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신하영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저자 신하영

딥앤와이드(Deep&WIde)

2025-01-06

에세이 > 한국에세이





- 견뎌온 순간들이 모여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따뜻한 책

-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지키고 싶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





우리는 살면서 인생의 위기를 여러 번 마주하게 됩니다.

간혹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서기도 하죠.

더군다나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기준치가 달라,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이는 결국 극복하지만 어떤 이는 쉽사리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어쩌면 참 힘든 일입니다.


이 책은 삶의 힘겨운 순간을 지나온 저자가 들려주는 위로와 공감의 기록입니다.

버티는 것조차 힘겨운 그 순간,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지 단단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합니다.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친구야, 나는 가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고 싶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아니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토마토를 베어 물고, 어딘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어. 조금 쉰다고 해서 조급함을 느끼거나 해야 할 일을 의무적으로 떠올리기도 싫어. 그냥, 가지고 있는 돈과 내가 가진 시간을 소모하며 적당히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 분명 여백이 가득할 거야. 나를 괴롭히던 강박에서 벗어났으니 말이야.



친구야, 나는 경험을 추앙하려고 해. 경험에는 실패가 없잖아. 조금 지루하지만, 온전히 세상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알고리즘 따위에 취향을 넘겨주지 않고 직접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어.



나는 우리가 더는 단면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은 넓고 마음속에 일말의 순수함이 남아 있으니 말이야. 너무나 빠른 세상에 뒤처지는 것 같다고 한탄하기보단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못한 내 나약함을 탓하자. 사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에게 기회는 다시 올 거야. 그땐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해.


우린 아직 뭐든지 할 수 있어.



괜찮지 않은 내가 묻는 안부는 가림막에 불과하다. 이 부정을 절대 전염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면서도 아등바등 사는 나를 누가 좀 알아봐 주고 다독여줬으면 싶다. 모순에 모순이 더해져 망가진 감정 상태가 무르익으면 내가 경멸스러워 코가 시릴 정도다. 그때 알았다. 예민함의 끝에 도달하면 그냥 눈물이 나오는구나. 너무 나약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구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잡념에 빠지다 늦은 새벽에 겨우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표독스러운 피로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더 이상의 방도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점심을 먹고 일하다 허공을 응시하면 빨리 감기를 하듯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책상에 있는 노트에서 예전에 적어놓은 한 명언을 발견한다.


"예민한 마음은 상처받기 쉬우나,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멀쩡했던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지면 당신은 지친 상태다. 그 사람이 미울 리 없는데 자꾸 날이 서면 당신은 나약해진 상태다. 고요한 곳에서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가볍게 목을 축여라. 편안한 곳에 앉아 부풀어오는 폐를 느끼며 호흡하는 거다. 자연이라면 더 좋다. 인간이 아닌 무해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하자.


모두가 그대로였다. 당신만 아주 잠시 변했을 뿐.



잃어버린 궤도를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려고 했던 운동, 옷 정리, 창문 열고 청소기 밀기, 읽고 싶었던 책 프롤로그를 읽거나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 하나라도 나를 위한 일을 하면 우울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하다고 미루지 말길. 그 작은 행동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버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살아간다면 결국 그 시간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작은 씨앗에서 숲이 만들어지듯 다정함도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글쎄, 또 어떠한 불행을 겪으면 염세주의자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당신에게 안부를 묻고, 양보를 하고, 진심을 다해 위로를 해준 기억이 나를 다시 깨끗이 정화해 줄 것이다.

다정함은 나를 정수하게 하는 가장 좋은 행위이자 구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온기를 지켜내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내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고,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다는 걸 안다. 허나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니 나는 이기적인 것보다 희생적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건 일부 당신의 몫도 있다. 그러니 무자비한 내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주었으면 한다. 서로의 행복이 내내 이어지는 나날을 고대하는 건 위태로우면서도 참 행복한 일이다.


오늘도 존재함에 감사하며.



사랑받을 사람은 요란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 아무런 첨가물도 없는 순수한 음식처럼,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흰색 도화지처럼 여백이 많아진다면 그 안에서도 충분히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그려낼 수 있다.



때때로 외롭고 지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사랑과 응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들고 버겁다면, 더더욱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천성적으로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조언을 받고선 달라지고 있답니다.

몇 주 전, 친구와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집에 가는 길에 카톡을 주고받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자체가 네게 괜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서툴렀다고 하니 곧장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친구란 이런 게 아니겠니? 너도 나 힘들면 들어줄 거잖아.]

그 순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제게 있음에 마음이 뭉클했었습니다.

주변의 사랑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요.

