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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저는 민음북클럽 독자가 아닙니다
평점
4점 ★★★★ A-
명문대를 나오고,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에 다니기 위해 죽어라 공부한다는 건 무척 팍팍한 일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치열하게 공부했던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겠다. 명문대 입학과 대기업 입사를 위한 공부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공부’하는 삶은 ‘공’허하고 ‘부’질 없다. 공허하고 부질없는 공부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학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에 매몰된 사람들은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친다. 이러면 본인의 흥미와 관심에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한 공부는 나 자신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치열하게 공부하다 지친 나를 위로해주지도 못한다. 곽아람 기자의 수필 《공부의 위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공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저자는 무엇을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공부의 위로》는 대학생 시절 저자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늘날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통과 의례’로 취급받는다. 그렇지만 20대의 저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수강한 교양 과목 수업을 통해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을 배운다. 1학년 미술사 수업은 저자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획기적인 창문’을 알려주었다. 2학년 영미 단편소설 강독은 공부가 무조건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단편소설을 해석하면서 나름의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 계속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4학년 2학기 19세기 미국소설 수업에서 저자는 시대가 변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을 공부의 본질을 깨닫는다. 나 자신을 위한 공부는 꾸준하면서 성실하게 책을 읽는 일이다.
누군가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난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문과를 졸업하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현실에서 인문학은 찬밥 신세다. 그래도 나를 위한 공부는 젊을수록 빨리하는 것이 좋다. 특히 20대는 본인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열정이 가득한 인생의 시기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새로운 자아로 변화할 가능성이 많은 나이대다. 코미디언 박명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고 말했지만, 공부는 예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무언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공부의 위로》는 다시 공부하려는 의지의 불씨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을 위한 부싯돌이다. 이 부싯돌이 진짜 나를 알아가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단단한 마음에 제대로 부딪히기를 바란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79쪽
이 그림은 소식의 시 「해당(海棠)」의 마지막 구절 “只恐夜深花睡去 故燒高燭照紅粧[주1]”(밤이 깊어 꽃이 잠들어 져버릴까 두려워 촛불 높이 밝혀 붉은 모습 비추네.)에서 화제(畫題)를 가져왔다 알려졌는데, 이백(李白)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국내판 『중국 회화사』의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헷갈린) 젊은 캐힐은 이렇게 썼다.
[주1] 저자가 아마도 「해당」의 마지막 글자를 헷갈린 것 같다. ‘粧’이 아니라 ‘妝’이다. 두 한자 모두 훈과 음이 같은 ‘단장할 장’이다.
[수정: 2023년 4월 1일]
粧(단장할 장)은 妝(단장할 장)의 이체자다. 따라서 책에 인용된 「해당」의 마지막 글자는 오자가 아니다.
* 161쪽
할로윈 → 핼러윈
* 184~185쪽
혹여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History of Art』라는 책도 존재한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미술사학자 H. W. 잰슨의 책으로 곰브리치의 책보다 몇 배나 두껍고 무겁다. 내 경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마존 ‘직구’를 감행한 책이 그 책이었다.
친구들이 사는 걸 보니 사야만 할 것 같았고, 보티첼리(Botticelli)의 「봄」이 그려진 하드커버 책[주2]을 끙끙대며 품에 안고 캠퍼스를 지나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 미술사 하는 여자야.”라는 티를 팍팍 낼 수 있으니까.
[주2] H. W. 잰슨(Horst Woldemar Janson)의 《History of Art》는 1962년에 나온 이후로 현재 8판까지 출간되었다. 《History of Art》는 여러 차례 증쇄되고 개정되면서 책 표지도 달라졌다. 구글에 ‘History of Art’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다양한 책 표지가 나온다. 표지 그림의 출처를 알아봤지만, 판본이 생각보다 많아서 출판연도 순서별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정확하지 않지만, 『History of Art』 표지로 사용된 그림 출처는 다음과 같다.
2판: 고대 이집트 파라오 네페르티티 흉상
3판: 『사모트라케의 니케』
4판: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부분)
5판: 작가명, 작품명 확인 불가(16세기 정물화로 추정)
6판: 작가명, 작품명 확인 불가
7판: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부분)
그 밖의 판본: 라파엘로의 『갈라테이아』,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보티첼리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페르세포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저자는 아마존으로 양장본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책 표지를 확인하면서 보티첼리의 『봄』이 그려진 《History of Art》는 본 적이 없다. 보티첼리의 『봄』이 그려진 서양미술사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History of Art》는 1985년에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때 나온 표지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에 표현된 아담과 신의 손가락이 맞닿는 장면을 확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