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씽킹 -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가리 카스파로프 지음, 박세연 옮김, 믹 그린가드 정리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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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세기의 바둑 대결이 펼쳐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대국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알파고의 승리(5전 4승 1패)로 끝났다. 이세돌 9단은 단 1승만을 거둬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1승은 알파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를 안겨준 유일한 공식전 1승이었다.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은 늘 흥미로운 관심사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7년. 세계가 경악했던 대결이 펼쳐졌다. 당시 러시아 출신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IBM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와의 체스 시합에서 6전 1승 3무 2패로 패했다. 카스파로프는 체스 역사상 최고 선수라는 평까지 얻었던 만큼 인간의 두뇌를 대표하는 선수로 손색이 없다. 그런 그가 슈퍼컴퓨터와의 대결에서 패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전문가는 십 년 안에 체스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컴퓨터의 빠른 계산능력을 고려해도 인간의 지적 수준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딥 블루의 승리 소식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카스파로프를 컴퓨터와의 체스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체스 챔피언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사람은 1997년 딥 블루가 승리한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시합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처음으로 맞붙은 공식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는 이미 1996년에 6차에 걸쳐 진행되는 체스 시합을 했다. 이 경기는 4승 2패로 카스파로프가 이겼다. 1996년과 1997년 기록을 통틀어 본다면, 카스파로프는 딥 블루와의 체스 시합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체스 선수이다.

 

세기의 체스 명승부 이후 카스파로프는 새로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그는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게 했던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여전히 카스파로프를 ‘딥 블루에게 패배한 체스 챔피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가 ‘적과 동침’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구가’로서 카스파로프가 쓴 《딥 씽킹》(어크로스, 2017)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을 인간을 위협하는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딥 씽킹》은 인공지능의 본질에 가까이 접한 인간이라면 쓸 수 있는 책이다. 카스파로프는 1997년 체스 시합을 회고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를 모색한다.

 

 

“이길 수 없다면 함께하라.”라는 말도 있듯, 나는 컴퓨터와 함께 체스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싶었다. 나는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인간과 기계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 어떨까? (10쪽)

 

 

책의 서문에서 카스파로프는 컴퓨터와의 체스 시합을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스 챔피언 시절 카스파로프라면 컴퓨터와의 체스 시합을 ‘게임’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두 차례 진행된 딥 블루와의 체스 시합에서 승리하고픈 열망이 강했다. 그는 패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딥 블루 이후에 개발된 슈퍼컴퓨터와 인간의 체스 시합을 ‘인간과 인공지능 모두의 발전을 위한 과학적 연구’라고 생각한다. 체스와 인공지능은 서로 연관성이 깊다. 체스는 직관과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요구하는 놀이다. 그래서 체스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실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용 놀이’다. 컴퓨터 개발에 관여한 공학자 대부분이 체스를 즐겨 했고,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알고리즘을 계산하는 체스 프로그램을 발명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 패배한 이후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반감을 보이는 여론이 많아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카스파로프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삶의 질을 크게 향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자리보다 인공지능 활용 방안을 더 중요하게 본다. 정부가 인공지능 기술력이 향상되는 변화의 흐름을 제쳐두고 일자리를 지키는 현실적인 문제에 치중하게 되면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성을 높일 기회를 놓친다. 카스파로프가 정부에게 전하는 제언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인류 발전의 한 단계라고 믿는다. 그의 주장을 믿든 안 믿든 간에 확실한 것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IT기술, 산업, 네트워크 등을 융합한 인공지능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을 무비판적으로 예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등장을 경계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시점이 오는데 이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한다. 인간이 특이점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면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변화를 즐기지 못하더라도 변화에 대한 욕구를 계속 자극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변화하게 될 미래를 예측(걱정)하기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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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1-1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파고는 우리에게 많은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때는 그랬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그게 언제쯤 될지는 잘 모르지만요.
cyrus님, 오늘 많이 춥네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01-11 11:49   좋아요 0 | URL
알파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랄 거예요. 그리고 미래를 걱정할 것입니다.. ^^;;

2018-01-10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1 11:52   좋아요 1 | URL
인간의 욕망이 인공지능에 반영되어 있어서 이제 ‘인간 대 인공지능’ 대결 구도는 무의미해졌어요. 국내 언론은 인공지능 관련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이런 프레임을 계속 써먹을 거예요. 언론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 맞붙는 상황을 계속 강조하면 현실성 떨어지는 인공지능 비관론만 생길 뿐입니다.

