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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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저자 이우성

arte

2015-07-06





반속요(현실로 돌아오는 노래) _설요

化雲心兮思貞淑 (화운심혜화정숙)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洞寂滅兮不見人 (동적멸혜불견인)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瑤草芳兮思芬蒕 (요초방혜사분온)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將奈何兮是靑春 (장내하혜청춘)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반속요는 출가했다 다시 속세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속요를 지은 설요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삶에 환멸을 느껴 출가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계속된 얽매임 속에서 결국 수도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데 이 때 반속요를 짓고 환속했다고 전해지며 훗날 당나라 곽진의 첩으로 살다가 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참 어렵습니다.

한 번 꼬인 실타래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 것이 곧 인생의 순리이기도 하니깐요.



美人怨(미인원) _이규보

​腸斷啼鶯春 (단장제앵춘) 단장제 꾀꼬리 우는 봄날 애간장 타는데

落花紅簇地 (낙화홍족지) 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구나

香衾曉枕孤 (향금효침고)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하여

玉臉雙流淚 (옥검쌍유루)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누나

郞信薄如雲 (낭신박여운) 님의 약속 믿음 없기 뜬구름 같고

妾情撓似水 (첩정요사수) 이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누나

長日度與誰 (장일도여수) 긴긴 밤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皺却愁眉翠 (추각수미취) 수심에 찡그린 눈썹을 펼 수 있을까



대표적인 회문시인 '그대 마음 믿을 수 없어요'는 처음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뜻이 통합니다.


​翠眉愁却皺 (취미수각추) 푸른 눈썹은 수심 겨워 찌푸려 있는데

誰與度日長 (수여도일장) 뉘와 함께 긴긴 밤을 지내어 볼까

水似撓情妾 (수사요정첩) 강물은 내 마음인 양 출렁거리고

雲如薄信郎 (운여박신랑) 구름은 신의 없는 님의 마음 같아라

淚流雙臉玉 (누류쌍검옥) 두 뺨에 옥 같은 눈물 흐르고

孤枕曉衾香 (고침효금향) 외론 베개 새벽 이불만 향기롭구나

地簇紅花落 (지족홍화락) 땅 가득히 붉은 꽃이 떨어지고

春鶯啼斷腸 (춘앵제단장) 봄 꾀꼬리 우는 소리에 애간장 타누나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감정을 부각시키며 여인의 처지를 자연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미인원을 그대로 풀이해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원망이란 뜻이지요.

즉, 이 한시는 말그대로 객지로 떠돌아다니는 임이 돌아오지 않아 원망과 함께 기다림을 나타내는 여인의 감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맨틱 한시』는 조선 시대 뛰어난 문사였던 박제가, 임제 등의 로맨틱한 한시들을 엮은 책이기도 하며 허난설헌, 황진이와 같은 여류 시인들의 시에는 불운한 현실 속에서 펼쳐낸 그녀들의 애달픈 삶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책장을 넘길 때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자 왼쪽을 기준으로 책을 넘기게 되어있습니다.

대부분 학창시절에만 접하는 게 다인지라 어려워서 혹은 재미가 덜하다는 이유로 한시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알고보면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없습니다.

시 한 구절에 담긴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찬찬히 읽다보면 그 깊이감에 어느새 매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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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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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리카 산체스

동녘

2024년 01월 31일

원제 : Crying in the Bathroom: A Memoir

에세이 > 외국 에세이 > 여성 에세이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있으니 바로 편견입니다.

가난한 멕시코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 또한 백인들이 멕시코인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피할 순 없었죠.

미디어 속 멕시코 여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진다고 합니다.

얌전하거나 혹은 문란하거나.



다 괜찮아지겠지


저자는 대학 시절 3년 내내 부모님 집에서 기차로 통학하게 됩니다.

파트타임으로 벌던 임금으로는 기숙사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깐요.

그러다 4학년이 되기 전 여름방학 동안 멕시코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대학 마지막 해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년간 만난 남자친구가 갑자기 사랑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더니 한 백인 여자애와 금세 사귄 것이죠.

