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천재 고려

저자 : 이익주

출판사 : 김영사

출간 : 2026.01.25

장르 : 역사 > 고려시대 / 외교·상호교류사

키워드 : 간밤에읽은책, 외교천재고려, 이익주, 고려외교사, 고려역사책추천, 한국사교양서, 역사책추천, 고려시대, 외교전략





작은 나라의 생존은 힘이 아니라 판단에 달려 있었다.





요즘 국제 정세를 다룬 뉴스를 보다 보면 외교라는 단어가 유독 무겁게 다가옵니다.

선택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말 한마디가 국면을 흔드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간밤에 『외교 천재 고려』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려의 외교를 너무 단순하게 기억해온 건 아닐까 하고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던 약소국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길을 찾았던 나라


책에서는 고려를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려가 처했던 국제 질서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고려는 송과 거란, 금과 몽골이라는 당대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고려는 상황에 따라 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실리를 따지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게 갈릴 순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전략이었다는 점입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볼지, 영토를 기준으로 볼지부터가 모호합니다. 종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족이 세운 나라를 중국이라 해야 할 텐데, 곰곰이 따져보면 중국 역사에서 한족 왕조는 오히려 많지 않습니다.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정도입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정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에도 어디까지가 중국 땅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황허 중하류 지역, 즉 중원을 중국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황허문명의 발상지이자 이후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중국을 지배한다"는 말까지 생겨난 거죠.

이 기준에 따르면 송나라와 거란 가운데 중원을 차지한 쪽은 오히려 거란이었고, 따라서 거란을 중국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10세기로 잠시 이동해볼까요?

당시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고려는 군사적으로 대립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경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송과 거란으로 분열되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베트남과 대하가 등장해 다원적 국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중국 오대 왕조 중 하나인 후당이 왕건을 고려 국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고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은 것인데 특이점이 있다면 이보다 앞선 시기에는 견훤을 백제 국왕이 아닌 판백제군사로 책봉하였고 이후 신라가 사신을 파견했을 때는 신라 국왕을 권지국사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등급을 나눈 것은 분열된 한반도의 각 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후당의 외교 전략이었겠지만 고려 입장에서는 삼국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평가했을 것입니다.





외교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살아남는 문제


책 속의 외교 장면들은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물러서야 하는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인가? 아니면 이겨도 감당할 수 있는 전쟁인가?

서희의 외교 담판이나 귀주대첩 이후의 선택, 동북 9성을 내려놓은 결정까지 고려의 외교는 언제나 가능한 선택 중 가장 덜 위험한 길을 찾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승리 이후의 태도였습니다.

이겼다고 밀어붙이지 않고 얻었다고 욕심내지 않는 절제 말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을 끝내는 판단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희의 외교담판]

거란의 소손녕과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확보하고 거란군을 철수시킨 사건으로 교과서에서 꼭 다루는 개념 중 하나이지요.

이에 대해 더 세세하게 아는 분은 많이 없을 것 같아 살짝 다뤄보려고 합니다.

고려는 전쟁 중의 협상에 능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압록강을 건너 북쪽에서 거란이 침공해오자 고려 국왕인 성종은 피신하지 않고 말 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선봉군이 패배하자 서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소손녕과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은 고구려의 옛 땅이 모두 거란 소유가 되어야 하니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대다수였는데 서희가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 땅이었는데, 그 역시 달라면 주겠습니까?"


결국 서희 자신이 소손녕과 담판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을 만난 서희는 의전 문제부터 기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소손녕이 자신에게 먼저 절할 것을 요구하자 서희는 관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양측은 마당에서 맞절하고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게 됩니다.

동서 방향으로 마주앉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마주 앉더라도 남북 방향이면 북쪽이 상석이기 때문이지요.

서희는 소손녕의 두가지 요구에 단호히 반박하게 됩니다.

고려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이기에 이에 따른다면 거란이 차지하고 있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오히려 고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지요.

또한 고려가 거란에 사대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진을 몰아내고 압록강까지 고려의 영토임을 인정한다면 거란에 사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추게 됩니다.

결국 거란 황제는 고려가 화친을 청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철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훗날 병자호란 사태와 비교했을 때 고려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유연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피한데다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성과까지 거두었으니 외교 핵심은 전쟁을 피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버티고 간보고 협상하는 외교


몽골과의 30년 항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고려가 택한 방식은 버티기와 협상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척하며 시간을 벌고 다시 조건을 바꾸고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전략은 깔끔한 것도 아니고 영웅적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선택처럼 다가왔습니다.

