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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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외로운 사람들의 섬뜩하고 비상식적인 욕망…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것’이 다가왔다."


저자, 정보라는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학에서 러시아와 SF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F와 환상문학을 쓰기도 하고 번역하기도 한다.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단편 「씨앗」으로 제1회 SF 어워드 단편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선정되었다.




"저거 확 치어버릴까."

"야, 우리 골목으로 빠지자."

"저거 확 치어버릴까."

"야, 치어버려. CCTV 없어."


한 차에 타고 있던 두 번째 남자와 세 번째 남자, 결국 발은 가속페달 위에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골목은 도무지 어디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아 내비게이션은 연결되지 않았다.

좀전에 큰 소리가 나 차 밑을 웅크린 채 바라보았을 때 새빨간 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깜깜했던 밤, 그 끝에 서 있던 노인을 보고선 두 남자는 헐레벌떡 뛰었고 친구의 아파트로 향했다.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한 사람은 잊지 않는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며 즐긴 사람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죽음은 영원히 당신과 함께.

또한 당신의 원혼과 함께.


화장실에 간 두 번째 남자는 그 빨간 눈을 다시 보았고 수건걸이를 힘으로 뽑아 미친듯이 휘둘렀다.

그리고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세 번째 남자였다.

세 번째 남자도 두 번째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둘은 시체가 되었고 그는 부인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은 세 번째 남자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신고했다.

곧장 경찰이 도착했는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은 트렁크만 입고 머리는 헝클어진 첫 번째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결혼하지도 않았으며 이 집에 시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 안은 피범벅에 시체까지 있었다.

친구가 유산으로 남겨줘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남자는 구구절절 설명했는데 한 젊은 경찰관이 형사에게 말했다.

옆 반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유명한 놈들이었다.

얌전한 아이들 괴롭히고 돈 빼앗고 심지어 성매매까지 강제로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 그 경찰관이 네 번째 남자이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또한 당신의 원혼과 함께.



극단적으로 가정해 보자면, 세상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선함과 악함으로 구분 지어져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뉴스거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신림동 등산로에서 성폭행 및 살인을 저질렀던 최윤종,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폭 피해자라며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합의금 줄 돈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서현역에서 칼부림을 벌였던 최원종은 유족들에게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40대 여성을 납치해 초등학교에서 성폭행했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흉악범죄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한 시점에서 일부 초·중생 사이에서 플라스틱 칼 모형 완구인 당근 칼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세상이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과는 달리 더 무심해지고 더 잔인하게 변해가는 것 같아 할 말을 잃게 만드는데, 결국은 이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어야만 이를 모방한 범죄는 물론 작고 큰 범죄들이 줄어들 것이다.

잡지였나? 책이었나? 한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 자체에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범죄자들도 벌받는 것은 싫다고 한다.

하기야 벌받는 게 싫으니 재판에서 판사에게 반성문을 쓰고 온갖 변명으로 본인들은 변호하는 것이겠지.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반성문을 쓰는 것 또한 참 아이러니다.

이렇듯 법은 가해자를 위해 존재하고 세상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추세로 흘러가는데 죄가 분명하면 응당 받아야 할 벌도 더 세게 받아야 한다.

덧붙여, 촉법소년도 폐지되어야 한다.


저자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읽고 있으면 섬뜩하고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 같지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원죄에 대한 묵직한 울림이 크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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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 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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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남편, 그런 그의 결정을 결국 받아들이는 아내.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스위스의 비영리기관으로 가기 위해 둘은 그렇게 취리히로 향한다.


저자인 에이미 블룸과 그의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편의 선택을 존중해 디그니타스로 향하는 그와의 마지막 여정이 담겨져 있다.


저자, 에이미 블룸은 1953년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심리치료사이다.

1993년 소설집 『내게로 와Come to Me』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2000년 소설집 『눈먼 사람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볼 수 있다A Blind Man Can See How Much I Love You』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후보에 올랐다. 임상사회복지사로 일해온 경험을 토대로 TV 코미디 드라마 시리즈 <마음의 상태State of Mind>의 극본을 쓰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2022년 출간된 『사랑을 담아』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작가의 남편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스위스의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의 승인을 받은 뒤 부부가 함께 취리히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때로 슬픔은 가장 지극한 사랑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라는 평을 받으며 <타임> 선정 ‘2022년 최고의 논픽션 1위’에 이름을 올린 것을 비롯해 <뉴욕 타임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워싱턴 포스트> <보스턴 글로브>, NPR, 아마존 등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 함께 울고 웃으며 이별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의 사랑 가득한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결정


2020년 1월 26일 일요일

스위스 취리히

취리히로 향하는 이 여정은 브라이언과 내가 좋아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여행이다.


