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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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절망과 같은 웨하스 의자는 참 조그맣고 예쁘다.

절망을 문제 삼지 않는 강함과 사랑과 절망 사이에서 나오는 고독함까지, 『웨하스 의자』에 담겨 있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Ⅰ 웨하스 의자


중년에 접어든 '나'.

낡은 아파트 4층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는 결혼하진 않았지만 애인은 있었다.

스카프와 우산을 디자인하는 것을 주수입으로 삼는 '나'는 화가였다.


"언니는, 정말 어린애 같다니까."

동생은 멋대로 그런 말을 한다.

"언니, 참 별나다."

그리고 이런 말도.

"언니, 고독하네."

물론 나는 고독하다. 그날, 병원 앞에서 만난 개만큼이나. 하지만 나는 별나지도 않고, 어린아이는 더욱이 아니다.


'나'의 애인은 '나'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 애인은 무척 자상하다. 무척 자상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 머리에서 꼭 3밀리미터 밖을 쓰다듬는 것처럼 느낀다. 내 머리칼에서 바깥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애인은 차가 없다. 나는 그 점도 마음에 든다. …… 우리는 자유롭다. 그리고 걸어서도 어디든 갈 수 있다.


목욕을 하고, 온몸에 샤워 코롱을 듬뿍 바르고, 허브차를 마시고 있는데 애인이 왔다.

"갑자기 보고 싶어서."

애인은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짓는다. 우리는 현관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의 입술과 코 사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땀이 엷게 배어 있어, 나는 올해도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안다.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절망과 같은 웨하스 의자는 참 조그맣고 예쁘다.

절망을 문제 삼지 않는 강함과 사랑과 절망 사이에서 나오는 고독함까지, 『웨하스 의자』에 담겨 있다.


저자의 책을 전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책을 꽤 많이 읽어본 것 같다.

그 중에는 그녀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복잡하지도 않은, 간결한 문체 안에 담긴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세계관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거리감이 좀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번, 쓴 서평이 있어서 줄거리는 생략했는데) 책 속 주인공인 '나'의 애인은 바로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다.

'나'라는 인물의 감정을 보면, 사랑에 빠지면 빠질수록 절망 또한 동시에 느끼곤 하는데 여기서 딱 어울리는 단어가 이것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과연 '나'라는 인물에 대해 호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마냥 예뻐보이지 않는, 그저 그들 자신에게만 아름다울 법한 사랑 이야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득 '무한도전'에서 봤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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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2-07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웨하스 의자, 전에 나온 것 같았는데, 하고 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책 개정판이었네요.
새로나온 책의 표지도 괜찮은 것 같아요.
하나의 책장님이 찍은 사진도 예쁩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12-25 00:12   좋아요 1 | URL
개정판 표지, 예쁘더라고요.
딱 ‘밤‘ 느낌이에요^^

새파랑 2021-12-0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쿠니 가오리 책 좋아하는데 이 책은 안읽어봤네요 ㅜㅜ 한 열편정도 읽은거 같은데 안읽은 책은 그보다 휠씬 많은듯 합니다 ㅎㅎ 그녀도 다작인거 같아요 😅

하나의책장 2021-12-25 00:11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이 저보다 더 많이 읽으신 거 아닌가요? >.<
맞아요! 많은 소설을 내셨던데 전 아마 작품들 중 반은 읽었을까요ㅎ

페크pek0501 2021-12-08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 빛나는>의 작가죠? 이 책으로 작가를 알았어요.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그런 대로 괜찮은 소설로 읽었어요. 웨하스 의자, 는 처음 보는데 표지가 멋지군요. 별점을 만점 주신 걸로 보아 좋은 작품인가 봅니다. ^^

하나의책장 2021-12-25 00:0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 작가님!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다 좋아하진 않아요^^;
좋아하는 작품도 있는 반면에 호불호 갈릴만한 작품들도 꽤 있거든요.
그런 작품들은 잘... 손이 안 가더라고요ㅎ
 
애정하는 사람 - 민서의 행복 에세이
김민서 지음 / 히읏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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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를 애정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

그들 덕분에 잘 견뎌내고 또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애정하는 사람은 사실 나 자신이었다.


