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예민하다. 민감한 식물은 잘 자란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서 세상 모든 아름다운 꽃은 흔들리면서 핀다고 했다. 햇볕을 쬔 식물 줄기는 흔들면서 햇볕이 있는 쪽으로 자란다. 땅속에 있는 뿌리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뿌리 역시 흔들면서 자란다. 중력을 느낀 뿌리는 중력이 잡아당기는 아래쪽으로 뻗는다. 식물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극 받으면서 성장하는 현상을 굴성(屈性)’이라 한다.

















* 나탈리 사로트, 이광호 · 최성연 옮김 아무것도 아닌 일로(지만지드라마, 2023)




인간은 예민하다. 주변 상황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며 행동이 달라진다. 우리 삶의 방향은 크고 작은 굴곡들을 지날 때마다 바뀐다. 프랑스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는 첫 소설을 쓰는 데만 7년이나 걸렸다. 1932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1939년에 발표한다. 소설 제목은 <트로피즘>(tropismes)이다. 제목의 뜻은 굴성이다사로트는 식물학 용어인 굴성을 자신의 문학 세계를 정의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사로트가 묘사한 작중 인물들은 외부 상황에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예민한 존재. 사로트는 인간이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을 마주할 때 감정과 행동이 어떻게 달라는지 주목한다.


사로트가 쓴 마지막 희곡 아무것도 아닌 일로는 트로피즘 드라마(tropism drama)’다. 희곡에 나오는 인물은 두 명의 남자. 두 남자는 이름이 없다. 희곡은 오직 두 남자의 대화로만 채워져 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말다툼에 가깝다. 두 남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말다툼한다.



남자 1: , 그래 알겠어, 그래도 얘기해 봐.

 

남자 2: 그러니까그건 그냥 말에 관한 건데

 

남자 1: ? 우리가 했던 말? 설마 우리가 무슨 말다툼이라도 했는 거야그럴 리는 없어. 그랬다면 내가 기억을 했겠지.

 

남자 2: 아니, 그런 말다툼이 아니고다른 말했던 말 때문이라기보다는사실 하지 않은 말 때문이지너 같은 사람들은 몰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남자 1: 무슨 말인데? 어떤 말이었는데? 진짜 미치겠다.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혀?

 

남자 2: 너 괴롭히려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만일 너한테 얘기하면

 

남자 1: 얘기하면 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며?

 

남자 2: 그래, 맞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10~12)

 


말다툼하는 두 남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두 남자는 발화자인 동시에 발화자가 한 말을 듣는 자다. 하지만 듣는 자는 발화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말을 처음 꺼낸 발화자는 듣는 자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두 남자는 정말 대화를 못 하는 바보인가 아니면 일부러 서로 괴롭히려고 대화를 계속 비비 꼬는 것인가?

















* [개정판]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2022)




텍스트는 예민하다. 우리는 예민해진 텍스트를 즐겨야 한다텍스트가 예민해지려면 독자는 저자가 텍스트에 담은 본래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독자의 관점에 따라 텍스트가 다르게 읽힐 수 있고, 텍스트 속 의미도 달라진다. 괜찮아, 틀리면 어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저자의 권위에 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읽으라면서 독자를 독려한다. 텍스트에 독자의 관점이 뚫고 지나가면 저자는 죽지만, 오히려 텍스트가 살아난다.





















* 존 그리빈, 김상훈 옮김 《시간의 물리학: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24)


콜린 스튜어트김노경 옮김지웅배 감수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미래의창, 2023)


* 스티븐 베리, 신석민 옮김 《열역학: 열과 일,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과학》 (김영사, 2021)





과학이 뚫고 지나간 아무것도 아닌 일로를 읽는다면, 낯선 관점을 만나서 예민해진 이 작품은 엔트로피 드라마(entropy drama)’가 된다엔트로피는 모든 물질과 환경의 무질서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모든 것은 질서가 있는 안정적 상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해체되고, 산산이 흩어진다. 질서가 사라지면 무질서가 나타난다. 이 상태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높아진다)’라고 표현한다. 항상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이유도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희곡에 묘사된 두 남자의 끝없는 말다툼은 불안정하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대화 분위기와 감정 상태는 계속 상승하는 엔트로피다엔트로피가 작으면 모든 것이 질서를 유지하게 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하지만 높아진 엔트로피는 거꾸로 낮아지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무질서한 엔트로피를 예전의 질서정연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이를 열역학 제2법칙이라 한다.


