우리는 간혹 아무렇지않게 스스로를 과소평가합니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존재 자체로도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질기고 억세게



돌이켜보면 불행이 행복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 둘을 쌍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우리의 불행에 아무 관심도 없으니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서러워하지 말고 다가온 모든 운명을 끌어안아라. 그것이 체념보다 낫다. 이왕 힘들어할 거 격식 있고 우아하게 불행하는 거다. 그것이 내가 가진 잎을 다 떨어트릴지언정 뿌리만 뽑히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때가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찾아온 맑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 굳었던 몸을 펴고 크게 기지개를 켜라. 불행의 총량이 가득 찼으니 이제 깨끗한 행운이 찾아올 테다.



무엇보다 멈춰있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전하는 당신이 얼마나 멋진가. 사실, 그것만으로 된 거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용기를 가지면 지금보다 백배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빛이 난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고 나아가야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은 내면의 강함에 차곡차곡 축적될 것입니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경험담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저자는 그 시간이 결국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주었으며 버티는 것이 삶이라 하지만, 버티는 것이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과정임을 덧붙입니다.

이 책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닌, 오롯이 버텨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나를 지켜온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사실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그간 버텨내왔던 시간들이 결국 나의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혹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타인의 인정과 위로를 바라지만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내 안의 힘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가 될테니깐요.

살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끊임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외쳐보세요.

"무너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을 덮고나니, 그간의 견뎌온 순간들이 일련의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위기들이 다가오겠지만 결국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나'가 될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보듬으며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용기만 있다면, 분명 그것이 내일을 살게 할 것입니다.


버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저 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차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과도 같죠.

그때는 몰랐어도 지나고 나면 알게 됩니다.

그 시간들이 곧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오늘 정말 힘들었다면,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격려해주세요.

지금 버티고 있는 그 순간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네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 돼.

나는 네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믿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저자 피터 엘보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

2024-11-11

인문학 > 책읽기 > 글쓰기

인문학 > 교양 인문학





내가 아는 한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규칙적으로 무작정 쓰기(freewriting)를 실천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한다. 무작정 쓰기는 때로는 무의식적 글쓰기' '지껄이기' '수다 떨기' 라고도 한다. 이것은 10분 동안 그냥 쓰는 것이다. (나중에는 15분이나 20분으로 늘려도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면 안 된다. 조급해 하지 말고 그냥 써 내려가면 된다. 앞으로 되돌아가거나, 쓴 것을 지우거나, 맞춤법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거나, 어떤 단어나 생각을 써야 할지 고민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 안 된다. 쓸 단어나 맞춤법이 생각나지 않거든 그냥 물결 표시를 하거나 "생각이 안 난다"라고 쓴다. 그냥 뭔가를 적으라. 가장 쉬운 요령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생각이 꽉 막히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몇 번이고 쓴다. 아니면 마지막으로 쓴 단어를 반복해서 써도 되고 아무 단어나 써도 좋다. 단 한 가지 철칙은 '절대'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무작정 쓰기는 아무 소용없는 짓 같지만 분명한 가치가 있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글쓰기는 교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어가 의식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연필이나 타자기를 통해 지면에 옮기는 순간까지 머릿속에서 복잡한 교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것은 글을 쓸 때 '실수'에 집착하게 만든 교육 탓도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때 끊임없이 맞춤법과 문법을 의식한다.



무작정 쓰기의 요점은 쓰는 동안 교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단어를 떠올리는 일과 그 단어를 종이에 적는 일을 동시에 하는 연습이다. 규칙적으로 실천하면, 글을 쓰면서 동시에 교정을 하려는 뿌리 깊은 습관을 없앨 수 있다. 이 연습을 하면 글이 덜 막히는데, 그 이유는 단어가 더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종이는 더 많이 쓰겠지만 연필을 씹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작정 쓴 글의 통일성 있는 부분에서는, 다시 말해 당신의 정신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생명력 있는 문장이 나온 부분에서는,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이를 수 있는 수준보다 의미의 통합이 더 정교한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일을 말로 하거나 글로 쓰다 보면 다른 어느 때보다 조화롭고 명료한 문장이 나온다. 이때는 구상을 해서 한 문장씩 써 나갈 필요가 없다. 그의 마음이 부족함 없이 담기기 때문이다. 문장에 담긴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게 짜맞춰지고 온전하게 통합된다. 그의 마음이 문장에 작용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장이 그의 전체적인 자아를 통과하며 걸러졌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런 글에서는 기계적인 조작이 느껴지지 않고 기어가 변속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어가 바뀔 때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유기적이다. 그것은 마치 각 부분이 희미하게 전체를 포함하는 홀로그램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해당 문장의 의미가 모두 스며들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평소에 무작정 쓰기를 한다면 그중 많은 글들이 혹은 대부분의 글들이 공들여 쓰고 고친 것들보다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중 좋은 대목들은 우리가 갖은 수단을 써서 써낼 수 있는 글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진심으로 글 쓰는 솜씨를 늘리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매일 무작정 쓰기로 일기를 대신하는 것이다. 하루에 10분만 쓰면 된다. 하루 일을 전부 적을 필요는 없고, 그냥 그날 하루의 단상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날 하루의 단상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고,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없어도 된다. 멈추지 말고,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작정 적어보자.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마음이 내키든 그렇지 않든.