이를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녀는 멕시코 전역을 돌다 어느 해변에서 만난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몇 주간을 그렇게 놀다 술을 많이 마셔 췌장염에 걸리게 됩니다.

이제 와서 부모님에게 자신의 행방을 알려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졌지만 스물 한 살이나 먹었으니 그해 초 짐을 싸 친구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옛날 사람 그 자체였던 저자의 부모님은 이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갔으니 노발대발하였고 딸 역할을 거부하고 싶어서 나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한 달에 200달러를 내며 친구 집의 빈방을 썼지만 워낙 허름하다 보니 부엌의 이미지는 고통과 절망 그 자체였죠.

저자는 이 시기를 애정을 담아 잡년의 해라 부르며 시험 전날에도 파티와 술자리가 있다면 입고 있는 잠옷을 벗어 던지고 나가기 바빴습니다.

그런 그녀가 질염에 걸리게 되는데 병원에서는 단순 질염이라고 했지만 그렇기엔 낫지 않는 병과도 같았습니다.

몇 달 동안 먹었던 약과 치료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녀는 설탕과 탄수화물 과감히 끊게 됩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온 봄, 낫지 않는 질염의 원인이 당뇨병 혹은 HIV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마음 졸이며 HIV 검사를 하게 되고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게 됩니다.


대학의 마지막 해, 보험 중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버티며 궁색한 생활을 지속했지만 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저자는 무엇이든 열심히 해 파이 베타 카파에 선발되었고 대학생 문학상 시 부문에서 수상하게 됩니다.

또한 우수 학생 특별 교육에 참여해 우등생으로 졸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나, 에리카 산체스는 마드리드로 간다."

늦은 봄 무렵, 아직도 낫지 않은 질염으로 고생중이던 그녀가 인터넷에서 본 방법대로 티트리 오일로 질염을 세척하게 되는데 엄청난 통증에 다시 병원을 찾게 됩니다.

헤르페스라는 진단을 받고 스스로 더럽다고 자책하던 그녀는 의사의 오진임을 알게 되고 한시름 덜게 됩니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만성적인 외음부 통증인 외음부 전정염 진단을 받고 무료 침술원까지 추천받았지만 통증을 막을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6월 초, 드디어 저자는 졸업하게 됩니다.

몇 주 후면 스페인에 가는 그녀는 어느 날 레게 클럽에 가게 되는데 한 남자를 알게 됩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자에 열 살이나 많은 그의 이름은, 압둘.

그녀의 생활 방식을 불쾌해 할 정도로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는데, 이때 저자가 그에게 탐욕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싸우고 몸을 맞대며 보냈는데, 어느 순간 그에게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결국 드러맞게 됩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알고 지내던 파키스탄계 미국인 여성과 계약 결혼을 했는데 실수로 상대를 임신시켜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무엇보다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있어 헤어지기 어렵다고.

저자를 음탕한 여자라고 비난하면서 스페인에 가지 말라던 이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니!

그렇게 밤새 울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그는 절대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 당장 헤어져야 한다고.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지독히 중독되었던 탓인지 그들은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독히도 그녀를 괴롭혔던 외음부 통증은 온갖 의사를 찾아 돌아다니다 새로운 치료법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바로 물리치료였습니다.

몸이 습관적으로 스트레스를 전부 질에 쌓아두고 있다며 의사는 몇 주 동안 물리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그렇게 길고 긴 시간동안 시달렸던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고뇌와 냉소가 마침내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나의 질은 공연히 고통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어야 했다.



Ay mija, cómo estás fea


'아이고, 얘는 어찌 이리 못생겼을꼬'

저자의 삼촌은 애정 어린 농담이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는 네 살 때 왜 자신이 못생겼는지 욕실 세면대 위로 올라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멕시코 여성들은 대부분 자녀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의 엄마도 머리 아플 정도로 단단하게 머리를 땋아 주었는데 당시 예쁜 아이의 정의에 대해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내린 결론은?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자그마한 백인 여자아이들.

