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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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여자.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동경에서 태어나 미국 델라웨어 대학을 졸업하고 『409래드클리프』로 페미나 상을 수상하게 된다.여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로 불린다.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남편이 시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를 버렸다. 그리고 둘의 다툼이 시작된다.

어느 날, 야요이는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다.

학생 시절, 홈스테이를 하던 집의 딸이 일본에 놀러온다는 소식에 유급휴가를 받았다.

두 살이던 아이가 벌써 열아홉 살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는 야요이였다.

남편도 있는 야요이였기에 불편한 감정도 있었지만, 홈스테이하고 있을 당시에 2년이나 머물게 해주었으니 거절할 순 없었다.

남편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을테고, 그 기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야요이는 때로 남편을 무서워한다. 그럴 때면 되뇌이는 말이 있다.

괜찮아, 이겨낼 수 있겠지 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잖아.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기고.



생쥐 마누라


백화점을 좋아하는 미요코는 혼자 쇼핑할 때면 남편과 아들 것만 산다.

효율은 말할 것 없이 늘 일정한 방식으로 쇼핑을 한다. 예를 들면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가지 않는다거나 쓸데없는 것에 정신을 팔지 않거나 등등.

이렇게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허튼 행동은 일체 삼가하면서 쇼핑을 즐긴다.

남편인 다다유키는 그런 그녀를 '생쥐 마누라'라고 부른다.

말그대로 바지런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들과 딸도 아빠 흉내를 내며 '생쥐 엄마'라 부르기도 하는데 미요코는 일종의 명예라 생각하며 별명에 퍽 만족한다.


「생쥐 마누라」를 읽고나면 과연 미요코는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의문점이 들 것이다.

그녀는 불평, 불만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미요코의 모습을 보면 답답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는 개인의 차이겠지만 어떤 독자들은 그저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떤 독자들은 고구마를 잔뜩 먹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총 열두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 단편의 주소재는 바로 '사랑'이다. 여기에 부제를 넣자면 '소통'일 수도 있겠다.

결국, 여자 입장에서 느끼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역자한 김 난주 또한 이 책을 작업한 뒤 이렇게 표현한다.

그 여자들에게 사랑과 결혼은 이미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도 자신의 전 존재를 보듬어 주는 따뜻한 울타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가갈수록 멀어지기에 끊임없이 희구해야 하는 꿈이며 또 영원히 사로잡을 수 없기에 허허로운 절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불꽃이 제 몸을 불살라 언젠가는 싸늘한 재로 변하듯, 타오르는 사랑이란 스치고 지나가는 열병 같은 것일 뿐, 사랑의 끝에는 언제든 고독한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는 비극적 진실에 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시작으로 저자의 작품을 거의 읽어본 듯하다.

이 책 또한 사실은 재독한 책인지라, 이전 리뷰와 크게 다를 게 없어 중복된 내용들은 일부 생략했다.

저자의 작품을 읽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아, 이 주제를 굉장히 냉철하게 표현했구나!

아, 이 주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또한,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질거라 생각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고나면 글과 관련된 소재에 관해 굉장히 냉철하게 다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의 작품을 거의 봐온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작품은 아마 30대 후반은 되어야 더 와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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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5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알라딘 우주점 가면 구경하는 ˝에쿠니 가오리˝ 책들. 이건 제목만 봤었는데 읽고 싶네요. 저도 처음 읽은 책이 <냉정과 열정사이> 인데, 제일 좋아하는 책은 <도쿄타워> ㅎㅎ

하나의책장 2021-06-14 08:46   좋아요 1 | URL
저도 [도쿄타워]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에쿠니 가오리 책들은 작가님의 특유한 감성이 글에 실려 있어서 글만 읽어도 아,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구나를 짐작케 해주는 것 같아요ㅎ 새파랑님, 행복한 한 주 되세요🌼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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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책장 한 켠을 그에게 내주었다.

『오베라는 남자』가 출간되고서부터 그의 작품을 안 읽은 것이 없다.

에디션별로 전부 소장하고 있을 뿐더러, 그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으니 내 책장의 한 켠은 배크만에게 내주었을 정도이다.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의 한 블로거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초대형 작가가 되었다.

