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민음사 탐구 시리즈 4
임소연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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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여성은 엄마가 되고 나면 기억력이 줄어드는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대다수는 본인의 건망증을 떠올리면서 그렇다고 믿는다. 그중에 자신의 건망증이 심하다고 여기는 주부는 치매가 오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건망증 환자의 60% 이상이 여성이며 주부의 80% 이상이 건망증을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다여러 연구 결과에서도 임신 기간에 여성의 뇌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건망증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의 뇌가 변화하는 현상이 엄마가 되는 데 필요한 적응적 변화(adaptation)로 보는 연구들도 있다기억력이 떨어지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엄마의 뇌는 아기의 표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의 뇌에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자녀의 친밀감 형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공간 인지 능력을 향상한다.


출산한 여성은 머리가 나쁘다고 믿는 사람은 주부 건망증이 많다는 통계에 의존한다. 여자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엄마에게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과학은 여성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동시에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

 

처음부터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 태어나는 여성은 없다. 임신이 여성의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해서 여성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2014년 아기를 돌보는 남성 동성 연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남성 양육자들의 뇌에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출산 이후 일어나는 뇌의 변화는 양육하는 남녀 모두에게 일어난다. 여성이 아이를 돌보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건 아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여성을 향한 과학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과학기술학자인 저자 임소연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두둔하는 과학을 비판하면서도 그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이 과학임을 강조한다남성 중심 사회에서 나온 과학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지식을 생산했다. 페미니스트들은 과학이 어떻게 여성의 존재를 왜곡하는지 검토하고 비판했다과학사의 어두운 면을 기억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머리는 과학에 대한 거부감과 불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그런데 과학은 단지 남성 과학자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이용한 학문이었을까?

 

저자도 한때 과학을 여성의 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과학을 불신하는 여성 독자를 위해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는 항상 과학과 적대하면서 살 수 없으며 과학은 여성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페미니즘 운동의 물결 속에서 여성 과학자들은 과학계의 뿌리 깊은 성차별에 맞서 싸웠고, 여성의 삶과 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과학 지식을 알리는 데 힘썼다.


칼 세이건(Carl Sagan)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사이언스북스, 2022)에서 과학은 양날의 칼과 같다고 했다(33쪽). 그는 과학기술을 악용하면서 생긴 각종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이러한 이유만으로 과학을 제거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 아주 밀접하게 달라붙은 과학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그러려면 과학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우선 과학의 유용성을 알기 전에 먼저 기본적으로 과학이 어떤 학문인지 인식해야 한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지식을 검증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학문이다. 상식으로 알려진 지식이 오류임이 판명되려면 제일 먼저 그것을 의심해야 하고, 오류라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임소연도 새로운 과학 지식을 생산하려면 반복되는 실험을 수행하는 노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6쪽)그러므로 과학은 늘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삶과 몸을 깎아내린 과학 지식은 오류로 밝혀지면서 폐기된다.


책에 담긴 지식 역시 오류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히 맞다고 여기는 지식이 과연 사실인지 의심해야 한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임소연은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진화론에 나타난 성차별적인 관점을 비판한 클레망스 루아예(Clémence Royer)를 언급한다. 루아예는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종의 기원을 번역한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다(134~135). 그런데 저자는 루아예가 우생학을 옹호한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과학에 관심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여성을 포함한 인간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해준다고 믿었다. 영국과 미국 백인 여성이 공부한 과학 중에 우생학이 포함되어 있다. 우생학을 지지한 페미니스트들은 신체적으로 우수한 국민이 되지 못한 장애인의 출산을 억제하는 낙태를 옹호했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그녀들이 오용된 과학을 비판하는 위치에 서 있는 건 아니다성차별적인 과학에 맞선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여성 과학자들의 뛰어난 업적만 부각하면 남성 중심 과학 대 여성 과학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양산한다.


