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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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를 찾아 역사를 걷는다.

한반도를 걷는다.

한국인의 혼을 걷는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님, K-POP, BTS 그리고 오징어 게임 - 전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각인시켰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을 때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명소도 좋지만,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 몇 군데는 제대로 알아둬야 하지 않을까?


저자, 최석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레저관광사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에서 유산관광을 전공하고 문화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과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관광세계화·문명화과정·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UN 여가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World Leisure Organization의 학술지『World Leisure Journal』국제편집자문위원,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World Hotel Association 부회장,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Ⅰ 남촌 대한민국길 산책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걸음씩 발로 밟아서 다진 동네다. 그래서 한양은 남촌 사람 동네고 조선은 남촌이다. 외세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빼앗는다면 되찾을 때까지 다툴 것이다. 남촌 사람들은 독립 전쟁 선봉에 선다. 되찾은 나라를 독재로 얼룩지게 한다면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남촌길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 도시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일제는 구리를 황금으로 바꾸고 동을 정으로 바꿔 중심으로 삼아 수도를 뜻하는 글자 경과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여섯 방향으로 길을 낸다.

남산 예장자락에 통감부를 짓고 남산 회현 자락에 조선신궁을 짓는다.

'신성하게 높이 솟은 울' 서울은 빼앗기고 이내 경성이 되어, 남촌은 식민통치의 수도가 되고 만다.

이후 광복을 되찾고도 1년이 지난 뒤에야 경성은 다시 서울이 된다.

덧붙이자면, 당시 서울시를 우남시로 하자는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우남시? 뜬금없이 왜 우남시가 나온 것일까? 바로 우남은 이승만의 호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서울역에는 역사가 두 개나 있다.

서울종합민자역사는 KTX개통과 함께 만들어졌고 구 서울역사는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에 지어졌다.

이때, 일제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조선 부산을 부관페리로 연결하고 부산에서 만주까지 철도를 부설한다.


서울역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일본 중앙역인 동경역으로, 경성역은 조선과 만주의 중앙역이다.

동경역사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사를 본떠 만들었는데 서울역사는 동경역사를 본뜨게 되었다.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으로 근대와 전통이 섞어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철골과 벽돌 쌓은 것은 근대적이고 돔과 첨탑은 고전적이다.

즉, 서구적 기준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열차를 탔기에 딱히 둘러볼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었다.

서울역에는 동상 하나가 있다고 한다.

바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네 남매 중 남매로 태어나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애국운동에 관여하면서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송원 중심가 남문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다른 상인들에게 돈을 꿔 주기도 하고 예컨대 이동휘 선생이 함경도를 순회할 때면 그의 집에서 종종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전해진다.

북간도 근방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이후 북만주로 이주하여 동포마을인 신흥동을 개척하여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단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광동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장을 맡아 조선인 자제를 교육하는데 전념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일제는 오히려 강우규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뒤 불어 닥칠 후폭풍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판사마저 처음에는 피고라고 부르다 선생님 또는 영감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니깐.

이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짤막한 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Ⅱ 운주사 고려길 산책


운주사 하늘에 별은 빛나고 그 아래 땅은 아름답다. 누구든 운주사에 들어가면 고려 신선이 된다. 고려 하늘을 날아 빛나는 별과 아름다운 땅을 내려다보며 노닌다. 서울에 북악 스카이웨이(하늘길)가 있다. 화순에는 고려 스카이웨이가 있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려길을 걷는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운주사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운주사는 아마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불교와 아무 관련 없는 이름이다.

운주사 앞 주차장에 내려 경내로 들어서면 일주문이 사람을 맞이한다. 희한한 것은 불이문도, 사천왕문도 없다고 한다.

본래 사찰이라면 일주문 뒤에 불이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애초에 운주사는 불교 사원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중앙정권과 지방토호 간에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빚어낸 도관(도교사원) 중 하나이다.


"운주사 : 천불산에 있다. 사찰의 오른쪽 왼쪽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가 있다. 또한 석실에 석불 두 개가 서로 등지고 앉았다." _《신증동국여지승람》


"운주사 : 천불산 서쪽에 있는데 사찰이 오래전에 폐해졌다. 그 왼쪽 오른쪽 산기슭에 석불과 석탑이 크고 작은 것이 심히 많아 이를 천불천탑이라 부르며, 또한 한 석실이 있는데 그 안에 두 개의 석불이 벽을 격하여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백성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조영한 것이라 한다. 혹은 고려 승려 혜명이 따르는 이들 수천 명으로 하여금 만들었다고 한다." _《동국여지지》




Ⅲ 강릉 조선길 산책


…… 변치 않는 것도 많다. 오죽헌·율곡기념관·선교장·경포대……. 신사임당 그림 그리던 곳이다. 율곡 선생 나신 곳이다. 허초희 시를 짓던 곳이다. 허균 젊은 시절 기억이 서린 곳이다. 효령대군 후손들이 정착한 곳이다. 강릉에서 변치 않는 것은 한결같이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모두 조선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강릉에서 걷는 길은 조선길이다.


강릉은 본래 예국 땅으로 고구려는 하서량 또는 하슬라주라고 불렀다.

신라 지증왕때, 하슬라주 군주가 된 내물왕 4대손 이사부가 꾀를 내어 우산국을 합쳤다.

우산국 사람들은 쉽게 항복받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워 계략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나무로 가짜 사자를 많이 만들었었다고 전해진다.


강릉에서 사는 사람들은 좀상날 달과 좀생이별 사이 거리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좀생이별이 달을 바짝 따라가면 흉년이 들고 떨어져서 따라가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달은 밥통이고 좀생이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뜻한다.)