데뷔작이자 첫 장편소설인 『오베라는 남자』는 그의 블로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오베’라는 캐릭터에 반해 이야기를 더 써볼 것을 권했고, 그렇게 『오베라는 남자』가 탄생했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2012년 이 소설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출간 즉시 굉장한 인기를 모았고, 인구 9백만의 스웨덴에서 84만 부 이상, 전 세계 28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미국 아마존 소설 분야 1위를 기록하며 77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지켰고,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의 자리에 올랐다. 44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며 독일,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2016년에 영화화되어 스웨덴 영화제에서 다양한 부문의 상을 휩쓸고, 유럽영화상 코미디 부문을 수상했으며, 톰 행크스 주연으로 할리우드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

뒤이어 출간한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적인 초대형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완전히 달라진 스타일의 작품 『베어타운』으로 돌아온 배크만은 이 소설로 “『오베라는 남자』를 뛰어넘었다” “이 시대의 디킨스다”라는 언론의 열광적인 찬사와 함께 아마존 올해의 책 Top 3, 굿리즈 올해의 소설 Top 2에 오르며 또 한번 커다란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 뒤를 잇는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 역시 아마존, 굿리즈 올해의 책에 오르며 매번 자신의 정점을 찍는 작가의 성장세를 증명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과 『일생일대의 거래』는 사랑하는 가족과 나누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그린,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두 따뜻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인생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독자의 마음을 깊이 울리고 있다.

최신작 『불안한 사람들』은 배크만이 『우리와 당신들』 이후 3년 만에 집필한 장편소설로, 그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부응하듯 2020년 아마존, 굿리즈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특히 총 25만 개가 넘는 평점과 웃음과 눈물이 황금비율로 녹아든 필력은 배크만 소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인질극, 은행 강도 그리고 하우스 트릭스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무장 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돈을 요구했지만, 하필 현금이 없는 은행을 급습했기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삐뽀삐뽀, 사이렌 소리에 허둥지둥 당황하던 강도는 무작정 도망치다 한 건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곳은 오픈하우스였고 오픈하우스를 방문하고 있던 고객들을 인질로 잡게 된다.


사실 은행 강도가 항복했을 때 모든 인질-부동산 중개업자와 잠재 고객 전원-이 동시에 풀려났다.

그렇다. 앞서 인질로 잡혀 있던 고객들을 구출하려 진입했을 때, 이미 인질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인질 중 한 명이 은행 강도의 도주를 도왔다던가 혹은 은행 강도가 아예 도주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목격자 진술서


야크: …… 은행 강도의 첫인상이 어떻던가요?

런던: 좋아요. '은행 강도'가 완전 덜떨어진 인간 같아 보였다는 게 내가 느낀 '첫인상'이에요.


야크: …… 어떤 근거로 은행 강도가 덜떨어졌다는 인상을 받으셨나요?

런던: "6천5백 크로나 내놔!"라고 쓴 쪽지를 주더라고요. 6천5백을 훔치려고 은행을 털다니 도대체 뭐예요? 천만, 뭐 이 정도는 노리고 은행을 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원하는 금액이 정확히 6천5백이라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사라: 이러다 날밤 새우겠네.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내가 그냥 간단하게 요약해줄게요. 총을 든 정신병자가 나랑 나보다 못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반나절 동안 붙잡아놓는 동안 경관님과 그 동료들은 건물을 에워쌌고, 모든 상황이 텔레비전으로 중개됐는데도 경관님은 은행 강도를 놓쳤어요. 지금 나가서 앞서 언급한 그 은행 강도부터 먼저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자음이 세 개 이상 들어가는 성을 본 적이 없어서 여기 이렇게 앉아 진땀을 흘리고 계시네요. 내가 경관님의 상사한테 성냥을 쥐여준다 한들 내 세금을 이보다 더 빨리 날려 버리지는 못할 거예요.


야크: 율리아하고 로요?

안나레나: 네!

야크: 그 두 사람은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안나레나: 그럼요. 그런 사람들은 거기서 살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집을 보러 와요. 거기서 살기만 하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속에 얹힌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덜 싸울 거라고. 맨 처음 결혼했을 때, 그러지 않고는 못 배겼던 그때처럼 서로 손을 자주 만지작거릴 거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야크: …… 범인이 아직 아파트 안에 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어서요.

……

로게르: 여기요. 두드려보면 알 수 있어요. 빈 공간을.

야크: 그 사이가 왜 비어 있을까요?

로게르: 예전에, 이 동네 사람들이 돈이 많고 아파트는 더 저렴했던 시절에는 이 집과 옆집이 한 집이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요즘은 부동산 시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내지 못해 안달이 났죠. 그건 부동산 업체들의 잘못이에요. 그리고 은행.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온 사람들. 가격을 올려놓고 온갖 짓을 서슴지 않아요. 왜 그렇게 눈을 굴려요?

