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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다행이야 - 엄마와 나, 둘이 사는 집에 고양이가 찾아왔습니다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박귀영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10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고양이의 인생은 우리를 빠르게 추월해간다. 그걸 알면서도 역시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 이별하는 날이 찾아와 복받치는 눈물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메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헤쳐놓은, 담장을 넘나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물, 길고양이들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이 이렇다.
요즘은 그 인식이 변화해 길고양이들의 밥을 직접 챙겨주는 캣맘이 등장하긴 했지만, 타인의 사유지 혹은 차에서 밥을 챙겨주는 일부 캣맘의 이기적인 행동들로 인해 길고양이들에 대한 인식 또한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런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보게 되었고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의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동물은 처음부터 잘못이 없다.'
사실 집고양이로 품는 순간, 무거운 '책임감'이 주어지기 때문에 밥은 챙겨줘도 길고양이들을 집고양이로 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여건이나 상황이 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결국은 그 책임감까지 지고 싶진 않은 것도 이유면 이유일 것이다.
허나 길고양이에게 간택당하거나 지나치지 못하고 집고양이로 품게 된 경우도 분명 있다.
난 그 이야기를 한 책을 통해 접하게 된다.
『함께여서 다행이야』는 실제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로, 어미 길고양이는 물론 집 화단에 낳은 새끼 고양이들까지 집고양이들로 품게 된 그 과정을 담고 있다.
고양이를 키운 경험은 없지만 고양이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그 여운까지도 참 따뜻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글쓰기와 다도라는 두 바퀴로 인생을 꾸려온 사람이다.
1956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일본여자대학 문학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세계 각지의 풍물과 풍속을 소개하는 [주간아사히]의 인기 칼럼 ‘데키고토로지’의 취재기자로 활약했다. 9년간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1987년에 『노리코입니다』를 출간했으며, 이 책이 1987년 TBS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다른 책 『전생으로의 모험-르네상스의 천재 조각가를 따라서』도 호평을 받으며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어머니의 권유로 스무 살 때 우연히 시작한 다도는 지치고 힘든 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큰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스무 살 때 다도를 시작해 현재까지 40년 넘게 차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2010년 오모테센케의 교수 자격을 얻었으며 모리시타 소텐이라는 다명을 가지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풍부한 식견에서 우러나온 섬세하고 정확한 맛 표현과 음식에 대한 철학을 담은 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5년간 다도를 해오며 느낀 점을 그려낸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은 2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2018년 영화 [일일시호일]로 개봉됐다.
Ⅰ 만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려고 했다.
잠시 우편함을 확인하러 가던 엄마(저자의 엄마)가 급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
이전에 방충망을 부서뜨린 전력이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에 새끼 세 마리를 낳은 것이었다.
원고로 먹고 사는 나(저자)는 가뜩이나 약속한 단행본 원고가 써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내일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무심하게도 단박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키우던 금붕어가 어항 밖으로 뛰어나와 바싹 말라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남쪽 마당은 엉망진창으로 짓밟혔고 우리집 주변에서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가 흘러 들어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길고양이었으니 나이 지긋하신 엄마께서 좋아할 리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동물애호협회에 가봤지만 보호시설이 꽉 차 있을뿐더러 보호 순서를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만 무려 이백 마리나 된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두달 후에 사진을 찍어 오면 입양을 연계시켜준다 했는데 이말은즉슨 두 달을 케어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니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절대 돌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엄마는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따금 어미 고양이인 길고양이가 그들에게 하악질을 하며 새끼들을 보호하였고 젖을 물렸다.
그리곤 잠시 사라지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새끼 고양이들은 일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Ⅱ 간택
뼛속까지 애묘인인 사촌 사치코와 미도리 외숙모는 이미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 때문에 맡을 순 없었지만 출석도장을 찍듯 매일같이 들렀다.
그들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사랑하는 지인들까지도.
생명을 키우면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 행복했던 만큼, 이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오나 싶게 슬픔이 왈칵 밀어닥친다. 귀엽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늙어가고 있다……. 고령이 된 이후의 상실은 분명 타격이 클 것이다. 그 쓸쓸함을 견뎌야만 할까?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없는 편이 좋다…….
사치코가 마련한 화장실에 볼일을 보지 않은 고양이를 이상하게 여겼는데 선풍기를 꺼내러 간 2층 안쪽 창고방에서 악취가 엄청남을 느끼게 되었다.
어미 고양이가 배탈이 났는지 그곳에서 일을 본 것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화장실을 마련한 사치코에게 더이상 못참겠다는 말을 꺼내니 사치코가 입을 열었다.
"노리코 언니, 고양이는 말이야, 개하고 달라서 길들일 수가 없어. 사람이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줘야 해."
사치코가 화장실을 구석으로 옮기고 가리개를 만드니 그제야 어미 고양이가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쭉.
그렇게 아기 고양이들은 생후 삼주를 넘기고 있었다.
어느 날,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물고 가출을 시도하려는 일이 발생했다.