* 강양구, 김상욱,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살아 보니, 시간: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생각의힘, 2024)

 

* 카를로 로벨리, 이중원 옮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쌤앤파커스, 2019)


 


아무것도 아닌 일로는 두 남자가 말다툼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또 그들이 있는 장소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엔트로피 희곡의 주인공은 시간이다. 희곡 속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희곡이 끝나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는다텍스트에 나온 인물도, 텍스트 밖에 있는 인간 모두 죽는다엔트로피는 멈추지 않는다. 무질서 상태의 우주에 별과 행성은 없다. 완전한 ()’의 세계가 되는데, 이 시점에 도달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간은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진 시간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김상욱 교수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착각이며, 변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라고 말한다.[주1] 사실 김상욱 교수의 견해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이미 언급했다. 그는 동료 학자의 죽음을 언급한 편지에서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집요하게 계속되는 착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주2]라고 썼다. ‘시간 없는 우주를 지지하는 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인식을 일시적인 시간 구조로 본다시간 개념을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의 주인공은 시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 나온 문구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Le Temps Détruit Tout)는 새로 써야 한다속절없이 흐르기만 하는 시간 위에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하는 엔트로피가 있다.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을 애써 무시할 수 있어이 세상이 계속 변한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1] 살아 보니, 시간, 39쪽.


[주2]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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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리학 -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존 그리빈 지음, 김상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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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시간여행SF의 단골 소재다. 시간을 거슬러 여기저기 넘나드는 여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SF는 종종 오해받는다. 일단 SF라는 이름부터 모순이다. SF‘science fiction’의 약자. ‘fiction’소설 또는 허구라는 의미를 아울러서 품은 단어다. 과학을 매끈하게 정의하자면 실험과 관찰을 거쳐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학문이다. 과학은 결국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는 학문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실험으로 증명하려면 타임머신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만들 수가 없다. 여기서 사람들은 바로 결론을 내린다시간여행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어서 과학으로 볼 수 없다.’ ‘시간여행은 허구이며 공상에 불과하다.’


‘S’를 선호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 T?”라고 비꼬지 말자. 정확한 과학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도 SF를 좋아한다. SF를 즐겨 읽는 과학자들이 많다SF를 쓰는 과학자도 있다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그리빈(John Gribbin)SF 전문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이력이 있다그는 ‘S‘F의 만남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SF를 쓰는 과학자의 눈에는 ‘S’‘F’아주 오래된 짝꿍으로 보인다SF를 좋아하는 과학자는 오래 만난 짝꿍을 억지로 떼어내지 않는다.


존 그리빈은 과학소설에 진짜 과학(real science)’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어린 시절에 만난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와 같은 SF 거장이 쓴 과학 이야기(science fiction) 덕분에 글 쓰는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SF에 허구 맹랑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비록 상상으로 쓰였다고 해도 이야기 속에 분명히 흥미로운 과학이 살고 있다.


대부분 물리학자는 이론상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존 그리빈도 과학적으로 성립되는 시간여행을 생각하면서 즐기는 과학자다.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그가 쓴 시간의 물리학: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시간여행을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이 책을 잠깐 소개하자면, 역자는 SF 평론가 김상훈이다. 강수백이라는 필명으로 SF를 번역하기도 했다. 시간의 물리학은 역자가 처음으로 번역한 과학 도서다책의 마무리 글은 존 그리빈이 쓴 단편 SF. 소설 제목은 뒤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1990).


시간여행을 소설에서만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상상력과 과학을 결합해서 만든 타임머신이 있으면 된다머릿속에 타임머신 설계도를 그려라. , 설계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타임머신 부품에 과학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지 않으면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과학자들도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인슈타인을 존중하면서도 타임머신을 만들려고 한다. 과학 법칙에 어긋나더라도 일단 만들어라허점투성이 타임머신을 상상하면서 탑승해도 죽지 않는다타임머신을 만들었으면 우주 지도를 그려야 한다. 여기서부터 과학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타임머신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권위자인 S. (Kip S. Thorne)은 두 개의 시공간(또는 우주)을 연결하는 통로인 웜홀(Wormhole)이 있으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웜홀은 SF에서 유래된 개념이 아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는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이용해서 웜홀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이용해서 웜홀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네이선 로젠(Nathan Rosen)이라는 물리학자와 함께 웜홀과 비슷한 우주의 지름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고 부른다


SF 작가들은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블랙홀 연구에 영감을 얻어 시간여행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계를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SF를 읽으면서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이론을 도출해 냈다시간의 물리학 ‘S(과학)’와 ‘F(소설)’의 만남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루었는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SF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은 과학소설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둘의 만남을 이해하지 못해서 과학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 과학을 모르는 소설가소설을 안 읽는 과학자가 살고 있다. 사실과 완전히 다른 두 사람 때문에 한때 SF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공상과학 소설이 촌스러운 옛말이 되면서 사라졌지만, ‘과학을 모르는 소설가소설을 안 읽는 과학자는 살아 있다. 너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가상의 존재들이 죽여야 SF의 매력이 살아 숨 쉰다. ‘S‘F’가 서로 알고 지낸 지 백년이나 넘었다. 둘은 절대로 헤어질 일이 없다. ‘과학을 좋아하는 소설가소설을 즐겨 읽는 과학자SF를 만들었으니까.