저자, 민서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음악과 연기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싫어하는 것이 참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큼 좋아하는 것도 많았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강아지와 커피, 잔잔한 노래, 애니메이션 그리고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



> 목차

1장. 해주고 싶은 말

이대로의 행복

행복하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야경

가수가 된 이유

사랑노래

나를 먼저 사랑할 것

그런 밤

그래서 좋았어

내가 오래 알아왔던 너는

그래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태도

A에게

눈물 면역

필름 카메라

해주고 싶은 말


2장.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

오늘의 혼잣말

이렇게 작아도 외로운데

자꾸만 너로 보인다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

그럴 걸 그랬다

언니

우리의 계절

생일

명품가방

명품가방 2

서울 오랜만

솔직함과 무례함 사이

당신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3장. 목련이 폈더라

길고양이

목련이 폈더라

가족사진

슈퍼스타 K

싸운 날

눈이 건조해서 그래

울음 포인트가 같은 사람

일기

Love Yourself

완벽한 이방인

긍정의 에너지

구원

레슨

사람

늦어도 좋다는 것

걸어볼까



행복하자


젊음 역시 마찬가지겠지.

당연해서 몰랐던 젊은 순간들이 많겠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나한테 남은 여름이 백 번도 안 된다는 말.

정말 그렇잖아. 많이 놀랐어.

별안간에 여름이 조금 더 소중해졌어.

그건 아마 겨울에도 그 언제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행복하자.

여름에는 여름의 방법으로

겨울에는 겨울의 방법으로 말이야.



나를 먼저 사랑할 것


이 큰 세상 속에서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일 것이고 그 비밀스러운 공간은 나 스스로만이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아껴주고 채워줘야겠다. 그렇게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 결국 나도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던 거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내가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살아 숨쉬는 동안에는 늘 존재만으로 고마운 사람인 거다. 어떤 상황이 어떤 사람이 언젠가 나를 힘들게 하고 고달프게 할지라도 나는 누군가에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읽다보면 공감되고, 읽고나면 문득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인생에서 힘들거나 슬픈 순간에 옆에 있어주는 것은 결국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이자 나를 애정해주는 사람들이다.

가족, 친구, 지인, 선생님, 나를 애정해주는 사람들이자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이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나 또한 그랬다.

나보단 남에게 중심을 맞춰주는 삶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가 행복해야 남 또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실을 항상 상기한다.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읽다보면 금세 읽을 정도로 마음 편하게 하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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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다행이야 - 엄마와 나, 둘이 사는 집에 고양이가 찾아왔습니다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박귀영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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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고양이의 인생은 우리를 빠르게 추월해간다. 그걸 알면서도 역시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 이별하는 날이 찾아와 복받치는 눈물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메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헤쳐놓은, 담장을 넘나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물, 길고양이들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이 이렇다.

요즘은 그 인식이 변화해 길고양이들의 밥을 직접 챙겨주는 캣맘이 등장하긴 했지만, 타인의 사유지 혹은 차에서 밥을 챙겨주는 일부 캣맘의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길고양이들에 대한 인식 또한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런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보게 되었고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의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동물은 처음부터 잘못이 없다.'

사실 집고양이로 품는 순간, 무거운 '책임감'이 주어지기 때문에 밥은 챙겨줘도 길고양이들을 집고양이로 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여건이나 상황이 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결국은 그 책임감까지 지고 싶진 않은 것도 이유면 이유일 것이다.

허나 길고양이에게 간택당하거나 지나치지 못하고 집고양이로 품게 된 경우도 분명 있다.

난 그 이야기를 한 책을 통해 접하게 된다.


『함께여서 다행이야』는 실제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로, 어미 길고양이는 물론 집 화단에 낳은 새끼 고양이들까지 집고양이들로 품게 된 그 과정을 담고 있다.

고양이를 키운 경험은 없지만 고양이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그 여운까지도 참 따뜻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글쓰기와 다도라는 두 바퀴로 인생을 꾸려온 사람이다.

1956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일본여자대학 문학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세계 각지의 풍물과 풍속을 소개하는 [주간아사히]의 인기 칼럼 ‘데키고토로지’의 취재기자로 활약했다. 9년간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1987년에 『노리코입니다』를 출간했으며, 이 책이 1987년 TBS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다른 책 『전생으로의 모험-르네상스의 천재 조각가를 따라서』도 호평을 받으며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어머니의 권유로 스무 살 때 우연히 시작한 다도는 지치고 힘든 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큰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스무 살 때 다도를 시작해 현재까지 40년 넘게 차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2010년 오모테센케의 교수 자격을 얻었으며 모리시타 소텐이라는 다명을 가지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풍부한 식견에서 우러나온 섬세하고 정확한 맛 표현과 음식에 대한 철학을 담은 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5년간 다도를 해오며 느낀 점을 그려낸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은 2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2018년 영화 [일일시호일]로 개봉됐다.





Ⅰ 만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려고 했다.

