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공원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동네
2025-04-11
원제 : Le Square
소설 > 프랑스소설
소설 > 세계문학 > 프랑스문학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말해지지 못한 것들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릅니다.
■ 책 속 밑줄
가만히, 아이가 공원 저쪽 끝에서 다가와 젊은 여자 앞에 섰다.
"배고파." 아이가 말했다.
남자에게는 대화를 시작할 기회였다.
"정말이네요, 간식 시간이네요." 남자가 말했다.
젊은 여자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조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처럼 잠시 쉴 때를 빼면, 평소에는 늘 여행을 다니지요."
"이런 데가 정말 딱이에요, 쉬기에는, 공원들이, 특히 요즘 같은 계절은요. 저는 공원 가는 게, 밖에 나와 있는 게 좋거든요."
"돈 안 들고, 아이들 덕분에 늘 즐겁고, 발이 넓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공원에서 가끔 말 상대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 공원에서 마주 앉은 남녀.
그들의 대화는 실은 과거와 감정, 관계의 불가해함에 대한 문장들이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 말은 곧,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지도 몰라."
제가 원하는 변화는, 우선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보는 거, 내 물건을 별거 아닌 것들이라도 가져보는 거, 내 공간을 방 한 칸이라도 가져보는 거예요.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가끔 가스오븐이 꿈에 나오더라고요.
제 평생에 한 번 있었던 일인데, 어느 날 더 살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배는 고픈데 그날 돈이 다 떨어져서 점심에 뭘 먹으려면 무조건 일하러 나가야 했거든요. 근데 다들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저 혼자만 그러고 살고 있는 거 같은 거예요! 그날따라 그러고 사는 데 적응이 안 되는 거 같고, 더 살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뭐랄까, 다들 쭉 그러고 산다고 해서 저까지 쭉 그러고 살 필요는 없겠다 싶었으니까요.
"그 공원에 가서 그렇게 행복을 느끼시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요? 계속 행복하셨나요?"
"몇 날 며칠을 행복했어요. 그럴 수도 있더군요."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했던 말이 바로 그거잖아요. 알고 보면 사람들은 행복을 못 견딘다는 거. 물론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막상 행복해지면 다른 걸 꿈꾸면서 괴로워한다는 거."
"그럼요, 물론, 하지만 그렇다면 뭔가 다른 거라도 있을 거 같거든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만 있는 뭔가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없는 뭔가가, 있을 거 같거든요."
"저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그쪽 분처럼 그렇게 더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당연한 게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그쪽 분도 이해가 되실 거예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살아 있는 거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희망을 안 가져도 되는 사람들이요. 저는 매일 아침 노래를 부르면서 면도를 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확실히 희망과 관련해서는 보는 눈이 정말 없는 거 같아요, 저한테 보는 눈 같은 게 있다면, 그건 외려 소소한 일상 쪽, 거창한 어려움 쪽이 아니라 자잘한 어려움과 관련해서인 거 같고요. 하지만 어쨌든,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쪽 분이 택하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완전히,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쪽 분이 당장 올여름부터 그 문을 열어젖히시리라는 것에는 완전히 확신이 들거든요."
"우리는 그 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이름도 없는 그 조용한 공원 말이에요."
"모든 것이 작고 단순했죠. 그런데도 그 공간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지는 곳이었어요."
■ 끌림의 이유
『동네 공원』은 오직 대화만으로 구성된 짧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짧고 단순한 말들 사이에 삶의 복잡성과 감정의 미묘한 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공원이라는 중립적인 공간에서 마주한 남녀는 삶의 외로움, 희망의 온도, 존재의 이유를 말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느리지만 그 여백 속에 상처와 위로가 스며들어 있어 그들 중 한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삶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말보다는 숨결, 설명보다는 감각.
책은 침묵과 여운으로 이야기합니다.
■ 간밤의 단상
책장을 덮고 난 후,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문장이 있습니다.
『동네 공원』이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짧은 대화 속에 숨겨진 감정이 더 깊고 오래 남았습니다.
대학생 때, 한 장소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과외가기 전, 항상 들른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는데 저도, 그분도 똑같은 자리에 앉다보니 처음엔 눈인사만 건네다 깊은 대화는 아니어도 서로 한 마디, 두 마디씩 건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누던 몇 마디와 어색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곧 입대하게 되었다는 그분은 훗날 인연이라면 여기서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덧붙이곤 초콜릿이 담긴 조그마한 상자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분과는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서로 이름은 주고 받았었습니다.
삶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대화와 무명의 관계를 통해도 어떤 결을 남깁니다.
『동네 공원』은 조용히 그 기억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한순간을 온전히 나눈 시간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 시간은 설명보다 감각으로 남고 말보다 공기로 새겨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늘은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그저 곁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더 신뢰하고 싶어졌습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관계의 힘, 책에서는 이러한 잔상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 건넴의 대상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곱씹고 싶은 분
조용한 위로와 감정을 찾고 싶은 분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하며 읽고 싶은 분
♥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