, 직접 설계를 하지 않았다. 왜 설계 하지 않은 것일까? 그 당시로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기계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시대가 15세기이다보니 다 빈치 본인이 직접 만들기에는 약간은 실현이 불가능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다 빈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다 빈치는 노트에 그렸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그의 제자가 시범으로 비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날지 못해 땅으로 추락하여 비행을 시도한 제자는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만약에 다 빈치의 비행기가 성공했더라면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500여 년 정도 앞선 최초의 비행자로 기록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다 빈치는 자신이 만든 발명품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히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 다 빈치에게 무한 총애를 주고 있던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 공은 다 빈치의 발명 노트를 보고 크게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이 발명품으로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데 이용할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다 빈치의 발명품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명 노트 하나 가지고 다 빈치와 스포르차 공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다 빈치는 스포르차 공의 계획이 영 탐탁치 않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죄 없는 시민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는 것이 뻔하였으며 그는 이런 무서운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다 빈치의 노트의 발명품들은 지금까지도 코덱스 레스터 안에서 남게 되었다. 다 빈치가 실제로 발명품을 만들었다면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평가를 받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 구조도 달라졌을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s 코덱스 퍼블릭(Codex Public)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후 500여 년 뒤. 일본의 어느 여성 에세이스트가 다 빈치의 코덱스와 비슷한 형식의 노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발명마니아』이다.  

 

제출 마감이 임박한 상황 속에서 칼럼을 쓰고 있을 때,   

 

집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자신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밥 달라고 보챌 때도, 

 

몸 속에 점점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자신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고 있을 때에도

 

마리 여사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다 빈치처럼 거창한 발명품도 아니며 마리 여사의 수많은 아이디어 일부에는 도저히 현실 불가능하면서도 황당한 것들도 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게 되면 예전 어렸을 때 에디슨처럼 발명왕이 꿈꾸면서 생각나는 대로 그린 그림이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빈치처럼 자신이 기록한 발명품들을 실제로 만들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코덱스는 다 빈치의 코덱스보다 퍼블릭(Public)하다.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자신만의 생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본 고민과 문제들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만든 것이다. 읽다 보면 '아! 나도 살면서 이런 불편을 겪었는데.....' 라고 공감을 일으킨다.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울트라 초 변신 만능(?) 자동차,  더운 날, 길거리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에어컨, 코골이를 막는 방법, 남성들 소변기에서 오줌 눌 때 안 튀는 방법, 누워서 책 읽는 방법 등등.....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다 빈치의 코덱스가 암호 같은 거울 문자로 이루어져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지만, 마리 여사의 코덱스 퍼블릭에는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에 대해서 일말의 자랑과 과시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세부적인 도안을 곁들인 발명품 그림들을 손수 그렸는데 항상 그림 서명에는 본명이 아닌 '아라이 야요' 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마리 여사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으면서도 또 다른 인물을 탄생시킴으로써 숨어 있던 제2의 능력에 대해 겸손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녀 특유의 문체로 아이디어의 탄생 과정을 위트 있게 설명하고 있어고, 그림에서도 그녀의 유머가 묻어나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다. 

 

  

 

 자연주의자 마리 여사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인간에게 유익한 발명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핏줄이나 다름없는 자식이며서도 분신인 반려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방법, 집 안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모든 반려동물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제안하기도 하며 그의 그림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 사랑을 넘어서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독자들을 일깨워주는 글들도 있으며 대부분 그의 발명품들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큰곰자리를 향해 죽은 노라(犬)의 이름을 붙여 '노라자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마리 여사가 염려했던 천국과 지옥에서의 인구 과밀 현상만 안 일어난다면 지금쯤 천국에서 노라와 함께 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발명여왕 최후의 발명, 『발명마니아』 

 
이 책의 제일 마지막 글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밝히는 최후의 발명을 언급하는 일화가 있다.  

(꼭 읽어보시길.....)

어쩌면 마리 여사의 최후의 발명을 꼽으라면 바로 이 책, 『발명마니아』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녀가 죽고 난 뒤인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된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2006년에 난소암으로 사랑하는 노라가 있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제목만 보고 발명에 대한 과학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읽어보면 엉뚱하기만한 발명품에 대한 글만 늘어놓고 있으니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최후의 발명품인『발명마니아』는 독자들에게 휴머니즘적 유머를 제공하고 있다.  

