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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태우스
서민 지음 / 장문산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부제의 ‘변’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절대로 아니다. 냄새나는 똥이 아니다. ‘변’은 동음이의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목적으로 쓴 한문체(辯)를 의미한다. ‘세상에 이런 변이 있나’라고 할 때 ‘변’은 똥(便)이 아니라 ‘변할 변(變)’이다. 여기서는 괴이하고 별난 일을 의미한다. 부제의 ‘변’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껴안는다. 마태우스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선수가 아니다. 점 하나 위치가 다르다. 외국어 한글 표기를 적용하면 축구 선수 이름은 ‘마테우스’로 써야 한다. 마태우스는 기생충의 아버지 서민의 닉네임이자 오너캐다. 오너캐란 ‘Owner character’의 준말이다. 쉽게 말하면 작가 자신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서민은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를 줄여서 마태우스를 창조했다. 그리고 평생 작가를 괴롭히는(?) 어마어마한 소설을 발표하게 된다. 이름하여 《소설 마태우스》.
1996년 9월 21일자 동아일보
《소설 마태우스》는 국내 유일무이한 삐삐소설이다.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에 삐삐가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90년대 중반은 삐삐의 전성시대였다. 삐삐는 국민의 주머니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의 가슴을 떨리게 하였다. 서민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컴퓨터에 글을 연재한 작가는 있었어도 삐삐로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는 없었다. 서민은 처음으로 삐삐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삐삐소설을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작가는 삐삐의 호출기 음성사서함에 소설을 녹음한다. ‘012-842-8349’로 호출하면 녹음된 작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소설의 일정한 분량을 20초 이내에 저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재 형식으로 나오게 되었다. 꾸준하게 삐삐에 녹음한 글을 모아놓은 책이 바로 《소설 마태우스》다.
《소설 마태우스》는 단편소설, 콩트, 에세이 형식의 칼럼으로 구성되었다. 책은 서울대 의대생들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서울의대생과 도토리묵』으로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 글은 『시지프스의 눈물』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주인공은 형사 마태우스다. 그가 서울의대 강의실 폭파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다. 작중 인물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마방배, 홍봉천, 천역삼. 그리고 정대림이라는 인물은 호모 비슷한 역할로 등장한다. 작가는 『시지프스의 눈물』에 호모가 등장해서 ‘혁명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고 밝혔다. 형사 마태우스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황당무계하다. 자신을 습격하는 범인인 줄 알고 평범한 시민에게 똥침을 날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사건의 단서를 알아내기 위해 증인에게 천 원짜리 지폐 5장을 넣은 돈 봉투를 주기도 한다.
이보다 더 황당한 사실이 있다. 이 소설 어디에 봐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와 전혀 관련 없다는 점이다. 『시지프스의 눈물』 부록으로 가상 인터뷰로 설정한 ‘작가와의 대화’, 소설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퀴즈 쇼’가 있다. 작가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내용이다.
형사 마태우스는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역시나 황당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이러한 소설에 장르를 구분하자면, 엽기 코드가 가미한 서스펜스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소설들은 황당하고 과장된 장면으로 일관된 줄거리로 독자의 웃음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억지스러운 설정은 작가의 부족한 역량을 드러내는 한계가 되었다. 작가가 자신의 처녀작을 언급하면 항상 ‘저주’라는 단어를 달고 다니는지 그 심정이 이해된다. 《소설 마태우스》에 수록된 소설 한 편을 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무 사람에게 읽으라고 하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게 진짜 소설가가 쓴 거 맞아요?”, “내가 이것보다 잘 쓰겠네”, “혹시 이 소설, 작가가 발로 쓴 거예요?
《소설 마태우스》의 웃음 코드가 어떤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짤막한 콩트 한 편을 임의로 편집해서 소개해본다. 제목은 ‘마태우스맨의 탄생’이다.
아파트 34층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던 김여사는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어제 사둔 게토레이가 어디 있을 텐데...”
게토레이가 보이지 않자 김여사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5분 뒤, 김여사는 쓰레기통에서 비어 있는 게토레이병을 찾아냈다.
“악! 해진아!”
베란다로 엉금엉금 기어가던 그녀의 6살 난 딸이 창문 밖으로 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김여사는 그대로 실신하고 말았다. 마태우스는 짜증이 나서 씩씩거리며 강변역으로 가고 있었다. 겨우 2만원을 받으며 구의동까지 온 것이 그는 못내 분했다. 갑자기 그는 폭염 속에서 한줄기 냉기를 느꼈고, 그의 두 눈은 맹렬한 속도로 떨어지는 아기를 보았다. 그는 몸을 날렸으며. 그의 두 팔은 아기의 엄청난 체중을 느꼈다.
7분 후 강변 아파트 34층.
“아기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습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안 되지요. 어찌 되었던 다행입니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존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대답 대신 마태우스는 명함을 날렸고, 명함은 그녀의 손에 정확히 꽂혔다.
‘마침내 태어난 우리의 스타, 마 – 태 – 우 – 스 ?’
순간 그녀는 베란다로 걸어나가는 마태우스를 보았다.
“어머, 거긴 문이 아니예요!”
“으 – 악!”
그녀의 외침은 마태우스의 비명 속에 묻혔다.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애 구하고 자신이 대신 떨어져’
《소설 마태우스》가 나온 지 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작가의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 괴작이 되었다. 작가는 이 소설 출간 이후로 10여 년 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 작가의 칼럼은 대중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으며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혔다. 작가의 노력을 잘 알고 있기에 《소설 마태우스》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이 책이 재출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이 소설의 존재를 무시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긴 앨범을 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사람이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한 해 동안 열심히 기록한 글을 모아놓으면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생각하고 느꼈던 흔적으로 가득한 문장의 앨범이 된다. 세월이 지난 뒤에 과거에 쓴 글을 읽어보면 유치한 내용에 얼굴이 붉어진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고 앨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부끄러움은 한 순간일 뿐이다.
《소설 마태우스》는 저주의 소설이 아니다. 지금의 마태우스를 있게 해준 책이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패기가 넘쳤던 젊은 마태우스를 만나볼 수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젊은 마태우스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원 없이 썼다. 그의 첫 도전은 박수 받을 일이다. 서민의 참모습을 알려면, 《소설 마태우스》를 먼저 읽어야 한다. 처녀작을 잊으면 안 된다. 그다음에 칼럼을 읽고, 발간 순서대로 책들을 읽어봐야 한다. 서민이 정말 노력 하나만으로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작가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서민은 죄를 지을 정도로 저주의 소설 같은 나쁜 글을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서민을 믿는다. 첫째, 형사 마태우스는 서민의 오너캐다. 둘째, 서민은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다. 셋째, 남들보다 시대를 앞서가는 도전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서민을 장황하게 변호했지만, 그에게 실망한 게 딱 하나 있다. 왜 지난날의 과오를 잊으라고 하십니까. 작가가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른다는 ‘세월이 가면’ 노랫말 한 구절이 딱 생각난다.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책)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서민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강력하게 사랑합니다. 서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