야크: 죄송합니다. …… 하지만 선생님과 부인께서도 최근 몇 년 새 투기의 일환으로 아파트 몇 채를 사고팔지 않으셨나요? 그것도 가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을 텐데요.


로게르: 바보들이었으니까요.

야크: 그러고는 그 사이에 공간을 남겼다?

로게르: 그렇죠.

야크: 그러니까 범인이 벽 속으로 사라졌을지 모른다는 겁니까? 사이즈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율스: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피자를 먹었어요. 그게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야크: 감사합니다! 그때 아파트 안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율스: 저희 둘. 에스텔. 사라. 레나르트. 안나레나와 로게르. 은행 강도.

야크: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도 있었고요?

율스: 당연하죠.


야크: 인질극을 벌인 범인이 인질을 석방하기 전에 폭죽을 요구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돈을 요구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죠.

레나르트: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애초에 인질극을 벌이지 않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죠.

야크: 그럴지도 모르지만 폭죽이라니 좀 특이하지 않은가요? 범인이 인질을 석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요구한 게 그거라니.

레나르트: 글쎄요. 새해잖아요. 그리고 폭죽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요, 아닌가요?



진실은 무엇일까?


봄이 온다. 봄은 어떻게든 우리를 찾아오고야 만다. 바람이 겨울을 쫓아내고 나무는 바스락거리며 새들은 조잘대기 시작하고 몇 달 동안 눈이 모든 메아리를 삼켜버렸던 곳을 대자연이 귀청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벼락같이 쓸고 지나간다.


날이 밝으면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듯이, 결국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배크만의 애독자들이 많은 탓인지, 『불안한 사람들』의 리뷰가 많아 줄거리는 생략하고 중요한 부분만 흔적을 살짝 남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 말미에 나와있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이었다.

『불안한 사람들』에서 등장한 인물들을 보며 자연스레 여럿이 떠올랐다.

현실에서의 야크와 짐, 사라, 안나레나, 로와 율리아, 로게르, 레나르트, 에스텔, 나디아, 부동산 중개업자 그리고 은행 강도.

아! 책을 읽기에 앞서, 등장인물란이 먼저 소개되는데 꼭 등장인물란을 자세히 살펴보고 책 속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각 인물들의 특성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잘 생각하며 이야기를 따라나가야만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왜 제목이 「불안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 몇 개가 떠올랐는데, 왜 떠올랐는지에 대해 말해보겠다.

권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물론 잘못되었다. 이 과정에서 애먼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왜 인질로 붙잡혀있던 사람들이 은행 강도를 옹호 아닌 옹호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게, (은행강도 시점에서) 그 누구도 손 잡아주지 않으려 했고 그나마 있는 것마저 빼앗길 판이었다.

사람이 극한에 내몰리게 되면 순간적인 판단 미스로 되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은행강도가 이에 속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첫 작품을 시작으로 그가 출간한 책 중 안 읽어본 책이 없다.

그의 작품의 애정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방향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간간히 읽고 또 읽는 게 그의 작품인데, 그렇게 읽을 때면 언제쯤 나도 배크만처럼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연결 지어지는데, 내 주변에도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라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레 연관되는 건 웃어야 하는 건지, 씁쓸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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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계, 가을을 노래하다 당시 사계
삼호고전연구회 옮김 / 수류화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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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렇게 한 계절이 찾아오면 그 시기에 맞는 시들이 절로 떠오른다.

봄과 여름에 이어, 마지막으로 '가을'을 읽었다.


『당시 사계 봄을 노래하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13764404

『당시 사계 여름을 노래하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19675671


저자, 강민우, 권민균, 김자림, 서진희, 차영익은 삼호고전연구회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2010년부터 중국 고전을 현대인의 독법에 맞게 번역하고 그 의미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궁정의 가을 저녁 秋夕 _두목 杜牧


은촛대에 서린 가을빛 차갑게 병풍을 비추는데

수놓은 비단부채로 날아드는 반딧불이 공연히 내쫓네.

밤새 궁궐 계단 물처럼 싸늘한데

하릴없이 누워 견우직녀성 바라보네.


銀燭秋光冷畵屛, 輕羅小扇扑流螢.

天階夜色凉如水, 臥看牽牛織女星.



실의에 빠진 궁녀의 쓸쓸함과 처량함이 시에 잘 묻어나있다.

대개 한자의 뜻을 새겨보며 내용을 파악하곤 하는데 책에도 나와있듯이 워낙 시가 함축적인지라 의미 파악이 쉽지는 않았다.

이 시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반딧불이'와 '부채'를 염두해두고 읽으면 된다.