스위스항공 좌석에 앉아 브라이언과 나는 서로를 위해 건배하며, 약간은 망설이다 '위하여'라고 말한다. 보통 우리는 '첸타니'라고 한다(이탈리아식 건배사로 '백 년을 누리세'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백 년'은 없다. 우리는 십삼 주년 결혼 기념일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그런 그가 스스로 삶을 떠나겠다고 선택한다면 지지해줄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병세가 진행되는 줄 모르고 지냈던 남편 브라이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브라이언은 이내 자신에게 내려진 진단을 듣고선 알츠하이머병이 동반되는 긴 작별을 원치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종착지는 디그니타스가 되었다.



그와의 마지막 여정


브라이언은 보던 신문을 접어 비행기에 갖고 타려다 곧 생각을 바꿨다. 그에게는 거창한 계획 충동,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필요를 과잉 짐작하여 좋아하는 것들을 쟁여두다시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예를 들면 4월에서 11월까지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갈 때 트렁크에 제물낚시용 미끼를 비롯해 덜 아끼는 낚싯대를 적어도 하나 이상 꼭 넣어두곤 했다. 식당에서 나갈 때는 박하사탕을 꼭 한 움큼 챙겨 침대맡 탁자와 사탕 담는 병과 자동차 글러브박스에 쟁였다. 이번 여행에서만은 아니다.


이따금 나는 그가 더 좋은 아내, 적어도 다른 아내를 만났다면, 그 사람이 이 결정에 반대하고 남편의 육신이 스러질 때까지 그를 이 세상에 잡아두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는 옳은 일을 하는 거라고, 브라이언의 결정을 지지하는 게 옳다고 믿지만, 그가 이 모든 준비를 직접 하고 나는 그의 뒤를 새끼 오리처럼 충실히 졸졸 따라다닐 수 있었다면 마음이 한결 편했을 것이다.


취리히에 도착했다.

디그니타스의 스위스인 의사인 닥터 G와의 첫 면담을 갖기 전 하루가 남아 있었다.

월요일과 수요일, 두 차례에 걸쳐 브라이언과 면담을 진행한 뒤 목요일에는 디그니타스와의 최종 예약을 하게 된다.

공식적인 이메일이 도착했다.

디그니타스 아파트에서 브라이언이 동행자살을 위해 마실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을 처방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두 차례의 면담에서 기대만큼 잘해내고 닥터 G가 브라이언의 분별력과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게 되면 수요일에 최종 승인을 받아 목요일에 디그니타스 아파트로 향하는 것이었다.


취리히로 향하기 전 디그니타스의 담당자 하이디가 브라이언에게 삶을 중단하려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했었다.

그는 하이디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삶을 중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직 나 자신으로 남아 있을 때 이 삶을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점점 더 잃어가기 전에."

1월에 취리히에 오라고 통보받았을 때, 그들은 서로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앞으로 함께 존재하지 않을 브라이언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


작은 도시에서 불행한 관계에 갇힌 중년들이 사랑에 빠지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키스를 하게 되고, 그 해 내내 서로를 피해다녔다는 것이 팩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이언이 에이미에게 걷자고 청했다.


난 바보가 아니에요, 이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잘 알아요. 당신은 나한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할 테고, 혹은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말하겠죠. 그러고 나면 우린 각자의 삶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면 난 평생 당신을 잊지 못하겠죠. 아니면, 각자의 삶을 끝장내고 서로와 함께할 수도 있고요.


그의 말에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브라이언과 에이미는 결혼하게 된다.



그와의 마지막


브라이언은 말이 없고, 이제 나는 미식축구 얘기가 미친듯이 듣고 싶다. 내가 그의 두 손을 잡고, 그는 내게 손을 허락한다.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내가 말한다. 정말 많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가 말하고,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을 마신다. 나는 그에게, 그의 잘생기고 지친 얼굴에 온통 입맞추고, 그도 내 입술을 허락한다.