이하라 2018-01-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측은 너나없이 할테지만 대비란 것은 쉽사리 나오지않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스티븐호킹박사도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거라는 말을 했었다던데... 대비책을 마련해 줄 인물들이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알수없는 내일이 두렵기도 해요TT

cyrus 2018-01-11 12:01   좋아요 1 | URL
요즘 들어서 인공지능,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예측을 했으면 거기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대비가 필요한데 너무 조용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페크pek0501 2018-01-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기계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와 합병할 것이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결혼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에서.
전쟁이 아니라 결혼이라면 두려울 게 없겠습니다.

cyrus 2018-01-11 12:16   좋아요 1 | URL
인간과 기계가 합병하는 미래가 온다 해도 전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현재까지는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이 ‘인간 대 인간’이라면 호모 데우스의 미래에 펼쳐지게 될 전쟁은 ‘기계 대 기계’일 것 같습니다.. ^^;;
 
현실의 경제학 - 경제는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는가
스티븐 S. 코언.J. 브래드퍼드 들롱 지음, 정시몬 옮김 / 부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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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쿠즈네츠 가설’, ‘쿠즈네츠 곡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가설과 달리 80년대 이래 선진국들의 소득 불평등은 심화했다. 일반적으로 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정책 선택이 딜레마에 빠진다. 지나친 소득 불평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함으로써 경제성장력을 떨어뜨린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경제적 기회와 교육 등 혜택을 누림으로써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경제성장론자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저소득층에게까지 전파되는 이른바 낙수(trickle down) 효과를 믿는다. 이명박 · 박근혜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할 때 내세운 논거도 대체로 낙수 효과다. 통계 지표상으로 본 우리 경제의 모습은 성장률과 서민의 삶이 따로 놀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틀려 있다. 대기업의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가 체감하는 경제적 파이는 커지지 않았다. 경제성장론자들이 반복하면서 말하던 그 잘난 낙수 효과를 기다리다가 아예 목이 타 죽을 지경이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짓누르고 있다라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각국을 비교한 연구들은 정치체제와 역사적 배경, 권력 관계 등이 소득분배에 결정적이지만, 성장과 분배 간에 밀접한 관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성장과 분배는 어느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 추구할 수 없다. 성장을 무시한 채 분배만 추구하면 경제력이 이를 뒤따르지 못할 것이고, 분배 문제를 방치하고는 성장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미국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분배를 통한 내수창출과 성장을 추구하는 구체적인경제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보이지 않는 손.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주의 경제학의 명제이다. 스미스가 생각한 시장경제란 모든 주체가 이기심에 따라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영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정의의 법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질서는 스스로 조정된다고 보았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교통 · 교육 등 공공 재공급으로 한정했다. 스미스의 후계자들은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는 작은 정부론을 옹호한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미국 건국의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가 내세우는 최고 가치는 자유였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또 다른 미국 건국의 핵심 인물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그가 지향하는 경제 노선은 제퍼슨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강한 중앙정부를 표방하는 연방주의자(federalist)였고, 국립은행의 창설, 보호관세의 설립 등 제조업을 중시한 재무정책을 펼쳤다. 해밀턴의 경제 노선은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 제조업국가로서 지위를 완전히 굳힌 1945년까지 130여 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 속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시작한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은 근세 미국의 진보적인 경제정책의 시초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으며 미국 내 진보세력의 정책 방향을 받혀주는 사상적 받침이 돼왔다. 미국 역사상 좌우의 이념논쟁이 가장 격렬한 경제 노선이 뉴딜정책이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개념에서 볼 때 뉴딜 정책은 사회주의적 혁명이다. 자유방임주의, 이것이 자본주의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루스벨트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굶어 죽든 잘 먹고 잘살든, 그때까지는 개인의 문제에 속한 삶의 문제를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으로 이어지는 20년 연속 집권(루스벨트는 4선 내리 당선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에 성공했다. 보수 우파 성향의 공화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집권하는 데 성공했고, 민주당의 유산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보수 강경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신 합리적 보수로서 중심을 잡았고, 민주당 정권의 사회복지, 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해밀턴, 루스벨트, 아이젠하워는 특정 이념에 의지하는 대신, 국민 친화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내세웠다. 미국은 현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재설계를 감행했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이념의 잣대로 봐선 곤란하다. 당파를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 구도를 만들기보다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여아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한다. 어느 경제 전문 일간지에 실린 현실의 경제학서평[1]은 이 책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서평 작성자는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 듯하다. 서평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론자들이 시장보다 정부라는 문구만 보고 책을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을 진보주의자들이 환영할 책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현실의 경제학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인, 경제학자, 독자들이 모두 필독해야 할 책이다.