저자는 캐럴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를 예로 들면서 자연을 훼손하는 과학을 거부하는 에코 페미니스트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76~177쪽). 그렇지만 대부분 에코 페미니스트는 유전자 재조합 식품(GMO)이 환경 생태계를 파괴하며 우리 몸에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재조합 식품이 인간의 건강에 위험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 연구 및 조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다. 과학 친화적인 에코 페미니스트를 소개하기 전에 여전히 사실이 아닌 GMO에 관한 부정적 편견을 붙잡고 있는 에코 페미니스트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증명된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정말로 모르게 되면 과학에 대한 불신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오표

 


* 참고 문헌, 204

 




손덕구 손덕수

 

 




* 참고 문헌, 205

 





3의 성 2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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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자체가 반페미니즘이라거나 하지는 당연히 아닐테고, 역시 그것을 이용해온 기존의 과학계가 문제겠죠. 그런 의미에서 재밌을듯하네요. 열심히 의심하면서 한번 읽어보겟습니다. ^^

cyrus 2022-07-10 09:2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지식이 만들어지면서 생산하는 과정이 남성의 권력 중심으로 작동된 과학계에서 여성은 배제되고 차별받기 쉬운 대상으로 남게 됩니다.
 





6월 말에 판매되기 시작한 칼 세이건(Carl Sagan)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완전 개역판의 발행일은 올해 228일이다. 아마도 3개월 동안 출판사와 역자가 이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만드는 데 정성을 들였을 것이다.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사이언스북스, 2022)




2001년 구판과 비교하면 확실히 문장이 매끄럽게 다듬어졌으며 오자와 오역이 고쳐졌다국내 독자가 생소할 수 있는 용어나 문장을 부연 설명한 옮긴이 주가 많이 추가되었다그래도 고쳐야 할 곳이 있다(글 마지막에 있는 정오표 참조)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20, 21, 24, 25장은 세이건이 세 번째 아내 앤 드루얀(Ann Druyan)과 함께 쓴 글이다. 이 정도면 앤 드루얀을 공저자로 표기해도 좋을 텐데 저자명에 세이건만 있다.
















* [절판] 마틴 가드너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마틴 가드너, 사이비과학의 지적 사기를 밝히다(바다출판사, 2002)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개정판까지 나온 마당에 세이건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인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Did Adam and Eve Have Navels?: Debunking Pseudoscience, 2001)도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가드너의 저서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변덕과 오류>(Fads and Fallacies in the Name of Science, 1957)를 자신의 안목을 열어준 책이라고 언급한다(115쪽)이 책은 1952년에 출간된 과학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Science: An Entertaining Survey of the High Priests and Cultists of Science, Past and Present)의 개정판이다


<과학의 이름으로>가 정식 출간되기 전인 1950년에 가드너는 은둔 과학자(The Hermit Scientist)’라는 제목의 글을 안티오크 리뷰(Antioch Review)에 발표한다. 이 글은 가드너가 처음으로 과학적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쓴 글이다이때부터 가드너는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글을 본격적으로 썼다. 출판 대리인의 권유로 <과학의 이름으로>을 출간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으며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다. 가드너의 증언에 따르면 책의 재고가 너무 많아서 헐값에 팔렸다고‥…. 잊힐 뻔한 책은 5년 뒤에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변덕과 오류>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가드너는 1983년부터 2010년까지 회의주의적 탐구자(Skeptical Inquirer)라는 격월간지에 주변 과학 감시자의 노트(Notes of a Fringe Watcher)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회의주의적 탐구자1976년에 결성된 비영리 단체 초상현상 주장들에 관한 과학조사위원회(the Committee for the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CSICOP)’가 발행했다. 가드너는 이 단체의 창립 회원이었다(세이건도 CSICOP 창립 회원이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주변 과학 감시자의 노트에 발표된 글들을 모은 책이다.

