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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곡(Overture):  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사, 작곡 그리고 연주)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시도],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p 5 -

 

 

 

  1악장: 로렌스 스턴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견해>   

     

 


로렌스 스턴 (1713~1768)
 

 

세계문학사상 가장 기이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삷과 견해>(우리나라에서는 문지의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에서 ' 트리스트럼 샌디 ' 라는 이름으로 국역되어 출간되었다)을 쓴 영국의 작가 로렌스 스턴.  영국의 평범한 신사였던 그는 이 유명한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 폐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건강이 악화되어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턴은 소설의 첫 1권을 쓰기 시작한 1759년부터 1767년까지 총 8년동안 제9권까지 집필, 출판하였다.  이듬해 작가가 사망하게 되어 이 소설은 9권까지 마무리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지만 후대의 문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트리스트럼 샌디> 못지 않게 기존의 소설 형식의 틀을 거부한 내용으로 독자들 사이에서는 난해함으로 가득찬 악명 높은 소설인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백년 전에 이미 ' 의식의 흐름 ' 방식을 시도한 로렌스 스턴 덕분이다.  

스턴은 <트리스트럼 샌디> 출판 당시 영국의 수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윌리엄 피트 에게 진심어린 존경(?)이 담긴 헌정사를 썼는데 집필하는 동안 폐결핵이 선사한 신체적 고통을 웃음의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스턴의 낙천주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헌정하는 작품에 대해 이처럼 절망을 느끼는 가엾은 헌정자도 없을 것이니,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을 이 나라 한 귀퉁이 외딴 초가집에서, 병약한 육신과 질병과 그 외 인생의 해악을 웃음으로 이겨보려 애쓰며 저술했기 때문인데, 우리가 미소를 짓거나, - 더욱이 소리내어 웃을 때마다, 보잘것없는 삶의 단편에 무엇인가 더한다는 강한 신념 때문입니다.  

- <트리스트럼 샌디 1> [진심으로 존경하는 피트 경께] 로렌스 스턴, 문학과지성사, p 11 -

  

스턴은 서문격인 헌정사에서 영국의 수상 각하가자신이 쓴 소설을 읽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소설의 평가에 대해서 은근히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 의식의 흐름 ' 기법을 사용하는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을 읽었겠지만 윌리엄 피트가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관심있게 읽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안 읽었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 세계문학사상 가장 기이한 작품 ' 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벗어난 독특한 내용과 서술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탈선을 거듭할 정도라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용 도중에 또 다시 피트 경에게 보내는 작가의 서문이 나오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 풍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어려운 단어와 문장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아무리 수많은 각주을 달고 있어도 소설의 형식을 거부한 이 소설을 국내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변주 : 평범한 대학생 cyrus의 일상과 <사유의 악보>에 대한 견해  

인간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나 어떤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피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트리스트럼 샌디> 단 한 편의 작품을 통해서 로렌스 스턴이 집필기간 동안 느꼈을 폐결핵의 고통을 말끔히 날릴 수 있었다.  <팡세>를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사상가인 블레즈 파스칼은 불의의 마차 사고를 겪게 되어 심하게 다치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사고에 대한 후유증과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파스칼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연구, 훗날 자신의 수학적 업적 중의 하나가 된 사이클로이드(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곡선) 연구를 통해서 후유증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인물의 일화 이외에도 인간에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근심과 고통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방법으로는 독서 또는 그냥 무심하게 잠드는 것이다.  그나마 독서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안정제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 그리고 감정의 카타르시스을 느끼게 해주는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어서 왠만하면 독서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곧 다가올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다가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요구하는 레포트 준비 때문에 이번 달은 거의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학교 가서 수업 받고 도서관에 가서 전공 책으로 공부하는, 이 반복적인 패턴의 일상이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복학할 때부터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바쁜 학업 때문에 알라딘 블로그 활동도 뜸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읽어야 할 책은 많아지는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전공책 네 다섯 권을 하루 종일 내내 보고 있으니 누런 황사가 내 마음 소을 덮인 것마냥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많다.   그리고 이번 달에도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없어서(이번 달만해도 벌써 세 번째이다) 아쉬움을 억지로 삼켜내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하루 일상 중에서 편안함을 느껴보는 시간은 학교 갈 때 또는 집으로 돌아갈 때 타게 되는 버스 안에서이다.  버스를 타는 동안에는 책을 읽다거나 혹은 잠깐의 낮잠이라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책 읽는다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버스 안에서 책 한 권 읽게 되면 30분 이상을 못 넘긴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게 되며 바로 수면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버스 안에서 책 읽는 시간보다는 앉아서 잠 자는, 아니 꾸벅꾸벅 졸았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즘 버스 안에서 읽었던 책이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라면 . . .  

