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니, 장자연 리스트니 뭐니 해서 시끌벅적하다. 우스갯말로 자연 사랑 못 받고, 연차 수당 못 받으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란다. 하여간 두 리스트는 아직 끝을 보일 조짐이 없다. 사실상 4월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됐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예년에 비해 요즘 날씨가 덥다지만, 내주쯤이면 다시 예년 기온을 회복할 것이란다. 그보다는 4월 말쯤 있을 재보선 때문에 이미 4월은 당연 뜨거울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1년에 대한 평가라는 큰 명목아래 수세에 몰린 야당은 대반격을 준비해오던 차에, 정동영 전 장관의 불연 재보선 출마 선언에 4월은 더욱 뜨거울 참이었다. 연차와 자연 리스트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올게 오고 말았다.
며칠 전 민주당은 단호히 정동영에게 공천은 못 준다했고, 정동영은 기다렸다는 듯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토요일(11일)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끝내 갈라선 鄭-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뭐 내가 여기서 정치평론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이 소식은 민주당 뿐만 아니라 전 야권을 긴장케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민주당의 내분은 반격을 준비하는 야권에게는 치명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번 재보선은 예상 외의 다른 구도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대반격을 노렸던 야권이 그 구상대로 재보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鄭-丁 갈등이 끝내 야권의 기대를 무너트릴지,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鄭-丁 둘 중에 누가 이기고 끝내 살아남을지이다.
언론에선 이 둘의 갈등을 놓고 향후 결과에 대한 설들을 풀어놓는다. 과연 정동영은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가? 정세균 대표가 지역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던진 승부수가 통할 것인가? 등등. 이번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동영이냐 정세균이냐 두 정 씨 중 하나는 골로 갈 가능성이 크다. 두 거물 정치인의 향후 정치생명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과연 어느 정씨가 오래 갈까?
사실 이 두 사람은 정씨이지만, 같은 정씨는 아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으로 그들의 성을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이 둘은 전혀 같은 성씨가 아닌 것이다. 정동영은 鄭씨이고 정세균은 丁씨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정씨들이다. 아참 정씨에는 程씨도 있다. 정씨가 이 3개 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정씨가 이 셋중 하나다. 丁씨 중에는 다산 정약용이 이 정씨다. 鄭씨에는 누가 있지? 잘 모르겠다. 난 정씨가 아니니까.
그런데, 鄭도 정, 丁도 정이면 잘 구분이 안 간다. 우리나라에 丁씨의 "본관은 나주(羅州), 창원(昌原), 영광(靈光), 의성(義城) 등 10여 본"있단다. 鄭씨에는 "경주(慶州), 동래(東萊), 연일(延日), 온양(溫陽), 진주(晉州), 하동(河東), 해주(海州) 등 120여 본"이 있다. 헐, 鄭씨가 한참 많구나. 아무튼 같은 鄭씨여도 본관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다가 한자가 다른 정씨면 말해 무엇하리.
여기서 이 두 정씨를 구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그 둘의 성씨에 어쩌면 이 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정세균의 丁씨의 발음은 [정]이다. 그런데, 정동영의 鄭은 [정:]이다. 이 둘의 차이는? 그렇다 丁은 짧게, 鄭은 길게다. 그런데, 미묘하지만 길고 짧은 것 뿐만 아니라, 발음 자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깊게 가자면 전문적인 부분까지 언급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자모에 대한 발음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다.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ㅓ]발음과 한 100전의 [ㅓ]발음은 조금 다를 것이다. 국어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은 모두 'ㅓ'로 표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발음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른 발음을 표기에는 반영하지 않고, 다만 발음상에 장음 표시를 함으로써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ㅓ]발음이다. 대부분의 'ㅓ'는 짧게 발음하지만, 정동영의 鄭은 길게 발음하되, 이는 단순이 [ㅓ]를 길게하는 것이 아니라, [ㅡ]와 [ㅓ] 사이에서 길게 발음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정동영의 鄭은 [즈엉-] 정도로 구수하게 발음해야 한다. 장음 표시가 된 [ㅓ] 발음이 대충 이와 비슷하다.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이런 발음을 가끔 정확하게 하는 것을 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없다'의 발음이다. 이를 딱부러지게 [업따]로 발음하는 아나운서라면 이는 제대로된 아나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애써 정확히 발음한답시고 [읍-따]로 힘주어 발음한다.
재밌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어'를 명확히 구분해서 발음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잘 구분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거지'다. 내가 볼 때 거지를 [거지]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거:지]라고 발음하거나 혹은 [그: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 '거지'는 [그어-지]다. 거지를 [거지]라고 하면 왠지 거지같지 않다. 이런 [그~지] 같은 넘을 봤나 해야, 진짜 거지를 본 것만 같다.
우리 일상에서는 잘 구분을 하지 않지만, 이런 예들이 의외로 많다. 더불어 장음으로 구분되는 단어들도 몇몇 있다. 밤, 배, 눈 등등이 그렇다. 어두운 밤은 무서우니까 빨리 지나라고 짧게 발음하고 먹는 밤은 맛있으니까 오래 먹어야하니 길게 발음한다. 저 하늘위에서 내리는 눈은 그 먼데서 오자면 얼마나 오래 와야 하겠는가? 그러니 길게 발음하고, 보는 눈은 작으니까 짧게 발음한다. 배는 좀 많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보기도 좋지 않고 건강에도 나쁘니 쏟 들어가야 좋다. 그러니 짧게 발음한다. 저 멀리 지나가는 통통 배는 조각배모냥 작고 작으니 이도 짧게 발음한다. 먹는 배는 그 얼마나 달고 맛있는가? 누가 뺏어먹을까 두려워 그 발음은 짧아야 한다. 어른에게 절할 때의 배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천천히 예를 표해야하므로 경망스럽게 후딱 해치워서는 안되는 천천히 길게 발음하고, 한 배, 두 배, 자꼬만 갑절로 많아지는 배는 아시다시피 길게 발음한다. 이런 예들이 허다하지만 이만 줄인다.
자! "끝내 갈라선 鄭-丁"을 제대로 발음해 보자? 해 보았나? 정답은 "끝내 갈라선 [즈엉~]과 [정]"이다. 잘 했는가?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런 미묘한 발음차이 하나만도 잘 기억하고 사용하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거기에 목숨걸 필요는 없다. 아참, 내가 볼 때, 이름만 놓고 보면 이번 재보선 이후 정동영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만 같다. 丁은 짧고 鄭은 기니 말이다. 맞다. 헛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