  

마리 여사의 글을 사랑하는 마니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따분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   

불치병에 맞서서 투병 중인 독자들,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글을 원하는 독자들 그리고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우울한 사람에서부터 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자신이 웃고 있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222 

 

마리 여사의 글을 처음 접했던 책이 <대단한 책>이라는 서평 모음집이었다. 마리 여사를 처음 만난 책치고는 그 책에는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여사를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어두운 면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간혹 암 투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넣은 마리 여사의 밝고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 동물들에게 유쾌상쾌한 웃음을 전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잠시나마 투병의 고통을 잊게 해준 웃음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 발명품을 만들어 낸 토머스 에디슨에게 '발명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주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지구의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와 유쾌한 유머가 버무린 아이디어들을 남긴 요네하라 마리 여사에게 이제부터 단순히 발명만 즐길 줄 아는 발명마니아가 아닌 지구상 유일의 '발명 여왕'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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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 무서운 그림 3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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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만큼 못한 아우    


재미있게 읽은 나가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이 3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라딘에서 접하였다. 생각도 못 했다. 저자의 2권 후기에는 후작을 기대하라는 일말의 힌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가의 힌트를 못 알아차릴 수 있다)  뭐 어떠랴? 재미있게 읽은 책의 후작이 나오면 그냥 읽으면 되니깐. 이런 예상을 하지 못한 후작이 나오게 되면 속으로는 너무 기쁘다. 책에 대한 기대감을 간직한 채 며칠 전, 도서관 신간도서 서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이라서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새벽 일하는데 시간 때울 책이 없어서 곤란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내심 기뻤다. 제목도 '무서운 그림'이니 만큼 조용한 새벽에 혼자 읽으면 뭔가 재미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  

슬슬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새벽 2시 쯤부터『무서운 그림 3』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3권에 소개될 무서운 그림의 목록을 쭉 훑어봤는데, 10% 정도 실망감이 들었다. 몇 몇 그림은 유명한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1, 2권을 읽으면서 헨리 퓨젤리의 <몽마>가 왜 안 나오나 싶었는데 3권에 나오니 약간은 기대감의 맥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초반의 실망감은 마지막 그림인 퓨젤리의 <몽마>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그림들이 그렇게 무시무시하다거나 인상 깊지 않았다. 지루한 새벽의 시간 때우기는 좋았으나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만큼 미치지 못했다.   

흥행영화 한 편과 관련된 후작들이 나오게 되면 항상 전작보다 낫지 못하다는 평을 받게 되는데 책에도 그런 악평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보다.

      

 

 보면 볼수록 애매모호한 그림   

아..... 이번 3권이 생각보다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치다 보니 그렇게 인상 깊은 내용도 없고, 책 내용상 흥미있는 그림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면 안 될거 같고..... 읽고 난 뒤에는 항상 작문의 딜레마가 오는 것이 나카노 교코의 저작이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들 중에서 그렇게 인상 깊지도 않으면서도,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구태의연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브뢰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이라는 그림을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 그림과 관련된 글이 게재되어 있는 블로그가 몇 개 있다. 이 그림을 찾을 때 알게 된 것인데 리뷰 표절 의혹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을까봐 미리 언급하려고 한다. 내용은 블로그의 내용들과 비슷한 것은 사살이지만 그렇다고 블로그 내용 전제를 복사하여 갖다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피터르 브뢰겔의 그림이라고 추정하고 있음 <이카로스의 추락>  

그림 속 범선 밑에 잘 보면 물 위에 발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에 빠져 다리만 보이는 인물이 하늘을 날다 바다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이다.  그림 이름이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장면을 뜻하는 것 같은데 실제 그림에는 이카로스가 추락하고 있지 않다. 그림 속 주인공은 이미 바닷물에 빠져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 나가노 교코는 이 그림을 그냥 <이카로스의 추락>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추락한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라고 부르는 미술 도서도 있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후자의 제목이 그림과 더 어울리는 거 같다. 그림 속 육지에 있는 두 사람은 각자 밭을 가고, 양 치기하느라 이카로스가 강에 빠져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나마 이카로스가 추락한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흰 옷의 남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역시도 자기 코 앞에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고 있는데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거 같다. 그래서 그림 속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적막한 분위기도 난다. 그림 속 세 사람은 묵묵히 자기 일에 빠져 있다. 이카로스가 물에 빠지는 소리라도 들었으면 반응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브뢰겔이 활동하던 16세기 네덜란드는 잦은 권력 쟁탈의 무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 밑에 누가 반란을 일으켜 그 반란자가 새로운 왕이 되고, 왕의 반대 세력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그 반대 세력 중 한 사람이 새로운 왕이 되고..... 나라를 1년 통치하는 왕이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왕좌에 앉아 있기 위해 왕족들은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싸웠다. 그러다 보니 왕족 싸움이라는 고래 싸움 때문에 네덜란드 귀족과 민중의 새우들은 항상 등이 터지게 마련이었다. 왕이 하도 바뀌다 보니 이들도 도대체 누구 앞에서 복종해야하는지 속으로는 속을 앓고 있었다. 현 지배자에게 복종을 맹세했다가 얼마 안 가 지배자가 바뀌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지쳤는지 민중들은 이제 남 일 마냥 세상에 관심을 끊게 되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신이 ‘누구누구의 지배세력을 옹호 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꺼리기도 하였다. 괜히 그 말 했다가는 또 지배가가 바뀌게 되면 모가지 날아갈 수 있으니깐.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이나 무슨 말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 자기 주변에 담을 쌓고 세상사에 대해 회피하였다.
 