사춘기 때는 그녀에게 특히나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몸의 변화 뿐만 아니라 피부도 말썽이었고 한껏 꾸민다해도 피부색은 바꿀 수 없었으니깐요.

텔레비전에서는 뚱뚱하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마른 몸을 걱정거리로 여기니 이상적인 몸무게는 짐작가질 않았고, 그녀가 열한 살이 되던 때에 샌드위치가 너무 먹고 싶어 사촌에게 가자고 조르니 그녀의 할머니는 식탐이 왜이리도 심하냐며 꾸짖기까지 했었습니다.

모두가 저자의 몸을 실망스러워했습니다.

저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입술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인터뷰를 하던 중에 사진사가 얼굴을 찍어야 하니 작게 웃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할 정도로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를 그리스, 이탈리아, 중동, 인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모든 지역 출신으로 착각합니다.

큰 코와 입술을 보고 백인으로 착각하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하게 그녀의 출신을 추측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밝은 갈색 피부와 비교적 날씬하고 장애 없는 몸을 지녀 다양한 공간에 어울려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다른 유색인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그 자리에 있냐고 추궁당하거나 내 몸 자체로 사람들이 겁을 먹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서른일곱이 된 그녀는 밝은 갈색 피부와 작은 체구, 비대칭적인 가슴, 두꺼운 허벅지,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제 몸을 매우 사랑한다고 합니다.

주체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마침내 자신의 몸과 성적 매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어서 더이상 부끄럽지 않다고 합니다.

남들 시선이 무슨 소용일까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인걸요.





살면서 에리카는 무시와 폄하는 물론 위협까지 당하며 생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곧 생존이었고 그 삶 속에 회복과 재탄생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2045년 이후 백인 비율이 50% 이하란 전망을 내보이고 있을 정도로 인종 구성의 과도기에 놓여져 있는데 다양한 인종이 미국 전역에 머물고 있지만 인종차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죠.

더하면 더했지 덜한 수준은 아니니깐.

대선에 다시 도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Make America Great Again!

현재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도 승리한 그는공화당 대선 후보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중 지지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민자들을 강력하게 제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고도 발언한 그는 미국인을 더 챙기겠다고 강력하게 피력중이죠.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비난했지만 그간 보여준 미적지근한 행태에 일종의 지루함을 느낀 일부 자국민들은 트럼프에게 돌아서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이렇듯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보니 유년기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본보기가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죠.

가족이 있다 해도 어린 아이에게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키워지는 자존감이 제각각이니깐요.

특히 제한적인 기대를 갖도록 키워지게 되면 결국 커서도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다 보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더 복잡한 고통을 느끼고, 더 쉽게 망가진다.



이미 어른이 되어 이 문제에 대해 자각했다면 스스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근래 준비하는 것 때문에 너무 바빠 매일매일 업로드하지 못하지만 미라클 모닝을 실천중인데 그 시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명언들 위주로 필사하고 있어요.

분야 가리지 않고 다 읽긴 하지만, 제가 읽는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저것 다 읽는 건 아니에요.

에세이를 읽어도 '배움'이 있는 에세이 위주로 읽고 있고 다 비슷비슷한 얘기만 있어 기피한다는 자기계발서도 나름 선별하며 꾸준히 읽고 있죠.

저도 쓰고 읽는 것만으로 원동력을 얻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자의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도 저자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지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작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핫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 되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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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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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저자 조성두

일곱날의빛

2023-10-23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한국 장편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아이가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초향과 엄마는 장독대 너머까지 넘어온 비릿한 냄새로 소년이 두 번째 오던 날부터 알아채었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깡마른 소년, 말총머리에 눈이 큰 아이는 두 마리의 염장 고등어를 들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미소와 손짓에 소년은 다가왔고 초향의 엄마는 없는 살림이지만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다는 죽향 수저를 건네며 아이에게 밥 한그릇을 대접해줍니다.

