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성적표 공개
오늘 1학기 성적 석차가 발표되었다.
열심히 공부한만큼 성적은 목표를 두고 있었던 점수보다는 나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학과에 소속된 2학년 학생 41명 중에 2등이라는 조금은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종합 평점은 4.08
간신히 4점대 영역을 넘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이 점수만으로도 장학금은 물 건너 간 줄알았는데 2등 할 줄이야... 사실 등수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에 대해서 약간은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대로 시험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특히 6과목 중에 정말로 열심히 공부한 행정학이 B학점이라는게 옥의 티이다. 아무래도 전공이 행정학이고 과목 특성상 행정학에 대한 기본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서 이 과목만큼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A+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복학하기 전에 미리 복학을 한 선배와 동기들에게 전공과목에 대해서 조언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S 교수님의 행정학 수업을 듣지 말 것을 권하였다.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점수를 잘 받아봤자 B라는 것이다. 그리고 A+은 많아야 두, 세 명 정도 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S 교수님이 담당하는 수업 자체를 피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학년 전공과목인 행정학 수업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4년 전에 S 교수님으로부터 1학기에는 행정학원론, 2학기에는 행정학각론이라는 전공기초과목을 수강했는데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분의 강의 스타일 그리고 시험문제와 과제 유형 그리고 수업시간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들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평소의 학습 스타일을 고려해서 A+를 받기 위해서 나름 전략적으로 공부하였다.
학습 방법은 분명히 좋았다. 주위 친구들도 내가 행정학 과목 1등 후보로 지목할 정도였다. ^^;;
하지만 기말고사 점수가 중간고사 점수보다 낮게 나오는 바람에 상대평가 시스템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게 되었고 만점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과제 점수는 20점 만점에서 10점, 그것도 과제 점수 중 꼴찌라는 예상치 못한 최악의 성적을 받아야했다.
기말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온 것보다는 과제 점수가 만점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 컸다.
이번 학기 과목을 포함해서 그동안 수강했던 과목의 과제 점수가 만점이었고 비록 한 개의 과제이지만 각종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건만 꼴찌나 다름없는 행정학 과목의 과제 점수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평소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나로써는 이번만큼은 과제 점수에 대해서 교수님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성적이의제기를 해봤자 성적을 올려 받아서 득을 본 학생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성적이의제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교수님에게 과제 점수의 불만에 대해 설명하는지도 몰랐던 것도 있었다. 무턱대고 낮은 점수에 대한 불만을 가진 채 이의제기를 하게 되면 자신이 왜 이런 점수를 받게 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 학생들은 상대평가에 따라서 받게 된 점수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자신의 점수가 못마땅하게 느껴지게 되고 성적이의신청기간만 되면 평소에 말도 걸어보지도 않은 교수님에게 전화를 한다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나는 점수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과제 내용을 훑어봤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과제 초안을 여러번 꼼꼼히 보고 있지만 이 과제 내용이 왜 10점을 받아야하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의제기를 떳떳이 할 수가 없었다.
Scene #2 시험 컨닝보다 더 심각해진 학점 흥정
예전에는 시험 기간만 되면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것이 대학교 시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 컨닝에 관한 것이다.
대학교 학부생 시절을 경험해본 사람들 중에 분명 한 번은 컨닝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정 학과에서 전해내려 오고 있는 전공 교수님 시험 족보보다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기상천외한 컨닝 방법이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4년 전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친분이 있는 선배에게 그 때 당시 선배가 배우고 있던 전공과목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번 1학기 때 배웠던 행정통계론이었을 것이다. 그러자 선배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과목과 교수님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동기는 다른 선배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 선배, 대학교 시험에는 대부분 컨닝한다던데,, 교수님에게 걸리지 않는
컨닝하는 비결이 있나요? "
그런 질문을 받은 선배는 당연하다는듯이 자신의 컨닝 노하우를 전수하였다. 컨닝 비결을 선배에게 물어본 그 동기는 지금도 시험을 치게 되면 항상 작은 컨닝 페이퍼를 손에 쥐고 있다. 그리고 후배에게 컨닝 노하우를 전수받은 선배는 졸업반 4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컨닝 페이퍼를 애용하고 있다.
대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컨닝이라는 불법 행위가 너무 쉽게 용인되어서 시험 기간만 되면 시험감독이 되어야하는 교수님들이 혼자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제는 시험 기간이 끝나도 교수님들은 쉴 겨를이 없이 피곤하다. 성적을 종합적으로 산출하고나면 학생들이 수도 없이 교수님들에게 학점을 올려달라고 이의제기, 즉 흥정을 하기 때문이다.
[‘학점 흥정’에 교수들은 괴롭다]
동아일보 7월 13일자
교수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시험 컨닝, 과제 무단 도용 및 표절이다. 특히 과제(레포트) 표절은 지금도 모든 대학 교수님들이 골치 아파하는 학생들이 저지르는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도 과제를 대신 써준다거나 적은 가격으로 논문이나 과제를 구입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운영된다. 단 몇 백원만 구입만 하면 과제는 5분만에 끝낼 수 있다. 학생들은 나름 좋은 내용의 과제를 구입하여 자신이 쓴 것처럼 이름만 살짝 바꿔 제출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성적 이의제기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인터넷에 소개될 정도이니 학점 흥정도 교수님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대학교 내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Scene #3 시험지가 도난당하게 된다면,,,?
학점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시험을 치뤄지면 부정 행위가 발생하게 되고 학생들에게는 컨닝이 좋은 성적을 쉽게 얻을 수 있는 ' 악마의 유혹 ' 이다.