과연 이 책을 버스 안에서 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을 것인가,,, ?  

나는 지금까지 버스 안에서 네 번 정도 <사유의 악보>를 읽었는데 20분도 못 넘긴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과연 인간의 사유라는 행위의 당위성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난해한 글 덕분에 그동안 나의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던 ' 사유해야 한다 ' 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벗어날 수 있었다.  들뢰즈가 무슨 말 하는지, 박상륭의 소설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그것들은 중요하지가 않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불협화음의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지금까지 살면서 스트레스가 남기고 간 인생의 노곤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버스를 타면서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수면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요즘 든든한 수면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참 좋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렸던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한 수면제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면 나의 수면제는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이다.  

 

   

 

 * * * * * * * * *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 사유의 악보  * * * * * * * * *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는 질 들뢰즈,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바타유 등과 선뜻 다가서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은 사상가들의 사유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담아내고 있어서 읽기 힘든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서문 아니 서곡에서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육체들 ' 이라고 자신의 글을 정의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을 뿐이다.  일정한 줄거리 형식이 없으며 밑도 끝도 없는 내용 전개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소설인 <트리스트럼 샌디>를 처음 읽는 독자가 느끼게 되는 반응처럼 말이다. 

<트리스트럼 샌디>와 <율리시즈>를 만나게 되면 독자는 이 소설의 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소설 읽기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처럼 <사유의 악보>는 저자가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건지 또는 사유의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문하는 방식을 요구하게 되는, 평소대로 인문학 도서를 읽는 것처럼 오목조목 따져 가면서 읽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읽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악보처럼 등장하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사상가들의 광범위하게 축적된 사유의 결과물를 이해하면 불협화음의 악보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이 들뢰즈나 바타유와 같은 난해한 사상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면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질 거 같은 악보에 깊숙이 묻혀져 있는 아름다운 화음(?)의 소리를 찾는 의외의 성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곡에서 저자는 자신의 악보는 결코 음악이 아니며 단지 독자들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표기의 형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예 자신의 의도를 배반하고 마음껏 해석하기를 강력히 권하고 있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순전히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만의 독서, 즉 사유의 악보를 연주함으로써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사유 방식의 가능성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2악장:  절대로 연주되어질 수 없는 것 :  

           칸딘스키와 존 스텀프의 악보 그리고 <사유의 악보>  

 

 


바실리 칸딘스키 <상호의 화음> 1942년   

  

러시아의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회화를 음악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표현의 사유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첫째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단순한 형태에 종속되는 단순한 구성으로, 나는 이를 선율적 구성이라 부른다.  둘째는 복합화된 구성으로서, 이는 ......  주요 형태에 여러 형태들이 종속된 구성이다.  ......  이 복합화된 구성을 나는 교향악적 구성이라 부른다. 

- 칸딘스키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중에서,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p 39 재인용 -

 

그가 남긴 추상화는 교향악적이고도 역동적인 추상표현을 관철한 뒤 점차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되는 것이 특징인데 칸딘스키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아니 회화의 악보에서 음악의 선율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점, 선, 면 라는 회화의 세 가지 요소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자신의 그림에서 음악을 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칸딘스키의 친절한(?) 부연 설명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각기 각색의 알록달록한 무수한 원형들 그리고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한 그의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이 화가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캔버스를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봤자 결국에는 추상화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일반적인 그림처럼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특정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의도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상화를 통해서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형태 배열이 만들어낸 선율적 구성의 아름다움을 예술화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것도 귀로 듣는 것이 아닌 눈으로!  