백석 포구에 산다는 아이의 이름은 성원이였고 엄마는 곧이어 지리산에, 그것도 왜 이런 산골에 오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곳은 각지에서 들어온 천주쟁이들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조용히 숨어 살던 산속 마을이었으니깐요.

덧붙여, 초향의 엄마 이름은 김마리아입니다.

몇 마디 건네다보니 아이는 내포 일대 오일장을 도는 등짐장수의 아들임을 알게되었고 엄마는 그제야 안심하게 됩니다.



"머슴아가 효자네. 근데 니 몇 살이가?"

엄마는 아이가 아비와 함께 등짐을 지었다는 사실에 거듭 감탄하는 눈치였다.

"열… 네 살이요!"

"와! 정말로? 우리 초향이보다 겨우 두 살 많아? 누부(누나)는 없고? 어째 이리 개우바릴까(경우가 바르다)! 사나(사내)티가 무슨 총각 같다."

……

고향이 청송인 티를 제대로 내시더라니. 당시 나는 엄마가 무엇때문에 그리 말이 많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당신은 제 말은 고사하고 침묵과 묵상이 늘 모습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왠지 마음이 앞서게 보이더라니! 분명 뭔가에 동한 것 같았다.



처음 서로 뻘쭘했다. 내 소중한 곳으로 안내한 나는 이미 귀밑까지 벌게졌지만, 소년에겐 그 모습이 너무 예뻤던 거겠지? 사실 난 엄마를 믿은 원인이 가장 컸다. 낯선 이와 자리를 내준 엄마의 선택은 오롯한 믿음이지 엉겨 붙은 호기심 그득이었으니까. 아무튼 도착하자 눈만 피하던 우리는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기놀이였다.



초향과 원이의 사랑은 그렇게 이어져갔고 결국 함께 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초향의 아버지 배문호 베드로는 예수쟁이가 될 각오를 해야 하며 원이 부모님을 꼭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원이네 부모님은 원이에게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주쟁이 며느리로 집안 말아먹을 일 있냐고 난리가 났죠.

그 난리통에도 사랑을 택한 원이는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바라옵건데 이를 선물한 원이와 아이의 진행을 순탄히 지켜주옵소서. 특히 우리 초향이. 이름 그대로 주의 향기를 품는 아내요, 그와 한 손의 지어미가 될 수 있도록 부디 사랑하시고, 늘 당신의 한 손과 함께 저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이 구석진 산에 오른 고등어! 특별한 이 음식. 감사와 사랑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지난 2개월의 겨울은 매우 추웠지만 부모들의 약조로 3월이면 새색시와 신랑이 되는 초향과 원이는 겨울 내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짐승도 아닌 사람 소리에 초향은 놀라 몸을 숨깁니다.



"니미럴, 이거 개고생이구먼!"

"그러게나. 하필 이런 질척 설한에 천주쟁이 사냥이라니!"



산속 지름길을 통해 헐레벌떡 뛰어간 초향은 아버지께 관군이 올라오고 있다고 외칩니다.

멧돼지나 노루를 사냥하듯, 인간사냥이 펼쳐질 앞으로의 상황에도 초향의 부모님은 눈빛을 교환한 뒤 딸과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딸아, 부디 살아 이 아비와 어미의 신앙을 보듬어라. 그것이 이 부모의 마지막 기대이고 믿음이고 희망이다."


"내 그날 보았던 길상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구나. 부디 어린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고 시댁 어른을 공경하거라. 절대 오늘 이후로 그 어떤 억한 감정도 품지 마라. 어차피 믿음의 증거는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니. 엄마는 하늘에서도 우리 초향이를 위해 기도하마."



겨우겨우 물어 원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된 초향은 그저 눈물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맨발로 뛰어나온 원이가 초향이를 제 품에 안은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곧 입방아에 내리게 되고 별 수 없이 원이의 아내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죠.

