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Medici) 가문을 거론하지 않고는 르네상스를 설명할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이 부를 바탕으로 한 권력으로 당시 피렌체(Firenze)의 입법 · 사법 · 행정을 장악했고, 교황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권력의 이면에는 엄청난 업적도 있었다. 그들의 사치와 예술 애호 열기가 인류문화의 황금기 르네상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메디치가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은 대단했다. 그들의 지원으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가 됐다.

 

 

 

 

 

 

 

 

 

 

 

 

 

 

 

 

 

 

 

* G. F. 영 《메디치 가문 이야기》 (현대지성, 2017)

* [절판] 크리스토퍼 히버트 《메디치 스토리》 (생각의나무, 2001)

 

 

 

중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본격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시대에 메디치 가문은 이미 자본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거대한 집단이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 업무와 무역을 통해 유럽 전역에서 가장 수익이 많은 가족 사업체로 발전한다. 《메디치 가문 이야기》(현대지성)와 절판된 《메디치 스토리》(생각의나무)는 권력의 정점을 이룬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메디치 가문은 숱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지만, 그 순간들을 돈과 계략으로 모면하면서 살아남았다. 황금빛이 날 것만 같은 피렌체라는 무대의 이면에 피비린내 나는 배신과 칼부림이 있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농촌 지역에서 이주해 온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메디치 가문은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막대한 액수의 결혼 지참금을 들고 온 신부와 결혼하면서 제법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흥 가문으로 성장했다. 작은 땅을 가진 일개 가문이 피렌체를 주름잡는 거대 세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결혼 지참금 제도에 있다.

 

 

 

 

 

 

 

 

 

 

 

 

 

 

 

 

 

 

 

* [절판] 매릴린 옐롬 《아내의 역사》 (책과함께, 2012)

* [절판] 홍성표 《서양 중세사회와 여성》 (느티나무, 1999)

 

 

 

왕족, 귀족 가문의 결혼은 지참금을 매개로 한 ‘재무 거래’였다. 지참금은 보통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한다. 이때 시아버지는 지참금을 자식을 위해 사용하고 헛되이 탕진하지 않을 것은 물론 며느리가 사망하면 반환하겠다는 것을 문서로 약속했다. 즉 서양에서 결혼은 개인들의 애정 관계가 아닌 두 가문의 이해관계로 바라보았으며 가문 간의 계약 관계인 것이다.

 

고대시대부터 여성은 가축, 노예와 같이 남편의 재산목록의 하나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아내는 자식을 낳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다. 《아내의 역사》(책과함께)는 시대별로 달라지는 아내의 정의와 사회적 지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에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다. 《서양 중세사회와 여성》(느티나무)은 중세 영국의 결혼지참금 제도가 여성의 재산권 행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밝힌다. 중세 영국의 결혼 지참금은 남편을 잃은 신부가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데 유용한 재산이었고, 친아들에게도 상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이 법률에 따라 재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재산권의 저울은 남편 또는 친자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 미하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 (부키, 2018)

 

 

그러나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고, 결혼 지참금 제도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크고 작은 전쟁과 흑사병 이후로 사망한 남성 인구가 늘어나면서 ‘좋은 신랑감’ 찾기가 어려워졌다. 귀한 아들을 둔 부모는 신부가 될 집안에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지참금을 요구했다. 딸을 둔 부모는 결혼하지 못한 딸의 앞날을 걱정했고,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했다. 결혼하지 못한 여성은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한편, 신랑 측 집안은 자신들이 요구한 지참금을 받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

 

이러한 결혼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1425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정부는 ‘결혼 지참금 펀드’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딸의 출생과 거의 동시에 혼인 시기를 예상하여 일정 기간 적금 형태로 목돈을 모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이 목돈은 정부가 관리했으며 딸의 혼인이 성사되면 목돈은 지참금이 되어 신랑 집안에게 지급했다. 그래서 딸을 둔 여러 가문들은 딸들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금액의 돈을 정기적으로 저축했다고 한다. 《금융의 모험》(부키)에서는 결혼 지참금 펀드를 ‘금융 공학의 쾌거’라고 평가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evi Strauss)는 근친상간 금기와 ‘여성의 교환’이 인류 사회의 기본 구조임을 밝혔다. 딸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족외혼을 통해 두 집안은 사돈 관계가 형성되고, 집단 간 동맹을 맺는 것이다. 가문끼리 연결된 사회는 점점 더 커지고 더 많은 연대를 이뤘으며 보다 강력해질 수 있다. 이렇듯 결혼 지참금 제도가 정착되면서 동질적 특징을 공유한 가문들끼리 결혼하면서 남성은 손쉽게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고, 여성은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채 지참금과 함께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받았다. 결혼 지참금 제도는 금융기관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지만, 이 제도 덕분에 남성 중심의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결혼은 남편이 아내의 합법적인 주인임을 인정받는 의식이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여전히 결혼 지참금 제도가 남아 있다. 특히 인도의 결혼 지참금 제도는 여성 및 계급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악습이다. 결혼 지참금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신부를 폭행하거나 불 태워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야만적인 악습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일은 비정한 자본주의적 축적의 한 과정이다. 그런데도 (남성)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들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여성의 경제적 종속과 희생에 무관심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적 축적의 야만성을 지적한 마르크스(Marx)마저 여성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외면했다.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을 위해 여성을 이용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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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0-23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이름에 r 하나 빠졌네요 ㅎㅎ 저건 베버의 퍼스트 네임이죠?

결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을 마르크스랑 베버가 알게 되면 쌍방이 언짢아할 실수를 하셨네요^-^

cyrus 2018-10-23 19:25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여성 해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마르크스가 급진적(radical)인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r’자를 뺏습니다....... 는 개소리고, 제가 실수로 이름을 잘못 적었어요... (데헷~ (・ω<))

2018-10-23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3 19:33   좋아요 0 | URL
요즘 같이 독신도 살기 힘든 시대에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요. 제가 사교성이 좋지 않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능력이 없을 것 같아서 연애하고 싶다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1도 나지 않아요. 독신과 부부 생활에 각각 뚜렷한 장단점이 있으니 결혼이 좋다느니 독신이 좋다느니 하면서 비교하는 분위기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8-10-2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올 여름에 영드 메디치를 보다가 말았다.
12부작인가 그렇던데 나름 영상은 좋은데
왜 그리 재미가 없던지 결국 보다...ㅠ
어느 나라든지 역사를 이루려면 꼭 피 없이는 안 되는 것 같아.
피 흘림이 없이 역사도 없는 거지.ㅠ

cyrus 2018-10-23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역사책은 잘 읽는데, 역사 드라마나 사극은 잘 안 봐요.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보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흥미가 느끼지 않으면 안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