글쓰기는 말하고 싶은 내용을 언어로 옮기는 2단계 작업이 아니라, 유기적(organic)으로 발달해 가는 과정이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게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글은 점차 변화하고 진화한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는 그 내용과 어울리는 단어가 어떤 건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을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글이 끝날 거라고 예상해야 한다. 글쓴이의 의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글을 다 썼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통제력과 통일성, 자신의 생각을 파악하는 일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게 아니라 글을 다 썼을 때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발전시키고 요리하는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 글쓰기는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뭔가를 생각나게 하는 수단이다. 사실 글쓰기는 언어를 통해 현재의 생각과 느낌과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작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5-01-19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피터 엘보의 다른 책 ‘힘 있는 글쓰기‘를 잘 읽었거든요 그래서 이 저자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하나의책장 2025-02-04 20:05   좋아요 1 | URL
서곡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올해 건강하고 평안한 날들만 가득하시길..ෆ
 

오리아나는 다시 플라이 브릿지로 올라가려다가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사다리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갑판으로 떨어진다. 잠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막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잠수복을 착용한 괴한은 쇠꼬챙이인지 부지깽이인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오리아나는 괴한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녀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괴한이 휘드른 쇠꼬챙이가 머리와 목을 가격했고, 오리아나는 마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시는 동안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는 저명한 기업가 카를로 디 피에트로의 딸이다. 1984년 6월 18생인 그녀는 이복동생 스테파노보다는 아홉 살 연상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실험영화센터를 졸업한 오리아나는 학창 시절에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2005년 《RAI(이탈리아 공영방송)》에서 지역 문화계 소식을 전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뒤 줄곧 해외 특파원을 지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체첸공화국의 전쟁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명성을 떨쳤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보코 하람의 반란, 멕시코 정부가 펼친 마약과의 전쟁,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행된 참혹한 인종 학살 등을 다룬 기사를 기고해 세계 전액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밀꽃 필 무렵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이효석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밀꽃 필 무렵

저자 이효석

(주)태일소담출판사

2021-09-01

소설 > 한국소설





크리스마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아시나요?

크리스마스를 특별히 기념하고 챙기는 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레는 순간을 참 좋아합니다.

소품 몇 가지로 집을 아늑하고 따뜻하게 꾸밀 수 있으니 10월이면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꺼내 그 느낌을 만끽하곤 한답니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보는 이미 크리스마스 느낌 물씬 나는 테이블보로 바꾸었고 어제는 책상 위에 올려놓을 조그마한 트리를 꺼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머그잔과 식기들도 일부 꺼내보려고 합니다.

책상과 근접해있는 책장 한 켠은 분기별로 책들을 바꾸고 있는데, 10월을 맞아 크리스마스 동화책들로 교체했습니다.

그렇게 빼곡하게 껴있는 책들을 눈으로 감상하고 있는데 문득 소설칸에 눈길이 흘렀습니다.

가을이면 예쁘게 꽃이 피는 메밀꽃에 말이죠.

자주 회자되는 작품인 만큼 너무 잘 알려져 있어 간략하게 「메밀꽃 필 무렵」의 줄거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조 선달과 함께 충줏집으로 향하는 허 생원, 왼손잡이인 그는 숫기도 없어 여자와는 연분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충줏집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온 몸이 떨리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충줏집에 도착한 허 생원은 여자들과 농을 주고받는 동이를 보곤 괜스레 화가 치밀어 뺨을 때리게 됩니다.

이유 없이 뺨을 맞은 동이는 허 생원에게 특별히 따지지도 않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러다 동네 각다귀들로 인해 허 생원의 나귀가 날뛰게 되는데 이를 본 동이가 달려와 어떻게 다루는지 알려주게 됩니다.

나귀 소동 후에 함께 봉평 장을 떠나게 되고 허 생원은 이내 성 서방네 처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을 나눈 여자와의 추억이었죠.

