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모험 -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하버드 경제 수업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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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에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 신청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는 폭락했고 세계 증시 역시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리먼 브러더스의 성쇠는 파생금융시장 흥망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970년대부터 새로운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군림한 신자유주의는 파생금융시장의 급성장을 이끌었다. 레버리지(leverage) 효과에 도취한 월 스트리트(Wall Street)는 온갖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최첨단 이론으로 중무장한 과학자들은 파생금융시장에 진출했고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시스템을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월 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금융회사들은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여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나 사업을 벌여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성과로 월가의 최고경영자들과 직원들은 매년 연말 두둑한 상여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잔치는 2008년에 멈췄다.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것은 1929년 대공황 이후의 최악의 금융위기였다. 미국 정부는 자국 경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 매입에 나섰다. 위험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보너스 잔치를 즐겼던 금융회사들이 미국 정부에 손 벌리는 것에 대해 미국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금융은 제대로 작동하면 성장촉진제지만, 반대의 경우 독이 돼 금융시장 전체와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금융이 경제에 순기능이 아닌 역기능으로 작용해 위기를 부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끊이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실적을 찬양하기 바쁜 투자자들의 과신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에 대한 신뢰는 붕괴하고 부패가 늘어났다.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금융은 근심거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도한 금융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금융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어떻게 하면 금융에 접근하는 관념들을 누구나 알기 쉽고 수긍할 수 있도록 보여 줄 수 있을까? 금융이 수행하는 미덕들을 깨달아 금융이 하는 일이 개선되도록 할 수 있을까? (22)

 

 

2015년 하버드경영대학원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펼친 미히르 데사이(Mihir Desai)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이 강의를 통해 우리 삶에 쓸모 있는 금융의 가치를 전달하려고 했고,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다. 원제는 금융의 지혜(The Wisdom of Finance)인데, 우리나라 번역본 제목은 금융의 모험으로 정해졌다. 이 책에는 금융과 삶의 문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독자는 이 책에서 사람 냄새 나는 금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보험이야말로 우리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전에 우리는 모두 보험 회사다라는 말도 남기기도 했다. 보험료 인상은 서민들의 주름살을 깊어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이 서민 지갑을 축내는 금융상품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보험은 기본적으로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보험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보험은 우리에게 불확실한 세상을 대처할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가르쳐준다.

 

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의 소설 피니어스 핀에 나오는 바이올렛 에핑검(Violet Effingham)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효율적으로 리스크(lisk)를 관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배우자를 결정할 때까지 배우자가 될 만한 여러 선택지(option)를 확보한다. 에핑검의 선택지 확보 전략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옵션전략과 비슷하다. 그러나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선택지를 모으는 일에 치중하면 선택지를 행사할 기회를 놓친다.

 

데사이 교수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능력 만능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우화를 재조명하면서 금융인들이 알아야 할 교훈을 강조한다. 운이 따른 실적을 개인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과신해선 안 되고,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금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융의 불안은 경기 침체를 일으키거나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켜 실업을 일으킨다. 분명 오늘날의 금융은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금융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해서 금융시장을 고소득자들을 위한 세계로 봐야 할까? 금융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사적인 활동일까? 데사이 교수는 금융을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고 배격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금융을 적대시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우리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은 일부 고소득층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일상 속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가 될 것인가. 금융업만을 위한 이익이 아닌 금융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리 사회의 관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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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3 19:43   좋아요 1 | URL
요즘의 금융회사와 보험회사는 이 책에서 말하는 ‘금융의 인간성’과 아주 거리가 멀죠. TV를 켤 때마다 나오는 보험회사, 대출업체 광고가 싫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