  

김선주 씨의 에세이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별 일 없이 산다’라는 글이 있다. 그녀는 장기하의 얼굴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면서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무관심하고 나름 별 일 없다는 듯이 잘 사고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성을 비꼬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이유를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아닌 절망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위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 민중들도 전쟁 없이 너도 나도 잘 사는 네덜란드를 꿈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너무 미약하였다. 결국,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세상의 소리들도 들리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보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살 만하다. 절망 같은 세상 속에도 희망 한 줌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 소수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허투루 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정말 ‘별 일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보다 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온 세상과 주위 사람들이 엿 같다고 해서 자신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외면하면 과연 이 세상에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선주 씨 글의 바늘 같은 마지막 구절이 우리 스스로 세상과 담 쌓아 가두는 삶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찔리게 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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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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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 시절의 로망, 해적  


 


내가 아주 어렸을 때 K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만화 피터팬,  

알고 보니깐 그 유명한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사진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저 후크와,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꽁지머리로 묶고 다닌 피터팬과  

조그만 팅커벨.....  나에게는 디즈니의 피터 팬보다 이 피터 팬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고나니 점점 잊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ㅠㅠ  


  
영화 <후크> 포스터, 이 영화도 꽤 재미있게 봤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이 어린이용 영화가 

초호화 감독과 캐스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 팬 역: 로빈 윌리엄스, 팅커벨 역: 줄리아 로버츠, 후크: 더스틴 호프만. 

 .....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ㅎㄷㄷ)

 

 
오다 에이치로 작 <원피스>
  

속세에 때 묻지 않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에 해적을 동경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제 막 애기 티를 벗고 난 뒤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K 방송국에서 만화 '피터 팬'을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우리 착한 주인공 피터 팬그 특유의 웃음과 포즈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피터 팬의 앙숙 후크 선장에 대한 기억이 더 남는다. 잔혹하고 악한 후크의 냉혈한 심장에는 예전의 순했던 성격과 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다란 배와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후크 선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도 은연히 남성다운 남성이라는 본성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도 해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쯤에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원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동료들과 거친 바다를 모험한다는 해적 판타지 액션 모험 로망 만화(?)였다. 1권부터 초창기 시리즈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군대 갔다오고 다시 읽으려니깐 이미 시리즈는 50권이나 넘어섰으니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어쨌든 나에게 해적이란 캐릭터는 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약탈하는 악한이면서도
광대한 바닷가를 떠돌며 모험을 즐기줄 아는 마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해적의 탄생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해적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서 찾아 낸 새로운 얼굴의 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지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장소와 맞서서 모험과 유흥을 즐기는 마초가 아니었다.

15~16세기 유럽 대륙에 휩쓸기 시작한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유럽의 하층민들은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다’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류층들은 하층민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상업인들은 항해사 모집 포스터에 "바다 위의 재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바다가 손짓하고 있다."라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런 광고 문구를 보고 돈이 궁한 하층민들 중에 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장소를 알지 못했고, 평생 바다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한 하층민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배의 항해사에 모집하였다. 가난한 무직자에서부터 노숙자까지..... 가난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항해사가 될려고 하였다. 그들은 바다 위의 힘든 생활보다는 빛나는 금화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 경험이 초짜였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고생..... 그리고 죽음이었다. 

 

선박 주인들은 여러 명의 하층민 항해사들을 노예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육지에서도 윗 사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바다에서도 그 막노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박 안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대한 바다 앞에서 겁에 질려있었다거나 운이 없게도 태풍과 만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당시 선박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터라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한 항해사들에게는 하루종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지 같은 삶에 지친 일부 항해사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에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반란에 성공하여 거대 선박 한 척을 차지하게 되면 이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남의 선박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들이 바로 '해적'인 것이다. 약탈을 통해서 재화를 차지한 그들은 드디어 막혔던 삶의 해방 통로를 찾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해적들이 바다 위를 활개치면서 다니게 되었다. 