 

 

 

창조 경제는 이었다...

정치 경력, 그 사람인생까지 이 되었다...

 

 

 

현실의 경제학의 공동 저자(스티븐 J. 코언, 브래드퍼드 펄롱)정부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그들이 더 강조한 것은 구체적인 경제 정책 수립이다. 자신들을 진짜 보수’, ‘진짜 진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대선주자가 되면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즉 실질적인 민생해법을 내놓기보다는 공허한 공약만 남발한다. 표심만 노린 말장난에 가까운 경제정책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비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경제이다. 쉬운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처럼 창조경제를 말하고 다닌 지도자의 머리가 텅 비어 있는 탓에 경제정책도 속이 텅 비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3대 불가사의전설의 동물로 알려진 애인,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생기지 않는 내 집그리고 정의(定意/正義)가 없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창조 경제.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에서 경제 정책은 이념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었으며,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었다. [2]

 

 

이 문장은 현실의 경제학서론의 첫 문장이다. 두 저자는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한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앞에 내세웠다.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문장을 보면, 창조 경제’는 실패했고, 헛된 구호였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전히 창조 경제는 훌륭했으며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성공할 수 있었던 국가 정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정신승리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암울하다. 이런 사람들이 경제 전문가 또는 정치인이 되면 국민들만 고생하는 건 시간문제다.

 

 

 

 

[1]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됐나? 시장보다 정부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서울경제, 2017121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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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0   좋아요 1 | URL
대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서민들에게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복지비용마저 아깝다고 생각해요. 이명박근혜 정부동안 보수들이 선호할만한 경제정책, 다 나왔습니다. 역효과가 있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보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보수, 진보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17-12-18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6:2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대통령도 미국처럼 4년 연임제가 가능하다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대선에도 여권이 집권하면 친일파 청산 작업을 추진해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야당이 집권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sprenown 2017-12-1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론적인 얘기겠지만, 성장과 분배.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울 거예요. 현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가치판단 해야할 문제겠지만 이제는 불평등 개선을 위해 분배정책에 더 힘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cyrus 2017-12-18 16:32   좋아요 1 | URL
네, 지금은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배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정부가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괜히 억지로 밀고 나가다간 복지 예산이 아깝습니다. 피드백 없는 복지 정책은 복지 정책을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문제점이 노출되면 복지 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집니다.
 