<cyrus의 주석>




* 29

 

 시간팽창 효과는 수많은 SF의 기반이 되었고, 미래를 향한 일방통행식 시간여행의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 책 중에서도 이 개념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파고든 폴 앤더슨(Poul Anderson)타우 제로(Tau Zero)[1]를 제일 좋아한다.


 

[1] 번역본(천승세 옮김, 나경문화, 1992)이 있다. 절판되었으며 도서관에서도 보기 힘든 책이다.





* 41

 

 (열역학) 2 법칙에 의하면 열은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흘러들 수 없다. 19세기 열역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던 켈빈 경(Lord Kelvin)은 좀 더 기술적인 용어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2]

 

[2] 열역학을 설명할 때는 엔트로피(entropy)를 처음으로 언급했고, 열역학 제1 법칙과 열역학 제2 법칙을 정립한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Julius Emanuel Clausius, 1822~1884)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 58, [그림 4] 설명문

   




 2차원에 시간 차원을 더한 광추(light cone) 모형. 시공간상의 국소 지점에서 찰나의 시간에 발생한 어떤 사건의 결과로 방출된 빛이 시공간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의 경로를 나타냈다. 3차원 공간에 이 모형을 적용하면 빛은 구형으로 퍼져나가고, 빛 원뿔도 일반적인 원뿔이 아닌 4차원 초 원뿔이 된다. [3]

 

[3] 빛 원뿔 모형은 ‘4차원 개념을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에 도입한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가 제시했다. 빛 원뿔 모형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민코프스키 시공간(Minkowski spacetime)’이라고도 부른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표현한 그림은 167쪽(그림 14)에 다시 나온다. 처음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 수학적 개념이 적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중에 수학의 도움 없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민코프스키의 업적이 없었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인 휘어진 시공간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62



 


 제임스 블리시(James Blish)가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삐익>(Beep)에서는 거리와 상관없이 순간적인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디랙 라디오[4]라는 장치가 등장한다. 그러나 디랙 라디오는 음성 메시지를 수신할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삐익 하는 소리를 낸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이 삐익 소리는 과거에 보내졌고 미리[5]에 보내질 모든 디랙 메시지를 압축한 복사본이었다.

 

[4]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의 이름에서 따온 소설 속 장치다. ‘디랙 라디오의 원문은 Dirac communicator’.

 

[5] 미래의 오자.





* 109


 



S. (Kip S. Thorne), 인터스텔라의 물리학(The Science of Interstellar) [6]

 

[6] 번역본: 인터스텔라의 과학, 전대호 옮김, 까치, 2015.





* 115, [그림 12] 설명문

 




 M87 블랙홀 상상도. 처녀자리에 있는 타원은하이자 강한 전파은하다. 2017년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으로 관측한 인류 사상 최초의 블랙홀이다. [7]

 


[7] 20174월에 M87 블랙홀을 관측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년 뒤인 2019410일에 최초로 블랙홀을 화상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 125

 




폴 데이비스(Paul Davies), 타임머신을 제작하는 방법(How to Build Time Machine) [8]

 

[8] 번역본: 폴 데이비스의 타임머신, 강주상 옮김, 한승, 2002(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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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존재들 -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텔모 피에바니 지음,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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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노자(老子)도덕경41에 속담을 인용하면서()를 설명한다.



 “크게 모가 난 것은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잘 돌봐주고 잘 이루게 할 수 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김원중 옮김, 노자, 글항아리, 2013, 170~171)

 


모서리 없는 네모, 들리지 않는 큰 소리(이 표현은 유치환의 시 깃발의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시킨다), 형상은 있으나 형체가 없는 것이 모든 것은 현실에 없다노자의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지만, 이름과 형체가 없어서 신비스럽.


도덕경41장의 전체 문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네 글자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도덕경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도덕경에 주석을 단 왕필(王弼)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라고 해석했다. 국내에 출간된 도덕경대부분은 왕필의 주석을 참고한다. ‘비단에 적힌 도덕경이라 해서 백서본(帛書本)’으로 불리는 판본이 있다백서본에 대기만성’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에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표기되어 있다대기면성은 대기만성과 다르게 비관적이다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큰 그릇이 되기는 어렵다로 해석한다. 최진석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은 대기면성대기만성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원중 교수대기면성대기만성모두 옳은 해석으로 여긴다. 그는 노자가 해석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면서 도덕경을 썼다고 주장한다.


