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함께 춤을

저자 크리스타 K. 토마슨

흐름출판

2024-12-16

원제 : Dancing with the Devil (2024년)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당신에게 정원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은 푸르르며 아름다운 꽃으로 무성하다. 하지만 늘 관리를 해줘야 한다. 당신은 매일 정원으로 향하며 성실하게 할 일을 한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늘 녀석이 있다. 바로 ‘잡초’ 말이다. 가끔은 이 녀석들을 뽑아내는 데 성공할 때도 있지만, 그 자리엔 항상 새로운 잡초가 나타난다. 녀석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덥고 끈적끈적한 여름철에는 며칠 관리가 소홀해진다. 그러다 다시 정원으로 나가 보면 잡초는 더 무성해져 있다. 잡초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녀석들은 정원을 점령하고 망친다.

이 정원이 당신의 삶이며 분노와 시기, 양심, 경멸과 같은 나쁜 감정이 잡초다. 최고의 정원은 잡초가 없는 정원이고, 최고의 삶은 나쁜 감정이 없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나쁜 감정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들은 사유를 시작한 이래로 쭉 감정에 대해 생각해 왔고, 따라서 감정에 대한 이론을 많이 개발했다. 이론은 감정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명료화하고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론은 감정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반면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살펴볼 것이다. "좋은 삶과 나쁜 감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감정이 제기하는 '실천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 문제처럼)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다.



감정은 일종의 육감과 같아서 우리는 감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 우리가 미처 뭔가를 깨닫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그걸 깨달을 때로 있다.

… 또한 우리는 중요하거나 신경이 쓰이는 것에 감정을 쏟곤 한다.



삶에서 감정을 분명 중요한 일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감정의 관계가 항상 수월한 것은 아니다. 감정은 명확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까닭은 우리가 감정의 일부는 통제할 수 있고 일부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느낄 거라고 예상하는 감정을 항상 느끼진 않는다.



이성은 감정을 포함하고 감정도 이성을 포함한다. 그런데 '머리 대 가슴'은 때로 감정이 반사작용에 가깝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동공이 확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감정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감정의 '지향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감정의 합리성 문제는 나중에 다시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부정적인 감정은 언제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는 머리 대 가슴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머리가 어디서 끝나고 가슴이 어디서 시작되는지가 항상 분명한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머리와 가슴은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나쁜 감정은 자기애의 표현이며, 그건 우리가 자신의 삶과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웃의 아름다운 집을 부러워하는 건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기 때문이며, 그것은 성공을 정의하는 한 방법이다. 제일 싫어하는 동료의 비아냥에 화를 내는 건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경멸한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에게는 시간이나 관심을 쏟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능력을 의심하거나 나를 쥐고 흔들려는 사람에게 앙심을 품는다.


자아는 뚱뚱하고 집요한 존재가 아니다.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다. 자아를 사랑한다는 건 항상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법은 알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은 그런 존재를 솔직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변명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자기애야말로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다.


나쁜 감정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건 우리가 나쁜 감정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며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나쁜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밀어내려 하는 건 실수다. 우리에겐 나쁜 감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이 의미 있는 건 삶 속에 나쁜 감정이 함께해서다. 삶에 대한 애착은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데 그건 바로 흙이다. 흙이 충분히 기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흙에는 지렁이가 가득하다.



분노는 견디기 힘든 나쁜 감정 중 하나다. (…) 분노를 솔직하게 대한다는 건 반드시 바람직한 종류의 분노만 느껴야 한다거나 분노에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분노도 나쁜 분노도 없다. 그저 분노가 있을 뿐이다.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 자신을 다그치거나 분노를 길들여서 분노가 항상 얌전히 굴도록 만들 필요는 없다. 우리는 분노를 불의에 맞서 싸우는 도구나 적을 파괴하는 무기로 만들 수도 있고 그냥 분노를 느끼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다른 나쁜 감정과 마찬가지로 질투는 고통스럽고 솔직하게 경험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특별한 관심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긴 어렵고, 나의 특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내가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나는 과연 내가 바라는 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앙심을 품게 되는 건 내 골방에 누군가가 불쑥 들어오려고 할 때다. 물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나도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내게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하면 나는 정반대의 선택을 할 것이다. 단지 그 선택이 정말로 내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현명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건 나 자신임을 주장하는 한 방식이 앙심이다.