 

 

 

 바다 위에 싹을 틔운 공동체 사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해적도 변하였다. 단순히 약탈을 자행하는 바다의 도둑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개척자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은 일반 선박과 달리 노동 강도가 적으며 방식도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항해사의 삶과 비교하면 해적은 귀족이었다. 그래서 일반 항해사들 중에서도 해적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나미처럼 돈만 밝히고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해적 일원이 꼭 한 명이 있기 마련이다. 해적단에 이런 일원이 한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 해적단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적들은 해적단 내에서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법을 만들게 된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2. (전략)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확실한’  

    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여성을 유혹하여 배에 데려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

  8. 배 안에서는 서로 때려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결정한다.  

  9. 각자 1천 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중략)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바르솔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중 일부, 『문명과 바다』에서 재인용 - 
 


해적 규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해적의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적들이 이 규약을 확실히 지켰을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해적 생활 내부에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한 재물에 대해 동등한 소유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과 동료의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은 이채롭기만 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으로 일원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해보험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적들은 단순히 배를 타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깡패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적 원리를 갖추고 있는 바다 위의 사회 집단인 것이다. 

    

  

 

 

 해적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밀짚모자 해적단원들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면..... 

루피와 그의 일행들이 배 위에서 다투기도 하는데 규약 제6조에 의거하면 육지에서 싸워야한다.

상디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루피는 규약 제1조 식료품 평등권 소유에  

위배됨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만화, 영화에서 비춰지는 해적의 모습은 실제 해적의 모습과 다르지만 해적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례적이지만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1558~1613) 치하 때 드레이크(1545?~1596)라는 선장이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데, 그 공로로 '경'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스페인 선박을 위주로 해적 활동을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애국심이 있는 해적인 셈이다. 국가간 대립이 잦았던 옛날 유럽에는 드레이크 이외에도 적국 선박을 노려 약탈을 자행하는 해적들이 활동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도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약탈 목적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내전 상황에도 개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자국의 극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해적과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 해적의 군사력이 자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적 소탕 작전을 주창한 UN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세계와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요즘 악의 집단으로 변모하는 해적들의 모습과 뉴스를 접하게 되면 어렸을 때의 동경하던 해적은 그냥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순수한 동경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만 하다.   

 

"나는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면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성격이면서도 남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루피와 같은 유쾌한 해적.....  

 

이제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해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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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들의 도덕률이 있었군요.
동아시아의 해적에 대해 저술하려면 아무래도 일본해적들...왜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왜구에는 중국인,동남아인까지 참가해서 다국적이었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cyrus 2010-10-09 17: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해양사가 언급됩니다.
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외국인 하멜의 이야기까지요.
하지만 저자가 서울대 서양사학 전공이다보니
우리나라 해양사의 비중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이야기도 서양의 이야기만 되어 있기도 하구요.
갑자기 동양의 해적에 관해서 설명한 역사책이 출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4   좋아요 0 | URL
진순신 <중국사> 명나라 편에 동아시아 해적 이야기가 있더군요.드레이크 처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해적도 있더라구요.

cyrus 2010-10-1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해적 중에도 영국의 드레이크 견줄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좋은 정보의 댓글을 남겨주신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1 범우 세계 문예 신서 14
리처드 F.버턴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2년 12월
평점 :
품절


 

 

[1001-1] 아라비안나이트

 

 

 무모한 천일야화 도전


이번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주최한 리뷰 이벤트에서 운이 좋게 당첨이 되어 『천일야화』세트를 받게 되었다. 원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세트 중 랜덤 발송이었지만 이미 『신』세트 모두 소장하고 있던 터라 뭐 어떻게..... 저렇게 하여.....『천일야화』세트를 받게 되었다. 사실 『천일야화』세트를 받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읽었던 축약본 아라비안 나이트가 아닌 완역본의 고전을 서재에 있다는 자체가 기뻤다. 그리고 1001Books 독서 프로젝트 목록에도 『천일야화』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번 당첨이 나의 독서에 큰 활기를 불어준 셈이었다.   

 

 



하지만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천일야화』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리처드 F. 버턴 (1821~1890) 판이 아니다. 버턴이 번역하기 100여 년 전에 이미 프랑스의 앙투안 갈랑(1646~1717)이라는 작가가 방대한 이슬람의 전설과 민화를 번역한 것이다. 이슬람 문화를 유럽에서 최초로 소개한 사람을 리처드 버턴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앙투안 갈랑이 먼저이다. 이 책에 대한 알라딘 서지 정보에 의하면 발행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면 괴테, 스탕달 등의 작가에도 큰 영향을.....  