 



















* [절판] 마이클 셔머 과학의 변경 지대: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사이언스북스, 2005)




스켑틱(Skeptic, 바다출판사가 발행하는 그 잡지다)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과학의 이름으로>현대 회의론 운동의 고전이라고 평가한다(과학의 변경 지대, 81).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에서 가드너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활개 치고 있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ID), 뉴에이지 사상, 대체의학, (예전에 비하면 대중의 반응이 시들어졌지만) UFO 등의 유사 과학을 비판한다. 그는 또 그는 또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종말론도 비판하는데 그 사례 중 하나로 1992년 우리나라 전역을 뒤흔든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을 언급한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에도 오류와 오자가 있다. 책 뒷날개에 가드너의 약력을 설명한 내용이 있다. 여기에 주변 과학 감시자의 노트1986부터 연재되기 시작했다고 잘못 적혀 있다. 정확한 연도는 1983년이다.



* 40

 

 ‘근 지구 물체들(NEOs: near-earth objects)’이란 우리 행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 지구의 궤도를 주기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체들을 뜻하는 현대적 용어이다. 이런 물체들로는 소행성, 대부분 충돌의 결과로 생긴 소행성 조각들인 유성체, 명왕성 너머 태양계 외곽에서 오는 혜성 등이 있다. 지구와 충돌하는 NEOs에 따른 재앙은 몇 편의 현대 재난영화뿐 아니라 초기 SF에서도 다루어졌던 공통된 주제였다.

 다른 주제들처럼 이 주제의 개척자도 웰스(Herbert George Wells)였다.[] 그의 소설 혜성의 시대(In the Days of Comet)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스쳐 지나갈 때 지구에 닥칠 피해를 다루고 있다. 단편 (The Star)은 거대한 NEO가 일으킨 파괴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NEOs와 지구의 조우를 주제로 한 소설은 웰스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적이 있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현대문학, 2014)


* 에드거 앨런 포 모르그 가의 살인: 추리. 공포 단편선(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1: 미스터리 편(코너스톤, 2015)




그 예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이러스와 차미언의 대화(The Conversation of Eiros and Charmian, 1839)를 들 수 있다이 작품이 나온 당시에 사람들은 혜성이 지구에 접근하면 종말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H. G. 웰스의 단편 소설 은 단편 선집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에 수록되어 있다.




* 98

 




 이중 슬릿 실험의 작동방식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파이만[주]의 유명한 강의록 레드 북스(red books)의 내용이 종종 인용된다.



[] 파인만(Richard Feynman)’의 오자.





* 121, 157






마호메트 간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모한다스 간디(Mohandas Gandhi)



* 165: 앨더스 헉슬리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 211쪽 역주




소로나 소노라(Sonora)





* 278

 




 에디슨은 또한 빌리에 드 리슬 아담(Villiers de l’sle-Adam)[]이 쓴 프랑스 소설 내일의 이브(Tomorrow’s Eve, 1886)



















* 빌리에 드 릴아당 미래의 이브(시공사, 2012)

* 빌리에 드 릴아당 지난 파티에서 만난 사람(바다출판사, 2011)

* [절판] 빌리에 드 릴아당 잔혹한 이야기(물레, 2009)




[] 빌리에 드 릴아당. 이름 철자가 틀렸다. 바른 표기는 ‘Villiersde L’Isle-Adam’이다. <내일의 이브>미래의 이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 279쪽





리처드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완전 개역판 정오표 

(읽는 중이라서 오류와 오자가 더 나올 수 있다)



* 149

 

 


하드리아노 1(Hadrianus I, 700~795) 하드리아노 1(Hadrianus I, 700~795)






* 193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보면 황소나 백조나 금빛 소나기로 변신해 여자들을 찾아가 임신시키는 신들[주] 이야기가 나온다.