그의 숨소리가 바뀌고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잠드는 소리를, 그의 깊고 고른 숨소리를, 지난 십오 년 가까이 그의 옆에 누워 듣던 소리를 듣는다. 그의 손을 잡는다. 여전히 그의 무게와 온기가 느껴진다. 그의 피부색이 불그스름한 빛에서 좀더 창백한 분홍빛으로 바뀐다. 나는 그곳에 오래도록 앉아 기다린다. 이제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낯빛이 더 창백해지고 나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났음을 안다.


구토억제제를 먹은 뒤에라도, 원한다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말에도 브라이언의 결심은 확고했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눈을 감았다.

온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 때.




이전에 안락사를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안락사를 앞둔 환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 생명은 귀한 것이니 반대하겠지. 근데 말은 쉽겠지. 나는 어쨌든 죽을 날을 받아두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들은 겪어보지 않았으니 이 고통을 모르겠지. 이 고통을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사실 이 말을 듣고 벙쪘던 것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굉장히 고통스러워보였다는 것이었다.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만큼 이에 대해 찬반논란은 여전히 뜨겁지만,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의 결정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한 어르신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나는 치매에 걸리게 되면 요양병원까지 갈 필요없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가족한테는 물론 나한테도 그게 제일 좋은 정답이야."

본인의 모습은 잃어버린 채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 할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안락사라는 소재를 다루었던 영화 「미 비 포유」, 주인공 윌은 오토바이에 치여 크게 다치고 만다.

전신마비 상태로 힘겨운 치료를 넘기며 그나마 손가락 몇 개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스스로 앉지도, 눕지도, 먹지도 못했기에 그에게 산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었다.

스위스 행을 결정짓고 만나게 된 간병인 루이자.

루이자를 만나 사고 난 이후 처음으로 많이 웃게 된 윌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You are pretty much the only thing that makes me want to get up in the morning."

스위스 행을 알게 된 루이자 또한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그는 예정대로 스위스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달라도 너무 달라요. 당신은 예전의 날 몰라요.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 난 이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이기적이지만 당신이 나를 보면서 후회나 연민은 느낀다면..."

"이렇게 함께 있는 이 밤이 당신이 내게 준 가장 멋진 선물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끝내야 해요. 고통과 피곤함도 지겹고 아침마다 죽길 바라며 깨는 것도 싫어요. 난 더 나아지지 않아요. 의사들도 알고 나도 알아요. 돌아가면 스위스로 돌아갈 거예요."


결국 그들은 결혼기념일 15주년도 채우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안락사 정의 및 찬성 반대 근거 그리고 디그니타스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20126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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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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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때는 1850년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나오미와 백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존의 여정.

그러나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콜레라에 원주민 공격까지 뭐 하나 쉽게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험난한 여정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위해 전진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가 매우 대단하다.

과연 그들은 원하는 종착지에 도착하였을까?


저자, 에이미 하먼은 월스트리트 저널, USA 투데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먼의 책들은 총 18개국 언어로 출판되었다. 유타 출신의 작은 시골 소녀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먼은 그동안 총 열다섯 권의 책을 썼고, 그중에는 월스트리트 저널과 워싱턴 포스트 베스트셀러 『왓 더 윈드 노즈(What the Wind Knows)』,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 『더 스몰리스트 파트(The Smallest Part)』, 『메이킹 페이스(Making Faces)』, 『런닝 베어풋(Running Barefoot)』 그리고 아마존 역사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프롬 샌드 앤 애쉬(From Sand and Ash)』가 있다.

『프롬 샌드 앤 애쉬(From Sand and Ash)』의 경우 2016년 휘트니 어워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소설 『디퍼런트 블루(A Different Blue)』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판타지 소설 『더 버드 앤 더 스워드(The Bird and the Sword)』는 2016년 굿리즈 최고의 책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먼의 향후 책 출간 일정과 하먼의 포스팅을 보고 싶다면 www.authoramyharmon.com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존과 나오미의 첫 만남


넓은 도로 한복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소곳이 앉은 노란 드레스의 그녀는 마치 한 송이 꽃과도 같았다.

모두가 먼지와 불만에 둘러싸인 채 부지런히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홀로 가만히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일렁였다.

존은 이내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계속해서 눈을 맞추고 있자 그녀는 순간 놀랐다가 방긋 웃어주었다.

