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저만의 글쓰기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출판사의 리뷰 청탁을 받으면 그 사실을 반드시 리뷰에 명시할 것. 두 번째, 출판사로부터 받은 홍보용 책에 문제점과 한계가 보이면 그 책이 가루가 될 때까지 비판할 것. 비판도 한 권의 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 번째,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도서를 읽고 나면 항상 마이리뷰를 먼저 쓸 것. 일명 () 마이리뷰, () 마이페이퍼 방식입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신간 도서에 저 또한 누구 못지않게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간 도서를 주로 소개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형 독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만 하는 독자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독자는 다릅니다. 실천에 방점을 두는 독서가 제가 지향하는 독서관(reading viewpoint)입니다. 책을 사지 못하면, 도서관에 빌려서 읽습니다. 원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내 손으로 종이를 쓰다듬고, 눈으로 문장을 어루만져야 책이 살아 숨 쉽니다. 책을 가까이하면 내 피부에 와 닿는 책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책의 숨결은 코와 입으로 들어와 우리 뇌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증발합니다. 그 느낌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리뷰를 씁니다. 저는 이 단순하고도 시간이 많이 드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

 

 

 

어떤 종류의 책에 관심이 있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에 보면 아무 목적 없이 스크랩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의 사례가 나옵니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시간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자료만 잔뜩 모아 놓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익숙해지면 입력의 양이 출력의 양보다 많아져서 넘치게 됩니다. ‘출력을 전제로 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 없는데 그 책을 읽었다고 믿게 되는 거죠.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 제가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리석었던 저를 구제해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였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사실은 지난달에 나온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해서 미리 사정을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번째 원칙에 따르면 신간도서를 읽었으면 마이리뷰로 소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특별히 그 원칙을 어기려고 합니다.

 

 

 

 

 

 

 

 

 

 

 

 

 

 

 

 

 

  

* 권택환 맨발 학교(만인사, 2017)

* 유병찬 소리 없는 빛의 노래(만인사, 2015)

* 박진형 고마 됐다(만인사, 2016)

 

 

 

지난주 일요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입니다. 대구시인협회장이자 만인사 대표인 박진형 선생님과 알라딘에서 ‘yureka01(유레카)’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유병찬 님을 만났습니다. 그 날 세 사람은 달성습지 산책로를 맨발로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 선생님과 유레카님은 요즘 맨발 걷기에 꽂혀 있습니다. 유레카님은 저에게 맨발 학교(만인사, 2017)라는 한 권의 책을 권했습니다. 이 책이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신간도서입니다.

 

사실 저는 일요일 전까지만 해도 맨발 걷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어요. ‘맨발로 땅을 걸으면 가시가 박혀서 따갑지 않을까?’, ‘잘못 하면 발바닥에 생채기가 생겨서 세균에 감염되면 어쩌지?’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까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피부에 닿는 작은 모래 알갱이 때문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점점 줄어듭니다.

 

 

 

       

 

 

맨발로 땅을 걸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일요일 대구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습니다. 세 사람이 달성습지를 걸었던 시간이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였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들인 땅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땅바닥이 뜨겁지 않았습니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했습니다. 양말과 신발을 신었을 때 발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다릅니다. 양말과 신발을 오래 신은 채 걸으면 발바닥에 땀이 생기고, 답답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합니다. 햇볕을 받은 땅을 직접 밟아보면 차가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과 맨발을 감싸는 바람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맨발 학교의 저자 권택환 씨는 맨발 걷기 교육 문화 보급에 앞장서는 교육인입니다. 이 분은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맨발을 걷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뇌와 마음 건강에 미치는 맨발 걷기의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맨발 학교의 책 분량이 얇고,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단순명료합니다. 그냥 걸으면 됩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보다 흙이 있는 곳에 걸어야 합니다. 흙이 있는 곳에는 분명히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꽃과 나무가 있다면, 그 주변에 곤충이 날아다닐 겁니다. 흙이 있는 곳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 우리가 살면서 지나쳤던 자연의 진짜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예쁜 꽃을 만나면 다가가서 코끝으로 인사를 나눠도 되고요, 스마트폰으로 굳어진 목을 살짝 위로 올린 채 걸으면 푸르른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어요. 한결 마음이 편해져요. 맨발 걷기는 돈 안 들이면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맨발 걷기를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맨발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걸어요? 창피한 일이에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맨발을 걸으면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experiment)’는 인지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심리 실험입니다.