잠시 우편함을 확인하러 가던 엄마(저자의 엄마)가 급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

이전에 방충망을 부서뜨린 전력이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에 새끼 세 마리를 낳은 것이었다.

원고로 먹고 사는 나(저자)는 가뜩이나 약속한 단행본 원고가 써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내일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무심하게도 단박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키우던 금붕어가 어항 밖으로 뛰어나와 바싹 말라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남쪽 마당은 엉망진창으로 짓밟혔고 우리집 주변에서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가 흘러 들어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길고양이었으니 나이 지긋하신 엄마께서 좋아할 리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동물애호협회에 가봤지만 보호시설이 꽉 차 있을뿐더러 보호 순서를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만 무려 이백 마리나 된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두달 후에 사진을 찍어 오면 입양을 연계시켜준다 했는데 이말은즉슨 두 달을 케어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니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절대 돌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엄마는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따금 어미 고양이인 길고양이가 그들에게 하악질을 하며 새끼들을 보호하였고 젖을 물렸다.

그리곤 잠시 사라지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새끼 고양이들은 일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Ⅱ 간택


뼛속까지 애묘인인 사촌 사치코와 미도리 외숙모는 이미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 때문에 맡을 순 없었지만 출석도장을 찍듯 매일같이 들렀다.

그들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사랑하는 지인들까지도.


생명을 키우면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 행복했던 만큼, 이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오나 싶게 슬픔이 왈칵 밀어닥친다. 귀엽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늙어가고 있다……. 고령이 된 이후의 상실은 분명 타격이 클 것이다. 그 쓸쓸함을 견뎌야만 할까?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없는 편이 좋다…….


사치코가 마련한 화장실에 볼일을 보지 않은 고양이를 이상하게 여겼는데 선풍기를 꺼내러 간 2층 안쪽 창고방에서 악취가 엄청남을 느끼게 되었다.

어미 고양이가 배탈이 났는지 그곳에서 일을 본 것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화장실을 마련한 사치코에게 더이상 못참겠다는 말을 꺼내니 사치코가 입을 열었다.

"노리코 언니, 고양이는 말이야, 개하고 달라서 길들일 수가 없어. 사람이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줘야 해."

사치코가 화장실을 구석으로 옮기고 가리개를 만드니 그제야 어미 고양이가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쭉.

그렇게 아기 고양이들은 생후 삼주를 넘기고 있었다.


어느 날,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물고 가출을 시도하려는 일이 발생했다.

순간, 엄마는 외쳤다. 안 된다고!

그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엄마의 마음은 정해졌구나, 정해졌어.

그렇게 어미 고양이는 '미미'가 되었고 어느새 윤기나는 털을 가진 집고양이가 되고 있었다.


"미미짱, 달라졌네. 완전히 자리를 잡았어. 집고양이 다 됐네. 분명히 동네 길고양이들이 떠들어대고 있을 거야. '우리랑 한패일 때는 쥐처럼 꾀죄죄했던 미미가 말이야, 지금은 새하얘져서 곱디고운 집고양이가 됐다더라.'"


새끼 고양이들의 이름도 정해졌다. 다로, 지로, 구로, 시즈짱, 나나.



Ⅲ 가족


예전에 새끼 고양이를 옹벽 위에서 내렸던 때, 엄마는 문득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빠가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를 비오는 날 발견했었다고 한다.

곧장 할머니에게 키워도 되냐고 부탁했지만 호되게 혼나고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가봤는데 성냥개비 같은 하얀 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빠의 기억 속 새끼 고양이를 데려온 걸까…….


미미와 다로와 엄마와 나.

이 네 마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나날도 매 순간 흘러가 언젠가 전부 과거가 돼버릴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때 무슨 기억을 떠올릴까?

……한밤중 부엌에서 다로가 사료를 먹으며 내는 '까드득까드득' 소리. 툇마루 볕에서 뜨개질을 하는 엄마의 무릎담요 자락에 파고든, 봉긋한 다로의 형체. 잠든 다로의 목에 감긴 미미의 새하얀 앞다리. 그리고 잠든 내가 덮고 있는 깃털이불 위를 미미가 살며시 걸으며 내는 바스락바스락 소리……. 어떤 순간도 잊지 못한다.

미미, 다로.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길고양이의 간택을 받아 집사가 된 일화를 담은 이 책은, 일기를 보는 듯한 편한 느낌이라 우리에게 굉장히 따뜻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고양이를 키웠던, 키우고 있는 애묘인들이 이 책을 펼친다면 분명 본인의 고양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서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렇듯 고양이와 관련된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잠시 돌봐주었던 길고양이들이 자연스레 생각난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1-2년 동안 많은 추억을 쌓았었다.