발악에 발악을 거듭한 시어머니는 그저 초향을 시집살이로 괴롭힙니다.

그러다 초향은 임신을 하게 되고 한숨만 푹푹 쉬는 시어머니와 달리 시아버지는 매우 기뻐 며느리를 앞장서서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향의 부모님을 챙겨주었다는 것이죠.

갖은 고문을 받다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써서 시신 수습에 힘을 써줍니다.

만삭의 몸에 애써 슬픔을 억누른 채 썩어가는 부모님을 수습하게 된 초향은, 결국 어떠한 말을 듣고 혼절하게 됩니다.

원이는 초향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초향의 부모님을 수습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시아버지가 며느리 곁을 지키게 됩니다.

이틀 뒤에 깨어난 초향은 시아버지 간곡에 물 한모금을 겨우 마셨지만 원이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주섬주섬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른 새벽, 집 터에 장인, 장모를 안치한 후 내려오고 있을 원이와 마주하기 전에 초향은 시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아가야. 용서하거라. 내가 대신 무릎을 꿇으마!"

"아버님, 고마웠어요. 이 세상 잠시라도 거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으니!"

"초향아! 아가야, 우리를 용서하거라. 내 미안쿠나."

……

"아버지. 원이에겐 저를 찾지 말라 전해주세요. 그 초향이는 이제 죽었다고요."

"아가야! 아니 된다. 어찌 그 몸에 뭘 어떻게 하려고!"

"아버지. 저는 억한 마음 하나도 없답니다. 그것이 제가 천주님께 배운 바요. 제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셨으니까요. 아버님. 어머니께도 마지막 안부 전해주세요. 저는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산발된 머리, 핏기없는 얼굴.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초향은 원이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산길을 고집하며 부모님의 고향이 경상북도 청송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눈을 뜨게 된 초향.

아버지 베드로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우애 거길 널찌게(떨어지게) 되었소? 이 가실(가을) 갱분(강변)에 물이 없어 망정이지. 작은 아주매 거기 구디(구덩이)에서 건졌다 아닌교. 어찌 돌삐(돌)에 맞았는지. 이래 눈 뜬 것도 용하다카이."





초향의 인생에 나타난 두번째 남자, 바로 박춘삼이었습니다.

1867년 청송에 초향이가 오고 14년이 지나 1881년 봄, 둘은 조용히 혼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향의 나이는 스물일곱, 박춘삼은 마흔일곱 살이었습니다.

총각은 드디어 우렁각시를 품게 됩니다.

운명이 곧 인연이 되어 춘삼과 결혼한 초향은 기적과도 같은 아이, 세례명 엘리사벳, 딸 송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한 번 잃었었고 나이 서른여덟인데 늦둥이같은 자식이 태어났으니 춘삼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후 춘삼이 죽고 초향과 딸 송이는 서울 경성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책은 초향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송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책에서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다뤄집니다.

첫 번째는 초향, 두 번째는 송이, 세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유화이지요.


사실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앞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초향이 춘삼과 결혼하고 송이를 낳은 후, 첫번째 남자였던 원이가 찾아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말이죠.

순수하게 초향만을 사랑했던 원이, 그런 원이를 보며 참 마음 아팠어요.

더 언급하면 아예 스포가 되어버리니 침묵하겠지만 이 부분 꼭 읽어주세요. 정말 슬픕니다. (눈물 광광)


읽는 내내 전에 읽었던 책들이 자연스레 연상되었어요.

특히 초향과 원이의 이야기는 꼭 소나기를 연상케했죠.

그거 아시죠?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몰입해 읽다 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눈물이 또르르 흐를 때.

F 감성 낭낭한 저는 읽다가 몇 번이고 울컥했었는데 결국 또르르 흘러내리더라고요.


인문/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지만 그 이상으로 소설도 많이 읽고 있는데 전부 소개하진 않고 있어요.

즉, 소설만큼은 찐으로 추천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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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
요헨 구치.막심 레오 지음, 전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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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너, 내 집사가 돼라!