스몰데이터 - 빅데이터도 말하지 못하는 고객행동에 관한 놀라운 진실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최원식 옮김 / 로드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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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빅 데이터는 기업의 핵심 중 하나이다. 기업은 데이터를 여러모로 분석해 개별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서비스를 새롭게 제공하거나 틈새시장을 개척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뉴스에 달린 댓글, 유튜브의 동영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 글 등도 서버에 기록돼 데이터로 남는다. 이런 데이터 대다수는 사용자들이 사적으로 남긴 것이거나 한 번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운 비정형 데이터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전은 이런 데이터까지 유용한 정보로 바꿔놓고 있다. 빅 데이터는 기업이 시장 환경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경영전략을 실행해 차별적인 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혼란스럽다. 빅 데이터와 관련된 전략을 무조건 수용하다 보니 빅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빅 데이터 분석에 호감을 느끼고 분석에 나서지만. 막상 효과를 얻지 못해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빅 데이터를 통한 이익을 당장 얻기가 힘들다. 단발성에 그친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통찰력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적된 빅 데이터 분석 결과가 있어야 새로운 사업 기회를 파악할 수 있다. 빅 데이터 분석이 각종 여론조사의 복병인 숨어있는 유권자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는 유력한 장치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빅 데이터 분석이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빅 데이터를 추출하는 공간은 인터넷, 모바일 환경인데 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연령대는 젊은 층이 많다. 이 때문에 빅 데이터 분석이 다양한 연령층의 여론을 반영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사람의 선호도가 왜 변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빅 데이터 분석이 사회적 분위기의 흐름, 실시간으로 변하는 여론 등은 보여줄 수 있지만 왜 그렇게 변하는지에 대한 인과관계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마틴 린드스트롬(Martin Lindstrom)은 빅 데이터 분석을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빅 데이터 분석에만 의존하는 기업 비즈니스 환경을 문제 삼는다. 우리 사회에 거짓이 흘러넘친다. 자연에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하여 죽은 체하는 등 각종 위장전술을 쓴다. 인간 세상에서도 거짓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거짓말을 하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단기 기대수익이 커진다. 빅 데이터 분석가는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 안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고객은 일상생활에서 사물 또는 상황에 대하여 어쩔 수 없이 그럴싸하게말한다. 일상화된 거짓을 가려내고 빅 데이터로 읽을 수 없는 고객의 진실을 찾을 수 있는 분석 전략이 필요하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스몰데이터가 빅 데이터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성공한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스몰데이터는 매출 부진에 허덕이는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단비가 된다. 장난감 회사 레고(LEGO)는 빅 데이터를 활용해 매출 부진의 원인을 분석했다. 오랜 분석 끝에 레고는 절망적인 결론을 받아들였다.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장난감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레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레고는 평범한 어린이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오랜 시간 열심히 조립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레고는 블록 크기를 줄였고 조립 난이도를 높인 장난감들을 출시했다. 파산위기였던 레고는 위기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장난감회사로 성장했다.

 

스몰데이터란 결국, 사람의 감정 상태, 언어, 행동 등이 포함된 사소한 이야기이다. 린드스트롬은 스몰데이터가 인간적인 이야기 속에 남아있는 감성 DNA’라고 말한다. 감성적 정보에 가까운 스몰데이터는 정량적인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 스몰데이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사람의 일상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정보이다. 사소한 것이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빅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용하려면 모든 데이터를 한 곳에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 저장기술이 필요하다. 저장장치 역시 최근 들어 저장능력은 향상되고 가격은 내려가면서 빅 데이터 저장이 더욱 쉬워졌다. 기업들이 빅 데이터 수집과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할수록 저장장치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면 인간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저하될 것이다. 린드스트롬은 익숙함이 인간의 데이터 분석 결정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레고는 빅 데이터 분석 결과가 주는 익숙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재미있는 장난감들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스몰데이터를 직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갑자기 새로운 시야가 번뜩 보이더라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타당성이 있는지 더 깊이 파고들고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과거의 통계자료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과거 통계자료를 뒤집는 새로운 결과를 낙관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현실적인 정보를 얻고 싶으면 고객에게 찾아가는 업무가 필요하다. 물론, 스몰데이터도 무조건 100% 진실이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분석을 통해 데이터가 믿고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맞는지 아닌지 구별해야 한다. 이럴 때 빅 데이터 분석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는 잘 보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이미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업 마케터가 가장 많이 놓치는 것이 고객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마케팅 전략과 전술을 잘 짜고, 치밀하게 광고와 프로모션 계획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아는 것, 고객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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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23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적인 이야기 속에 남아있는 ‘감성 DNA’ 좋은 표현이네요..

cyrus 2017-10-24 11:51   좋아요 1 | URL
DNA가 인간의 모든 특징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이죠. 그래서 린드스트롬은 인간의 언어와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스몰데이터를 ‘감성 DNA’로 비유했어요. 스몰데이터가 인간의 모든 특징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

2017-10-24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24 11:54   좋아요 0 | URL
몇 년 전만 해도 언론이 자주 언급하던 키워드 중 하나가 ‘빅 데이터’였는데 ‘제4차 산업 혁명’이 나오면서 빅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표맥(漂麥) 2017-10-2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은 이 빅데이터가 연구과제인데요... 결과를 못내 전전긍긍... 그 분에게 이 책을 권하면 아마 미쳐버릴 듯...^^

cyrus 2017-10-24 15:0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성과 중심 사회입니다. 장기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기에 열악한 곳입니다. ^^;;
 