함께 길에 나선 조 선달은 그와 친구가 되고서부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동이 또한 그에게 자신의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하게 되는데 문득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개울에 빠지게 됩니다.

다음 날, 허 생원은 동이에게 동이의 어머니가 있는 제천으로 가겠다고 말하는데 동이가 왼손을 채찍을 드는 것을 보곤 깜짝 놀라게 됩니다.





허 생원과 동이를 연결해 주는 것은 봉평이고 그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더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바로 왼손잡이입니다.

허 생원에게 봉평은 성 서방네 여자, 즉,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을 나누었던 곳이고 동이에게 봉평은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와 관련된 곳임을 암시하죠.

그의 소설을 보고 있자면 대부분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허 생원과 나귀가 보여주는 정서적 융합은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의 단편 중 하나인 「산」 또한 그렇습니다.

중실이 첩을 건드렸다는 누명을 쓰게 되는데 이때 갈 곳 없는 그가 향한 곳이 바로 산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자연과 하나 됨을 느끼며 그 속에서 살아가게 되죠.


저자는 식민지 시대에서 문학적 정체성을 고뇌했던 사람으로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단어들이 연관 지어 생각날 것입니다.

고향, 이방인, 생활 문화, 자연, 사회주의 등등.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단편문학이 가득한 『메밀꽃 필 무렵』은 대부분 문학 시간에 지문으로 한 번 이상은 접하는 유명한 작품이죠.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읽어보고 이후 서너 번은 더 읽어보았으니 저도 꽤 오랜만에 읽어보았습니다.

(참고로 『메밀꽃 필 무렵』은 내용은 같지만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 단편문학의 재미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권정생 작가님의 『깜둥바가지 아줌마』입니다.

「깜둥바가지 아줌마」도 물론 좋아했지만 「사슴」, 「쌀 도둑」이 저에겐 크게 와닿아 어린 시절에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려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메인인 「메밀꽃 필 무렵」도 물론 좋지만 「산」, 「들」이란 단편도 꽤 인 상깊습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곳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힐 2024-10-1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창시절 부터 <메밀꽃 필 무렵> 의 결말 이후가 궁금했어요. 과연 동이는 허생원의 친자가 맞았을까? 우연이 아니 였을까? 허생원이 봉평에서 동이 엄마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진짜로 맞다면 그들의 이후는 어떻게 될 까? 등등 망상을 하곤 했어요. 하나의 책장님 리뷰를 보니 다시금 그때의 공상이 떠오릅니다. ㅎㅎ 하나의 책장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
 
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흐르는 강물처럼

저자 셸리 리드

다산책방

2024-01-08

원제 : Go as a River

소설 > 영미소설





사람마다 인생의 속도는 제각각입니다.

누구는 꽃길일 수도 있고, 누구는 자갈밭일 수도 있죠.

그렇게 인생길을 걷다가 간혹 주춤거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운명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까맣고 꾀죄죄한 한 이방인이 소녀에게 길을 물었봅니다.

소녀와 이방인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녀는 그가 상냥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낯선 이가 하던 말을 멈추고 빙긋 웃어주자마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으니깐요.


어머니를 일찍이 여읜 탓에 끌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그녀였는데, 이방인과의 모든 순간들은 그저 끌림의 연속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서로의 애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지라 서로가 사랑했는지를 알 순 없었지만 열 두 살에 마주했던 그 사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캐니언 시티로 복숭아 배달을 나갔던 어머니, 캘러머스 오빠, 비비언 이모가 집에 오질 않았는데 그들 대신 보안관 아저씨가 집으로 급하게 오게 됩니다.

그리곤 보안관 라일 아저씨가 무슨 말을 꺼내자 아버지는 빗물이 고인 진흙탕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남동생, 이모부 사이에서 빅토리아는 의지할 곳 없이 자라게 되지요.


"윌이야." 내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그가 내 말을 가로챘다. "윌슨 문."

그는 자기 이름이 내 귓가에 감돌도록 잠시 기다리고는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빅토리아 양."


​의지할 곳 없이 지내던 빅토리아, 그런 그녀가 이방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타인에게 관심받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17년 동안 어떻게 누군가의 관심 없이 살아오게 된 것인지 빅토리아 스스로도 놀라게 됩니다.





"야!"

"저 새끼 누구냐?"


빅토리아가 윌과 함께 말을 주고 받던 그 때, 익숙한 목소리라 귓가를 때립니다.

바로 한 살 터울의 남동생, 세스였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자신과 남동생에게 한껏 사무적인 태도로 취하는 아버지보다 더 골치아픈 존재입니다.