칸딘스키가 회화를 음악에 접근했다면, 최정우는 사유의 텍스트를 음악에 접근하고 있다.

이론,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사유의 형태들이 조합하여 만들어낸 ' 사유의 악보 ' 역시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사유를 하나의 ' 음악 ' 으로 둔갑한 ' 예술화 ' 한 하나의 형태다.  비록 저자는 독자들에게 기형적인 형태 배열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말의 참고사항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사유의 텍스트를 장난감 블록을 조립하듯이 접붙임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사유의 텍스트에서의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존 스텀프 <요정의 아리아와 죽음의 왈츠> 악보 일부

 

그리고 운이 좋으면(책을 읽게 된 독자가 저자가 말하고 있는 ' 소수의 독자 ' 중의 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기형적인 텍스트에 매료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온 <사유의 악보> 표지 이미지는 존 스텀프의 <요정의 아리아와 죽음의 왈츠> 악보 중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 죽음의 왈츠 '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무시무시한 이름 덕분에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을 연주를 하게 되면 죽게 된다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괴담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곡은 작곡가 존 스텀프가 친구들과 자신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일뿐 악마가 만든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존 스텀프의 <죽음의 왈츠>는 단순히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연주되는 왈츠풍의 ' 음악 ' 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악보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텀프가 만든 악보는 절대로 연주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기괴한 악보를 만들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존 스텀프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음표로 이루어진 악보 자체를 ' 형태 ' 의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새로운 구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 형태 ' 의 악보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스텀프의 친구들은 기존의 상식의 틀을 거부함에서 나오는 독특한 재미를 느꼈겠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악마가 만든 저주 받은 음악의 악보라고 생각하면서 벌벌 떨어야만 했다. 

이렇듯,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악보의 형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탄생물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유의 악보> 역시 읽는 독자들마다 각기 다른 해석들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3악장: 또 다시 <사유의 악보>에 대한 견해   

 

시대는 폭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획득해가고 있는 것은 불충분한 폭발뿐이다. 혁명은 계획 단계에서 제거되거나, 아니며 너무 일찍 성공한다.  격정은 순식간에 고갈되어 버린다.  

- 헨리 밀러 <북회귀선> 문학세계사, p 22 -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서 독자들은 사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지게 된다.  사유하는 행위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이성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우리 스스로 현상에 대한 질문을 구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는 능동적인 방식인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식의 명제는 참된 진리로 이루어져있을지 몰라도, 그 명제들로 이루어진 지식 체계 전체는 무의미한 내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버트런트 러셀은 오직 ' 참 ' (True)으로 이루어진 확실성의 세계의 토대를 찾기 위해서 시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지 않은가.  다만 러셀은 복잡해져가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사고(思考)할 것을 권하였다.  여기서 사고는 결국에는 사유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기에 어느 대상과 현상 또는 그러한 것들의 측면을 지각(知覺)의 작용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사유의 악보>, 이 책이야말로 그전까지 절대불변의 진리만 찾아 헤매던 기존의 사유 방식에서 탈피하여 ' 혁명 ' 처럼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유 방식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좀 과한 비유일수도 있지만 이 책의 등장은  ' 사유의 혁명 ' 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저자가 겨냥하고 있는 독자들은 ' 소수 ' 로 한정되어 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은 항상 소수의 힘에 의해서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헨리 밀러의 말처럼 새로운 시대를 찾기 위한 혁명에 대한 격한 갈망과 요구 그리고 열정은 너무 뜨겁다보면 한순간에 식어버릴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단순히 ' 알라디너 ' 가 쓴 책이라는 단순한 호기심적 관심이 아닌 새로운 사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으로 읽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이 전염병처럼 창궐하기를 소망하듯이 이 책이 그동안 위기론으로 암울하기만했던 우리나라 인문학의 판도를 확 뒤집어질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사유의 ' 혁명 ' 이 되기를 소망한다.