 

이야기가 갑자기 앙투안 갈랑 버전의『천일야화』로 새는 거 같다. 자세한 정보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검색해서 찾아보시길. 어차피 앙투안 갈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고난 뒤, 리뷰에 언급해도 되니깐..... 설명은 여기까지 하겠다.   

  

각설하고, 이제 리처드 버턴 판의 『천일야화』아니, 범우사에서 출간된 『아라비안 나이트』에 대해서 글을 시작해보겠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 1001권』에는 당연히 리처드 버턴 판이 소개되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라면 리처드 버턴이라는 이름의 꼬리표는 항상 붙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좀 망설였다. 출간된 지 무려 17년 정도 되었으며(초판 발행 시기가 1992년 12월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쓴 리뷰에는 이 책에 대한 찬평을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있어서 읽는 내내 지루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같은 형태의 이야기가 나온다.....  

   몇 권부터는 번역이 엉망이다..... 등등.      

 

간혹 평이한 칭찬과 책 속 일부 이야기들을 리뷰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대체로 후반부의 권수로 갈수록 그다지 그렇게 좋은 평의 리뷰가 없다. 그래서 범우사판 시리즈를 두고 보류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벤트에 덜컥 당첨되어서 안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도서관에 당당히 서가에 꽂히고 있어서 최장수 출판 책으로서 위용을 떨치고 있다. 그래서 열린책들 세트가 집으로 배송될 때까지만 1권만 읽기로 하였다. 딱 1권만.....  

 

우여곡절 끝에 1권을 빌리게 되었는데 나와 친분이 있는 동네 도서관의 스마일 사서(남성인데 성격이 무척 착해서 도서관 사서 중에서 제일 친절하고 항상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분이다)가 나에게 1권을 가리키며 씩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건투를 빕니다."   

    ...... ??

 

그 말을 바로 듣자마자 이해를 하지 못한 나는 한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표정을 본 사서는 본인도 헌책방에서 범우사판 시리즈를 헐값에 구입해서 읽었는데 4권까지 읽다가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버턴이 쓴 완역판이라서 범우사 시리즈가 최고인 것은 인정하였지만 역시나 이 책의 구성의 단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읽기가 쉽지 않음을 토로하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가에 2~4권이 안 보이는데 그 부분의 권수는 보존서고에 보관되어 있냐고 물어봤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은 보존서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컴퓨터에 검색하고 난 뒤,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마일을 활짝 지으면서  

사서가 하는 말.....

  

    "네, 보존서고에 있구요..... 만약에 다음 2권도 읽고 싶으면 

    저에게 이야기하세요. 언제든지 빌려드릴께요."   

    ..... ?! !!!! 

 

나는 의도적(?)이지 않은 사서의 친절한 말에 무심결에 '네' 하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시리즈를 완독하려는 무모한 시민이 되고 말았다. 1권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다음 권도 안 읽어도 되는 일이지만 스마일 사서의 친절한 표정을 보니 안 읽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스마일 사서는 4권까지 읽다고 포기했는데 나는 1권부터 포기하면 X팔리지 않은가! 

  

은연중에 드러난 독서에 대한 알랑한 자존심이 시리즈 도전에 대한 포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읽는데 괜찮으면 다음 권도 읽을 생각이다. 솔직히 1권은 좀 무난하였다. 읽다가 중간에 지루한 느낌은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친절한 스마일 사서가 나의 독서 프로젝트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준 숨은 공로자였던 것이다.  

 

 

아! 아라비안 나이트 특유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구성에 혹한 나머지 이상하게도 리뷰도 길어지게 되었다. 이제 진짜로 내용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사실 1권에는 그렇게 기억이 나는 이야기가 없다. 왜냐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나중에 기억이 남는 이야기가 없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새로운 이야기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서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뭐 계속 읽다보면 적응은 되지만..... 그래도 읽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1권에서 기억나는 이야기라곤 수많은 여자들과 하룻밤의 동침을 하고 난 뒤에 잔혹하게 죽이는 샤리야르 왕의 이야기, 그리고 운명의 여인 샤라자드(요즘은 세헤라자데라고 하는데 출판 당시 외국어 표기법에 의거해서 그런지 이 책에는 ‘샤라자드’라고 표기하고 있다)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외설적인 대화와 삽화들이 기억이 날 뿐이다. 어린이용 축약본이 있는 이유가 원전에 있는 외설적이면서도 잔혹한 내용들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원전에는 샤리야르 왕이 자신의 아내와 흑인 노예의 불륜 장면을 본 뒤에 열 받아서 여성들과의 잔인한 동침을 하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고, 요즘에 나오는 어린이용에도 이야기의 시작을 샤라자드가 샤리야르 왕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부터 일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초반부터 불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곤란하다.    

