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창비

2022-03-28

소설 > 한국소설

소설 > 테마문학 > 영화소설

해외 문학상 > 노벨문학상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나는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아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잠과 취기가 가셨다. 아내는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옆얼굴의 표정을 식별할 수 없었으나, 무엇인가가 섬뜩했다.

……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여보!"

나는 어둠 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올랐을 때에야 나는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를 매고, 셔츠의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내의 소름끼치게 담담한 얼굴, 굳은 목소리가 떠오른 것을 그다음이었다.

꿈을 꿨어, 라고 아내는 두번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요즘 채식 열풍이 분다는 것쯤은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된다.

물론, 절에 들어간 스님들이야 살생을 않겠다는 대의가 있겠지만, 사춘기소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살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악몽 한번 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 남편의 만류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저 고집스러움이라니.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언니.

영혜의 낡은 검은 스웨터에서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영혜는 한번 더 언니, 하고 속삭였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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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영향력

저자 데이비드 예거

어크로스

2025-01-03

원제 : 10 to 25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 베이비붐세대에 이르는 윗세대들이 '요즘 애들'은 구제불능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 하지만 윗세대들이 현재 10세부터 25세 사이인 다음 세대가 무심함이나 분노, 걱정,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의욕과 열정에 가득 차서 세상에 공헌하겠다는 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소통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이런 세상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의욕에 넘쳐 스스로 알아서 일할테니 관리자의 업무는 더 쉬울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10대 청소년이 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더욱 행복할 것이다. …… 그리고 우리 모두가 힘들이지 않고도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관리자도, 부모도, 교육자도, 코치도 중요한 순간에 청소년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청소년들은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은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하고 형편없다고 느끼며, 심지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 명백하고 뚜렷한 좌절감 때문에 청소년들은 한층 더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었고, 청소년도 어른들도 지치고 말았다.



멘토의 딜레마란 누군가가 한 일을 비판하면서도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척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지도하는 사람은 나쁜 선택지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니 진퇴양난이다. 아랫사람의 부진한 실적을 감수하거나(대신 상냥하게 대할 수 있다)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대신 냉정하게 굴게 된다) 선택지 중에 골라야 한다.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랫세대와 윗세대 모두 성장을 염두에 두고 소통을 시작했건만, 상호작용을 끝낼 무렵에는 양쪽 다 불만이나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 많다.



멘토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칭찬 샌드위치를 신봉한다. 칭찬 샌드위치란 아랫사람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을 온화한 칭찬 사이에 끼워서 전달하는 기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청소년들은 칭찬 샌드위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상사나 코치, 부모, 교사가 긍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멘토 마인드셋은 높은 기준과 높은 지원을 동시에 적용한다. 높은 기준을 유지하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막을 수 있다. 동시에 높은 수준의 지원은 우리가 청소년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려준다. 청소년들을 진지하게 대하고 그들이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위와 존중을 얻을 길을 열어준다. 이로써 청소년들은 자존감 부풀리기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여기는 명성을 획득한다. 그러면 청소년의 곤경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멘토 마인드셋이 가장 폭넓은 청소년 집단에게 가장 효과적인 리더십 방식임이 수십 년에 걸친 과학 연구로 밝혀졌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누구와 친하게 지내라거나, 어떤 농담을 하라거나, 어떤 옷차림을 하라고 지시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많은 사람이 무시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어른의 뜻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의미 있고 존중받을 만한 역할을 할 방법을 찾아내는 주체적인 학습자가 되려는 욕구를 그들에게서 빼앗는 셈이 된다. 청소년들은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지위와 존중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 즉 명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발달과학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일상 사회생활에 흔한 보상과 처벌을 제시함으로써 근시안적으로 보이는 성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소년의 뇌가 사회적 보상(지위, 존중, 명성)을 바라고 사회적 실패(수치, 모욕, 거부)를 피하고자 한다면, 이런 동기를 건전한 발달을 이끌어낼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 청소년의 사회적 감수성은 그들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거나 나아가 이를 바꾸도록 도울 수 있는 학습 원동력을 고취한다. 탐험 학습(Expeditionary Learning, EL) 교육 모델의 성공에서 그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포용적 우수성은 GRE 같은 시험 점수 하나로 누군가의 공헌 가능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장점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공헌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청소년이 공헌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높은 기준과 높은 지원을 함께 제공하며 그런 잠재력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뒷받침한다면, 어떤 집단 출신의 청소년이라도 더 높이 도달하고, 더 많이 달성하며, 우리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동기와 의욕을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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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저자 김영진

길벗어린이

2021-01-20

유아 > 그림책 > 창작그림책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배 시간이 되었어요.

아이들은 나란히 서서 다 같이 세배를 했어요.

그린이가 절을 두 번 하려고 하자 어른들이 웃으며 말렸어요.

어른들이 한 사람씩 세뱃돈을 나누어 주며 말했어요.