순간, 엄마는 외쳤다. 안 된다고!
그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엄마의 마음은 정해졌구나, 정해졌어.
그렇게 어미 고양이는 '미미'가 되었고 어느새 윤기나는 털을 가진 집고양이가 되고 있었다.
"미미짱, 달라졌네. 완전히 자리를 잡았어. 집고양이 다 됐네. 분명히 동네 길고양이들이 떠들어대고 있을 거야. '우리랑 한패일 때는 쥐처럼 꾀죄죄했던 미미가 말이야, 지금은 새하얘져서 곱디고운 집고양이가 됐다더라.'"
새끼 고양이들의 이름도 정해졌다. 다로, 지로, 구로, 시즈짱, 나나.
Ⅲ 가족
예전에 새끼 고양이를 옹벽 위에서 내렸던 때, 엄마는 문득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빠가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를 비오는 날 발견했었다고 한다.
곧장 할머니에게 키워도 되냐고 부탁했지만 호되게 혼나고선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가봤는데 성냥개비 같은 하얀 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빠의 기억 속 새끼 고양이를 데려온 걸까…….
미미와 다로와 엄마와 나.
이 네 마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나날도 매 순간 흘러가 언젠가 전부 과거가 돼버릴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때 무슨 기억을 떠올릴까?
……한밤중 부엌에서 다로가 사료를 먹으며 내는 '까드득까드득' 소리. 툇마루 볕에서 뜨개질을 하는 엄마의 무릎담요 자락에 파고든, 봉긋한 다로의 형체. 잠든 다로의 목에 감긴 미미의 새하얀 앞다리. 그리고 잠든 내가 덮고 있는 깃털이불 위를 미미가 살며시 걸으며 내는 바스락바스락 소리……. 어떤 순간도 잊지 못한다.
미미, 다로.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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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간택을 받아 집사가 된 일화를 담은 이 책은, 일기를 보는 듯한 편한 느낌이라 우리에게 굉장히 따뜻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고양이를 키웠던, 키우고 있는 애묘인들이 이 책을 펼친다면 분명 본인의 고양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서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렇듯 고양이와 관련된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잠시 돌봐주었던 길고양이들이 자연스레 생각난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1-2년 동안 많은 추억을 쌓았었다.
겨울이 거의 끝나가고 봄이 오는 시점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옥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눈에는 굉장히 어려보였다.
첫 만남부터 경계심없이 다가왔던 아이였는데 배고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생선을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리곤 건강하게, 오래 오래 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호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실 나는 고양이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나 애정이 전혀 없었다.
'아, 길고양이가 지나가네.', 딱 이 뿐이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바로 미국에 갔다온 이후부터였다.
미국에서 잠시 고모집에 머물렀을 때, 고모집에서 오랫동안 키운 고양이, sebastian이 있었다.
첫 날, 시차에 적응 못하고 곧장 잠이 들었었는데 다음 날 아침, 고모가 놀랍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낯가림이 심한 sebastian은 가족 이외에 사람들에게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고 한다.
하악질을 하거나 아예 자리를 피해 숨어버리는데, 어젯밤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워 자고있는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내 품으로 쏙 들어가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곤 sebastian은 가족들에게만 악수를 하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가 shake it, shake it, hand를 말해보라고 권했다.
사실 할퀴지 않을까 겁이 나 망설여졌는데 sebastian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건네며 말했다. "shake it, shake it, hand."
그 때, 느꼈다. 아, 고양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구나!라는 것을.
젤리, 젤리같은 마시멜로를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발바닥이 조심스레 내 손 위에 턱 얹어졌다.
그리곤 슈렉에서 나오는 고양이와 같은 눈망울을 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계기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나는 그렇게 옥상에서 처음 만난 호떡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무데서나 밥 먹게 할 순 없으니 마당 한 켠에 밥 먹는 곳을 만들어주었고 호떡이는 이후 친구 마시멜로를 데려오게 되었다.
(그레이, 베이지 두 마리가 더 있긴 하지만 두 고양이들은 6개월 정도 밥만 먹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참 신기했다.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저 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기에 외쳤다. "호떡아, 이리와."
그렇게 부르면 고양이들처럼 총알같이 튀어오지 않고 뚱땅뚱땅 뛰어서 내려오는데 그 순간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의 타임라인은 다르다.
함께 한 시간이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지만 그 몇 달동안 하루종일 붙어 있어 정이 진득하게 들었던건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나서 sebastian이 현관 옆 창문 틀에 자리잡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그 말이 참 먹먹하게 들렸는데 17년이나 살았던 sebastian은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몇 년 뒤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전화를 통해 sebastian의 소식을 들었을 때, 고작 몇 달밖에 함께 하질 않았고 내가 키운 고양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절로 흘렀고 몇 주 동안 참 먹먹했다.
반려동물의 한평생을 함께 한 반려인들에게는 반려동물과의 이별 자체가 얼마나 크게 와닿을지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에세이지만, 그 속에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겨있다.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주는 것보다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애묘인은 물론이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권해주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