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이 현재 시각으로 대략 1시간 밖에 안 남았네요. 그것은 제 20대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미하기 하답니다. 오늘은 후배 녀석들과 함께 월미도의 바다 바람을 새차게 맞고 왔습니다. 폭죽도 신나게 태우고, 날아오는 야구공도 힘차게 날려보냈습니다. 속은 시원해 지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그 마지막 1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지만, 이는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한다는 뜻이지요.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는 지극한 송구영신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 지극함에도 무언가 허전함이 남는군요. 오늘은 그 허전함을 채워야 할 듯 합니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고전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저보다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에 무척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은데요,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중국에서 유학와서 한국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에 대해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사람과 서로 친구냐는 질문을 그 중국인 학생에게 했는데요, 그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친구는 아니고, 여기(한국)와서 만났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대답을 듣고 저는 소통이 잘 안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질문의 요지는 그 두 사람이 나이가 같느냐는 것이었지요.

그 중국인 유학생은 제 질문의 요지를 알아차리지 못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차 질문을 했지요, 두 사람이 나이가 같느냐고. 그제서야 자신이 그 사람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대화 가운데 있었던 불소통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제가 '친구'라고 말 했을 때에는 그것은 단순히 '동년배(同年輩)'를 의미했습니다만, 그 중국인 유학생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친구'라는 말이 가지는 아름다운 의미의 넓이를 너무 협소하게만 인식하고 사용하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석연찮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친구'하는 한자어로 '親舊', 그러니까 친할 친(親)자에 예 구(舊)자를 써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합니다. 비슷한 말로 '친고(親故)'라고 하기도 합니다. 구(舊)와 같은 뜻의 예 고(故)자를 바꿔쓴 것이지요.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오늘날 한국어 화자에게는 후자의 의미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담화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보다 축소되어 "나이가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친구'란 말의 본연의 의미를 되새길 때,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은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친구'란 말이 그 의미가 극히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는 요즘의 언사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를 갖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몰인정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꾸 계속되면서 아까 그 중국인 유학생이 '친구'라는 말의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저는 오히려 그렇지 못함에 부끄러워 지더군요. 괜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007년의 세밑을 20대의 마지막 시간으로 보내면서, 송구영신을 준비하는 저에게 이 '친구'란 말이 더욱 각별해지더군요.

이제 30분이 남았습니다. 2007년이란 시간이 말이지요. 곧 2008년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송구영신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2007년을 보내고 2008년을 맞이하는 것, 2007년이란 옛 것을 멀리 보내고, 2008년의 새로움을 기쁘게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옛 것을 보냄에 있어, 결코 '송구(送舊)'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다면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곧 친구(親舊)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그런 친구를 꼽는다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 2007년을 돌아보면서는, 열심히 사귀고 지내온 이곳 알라딘의, 알라디너 여러분들은 비록 오래지는 않았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을 만큼의 인연으로 가깝게 사귀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그 어떤 친구보다도 여러분들께서는 저의 진정한 '친구(親舊)'임을 확신합니다. 결코 '송구'할 수 없고, '영신'으로 인해 잃어버릴 수 없는 가장 귀한 존재, 제게 그것은 '친구(親舊)'이고 이 안에 여러분 알라디너께서 가득 자리하고 계시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배터지지 않을 만큼 받아 드시기 바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참고로, 사전을 찾아보면 '친구'라는 표제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친구(親舊)이고, 다른 하나는 음은 같지만 그 뜻이 다른, 즉 동음이의어로 '친구(親口)'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구자가 예 구(舊)자가 아니고 입 구(口)인 것이 다르지요. 그런데 그 하나 차이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답니다. '친구(親口)'라는 말의 뜻은 "숭경의 대상에 대하여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려고 입을 맞춤. 또는 그런 행동."을 가리킵니다. 진정 존경하는 상대에게 표하는 최상의 행동이 바로 이 친구(親口)입니다. 보통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신부님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바로 이 '친구'인데요, 그 친구의 행위를 여러 알라디너 여러분들께 바치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손이 아니라 볼에 살포시. 앗! 그럼 그건 뽀뽀가 되나요? 아무튼 여러분 가정에 평안과 행복과 기쁨과 건강과 만사형통의 큰 축복이 가득한 2008년 새해가 되시길 모든 위대하신 분들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이상 10분 남은 20대의 마지막 시간에, 인천에서, 멜기세덱이, 여러 알라디너 제현들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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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1-0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30대에 입성하신걸 축하드립니다.:)
전 뽀뽀해주시는거 손도 좋고 볼도 좋아요,,,우하하
암튼 좋은 글 감사해요,,,알라딘의 좋은 親舊이며 親口인 멜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와요~.

멜기세덱 2008-01-01 18:04   좋아요 0 | URL
언제 뵙게 되면 뽀뽀해 드릴게요...ㅋㅋ
아참, '친구(親口)'는 '-하다'가 붙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숭경의 대상에 대하여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려고 입을 맞춤. 또는 그런 행동"을 '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親口인 멜기'는 좀 이상하지요...ㅋㅋㅋ

순오기 2008-01-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30대에 입성하신 걸 축하 2 ^^
친구의 의미를 새기는 글, 감사합니다!
앗, 손등이 따끈하던 이유를 알겠네요~ㅎㅎㅎ 님도 같은 복을 누리시길!!

멜기세덱 2008-01-01 18:05   좋아요 0 | URL
30대 입성이 축하받을 일이군요...ㅋㅋ
미래의 장모님이 되실지도 모를 순오기님께
올 2008년 무자년에는 크게 이쁨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ㅋㅋ

마늘빵 2008-01-0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친구!

멜기세덱 2008-01-01 18:05   좋아요 0 | URL
어디? 가시게요?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뭘라..."ㅋㅋ

마노아 2008-01-0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진지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피식! 했잖아요. 멜기세덱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용^^

멜기세덱 2008-01-01 18:06   좋아요 0 | URL
나름 진지하게 마무리 했다고 생각했는뎅....ㅋㅋ

웽스북스 2008-01-0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읽는 멜기세덱님은 늘 새로운 느낌이에요 ^^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30대 멜기세덱님~~

멜기세덱 2008-01-01 18:07   좋아요 0 | URL
日新又日新하는 멜기세덱이라죠? ㅋㅋ

프레이야 2008-01-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속 30킬로로 가는 세대로 들어서셨군요.
축하 드려요 세덱님^^
재치와 진지함과 깊이를 더하는 세덱님의 글 새해에도 계속 기대합니다~

멜기세덱 2008-01-02 17:15   좋아요 0 | URL
앗, 혜경님...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저도 좀 나눠 주세요.ㅋㅋ
근데, 요새는 저한테 다소간 소홀하셔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