"건강해라.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전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이제야 숨 돌리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는 연휴지만 이제야 숨 돌려봅니다.

달달한 크림커피 한 잔 마시러 가야겠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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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진 2025-01-29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동화책이군요

하나의책장 2025-02-04 20:03   좋아요 0 | URL
설 연휴에 조카와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회에 나가 처음 만나는 법

저자 장영인

북하우스

2025-01-24

사회과학 > 법과 생활 > 생활법률





회사에서 남모르게 상사의 괴롭힘을 받고 있던 A씨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싶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괴롭히는 탓에 아무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다, 상사가 높은 실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동료들과 관계도 워낙 좋아서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A씨는 인터넷에서 명찰처럼 생긴 녹음기를 발견하고 구매 버튼을 누른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상대방과 직접 부딪혀서 대화를 나누거나, 오해를 푸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회사에서는 그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안에서는 항상 갈등이 발생하고, 직장에서 생긴 문제들은 대부분 복잡하다.


비밀 녹음을 처벌하는 근거는 통신비밀보호법이다. 그런데 통신비밀보호법은 '도청'하는 것을 처벌한다. 즉 내가 들을 수 있는 대화가 아닌데도 녹음기 등의 장치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것을 처벌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신비밀보호법의 규정에 따르면 남의 대화가 아닌 내가 하는 대화는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녹음하더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C씨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오래 다닌 직장인이라 동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그런 C씨가 동료들에게 절대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퇴근 직후 다른 직장으로 다시 출근한다는 사실이다. 동료 중 아무도 투잡을 하지 않고, 왠지 회사에 투잡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인사고과를 불리하게 받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C씨는 내심 비밀로 해야 한다는 현실에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C씨가 하는 일은 집 근처 호프집에서 서너 시간 정도 서빙을 하는 것이 전부다. 회사와 동종 업체도 아니고, 근무 시간도 짧다. 얼마 전 결혼한 뒤 경제적인 책임감을 크게 느끼게 되어 젊을 때 많이 일해서 돈을 모으자는 생각으로 하게 된 것인데, 단지 열심히 사는 것인데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 서럽게 느껴졌다.


최근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고객이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홍보해주고, 그 홍보를 통해 실제로 매출이 발생하면 거래액의 일부를 수익으로 나누어주는 파트너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파트너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여 부수입을 얻는 사례도 많다. 이 중 어떤 종류가 되었든 본업이 아닌 활동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투잡이다. 투잡의 범위는 생각보다 아주 넓다.


실제로 많은 근로자는 투잡이 금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많은 회사가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투잡 금지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겸직금지 또는 겸업금지 조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겸직금지 조항은 불법인 걸까?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례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퇴근 이후 시간은 사생활의 범주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도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전면적·포괄적으로 겸직을 금지하면 이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부당하다. 다만 근로자의 겸직 활동이 무제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기업 질서에 해를 끼친다면 그 범위에서는 제한할 수 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J씨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최근에 다른 지역으로 취업하게 되어 직장 근처로 이사해야 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아닌가. 전셋값이 많이 떨어져 그렇다는 것이다. 불안해진 J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을 찾고자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그러던 중 주택에 다른 담보까지 설정되어 있어서 경매에 넘기더라도 받을 돈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선 적어도 상대방의 인적사항(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가 가진 재산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돈과 관련된 모든 법적 분쟁에서는 후자가 핵심이다.

많은 사람은 돈 받을 사람이 재판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재판에서 이겼다 해도 실제로 내 주머니에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린 사람의 통장에 있는 돈이나 그 사람이 가진 부동산 등 재산을 찾아서 강제로 가져오는 절차, 즉 '집행'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가 아무리 돈을 빌려준 내역이 있고, 심지어 재판에서 이겼다고 해도 상대방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거나 그것을 찾지 못하면 영영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전세 세입자나 임차인은 아주 유리하다. 위의 두 가지 정보를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모두 확보하기 때문이다. 개인 간 그 어떤 금전 거래보다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계약인 셈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데 의외로 확인하지 않는 정보가 있다. 바로 집주인이 실제로 집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모든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 정보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열람하면 확인할 수 있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결혼 준비가 한창인 A씨. 그런데 친구인 B씨가 당부하듯이 "혼인신고는 최대한 늦게 해! 알지?"하는 것이 아닌가? 결혼과 혼인신고를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A씨가 놀라면서 "왜 혼인신고를 미뤄야 하느냐?"고 묻자, B씨가 말하길, "연애 중엔 마냥 좋지? 결혼하면 서로 편해지고, 생활 습관 차이도 커서 엄청 싸워. 확 없었던 일로 물러버리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데? 혼인신고만 안 했으면 그냥 헤어지면 되니까 얼마나 편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 고민이 깊어진 A씨는 변호사를 찾았다.


