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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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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저자 윤성철

21세기북스

2020-01-29

과학 > 천문학 > 우주과학





인간은 별의 먼지에서 탄생했고 우주의 진리는 평범한 인간 안에 있다.



지금도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오면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그 자리에서 새까만 도화지에 콕콕 박혀있는 별을 보기 위해.


고대인들에게 우주는 신의 영역이었고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우주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주는 영원하지만 무한한 공간이 아니며 인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우주 변방의 생명체일 뿐이지요.

과거에는 우주의 상태를 생명이라 여겼다면 지금은 그와 반대인 죽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의해 고대인들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며 질문을 던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주의 상태를 죽음으로 전제한다면 하나의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우주가 죽음의 공간이라면, 어떻게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기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주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탄생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행성은 항상 별 형성 영역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별 주변을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을 별과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인간 또한 우주 역사의 일부라 일컫으며, 우리 몸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는 우주 그 자체인 동시에 별에서 온 먼지라고 말합니다.

점 하나에 불과했던 태초의 우주는 빅뱅을 통해 138억 년이라는 긴 역사를 시작합니다.

빅뱅은 우연적이고 단회적인 사건으로부터 우주와 지구, 생명이 탄생했음을 말해줍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우주에는 외계 생명체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첨단 과학기술이 밝혀낸 우주의 신비 속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천문학 명저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입문서와도 같은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를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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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유전자 - 풍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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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과거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잘 생각해보자.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이 굴복당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찰스 다윈은 말했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요,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


빠르게,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문명이 시작된 지 고작 1만 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다 보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조차 없던 존재론적 위기에 생각하게 된다.

『창조적 유전자』는 인류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를 이용하여 문명을 어떻게 개척해왔는지 과학자의 관점에서 숨겨진 비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저자, 에드윈 게일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케임브리지, 노팅엄, 코펜하겐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으며 런던 세인트바설러뮤 병원에서 교수로 지냈다. 이후 1997년 연구진과 함께 브리스틀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1년 은퇴했다.

현대사회에서 당뇨병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우리의 몸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 유전자의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Ⅰ 대탈주


표현형은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의 이야기다.

당뇨병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를 두고 볼 때, 당뇨병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변화중인 종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책에 따르면 신들은 필멸의 존재를 창조하다 싫증이 나 미완성으로 내버려두었고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이를 마무리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처음엔 에피메테우스가 직접 나서 사냥하는 짐승은 굶어서도 안 되지만 먹잇감을 멸종시켜도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자연의 균형에 주의하는 능력을 갖춰주었는데 주어진 임무에 몰두한 나머지 인류 차례가 되었을 때 능력과 소질이 하나도 남질 않았었다.

"다른 짐승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나 인간은 벌거벗고 신발도 신지 않고 이부자리도 없고 무기도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흙 속에서 낮의 빛으로 나오기로 한 날이 이미 찾아왔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 사람들에게 문명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그는 빼먹은 것이 있으니 바로 정치의 기술이었다.

플라톤은 그가 빼먹은 정치의 기술을 출발점 삼아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대화를 풀어간다.

플라톤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강조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우리가 불 없이 무력한 것은 불에 의존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8만 년 전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아시아와 유럽에 널리 퍼져 공존하다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났다.

우리 조상들이 능력이 출중해 끝까지 살아남아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약 4-5만 년 전 고고학 기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증거란, 바로 행동 측면의 현대성이다.

기술 혁신, 예술적 표현, 약자에 대한 돌봄 그리고 망자에 대한 존경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인류학자 리처드 클라인이 말하길, "5만 년 전에 일어난 행동 변화는 고고학자들이 지금껏 찾아낸 것 중에서 가장 극적인 행동 변화이며 설명을 필요로 한다."라고 했다.

진화론자들에게도 뇌의 대변화는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우리가 뛰어난 뇌를 가지게 된 것은 굴절적응에 의한 것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진화한 형질이 알고 보니 다른 목적에도 유용했던 것이다.