[] 황소, 백조, 금빛 소나기로 변신해서 여자를 임신시킨 신은 단 한 명, 제우스(Zeus, 로마 신화: 유피테르(Jupiter), 영어: 주피터)제우스는 황소로 변신해서 에우로파(Europa), 백조로 변신해서 레다(Leda), 금빛 소나기로 변신해서 다나에(Danae)에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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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7-04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읽을 때 cyrus님 글 참고해서 읽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cyrus 2022-07-09 16:55   좋아요 2 | URL
파이버님이 궁금한 책이 칼 세이건의 책이겠죠? ㅎㅎㅎ

파이버 2022-07-09 23:2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ㅎㅎ

서니데이 2022-08-10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mini74 2022-08-10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무지 추카드려요 *^^*

이하라 2022-08-11 0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cyrus님^^
모쪼록 비 피해 없이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별세하기 일 년 전에 발표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 1995)이 재출간되었다. 2001김영사 출판사에서 펴낸 지 21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는 명저로 손꼽히는 코스모스》(Cosmos, 1980)를 포함한 세이건의 책들을 번역 출간한 사이언스북스.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사이언스북스, 2022)

 

* [구판 절판]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작은 촛불(김영사, 2001)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애서가도 추천할 정도로 코스모스는 워낙 유명한 과학 도서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독자는 칼 세이건을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기억한다. 하지만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의 생전 활동을 인상 깊게 본 독자라면 세이건이 제안한 헛소리 탐지기(Baloney detection kit, 구판에 나온 번역어는 엉터리 탐지 장비’)’를 떠올린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언급된 헛소리 탐지기엉터리 논리로 이루어진 유사 과학을 색출할 때 쓰이는 아홉 가지 검증 기준이다.


 














 

* 칼 세이건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2020)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뿐만 아니라 코스모스가 나오기 일 년 전에 쓴 브로카의 뇌》(Broca’s Brain: Reflections on the Romance of Science, 1979)에서 이미 여러 차례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cepticism)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초자연 현상과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구판의 서평을 남긴 어떤 독자는 미신과 유사 과학을 맹신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한 세이건을 과학 지상주의자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책에 세이건의 지적인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서평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 독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독자는 과학 지상주의와 과학적 회의주의를 혼동했다. 과학 지상주의는 과학이 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다. 과학 지상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과학만능주의. 하지만 세이건은 과학의 맹신자가 아니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과학 이론이나 지식까지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실험해서 검토한 끝에 기존의 과학 지식을 뒤엎는 새로운 가설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세이건은 브로카의 뇌에서 회의주의적 태도를 통해 발전된 과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과학은 실험, 오래된 도그마에 기꺼이 도전하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우주를 실제 그대로 보려는, 편견 없는 태도에 기초한다. 따라서 과학은 때때로 용기최소한 전통적인 지혜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32)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의심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와 과학을 무조건 최고로 여기는 과학 지상주의는 같다고 할 수 없다과학을 맹신하는 과학 지상주의자는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과학이 우리 삶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과학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지나치면 대중을 기만하는 유사 과학을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한다.


이번에 나온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완전 개역판이다. 구판에 오역과 오자가 있다는 독자들의 평이 있는데, 직접 읽어 보면 그들의 지적에 수긍하게 된다내가 구판을 읽으면서 찾은 오역과 오자는 다음과 같다.


어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개정판을 주문했다. 수령 예상일은 오늘이지만, 월요일에 책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구판과 개정판 역자는 같다. 개정판이 구판보다 번역의 질이 좋아졌는지 궁금하다. 개정판이 개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20

 

 앨러배마 주 투스키제[주1]에 있는 물리학자들은, 일단의 퇴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그 전까지 치료된 적이 없는 새로운 병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이들이 매독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속였다.

 

[주1] 투스키제 터스키기(Tuskegee)






* 66


 천문학자들은 수억 광년 거리에까지 퍼져 있는 은하들의 분포도를 작성했는데, 그때 자신들이 도박판의 시중꾼(Stickman)[주2]이라고 불리는 미숙한 인간적 형상의 윤곽을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문]

 

 When astronomers mapped the distribution of galaxies out to a few hundred million light years, they found themselves outlining a crude human form which has been called ‘the Stickman’.

 


[2] 번역자는 ‘the Stickman’도박판의 시중꾼(윗사람의 곁에 있으면서 온갖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직역했다. 단어의 뜻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천문학자들이 표현한 은하들의 분포 형태가 도박판의 시중꾼형태의 윤곽과 비슷하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형태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내세운 번역자의 정직한(?) 번역으로 인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번역문이 나오고 말았다.