평소처럼 길거리 한복판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한껏 폭력성을 드러내는 세스, 빅토리아와 함께 있는 윌에게 막말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빅토리아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더 이상 꾸며낼 거짓말도 없는 데다 밀리 아주머니의 따뜻함에 지나치게 위안을 받은 나머지 어리석게도 속내를 털어놓고 말죠.

"혹시 여기에 윌슨 문이라는 남자애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수줍은 마음을 애써 감추며 처음 뱉어보는 그의 이름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그녀의 말에 순식간에 변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니 아차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인전 남자애 말이니?"

(*Injun :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후 한바탕 소동이 생겨 목발을 짚게 된 빅토리아가 여인숙의 밀리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윌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밀리 아주머니의 반응을 보자마자 그녀는 곧장 과수원의 일꾼이 필요하다고 둘러댑니다.

사실 윌의 혈통보다 걱정스러웠던 건 그가 이미 마을에서 떠나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빅토리아는 아버지, 이모부, 세스 그리고 데이비스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됩니다.

윌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윌에 대한 온갖 험한 말들이 오갔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데이비스는 윌을 쫓고 있었던 것이죠.

다음 날, 아빠, 세스를 도와 배달을 나간 그녀는 윌을 잡는다는 수배 전단을 보게 됩니다.

현상금까지 붙어있던 그 전단이 세스의 눈에도 포착되죠.

배달을 마친 후, 복숭아 노점에 가서 일손을 보태라는 아버지의 말에 빅토리아는 노점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윌슨 문과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식사를 마치고 부엌을 나서려는 아빠에게 다시 노점으로 나가 마감을 도와주고 오겠다고 얘기를 꺼내는 빅토리아.

그녀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빠는 대충 대꾸해줍니다.

그 순간은 빅토리아가 아빠에게 생전 처음 하는 거짓말이자 윌슨 문의 품에 다시 한번 안기기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습니다.


루비앨리스 에이커의 집에 있던 윌과 다시 재회하게 된 빅토리아,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 그날 오후 미루나무에서 다시 만나 긴 포옹을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은 결국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말들로 둘러대고 윌과의 시간을 보내는 빅토리아는 그와 사랑도 나누게 됩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자유에 순종적이고 소심한 소녀에서 스스로 결정내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이 된 기분이 들게되죠.


윌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다 한들 세스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어디로 간들 세스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려는 사람이 없겠는가?

윌은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세스가 언제부터 미행한 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둘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버드나무 숲에서 윌이 빅토리아의 손을 붙잡고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윌은 그렇게 사라지게 됩니다.

빅토리아는 윌이 아닌 암흑 속에 나타난 세스를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현상금보다 더 좋은 걸 건졌어, 누나."

"더 큰 걸 건졌고말고."

"응, 더 크고 좋은 거지."


짐작하듯이, 세스는 윌을 당국에 넘기지도, 마을 밖으로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불을 켜면 눈앞에 피 묻은 세스의 손이 나타날 게 틀림없었기에 빅토리아는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복도를 지나 침대로 기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1월 말의 어느 날 아침, 빅토리아는 슈퍼마켓 구석에서 한 대화를 듣게 됩니다.


시체를. 블랙 캐니언 바닥에서. 그 인전 놈. 피부가 거의 벗겨진 채로. 차 뒤에 있었다나. 던져졌대.


사랑 그리고 슬픔과 죄책감같은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빅토리아를 짓눌렀습니다.

무고한 소년을 포용하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잔인했습니다.

떠날 수 있었지만 그녀를 사랑했기에 윌이 선택했던 이곳은 결국 그의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를 떠나게 했다는 죄책감을 마냥 안고 갈 순 없었습니다.

그녀 안에는 아주 작은 태아가 자라고 있었죠.

몸이 무겁고 피곤한 줄 알았는데, 배가 동그랗게 부르고 안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인해 빅토리아는 그제야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만삭에 접어들어 두꺼운 옷으로도 커버할수 없게 되자 빅토리아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결국 가출을 택하게 됩니다.

그렇게 5월이 지나 6월이 되었고 빅토리아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을 하게 되죠.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몇 차례의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애벌레는 마지막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됩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 후 허물을 벗은 번데기는 나비가 되는데, 이 과정이 빅토리아와 꼭 닮았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그녀의 삶을 보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대입하게 되는데, 시대 혹은 나라가 달라도 주인공의 삶에서 자기 삶의 편린을 발견할 수 있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굳센 회복력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결국 주어진 것은 '결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도처에 장애물들이 즐비해 있지만, 그저 살아가면 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