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량한 이웃들 -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6월
평점 :
평점
3점 ★★★ B
우리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보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분법은 복잡한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분법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지나치게 믿으면 내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상대방의 관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은 난 옳고 넌 틀렸다는 우격다짐, 내 편 감싸기를 능사로 삼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에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우리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지키려고 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인간의 편 가르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원사의 손길이 닿은 정원 속에 보이지 않는 구획선이 한두 개 있다. 정원 식물을 시들게 하는 해충과 식물의 성장에 도움 주는 익충으로 나누는 선,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잡풀을 뽑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선이 있다. 이 선이 없으면 우리는 근사한 정원이 생기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 선 없는 정원에 잡초가 무성하면 그 정원을 방치한 정원사가 무성의하다고 판단한다.
어렸을 때부터 정원사에게 정원을 관리하는 일을 배운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는 이분법적 선이 없는 정원을 선호한다. 모든 동식물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으로 나누는 정원의 구획선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울타리다. 해충과 익충, 작물과 잡풀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이 편의상 부르는 명칭이다. 이분법적 선이 설치된 정원이 아름다워 보여도 정원 속 생태계는 무너진다. 흔히 우리는 해충과 잡풀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해충 방역에 나서거나 제초제를 뿌리지만, 효과보다는 오히려 해충의 천적까지 죽이는 부작용이 생긴다.
선 없는 정원 속에 사는 동식물은 ‘선량한 이웃들’이다. 바를라게의 책 《선량한 이웃들》은 그동안 ‘해충’ 또는 ‘잡풀’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여진 동식물이 정원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해로운 존재로만 알려진 동식물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를수록 그들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식물이 자연과 인간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모르는 식물 맹(plant blindness)뿐만 아니라 ‘곤충 맹’까지 겪고 있다. 해롭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동식물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쓸모 있다.
저자는 말벌이 ‘해롭지 않은 우리 동료’라고 말한다. 말벌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식물에 해를 가하는 곤충을 몰아내기 때문이다(그런데 저자는 말벌이 인간에게 유용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곤충의 생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미흡하다). 달콤한 꿀을 만드는 꿀벌은 익충이고, 그 꿀벌을 해치는 말벌을 해충으로 인식하는 국내 양봉 업계와 독자로선 말벌을 호의적으로 보는 원예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특히 다음 인용문은 말벌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말벌은 보호 대상이어서 위해를 가하거나 죽이는 사람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한다. 최대 5만 유로까지 벌금을 내야 하니까.
(「42. 땅벌 집이나 말벌 집을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을까?」 중에서, 140쪽)
책의 번역자는 이 문장에 대해 부연 설명(역주)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떤 독자는 말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저자 개인의 생각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벌 보호론자가 아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말벌이 보호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연방자연보호법(Bundesnaturschutzgesetz)’이라는 규정에 따르면 야생동물 혹은 곤충을 포획하거나 죽이면 5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저자는 말벌이나 말벌 집을 제거하려면 법적인 문제 없이 말벌을 제거할 수 있는 해충 박멸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권한다. 저자는 말벌을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의 한계를 답습한다. 나는 말벌을 ‘해충일 수 있고, 익충이 될 수 있는’ 곤충으로 바라보고 싶다. 익충이나 해충으로 구분 짓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익충이 해충이 될 수 있고, 해충이 익충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농약으로 해충과 잡풀을 제거하는 일에 반대한다. 그는 공생을 강조한다. 정원을 망치는 동식물을 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본다. 저자의 생명관은 ‘나도 살고 너도 살리고!’다. 과연 우리는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생태계로 이루어진 정원을 만들어 가꿀 수 있을까? 인간과 동식물 모두가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정원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정원을 가로지르는 구획선을 제거할 수 있다. 식물맹과 곤충맹을 유발하는 구획선을 없애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 중심주의와 이기주의를 벗고, 이분법이나 편견 없이 자연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지면 된다. 나와 다른 다양한 존재를 포용하고, 살아있는 모든 종이 상생하는 생명관을 정립하면 그동안 하찮고 해롭다고 여긴 동식물이 이웃으로 보인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103쪽
어쨋든[주1] 전등은 밤에 필요할 때만 켜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커튼으로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생활도 지킬 수 있다.
[주1] ‘어쨌든’의 오자.
* 「36. 벌에 쏘였을 때 정말 도움이 되는 처방은 뭘까?」 중에서,
123쪽
벌침을 핀셋이나 손톱으로 신속히 제거한다.[주2]
[주2] 손톱이나 핀셋으로 피부에 박힌 벌침을 집어서 뽑으면 벌침 끝에 남아있는 독성물질이 몸 안으로 더 침투할 수 있다. 독성물질이 나오지 않게 손톱이나 핀셋으로 천천히 제거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신용카드 모서리로 벌침을 살살 긁으면서 제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병원으로 신속하게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