몇 년 전에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휴대폰 문자를 이용한 불법 행위를 저지른 수험생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대학수학능력은 수험생들이 다니게 될 대학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입시제도이다. 그래서 대학수학능력 시즌이 다가오게 되면 수십명의 출제위원이 한 달동안 합숙하면서 시험문제를 만들기도 하며 시험 전날에 박스로 단단히 밀봉한 시험문제지가 전국의 각 시험 고사장으로 배송될 정도로 그야말로 시험문제가 국가적 일급 기밀이다.
예전에 수능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던 교사가 자신의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일부러 시험문제를 알려줘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있었지만 만약에 대학수능 시험문제지가 감쪽같이 도난당하거나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자못 흥미로우면서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단, 명탐정 셜록 홈즈라면 이런 사건에 대해서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명탐정 셜록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은 홈즈와 왓슨 박사가 활약하는 내용을 담은 단편소설집을 남겼는데 그 중에 1905년에 발표된 <셜록 홈즈의 귀환(The Return of Sherlock Holmes)>에 수록된 총 13편의 단편 중에 [세 학생]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소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 날 치뤄지게 될 그리스어 시험문제지가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면서 홈즈와 왓슨 박사가 사건 해결에 나서게 된다. 홈즈는 교수의 증언과 사건 현장인 교수의 연구실 내부를 관찰한 결과를 종합하여 그리스어 시험문제를 훔친 용의자를 곧 그리스어 시험을 치룰 예정이었던 세 명의 학생으로 압축하게 된다.
셜록 홈즈을 열광하는 셜록키언에게는 이 단편소설이 다른 작품보다 비중 있게 조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도 홈즈의 뛰어난 추리력과 관찰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이 단편소설에서 다음 날 곧 치뤄지게 될 그리스어 시험과 시험 용의자 후보로 선상에 오른 학생들의 묘사가 흥미롭다.
특히 용의자 후보인 세 학생 중에 마일즈 맥랄렌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시험지 도난 사건과 관련되어 유력한 용의자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 이유는 과거에 컨닝 때문에 퇴학당할뻔한 좋지 않은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홈즈가 사건 해결을 위해서 기숙사에 위치한 그의 방을 방문하려고 하자 마일즈 맥랄렌은 내일 그리스어 시험이 있아서 아무도 만나기 싫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세 명의 용의자 후보인 학생들에게 그리스어 시험은 정말 중요하다. 이 시험에서 합격을 하게 되면 졸업할 때까지 학비 일체를 대주는 장학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명의 학생이 당연히 그리스어 시험 문제지 도난 사건과 관련하여 용의자 후보가 될 수 밖에 없었고 그 중의 한 명은 성적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충동적으로 시험지를 훔치게 된다.
Scene #4 대학생들만의 숫자, 학점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른들은 숫자에 애정을 갖고 있다. 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하면 그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물어보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말이다.
" 그 애 목소리가 어떻든? " . " 그 애는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 . " 그 애도 나비를 수집하니?"
오히려 이런 것들만 물어본다.
" 나이가 몇 살이니? " , " 형제는 몇 명? " ," 그 애의 아버지는 월급을 얼마나 받니? "
그런 것들을 알고 난 다음에야 상대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그 사람의 가치를 내면의 정신이나 성품 그리고 노력과 같은 행위를 먼저 보는 것보다는 정확히 수치로 산출할 수 있는 결과만 따지고 평가의 잣대로 사용한다. 특히 그 사람의 재산이 얼마 가지고 있으며 그가 살고 있는 집은 몇 평이냐 따져봄으로써 그 사람이 잘 사는지 못 사는지 자가 결정한다.
재산을 1억 넘게 보유하면 되고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100평대의 집에서 살면 상대방은 당신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면서 우러러 보게 된다. 그리고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 무조건 평점은 3.0 정도는 넘어줘야 하며 TOEIC 기본 점수는 717점이 되어야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숫자의 단위가 높으면 되며 모든 것은 숫자의 수치에 따라 그 가치가 좋으냐 안 좋으냐 판가름하게 된다.
오늘 예비군 훈련을 하게 되어서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대부분 나에게 건네는 첫 마디.
" cyrus야, 시험 평점 얼마 나왔어? , " 너, 석차 몇 등 나왔냐? "
남 성적 알아서 뭐 하려고,,, 학점이 잘 나오면 열심히 공부한 노력의 과정을 칭찬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학점이 못 나오면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을 못 쳤다고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수군거리는 것이 상대방 시험 점수에 대한 그들이 느끼는 극명한 반응들이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장학금을 받아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고, 그리고 좋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 지금도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은 시험 기간만 되면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거나 또는 정성들여 컨닝 페이퍼를 작성하기도 한다.
학점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이 되어버렸다.좋고 나쁜 과정을 선택하든간에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결국에는 상대방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학점은 대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평가하는 단위일뿐이다. 학점이 높다고해서 그 학생이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여 자신이 좋아하던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였으며 앨런 그린스펀 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대학생 시절에 경제학 점수가 형편없을 정도로 교수들 사이에서는 형편없는 실력의 학생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학점이 낮다고해서 섣부르게 인생이 끝났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왜 자신의 학점이 낮은지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의 학습 전략에 대해서 반성하여 다음 시험에서만큼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나올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더욱 자극하여 도전 의지를 형성해줘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노력에서 얻은 결과는 참되고 값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공부를 해야하는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고 이를 영양분 삼아 좋은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적인 대학 생활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