좀 늦더라도 노력만 하면 큰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기만성을 선호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도의 특성상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큰 그릇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 없다. 도덕경40장의 핵심유생어무(有生於無)’. 천하의 만물은 살아 있다(有生). 살아 있음의 시작은 없음()’이다. 도는 영원히 순환한다. 노자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 했다(反者道之動, 도덕경40). 결국 살아 있는 것은 없음으로 되돌아간다. 큰 그릇을 빨리 만들어서 완성하든, 천천히 만들어서 완성하든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색깔이 사라지며 형태가 점점 변한다.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언젠가는 깨진다그릇 색깔이 사라지면 다시 덧칠하면 된다. 깨진 그릇은 다시 붙이면 된다. 변형되고 파손된 그릇을 땜질하면 다시 살아난다. 도덕경40장의 유생어무41장의 대기면성완전한 형태의 도’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은 겉으로 봐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불완전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유생어무대기면성의 교훈을 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와 함께 나무 위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두 발로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은 인류 진화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진화한 종()으로 인식됐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 빠진 인간은 조상들의 고향인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간다. 


진화의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진보를 진화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진보와 진화를 모두 경험한 인간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라고 단정 짓는다하지만 진화는 인간이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 아니다우리는 완벽함과 완전한 존재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오류와 결점, 불안정성, 불완전한 존재는 발전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자 개선해해서 제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한다한때 돌연변이는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괴물로 낙인찍혔다. 우생학자들은 완벽한 인간이 아닌 장애인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진화 과정과 자연사는 완벽함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탄탄대로가 아니다결함과 우연’이 마주치는 가시밭길이다갑작스럽게 변한 자연환경은 대멸종을 초래했다. 여기서 소수의 종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시밭길을 무사히 걸어갔다. 몇몇 동물은 생존을 위해 자기 신체 일부를 변형하거나 퇴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타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다리를 발달하는 대신에 날개를 포기했다. 원래 잡식성 동물인 판다는 대나무 줄기를 손에 쥔 채 먹기 위해 손목뼈를 가짜 엄지로 진화시켰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프랑수아 자콥(Francois Jacob)이 말한 대로,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땜질하는과정이다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단순히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진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잘 살고 싶어서 진화한다. 불완전한 결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한다. 오류와 결함은 진화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완벽함을 이루기 위한 노력만 강조하는 대기만성은 이제 더 이상 위로의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위로의 말은 대기면성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에 나온 이 문장은 대기면성의 뜻을 담고 있다.



 인류는 생명체의 정수라기보다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


(223)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큰 그릇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 만들어라완벽한 도()를 담은 그릇보다 볼품없어도 용도(用途, 쓸모) 있는 그릇이 더 좋다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완성이 덜 된 그릇도 제 눈에는 만족스러워 보인다완성형 존재가 아닌 우리는 삶을 땜질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cyrus의 주석>



* 194

 




 인간의 남성은 여성이 임신할 준비가 된 순간을 감지하지 못한다. 개코원숭이, 맨드릴개코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노[주]와는 확실히 다르다.


[]보노보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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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4-05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노보노‘도 감지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ㅎㅎ

cyrus 2024-04-08 06:40   좋아요 1 | URL
나름 재미있는 오자였어요. ^^
 
우주의 수학 -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스토 야스시 지음, 전종훈 옮김, 강성주 감수 / 플루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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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천체물리학자 우주에 관심이 많은 물리학자. 천체(天體)우주에 살고 있는 행성, 항성, 성단, 성운 등을 아우르는 용어. 사실 천체물리학자를 천문학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천문학자 심채경이 쓴 책 제목처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보는 것은 별이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는 우주를 보지 않는다. 그는 우주에 깊이 스며든 수학을 본다. 야스시는 우주가 수식과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그가 쓴 우주의 수학오랫동안 우주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수학 법칙들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과 수학이 있다고 믿는 파에 속한다. 기호로만 이루어진 수식이 저자의 눈에는 아름답게 빛난다