굴절적응 가설에 따르면 뇌의 대변화와 관련된 양자 도약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연산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종 내에서 벌어진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쟁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조금 더 시간을 앞서가 보려 한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여성이 투표권을 얻고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이 득세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산업국가 노동자들은 물질적 빈곤 수준에서 연명했지만 소비사회가 처음으로 짧게 꽃핀 곳이 바로 미국에서였다.

「소비의 경제 원리」를 출간했던 컬럼비아대 마케팅학 교수 폴 나이스트럼은 일가족 소득의 50퍼센트 이상을 식비 지출로 사용하는지 여부를 빈곤의 기준으로 삼았다.

예컨대 1796년 영국 가계 예산에서는 73퍼센트를 차지했던 1919년 미국 가계 예산에서는 38.2%를 차지했다.


소비사회는 '사람들이 돈을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졌지만 원하는 것만큼 많이 가지지는 못한 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

부는 열망을 낳고 열망은 욕망을 낳았다. 소비의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노동일이 짧아져 여가라는 현상이 등장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상이다. …… 기계와 기계 생산 과정이 노동 시간뿐 아니라 여가 시간까지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무기력과 게으름이 남녀 모두에게서 뚜렷이 드러나며, 걷기보다는 차를 타려는 성향, 선수로서보다는 관중으로서 스포츠에 참여하려는 성향, 모든 형태의 책임과 노력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커지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이스트럼은 자신의 정의에 따라 1929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200만 가정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1933년 시카고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졌으며 1941년에는 미국인 4500만 명이 양호한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식품을 섭취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추산하였다.

제2차세계대전때, 불황에서 건져진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때의 독일처럼 조직화되고 간소화되고 통제된 경제체제를 이루었다.

이는 산업화, 농업 둘 다 혜택을 입었고 밀 생산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과거 경작 면적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인류는 인구 과잉과 기근의 위협을 맞닥뜨렸으나 식량 생산의 혁명이 해결사로 나서주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 휴일을 만끽하였고 소비자 표현형이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다.

미래를 전망하자면, 지금의 맬서스 휴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고정된 질소를 생산할 수 있어도 처리하는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은 유한한 자원이며 채굴해야 하지만 훗날 인 정점이 찾아올 것이라 대부분이 예측하고 있다.



Ⅱ 공존


다윈은 자연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과 육종가들이 실시하는 인위선택을 구별했었다.

무의식적 선택은 강인하거나 온순한, 포획 상태에서 번식할 수 있는 개체가 나머지 개체보다 많아진다는 뜻이며 인위선택(체계적 선택)은 초기 가축화 과정에 작용한 무의식적 선택과 대조되었다.


가축화에 이르는 첫번째 큰길은 식구이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한다.

과거 고양이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쥐잡기 능력 덕분이었다. 물론 고양이는 독거성 동물인지라 위치를 반대로 생각해도 무방하긴 하다.

개는 서열을 받아들이고 무리 행동과 비언어 신호 수용 능력이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가축화에 이르는 두번째 큰길은 솥단지를 통해 이어져 양, 염소, 젖소, 돼지가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최초 식용 동물은 밤에는 우리에 갇혔을 테지만 낮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유목과 방목이 나뉜 것은 일부 무리 동물이 더 많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축화에 이르는 세 번째 큰길은 젖 이외의 이유로 가축화된 짐승이 포함된다.

예컨대 소는 수레를 끌고 말과 낙타는 짐을 날랐다.

처음 양이 가축화되었을 때 털이 짧았지만 곧 긴 털로 진화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은 공격성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한다.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선제 공격과 대응 공격을 구분한다.

선제 공격은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거나 개인적 경쟁자를 괴롭힐 때 계획적이고 의도적인데, 대응 공격은 위협적 상황에 애해 무계획적이고 비의도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의 법체계에서도 대응 공격과 선제 공격을 비슷하게 구분한다.

공격성은 일부 영장류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는데, 인간의 행동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선제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공격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대응 공격의 대부분은 비생산적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진화하였다.