배려를 파는 가게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이제용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든 정성을 쏟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은 물론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열심히 살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기업이 고객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닮았다. 기업을 운영하는 관리자 치고 ‘고객 만족 서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으로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고객 만족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알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은 고객지향의 서비스 경영을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당연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위해서 많은 서비스 경영 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기초적인 개념을 익히는 데에는 정석만 한 것이 없다. 《배려를 파는 가게》(한국경제신문, 2017)는 가장 기본적인 고객 만족 서비스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 책에 아주 기초적인 서비스의 정석이 들어 있다. 《배려를 파는 가게》는 ‘켄블랜차드컴퍼니(The Ken Blanchard Companies)’의 회장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와 소속 임원들이 함께 쓴 책이다. 켄블랜차드컴퍼니는 경영인을 대상으로 서비스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책에 나오는 하틀리 교수는 대학에서 ‘전설적인 서비스’라는 이름의 강의를 진행한다. 이 강의를 듣는 책의 주인공 켈리는 대학생이며 대형 할인매장의 파트타임 직원이다. 《배려를 파는 가게》는 고객 배려 서비스 경영의 기본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혼자서도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경영학과 과정에 이 강의가 들어가도록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영학과 과정에 고객 서비스를 필수 과목으로 넣지 않는 건 잘못이에요. 사업을 성공시키는 모든 건 결국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서비스를 통해 만들어지죠.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기업은 직원이나 고객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기업입니다. 그런데도 경영학과 과정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17쪽)

 

 

기업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격과 품질보다 서비스가 상품의 선택을 좌우하는 요즘의 경제 현실에서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회사가 결국 경쟁에 이긴다. 서비스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감동을 키우는 교감의 미학이다. 서비스 기업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고객 만족’이다. 고객 만족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내부고객, 직원이다. 그러면 내부고객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은? 관리자다. 아직도 머리로 경영하는 관리자들이 이 평범한 이치를 외면한 채 고객 만족 서비스를 내세운다. 관리자로부터 아무런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만족감을 못 느끼는 내부고객은 외부고객에게 기본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하틀리 교수는 고객을 배려하는 직원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비결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고객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기. 두 번째는 판매와 상관없는 다른 얘기를 나누기. 세 번째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고객을 마치 사랑하는 사람처럼 마음속에 그려 놓고 정성으로 대한다면, 고객의 만족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이 세 가지 비결이 고객 배려 서비스 경영의 기초다. 이 세 가지 비결보다 가장 중요하고, ‘실전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ICARE 모델’이다.

 

ICARE는 다섯 가지 단어의 첫 글자를 합친 것이다. I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이상적인 서비스(Ideal Service)다.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직원은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C는 가치와 비전을 명확히 해주는 서비스 문화(Culture of Service)다. 관리자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과 가치를 직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은 서비스 비전에 걸맞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A는 고객의 욕구와 취향에 집중(Attentiveness)하는 것이다. R은 고객의 작은 요구에도 세심하게 반응(Responsiveness)하는 자세다. E는 직원이 능동적으로 고객 만족 서비스에 제공하는 재량권(Empowerment)을 의미한다.

 

품질의 제품을 가장 적합한 가격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은 사업의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진정 내 가족처럼 정성을 다해 서비스해야 한다. 고객 배려 서비스는 ‘고객이 왕’이라는 과거 서비스 경영원칙과 다른 것이다. 기업이 고객을 왕처럼 섬기는 서비스에 치중하게 되면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의 횡포에 시달리는 내부고객을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내부고객과 외부고객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는 단기간 내에 경영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강력한 무기다. 업무지식은 학습을 통해 획득할 수 있지만, 몸에 배어있는 배려심은 쉽게 가질 수 없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고객 만족 서비스의 의미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는 ‘사람과의 친밀한 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모든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진정한 조직의 힘은 모두 마음으로 함께할 때 발휘된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경륜이며, 진심이 배어 나오는 행동,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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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8-3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객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기본이겠지만, 내부고객인 조직구성원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우선되어야 할거예요..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이윤추구만을 위해 종업원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게 우리사회의 현실입니다.

cyrus 2017-08-31 17:3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 책은 회사 대 외부고객뿐만 아니라 회사 대 직원(내부고객) 간의 관계 형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17-08-31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1 09:14   좋아요 1 | URL
책을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어요.

