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 - 시대의 위기를 돌아보는 경제학사 두 거인의 날카로운 분석
토머스 호버 지음, 김효원 옮김, 이승환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학문을 가장 쉽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학문의 이론이 만들어지게 된 전체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이론이 발전하면 수많은 분야로 갈라져서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일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모든 면에서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 나오는 상황에서는 학문 전체를 보는 방식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경제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너무 많이 세분되어 발전한 각 경제학 분야들을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접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불리는 시장의 기능과 ‘보이는 손’인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의는 경제학 역사만큼 오래됐다. 《하이에크 vs 케인스 아이디어 전쟁》은 경제학사의 두 거인이 걸어온 길, 그 과정의 대립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케인스(Keynes)하이에크(Hayek)는 20세기 한복판에서 시장의 기능, 시장과 사회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그 고민을 많은 저작과 현실 참여를 통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구현했던 경제학자들이기도 하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의문이 생겼다. 주가는 하루아침에 40% 이상 폭락했다. 공장이 줄줄이 도산했고,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생산은 많은데 사서 쓸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케인스는 시장이 저절로 최적의 상태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을 펴냈다. 미국은 케인스의 처방을 선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에 케인스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결국 케인스의 처방은 효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유럽에 ‘복지 국가’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비대해졌다.

 

케인스 이론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던 세계 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위기를 만났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하이에크의 이론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케인스 이론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하이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하이에크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독일 나치,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사실, 하이에크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노예의 길》을 썼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복지 국가도 위험한 것으로 봤다. ‘복지병’으로 알려진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생기면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지향하는 정책을 폈다.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누가 옳나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선명하게 대비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경제학의 이론적 지형을 드러내는 데 있다. 똑같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인식, 경제 대공황의 처방을 둘러싼 대립, 시장 기능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를 보여준다. 저자는 두 경제학자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한계도 설명한다. 이 책의 이차적 목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경제학’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다. 경제학은 학자들의 세계에서만 논의되는 어려운 학문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만큼 세계를 움직이게 한 학문은 없다. 저자는 대중이 다가설 수 있는 경제학이 되려면,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이해하고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주의 사상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려는 무한한 욕망은 자유주의의 반갑지 않는 측면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론 18세기라면 이러한 욕망은 여전히 환영할만했을 것이고, 애덤 스미스라면 틀림없이 강력하게 옹호했을 것이다.

 

(225~226쪽)

 

 

스미스는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또는 신자유주의의 조상(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 아버지’라면 스미스는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주]’ 정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사상은 훨씬 복잡해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국부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의 동기를 풀어놓고 잘 활용하는 자유 방임 경제를 강조한다면, 《도덕감정론》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회적 이타심을 사회의 구성 원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절제없는 부의 추구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사회의 근본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과 사회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도덕감정론》에 드러난 스미스의 견해를 생각하면 그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강력하게 옹호했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부론》만 본 채 스미스를 부와 탐욕의 화신인 것처럼 오해한다.

 

 

 

 

[주] ‘고전적 자유주의의 어머니’ 또는 ‘신자유주의의 어머니’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자유지상주의자인 아인 랜드(Ayn R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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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8 17:06   좋아요 0 | URL
학자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세력의 하수인이 되는 게 문제죠. 물론 공적 지원금을 받는 학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또 어떤 경제 전문가들은 뻔뻔하게 자신의 분석과 예측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