"강릉 사람이 이처럼 별자리에 밝았던 것은 하늘 자손이기 때문이리라."


'강릉'하면 역시 '오죽헌'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오죽헌에서 용꿈을 태몽으로 꿨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했던 율곡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하고선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이후 21살 되던 해에 율곡은 한성시에 급제하고 다음해에 정3품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인 곡산 노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장인을 찾았다가 예안 도산서원에 들려 퇴계를 만나게 된다.

퇴계는 율곡의 사람됨과 똑똑함에 만힝 놀랐다고 한다.

"노력하고 공부하여 날로 새로워지자"라고 당부할 정도였으니깐.

율곡은 을사삭훈을 통해 왜곡된 정치를 바로잡고 개혁을 통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동서분당을 조제보합함으로써 그 폐해를 막고 변방을 튼튼하게 지켜 오랑캐가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서울시에서 친일매국 조각가 김경승이 만든 안중구 의사 동상을 철거했었다.

이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설치된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정읍시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등 김경승이 만든 동상 철거 및 교체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강릉시에서는 친일매국노가 그린 영정을 교체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율곡 선생께서 살아계신다면 친일매국 화가에게 당신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깐.




Ⅳ 경주 신라길 산책


알타이 적석목곽분으로 웅대한 역사를 말한다. 한혈마를 타고 드넓은 스텝루트를 달린다.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한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두루 잇는다. 당나라에 신라마을을 경영한다. 페르시아 사람이 춤을 춘다. 박트리아 황금비도가 빛을 발한다. 로마와 시리아 유리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경주가 아니라 신라 왕경이다. 가장 약한 나라가 아니라 삼한일통 대업을 달성한 동아시아 최강국이다. 신라는 왕도에서 세계를 경영한다. 신라에서 우리는 세계를 걷는다. 세계로 가는 신라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는 곧장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인맥을 두텁게 하여 신뢰를 쌓고 적국인 고구려로 가 친구를 사귀었다.

이후 선덕왕과 진덕왕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후에야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기간이 무려 43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문화도 군사력도 오래 갈고 닦은 것만 같았다.

로마 유리와 페르시아 유리를 응용하여 신라 유리를 만들었으니 신라황금과 합금강철은 신라가 어떤 나라인지 신라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살게 해주기도 했다.

서역 사람이 원성왕 괘릉을 지켰고 아랍 사람이 왕 앞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세계 문화인들이 함께 했던 것이다.

신라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했었다.

온 세상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경주는 세계 문화도시이며, 세계 문화도시 중에서도 최고여서 황금도시라 할 수 있겠다.

즉, 경주는 세계 문화인이 만든 황금도시이다.


대릉원은 신라 최대 무덤군으로 천마도를 발굴한 제155호 천마총과 남분 및 북분으로 쌍북을 이룬 제98호분 황남대총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던 발굴조사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는다.

일제가 천마총 꼭대기에 대공초소를 설치했었는데 1971년까지 그대로 있었기에 이를 제거하고 나니 자갈층이 드러나게 된다.

신라 고분은 고구려나 백제 고분보다 도굴이 덜 됐었다.

그렇게 파고 보니 자갈층 밑으로 굳게 다진 점토층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무덤방이 나타나게 된다.

유리구슬, 큰고리귀걸이, 작은고리귀걸이, 나비모양금관꾸미개 등을 발굴하게 되면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게 된다.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국보급 부장품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고 그렇게 끝인가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부장품 상자 안에서 나오게 된다.

아열대 고동 껍질로 만든 말띠 꾸미개, 대나무로 장식한 금동판 말다래, 코발트색 유리잔 및 녹색 유리잔, 청동 다리미 등과 함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 말다래와 새그림판을 발굴한 것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천마도'이다.

사실 금동판 말다래를 보존 처리하기 위해 뿌린 약품 때문에 하마터면 천마도를 못 볼 뻔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천마도 말다래가 두 장이어서 아래쪽에 있는 말다래 천마도를 무사히 수습했던 것이다.

제128분에서 금관이 나왔으므로 금관총, 제129호분에서 봉황으로 장식한 금관이 나왔으므로 서봉총이라 하였고 천마도가 나왔으니 제155호분은 천마총이다.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의 시원형은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북쪽 천장 천마도이다.

천마총 천마도는 갈기와 꼬리털이 수평을 이루며 날리고 있기 때문에 무용총 천마도와 가장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마치 내가 걷고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있었던가.


산책과 드라이브를 좋아해 장소 하나 딱 정해놓고 그 근방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곤 한다.

코로나 터지기 전 그 해 여름날, 엄마와 함께 강릉에 갔다왔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난 해에 강릉에 다녀온 기억이 선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맞춰 단둘이 KTX를 타고 조금 먼 산책에 나섰었다.

바다 한 번 보다가 신선한 해산물로 요기하고, 바다 한 번 보다가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하루를 꼬박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그리고 바다 내음과 함께 보냈었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말하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명소도 물론 좋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도 절대 빠뜨려선 안 된다.


그 때, 나는 여러 장소 중 가장 처음 입을 열었던 장소가 바로 '고궁'이었다.

국어, 영어, 한국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기에, 고궁 곳곳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며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다채로운 색감은 물론 미국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에 선생님이 감탄하셨던 기억이 선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것 없는 내용이라 꼭 읽어봤으면 한다.

요새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고궁 나들이는 물론 강릉과 경주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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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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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어머니가 있었기에 이순신이 있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모친 변씨는 이순신의 기둥이었고, 하늘이었다.