기업이 착한 이미지를 내세워서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가 하나의 쇼로 전락할 수도 있겠어요. ^^

푸른희망 2017-08-3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누구나 모르는건 아닐진대......,아는걸 행동하는건 참 쉽지 않지요

cyrus 2017-09-01 09: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상대방의 배려를 이용하는 악질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잘 해주는 태도를 회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남을 돕거나 배려하는 일은 자기 손해라고 생각하는 거죠.

2017-08-3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1 09:16   좋아요 1 | URL
어딜 가나 갑질 손님, 갑질 기업이 문제입니다.. ^^;;

2017-09-01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1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
김대식.다니엘 바이스 지음, 박영록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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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그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 사회 변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 삶의 기본조건들, 즉 의식주는 변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조건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충족시키는 수단 혹은 방법이 변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회변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제 정보통신기술의 힘은 단순히 세상을 바꾸는 것에 멈추지 않고 세상이 변화하는 방식마저 바꿔놓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수 세기 전의 산업혁명처럼 그 누구도 도도한 흐름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과연 내가, 우리가, 우리 사회가 이 거대한 흐름을 감지하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뇌과학자 김대식다니엘 바이스(Daniel Weihs) 이스라엘 과학기술부 수석 과학관의 대담집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중앙북스, 2017)는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 제목에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와 있다. 창조력이다. 창조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잘 육성하여 발전시키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변화와 혁신은 이러한 창조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의 의미를 자유롭게 말하면서도, ‘창조력’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창조력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발휘하지 못하면 구태의연한 지식에만 의존하여 현재에 안주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면 창조력은 생기지 않는다.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불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생각한다.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여기서부터 창조력이 샘솟는다. 자신의 삶이 불완전하다고 느꼈을 때 창조적인 삶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명심하면서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지식을 보충해서 약간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가짜 창조력’이다. 모방은 창조력 향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기존의 지식 또는 아이디어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잡탕’을 내놓고 있다. 표절 시비가 불거질 경우 오히려 이를 홍보 전략으로 활용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모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 익숙해지면 변화하는 시대를 읽는 능력을 상실하고, 단물이 빠진 구시대적 발상만 찾게 된다. 창조적인 삶의 핵심은 사고의 유연성이다. 창조는 수많은 실패로부터 나오는 만큼 이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는 무조건 원칙만 따르도록 강요하지 말고 틀을 깨는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잘 짜인 조직이나 일사불란한 체제보다는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와 이스라엘의 사회적 분위기의 분명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부터 탈무드 교육을 통해 제 생각을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을 한다. 훈련법은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인 셈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군인을 양산하지 않는다. 군대 규율을 따르면서도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능숙한 군인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지식을 응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독창성을 마모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이다. 똑같은 교과서에 의한 성적 위주 교육은 창조력을 발달시키는 사고나 행동을 억압한다. 조직 문화도 경직되어 있다. 상관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야 하는 통제된 분위기로 인해 개인 발언은 물론 비판할 기회마저 없다.

 

503번 정부가 창조력이 나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창조경제’만 여러 번 외쳐댔으니 공허한 구호로 남게 되는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웃긴 점은 ‘창조경제’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한 채 ‘새마을운동’ 세계화 작업에 매진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웬 말이냐. 우리나라 발전이 시급한데, 다른 개발도상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죽은 권력’에서 나온 국가 정책을 사골곰탕 우려먹듯이 애용했다. 이거야말로 ‘가짜 창조력’을 내세운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낭비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책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높은 평점을 줄 수 없다. 비교적 진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내가 볼 때 책에서 신선했던 내용은 이스라엘의 창업 문화와 군대 문화)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담 내용 일부를 다른 표현으로 바꿔 반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밀도 있는 대담을 나누기 위한 ‘진짜 창조력’이 필요해 보인다. 책 편집 방식이 불만스럽다. 두 사람이 말하는 중요한 내용, 즉 ‘미래에 필요한 창조력의 의미’를 알려주는 문장만 진한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요 문장만 속독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독서 시간을 쓸 수 있는 장점이 된다. 중요 문장만 보면 책의 핵심 내용을 거의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표시된 문장만 골라 읽는다고 해서 없던 창조력이 생기겠나? 창조력을 안 생기게 하는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독자가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책을 편집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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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8 15:42   좋아요 0 | URL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헛구호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 정부가 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을 잘 마련한다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음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장기적인 준비와 노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qualia 2017-08-2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부터 탈무드 교육을 통해 제 생각을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을 한다. 훈련법은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인 셈이다. [···]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지식을 응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독창성을 마모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이다. 똑같은 교과서에 의한 성적 위주 교육은 창조력을 발달시키는 사고나 행동을 억압한다. 조직 문화도 경직되어 있다. 상관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야 하는 통제된 분위기로 인해 개인 발언은 물론 비판할 기회마저 없다.