죽기로 결심한 그 밤, 골드에게 프랭키가 찾아왔습니다!


저자, 요헨 구치는 1971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언론인과 작가로 일하며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막심 레오와 함께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그래서 좀 쉬라고 호르몬에서 힘을 살짝 빼준 거야》는 1년 넘게 《슈피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저자, 막심 레오는 구 동독에서 태어나 통독 후 베를린 자유대학교와 파리 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독일 TV 방송국 RTL 기자를 거쳐 지금은 독일의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의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으로 2002년에는 '독일-프랑스-언론상'을 2006년에는 '테오도르-볼프상'을 수상했습니다.

2011년에는 동서독 분단시절 동독에서 생활했던 자신의 가족 이야기 '마음의 준비를 해 둬'를 출간해 '유럽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70년 넘게 방영되고 있는 범죄수사드라마 '타트오르트'의 대본 작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여기 죽고 싶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잃고 충격과 좌절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거든요.

그렇게 두툼한 끈을 목에 감고 계획을 실현하려는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그 고양이는 바로 쓰레기 언덕에 사는 프랭키.

자신을 향해 팔을 마구 내젓는 프랭키를 쫓기 위해 골드는 엉겁결에 물건을 던지는데, 아뿔싸!

그 물건을 머리에 맞고 프랭키는 기절하게 됩니다.

일단 골드는 프랭키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 런! 데!

프랭키가 말을 하네요?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잠시 제정신이 아닌 건가 싶었지만... 맞습니다. 분명 맞아요.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사실 프랭키가 커다란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수집했던 내용은 이랬습니다.


자세한 상황 1 : 정말 어떤 남자가 있었다.

자세한 상황 2 : 그는 의자 위에 서 있었다.

자세한 상황 3 : 방 천장에서 끈이 하나 내려와 있었다.

자세한 상황 4 : 남자는 그 끈을 목에 감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 5(상황 4에 보충하여) : 그 끈은 무진장 두툼했다.


끈을 무진장 좋아하는 프랭키는 여태껏 이런 멋진 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묘생 최고의 시절이었던 베르코비츠 부인과 살던 때가 생각날 정도였으니깐요.


"낭수고!"

"뭐라고?"

"난수고양!"

날아온 물건에 머리를 맞아서 인간어가 조금 나른해진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골드가 답답해 프랭키는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습니다.

"나는 수고양이라고!"


그렇게 그 일을 계기로 골드의 집에 눌러 앉은 프랭키와 엉겁결에 집사가 된 골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실 골드의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해서 그 계획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엉겁결에 집사가 되었지만 점점 더 무리하게 요구하는 프랭키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골드는 죽을 시간도 부족해집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이 싫었다면 프랭키를 외면하고 쫓아냈겠죠.

희한하게 황당한 일이 분명한데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골드였습니다.

그리곤 어느새 프랭키를 통해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바로 '삶의 의미'였습니다.


날이 밝았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골드의 무릎에 뛰어 올라 외쳐도 반응하지 않자 코를 꾹 누르며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나 오줌 눠야 해. 그러니까……."

"지…… 지금 몇 시야?"

"몰라. 나는 수고양이라고. 시계가 없어."

"4시 반……."

"그래서 뭐?"

"일러. 너무 이른 시각이야."

"나 오줌 눠야 해."


또한 프랭키가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골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 문제에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지요.

"나 배고파!"

필살기 [귀엽게 보기]를 시전해도 아무 반응 없는 골드는 프랭키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습니다.

"쥐를 잡아."

"배고프지 않아? 당신도 뭔가 먹고 싶을 거잖아. 아니야?"

"이제 더는 필요 없어. 관심 없다고. 만사가 귀찮아."


여기서 물러설 프랭키가 아니지요!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골드를 끝내 깨워 소변을 보러 나가고 밥도 얻어 먹습니다.