이순신과 관련된 위인전 한 권쯤은 누구나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마치고 이순신과 관련된 책을 읽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이순신의 모친이었던 초계 변씨의 인물을 담은 이야기이며,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의 세계에 빠져들게 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저자, 윤동한은 한국콜마(주) 회장이다. 대웅제약 부사장을 지내고, 1990년에 한국콜마를 설립하여 화장품과 제약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2014년 다산경영상(창업경영인 부문)과 국민훈장 동백장, 2018년 한국능률협회가 제정한 ‘한국의 경영자상’, 2019년 언스트앤영(EY) 최우수 기업가상을 수상하였다.

역사와 인문학을 접목한 창업 경험과 경영을 바탕으로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2016)를 출간했다. 2018년에는 목화씨를 들여온 고려인 문익점을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인으로 해석하여 이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기업가 문익점』을 출간했고, 이어서 2019년에는 역사경영에세이 두 번째 시리즈로 이순신의 곁을 지키며 임진왜란 극복을 위해 80세에도 현역으로 참전한 영웅 정걸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80세 현역 정걸 장군』을 펴냈다.




Ⅰ 이순신 그리고 그의 모친 초계 변씨


초계 변씨는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서울 건천동에서 낳았다.

지금의 충무로 근처로, 이순신이 서울 태생임을 알 수 있다.

1545년 음력 3월 8일, 양력으로 치면 4월 28일이다.


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초계 변씨와의 사이에서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을 낳았다.

서울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이순신은 어린 시절부터 그야말로 사내 대장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 인물들의 기록물을 살펴보면 이순신의 모습은 꽤 다양하게 평했지만 언제나 골목대장이었고 공부보단 전쟁놀이를 더 좋아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순신의 모친인 변씨도 자제력있고 온순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 순신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학문하는 자세도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니 과거까지 갈 수 있게 준비해야겠어. 그런데 이 아이는 얼마나 활동적인지, 아무리 봐도 외조부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무과 급제도 좋겠지. 잘 지켜봐야겠어."


모친 변씨는 둘째 요신에게 승보시를 보게끔 하려고 동학에 보내고 순신을 서당에 보냈었다.

맏아들 희신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동학을 다녔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본가를 지키고 부모를 훌륭히 봉양했던 것이 바로 맏아들 희신이었다.

모친 변씨는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잃은 아픔이 있어 남은 아들은 물론 손자까지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이 정읍 현감으로 발령났을 때도 모든 식솔을 이끌고 정읍으로 이주했을 정도였으니깐.

이렇듯 이순신이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마음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Ⅱ 모친 변씨, 이순신의 기둥으로 스승이 되다


아버지 이정은 직함은 있었으나 벼슬에 나가지는 못했었다. 2대째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니 가문이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친 변씨가 고단했던 서울살이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 아닐지 추측하고 있다.

지금도 모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것은 수도권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방이 아닌 수도권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아들들을 출세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조건에 부합한 지역이 서울이었지만 이전에 집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에 몰락한 가문이라는 평판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모친 변씨가 서울을 떠나 아산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산 시곡이 변씨 가문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을 되짚어보면, 처음부터 이순신은 무인의 핏줄이 흐르고 있음을 외가쪽에서 알아봐주었다고 한다.)

모친 변씨는 순신이 급제하고선 변방을 돌아다닐 때 꿋꿋하게 가문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덧붙여, 철저한 재무관리를 통해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고도 전해진다.

이순신의 꼼꼼하고 청렴한 그리고 독립적인 재무 능력 또한 모친 변씨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후, 둘째인 요신이 병사하고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었다. 그리곤 첫째 희신마저 사망하게 되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마저 불에 탔다고 한다.

아득한 슬픔과 어려움이 연달아 닥치는데도 그녀는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으니 현실을 순응하며 좌절하거나 부정하지도 않고 오롯이 다시 일어설 생각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독립심과 대쪽같은 성격을 그대로 받았기에, 이순신은 청렴한 공직자가 될 수 있었다.



Ⅲ 모친 변씨, 결국 이순신을 만나지 못하다


이순신이 파직당하고 의금부에 하옥되었을 당시, 모친 변씨 또한 그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기둥이었음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변명하지 않는 아들이다.

의금부에서 고문을 당해 죽으면 죽었지, 절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아들이다.

노환으로 병중에 있던 그녀는 아들의 대쪽같은 성격을 알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향한다. 그녀의 나이, 여든셋이었다.

"내가 죽고 아들이 살아야 한다면 마땅히 죽겠다."

모친 변씨는 막내인 우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뱃길에 오르게 된다.

사실 모두가 말렸었다.

음력 2, 3월에는 배를 띄우지 않는다. 바람이 제멋대로 불 뿐더러 물길도 거세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신을 향해 험난한 길을 나섰지만 법성포 앞바다를 지나면서 게바위까지 왔으나 도착 직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순신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월 11일 맑다.

새벽꿈이 매우 어지러워 다 말할 수가 없다. 덕을 불러서 대략 말하고 또 아들 울에게 이야기했다.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종을 보내어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금부도사는 온양으로 돌아갔다.


4월 12일 맑다.

사내종 태문이 안홍량에서 들어와 편지를 전하는데, "어머니께서는 숨이 곧 끊어질 듯합니다. 초9일에 위·아래 모든 사람이 모두 무사히 안홍량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법성포(영광군 법성면 법성리)에 이르러 배를 대어 잘 적에 닻이 끌려 떠내려가서 배에 머물며 엿새나 새로 떨어져 있었으나 탈 없이 만났고 무사합니다"라고 했다. 아들 울을 먼저 바닷가로 보냈다.


