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감정들이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하다면,

오늘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권합니다.






■ 영화 정보

제목: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감독: 피트 닥터

제작: 디즈니·픽사

장르: 애니메이션

개봉: 2015년

러닝타임: 102분





■ 영화 줄거리


열한 살 소녀 라일리, 그녀는 부모님의 직장 문제로 인해 낯선 도시로 이사하게 됩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섯 가지 기본 감정(기쁨, 슬픔, 분노, 까칠함(까칠), 그리고 소심함)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감정 본부에서 라일리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라일리를 지키려 애씁니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와 불안 속에서 감정들이 충돌하였고 기쁨이와 슬픔이가 본부에서 이탈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결국 중심을 잃은 라일리는 점점 무너져갑니다.

이야기는 기쁨이와 슬픔이의 예기치 않은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외면해왔던 감정의 의미를 되짚어줍니다.



■ 영화가 주는 메시지


주인공 라일리는 항상 기쁨만을 추구하며 살아오다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내면의 균형을 잃고 맙니다.

결국 영화에서는 슬픔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건넵니다.

감정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는 또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슬픔은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껴안을 때 진짜 위로로 나아갈 수 있음을 영화에서는 일깨워줍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감정 수업입니다.



■ 영화에, 책을 더하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김수현


타인의 기대와 기준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독여주는 에세이로 감정에 솔직해지는 과정을 따뜻하게 응원해줍니다.





■ 하나의 감상


가정의 달인 5월 첫날에 어떤 영화를 소개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좋았던 가족 영화 한편을 소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바로 『인사이드 아웃』입니다.


우리는 종종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에 스스로를 숨막히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감정들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조금씩 빚어내는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 시절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이유 모를 외로움이 하나둘씩 떠올랐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정하게 일깨워줍니다.

이는 숨기거나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고 돌봐야 할 내면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감정을 억압하는 공간이 아니라 슬픔과 두려움조차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은 곳이어야 합니다.

그 모든 감정들이 사랑받을 수 있을 때, 아이도 어른도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감정들이 겪는 모험은 결국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감정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품어야 할 존재입니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제 감정들과 약속해봅니다.

모든 감정과 함께 잘 살아보자. 서툴러도 괜찮다. 감정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잘 크고 있으니까.


+)

『인사이드 아웃』의 스핀 오프인 『라일리의 첫번째 데이트』란 작품도 있는데 5분도 안 되는 단편이니 꼭 보길 추천한다.

라일리의 남자친구가 라일리를 데려오기 위해 집으로 방문을 하게 된다.

아빠의 감정 중 버럭이가 "적색경보"부터 울리는데 모든 감정들도 "boy, boy."를 외치며 긴급 상황에 들어간다.

반면 조던의 감정본부는 스케이트 타고 난리가 났다.

거실에 남겨진 아빠와 조던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지 궁금하다면 꼭 한 번 보길 추천한다.

엄마와 아빠의 감정들이 너무나 볼 만하다.



■ 건넴의 대상


감정을 자주 억누르며 살아가는 분

슬픔이나 무기력함이 낯설고 두려운 분

감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싶은 모든 분

가족 간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열고 싶은 분

아이와 함께 감정 대화를 시작해보고 싶은 분




다음 주에도 마음을 어루만져줄 따뜻한 영화를 소개할게요.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남겨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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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동네

2025-04-11

원제 : Le Square

소설 > 프랑스소설

소설 > 세계문학 > 프랑스문학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말해지지 못한 것들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릅니다.




■ 책 속 밑줄


가만히, 아이가 공원 저쪽 끝에서 다가와 젊은 여자 앞에 섰다.

"배고파." 아이가 말했다.

남자에게는 대화를 시작할 기회였다.

"정말이네요, 간식 시간이네요." 남자가 말했다.

젊은 여자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조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처럼 잠시 쉴 때를 빼면, 평소에는 늘 여행을 다니지요."

"이런 데가 정말 딱이에요, 쉬기에는, 공원들이, 특히 요즘 같은 계절은요. 저는 공원 가는 게, 밖에 나와 있는 게 좋거든요."