 


‘the Stickman’은 인간의 머리를 원, 몸통과 사지를 직선으로 나타낸 형상(stick figure)을 뜻하므로, ‘막대 인간으로 번역해야 한다. 백여 개의 천체(성단, 성운, 은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진 메시에 목록(Messier object) 성도(星圖)를 보면 ‘the Stickman’을 왜 막대 인간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색깔의 점으로 표시된 모든 천체를 선으로 연결해보면 얼추 막대 인간형상이 나온다.






* 78


볼테르(Voltaire)마이크로메가스》[주3]


 

















*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문학동네, 2010)

* [품절] 볼테르 미크로메가스(바다출판사, 2011)




[3] ‘Micromégas’는 고대 그리스어 μικρός(아주 작은)’μέγας(아주 큰)’를 합성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따라 볼테르의 소설 제목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미크로메가스.





* 118쪽: 골드바흐의 억측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 Conjecture)



* 146쪽: 카글리오스트로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 243원주엔리오 페르미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 254쪽: 에드가 카이스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





* 265

 

 대표적인 예로, 1528년부터 1536년까지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극심한 궁핍 상태에서 플로리다에서 텍사스 거쳐 멕시코까지 육지와 바다를 떠돌던 알바르 뉴네즈 카베차 드 바카 이야기가 있다.

 

텍사스 텍사스






* 284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는 그 시기에 도가니(The Crucible)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마녀재판[주4]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 아서 밀러 시련(민음사, 2012)




[4] Salem Witch Trials. ‘Salem’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도시 세일럼이다.





* 329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스트레인지러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 334, 357: 칼라하리 사막의 쿵 산 족(Kung San

!Kung San, ‘!’가 없음.

 




* 345: 콩고(Congo Republic) 콩고 공화국 [주5]

 

[주5]콩고가 들어간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콩고 공화국(Republic of the Congo, Congo Republic)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이다. 두 국가 모두 콩고로 부르기도 하지만, 혼동을 피하려면 국명을 제대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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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6-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_@; 꼼꼼히 읽으시고 찾으셨네요. 저였다면 뭐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고 어렵다. 에라 모르겠다 대충 넘어감-_- 모드가 될 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cyrus님^^

cyrus 2022-06-27 22:55   좋아요 0 | URL
너무 꼼꼼하게 읽어서 완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이렇다 보니 책 한 권 읽고 나면 진이 빠져요... ㅎㅎㅎ

다양한세상 2022-06-26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개역판이라더니 오탈자가 몇개 없네요? 구역판소장중이라 언급하신거 몇개외에는 뭐가 틀린지 잘 모르고 넘어간것들이지만 개역판을 굳이 부담스런가격을 지출하며 또 사야할정도는 아니구나싶어서 글써주신 작성자님의 도움이 많이 컸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2-06-27 22:5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이 정도도 많다고 보는데요.. ㅎㅎㅎ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선량한 이웃들은 정원 식물뿐만 아니라 정원에 거주하는 곤충도 소개한다. 하지만 어제 쓴 서평에 언급했듯이 곤충의 습성과 관련된 저자의 설명이 상세하지 않다.


저자는 사람을 공격하는 살인 괴물로 오해받은 말벌이 실은 같이 살아도 괜찮은 동료라고 말한다말벌은 자신이나 벌집이 적으로부터 위협받을 상황에 맞닥뜨리면 먼저 공격한다

     

















*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선량한 이웃들: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애플북스, 2022)



 살인 괴물이라는 말벌은 실은 천년만년 같이 살아도 괜찮은, 충분히 무해한 우리 동료다. 한마디 덧붙이면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들을 몰아내야 할 경우에 말벌은 아주 훌륭한 조력자다.


( 41. 말벌에 쏘이면 죽을 수 있다는데 정말일까?중에서, 139)



저자는 말벌이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들을 몰아내는 조력자라고 강조하면서 말벌에 대한 과장된 오해를 불식시키는 글을 마무리한다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저자의 견해에 궁금증이 생긴다.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란 구체적으로 어떤 종일까?