4월 13일 맑다.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어머니를 마중 가려고 바닷가로 가는 길에 흥찰방 집에 잠깐 들러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 울이 종 애수를 보내면서 "아직 배 오는 소식이 없다"고 하였다. 또 들으니, "황천상이 술병을 들고 변흥백의 집에 왔다"고 한다. 흥찰방과 작별하고 변흥백의 집에 이르렀다. 조금 있으니,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가슴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늘이 캄캄했다. 곧게바위(아산시 염치읍 해암리)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애통함을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에 대강 적다.


4월 19일 맑다.

일찍 나와 길을 떠났다. 어머니 영전에 하직을 고하며 울부짖었다. 천지에 나 같은 사정이 어디 또 있으랴! 일찍 죽느니만 못하다. 조카 뢰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 앞에서 아뢰었다. 금곡(여ㅕㄴ기군 광덕면 대덕리)의 강 선전의 집 앞에 이르니 강정·강영수 씨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했다. 그 길로 보산원(연기군 광덕면 보산원리)에 이르니, 천안군수가 먼저 냇가에 와서 말에서 내려 쉬었다 갔다. 임천군수 한술은 중시 보러 서울로 가던 중에 앞길을 지나가다 내가 간다는 말을 듣고 들어와 조문하고 갔다. 아들 회·면·울, 조카 해·분·완과 주부 변존서가 함께 천안까지 따라 왔다. 원인남도 와서 보고 작별한 뒤에 말에 올랐다. 일신역(공주시 장기면 신관리)에 이르러 잤다. 저녁에 비가 내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위인전 세트를 선물로 받았었다.

중간 중간 그림은 첨부되긴 했지만 거의 글로만 이루어진 책이기에 굉장히 지루할 법도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성장과정을 시작으로 업적을 이루기까지의 모든 것을 읽고 있자니, 어느새 마음 한 켠에는 풍만함이 가득했었다.

그 때를 시작으로 역사책에 푹 빠졌었던 것 같다.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며 전권을 열 번도 넘게 재독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쯤 사촌동생에게 물려주기 위해 여의도에서 만나 건네줬었는데 잃어버렸다고 한다;

벚꽃구경을 더 한다는 말에 우리집은 먼저 출발했었고 사촌동생네는 조금 더 있다 간다고 했었는데, 트렁크를 정리하다가 깜빡 잊고 길에다 놓고 왔다는 것이었다.

다시 가보니 이미 사라진 후였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다시 그 전집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출판사나 위인전 시리즈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결국 찾는데 실패했고 지금도 그 위인전이 가끔씩 생각난다.

위인전 전집 중 나에게도 베스트 5가 있었다.

「세종대왕」, 「장영실」, 「유관순」, 「이순신」, 「신사임당」이 그 주인공이다.

실제로 이 다섯 인물의 책은 열 번이 아닌 수십 번은 읽고 또 읽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쓰라고 하면 무조건 다섯 분의 이름을 남겼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위인전이었기에 많은 정보가 담겨있지는 않았으나 이순신에 대한 인물의 성장과정이나 업적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다루지를 않으니 「징비록」 등 여러 책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순신 어머니'에 초점을 맞춘 책이 눈에 띄게 되어 얼른 하나의 책장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한석봉도 어머니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듯이, 이순신 또한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모친 변씨가 얼마나 자식에게 큰 사랑과 가르침을 주었는지 눈에 선했다.

프로그래밍의 힘이라는 한 영상이 있었다. 부자가 부자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부자들의 자식은 그 어떤 실패를 해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한 자의 자식은 실패를 맛보면 금방 좌절하게 된다고 한다.

무슨 차이일까? 무의식적으로 입력된 프로그래밍의 차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과 행동이 자식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 힘들었지만 참 보람차다! 내일을 위해 또 힘내야지!'

'오늘 하루 참 힘들다. 온몸이 쑤신다. 돈은 도대체 언제 모을 수 있는 거냐.'

의식적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은 의식하고 있기에 내뱉기 전에 머릿속에서 수정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과 행동은 그간의 행실이 쌓고 쌓여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과 행동마저 훌륭했던 인물, 이순신의 모친인 변씨가 딱이지 않는가!


어머니가 있었기에 이순신이 있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모친 변씨는 이순신의 기둥이었고, 하늘이었다.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문득 읽다가도 어떻게 이런 세세한 자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책을 읽기 전, 저자와 목차를 읽는 습관이 있는데 저자의 이력이 참 독특했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턱없이 부족한 자료로 인해 집필을 멈추기도 했었다는데 참 대단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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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 -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 29명의 여성 수학자 이야기 지혜와 교양 시리즈 19
전혜진 지음, 다드래기 그림, 이기정 감수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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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고대 그리스부터 21세기 한국까지, 역사 속에 자신만의 무늬를 새긴 여성 수학자들을 만나다.

여성 수학자만을 다룬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수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여성 수학자 29명을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전혜진은 소설가로 대학에서 수학과 기계공학,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2007년, 평범한 동사무소 직원들이 귀신을 잡거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소설 『월하의 동사무소』를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추리와 스릴러, 사극, SF 등에 관심을 보이며 만화/웹툰 스토리 작업과 소설 집필 양쪽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Ⅰ 피타고라스 학파를 이끈 여성 수학자 | 테아노


폭도들에 의해 불타고 있는 아카데미, 그 안에서 피카고라스의 제자들이 뛰어나오지만 폭도들의 칼에 찔려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 날 밤, 서른여덟 명의 제자들이 살해되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희생하여 스승을 살리려 노력했지만 피카고라스 역시 메타폰티온으로 도망치던 중에 살해되었다.