"돈 안 들고, 아이들 덕분에 늘 즐겁고, 발이 넓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공원에서 가끔 말 상대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 공원에서 마주 앉은 남녀.

그들의 대화는 실은 과거와 감정, 관계의 불가해함에 대한 문장들이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 말은 곧,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지도 몰라."



제가 원하는 변화는, 우선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보는 거, 내 물건을 별거 아닌 것들이라도 가져보는 거, 내 공간을 방 한 칸이라도 가져보는 거예요.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가끔 가스오븐이 꿈에 나오더라고요.



제 평생에 한 번 있었던 일인데, 어느 날 더 살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배는 고픈데 그날 돈이 다 떨어져서 점심에 뭘 먹으려면 무조건 일하러 나가야 했거든요. 근데 다들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저 혼자만 그러고 살고 있는 거 같은 거예요! 그날따라 그러고 사는 데 적응이 안 되는 거 같고, 더 살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뭐랄까, 다들 쭉 그러고 산다고 해서 저까지 쭉 그러고 살 필요는 없겠다 싶었으니까요.



"그 공원에 가서 그렇게 행복을 느끼시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요? 계속 행복하셨나요?"

"몇 날 며칠을 행복했어요. 그럴 수도 있더군요."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했던 말이 바로 그거잖아요. 알고 보면 사람들은 행복을 못 견딘다는 거. 물론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막상 행복해지면 다른 걸 꿈꾸면서 괴로워한다는 거."



"그럼요, 물론, 하지만 그렇다면 뭔가 다른 거라도 있을 거 같거든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만 있는 뭔가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없는 뭔가가, 있을 거 같거든요."

"저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그쪽 분처럼 그렇게 더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당연한 게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그쪽 분도 이해가 되실 거예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살아 있는 거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희망을 안 가져도 되는 사람들이요. 저는 매일 아침 노래를 부르면서 면도를 해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확실히 희망과 관련해서는 보는 눈이 정말 없는 거 같아요, 저한테 보는 눈 같은 게 있다면, 그건 외려 소소한 일상 쪽, 거창한 어려움 쪽이 아니라 자잘한 어려움과 관련해서인 거 같고요. 하지만 어쨌든, 다시 말씀드리자면, 그쪽 분이 택하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완전히,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쪽 분이 당장 올여름부터 그 문을 열어젖히시리라는 것에는 완전히 확신이 들거든요."



"우리는 그 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이름도 없는 그 조용한 공원 말이에요."

"모든 것이 작고 단순했죠. 그런데도 그 공간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지는 곳이었어요."



■ 끌림의 이유


『동네 공원』은 오직 대화만으로 구성된 짧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짧고 단순한 말들 사이에 삶의 복잡성과 감정의 미묘한 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공원이라는 중립적인 공간에서 마주한 남녀는 삶의 외로움, 희망의 온도, 존재의 이유를 말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느리지만 그 여백 속에 상처와 위로가 스며들어 있어 그들 중 한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삶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말보다는 숨결, 설명보다는 감각.

책은 침묵과 여운으로 이야기합니다.



■ 간밤의 단상


책장을 덮고 난 후,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문장이 있습니다.

『동네 공원』이 바로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짧은 대화 속에 숨겨진 감정이 더 깊고 오래 남았습니다.


대학생 때, 한 장소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과외가기 전, 항상 들른 조그마한 카페가 있었는데 저도, 그분도 똑같은 자리에 앉다보니 처음엔 눈인사만 건네다 깊은 대화는 아니어도 서로 한 마디, 두 마디씩 건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누던 몇 마디와 어색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곧 입대하게 되었다는 그분은 훗날 인연이라면 여기서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덧붙이곤 초콜릿이 담긴 조그마한 상자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분과는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서로 이름은 주고 받았었습니다.

삶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대화와 무명의 관계를 통해도 어떤 결을 남깁니다.