외교는 체면의 싸움이 아니라 지혜의 싸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어쩌면 원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고려도 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지 않았을까요?



간밤에 읽은 책, 외교 천재 고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외교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판단을 하는 것, 당장의 승리보다 다음 선택의 여지를 남기는 태도에 대해서 말이죠.

『외교 천재 고려』는 고려의 역사를 통해 그 태도를 전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을 향한 질문처럼 읽혔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힘의 논리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괜스레 묻게 됩니다.

고려가 늘 정답을 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의 과정만큼은 충분히 돌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여 한반도의 정세에 맞춰 중국의 역사까지 돌아볼 수 있기에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세세한 내용들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습니다.

나름 한국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지 못했기에 읽는 시간이 제겐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새학기를 맞이하기 전, 학생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역사책입니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외교와 국제관계에 관심 있는 분

고려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읽고 싶은 분

역사를 통해 오늘의 선택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



『외교 천재 고려』는 작은 나라의 외교가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결과였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도 판단을 멈추지 않았던 고려의 선택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입니다.

오늘 하루, 뉴스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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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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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저자 존 엘리지

21세기북스

2025-08-13

역사 > 세계사





■ 책 소개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지도의 선 하나가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바꾸었는지를 추적하는 흥미로운 역사서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단순히 왕조와 전쟁, 영웅의 이야기로 보지 않고 경계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죠.

저자는 세계 곳곳의 국경과 경계가 생겨난 배경, 그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과 비극을 풀어냅니다.

특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국경선이 사실은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 정치적 타협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보여주죠.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경계, 베를린 장벽, 한반도의 휴전선,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 국경까지, 각각의 경계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르고 이어 붙이고 때로는 충돌하게 만든 주체였습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의 전환은 무언가가 처음으로 발생한 순간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한 순간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최초의 국경이 어디에 등장했는지를 확실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려는 충동은, 그것을 기록하여 21세기까지 남길 필요성을 느끼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경계도 필연적이거나 영원하지 않다. 경계는 자의적이며 우연적인 결과물이고, 많은 경우 단 한 번의 전쟁이나 조약, 혹은 지친 유럽인 몇 명의 결정이 달랐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계는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며, 어떤 것은 수 세기 동안 유지된다. 어떤 것은 우스꽝스럽고, 어떤 것은 터무니없으며, 또 어떤 것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반도 국경에 대해 가장 먼저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K-팝과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내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 남한과, 고립적이고 공산주의적이면서도 신정체제적인 북한, 그리고 두 국가를 가르는 국경선은 북위 38도선을 따라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권을 둘러싼 논쟁은 바다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1967년 세계 대다수 국가가 서명한 우주조약은 우주 탐사를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며 인류 전체의 영역’으로 규정했다. 이 조약은 “우주는 주권 주장, 사용, 점유 등의 수단을 통해 한 국가가 전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달과 기타 천체는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 조약은 평화적 목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그 가치가 제한적이다.





■ 책 속 메시지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국경을 단단한 벽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경은 권력자가 설정한 장치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폭력적인 틀이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가 서구 열강의 분할로 인해 인위적으로 그어졌다는 사실과 중동의 국경이 오일과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경은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고 또 나누었는지, 어떤 경계는 왜 분쟁과 전쟁을 불러오고 어떤 경계는 왜 문화 교류를 낳았는지 즉, 국경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만든 가장 오래된 발명품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집니다.

덧붙여 미래의 경계는 물리적 국경이 아닌 디지털·경제적·문화적 경계일 수도 있다는 점까지 지적하며 경계란 결국 인간이 만든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 하나의 감상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과 힘의 논리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요.

책에서는 경계 너머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깁니다.

그저 지도 속의 선처럼 보여도 선 하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정체성을 부정당합니다.

반대로 어떤 선은 사람들의 연대와 협력을 낳기도 하죠.

생각해보면 국경의 역사 속에는 늘 타인의 눈물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 유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경계라는 선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했습니다.

경계가 아닌 다리가 놓여지는 역사의 시기를 우리는 언제쯤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전 경계가 곧 이야기의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경계를 차단과 단절로만 여기지만 사실 경계는 늘 새로운 만남과 변화를 만들어왔으니깐요.