이 폭도들의 무리는 크로톤 시민들이었다.

그 무렵, 피카고라스 제자인 한 장군이 크로톤을 침공해 온 시바리스의 군대를 막아내고 시바리스를 공격해 점령했었는데 크로톤 사람들은 그 장군이 전쟁에서 얻은 노획품 전부를 피타고라스 학파에 갖다 바쳤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크로톤의 유력한 정치인인 킬론이 소문을 퍼뜨려 반란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해 이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한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피타고라스 학파도 끝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인 테아노는 다행히 살아남았고 딸 다모에게 말했다.

"폭력이 사람의 목숨을 앗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학문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다. 비록 네 아버지와 다른 제자들은 죽었지만, 피타고라스 학파의 연구까지 잊히게 할 수는 없어. 다행히 살아남은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제게 아버지의 연구 기록들을 맡기셨어요.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이 연구 기록들을 지켜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장하구나, 다모. 우리가 학교를 재건하고 죽은 제자들의 연구를 복원해야 한다. 그것만이 떠난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야."


사실 나도 테아노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즉, 테아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테아노가 크로톤 출신인 브론티누스의 딸이라는 말도 있고 크레타 출신인 피토낙스의 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부분은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테아노는 피타고라스의 아내이자 제자였고 당대 저명한 여성 철학자였으며 역경을 딛고 피타고라스 학파와 그의 연구 결과를 지켜낸 사람이었다.

그 사건 이후, 살해당한 제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정리하며 연구하였고 학교 또한 재건하였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여성 제자들 또한 모이기 시작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천대받던 여성 제자들은 역경을 딛고 되돌아와 연구를 계속했다.

"학문과 철학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그 점을 세상 여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테아노가 쓴 글들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편지'이다.

'피타고라스 편지'란, 테아노와 그 딸들 그리고 다른 여성 철학자들이 주고받은 편지로 아이를 키우는 방법, 남편을 대하는 법, 하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우주론자이기도 했던 테아노, 그녀가 했던 황금비 연구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주론과 정수론, 세계의 기원 그리고 황금비에 대한 논문을 썼다고도 전해진다.



Ⅱ 가난한 이들의 교육에 힘쓴 최초의 여성 수학 교수 | 마리아 아녜시


18세기 중반, 교황 베네딕토는 미적분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미적분은 당시 나온 첨단 수학이었는데 교황은 이를 쉽게 설명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첨단 학문은 커다란 관심 아래에 있었지만 이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드물었을뿐더러 이를 쉽게 설명하는 사람 또한 드물었다.

17세기가 되어 여러 수학자들에 의해서 미적분의 개념들이 증명되었고 뉴턴, 라이프니츠 등의 수학자들이 이를 발전시켰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딕토 14세와 주교가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베네딕토 14세가 입을 열었다.

"천재라고 하니 생각이 나네만, 내가 예전에 볼로냐의 대주교를 지냈을 때 어떤 아가씨를 만난 적이 있었네."

"어떤 아가씨였습니까?"

"마리아 가에타나 아녜시."


밀라노의 대부호 피에트로 아녜시는 무역에 힘을 기울여 큰돈을 번 사업가였다. 그는 문예와 학문을 굉장히 사랑했었는데 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스무 명이 넘는 자식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쏟았었다.

그의 딸들 중 첫째 딸 마리아 가에타나 아녜시와 셋째 딸 마리아 테레사 아녜시-피노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리아 아녜시는 아버지와 관심과 지원으로 이탈리어는 물론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철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수학과 뉴턴 역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학문을 사랑하는 귀족 가문이지만, 그렇게 명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비단 무역에 성공한 이후로 돈을 밝히는 졸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 이제는 집안의 명예를 생각해 사교계에서 이름을 드높일 때야."

피에트로 아녜시는 딸들의 재능 통해 집안의 수준을 높이고 싶어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여, 마리아는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초청한 뛰어난 학자들을 상대로 일곱 개 언어로 학술 토론을 주고받았다.

중간중간 쉬어갈 때는 동생 마리아 테레사가 뛰어난 솜씨로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다.

사실 마리아는 수녀가 되고 싶었다. 화려한 사교계, 세속의 즐거움은 누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네가 수녀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을 더 베풀겠다. 장담하건대 청빈을 약속하는 수녀보다는 대부호 아녜시의 딸로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란다."

딸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간청할 수밖에 없었고 마리아는 결국 수녀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세속의 쾌락보다는 뉴턴 역학과 미적분학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했으며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이탈리아 청년들을 위한 미적분한」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이 책을 읽고선 찬사를 보내게 된다.

베네딕토 14세는 교서를 내려 마리아 아녜시를 볼로냐 대학 교수로 임명하게 된다.

교수라 해도 여성이 남성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수업할 순 없었지만 볼로냐 대학 교수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어도 45년간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그렇게 마리아 아녜시는 청년과 여성을 위한 교육에 힘을 기울였고 미적분을 모두가 알 수 있게끔 정리하여 최초 여성 수학 교수로서 이름을 남기게 된다.



Ⅲ 한국 최초의 여성 수학 박사 | 홍임식


경기공립고등여학교의 수학교사 홍임식, 그녀는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펼쳤다.