그리곤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나오미 메이라고 해요. 저희 아버지가 당신 아버지 존 라우리 씨께 노새 두 마리를 사셨거든요. 혹시 당신과 아버지 두 분 다 존 라우리라고 불리시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서요."

내민 손을 바라보니 손바닥은 얼룩덜룩하고 손가락 끝은 새까매 단정한 외모와는 부조화스러워 내민 손을 끝끝내 잡지 않았다.



존의 이야기


존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아들의 존재를 민망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본인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존의 어머니가 속해있는 부족 원주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두 발", 즉 한쪽 발은 백인의 발, 다른 쪽 발은 포니 족의 발이라는 뜻으로 양쪽 세계에서 존은 낯선 이임을 의미했다.

존은 어머니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제니라 부를 뿐이었다.

제니는 존의 친어머니가 아니다.

이복 여동생들은 존의 아버지의 파란색 눈을, 머리카락 색은 제니보다 조금 더 밝은 빛을 띠고 있는데 존의 눈과 머리카락 색은 제니보다 조금은 더 짙은 색깔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제니라 불렀고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호칭을 사용하지 않거나 그냥 부인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제니를 어머니라 부르는 순간, 머리숱 많고 비뚤어진 미소를 지녔던 포니 족 여인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니깐.

어느 날, 아버지가 존에게 이런 말을 꺼내게 된다.

"그녀를 사랑했었다."

"네가 나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거 나도 안다. 나쁜 놈 맞아. 하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까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마리는 나와 함께하는 삶을 좋아하지 않았어. 마리가 떠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냥 보내줬다. 그리고 너도 보내줄 거다. 하지만 내가 마리를 억지로 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은 너도 알아둘 필요가 있어. 결코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그런 거 없었어. 만약에 마리가 허락만 해줬다면 나는 평생 마리를 아껴줬을 거다. 그 후로 8년이 지나 마리가 너를 나에게 그리고 제니에게 데려오기 전까지 나는 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존과 나오미 가족의 첫 만남


나오미에게는 와이엇, 윌, 웨브라는 남자 형제들이 있었는데 존이 바라보는 메이네 가족은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존이 나오미 가족들을 만나고 있을 때, 나오미가 갈색 종이 꾸러미를 들며 다가왔다.

존은 다가오는 나오미에게 자연스레 "메이 아가씨."라 불렀는데 웨브는 이렇게 정정했다.

"누나 이름은 콜드웰 부인이에요, 라우리 씨."



나오미의 이야기


미주리 강의 강물은 웨브의 머릭카락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다.

마구용품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최고 품종의 노새를 판매한다는 라우리씨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미주리 강을 왜 빅 머디라 부르는 건지 물었다.

"강바닥이 모래로 덮여 있는데 그 모래들이 계속해서 이동하고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수면 아래에 물길이 계속 새로 만들어진단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면서 강물을 흙탕물로 만들어 놓지. 그 물에 한 번 빠졌다가는 나오는 데 고생 좀 하게 될 거다."

나오미가 온 일리노이 주가 미주리 주와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인트조지프에는 고요함과 탁 트인 땅이 없으니 기대 이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카운슬 블러프스에서 강을 건너 오리건 준주까지 갈 생각을 했지만 카운슬 블러프스는 싸움을 벌이는 곳에 지나지 않아 남쪽으로 출발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세인트조에는 마구점과 증기선 그리고 노새들이 있다고 했는데…… 온종일 존 라우리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사실 서부로 가는 것은 나오미의 목표가 아니었다. 대니얼의 꿈이었다.

결혼한 지 세 달이 지나고 열아홉 생일이 며칠 안 남던 날 대니얼은 갑작스레 병에 걸려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죽었을 때 임신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극심한 통증과 함께 피가 흘러 나오자 괜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미는 과부인 동시에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았다.

1년이 흘러 나오미는 대니얼을 묻기로 했다.

콜드웰 부부는 대니얼이 없어도 엄연히 콜드웰 가의 일원이라 했지만 나오미는 대니얼이 없으니 영속되어 있다는 의무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콜드웰 부부에게 자신의 가족들과 서부로 갈 계획이라고 말하자 콜드웰 씨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나오미는 간단하게 말했다. "저희 어머니께 제가 필요해요."