오늘날 글로벌 사회에서도 국경을 두고 긴장이 고조되는 일이 많지만 동시에 그 경계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시선을 얻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즉, 국경은 절대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변하고 재구성되는 불완전한 합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죠.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니 지도의 선들이 단순한 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흔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건넴의 대상


세계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읽고 싶은 분

국제 관계와 현대 분쟁의 뿌리를 이해하고 싶은 분

지도 속 경계선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고 싶은 분




KEYWORD ▶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독후감 | 세계사 책 추천 | 역사책 리뷰 | 국경과 경계의 역사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존 엘리지의 역사서로, 세계의 국경과 경계를 중심으로 인류사를 새롭게 조망한 책입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분, 국제 분쟁과 국경의 의미를 알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리뷰를 읽고 이 책이 건네는 사유 속에서 당신은 어떤 경계를 떠올리셨나요?

혹시 당신의 마음속에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선이 있다면 오늘 이 글이 그 경계를 조금은 희미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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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안다는 것’의 세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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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

인플루엔셜(주)

2024-08-30

원제 : Knowing What We Know

역사 > 역사학

역사 > 문명 > 문화사





현재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뜻 모르는 단어부터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익명의 스팸번호까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정보가 우리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과거와 달리 전화번호마저 외울 필요가 없어지니 지식과 정보에 대한 기억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어렵고 복잡한 것을 인공지능이 대신 수행해주다 보니 경험과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아온 인간의 뇌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의문이 생깁니다.


20세기에 벌어졌던 현장의 목격자였으며, 21세기 변화하는 역사의 증인이기도 한 사이먼 윈체스터는 세계 곳곳을 탐험하던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그 또한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 의문을 토대로 인간의 지식 세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식의 탄생』은 지식의 정의를 시작으로 지식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류에게 전수되었는지, 그 전달 수단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도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 벵갈루루는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첨단기술과 사치스러운 문화를 누리는 도시였죠. 그런 도시 한 켠에 아주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한지 최저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빈곤은 물론 오물과 범죄가 만연했습니다.

이렇다보니 그곳에서 사는 수만 명의 어린이들은 교육조차 꿈꿀 수 없었죠.

그런 그곳을 바꾼 한 여성이 있으니, 바로 슈클라 보스입니다.

벵골인인 중년의 그녀는 검은 물이 흐르는 수로 옆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지요.

교육이 받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앞으로 오라고. 물론 교육비는 무료라고.

이 순간을 기점으로 슈클라 보스 본인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안겨주게 됩니다.

몇 년 후 결혼한 그녀는 딸을 낳았는데 딸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입학시켰고 그녀 또한 미국계 호텔 기업의 유능한 임원이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여성이 이런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매운 드문 일이랍니다.

성공의 정점을 찍은 그녀는 딸도 독립시키고 집안도 안정되자 오랜 꿈이었던 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그 프로젝트를 실행중이었죠.

앞서 말했던 수로 옆에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둔 것이 바로 학교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

서서히 성장한 학교 프로젝트는 10년이 지나자 크게 번창했으며 꿈꿀 기회가 없던 빈민가 자녀들에게 꿈을 실현시켜주게 되지요.

200년 전 소설가 로런스 스턴은 지식에 대한 욕구는 재물에 대한 갈망과 마찬가지로 습득할수록 더욱 커진다고 했었습니다.

즉, 학교 프로젝트는 지식이 더 많이 스며들수록 지식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입니다.


행복의 에너지가 가득한 이 학교들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교문에 들어서서 모래가 깔린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전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농촌에서 동틀 무렵 외양간에 있던 소 떼를 몰고 들판으로 나가는 "소 떼 흙먼지 시간"으로 불리는 선선한 이른 아침,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길에 흙먼지가 일었다. 친구들과 놀거나 수업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북적북적했다. 아이들은 옅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들어간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변화된 삶을 즐기고 있었다.


지식의 소중한 가치를 잘 알아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대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세대와 관계없이 인간은 호기심이라는 유용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300년 전 새뮤얼 존슨이 말했죠. 호기심은 건강한 정신의 확실하고 영구적인 특성 중 하나라고.

호기심은 앎의 요소를 끌어당겨 결국 앎을 얻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진지한 호기심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윈의 설명처럼 더 큰 이익 도모를 위해 선택된 유전자 변이인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이 궁금하신가요?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지평선과 수평선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식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방대해지는데 그 확장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오히려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지식은 귀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Knowledge lies here.

지식이 여기 있다는, 도서관의 근본적인 신념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세계 최초 진정한 도서관의 본고장으로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이 만든 도서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역사적 자료의 원천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이 도서관은 단순히 지식을 수집하고 저장하는 장소가 아닌 그 건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웅장하고 아름다운 아슈르바니팔도서관은 2016년 말에 무참히 파괴되고 맙니다. IS에 의해 말이죠.