두꺼운 책 안에는 그녀의 은사인 우노 토시오 교수님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해방 전까지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수학 교수를 지낸 수학자인 우노 토시오, 홍임식은 조선이 독립하기 전까지 그녀의 조교로 일하며 수학을 공부하게 된다.

해방 이후, 우노 교수가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단절되게 되자 홍임식의 운명 또한 흔들리게 된다.

당시 친일파를 척결하자는 목소리가 모여진 상황이었다.

[……자네가 모교인 경기고등여학교에서 수학 교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하지만 난세를 살아가는 학자로서 다른 말 못 할 고생도 많았을 테지. 결심이 선다면 일본으로 오게. 자네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돕고 싶네.]

결국, 홍임식은 눈물을 흘리며 결심하게 된다. 일본으로 밀항하겠다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홍임식, 당시 일제강점기였기에 학자 양성에 기반을 둔 학부가 설립되지 못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순 없었다.

본격적인 고등 수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지만 신입생 홍임식은 장차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순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설립된 한성고등여학교에서 시작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는 이과 분야에 뛰어난 졸업생들이 많이 배출되었었다.

한국인 여성 의사 총 111명 중 최소 14명이 이 학교 출신이었고 우리나라 최초로 개업한 여성 의사인 허영숙 또한 이 학교 출신이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본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홍임식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그 학교는 학사 학위가 나오지 않아 학사 자격을 얻기 위해 히로시마 문리과대학에 편입해 1943년 마침내 히로시마 문리과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우노 토시오 교수의 조교가 된 것이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 교수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으니 그 자리를 한국인으로 채워야 했었다.

최윤식, 김지정, 이재곤 그리고 홍임식 등이 참석해 한국 최초의 수학자 회의가 열렸다.

허나 미 군정청에서 독단적으로 국립서울대설립안을 내놓게 되었고 이에 교수와 지식인들은 반발하게 된다.

이 때, 홍임식은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일본으로 돌아간 우노 교수의 연락을 어렵게 받게 된 것이었다.

당시 미적분 번역을 출판사에서 제안했지만 홍임식은 끝내 거절하고 일본으로 가게 된다.

국교가 끊어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결국 일본으로 가게 된 홍임식은 도쿄대 대학원 수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9월 도쿄대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한국인 최초의 여성 수학 박사가 된다.





여성 수학자만을 다룬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을 통해 고대 그리스부터 21세기 한국까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여성 수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세 명만 꼽아 짤막하게 소개해보았지만 29명의 여성 수학자들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사실 이외에도 주옥같은 인물들이 많았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 한 명이라도 모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간의 독서가 헛되진 않았었다.

아! 영화 「Hidden Figures」에 나온 나사의 최초 흑인여성 엔지니어였던 메리 젝슨 또한 29명에 포함된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누구 하나 편하게 진행되는 법이 없었다.

모든 길에는 험난한 고난과 역경이 줄지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인식의 변화로 인해 여자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에게는 남자에 비해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었다. 아예 배제시킨 경우가 더 많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굴하는 법 없이 이겨냈으며 수학이란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국 핑계에 불과할 뿐 그 어떤 결과를 맞게 된다 할지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적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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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땡 2021-12-20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 수학자를 다룬 책은 처음 보는것 같아요 재밌을것 같아요 😃😍

하나의책장 2021-12-25 19:06   좋아요 0 | URL
저도 여성 수학자만을 다룬 책은 처음이었던지라 너무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scott 2021-12-2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하나의책장 2021-12-25 19:08   좋아요 1 | URL
언제나 빠른 scott님 ♥.♥
Merry Christmas^^!

Jeremy 2021-12-2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 수학자만을 다룬 책이라니 너무 궁금합니다.
저도 수학 좋아해서 이과쪽으로 쭉 공부했는데
과연 누가 이 책에 언급되어있을지
검색들어갑니다.

하나의책장 2022-01-03 00:53   좋아요 0 | URL
오오 정말요? 저는 딱 뼛속부터 문과인지라;
수학 잘하시는 분들 보면 항상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전 정말 교과서 통째로 외워서 시험봤었거든요^^

여성 수학자들만을 다룬 책은 저도 처음 읽어봤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내용도 가벼워서 후루룩 읽으실 거예요><

Jeremy,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𝑯𝒂𝒑𝒑𝒚 𝑵𝒆𝒘 𝒀𝒆𝒂𝒓 ❣
 
떠먹여주는 과학 - 당신이 방금 전까지 몰랐던 지식
이근호.강한별 지음 / 뜰boo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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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이과 계열을 전공하지 않는 이상, 과학과 관련된 지식은 대부분 책이나 SNS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와 관련된 과목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국어, 영어는 잘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과학을 빼고) 수학, 과학에는 취약한 편이었는데, 이해보다 암기에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곤 간혹 막혀있는 수학문제가 있다면 통째로 교과서에 있는 문제들을 다 외워서 적용해 시험을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서는 경영을 전공했고 점차 수학은 잊혀져만 가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수학과 달리 놓치고 싶지 않은 과목이 있었으니 바로 과학이다. 지구과학을 너무나 사랑하기도 했고 전반적인 과학의 기본적 상식을 놓치고 싶지 않아 관련 서적을 많이 보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벽돌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꺼운 벽돌책에서 얻었던 가치가 꽤나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학과 관련된 서적은 벽돌책의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꽤나 두꺼운 편에 속한다.

앞서 말했던 관련 서적 중의 대부분이 이러한 책들이고 그 나머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로 채우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한참이지만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대부분 추천할 만하다.