과하다 생각들지 모르겠지만, 짝사랑하는 암고양이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며 영화에 출연시켜달라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만 들어도 [귀찮은 +10], [귀찮은 +20] ……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기력한 골드를 움직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요.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언급은 안 하겠지만)

마지막에 골드와 프랭키는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 때, 골드가 프랭키에게 남긴 편지 한 통이 있어요.


너는 이렇게 말했지. "인생은 단순해. 그 어떤 멍청이라도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매일 일어나고, 계속 살아가는 일이 힘겨워. 너무나 피곤해. 내 분노 때문에. 영원한 고통 때문에. 난 이제 다시 가벼워지려고 해.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빛이 있기를 바라. 내가 그냥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멍청이라면 좋겠어. 하루, 또 하루 살아남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멍청이.



간혹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동물로 인해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소설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화같은 소설이라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근래 읽은 소설 중 BEST 5에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프랭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힐링 소설,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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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식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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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14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난 저자는 인생이 힘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이 먹을수록 인생이 힘들어지면, 그것은 인생공식을 모르기 때문이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위로와 돌직구 조언이 우리를 깨우쳐 줄 것이다.


저자, 양순자는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해왔다.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했으며,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군부대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했다.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가 신조인 그녀는 누군가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였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그녀 옆자리에 앉기만 해도 그녀의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그래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사는 게 우울하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 린다. 그녀는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지만 두 번의 수술 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암세포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2014년 7월, 향년 73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인생 기본 基本 공식


인생이란 놈이 그렇게 혼란스럽지만은 않다는 거야.

다른 좋은 점도 있지만 나는 이게 제일 좋아. 지혜가 생긴다는 거, 그리고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거 말이야. 내 식대로 말하자면 인생의 공식을 터득하게 되는 거라. 이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는 거거든. 반드시 그만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거란 말이지. ……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단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그냥 늙은 거야. '어른'이 아니고 그냥 '늙은이'란 거지.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식을 잘 버무려서 소화를 해야 자꾸 성숙해지는데, 그걸 못했으니까 고집불통에다가 욕심만 많은 늙은이가 돼버리는 거라.

이제 '나이 먹는 것도 괜찮아,'라는 말의 진짜 뜻은 알겠지? 그냥 나이 먹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 '나이 먹는 것도 괜찮을 만큼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란 말이지.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나잇값을 못 한다면 어른이 될 순 없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어. 그건 네가 눈 감아줘야 해.'

'왜냐고? 옛날 사람이니깐.'

잘못된 말 혹은 행동을 나이로 방패삼는 게 과연 어른다운 행동일까?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한 번은 행복해야 해.

길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잠깐이나마 행복한 순간을 주자는 말이야.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돼.

경우에 따라서는 과자 한 봉지로도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을 줄 수도 있거든.


이 말이야말로 '어른'이 우리에게 해주는 진정어린 말이 아닐까.

당연시 여기게 되면 무심코 지나가 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분명 행복의 한 순간일 수도 있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며 지나 보낸다면 그것은 결국 행복으로 연결될 순 없다.

그래서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야말로 '어른'이 우리에게 해주는 진정어린 말이 아닐까.


쓰레기라고 그냥 버리는 게 아니야. 버리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거거든. 쓰레기라고 마음대로 버리지 말고 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버려야 한단 말이지.

"청소도 의미를 새겨 가면서 하고 버리는 것도 정성을 다해서 버려봐. 그러면 당신이 사는 곳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할 테니까.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주변 정리다.

청소라는 것이 단순히 쓸고 닦는 게 아니다.

쓸데없는 것을 버려야 깨끗해지는 것이기에 쓸데없는 것을 쌓아놓고 있다면 진정한 청소라고 말할 순 없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 단수를 올리고 싶다면 버리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윤회란 게, 업이란 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면 '그런 게 어디 있어?'하면서 갖다 버려.

그런데 그게 사는 데 도움이 되면, 고된 인생을 사는 당신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한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든지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거면 받아들여.

그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않는 거라면.