왜 도서관을 파괴시킨 것일까요?

이라크 사람들은 아랍 전역에서 생각이 깊고 교양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어 IS의 지도부가 자신들의 존재에 위협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먼저 파괴한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으로 파괴된 곳 중 빠지지 않는 곳이 지식을 모아놓은 '도서관'입니다.

오래전부터 지식은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닌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관해야 했습니다.

즉, 모두가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을 아주 소중하고 꼭 필요한 장소라고 여겼음을 의미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음의 시작이 주는 영향력을 시작으로 최초의 도서관과 도서관의 비극까지 살펴보며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관되어 후대에 전수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가 만들어낸 조작의 연대기를 살펴보며 우리가 지금 안다는 것 즉,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현대 사회에 지혜의 회복이라는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지식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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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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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터무니없는 일본 주장과 조직적 은폐·축소를 객관적 자료에 의해 낱낱이 밝히다!


저자, 박경민은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금융기관 지점장과 사외이사, 중견그룹 기획조정실장과 계열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컨설팅회사 모젤스(주) 대표이다.

바쁜 현역 생활 중에도 역사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건강문제로 수년간 쉬게 되는데 이 때를 계기 삼아 본격적인 역사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학교 역사시간에 앵무새처럼 배운 대로 이미 익숙해져 버린 한일 근대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책은 사건 순으로 내용이 진행되는데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던 해인 1894년을 살짝 짚어보려고 한다.

1894년하면 자연스레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동학농민운동 기간 중 벌어졌던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이다.


1894.01.10 - 전봉준의 고부 봉기

1894.05.11 - 동학 농민군 황토재 전투 승리

1894.05.31 - 동학 농민군 전주성 점령

1894.06.01 - 고통의 청군 파병 원세개에게 구두 요청

1894.06.02 - 일본 정부의 의회 해산 및 조선 파병 결정

1894.06.03 - 고종의 청군 파병 공문 발송

1894.06.08 - 청군 아산만 도착 시작

1894.06.03 - 전주화약으로 농민군 해산 & 일본군 인천항 도착 시작

1894.07.23 -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1894.07.27 - 일본공사관과 대원군 주도로 군국기무처 설치

1894.07.27 - 갑오개혁 개시

1894.08.01 - 청일전쟁 선전포고


1894년에 벌어졌던 사건들의 흐름과 주요 내용들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파헤쳐 보니 일본이 경복궁 점령을 발판 삼아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었다.


…… 경복궁 점령 사건이 오랜 기간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곰곰 돌이켜 보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발표하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 사건의 성격에 관한 입장, 즉 총격적을 거쳐 조선군을 쫓아내고 경복궁을 점령한 것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과 이를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온 것이 더 큰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기간에 일본군은 대규모 파병을 행했고 파병 후 장기 주둔하기 위해 어떻게든 명분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그간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고집하는 우발적 사건이라는 주장은 역시 억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일부 일본인에 의해 양심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

1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국정 교과서에 실린 명백한 조작 내용과 오류는 개선되었지만, 검인정 교과서에는 여전히 일본 위주의 자의적 해석이 존재한다.

특히 청일전쟁은 당시 서구열강들로부터 같은 레벨의 열강으로 인정받았다고 기술되고 있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근대국가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다보니, 지금까지도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일본인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까지 일본이 국제법을 잘 준수한 모범적인 근대국가라 알고 있는 것이다.


청일 간의 직접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무쓰 무네미쓰는 오토리 공사에게 조선에서의 실질적 이권확보를 지시한다.

오토리는 조선에 내정개혁은 권고하면서도 이에 대해 거부할 경우를 대비해 두 가지 안을 본국에 올리며 훈령을 요청하게 되는데, 두 가지 안 모두 성의 출입문과 왕궁의 문을 일본군이 점령해야 한다는 군사적 조치도 포함하고 있었다.


'군대로 경성의 각대문을 경비하고 왕궁의 문을 지킨다.'

'군사력으로 문 안팎의 공간을 제압하여 지배력을 확보한다.'


왕궁을 제압하지 않고 어떻게 왕궁 문을 지킨다는 것인가?

즉, 한성과 경복궁을 무력 즉, 군사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용이 길어져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협상의 과정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지만)

계속되는 회담 속에서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그들의 마지막 결정은 결국 경복궁 점령이었다.

경복궁 점령은 엄연히 군과 정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계획적인 군사행동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공식입장은 이렇다.