반딧불이가 스산하고 서늘한 곳에 산다는 전제하에 옛 사람들은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난다고 믿었다.

즉, 반딧불이에서 궁녀의 처량한 처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계절적으로, 부채는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여름에는 쓸모있지만 가을이 되면 쓸모없어진다.

즉, 여기서 궁녀를 부채로 비유한 것으로 볼 때, 조만간 버려질 운명에 놓였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실의에 바진 궁녀에게 있어서 견우직녀성은 희망의 끈으로 엿볼 수 있다.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輕羅小扇扑流螢 (경라소선박류형).

天階夜色凉如水 (천계야색양여수), 臥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두번천이라고도 불린 두목은, 경전과 역사서에 두로 통하였으며 특히 왕조의 치란과 군사 연구에 전념했다.

7언절구로 유명한 그의 시는 역사사실을 통해 개인의 서정을 읊은 영사시가 주를 이룬다.

재기발랄하고 호방하며 만당의 쇠운을 만회하려는 마음을 시로 담아내어, 만당시기에 성취가 높은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가을날 장안으로 가면서 동관역루에 짓다 秋日赴闕題潼關驛樓 _허혼 許渾


붉은 단풍잎 저녁에 쏴쏴 바람에 나부끼는데

장정에서 한 잔 술 마시네.

구름은 태화산으로 힘없이 돌아가고

저녁 비는 중조산을 잠시 지나가네.

나무들은 아득히 산을 따라 검푸르고

강물은 멀리 바다를 향해 고요해지네.

장안성 내일이면 도착하는데

여전히 어부와 초부의 꿈을 꾸네.


紅葉晚蕭蕭, 長亭酒一瓢. 殘雲歸太華, 疏雨過中條.

樹色隨山迥, 河聲入海遙. 帝鄕明日到, 猶自夢漁樵.


여행길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가을에 느끼는 정취가 잘 묻어나는 시이다.

1·2구의 경물에는 시인의 슬프고 처량한 감정이, 3·4구는 걷히는 구름 그리고 잠시 내리는 비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

5·6구는 높은 곳에 서서 관산을 따라 붉은 산 빛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시각으로, 황하가 발해로 흘러가는 것을 청각으로 표현했다.

7·8구에서는 장안여행이 명리를 추구해서 가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으로 시는 마무리된다.

'水'나 '雨'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습하다千首濕는 평을 받긴 해도, 늦가을 가랑비에 젖은 붉은 낙엽은 가을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간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紅葉晚蕭蕭 (홍엽만소소), 長亭酒一瓢 (장정주일표). 殘雲歸太華 (잔운귀태화), 疏雨過中條 (소우과중조).

樹色隨山迥 (수색수산형), 河聲入海遙 (하성입해요). 帝鄕明日到(제향명일도), 猶自夢漁樵(유자몽어초).


허혼은 만당시기에 영향력이 가장 큰 시인 중 한 명으로, 평생 율시만 지었다고 전해진다.

(율시란, 8개의 구절과 4개의 운으로 된 근체시의 한 형식이다.)

옛 일을 회고하거나 전원을 제재로 한 시를 많이 지었는데 특히 높은 곳에 올라 옛일을 회고하는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한적한 노년을 보내며 【정묘집】을 지었다고 하니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봄, 여름에 이어 드디어 가을까지 「당시 사계」 시리즈를 마무리하였다.

이전에 읽은 봄, 여름과는 달리 시에 함축된 의미가 많아 개인적으로 가을이 조금 어렵긴 했다.

그래도 당시만 다룬 시집을 계절별로 읽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 큰 의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옛사람들이 남긴 문학작품은 물론 유적지나 유산들을 볼 때 항상 느낀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똑똑했던 것인가!

환경도 지금보다 여의치 않았을텐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당시 사계」 시리즈는 순수하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당시를 접해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시'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추천하고 싶다.


읽은 책이 많은 만큼 올리고 싶은 도서리뷰도 많은데, 책상 한 번 앉기가 힘들다.

어제처럼 하루를 다 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오늘도 하루를 온전히 버릴 수는 없어 벌써 느즈막한 오후가 되었지만 채색하다 만 그림부터 빠르게 마무리하고 공부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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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함께 읽었을 뿐인데 -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성장하는 기적의 책 읽기
손경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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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함께 읽었을 뿐인데』는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진정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독서모임에 대해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낸 에세이다.


저자, 손경아는 고양이 한 마리, 커피 한 잔, 잔잔한 음악 그리고 책만 있으면 세상 행복한 사람이다.