대부분 물리학자와 수학자는 설명하기 복잡한 자연 현상을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한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수식이 낯설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으로 가득한 우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수학-우주론이 우주를 설명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우주가 법칙과 수학의 지배를 받을 리 없다는 파를 계속 지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솔직하다. 자신도 어려운 수식을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겸손한 태도는 수학이 싫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조차 포기할 것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랜다저자는 수식이 도출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수식만 알려준다. 물리학자는 수식으로 법칙을 표현한다. 법칙이 우주는 이렇다라는 형태로 된 문장이라면, 수식은 그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글자다글자 한두 개 빠지면 읽을 수 없는 어색한 문장이 되듯이, 수식이 없으면 법칙을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우주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법칙은 크게 세 가지다. ‘1 법칙’, ‘2 법칙’, ‘3 법칙으로 알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법칙은 행성이 움직이는 경로인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턴(Isaac Newton)은 자신이 발견한 운동법칙(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은 그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같다)과 케플러 제3 법칙을 결합하여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다. 만유인력은 중력을 뜻한다. 사실 만유인력은 뉴턴 역학을 다룬 외국 서적을 접한 일본 학자들이 ‘universal gravity’를 한자로 번역해서 나온 단어다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 중력을 발생시켜,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곡면을 이용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영감을 얻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다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한 우주의 법칙들을 이해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천문학자들은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맨눈으로 볼 수 없다. 천문학자는 우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법칙을 보고 싶어 한다. 시력이 좋은 눈을 가진 천문학자가 매일 밤하늘을 관측해도 우주가 꼭꼭 숨긴 법칙을 찾지 못한다. 법칙을 발견하려면 눈은 밤하늘을 바라보되 머리로 생각하면서 우주에 물어봐야 한다. 우주를 향해 법칙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질문하고, 우주가 천문학자에게 알려준 법칙과 관련한 단서를 분석하려면 수학이라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우주가 수학을 잘 아는 존재라면 천문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학을 모르는 천문학자는 날 보려고 하지 마!






<cyrus의 주석>




* 69

 

 1609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당시 발명된 망원경을 처음으로 천체 관측에 사용했습니다.[1] 이전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은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해야만 했죠.

 

[1] 영국의 천문학자 토머스 해리엇(Thomas Harriot, 1560?~1621)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보다 4개월 먼저(정확한 날짜는 1609726)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했고, 달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남겼다. 하지만 해리엇은 달 그림을 발표하지 않았고, 갈릴레오는 1610년에 자신이 직접 그린 달 그림을 발표했다.


[참고문헌 1] 로베르타 J. M. 올슨 & 제이 M. 파사쇼프, 곽영직 옮김

COSMOS 우주에 깃든 예술, 북스힐, 2021

 

[참고문헌 2마이클 벤슨, 지웅배 옮김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롤러코스터, 2024






* 153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지도는 지구 표면을 평면으로 펼친 지도입니다. 하지만 지구는 실제로는 구형이어서[2] 완벽하게 평면으로 펼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차원 평면으로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죠.





[2] 지구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다. 적도 지방이 부푼 타원체다. 따라서 지구는 찌그러진 형태라서 지역마다 중력의 강도가 다르다. (출처: [‘지구는 더 이상 둥글지 않다?’ 사진 공개맞을까 틀릴까] 매일경제, 201142일 입력)





* 203

 

 2019410일 천문학 역사에서 중요한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공통 연구팀이 타원은하 M87[3]의 중심에 위치한 초거대 블랙홀의 첫 이미지를, 전 세계에 있는 전파망원경에 연결해 촬영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다른 표현으로,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를 말합니다.


[3] M87처녀자리에 있는 타원은하. 처녀자리 A 은하라고도 부른다. ‘M’‘Messier’의 약자, 천체 목록을 만든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r)에서 따왔다.





* 참고 문헌 237쪽





 매튜 스탠리,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국가주의를 극복했는가?, 국내 미출간. [주4]


[주4] 아인슈타인의 전쟁: 상대성이론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했나(김영서 옮김, 브론스테인, 2020)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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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4-05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우주가 보고 싶은데, 수학실력이 부족해서 지금은 안되겟어요.ㅠㅠ

cyrus 2024-04-05 06:33   좋아요 0 | URL
저도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고등학생 때 수학능력시험 수리 영역 점수를 잘 받으려고 정말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문과인데도 수학 성적 올리는 데 노력했죠. 그렇게 2년 공부해서 수학능력시험 때 받은 수리 영역 점수가 27점이었어요.. ㅋㅋㅋㅋ 그때부터 제가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어요... ㅋㅋㅋ 그래도 수학을 책으로 보는 건 좋아해요. 수학 관련 도서에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
 
버자이너 -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나선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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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책방들을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책방에 이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방에 이 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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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3-19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신한 와이프를 둔 남자나, 애기아빠들이 읽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cyrus 2024-03-20 06:29   좋아요 1 | URL
결혼할 마음이 없는 남자도 읽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