  

1권에는 우리가 아는 캐릭터인 신드바드나 알리바바의 이야기는 아직 안 나온다. 그래서 내용이 좀 낯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중에 딱 하나 온전히 기억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왕과 매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나오는 왕의 이름이..... 신드바드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 신드바드가 아닌 동명이인의 인물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신드바드 왕에게는 애지중지 키우는 매 한 마리가 있는데, 어느 날에 사냥하는 도중에 왕이 무척 갈증이 나서 눈 앞에 마침 물방울이 흐르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왕은 나무에 흐르는 물을 잔에 받으려고 하는데. 자신의 매가 발톱으로 잔을 엎질렀다. 매의 기이한 행동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왕이 계속 잔에 물을 받으려고 하면 또 매가 잔을 엎질러버렸다. 이에 왕은 무척 화가 나서 단번에 매를 죽이고 말았다. 이제 곧 숨이 멎게 될 매는 왕에게 나무 위를 보라는 몸짓의 신호를 보냈다. 왕은 다 죽어가는 매의 신호에 따라 나무 위를 응시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독사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나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알고 보니 독사들의 입에서 나온 독인 것이었다. 뒤늦게 매의 행동을 알게 된 왕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매를 죽인 것에 대해 큰 후회감에 목놓아 울면서 후회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행동이나 말을 하는지 잘 헤아려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이야기 말고도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난하거나 삶에 대한 교훈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원전이 단순 성인용은 아닌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변강쇠 타령>이나 <고금소총>과 같은 성(性)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듯이 이슬람 인들도 성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자유분방하게 표현할 줄 알았던 것이다. 
  

1권의 또 다른 특징은 버턴이 번역본을 출판 당시 쓴 머리말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판본의 역사(물론 앙투안 갈랑 판본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아랍 어에 대한 언어 법칙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머리말이 무려 23페이지나 할애되고 있다.  

  

분량도 많은 것도 있지만 버턴은 머리말에서 자신의 번역이 이전의 번역보다 월등히 훌륭한 점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가면 설명하고 있어서 읽기에 지루하다. 자신의 정통된 이슬람 어 사용을 자랑하면서 자신의 번역본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도 가지고 영국인 버턴이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식견이 넓고, 본인도 유럽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전파를 주장할 정도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강했던 이유는 머리말의 후반부에 알 수 있다.  

 

   요즈음 영국은, 자국이 세계 최대의 이슬람교도국임을 차차 잊어가는 모양이다.  

   또한 최근에는 조직적인 아라비아어 연구를 경시하고, (중략) 인도 문관(文官)의 임용시험 

   에서조차 조금도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 (.....) 갑자기 이슬람교국에서 통치권을 잡지 않을  

   수 없게 되면, 근소한(지극히 근소한) 우리 우방마저 분개시키고 마는 결과가 되어 결국  

   실패를 겪게 될 것이다.  

 

    - 『아리비안 나이트 1권』[영역자 버턴의 머리말] 리처드 F. 버턴. 김병철 역, p 26 -   

 

영국이 이슬람교도국이라.....??   '인도' 문관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인도를 식민지 삼아 지배하는 영국의 통치 상황을 알 수 있다. 버턴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번역, 출간한 시기가 1885~1888년이다. 인도는 1857년에 무굴 제국 멸망 후, 영국의 식민지국이 되었고, 187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인도의 여왕이 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버턴이 왜 영국을 이슬람교도국이라고 자처하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버턴은 한술 더 떠 이슬람교도를 지배하는 자는 이슬람 교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습득 방법에는 자신이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고 있다.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했던  근대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의 성향이 드러나고 있는 대목이다. 
 