먼저 발포한 조선 병사와의 우발적인 충돌에서 시작되었고,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응전하다가 왕궁에 들어가 국왕을 보호까지 하게 되었으며,

소규모 충돌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의 내정개혁을 위해 바로 청일전쟁을 일으켜 명분을 쌓은 게 훤히 보이는데 그들 눈에만 안 보인다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다.

이렇듯 책에서는 정확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주장했던 주장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준다.


지리적 거리로는 가깝지만 역사적 거리로는 너무나 먼 일본.

근래 국방부가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데에 큰 논란이 있었는데, 공영방송인 KBS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독도가 들어간 그래픽 지도를 사용한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었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질수록 드는 생각은 단 하나다.

역사에 대해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정확하게 알고 파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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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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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부족한 한국사 공부를 하기엔 역시 '책'만한 것이 없고 역사하면 역시 유홍준 교수님의 책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나오는 족족 다 봤을 정도로 역사책 중 애정하고 있는 시리즈이다.

『국토박물관 순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이후, 답사기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고 하니 벌써부터 두근두근거린다.


저자, 유홍준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주 추사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역사의 처음을 살펴볼 때, 떠오르는 한 곳이 있으니, 바로 연천 전곡리다.

외가집에 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다 보니 일 년에 한두번은 꼭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알고 있는가?

1933년 함경북도에서 구석기시대의 동물 뼈와 흑요석 석기가 발견되었으나 우리나라가 역사적 발견의 우세를 거머쥐게 하기 싫어 일제가 덮어버렸다고 한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고고학 발굴에 나서 1963년 옹기군 굴포리에서 구석기 유적지를 발견하였고 1966년 평양의 검은모루동굴에서는 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동물 화석을 발견해 주목을 받았다.

남한에서는 1964년 공주 금강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굴되었고 1973년에는 제천 점말동굴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82년 청원 두루봉동굴에서 구석기 유물과 5세가량의 어린아이 인골을 발견했는데 학계에서 의견 일치를 보진 못했지만 발굴자는 약 4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한 미군 병사가 주먹도끼를 발견한 후 여기서만 30년 동안 발굴 작업이 이어졌는데 구석기 유물이 무려 약 8천 점이나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가 된 연천 전곡리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약 150 곳으로 대부분 강변과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서울 암사동 유적지,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그리고 섬으로는 통영 욕지도, 제주도 고산리가 대표적이다.

제주 고산리, 웅기 굴포리는 가장 오래되었고 양양 오산리는 잘 보존된 유적지인데, 부산 영도 동삼동은 도시화 과정에서 많이 파괴되고 길모퉁이에서 초라하게 명색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가장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물론 고래를 잡아먹은 자취까지 있으며 흑요석 도구를 사용하고 조개껍데기로 팔찌를 만들어 치장한 모습을 추정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패총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범방동 패총, 동삼동 패총, 영선동 패총, 조도 패총, 청학동 패총, 안남동 패총, 다대포 패총, 가덕도 패총, 북적 패총, 율리 패총……

(패총이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쓰레기들이 쌓인 것으로,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언양현은 조선시대 경상도의 당당한 고을로 1895년 언양군이 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울산군에 통합되었다.

이후 울산읍이 방어진, 대현면, 하상면 등과 합쳐 울산시로 독립하고 나머지 지역은 울주군이 되는 바람에 울주군 언양면이 되었다.

언양과 두동면의 살골짝을 내려가는 대곡천변에는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지가 다 남아있다.

대곡천 아래쪽부터 신석기시대의 반구대암각화, 청동기시대의 천전리각석, 초기철기시대의 대곡리 유적지로 이어진다.

단순히 생활 유물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의 사실적인 암각화, 청동기시대의 추상무늬 그림, 초기철기시대의 오리형토기와 같은 유적들이 대부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역사책 전집이 있는데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다룬 1권부터 7권을 가장 좋아했었다.

신화적인 요소도 책에 반영되어 있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신비로움, 웅장함 그 자체였다.

『국토박물관 순례』를 읽고 나니 그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 때 읽었던 책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기에 위대해보였다.


역사책을 따로 읽지 않는다면 대부분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사가 끝일 것이다.

사방이 강대국인데다 영토는 작아도 뚝심 하나만큼은 알아주던 대한민국!

역사는 그 나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표이자 미래의 지침서가 되어주는 과거이다.

과거에 했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고 본받아야 할 점을 되새겨야만 미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역사의 배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


훗날 유홍준 교수님의 책들은 몇 백년이 흘러도 한국 문화를 증언해 줄만한 위대한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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