겨울이 거의 끝나가고 봄이 오는 시점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옥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눈에는 굉장히 어려보였다.

첫 만남부터 경계심없이 다가왔던 아이였는데 배고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생선을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리곤 건강하게, 오래 오래 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호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실 나는 고양이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나 애정이 전혀 없었다.

'아, 길고양이가 지나가네.', 딱 이 뿐이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바로 미국에 갔다온 이후부터였다.


미국에서 잠시 고모집에 머물렀을 때, 고모집에서 오랫동안 키운 고양이, sebastian이 있었다.

첫 날, 시차에 적응 못하고 곧장 잠이 들었었는데 다음 날 아침, 고모가 놀랍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낯가림이 심한 sebastian은 가족 이외에 사람들에게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고 한다.

하악질을 하거나 아예 자리를 피해 숨어버리는데, 어젯밤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워 자고있는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내 품으로 쏙 들어가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곤 sebastian은 가족들에게만 악수를 하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가 shake it, shake it, hand를 말해보라고 권했다.

사실 할퀴지 않을까 겁이 나 망설여졌는데 sebastian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건네며 말했다. "shake it, shake it, hand."

그 때, 느꼈다. 아, 고양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구나!라는 것을.

젤리, 젤리같은 마시멜로를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발바닥이 조심스레 내 손 위에 턱 얹어졌다.

그리곤 슈렉에서 나오는 고양이와 같은 눈망울을 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계기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나는 그렇게 옥상에서 처음 만난 호떡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무데서나 밥 먹게 할 순 없으니 마당 한 켠에 밥 먹는 곳을 만들어주었고 호떡이는 이후 친구 마시멜로를 데려오게 되었다.

(그레이, 베이지 두 마리가 더 있긴 하지만 두 고양이들은 6개월 정도 밥만 먹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참 신기했다.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저 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기에 외쳤다. "호떡아, 이리와."

그렇게 부르면 고양이들처럼 총알같이 튀어오지 않고 뚱땅뚱땅 뛰어서 내려오는데 그 순간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의 타임라인은 다르다.

함께 한 시간이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지만 그 몇 달동안 하루종일 붙어 있어 정이 진득하게 들었던건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나서 sebastian이 현관 옆 창문 틀에 자리잡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그 말이 참 먹먹하게 들렸는데 17년이나 살았던 sebastian은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몇 년 뒤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전화를 통해 sebastian의 소식을 들었을 때, 고작 몇 달밖에 함께 하질 않았고 내가 키운 고양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절로 흘렀고 몇 주 동안 참 먹먹했다.

반려동물의 한평생을 함께 한 반려인들에게는 반려동물과의 이별 자체가 얼마나 크게 와닿을지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에세이지만, 그 속에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주는 것보다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애묘인은 물론이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권해주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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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24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고고 이뻐라 넘 이쁜 아이들이네요. 잘 거두어 주셔서 고마워요.^^ 세바스찬 이야기는 제가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데서 사랑에 빠지게 된 우연한 인연과도 다르지 않아 우리집 냥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고양이별로 돌아간 세바스찬이군요. ㅠ 고양이는 사랑!
책 사진이 참 이뻐요.

하나의책장 2021-12-24 23:14   좋아요 1 | URL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길고양이긴 했지만 밥 먹을 때가 되면 꼬박꼬박 찾아와서 챙겨줬었어요. 집안에 들어오는 건 너무 싫어해서 겨울에 추울까봐 안에 이불 넣어놓고 마당 한 켠에 바람 들어오지 않게 집도 만들어줬고요. 그렇게 2년 정도를 보냈었는데 그 또한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었어요ㅠ
맞아요! 고양이는 정말 사랑이에요^^
세바스찬 덕분에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버렸거든요...☞☜
프레이야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새파랑 2021-11-22 14: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양이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고양이군요~! 한미 공통 인듯 합니다 ^^ 하나님의 글도 그렇고 책도 따뜻한 이야기 인거 같아요~!!