1권은 무난하게 읽었지만 다음 2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앙투안 갈랑 번역본을 읽기 전에 잠깐 버턴 번역본 1권을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일이 커지고 말았다. 일단 2권도 읽어 보기로 하였다. 원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신드바드, 알리바바 이야기 정도는 읽어봐야 할 거 같기 때문이다. 2권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일단 읽을 수 있을 능력이 될 때까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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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차드 버턴이고,앙투안 갈랑이고를 떠나서...
어릴때 만화책으로 말고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ㅠ.ㅠ

cyrus 2010-10-07 21:41   좋아요 0 | URL
아무리 버턴 본 번역판이 세계적으로 알아준다고 해도...
뭐니뭐니해도 그냥 만화로 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아예 원전을 만화화한 아라비안 나이트가
출간되었으면 좋겠네요. 오히려 만화가 더 읽기가 쉽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헌책방에서 40년전 번역된 정음사판을 사서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물론 버튼 판이죠.매 이야기는 징기즈칸의 일화에도 나옵니다.민족이나 국적을 떠나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닌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cyrus 2010-10-07 19:05   좋아요 0 | URL
어! 저도 칭기즈칸 생각 했었는데..
나무에 물을 마신다는 점만 다를 뿐
내용과 결말이 같죠ㅎㅎ
그래서 1권의 내용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는 거 같습니다.
사실 리뷰에 칭기즈 칸 일화를 언급하려다가
리뷰가 아라비이안 나이트화(?)될까봐 언급 안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7 23:01   좋아요 0 | URL
아하...역시 징기즈칸 이야기...아무래도 그게 연상된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무서운 그림 2 -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 무서운 그림 2
나카노 교코 지음, 최재혁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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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그림 속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뒷담화 
 

2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부대 배치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는 사회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군대에서 말하는 우스갯소리로 4분 5초,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아직 신병 티를 벗지 못한 이등병은 5개월 동안 그토록 기다렸던 부대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집이 있는 대구로 향하기 위해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곤 했었는데 가끔 동대구역행 KTX가 역 플랫폼에 들어 올 때까지는 2, 30분 정도 시간이 빌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서울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서점에 들러서 그 때 나온 신간도서들을 확인하였다. 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신간도서들이 많이 나왔었다. 보이는대로 이리저리 움직인 나의 눈길은 독특한 표지와 제목이 있는 책 한 권에서 멈췄다.  


 

     그 책이 나카노 교코의『무서운 그림』1권이었다.  

 

 

제목 자체에 흥미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표지 속 그림도 미술에 관심 있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화가의 이름은 기억은 안 났지만(조르주 라 투르의 <사기꾼>이라는 그림의 일부이다) 책 표지에 있는 힐끔히 쳐다보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본 적이 있었다. 원화는 저 여인 이외에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등장하여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라 투르의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는 직접 읽어봐야 재미있으니까.....『무서운 그림』시리즈에서 소개되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름 흥미 있는 것들이 많아서 리뷰에서 언급하면 스포일러성 내용이 되고 재미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라.....  부제만 봐도 유명 그림 속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읽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목차만 잠깐 봤는데 흥미진진한 그림 속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대구에 도착하면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때 이 책이 대출중이라서 아쉽게도 읽지 못하고 말았다. 휴가 기간이 9박 10일이었다면 이 책이 반납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을텐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기에 독서를 하지 못한 것과 부대 복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정기 휴가 때 꼭 읽기로 하였다.  

 

결국, 1권은 9박 10일 일병 정기 휴가 기간이었던 다음 해 5월달 쯤에 읽게 되었다. 2권 역시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그러니까 올해 전역하고 나서 읽었다. 일병 정기 휴가 갔다 오고 나서 2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 리뷰를 읽기 전에.....

작년에 1권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읽은 지 오래 됐다보니 지금 리뷰로 쓰기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최근에 읽은 2권에 대해 리뷰를 쓰게 되었다. 앞에도 미리 언급했지만 사실 이 책을 리뷰로 쓰는 게 껄끄럽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내용을 리뷰에 언급하고 싶지만 자칫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소개한 그림의 내용은 무시무시했다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그림의 내용에 대해 깊이 사색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2권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은 그림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해 한껏 기대감이 부풀려 있는 독자는 주저 없이 ‘뒤로 가기’를 클릭하시거나 아니면 다른 리뷰어의 글을 읽는 게 나을 것이다.  
 