   

  

 

  종곡(finale):  트리스트럼 샌디 Ver. 의 헌정사   

 

 람혼님. 

 " 주제, 내용, 형식의 3대 요소가 좀 특이하긴 하지만, 저는 이것을 감히 서평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니 람혼님의 발 앞에, 정중함과 겸손함으로 바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간청드리는 바이며. -  당신께서 여가가 있으실 때.  -  람혼님, 기회가 있다면, 또한, 선의를 위해 - 이대로 받아주시기를 소원하는 바입니다.   

 

신간도서평가 활동을 통해서  

람혼님의 음악을 공짜로(?) 듣게 되는 영광을 누리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독자, 

cyrus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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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4-1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리뷰라니요.... 전 책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이 어인 일일까요?..ㅡ.ㅡ
전체적으로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닌가보네요..
아 근데 리뷰는 근사해요..^^

cyrus 2011-04-11 15:4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아직 안 받았어요. 지난주에 운 좋게도 도서관에
이 책을 발견해서 읽고 있었던거 뿐이랍니다. ^^;;
책이 언제 올까요? ㅎㅎ

책 구성이 하나의 음악처럼 여러 개의 악장과 몇 곡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내용도 들뢰즈, 에드워드 사이드, 바타유,
박상륭, 탈근대성 등 다양한 주제가 정말 기형적이라고 할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

맥거핀 2011-04-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스스로 택스트를 해체, 재조립하고 보아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에 참 어울리는 리뷰네요.^^ 그 사유의 악보를 보고, 어떤 음악을 스스로 만들어내는지는 읽는이에게 달려있겠지요. 좋은 음악 잘 들었습니다. (근데, 저도 책은 못 받았음..짤린거임?-_-)

cyrus 2011-04-11 15:56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이 책 못 받았어요. 위의 꽃도둑님 답글에서도
밝혔지만 도서관에 대출해서 읽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요즘 시험 공부 기간이라서 책 읽고 서평 쓸
시간이 없어서 다른 평가단원분들보다 먼저 얼른 읽고 서평 올리게
되었네요.. ^^;;

책의 서문(서곡)에서 저자는 자신의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하고 사유할 것을
권하고 있더라구요. 물론 저도 아직 이 책의 80% 정도는 이해를
못했지만 계속 읽다보니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하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구요. 특히 ' 나르시스트를 구별하기 위한 자기진단법 ' 이라는
내용을 강추합니다. 자서전 읽기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

굿바이 2011-04-1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이런 독특하고 훌륭한 리뷰를 이리 빨리 올리시다니요^^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이라는 표현은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거나, 절대로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라고 읽히기도 하네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아서 그저 넘겨짚었지만 말이죠.

재미있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4-13 00:22   좋아요 0 | URL
얼른 책이 와야할텐데 말이죠,, 직접 읽어보시면 또 다른 사유의 방식을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내용이 쉽지 않으니 읽기 전에 마음
단단히 먹어야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1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면 한니발이 생각난다는~
저도 이 책 끼고 앉았는데 말이죠, 끼고만 앉았어요.
이 책 갈피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칸딘스키...제법 잘 어울리는걸요~^^



cyrus 2011-04-13 00:24   좋아요 0 | URL
한니발이라면 살인마 나오는 영화를 말하는거죠?
제가 이 유명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요,, ^^;;
무리해서 읽아나가기보다는 생각나는대로 관심 있는 부분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거 같습니다 ^^

starover 2011-04-1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직접 작사한 노래가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cyrus 2011-04-13 00:26   좋아요 0 | URL
아,, 일부러 작사 작곡 연주라고 적은거였는데,, 이프리트님에게
오해를 주고 말았네요.