콜드웰 부부에게는 딸 루시는 물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담 하인스 그리고 열여섯 살 아들인 젭도 함께 할 것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대니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콜드웰씨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주니 콜드웰 씨는 대니얼의 죽음으로 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인 것 마냥 행동했다.

무엇보다 중년의 시기는 살아보지 않고 노년으로 접어든 것마냥 과부 콜드웰이라 부르는 게 더더욱 싫었다.


붙임성 좋아보이는 그랜트 애벗이 존의 엄마 제니가 자신의 여동생이라 소개하며 존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오미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존 라우리 씨와 분명히 닮은 구석이 있긴 했지만 이국적인 생김새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피부는 태양에 그을린 색이었고 머리카락도 블랙커피 색깔이었는데.




여정의 시작


여정을 위해 총 마흔 가족이 그랜트 애벗과 계약을 맺었다.

막힘없이 나아갈 것 같은 여정은 말그대로 느릿느릿, 단조로웠다.

봄 야생화들이 습지대에서 빼꼼거리며 있고 강과 개울이 곳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느리게 이동하는 건지 쉼 없는 덜컹거림 때문에 잠이 들어버린 사람들이 자기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나름 요령도 생기긴 했지만 지루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정은 시작되었다.




관계의 전환


나오미는 엄마에게 세인트조지프의 거리에서 존 라우리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놀란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했지만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엄마가 라우리에 대한 꿈을 꿨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만…… 그 사람이 너에게 잡혀줄지는 엄마도 모르겠구나. 그 사람은 불신과 부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인내심이 필요할 거야, 나오미. 인내심과 이해심이. 그리고 네가 그 둘 중 하나라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이 우리 곁에 오랫동안 있어 줄지는 모르겠구나."

매번 공책에 글을 쓰고 있다는 말로 포문을 연 존은 마음과 다르게 나오미에게 툴툴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오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좋은 대화를 좋아해요. 관심이 가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요. 당신은 관심이 가는 사람이에요. 당신과 이양기를 더 자주 나누고 싶어요."

"내가 입 다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말 때문에 곤경에 처할 거라고 아빠가 그러셨어요. 존 라우리 당신 생각에도 내가 문제인 것 같나요?"

존은 제니 생각이 번뜩 나 나오미에게 존 라우리라 부르지 말라 했다.

그러자 나오미는 답했다.

"그럼 나는 당신을 존이라고 부르고, 당신은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는 건 어때요?"




가을, 겨울 그리고 여정


여정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나오미의 엄마가 아이를 출산하였고 W로 시작해야만 하는 아기 이름은 울프로 결정 났다.

인물들의 갈등은 물론 콜레라도 행렬을 한 번 덮쳤었고 원주민 또한 큰 사건을 안겨다 준다.

그저 앞으로 나아 가면 아무 일 없을 것 같던 여정, 그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나오미.

스무 살에 과부가 될 것이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자신의 꿈은 아니었지만 대니얼의 꿈이었던 서부로 가족과 함께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백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존.

그는 그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참 외로운 존재이다.

그렇게 나오미도 존도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2천 마일에 달하는 오리건 트레일의 삶은 매우 힘들고 가혹하기만 하다.


우리는 밤에도 달빛에 의지해 빠르게 전진했고, 다음날 토마스 강에 도착했다. 우리는 수면과 풀 그리고 모기가 둥둥 떠 있지 않은 물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우리는 베어 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 중이었고, 계곡에는 초록 풀들이 무성했지만 벌레들이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토마스 강을 지나자마자 메뚜기떼의 습격이 시작됐다. 우리는 머리 위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메뚜기들이 달라붙으면 소리를 꺅꺅 지르고 옷을 때려가며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 생존을 위한 투쟁이 있었으며, 길을 찾아내기 위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결말을 살짝만 언급하자면, 모두가 그 땅에 도착할 순 없었다.

또한 앞서 설명했던 존이 두 발이란 별명을 가진 사실도 염두해두고 읽어야 한다. 나오미의 동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참고로 저자 남편 조상인 존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글의 흐름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시작한 여정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 투쟁 그리고 용기와 희망까지!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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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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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 혼자라는 것.

이 말들은 의미만 비슷할 뿐 결은 분명 다르다.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이다.

특히 글을 쓰던 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게 되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의 무게를 견디는 동시에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혼자였던 순간을 끄집어내야 했던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사람, 고독 앞에 담대해지고 싶은 사람, 은밀하게 고독을 갈구하는 사람, 모두 환영한다!