 

 

 

 

 

 

 

 

 

 

 

 

 

 

 

 

 

*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 2011)

* 에이미 E. 하먼 우아한 관찰주의자(청림출판, 2017)

 

 

 

검은 셔츠 셋, 흰 셔츠 셋, 모두 여섯 명의 학생들이 팀을 이뤄 농구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게 이 실험의 과제입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실험 영상 중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맨발로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 뜬 장님이 됩니다. 주변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맨발 걷기 문화 정착에 찬성하지만,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에 창조력 함양을 포함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참고한 책 중에 이승헌 씨의 책도 있던데, 책 후반부에 맨발 걷기 교육과 뇌 교육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이승헌 씨의 뇌 교육과 그가 관여한 활동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의 구성이 아쉬웠습니다. 처음에 했던 내용을 문장을 바꿔서 재차 강조하는 글쓰기는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책의 가치가 낮아집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맨발 학교를 직접 사서 읽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 글이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된다고 해도 출판사 판매 수익, 저의 ‘Thanks to 적립금적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책마이페이퍼로 소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맨발 걷기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했던 걷는 행위와 다릅니다. 맨발 걷기는 눈을 뜨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명상운동입니다. 호흡과 발걸음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흙과 숲이 있는 곳에서 맨발로 걸으면 주변 풍경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숲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 새 소리, 풀 향기들이 여러분들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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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걷는 모습에서 맨발로 첨 걸어보는 티가 팍팍 나는 cyrus님 ㅋㅋㅋㅌ

cyrus 2017-09-12 20:40   좋아요 0 | URL
저때가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역시 처음으로 맨발로 걸으니까 발바닥에 통증이 찾아왔어요. 지금도 발바닥이 조금 얼얼합니다.. ㅎㅎㅎ

이하라 2017-09-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로 처음 걸어보는 티가 난다면 왼쪽분이 cyrus님이로군요^^

cyrus 2017-09-12 20: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진을 다시 보니까 초짜와 고수의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

stella.K 2017-09-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뒷모습 얼핏 보니 생각 보다 호리호리 하네.
동안일 것 같군.
뭐 유레카님은 아저씨니까.ㅋㅋ
암튼 좋은 시간이었겠네.^^

cyrus 2017-09-12 23:26   좋아요 0 | URL
한 시간 걷고나서 박진형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화가의 아틀리에도 구경했어요. 정말 특별한 일요일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1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걷기가 무좀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yrus 2017-09-12 23:28   좋아요 1 | URL
《맨발 학교》에도 맨발 걷기 이후로 무좀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플라시보 효과인가요? ㅎㅎㅎ

yureka01 2017-09-12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흙과 내 발바닥의 촉감의 느낌. 전해져 오는 대지의 온도...대기의 기온 이런 것들의 내재됨.. 좋은 시간이었어요..사진 한장 찍을 수 있는 행복..ㅎㅎㅎㅎㅎ네 그럼요....
인류가 신발은 신었던 기간은 몇천년도 안되죠,맨발은 수만년이었을 겁니다.잃어버린 본질의 촉감이라고나 할까 싶습니다..

cyrus 2017-09-12 23:30   좋아요 1 | URL
제가 유레카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접하기 힘든 경험과 새로운 만남은 없었을 겁니다. ^^

곰토낑 2017-09-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 곳곳에 맨발로 산책할수있는 길이 조성되있는건 아는데 실제로 걸어본 적은 없었어요. 곤충이나 돌조각, 유리조각 같이 발바닥을 상처입게할 요소들만 생각해서 저어되더라구요... 그런데 흙길을 맨발로 산책하기엔 여름이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네요. 파삭파삭하고 자근자근한것이...ㅋㅋ 그런데 글을읽다 깜짝 놀랐어요 ^^; 자정에서 1시라고 하셔서 새벽산책이신줄...ㅎㅎㅎ

cyrus 2017-09-12 23:36   좋아요 0 | URL
맨발 산책로가 단순히 건강 증진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지는 게 아쉬워요. 그런 길 대부분은 딱딱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요. 정말로 도시에서 흙길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저의 실수를 정확히 발견하셨군요. ‘정오‘라고 써야할 것을 ‘자정‘으로 잘못 쓰고 말았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북플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 수정할 수 없어요.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ㅎㅎㅎ

clavis 2017-09-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고싶어져요^^!!

cyrus 2017-09-12 23:40   좋아요 0 | URL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해집니다. 신발이 없으니까 발이 움직일 때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

2017-09-1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3 12:57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밤 11시만 되면 졸려서 책을 못 읽겠어요. 이렇다보니 금방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만 찾게 됩니다.. ㅎㅎㅎ

뇌호흡을 뇌과학이 인정한 현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sprenown 2017-09-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양말을 벗고 싶군요..나도 저렇게 어기적 대면서라도 한번 걸어볼까나?

cyrus 2017-09-13 12:59   좋아요 0 | URL
회사에 있으면 슬리퍼를 신고 다닙니다. 그래야 발이 시원해지고, 발냄새가 날아갑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세 분이 만들어낸 작품이네요...

저도 보이지 않는 고릴라, 경험했어요. 글을 읽기 전에 사진만으론 맨발인지 몰랐습니다. ㅋ

cyrus 2017-09-14 13:5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을 때 정작 중요한 내용을 못 보고, 엉뚱한 내용만 보는 경우가 있어요. 또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도 오타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

오후즈음 2017-09-1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 머물렀던 프라이부르크에선 간혹 맨발로 다니는 유럽인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그들을 볼때마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시는 어려우니 간혹 저렇게 자연과 친해지고 싶네요.

cyrus 2017-09-14 13:56   좋아요 0 | URL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자연친화적 장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