『동네 공원』은 조용히 그 기억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한순간을 온전히 나눈 시간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 시간은 설명보다 감각으로 남고 말보다 공기로 새겨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늘은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그저 곁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더 신뢰하고 싶어졌습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관계의 힘, 책에서는 이러한 잔상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 건넴의 대상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곱씹고 싶은 분

조용한 위로와 감정을 찾고 싶은 분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하며 읽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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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책 DIGEST

5월 첫째 주, 책이 전한 깊이와 시선의 확장






■ 이번 주 <간밤에읽은책> 돌아보기


월요일 | 『문학의 쓸모』 – 앙투안 콩파뇽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학은 생각의 여백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도구임을 다시 일깨워준 책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48258987



화요일 |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양지호 엮음

고전에서 끌어올린 500개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짧은 문장들이 펼쳐내는 사유의 확장은 지혜의 지도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경험과도 같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49392873



수요일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과학적 상상력이 낳은 문학적 감정을 다룬 책으로 따뜻한 SF가 보여준 인간 중심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0616672



목요일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예술이 일상과 만나는 그 순간을 다룬 책으로 미술관을 지키는 경비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진심과 삶의 변화가 조용히 흘러나왔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1766611



금요일 |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삶의 무게를 다룬 책으로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곁에 둔 철학자가 직면한 생의 질문들. 조용한 감동과 사유를 남긴 여운 깊은 소설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2846596





■ 이번 주 <모든도서리뷰> 돌아보기


화요일 | 『팡세』 – 블레즈 파스칼

철학과 신앙, 인간 존재에 대한 파스칼의 깊은 고뇌가 응축된 잠언집. 읽을수록 경외와 성찰이 교차하는 고전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0052348



목요일 | 『글자 풍경』 –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너머의 언어적 미학을 다룬 책으로 글자의 구조와 디자인이 우리 삶에 어떤 이야기를 새기는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낸 산문집이었습니다.

디자인과 문학이 조우한 순간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2564723





■ 이번 주 <함께읽는시집> 돌아보기


수요일 | 정호승 『수선화에게』

삶의 슬픔과 희망을 따뜻하게 건네는 시로 수선화처럼 조용히 피어 있는 위로의 문장들이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852457275




■ 다음 주 추천 도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무엇이 정의로운가?

시장 논리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다시 묻는 책입니다.

다음 주, 가치와 윤리를 둘러싼 사유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번 주, 당신의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책은 언제나 삶의 곁에 머물며 말을 겁니다.

다음 주에도, 한 줄의 문장이 따뜻한 하루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독서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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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저자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25-04-30

원제 : Baumgartner

소설 > 영미소설

소설 > 세계문학 > 미국문학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를 뿐이다.




■ 책 속 밑줄



바웈가트너는 서재, 코지토리엄, 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자신의 2층 방 책상에 앉아 있다. 펜을 손에 들고 키르케고르의 가명들에 관한 논문 세 번째 장의 한 문장을 쓰던 그는 그 문장을 마무리하는 데 인용해야 할 책이 거실에 있다는 것, 어젯밤 거기 둔 채 침실로 올라왔다는 것이 기억난다.



우리가 어디 있죠?

어디? 흠, 우리는 물론 여기 있지, 우리가 늘 있는 곳에 - 우리 각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자신의 여기 안에 갇혀 있죠.



하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말하자면, 솔직히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고, 왜 하필이면 나냐, 하고 하늘을 향해 신음을 토하지도 않아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이 허구의 작품에서 전개되는 가상의 사건으로 인해 변화를 겪을 수 있듯이 바움가트너는 꿈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해준 이야기로 인해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이제 창 없던 방에 창이 생겼다면, 누가 알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창살도 사라져 마침내 바깥공기 속으로 기어 나갈 수 있는 날이 올지.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이제 곧 해가 땅과 만드는 각을 더 좁히며 기울어지면, 빛을 발하고 숨을 쉬는 것들, 밤이 내리면 점차 희미해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들의 유령 같은 아름다움이 해가 비추는 세계를 흠뻑 적시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 세부적인 것은 기억에 없지만, 한 가지,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고 피크닉 점심을 먹었던 일, 모래가 많은 땅에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보았던 일은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 끌림의 이유


죽음 이후의 삶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바움가트너』는 유독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아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이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요하게 묻는 이 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 간밤의 단상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날이었습니다.

바움가트너는 깜빡 잊고 까맣게 태워버린 알루미늄 냄비를 그저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을 끓이다 놓친 실수였지만 그 냄비는 그의 삶에서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었습니다.