저자, 에이미 션은 《브루클린의 인어The Mermaid of Brooklyn》, 《바다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How Far Is the Ocean from Here》, 《보이지 않는 도시Unseen City》의 저자로 ‘2021년 인디펜던트 퍼블리셔 북 어워드’ 소설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미디엄Medium》에서 시니어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슬레이트》, 《리터러리 허브》 등에 작품이 게재되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루클린에서 두 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저자, 줌파 라히리는 1967년 영국 런던 출생.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해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구겐하임재단 장학금을 받았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해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2년 미국문예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발표해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저자, 레나 던햄은 작가, 감독, 배우,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제작사 ‘굿 씽 고잉’을 설립하고 영화, 텔레비전, 극장,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BO의 인기 시리즈 〈걸스Girls〉의 배우이면서 동시에 HBO와 BBC가 제작한 〈인더스트리Industry〉와 HBO가 제작한 〈캠핑Camping〉과 같은 쇼 프로그램에서 작가, 제작자,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보그》,《하퍼스 매거진》,《뉴욕 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The Woman who walked alone _Amy Shearn


그녀의 여정은 혼자였다.

뉴욕에 살던 동유럽계 이민자 릴리언 올링은 이유 없이 뉴욕을 떠나 시베리아에 걸어서 가기로 마음 먹는다.

또한 동유럽에서 추방당한 후 시베리아에 있는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난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여행에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을 표했지만 릴리언은 모든 관심을 거절했다.

릴리언은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 해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언제나 혼자 걸었다.


일을 마치고 가는 길, 릴리언 올링에 대한 팟캐스트를 듣고 있던 저자는 새삼 그녀의 여정에 대해 감탄했다.

학교 다니는 아이 둘을 둔 워킹맘으로서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만 먹어선 실행시킬 순 없는 거니깐.

하늘과 땅을 벗 삼아 고요히 머물 수 있는 곳을 갈망해 온 저자는 릴리언과 같은 여정을 떠나면 춥고 배고프더라도 이러한 일 자체가 용기를 주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로지 혼자 머물며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 내고 싶다는 생각,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우는 대신 반대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싶다는 생각, 198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낯선 통근자들 무리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대신 고독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유콘강의 시원한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무엇때문에 나는 이토록 외로움을 갈망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그리워해야 하는 것인가?

절대로 혼자 있을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외로움을 만끽할 수가 있겠는가?


모험을 찾아다니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던 저자는 여행을 다니며 일기를 썼던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살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목적의식 없이 향에 이끌려 방향을 바꾸기도 했던 그 모든 여정들을 떠올리니 어떻게 하면 언제나 혼자 지내던 시절의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녀는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잠들면 곧장 침대로 가 여행 다니는 동안 썼던 일기를 정독했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 크나큰 틈에 대해, 군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외로운 섬처럼 느끼는 감정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로 가득한 동시에 외로움이 느껴지니 고독, 긴 여정 그리고 혼자 걷기를 택한 릴리언은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무엇이 그토록 불행하다고 느껴지고 생각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답은 바로 결혼 생활이었다.

오랜 시간 일하고 밤늦게 퇴근한 남편은 주말에 주로 잠만 잤다. 이렇다 보니 접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둘만 방에 있을 때 그녀가 남편에게 질문을 던지면 남편은 TV나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답으로 일관했다.

즉, 사람과의 관계에 목이 말랐던 것이었다.

소소한 그 날의 일을 대화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 것일까.

저자는 그때부터 릴리언 올링에 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 짜증부터 내며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릴리언이 누리는 고독이 마냥 부러웠다.

결국 남편을 떠나 이사를 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저자, 이 또한 오래 걸렸지만 결혼 생활이 너무나 외로웠기에 홀로 설 수밖에 없었다.

매주 아이들이 몇 블록 떨어진 남편 집에 놀러가 있으면 저자는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도 쓰고 생각도 한다.

그녀 스스로 여유가 생기니 매사 에너지도 넘치고 아이들과 있을 때면 집중력, 인내심, 관대함까지 담아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녀는 결국 고독 속에서 답을 찾아내었다.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드디어 불행이 사라졌다.