하나의책장 2021-12-24 23:15   좋아요 0 | URL
헤헷 표지처럼 내용 또한 따스해요^^
날씨가 확- 추워졌어요. 내일 정말 눈이 내릴 것만 같아요!
새파랑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1-23 22: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수채화 그림처럼 예쁘네요. 이야기도 따뜻한 내용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날씨가 며칠 사이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12-24 23:16   좋아요 0 | URL
그죠?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정말 따뜻했어요.
오늘은 특히나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감기 걸리기 쉽겠더라고요.
서니데이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내일은 눈이 내린다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 될 것 같아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scott 2021-12-09 16: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사랑둥이 괭이 눈망울이 ^ㅎ^

그레이스 2021-12-09 16:04   좋아요 4 | URL
저도 축하드려요
하나님~

하나의책장 2021-12-24 23:17   좋아요 1 | URL
헤헷 감사합니다 ♥.♥

mini74 2021-12-09 16: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 라서 놀랐던 리뷰군요 ㅎㅎ 미미님이 북플에 계셔서 ㅎㅎ 축하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1-12-24 23: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새파랑 2021-12-09 17: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당선 축하드려요 ^^ 아름다운 고양이 멋진 사진~!!

하나의책장 2021-12-24 23:18   좋아요 1 | URL
길고양이답지않게 털도 윤기 나고 참 예쁜 고양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쎄인트saint 2021-12-09 1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12-24 23: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thkang1001 2021-12-09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리뷰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12-24 23: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이하라 2021-12-09 18: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1-12-24 23: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09 2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하나의책장 2021-12-24 23:1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 2021-12-10 0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하나의책장 2021-12-24 23:1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thkang1001 2021-12-25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님께서도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01-07 00:17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이제야 봤어요 +.+
thkang1001님도 굿밤되세요♡

thkang1001 2022-01-07 0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03-10 08:36   좋아요 1 | URL
(답글이 많이 늦어 너무 민망하지만;)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7 1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하나의책장 2022-03-10 08:36   좋아요 1 | URL
(답글이 많이 늦어 너무 민망하지만;)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01-07 1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책장님, 이 리뷰, 저라면 긴 준비 시간 줘도 연출 못할 아름다운 사진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당선작이네요.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2-03-10 08:37   좋아요 0 | URL
앗, 칭찬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님께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이었다니 부끄러우면서도 너무 기뻐요^^
(답글이 많이 늦어 너무 민망하지만;) 감사합니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라믈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유월의 독서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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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천의 문학 살롱
이환천 글.그림 / 넥서스BOOKS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하나, 책과 마주하다』


말장난하는 듯한 말투지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시집이 한 권 있다. 하상욱 시인의 『 시 읽는 밤 : 시 밤』도 함께.


저자, 이환천은 2014년 5월부터 페이스북에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라는 타이틀로 페이지를 개설하여 많은 독자들이 애정하는 시인으로 쑥쑥 성장 중이다. 누구보다 놀기 좋아하는 작가는 일상 순간에서 뽑아낸 소재들을 그림과 시를 통해 매주 금요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하면서 그의 글과 그림을 보고 읽는 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피가 나기 직전까지 벅벅 긁어 주는 속 시원한 돌직구를 뿌리고 있다.




열정페이


젊은애들

가슴속에


꽉차있는

열정만큼


돈안주고

부려먹을


명분이또

어디있노



매력


너무꽁꽁

숨겨놔서


나도아직

못찾았다



카페


죄송한데

조용히좀

해주세요


저내일이

시험이란

말이에요



직장인


지금처럼

일할거면


어렸을때

존나놀걸



이별


끝난거면

끝난거지


좋은친구

같은소리


내앞에서

하지마라


꼴도보기

싫으니까



지우개


내가만약

지우개를

만들어서

팔게되면


그지우개

제품명은

초심이라

할것이다


너무나도

잃기쉬워

다시사게

될거니까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 한 켠에 쌓여진 네 개의 책탑이 있다. (참고로, 한 책탑 당 20권여의 책을 쌓아놓았다.)

읽을 책들을 쌓아놓은 건데, 이러다 방 안을 점령할 것 같아 책탑 하나는 책장 안으로 넣어버렸다.

책탑 하나를 책꽂이에 넣다가 말그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책 몇 권을 집어들었다.

이 책 또한 그 중 한 권이다. (지금은 절판된 책인 듯하다.)

몇 자 읽고나니, 하상욱 시인의 『 시 읽는 밤 : 시 밤』이 함께 떠오른다.

시를 정말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시집은 잘 안 읽는 편이다. 이렇게 해학적인 류의 시집은 이 책과 함께 「시밤」이 전부였으니깐.

교과서적인 틀에 맞춰진 고전시만 읽어버릇 하다보니 옛시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형식적인 틀에 메어있지 않는, 해학스러운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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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이분 시는 처음 보는데 특이하고 좋네요. 사이다 같은 느낌이 들어요 ~!!

하나의책장 2021-11-19 10:17   좋아요 1 | URL
저도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 책이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질 않았다면 잊혀질 뻔 했는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전에 읽었던 게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딱 [시밤]과 비슷한 느낌의 책이에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