→ 이스라엘과 한국에 관한 자료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오는군요.

Israel

Area
• Total
20,770-22,072 km^2 (149th)

Population
• 2017 estimate 8,731,540 (98th)

-----------------------------------

South Korea

Area
• Total 100,210 km^2 [107th]

Population
• 2017 estimate 51,446,201 (27th)

위 자료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땅덩어리 크기가 한국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국토는 우리나라 경상북도의 19,030km^2보다 약간 더 클 뿐이고 인구는 1천만 안팎에 이르는 서울시보다도 적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토/인구 약소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근데 미국 정계뿐만 아니라 경제계·과학계를 쥐고 흔드는 막후 실력자들이 이스라엘계·유태계 미국인들이라는 사실을 볼 때 어쩌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과학 분야에서나 경제 분야에서나 국제 정치 분야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막강한 듯합니다. 세계 최고 기업들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IBM 등등이 이스라엘 벤처 기업들을 거액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자주자주 들려옵니다. 반면 한국 벤처 기업 인수 소식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창의적 기업의 활성도를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는 혁신적 벤처 기업은 한국에선 거의 멸종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삼성이나 LG, 현대, SK하이닉스 같은 경직된 대기업밖에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런 이스라엘의 힘과 그걸 뒷받침하는 이스라엘 국민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제가 위에 인용한 cyrus 님의 글 중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저는 저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저 차이라고 봅니다. 요컨대 한국에선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나 조직적 차원에서나 지역적·국가적 차원에서나 타인과의 논쟁을 직간접으로 금기시하고 경원시합니다. 민족심리적 차원에서나 시대조류적 차원에서나 사회풍조적 차원에서나 타인과의 논쟁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기질·성향·분위기·문화가 너무 우세합니다. 해서 한국인들 각자가 거의 모두 저것을 실천하려 하지 않습니다. 회피하고 기피하고 억제하고 심지어 부정적으로 보고 죄악시하기까지 합니다. 근본적·급진적 시각에서 비판하건대 끼리끼리 근친상간적 상호 친목질·자뻑질만 무한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또 정반대 형태의 상호 비난질·왕따질·싸움질만 무한반복한다는 것입니다(백년하청 21세기 초 백주대낮에까지 한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호영남 지역감정 대립과 남북한 극한대결이 그 대표적 사례인 것입니다). 물론 무골호인이 넘치는 우리 한국인끼리 정을 나누고 우애를 돈독히 다지는 친목 문화가 일방적으로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좋은 점들은 차고 넘치니까 이 자리에선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왜 우리 한국에선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논쟁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는 것일까요? 윗글에서 cyrus 님께서 지적했듯이, 왜 우리 한국인들은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대로만 생각하고 움직이(려)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남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소극적인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 일부가 cyrus 님께서 윗글에서 비판한 사항들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cyrus 님의 비판적 시각에 너무나 크게 동의하는 나머지 이 댓글을 쓰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cyrus 님의 비판적 핵심을 간파했으면 합니다.

cyrus 2017-08-29 13:56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에 비판을 ‘비난‘과 동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를 따져 보면 별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비난‘은 논거가 부족하고, ‘가짜 뉴스‘를 동원하면서 인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예의가 없고,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비난은 상대방의 결점만 파고 드는 행위입니다. 비판은 결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목 문화 때문에 상대방의 결점을 지적하는 태도를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일수록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