가끔 스스로 위축되는 기분이 들 때면 '고향' 혹은 어딘지 아무 상관없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던 릴리언 올링을 떠올린다. 어쩌면 나는 바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On Witness and Respair _Jesmyn Ward


크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다정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매일 아침 아침 식사와 찻잎이 든 주전자를 준비해 주었다.

전업 남편으로서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과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었던 그는 바로 저자의 남편이다.

1월 초 저자의 가족 모두가 병이 났는데, 저자와 아이들은 독감이지만 남편은 원인불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일단은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편만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며칠 후 남편은 숨을 쉬지 못하겠다며 헐떡거렸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갔지만 그의 장기는 이미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직접 응급실로 들어간 지 15시간 만에 저자의 남편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나이 고작 33살이었다.

그녀는 타는 듯한 슬픔 속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달 후,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농담을 던지거나 위험한 팬데믹을 비웃기라도 할 때면 저자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학교도 폐쇄되고 어디에서도 휴지, 세제 등을 구매할 수 없었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은 상황은 결국 몇 주나 흐르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가 저자에게 얼굴을 비비며 아빠가 보고싶다며 꺼이꺼이 울어댔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모든 공간에 메아리치기 일쑤였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산소호흡기, 코드블루 경보음 그리고 죽어가던 남편에게 온몸을 실어 의료진이 심폐소생하는 모습들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저자는 팬데믹이 이어지는 동안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을 잘 견뎌 주길 간절히 바라며 마음속으로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주절거려야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목격자처럼 그곳에 서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거듭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사랑해. 우리 모두 당신을 사랑해. 우린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저자는 팬데믹이 확산되자 진행 중이었던 소설을 이어 쓰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녀보다 더한 슬픔을 온몸으로 겪어 낸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글쓰기라는 외로운 소명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목적도 발견해 낼 수 없었으니깐.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해 사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었는데 곧 시위로 번져 고속도로까지 점령했었다.

거리로 나서는 그들을 보며 저자는 유행병이 퍼질 대로 퍼진 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일을 결코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라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믿음이 부서져 내린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의사는 내게 말했다. 청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시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을 잃게 돼요.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되지요. 하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고 있어.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고 있어.

당신이 말한다.

사랑해.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

우린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는다.

우린 여기 있어.




우리는 평소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하지 못 한다.

왜일까? 외로운 삶은 꼭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든지간에 오롯이 혼자 되는 경험은 꼭 겪게 된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난생 처음 보는 공간에 있을 때.

무수히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되는 경험을 종종 할 수밖에 없다.


감정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쉬울 순 있지만 누군가에게 어렵기만 하다.

털어놓는 것이 어렵다보니 자연스레 꺼내드는 건 일기장이다.

기록으로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털어놓는 연습도 필요하긴 하다.

간혹 무지개가 솟아올랐는데도 지나칠 수도 있으니깐.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깐.

즉, 함께 하는 삶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

반대로 혼자인 삶 속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고.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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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6-3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표지랑 제목이 너무 좋아서 구매했는데, 22명의 작가중에 줌파 라히리 1명밖에 모르더라구요 ㅡㅡ
그래도 하나님의 글을 보니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
 



언덕에 누워


언덕에 누워 바다를 보면
빛나는 잔물결 해일 수 없지만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
뵈올 적마다 꼭 한 분이구려


_김영랑





하지 않은 죄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고 남겨둔 일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바로 그것

부드러운 말을 잊었다면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꽃을 보내지 않았다면
잠자리에 든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

형제의 길 앞에 놓인 돌을 치워주지 않았다면
힘을 주는 몇 마디 조언조차 해주지 못했다면
당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끄는 다정한 말투
그것들을 소홀히 대했다면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너무 크다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주기에는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고 남겨둔 일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바로 그것


_마가렛 생스터





혼자서


하이얀 티셔츠 차림으로
미루나무 숲길에서 온종일 서성이고 싶은 날은
깊은 산골짜기 새로 돋은 신록 속에 앉아 있어도
안개 자욱 개구리 울음소리 속에 앉아 있어도
귀로는 연신
머언 바다 물결 소리를 듣는답니다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산 너무 산 너머서
흰 구름 생겨나고 죽어가는 소리를 듣는답니다

바다에는 지금
하얀 돛폭을 세워 떠나가는
돛단배가 한 척.


_나태주




나태주

처음 사는 인생, 누구나 서툴지


"서툰 것이 인생. 부디 당신, 외로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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