이렇게 우리 법은 일단 성립된 혼인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위장 미혼'이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결혼을 고려하면서 혼인신고의 무게감을 제대로 알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은 중요하다. 혼인신고의 효과는 한마디로 '강력한 결합'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이것은 나와 배우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의 원가족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자녀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가가 가족에게 제공하는 제도적 혜택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다. 가족이 되면 재산을 가족 단위로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생계도 보호받는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 사이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결혼을 무르기 어려우니 살아보고 나서 혼인신고를 하라는 말이 돌곤 한다. 혼인신고를 하면 서로에게 애써 노력하지 않아 긴장감이 사라진다거나, 결혼 전에는 몰랐던 단점들을 발견해도 쉽게 헤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결혼 이력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헤어질 방법으로 혼인신고를 늦추려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혼인신고가 불러오는 효과는 막연히 헤어지기 어려워진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가족이 되어 국가의 제도권에 들어갈 때, 실제로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아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자.



K씨는 벌써 5년째 로펌에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손 그림부터 웹디자인, 편집디자인까지,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자로 통한다. 그런 K씨의 최대 걱정은 바로 생성형 AI의 등장이다. 인공지능에 필요한 디자인을 간단히 설명하기만 하면 몇 초 만에 결과물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K씨와 동료들은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웬만한 주니어 디자이너의 작업물보다 완성도가 높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K씨에게 인공지능은 장애가 아닌 기회였다. 그는 이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AI를 이용하면 더 많은 디자인을 더 빨리 생산해낼 수 있겠는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아직 한가지 고민이 남았다. AI가 디자인한 결과물을 그대로 이용해서 업무에 이용해도 저작권 등에 문제가 없는 걸까?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I이 등장한 일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란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기술이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이미지 제작도 가능하다. 사용자가 텍스트로 프롬프트(생성형 인공지능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지 자연어로 설명하는 행위)만 입력하면, 그 즉시 어울리는 이미지는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 적용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이나, 웹사이트까지도 만들어준다.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었던,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져온 창의성의 영역마저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각의 꼬리를 물며 아이디어를 확장해가는 방식의 작업도 가능하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수초 안에 완성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 활동 영역은 그림, 글쓰기, 작곡, 프로그래밍 등 분야를 가리지 않으며, 그 수준도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비전문가도 AI 툴을 활용하여 수준급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창작물은 저작권법에 따른 규율을 받는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하면서 관련 법적 쟁점도 날로 화두가 되고 있다. 과연 인공지능으로 만든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물을 활용하여 스스로 학습한 뒤 만들어낸 결과물은 어떠한가? 인공지능 기술이 워낙 최근에 등장한 기술이라 아직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판단받은 사례도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인공지능만으로 제작한 콘텐츠에 저작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콘텐츠를 생성하는 원리는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것을 토대로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것인데, 이 데이터에는 타인의 저작물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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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팔레트 명화의 색
저자 알 구리
EJONG(이종문화사)
2015-08-03
예술/대중문화 > 미술





회화를 직면하였을 때 작가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작업은 어떻게 해야 독자들이 경험하는 실제 색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묘사할 수 있는가이다. 화가들은 그림 속에 있는 의자는 파란색이라는 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란색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다르고, 위에서 언급한 상상속의 의자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그림과 실제로 본 것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있는 특정한 파란색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는 좀 더 정확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의자가 프탈로 블루(phthalo blue)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어느 맑은 여름날 오후의 하늘색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완전히 다른 두 파란색)? 언어는 보는 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매체이다. 단어를 통해 색을 상기시킬수 있는 쉬운 해결책은 없다.

색의 신비로움과 불확실성을 작업의 근간으로 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한 두 예술가들이 있다. 첫 번째 작가 이반 올브라이트(lvan Albright, 1897-1983년)는 색이 지닌 영적인 힘과 심리적 영향력을 굳게 믿었다. 그는 지각이 색의 경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반대로 그것이 관람자와 작품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데 그의 긴 작업생애를 바쳤다. 미술학교에서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작가였던 그는 ˝시각. 청각 그리고 감각이 색의 측면을 [예술 작품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올브라이트는 1920년대부터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수많은 공책에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들과 철학적 의문사항들을 기록하고 그 페이지를 팔레트의 테스트 견본으로 사용하였다. 올브라이트가 가장 매료된 현상은 잔상이었다. 그는 종종 단색을 응시하고나서 흰색의 종이를 바라보는 실험을 통해 망막에 여전히 남아 지각되는 색채적 반향 혹은 잔여 이미지의 색을 식별하는데 시간을보내곤 하였다.
이반 올브라이트는 말빈(Malvin)이라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말빈은 이반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심리적으로는 개연성이 없는 스타일의 작업을 하였다. 여기서 색과 또 하나의 색인 보색은 그의 전기적 삶, 공예의 전통에서 가족의 역할 및 차이를 지각하는데 있어서 색의 역할을 재현하고 암시하는 은유적 자화상이 되었다. 올브라이트는 잔상이 항상 그들 스스로를 겹치고 있고 무의식적으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이해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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