 

 
한 부인, 두 초상화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위의 그림은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이다. 그림 속 복장만 봐도 부유한 귀족의 부인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의 레카미에 부인은 18세기 프랑스 살롱의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미녀였다. 그래서 제라르의 그림 이외에도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그 중에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자크 다비드와 제라르는 사제 관계이다. 다비드가 제라르보다 먼저 레카미에 부인의 그림을 그렸는데 부인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미완성이 된 채 남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림 하나 그리는데 1시간 만에 뚝딱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긴 시간동안 긴 의자에 저런 자세에 있었으면  모델로서는 짜증이 날 만 하다) 그러다가 부인은 다시 다비드의 제자인 제라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게 된다. 스승인 다비드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세는 다비드의 레카미에를 명작으로 손꼽힌다. 두 그림 속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패션 유행 
  

하지만 레카미에 부인이 다비드에게 반감을 가졌던 진짜 이유는 복장의 차이에 있었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당시 일상적으로 입던 긴 치마의 드레스를 입었지만 제라르의 레카미에는 가슴 라인이 돋보이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자신이 사교계 최고 미녀라는 것을 알고 있던 레카미에는 그림 속에서도 자신의 미모가 돋보이길 바랬을 것이다. 이 두 그림을 대놓고 비교해봐도 제라르의 레카미에가 다비드보다 사교계의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성적 매력이 드러난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사교계의 미녀라기보다는 그냥 수수한 여인의 느낌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레카미에만 자신의 미모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교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여성들도 레카미에 식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요즘 사회를 비유하자면 레카미에는 살롱의 패셔니스타, 패션 아이콘이었다. 귀족의 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레카미에식 패션을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제라르의 그림 속 복장처럼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몸매 라인과 하얀 피부를 강조할 수 있게 얕은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었다. 당시 속옷이 없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여성이 옷 한 벌 걸쳐도 속이 보였다. 이렇다보니 사교계 귀족 남정네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이 한 몸에 받음으로써 자신의 미모가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이름이 사교계에서 알려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했다.  

 

문제는 프랑스 여성들의 복장은 남성의 은근한 성적 욕구 충족 해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난방 시설도 갖추지 않은 시절임에도 프랑스 여성들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가슴이 드러나는 얕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악화되어 사망하게 된다. 레카미에는 당시로서는 장수한 70세 정도 살았지만 다른 여성들은 30세도 못 넘기도 추위 앞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죽음을 부르고 만 셈이다.

 

   

 

골칫거리 패션 유행, 시스루 룩 
 

레카미에식 패션이 낳은 프랑스 사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요즘도 여성들 사이에서 속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 룩(see-through look)이 유행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여성들처럼 어리석게도 추운 겨울에 입지는 않지만, 이 복장 역시 몸매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옷을 입어도 속이 보인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성년자인 여성 연예인이 시스루 룩 복장을 입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아무리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상 어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가 속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는다는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미성년자의 여성 가수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출연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봐서는 패션 유행의 문제점이 그낭 넘어갈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여성의 신체를 노출하는 복장이 오히려 남성 성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은 많지만 지금까지 체포된 성 범죄자들이 노출 복장을 입은 여성을 보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복장과 성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레카미에의 그림을 보면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떠올랐다. 분명 하나의 패션 유행으로 인해서 이런 문제점들이 야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무턱대고 시스루 룩을 아예 입지 말라고는 할 수가 없다. 패션 자체가 그 사람만의 외모를 강조시켜 주며 요즘과 같은 자유 국가 사회에서 1970년대 복장 검열이 도입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패션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좋지만 자기중심적 생각을 벗어나 주위 시선들의 태도를 인식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추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부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아름다움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 이황의 시로 긴 글을 마무리 하겠다. 

  

 

    꽃치고 열흘 가는 꽃이 없고 

   번화한 꽃일수록 열매 적은 법. 

   요즘들 화려함을 숭상하지만 

   근본이 없는데 어디다 쓸꼬. 

 

   - 퇴계 이황「꽃이 화려한들」전문,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편역, 돌베개 -  

 

 

 

 

 

*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haru8365?Redirect=Log&logNo=850113
http://100.naver.com/100.nhn?docid=76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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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7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은 걸요.
형식이나 내용 뿐만 아니라,시각적으로 까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장시간 저런 표정,저런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냔 말이죠.
진짜 무서운 그림 맞는걸요~~~ㅋ~.

cyrus 2010-10-07 21: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댓글을 보고나니깐 모델이 저런 상태에서
오래 있다는 것 자체도 무섭다는 것을 알았네요^^;;

비로그인 2010-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관심있는 부분이 많아서 올리신 글 챙겨보고 있습니다. 근데 이곳에 들르시는 분들 가운데 저위의 양철님 처럼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몇 있으신 듯 하네요~

ㅎ.. 오늘은 좀 들렸던 흔적 남기고 가겠습니다 :)



cyrus 2010-10-22 14: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저도 어떻게 하다보니 다른 분들의 서재에 들리다보니
이렇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취향이 비슷한 분들끼리 만나는것도 같네요ㅎㅎ
저도 바람결님 서재 자주 들릴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