잘만 고르면 '득'이 될 수밖에 없는 가치있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떠먹여주는 과학』도 그 중 하나에 속하는데 아마 새롭게 얻게 되는 지식이 한가득일 것이다.


저자, 이근호와 강한별은 유튜브 과학 채널 <떠먹여주는 과학>을 운영 중인 콘텐츠 크레에이터 팀으로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과학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술술 넘어가는 꿀맛 과학을 담은 영상으로 대중들을 과학의 세계로 꼬시고 있다.

구독자 20만 명에 달하는 채널 운영 외에도 다양한 지식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콘텐츠 제작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떠먹여주는 과학 | https://www.youtube.com/channel/UC5dEgOV_mGqMHXizL1drtvA




비만도 옮는다?! 몸속 미생물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이유


우리의 몸 속은 각종 미생물로 가득하다. 이 중에는 유익한 미생물이 있는 반면에 해로운 미생물도 있다.

혹시 비만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근래 각종 방송 매체에서 많이 언급했던 내용인지라 분명 들어봤을 것이다.

하루 소량의 한끼만 먹고 그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만 먹어도 살 찌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이는 장내 미생물에 의한 것으로 꼭 비만을 막고 싶다면 관리해야 한다.

장내 미생물과 관련한 내용은 좀 더 자세히 다룬 책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쉽고 확실하게 다이어트 하는 방법, 『마음껏 먹어도 날씬한 사람들의 비밀』 ▶ https://blog.naver.com/shn2213/221560755484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먹은 것도 없는데 살이 찌는 것이라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비만이 옮았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가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염병도 사람 간 미생물의 전파로 일어나는 것이니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과학 저널 【네이처】에 해당 연구가 실려 있었다.

'인체의 박테리아 중 3분의 1은 일종의 홀씨를 만들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닐 수 있다'

공기 중에 떠 있는 박테리아를 다른 사람이 흡입하면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무너뜨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증거로 워싱턴대학교에서 실시했던 제프리 고든 교수팀의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체내에 미생물이 살지 않는 무균 쥐에 뚱뚱한 쥐의 대변과 마른 쥐의 대변을 각각 주입해 똑같은 환경에서 변화를 관찰했는데, 이후 마른 쥐의 대변을 주입한 쥐보다 뚱뚱한 쥐의 대변을 주입한 쥐가 두 배 이상 체중이 불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미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대변 속 장내 미생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건강한 사람의 대변 미생물로 치료하는 것을 보았었는데 사실 장내 미생물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이 틀림없다.

『마음껏 먹어도 날씬한 사람들의 비밀』에서도 장내 미생물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어져 있는데 하나 더 말하자면 장내 미생물들이 신경 전달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역할 또한 하기에 인간의 감정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 정도면 인간은 미생물의 숙주나 다름없다.




벼락치기 자주 하면 뇌가 쪼그라든다?!


대부분, 시험보기 한두 달 전부터 벼락치기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벼락치기를 애용하다시피 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벼락치기를 자주 하면 뇌가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외에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 코르티솔이 바로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편인데 기억력과 사고능력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순간 흠칫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코르티솔 저농도 그룹과 보통농도 그룹에는 크게 차이는 없었으나 고농도 그룹에서 뇌의 부피가 0.2% 줄었다는 것이다.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뇌가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또한, 성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 남성의 경우는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여성의 경우는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될수록 뇌의 크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곧장 이 생각부터 들었다, 어떻게든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에든버러대학교 연구팀과 미주리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빌리자면 오롯한 휴식이 최고라는 것이다.

지나친 사색도 금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는 것 뿐이다. 수면 또한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말 이거면 될까? 신경과 교수님도 항상 말해주시는 것이 있는데 생각도 하지 말고 누워서 푹 쉬고 잠도 많이 자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신다.

그러니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면, 추락하는 순간 점프하면 과연 살 수 있을까?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 볼 수 있는 조개, 조개에도 눈이 있을까? 200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알은 왜 항상 타원형일까? 네모 모양의 알을 낳는 새는 과연 없을까?

이 모든 해답은 바로 책에 들어 있다.


흥미롭고 유용한 내용들이 한가득이라 아마 읽어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상식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아는 것을 제외하곤 1/3이나 얻어갔으니 굉장히 '득'일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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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지음, 유영미 옮김, 이희원 감수 / 갈매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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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다름아닌 한 달 동안 외가집에서 머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넓은 마당 속, 기와집마냥 큰 백구의 집부터 수탉과 암탉이 꼬꼬대는 닭장, 엄마 소와 아기 송아지가 살고 있는 외양간, 파스텔 톤의 수국이 가득한 꽃밭, 나보다도 키가 훨씬 큰 자두나무 그리고 깻잎, 고추들이 가득한 텃밭까지 모든 것이 가득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돗자리를 챙겨 마당으로 나간 뒤 백구집 옆에 자리를 잡고선 돗자리를 이불 피듯 펴놓고선 하늘을 향해 누웠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내가 뭘 보나 싶은지 백구도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선 이내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나는 하늘에 가득한 별을 쳐다보고 백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림자를 보고도 놀랄 정도로 겁이 많지만 그런 내가 나가서 별을 구경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백구가 든든하기도 했지만) 칠흑같은 어둠이 짙게 내려도 수많은 별 때문에 가로등이 켜진 것마냥 세상이 환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별들 속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본 값진 경험도 겪었으니 어린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비로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태생적으로 문과 체질이지만 '천문학'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분야이다.

배우면 배울 수록 흥미롭고 신비로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40년 후에도 천문학과 관련된 책은 절대 놓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고 소행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행성 중 하나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도 했다.