정의로운 경멸은 인격의 기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원칙이 없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줏대 없는 아첨꾼, 무자비한 기회주의자 그리고 가식적인 사기꾼은 모두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경멸의 정당한 표적이 된다. 비열한 자는 경멸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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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

저자 정길연

파람북

2025-01-17

소설 > 역사소설





맡아두었던 물건을 돌려보내오, 밤마다 내 그림자의 좋은 짝이었소. 내 이미 목을 빼고 돌아갈 날 기다린 지 오래고, 아침 일도 저녁이면 하마 옛일이니, 떠나는 이 순간도 내일이면 아마득한 옛날로 여길 것이오, 부디 자중자애하오.



때아닌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들어 바로 바뀌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곡인 양 빗줄기는 가늘고도 검질깁니다. 지난해 7월 중순 이후 여러 달 내리 가물었지요. 섣달 끝ㅈ락에 와서야 홀연히 뿌리기 시작한 비가 곡우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는군요. 빠끔한 날 드물어 꽃도 풀도 나무도 땅속에서부터 감감합니다.

따로 기별은 아니 주시려나 봅니다.



정작 더 난감하고 우스운 일은 홍섬이 돌아간 뒤에 일어났어요. 집안일 하는 아이가 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하였지요. 맹랑하게 울음판 벌이는 고것이 내심 부럽더군요. 제가 해볼 도리라고는 가야금 끌어당겨 가만가만 열두 줄 쓸어나 보는 정도이지요. 상중이라 악기는 그저 나무통에 불과합니다.

나리를 마주 뵌 것이 작년 가을 외할아버지를 여의었을 때가 마지막이었군요. 몸소 상청을 찾아주시니 비통함 속에서도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요.



밤사이, 안인 듯 밖인 듯 경계가 흐릿하여 주저앉았다 일어섰다 오락가락하였지요. 묘연히 발돋움하여 관아 주변을 몇 바퀴째 돌다가, 아직 얼음 빠지지 않은 뒷산 대숲에 들어가 내아 기와지붕을 내려다보았어요. 울컥하여 무어라고 무어라고 혀 밑에 감춰둔 말을 외쳐보는데, 대나무 꼭대기에 매복 중이던 살바람이 되다 만 소리를 채가고 말았답니다. 몽중방황이런가요. 온 마을의 길들을 둥둥 떠서 헤매는 헛것이 진짜 저인 것 같았습니다. 아니, 진짜 저였습니다.



가도 가도 흙먼지와 아지랑이뿐인 요동 벌판을 내 눈으로 보았다.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 하늘 끝과 땅 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했다. 요동에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마냥 한바탕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경자更子년(1780) 여름의 일이었다. 조선 땅에 돌아온 뒤부터 조랑말 고삐를 잡고 맬 때마다 매양 감질이 났다. 부리는 말은 노쇠해 눈곱이 꼈고, 나서는 길마다 비좁고 굽었다. 말 잔등에 바짝 엎드린 채 비나 구름 사이를 휙휙 지나치던 경자년의 일이, 혹 장님이 꿈속에서 보았던 헛것만 같았다.