곤충의 습성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는 저자의 문제점은 나방에 대한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방은 항상 빛을 쫓아다닌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밤에 불이라도 켜져 있으면 나방들은 끝날 줄 모르는 자극을 쫓아 때로 밤새도록 불빛을 맴돌며 운명처럼 춤을 추어댄다. 그러니 나방을 위해 선행을 하고 싶다면 집과 정원의 야간 조명을 최소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전등 스위치는 완전히 꺼두어야 한다. 이는 전기를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


9. 나방은 왜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을 지닐까?」 중에서, 43)



이 인용문 역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런 두루뭉술한 결말을 좋게 보자면 독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능동적 읽기에 익숙한 독자는 말벌이 좋아하는 해충이 어떤 것인지, 나방이 왜 빛만 보면 환장하면서 날아다니는지 알아본다하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해서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면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저자의 문제점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부터 별을 사랑한 쇠똥구리 까지 우리가 몰랐던 곤충의 모든 것(웅진지식하우스, 2019)

 

 


선량한 이웃들에 소개된 해충들은 생태계와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해충이라고 알려진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바를라게의 시선과 유사한 책이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이다이 책의 저자인 노르웨이의 곤충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Anne Sverdrup-Thygeson)도 곤충이 정원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말벌을 예로 든다. 하지만 말벌의 장점을 처음 밝힌 문헌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밝힌다.

 


 곤충은 정원의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말벌을 예로 들어보자. 한참 성장하는 말벌들에게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처는 불분명하지만, 말벌 한 마리가 수백 제곱미터의 정원에서 약 1킬로그램의 곤충을 처리한다는 얘기가 있다. (93)



이 책에 나방이 불빛에 달려드는 이유가 나온다. 비록 가설이지만, 독자의 궁금증을 해갈시켜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나방은 하늘의 달(또는 별빛)을 기준으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한다. 그런데 나방은 인공 불빛과 달빛을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인공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한 나방은 인공 불빛 주변을 맴돌면서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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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03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태 ˝두리뭉실˝이라고만 써왔는데 cyrus님 페이퍼 덕분에 한 번 더 찾아보고 배우고 가네요. ˝두루뭉술˝이 원표준어였군요?^^
해충, 익충의 이분법과 이름이 인간 중심적이다라는 비판을 제임스 스캇의 책에서 본 것 같은데, cyrus님께서 소개해주신 부분을 읽어보면, 아마도 같은 뉘앙스의 주장인 듯 합니다^^

cyrus 2022-06-04 05:29   좋아요 2 | URL
저는 글을 쓸 때 단어 하나에 나름 신중하게 확인하면서 써요. 되도록 표준어를 쓰려고 해요. 국어사전을 찾아가면서 표준어를 쓰다 보면 내가 그동안 비표준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렇게 일일이 국어사전을 확인하면서 글을 쓰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알라님이 언급한 스캇의 책이 어떤 건지 궁금해요. 어떤 책인지 알아보고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4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경의 배신이랍니다^^저는.그래도.옛.받아쓰기.세대인데.요즘 초등학생들은.그조차도.안하고 못하고.조기학습으로 넘어가서..
 
선량한 이웃들 -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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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우리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보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분법은 복잡한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분법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지나치게 믿으면 내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상대방의 관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은 난 옳고 넌 틀렸다는 우격다짐, 내 편 감싸기를 능사로 삼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에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우리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지키려고 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인간의 편 가르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원사의 손길이 닿은 정원 속에 보이지 않는 구획선이 한두 개 있다. 정원 식물을 시들게 하는 해충과 식물의 성장에 도움 주는 익충으로 나누는 선,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잡풀을 뽑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선이 있다. 이 선이 없으면 우리는 근사한 정원이 생기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 선 없는 정원에 잡초가 무성하면 그 정원을 방치한 정원사가 무성의하다고 판단한다.