퇴비 뿌리기 그리고 밭 갈기 (부제: 독서모임을 해야 하나요?)


"책 좋지! 그런데 이렇게 바쁘고 피곤한데 도통 짬이 나야 책을 읽든 말든 하지 않겠어?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읽는 거지!"

"책 읽기가 좋은 건 알겠는데, 책을 읽는다고 당장 뭐가 달라진다든? 차라리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

"대체 글자를 만들어서 뭣에다 씁니까요? 글자를 읽어서 글을 읽고 쓰게 되면 뭐가 달라집니까요? 쌀이 나옵니까요? 밥이 나옵니까요? 이놈은 도통 모르겠습니다요." _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中


책은 당장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책은 진통제가 아닌 보약같은 것이라고. 당장 약효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 쌓이는 것이라고.

무협영화에서 보면 오랜 기간동안 끊임없이 수련하며 내공을 쌓는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로 꾸준한 책 읽기로 '내공'을 쌓는 것이다.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깔려져 있는 잔지식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책'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과를 택했고 경영을 전공했지만 IT를, 과학을, 음악을, 미술 등을 모두 '책'을 통해 배우고 습득했으니 얻을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항상 책 예찬론을 펼치며 책 선물을 자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中 돌쇠가 세종대왕에게 하는 말을 언급했었는데 이에 세종대왕이 답했다.

"네 말이 맞다. 글자를 만든다고 글자를 안다고 당장 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자를 읽고 책을 읽게 되면 쌀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예전에 소규모로 독서모임을 몇 번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굉장히 '값진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이 되면, 대부분 똑같이 하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얻어가는 게 많다."였다.

단순히 책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 그 이상으로 인생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 일부는 애서가들만 모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단 한 권이라도 읽어보려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예컨대, 소설의 끝맺음을 내지 못하는 딸이 고민을 토로하자 장항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끝맺지 못하는 이유를 아빠는 잘 알고 있어. 바로 마감기한이 없어서야."

비슷한 맥락으로 살펴보면, 이번 달에는 책 한 권 이상은 꼭 읽어야지라고 다짐하는 이들이 있다.

세 부류로 나뉜다, 한 권 이상을 읽은 사람들, 한 권만 읽은 사람들 그리고 한 권도 못 읽은 사람들.

그렇다. 한 권도 못 읽은 사람들 또한 정해진 기한이 없기에 미루고 미루면서 결국 끝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것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항상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있는데 "다 읽지 않아도 되니 읽을 수 있는 만큼만 읽어오시면 됩니다."였다.

책 읽는 것 자체를 '부담' 혹은 '짐'으로 생각하면 그 순간 독서는 재미없어지기에.

신기한 것이 있다면, 그 날의 독서모임을 끝내면 그 날 읽었던 책은 끝인데 이후에 후루룩 다 읽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놓친 부분을 읽고 싶어서, 궁금해서, P군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등등.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세 곳에서 독서모임 진행을 제의받았었는데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에 사정이 괜찮아지면 다시 소규모로 진행해볼까도 생각중이다.

'책'을 매개로 한 독서모임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쉬울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매번 예상시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책이지만 끝은 일상을 넘어 인생 이야기까지로 이어지니 끝이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간 독서에세이를 많이 접해봤지만 오롯이 '독서모임'과 관련된 에세이는 처음인 듯하다.

독서모임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이들부터 언젠가는 꼭 참여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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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20 2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저자가 하나님인줄 알았네요 영화속 제인오스틴 이런 풍경속에서 열독 하고 싶음 ㅜ.ㅜ

하나의책장 2021-06-02 16:00   좋아요 2 | URL
앗, 제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나요?ㅎㅎ 저도요! 뭔가 노을지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느낌 속에서 티 한 잔씩 하며 열독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1-05-21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독서모임 관련 에세이도 있네요. 독서모임을 해본적이 없어서 책의 내용이 궁금하네요. 저 사진이 제인오스틴인가 보네요? 와 제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딱 맞는거 같아요~!

하나의책장 2021-06-02 16:02   좋아요 1 | URL
영화 속에서 제인 오스틴 역을 맡았던 앤 해서웨이예요❣ 착각될 만큼 잘 어울리죠? 전 대학교 다니면서 꽤 해봤었는데 근래는 해본 적이 없어 부끄러움에 말도 잘 못 꺼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강아지똥 (25주년 특별판) 민들레 그림책 1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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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책 한 권씩 들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져간 첫 책이 바로 권정생 작가님의 책이었다. 작가님의 글에는 잔잔한 슬픔과 감동이 있어 매번 읽는 내내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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