북경을 다녀온 사신이라면 연행기를 쓰는 것이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김창업이나 홍대용, 박제가 정도를 제외하면 판에 박은 듯 기술하는 내용이 비슷하다. 나는 연경에서 열하로, 다시 연경으로 정신없이 내달리며 보았던 일들을 시시콜콜히 풀어놓았다. 중국의 노래나 풍습도 사실은 나라의 치란에 관련된 것들이니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성곽과 궁실 구조라든지, 농사짓고 목축하는 일과라든지, 도자기 굽는 가마와 쇠 다루는 대장간의 일상도 하찮다 하여 빠트리지 않았다. 그 일체에서 이용후생의 길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용감한 과부는 단순히 개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절개를 인정받기에 부족하다 여겨 마지막 선택을 한다. 왕왕 한낮의 촛불처럼 무의미한 여생을 스스로 끝내버리고 남편을 따라 죽기를 비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여 물에 빠져 죽거나, 불 속에 뛰어들어 죽거나, 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기를 마치 극락에 들듯이 한다.

명분은 아름다우나, 목숨을 가벼이 다룸이 너무 지나치다. 나라에서도 붉은 정문을 내려 칭송하니, 방방곡곡에서 비바람에 삭아 빠개질 문짝과 꽃 같은 목숨을 맞바꾸는 결단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과부의 죽음을 장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작은아버지 소리 듣게 된 둘째 종간은 한술 더 떠 '골상이 비범하다'고 써놓았더라. 이렇게들 요량이 없어서야.

멀리서 어린놈을 궁금쩍어 하는 할아비를 위해서라도 생김생김을 생긴 대로 구체적으로 일러주면 좀 좋을까.

가령, 이마가 넓다든지, 툭 튀어 나왔다든지, 모가 졌다든지, 정수리가 평평하다든지, 또는 둥글다든지. 천리 밖에 나와 앉아서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말이다.

미덥지 않음이 다른 데서도 드러난다.


지난번 하인 편에 곶감 두 첩, 내가 손수 담근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와 쇠고기 장볶이 한 상자를 함께 보냈다. 두 아이 모두 거기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답이 없다. 맛이 어떤지, 입에는 맞는지, 한 놈이라도 자세히 알려주면 나 또한 그에 맞춰 계속 보낼지 말지를 결정하겠건만.



땅덩어리가 참말 둥글다면 이 강물도 공처럼 굴러 굴러 한곳에 가 모이지 않을까요. 엉터리없는 말인 줄 알지만, 그렇게 믿으면 그런 것이지요.

음양의 인연만 인연이겠는지요. 옷깃 스친 인연이 이 강모래처럼 쌓이고 쌓여 저마다 환희와 슬픔과 회한을 빚었겠지요.

그러니 무연재, 인연 없는 집이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아닐는지요.


저 글씨들처럼 이전의 저를 지우려 합니다. 비웠으니, 비었으니, 다시금 새로이 채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리하려고요. 모쪼록 그리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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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창비

2022-03-28

소설 > 한국소설

소설 > 테마문학 > 영화소설

해외 문학상 > 노벨문학상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나는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아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잠과 취기가 가셨다. 아내는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옆얼굴의 표정을 식별할 수 없었으나, 무엇인가가 섬뜩했다.

……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여보!"

나는 어둠 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올랐을 때에야 나는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를 매고, 셔츠의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내의 소름끼치게 담담한 얼굴, 굳은 목소리가 떠오른 것을 그다음이었다.

꿈을 꿨어, 라고 아내는 두번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요즘 채식 열풍이 분다는 것쯤은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된다.

물론, 절에 들어간 스님들이야 살생을 않겠다는 대의가 있겠지만, 사춘기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악몽 한번 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 남편의 만류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저 고집스러움이라니.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언니.