수많은 세계가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새로운 발견'을 위해 관측하고 또 관측한다.

인류에게 그 어떤 별들보다 중요한 별이 있었으니 바로 '태양'이다. 태양도 하나의 별이며 우리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가깝고도 먼 태양과 우리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시차를 이용하면 된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태양을 관찰해 그 위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하면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의 특성 상 너무 밝아 주변 별들과의 위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할 순 없으니 간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태양으로부터 어느 행성의 거리 대 태양으로부터 다른 행성의 거리와 같은 상대적인 거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자들은 정확한 방법을 찾아냈고, 20세기에 들어서 지구와 금성의 거리를 레이더 전파의 반사를 통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국제천문연맹에서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천문단위'라는 이름을 붙이고선 이 길이 단위를 약 1억 4960만 킬로미터로 규정했다고 한다.

우주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우리 눈에 커다랗게 보이는 태양 외에도 아직도 인지하지 못한 수많은 별들이 있다.

'2MASS J18082002-5104378B', 무엇인지 알겠는가?

지루할 정도로 긴 영어와 숫자, 이는 바로 별의 이름이다.

지구에서 약 2000광년 떨어진 적색왜성으로 이 별이야말로 우주의 시초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별이라고 알려졌다.

살짝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빅뱅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 순간에 대해 정확한 일을 예측하기 어려워도 그 직후의 일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다고 한다.

에너지와 소립자만 존재했으며 엄청나게 뜨거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껍질과 원자핵으로 구성된 원자, 여기서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진다.

쿼크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입자로 가장 작은 입자라 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원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조건이 충당되야 하는데 빅뱅 직후의 환경은 그 조건에 부합되지 않았었지만 새로 탄생한 우주의 온도가 섭씨 100억 도 정도로 식어 쿼크가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룰 수 있었고 이는 곧 첫 원자핵들과 첫 화학 원소들이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빅뱅 직후의 양성자와 중서자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만나 원자핵을 구성해야 했기에 복잡한 원자핵이 구성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초기 우주에는 수소 원자핵이 가장 많았고 헬륨 원자핵이 그 뒤를 따랐으며 리튬 원자핵과 베릴륨 원자핵이 소량으로 돌아다니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이는 연대가 오래된 별들을 통해 이 가설이 맞는지 검증할 수밖에 없는데 앞서 언급했던 '2MASS J18082002-5104378B'가 현재로서 알고 있는 별 중 가장 오래된 별로 빅뱅 후 2~3억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탄생했다고 한다.

또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율 또한 예상한 그대로라고 한다.



수천 년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에 대해, 우주 속 인류의 역할에 대해 숙고해왔다


가장 좋아하는 별 중 하나가 바로 폴라리스이다.

폴라리스, 북극성이라고도 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밤하늘에서 북극성이 가장 밝은 별은 아니다.

밝기로 따지면 47번째밖에 되지 않는다.

육안으로 뚜렷이 볼 수 있는 별이 세 개가 있는데 그 중 북극성은 가장 뜨겁고 커다란 별로 태양보다 2000배나 밝게 빛난다고 한다.

그 곁에 난쟁이 별이 있고 이 두 별을 세 번째 별이 돌고 있는 형태이다.

고전문학 혹은 영화를 보면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항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실제 항해자들은 폴라리스를 이용해 나침반 없이 북쪽을 찾을 때 매우 유용했다고 전해진다.



본문 내용을 다 담고 싶을 정도로,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는 배가 된다.

과학적 지식이 곁들여진 수많은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행성 그리고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시킬만 하다.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궁금증을 품었으며 이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이 없었던 시절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의 움직임으로 절기를 파악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위치를 파악했다는 점은 실로 참 대단할 수밖에 없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짙어졌고 커다란 비밀의 공간인 우주에 한 발, 한 발 딛기 시작했다.

나야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작해 즐기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에 만족하지만 천문학에 발 담그는 지식인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얼마나 똑똑하신 분들일지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말이다.)

본문 내용 두 파트 정도가 나의 실수로 인해 삭제되어 저장하는 바람에 사라져 허탈감에 더 붙이진 않았지만 잠깐 한 부분만 이야기해보자.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별들에 특별하게 명명된 이름이 없으니 인터넷에서 몇몇 회사들은 고객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받고 적절한 별을 선택하게 하여 고객이 원하는 이름으로 별 이름을 지어주고 증서를 보내준다고 한다.

사실 가상의 상품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식적'인 별의 이름은 고대와 중세 아랍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된 이름을 부여받은 200~300개의 별을 제외하면 주로 숫자와 철자 조합으로 명칭한다고 한다.

국제천문연맹에는 실제 별 이름을 표준화시켜 필요한 경우 새 이름을 부여받게 하는 별 명명 전담 분과를 마련하였고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름은 330개 정도이며 그중 사람 이름을 딴 것은 여섯 개에 불과한다고 한다.

돈 주고 별을 사 그 별의 이름을 짓는 것을 볼 때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별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이번 달에 재독할 책들을 정리하다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손에 잡혔고 재독하기 전에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를 펼치게 되었다.

사실, 「코스모스」는 내게 있어서 난이도가 있는 책이라 막힘 없이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상대성 이론에 들어서서 살짝 브레이크를 잡고 되돌아보기를 반복했었으니깐.

그래도 『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는 막힘 없이 술술 읽힌 책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천문학을 좋아한다면 꼭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매일 밤, 마당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는데 현관에서 바로 나와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들면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하나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

하늘이 깨끗하면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밝게 인사해준다. 오늘도 그 별이 떠 있는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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