 

어렸을 때부터 정원사에게 정원을 관리하는 일을 배운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는 이분법적 선이 없는 정원을 선호한다. 모든 동식물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으로 나누는 정원의 구획선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울타리다. 해충과 익충, 작물과 잡풀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이 편의상 부르는 명칭이다. 이분법적 선이 설치된 정원이 아름다워 보여도 정원 속 생태계는 무너진다. 흔히 우리는 해충과 잡풀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해충 방역에 나서거나 제초제를 뿌리지만, 효과보다는 오히려 해충의 천적까지 죽이는 부작용이 생긴다.

 

선 없는 정원 속에 사는 동식물은 선량한 이웃들이다. 바를라게의 책 선량한 이웃들은 그동안 해충또는 잡풀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여진 동식물이 정원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해로운 존재로만 알려진 동식물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를수록 그들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식물이 자연과 인간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모르는 식물 맹(plant blindness)뿐만 아니라 곤충 맹까지 겪고 있다. 해롭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동식물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쓸모 있다


저자는 말벌이 해롭지 않은 우리 동료라고 말한다. 말벌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식물에 해를 가하는 곤충을 몰아내기 때문이다(그런데 저자는 말벌이 인간에게 유용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곤충의 생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미흡하다). 달콤한 꿀을 만드는 꿀벌은 익충이고, 그 꿀벌을 해치는 말벌을 해충으로 인식하는 국내 양봉 업계와 독자로선 말벌을 호의적으로 보는 원예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특히 다음 인용문은 말벌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말벌은 보호 대상이어서 위해를 가하거나 죽이는 사람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한다. 최대 5만 유로까지 벌금을 내야 하니까.

 


(42. 땅벌 집이나 말벌 집을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을까?중에서, 140)

 

 

책의 번역자는 이 문장에 대해 부연 설명(역주)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떤 독자는 말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저자 개인의 생각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벌 보호론자가 아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말벌이 보호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연방자연보호법(Bundesnaturschutzgesetz)’이라는 규정에 따르면 야생동물 혹은 곤충을 포획하거나 죽이면 5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저자는 말벌이나 말벌 집을 제거하려면 법적인 문제 없이 말벌을 제거할 수 있는 해충 박멸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권한다. 저자는 말벌을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의 한계를 답습한다. 나는 말벌을 해충일 수 있고, 익충이 될 수 있는곤충으로 바라보고 싶다. 익충이나 해충으로 구분 짓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익충이 해충이 될 수 있고, 해충이 익충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농약으로 해충과 잡풀을 제거하는 일에 반대한다. 그는 공생을 강조한다. 정원을 망치는 동식물을 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본다. 저자의 생명관은 나도 살고 너도 살리고!’. 과연 우리는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생태계로 이루어진 정원을 만들어 가꿀 수 있을까? 인간과 동식물 모두가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정원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정원을 가로지르는 구획선을 제거할 수 있다. 식물맹과 곤충맹을 유발하는 구획선을 없애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 중심주의와 이기주의를 벗고, 이분법이나 편견 없이 자연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지면 된다. 나와 다른 다양한 존재를 포용하고, 살아있는 모든 종이 상생하는 생명관을 정립하면 그동안 하찮고 해롭다고 여긴 동식물이 이웃으로 보인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03




 

 어쨋든[1] 전등은 밤에 필요할 때만 켜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커튼으로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생활도 지킬 수 있다.

 


[1] 어쨌든의 오자.

 

 



* 36. 벌에 쏘였을 때 정말 도움이 되는 처방은 뭘까?중에서

123


벌침을 핀셋이나 손톱으로 신속히 제거한다.[2]

 


[2] 손톱이나 핀셋으로 피부에 박힌 벌침을 집어서 뽑으면 벌침 끝에 남아있는 독성물질이 몸 안으로 더 침투할 수 있다. 독성물질이 나오지 않게 손톱이나 핀셋으로 천천히 제거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신용카드 모서리로 벌침을 살살 긁으면서 제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병원으로 신속하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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