윤회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어른을 통해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볼 수도 있음을 배워본다.

사람 사는 것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어야 재미있는 것인데 성인은 다 통달 해버렸으니 기쁘고 슬픈 것이 없다.

즉,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무 기뻐하지 않는다면 사는 게 재미있을 거란 뜻이다.

윤회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은 바로 사람을 덜 미워하는 것이며 무슨 일이든간에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사이 家族間 공식


자, 그럼 뭘 준비해야 할까? 돈을 준비하겠어, 아니면 차를 준비하겠어? 마음을 준비해야지. 어떤 마음이냐 하면 남자는 머슴이 될 마음, 여자는 식모가 될 마음을 준비해야 해.

머슴이 하는 일이 뭐야? 어떡하든 부지런히 농사지어서 한 톨이라도 더 거둬서 창고에 쟁여 넣어야 하는 게 머슴이야. 지붕에 구멍은 안 뚫렸나, 농사지을 연장들이 휘지는 않았나, 늘 살피는 거야. 밤중에 식구들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대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도, 손님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 나가 맞이하는 것도 다 머슴의 몫이지. 말하자면 집안의 파수꾼 같은 거야.

그럼 식모의 몫은 뭘까? 머슴이 든든하게 기반을 다져 놓으면 그 위에 평화와 부드러움의 숨결을 불어 넣는 게 식모의 일이야.

남자는 머슴 될 마음 없으면 결혼하지 마. 그리고 여자는 식모 될 마음 없으면 결혼하지 마. 요새는 뭔 놈의 공주, 왕자가 그렇게 많은지.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왕자하고 공주는 머슴이나 식모가 될 수 없거든. 마음이 온통 왕자, 공주인 사람들이 어떻게 머슴이나 식모가 될 수 있겠어.


사랑하는 상대에게 헌신하는 마음가짐만으로는 결혼 생활이 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의 가족과의 결합으로 또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저자의 말 따라 마음이 온통 왕자와 공주인 사람들은 결혼 생활 내내 트러블이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 자신만을 생각해선 안 되며 항상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배우자를 대해야 한다.


파릇파릇하고 생생하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시들어버리는 게 이라는 놈이야.

벌써 시들어버린 놈 붙들고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그러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관리를 잘해야 하는 거야.


예외없이 남자도, 여자도 사회생활은 꼭 필요하다.

할머니께서 고모집으로 옮기시고 나서야 엄마는 근래 들어 동창회를 나가셨다.

결혼하고나서 엄마는 동창회에 나가질 못 했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자연스레 끊어졌었다.

할머니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바람에 외할아버지 제사에도 딱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이걸 깨닫고 나니 뭐, 이런 집안이 다 있나 싶었다.

동창회에 다녀와 집에 온 엄마는 설렘과 신남이 묻어난 열 여덟살 소녀의 표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여고 동창회가 열린다고 하면 이제는 등 떠밀며 나가라고 부추기곤 한다.

예외없이 남자도, 여자도 사회생활은 꼭 필요하다.


자식이 정말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행복을 물려주는 게 좋아.

부모들이 행복하면 아이들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보여줄까 그 궁리나 해.


생각해보면, 온전히 우리 가족들만 있을 때 마냥 웃고 떠들기 바쁜데 친가쪽 친척들이 모일 때면 간간히 트러블이 일어나곤 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 고모들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나와 동생들이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깨어 있었다.

그나마 동생들이 자고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말리던 엄마가 조용히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을 들춰 누우라는 제스처를 취했었다.

7살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보고 들었던 그 장면들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가정을 꾸린 여동생에게도 항상 당부하곤 한다.

어려서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라고.

(조카 앞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만 보여줘도 부족하다고.

아이에게 온전히 행복을 물려준다면 엄청난 자존감을 무기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짜 어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와 자세는 두고두고 배웠으면 좋겠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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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2-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도 좋은 글이네요. 특히 머슴이 되고 식모가 되야 한다는 얘기가 굉장히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