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별세하기 일 년 전에 발표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 1995)이 재출간되었다. 2001년 김영사 출판사에서 펴낸 지 21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는 명저로 손꼽히는 《코스모스》(Cosmos, 1980)를 포함한 세이건의 책들을 번역 출간한 ‘사이언스북스’다.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북스, 2022)
* [구판 절판]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작은 촛불》 (김영사, 2001)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애서가도 추천할 정도로 《코스모스》는 워낙 유명한 과학 도서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독자는 칼 세이건을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기억한다. 하지만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의 생전 활동을 인상 깊게 본 독자라면 세이건이 제안한 ‘헛소리 탐지기(Baloney detection kit, 구판에 나온 번역어는 ‘엉터리 탐지 장비’)’를 떠올린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언급된 ‘헛소리 탐지기’는 엉터리 논리로 이루어진 유사 과학을 색출할 때 쓰이는 아홉 가지 검증 기준이다.
* 칼 세이건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20)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뿐만 아니라 《코스모스》가 나오기 일 년 전에 쓴 《브로카의 뇌》(Broca’s Brain: Reflections on the Romance of Science, 1979)에서 이미 여러 차례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cepticism)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초자연 현상과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구판의 서평을 남긴 어떤 독자는 미신과 유사 과학을 맹신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한 세이건을 ‘과학 지상주의자’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책에 세이건의 지적인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서평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 독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독자는 과학 지상주의와 과학적 회의주의를 혼동했다. 과학 지상주의는 과학이 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다. 과학 지상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과학만능주의’다. 하지만 세이건은 과학의 맹신자가 아니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과학 이론이나 지식까지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실험해서 검토한 끝에 기존의 과학 지식을 뒤엎는 새로운 가설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세이건은 《브로카의 뇌》에서 회의주의적 태도를 통해 발전된 과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과학은 실험, 오래된 도그마에 기꺼이 도전하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우주를 실제 그대로 보려는, 편견 없는 태도에 기초한다. 따라서 과학은 때때로 용기―최소한 전통적인 지혜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32쪽)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의심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와 과학을 무조건 최고로 여기는 과학 지상주의는 같다고 할 수 없다. 과학을 맹신하는 과학 지상주의자는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과학이 우리 삶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과학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 지나치면 대중을 기만하는 유사 과학을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한다.
이번에 나온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완전 개역판’이다. 구판에 오역과 오자가 있다는 독자들의 평이 있는데, 직접 읽어 보면 그들의 지적에 수긍하게 된다. 내가 구판을 읽으면서 찾은 오역과 오자는 다음과 같다.
어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개정판을 주문했다. 수령 예상일은 오늘이지만, 월요일에 책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구판과 개정판 역자는 같다. 개정판이 구판보다 번역의 질이 좋아졌는지 궁금하다. 개정판이 ‘개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20쪽
앨러배마 주 투스키제[주1]에 있는 물리학자들은, 일단의 퇴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그 전까지 치료된 적이 없는 새로운 병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이들이 매독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속였다.
[주1] 투스키제 → 터스키기(Tuskegee)
* 66쪽
천문학자들은 수억 광년 거리에까지 퍼져 있는 은하들의 분포도를 작성했는데, 그때 자신들이 ‘도박판의 시중꾼(Stickman)’[주2]이라고 불리는 미숙한 인간적 형상의 윤곽을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문]
When astronomers mapped the distribution of galaxies out to a few hundred million light years, they found themselves outlining a crude human form which has been called ‘the Stickman’.
[주2] 번역자는 ‘the Stickman’을 ‘도박판의 시중꾼(윗사람의 곁에 있으면서 온갖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직역했다. 단어의 뜻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천문학자들이 표현한 은하들의 분포 형태가 ‘도박판의 시중꾼’ 형태의 윤곽과 비슷하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형태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내세운 번역자의 정직한(?) 번역으로 인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번역문이 나오고 말았다.
‘the Stickman’은 인간의 머리를 원, 몸통과 사지를 직선으로 나타낸 형상(stick figure)을 뜻하므로, ‘막대 인간’으로 번역해야 한다. 백여 개의 천체(성단, 성운, 은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진 메시에 목록(Messier object) 성도(星圖)를 보면 ‘the Stickman’을 왜 ‘막대 인간’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색깔의 점으로 표시된 모든 천체를 선으로 연결해보면 얼추 ‘막대 인간’ 형상이 나온다.
* 78쪽
볼테르(Voltaire)의 《마이크로메가스》[주3]
*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문학동네, 2010)
* [품절]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바다출판사, 2011)
[주3] ‘Micromégas’는 고대 그리스어 ‘μικρός(아주 작은)’와 ‘μέγας(아주 큰)’를 합성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따라 볼테르의 소설 제목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미크로메가스’다.
* 118쪽: 골드바흐의 억측 →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 Conjecture)
* 146쪽: 카글리오스트로 →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 243쪽 원주: 엔리오 페르미 →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 254쪽: 에드가 카이스 →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
* 265쪽
대표적인 예로, 1528년부터 1536년까지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극심한 궁핍 상태에서 플로리다에서 텍사스을 거쳐 멕시코까지 육지와 바다를 떠돌던 알바르 뉴네즈 카베차 드 바카 이야기가 있다.
텍사스을 → 텍사스를
* 284쪽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는 그 시기에 《도가니(The Crucible)》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마녀재판’[주4]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 아서 밀러 《시련》 (민음사, 2012)
[주4] Salem Witch Trials. ‘Salem’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도시 ‘세일럼’이다.
* 329쪽: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스트레인지러브>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 334, 357쪽: 칼라하리 사막의 쿵 산 족(Kung San)
→ !Kung San, ‘!’가 없음.
* 345쪽: 콩고(Congo Republic) → 콩고 공화국 [주5]
[주5] ‘콩고’가 들어간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콩고 공화국(Republic of the Congo, Congo Republic)’과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이다. 두 국가 모두 ‘콩고’로 부르기도 하지만, 혼동을 피하려면 국명을 제대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