영혜의 낡은 검은 스웨터에서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영혜는 한번 더 언니, 하고 속삭였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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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영향력

저자 데이비드 예거

어크로스

2025-01-03

원제 : 10 to 25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 베이비붐세대에 이르는 윗세대들이 '요즘 애들'은 구제불능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 하지만 윗세대들이 현재 10세부터 25세 사이인 다음 세대가 무심함이나 분노, 걱정,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의욕과 열정에 가득 차서 세상에 공헌하겠다는 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소통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이런 세상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의욕에 넘쳐 스스로 알아서 일할테니 관리자의 업무는 더 쉬울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10대 청소년이 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더욱 행복할 것이다. …… 그리고 우리 모두가 힘들이지 않고도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관리자도, 부모도, 교육자도, 코치도 중요한 순간에 청소년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소년들은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은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하고 형편없다고 느끼며, 심지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 명백하고 뚜렷한 좌절감 때문에 청소년들은 한층 더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었고, 청소년도 어른들도 지치고 말았다.



멘토의 딜레마란 누군가가 한 일을 비판하면서도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척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지도하는 사람은 나쁜 선택지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니 진퇴양난이다. 아랫사람의 부진한 실적을 감수하거나(대신 상냥하게 대할 수 있다)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대신 냉정하게 굴게 된다) 선택지 중에 골라야 한다.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랫세대와 윗세대 모두 성장을 염두에 두고 소통을 시작했건만, 상호작용을 끝낼 무렵에는 양쪽 다 불만이나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 많다.



멘토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칭찬 샌드위치를 신봉한다. 칭찬 샌드위치란 아랫사람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을 온화한 칭찬 사이에 끼워서 전달하는 기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청소년들은 칭찬 샌드위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상사나 코치, 부모, 교사가 긍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멘토 마인드셋은 높은 기준과 높은 지원을 동시에 적용한다.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막을 수 있다. 동시에 높은 수준의 지원은 우리가 청소년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려준다. 청소년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그들이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위와 존중을 얻을 길을 열어준다. 이로써 청소년들은 자존감 부풀리기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여기는 명성을 획득한다. 그러면 청소년의 곤경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멘토 마인드셋이 가장 폭넓은 청소년 집단에게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 방식임이 수십 년에 걸친 과학 연구로 밝혀졌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누구와 친하게 지내라거나, 어떤 농담을 하라거나, 어떤 옷차림을 하라고 지시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많은 사람이 무시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어른의 뜻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의미 있고 존중받을 만한 역할을 할 방법을 찾아내는 주체적인 학습자가 되려는 욕구를 그들에게서 빼앗는 셈이 된다. 청소년들은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지위와 존중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 즉 명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발달과학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일상 사회생활에 흔한 보상과 처벌을 제시함으로써 근시안적으로 보이는 성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소년의 뇌가 사회적 보상(지위, 존중, 명성)을 바라고 사회적 실패(수치, 모욕, 거부)를 피하고자 한다면, 이런 동기를 건전한 발달을 이끌어낼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 청소년의 사회적 감수성은 그들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거나 나아가 이를 바꾸도록 도울 수 있는 학습 원동력을 고취한다. 탐험 학습(Expeditionary Learning, EL) 교육 모델의 성공에서 그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포용적 우수성은 GRE 같은 시험 점수 하나로 누군가의 공헌 가능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장점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공헌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청소년이 공헌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높은 기준과 높은 지원을 함께 제공하며 그런 잠재력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뒷받침한다면, 어떤 집단 출신의 청소년이라도 더 높이 도달하고, 더 많이 달성하며, 우리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동기와 의욕을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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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저자 김영진

길벗어린이

2021-01-20

유아 > 그림책 > 창작그림책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배 시간이 되었어요.

아이들은 나란히 서서 다 같이 세배를 했어요.

그린이가 절을 두 번 하려고 하자 어른들이 웃으며 말렸어요.

어른들이 한 사람씩 세뱃돈을 나누어 주며 말했어요.

"건강해라.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전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제야 숨 돌리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는 연휴지만 이제야 숨 돌려봅니다.

달달한 크림커피 한 잔 마시러 가야겠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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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진 2025-01-29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동화책이군요

하나의책장 2025-02-04 20:03   좋아요 0 | URL
설 연휴에 조카와 재미있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