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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9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9월
평점 :
1980년 12월 8일. 25세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은 아파트에 들어가던 존 레넌(John Lennon)을 향해 다섯 발의 총을 쐈다. 레넌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몇 시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채프먼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도주하지 않았다. 그는 인도에 앉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채프먼은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게 만들기 위해 레넌을 암살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한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은 ‘암살범이 좋아하는 위험한 책’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독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 중에 독자가 피해야 할 책이 있다. 그 책은 바로 동서문화사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이 번역본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백년의 고독》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역본의 정가는 12,000원. 싼 가격으로 두 편의 ‘고전’을 읽을 수 있다. 책값이 싸서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이 번역본에 속으면 안 된다.
동서문화사는 기존에 있는 다른 출판사 번역본들의 문장을 도용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회사이다. 아예 문장을 통째로 베끼거나 여러 종의 번역본 문장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인쇄한다. 그리고 번역본의 역자 이름은 이미 고인이 된 역자, 또는 이력이 불분명한 인물(전문 번역가로 보기 어려운 사람)이다. 《백 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의 역자는 故 이가형 씨다. 이가형 씨는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이다.
《백 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서지 정보에 따르면 1판 1쇄가 나온 연도는 1979년 10월 10일이다. 그러나 1979년에 동서문화사가 출간했다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책이다. 동서문화사가 책에 기재한 초판 발행 연도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1979년에 나온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이 딱 한 권이 있는데, 그 책을 만든 출판사는 동서문화사가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동서문화사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문예출판사 번역본을 표절한 책이다. 더 이상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동서문화사의 악행은 어디 한두 번인가. ‘문화’, ‘출판사’라는 이름이 아깝다.
1
* 샐린저가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To my mother”)가 빠져 있다.
2
* 문예출판사, 28쪽
* 동서문화사, 393쪽
3
* 원문
I didn’t answer him right away. Suspense is good for some bastards like Stradlater.
문예출판사, 47쪽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개새끼들에겐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동서문화사, 406쪽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이 뻔뻔한 녀석들에겐 어정쩡한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4
* 원문
All of a sudden―for no good reason, really, except that I was sort of in the mood for horsing around―I felt like jumping off the washbowl and getting old Stradlater in a half nelson. That’s a wrestling hold, in case you don’t know, where you get the other guy around the neck and choke him to death, if you feel like it. So I did it.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
“Cut it out, Holden, for Chrissake!” Stradlater said. He didn’t feel like horsing around. He was shaving and all. “Wuddaya wanna make me do―cut my goddam head off?”
I didn’t let go, though. I had a pretty good half nelson on him. “Liberate yourself from my viselike grip.” I said.
문예출판사, 50쪽
갑자기 그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의 기술이었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하고 스트라드레이터가 소치렸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 하고 내가 말했다.
동서문화사, 408쪽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의 목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졸라 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 기술이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스트라드레이터가 소리쳤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 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 내가 말했다.
5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문예출판사, 62쪽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장갑에 대해서 무엇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야구 장갑의 손가락이고 주머니이고 어디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아직 선수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415~416쪽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용(野手用) 글러브를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글러브의 어떤 점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글러브의 손가락이고 손바닥이고 어디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선수가 들어오길 기다릴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번역본의 ‘손바닥’은 오역이다. 원문에 ‘손바닥’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도용 의혹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주머니(문예출판사)’ 대신에 ‘손바닥’을 썼을 수도 있다. 동서문화사는 단어 하나만 바꾼다고 해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6
* 문예출판사, 83쪽
* 동서문화사, 430쪽
7
* 문예출판사, 256~257쪽
“‘만나면’을 ‘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 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금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피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또 “아빠는 오빠를 죽일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죽여도 좋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 동서문화사, 545쪽
‘말야’는 어법상 틀린 표현이므로, ‘말이야’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동서문화사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에 있는 오역과 잘못 쓴 표현까지 그대로 베꼈다.
8
* 원문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문예출판사, 277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동서문화사, 560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같은 이유를 위해 비겁한 삶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서문화사 560쪽에 있는 문장은 ‘이유’와 ‘삶’은 민음사 판본에, ‘비겁한’은 문예출판사 판본에 가져와 짜깁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