독립해 처음으로 산 냄비였고, 바로 그 가게에서 애나를 처음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는 더 이상 곁에 없는, 평생 사랑했던 아내 애나를 떠올립니다.


삶은 어쩌면 이렇게나 담담한 얼굴을 한 채 사랑을 잃은 이에게 남은 시간을 건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움가트너는 그런 고요한 시간 속에서 상실과 사랑을 천천히 어루만집니다.

기억과 부재가 뒤엉킨 공간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서고 있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고 그 부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감정의 격랑 없이 흘러가는 서사이지만 오히려 그 잔잔한 결이 마음을 오래도록 울렸습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빈자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 건넴의 대상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분

조용한 위로가 필요한 밤을 보내는 분

폴 오스터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고 싶은 분




오늘은 바움가트너와 함께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보세요.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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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23년 11월

에세이 > 외국에세이

에세이 > 예술에세이 > 미술에세이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이었다.




■ 책 속 밑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하층의 경비원 배치 사무실 앞에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다. 1층의 무기와 갑옷 전시관 바로 아래에 있는 사무실이다. 놓여 있는 운송 상자들은 ㅎ여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 것도 있고, 캔버스처럼 폭은 넓고 두께가 얇은 것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위풍당당하고, 옅은 색의 가공하지 않은 원목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희귀한 보물 혹은 이국적인 야수까지도 담아 운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 보인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 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렵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전시관을 크게 확장한 다음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배경에 나오는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그런 것들까지 모두 셀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그건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많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해서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는데 우연히도 거의 그 숫자에 맞먹는 햇수 이전에 붓으로 창조된 사람들이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중략) 그러다 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진짜 중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비원의 시간 속에서 배웠다.



월요일은 미술관의 정기 휴관일(책이 출간된 지금은 매주 수요일로 정기 휴관일이 변경되었다-옮긴이)이라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관람객도 없어서 메트의 직원들이 각자의 은신처 밖으로 나온다. 메트는 2천 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데 오늘만큼은 많은 이들이 제 물을 만난 듯하다. 큐레이터들은 전시실 한복판에 서서 어느 유물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토론한다. 기술자들은 누군가와 부딪힐 염려 없이 예술품이 실린 카트를 이리저리 밀고 다닌다. 인부들은 그들의 실력을 믿고 편안해 보이는 보존가들의 감독하에 로프와 도르래로 조각상을 어떻게 들어 올릴지 몇 시간씩 계획을 세운다. 도처에서 전기 기술자, 공기조화 기술자, 페인트공(세밀한 붓이 아닌 롤러를 사용하는)들이 몰고 다니는 전동 리프트의 삐,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몇 직원들은 손님을 한두 명씩 데려올 수 있는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얼굴을 비춘다.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미술관의 그림들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매일 다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 끌림의 이유


스무 살 이후로 시간이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조급함이란 감정까지 덧씌워져 하루하루가 더욱 빠르고 버겁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더욱 멈추어 머무는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그림을 지키는 경비원입니다.

세계 최대 미술관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걸 스쳐 지나가야 하는 자리인데, 오히려 그 자리에서 멈추어 바라보는 삶을 배우게 되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그 자리에서 깊게 경험했던 인간적인 울림과 그림이 주는 느린 호흡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미술관은 그림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그 그림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 또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저자는 거대한 예술 작품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의 리듬을 잃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서 있기만 하는 단순한 직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르게 그림을, 사람을, 시간을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하루를 평가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시간을 살아냈는지가 아닐까 하고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지만 매일매일 묵묵히 쌓아올리는 시간들.

그것들이 결국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해 나간다는 것을, 새벽 공기처럼 맑게 깨달았습니다.


5월의 첫 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금 꺼내들었습니다.

새 계절의 문턱에 선 지금, 이 책은 제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중요한 건, 그곳까지 어떤 리듬으로 나아가느냐야."


삶의 흐름이 조급해질수록 우리는 멈추어 머무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멈추어 선다는 것은 조용히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멈춤이 아닌 깊어짐이란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추어 서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분

당신의 하루가 작품이라고 조용히 응원하고 싶은 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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