<사유의 악보> 제목 속에 있는 ' 악보 ' 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책 내용 속 비평문들의 부제가 한 장의 악보처럼 '~ 악장 ' , ' 변주 ' 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쓴 서평도 일부러 책의 구성방식을
패러디한거랍니다. 그래서 일부러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용문을
작사, 작곡, 연주라고 적은겁니다. 사실 저 인용문은
이번에 나온 <상상력 사전>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죠. ^^

starover 2011-04-22 19: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rainmaker_1201 2011-04-1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아마 이렇게 정성스러운, 그리고 일종의 '수면독서(!)'에 기반한 리뷰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약간 (먼저) 읽고 있는데, 어쩌면 최정우씨는 인문학이라는 시대의 코드 대신 그 자리에 '사유'라는 들뢰즈적 의미를 도입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ㅎ

cyrus 2011-04-15 0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yjk7228님^^

이 책,, 사실 읽기에 좀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님이 언급하신
들뢰즈적 의미의 사유라는 의미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
읽어볼만한 인문학 책인거 같습니다. ^^

람혼 2011-04-1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소중한 서평은 저자인 저에게 너무나 과분한 음악, 또 다른 축복의 악보가 아닐까 합니다. 소중하고 세심하게 잘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cyrus님! ^^ 분석적인 서평이라기보다는 저의 악보를 변주하신 또 다른 악보 같이 느껴져서 말 그대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cyrus 2011-04-20 08: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람혼님, 요즘 시험기간이라 바빠서 답변이 늦었네요 ^^;;
저야말로 람호님의 악보 덕분에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람혼님의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

람혼 2011-05-03 16:4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다음 책도 결연한 의지로 치열하게 써보겠습니다. 함께 파이팅! ^^

루쉰P 2011-04-1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독자에게 강력하게 마음껏 사유할 것을 권유하는 철학책이라고 하니 마음에 와 닿네요. 게다가 버스에서 불철주야 독서에 매진하며 수면제 역할을 하는 이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도 마음에 팍팍 와 닿네요.

독서나 잠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신다니 저와 비슷하신 듯, 파스칼처럼 고통을 공부나 연구로 이겨내기에는 연약한 갈대와 같은 인간이라서 힘들고, 저도 독서를 통한 광기 어린 스트레스를 풀고 있죠. 푸훗.

암튼 좋은 리뷰 덕분에 많이 느끼고 가요. 시험 잘 보내세요. 학교의 용자가 되세요!

cyrus 2011-04-20 08:05   좋아요 0 | URL
시험이 끝나면 잠 제대로 푹 잤으면 좋겠네요, 밤 새면서 책은 읽을
수 있는데 공부만큼은 정말 밤 새가면서 하는게 힘드네요 ^^:;

아이리시스 2011-04-1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잘 지내신 거예요? 아직 중간고사 전이죠? 이건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힘들어요. 책이 어려워 보이니까 리뷰도 어려워 보여서 겁먹었어요. 위에 람혼님이 저자이신 거구나. 저도 트리스트럼 샌디는 대학 때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퍼낸 출판사가 여전히 대산 뿐인 거예요? 역시 시루스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아요. 봄날 맘껏 즐기시고 중간고사도 완전 화이팅!^^

cyrus 2011-04-20 08:09   좋아요 0 | URL
이번주부터 시험기간이에요, 지금까지 시험친게 고작 한 과목뿐이에요,,-_-;;
아이리시스님도 잘 지내고 계시는거죠? ^^ 저도 처음에는 읽기 전부터
두려움을 가졌었는데 편안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읽어보시면 어렵지
않아요,, ^^;;

아이리시스님 댓글 보고나니 힘이 마구마구 솟네요, 남은 시험기간동안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26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밤을 같이 지새던 동지로서, 오랜만이라 안부 인사 차 들렸어요~
시험 완전 대박 나세요~^^

cyrus 2011-04-28 14:44   좋아요 0 | URL
이틀전에 시험이 끝났어요. 열심히 한만큼 시험이 잘 쳤어요,, 아직
중간시험 성적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