그렇기에 조화롭게 살아가고 공동의 위협에 맞서 함께 행동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능력이 무의식적으로 선택되는데 어쩌면 우리가 더 길들여진 변종을 향해 진화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한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든, 사회적 계층 사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든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들려는 성향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유전적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한 방향을 가리키는 유전자 변이가 일부 구성원들에게 우세하긴 하지만 널리 퍼지면 결국 자멸의 계기가 된다.

그렇기에 인구집단 내에 불관용이나 복종으로 이어지는 특징들 사이에는 균형이 존재하며 이는 평형다형성이라는 동적 평형이 생겨난다.


우리는 사회적 삶의 제약들을 토대로 서열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양성을 통해 사회적 삶을 영위해간다.

다양성이 존중받으면서도 협력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다.

하지만 구현될 확률이 매우 드문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맬서스에 대한 언급은 생략했는데 짤막하게 얘기해보려고 한다.

"도덕적 미덕을 낳으려면 도덕적 악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생각보다 암울해 보이는데, 이는 우리가 결코 출산율을 통제하지 못하리라는 것과 식량 생산이 인구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서구의 이점은 기술에 있었다. 소총, 포탄, 증기기관, 제조업 등에 맞설 수 있는 사람 나아가 나라는 드물었다.

또한 생물학적 우위도 이유인데 과거 어느 때보다 덩치가 크고 건강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빈민가 주민들에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은 거인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깐.

이렇게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부유한 백인 남성들은 노동자 계급의 열망과 정치 권력, 여성의 발언권 확대, 비유럽 민족의 부흥 등을 이유로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당장의 근심거리, 출생률 하락도 있었다.

1929년 워런 톰프슨은 러시아가 풍부한 토지 덕분에 20세기 말이면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따라잡을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나머지 세게에서는 맬서스 요인이 세계 인구의 성장을 좌우할 것이라 생각했다.

서구의 부상에 일조한 것은 두 번의 맬서스 휴일이었다.

첫번째 휴일은 14세기 인구 감소에서 비롯했으며 농업 생산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숨쉴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두번째 휴일은 해외 이주와 식량 수입으로 인구 압박을 해소했을 때 도래하게 되었다.



유전자의 뜻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208593457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덴마크의 식물학자인 빌헬름 요한센이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이라고 제안했다.

유전적으로 똑같은 콩이라도 토양과 빛의 조건이 다르면 다르게 자라지만 그 후손들을 같은 조건에서 심으면 크기와 형태가 다시 같아진다는 사실을 그가 밝혀낸 것이다.

부모가 얻은 형질이 자식에게 전달될 거라 믿은 유전학자들과는 달리 요한센은 유전 단위가 밀봉되어 전달되며 부모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멘델의 믿음을 입증하였는데, 당시 이에 대한 단위 이름이 없었기에 요한센은 유전자라고 부르게 된다.

유전자는 집단이 되어 유전형을 형성하는데, 특정 환경에서 유전형이 표출된 것을 표현형이라 불렀다.

여기서 표현형의 의미는 방금 만난 사람의 모든 특징을 뜻한다.

즉, 환경의 체에 걸러지고 인생 역정의 손에 빚어진 유전자의 표현이다.

눈동자 색 등 표현형의 일부 요소는 고정되어 있으며 이를 단순 형질이라 부른다. 눈동자 색은 파란색이거나 파란색이 아닌 둘 중 하나이기에 범주적이다.

이외에 성격, 지성 등은 복합 형질이라 표현하며 여러 유전자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으므로 계측적이다.

표현형은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의 이야기다.


우리는 길들었을까?

교배되진 않아도 여러 세대를 거친 무의식적 선택은 결국 교배와 같은 결과를 달성하기에 충분했다.

사회적 압박에 대한 순응, 서열의 수용 등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구성원의 내면에서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옳지 않음이 분명한데도 자기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기도 한다.

또한 다양성을 우대하지만 다양성이 삶을 위협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짓고 우리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결론이다.

우리는 길들어지지 않았다.


인문책이기도 하지만 과학책이기에, 가볍게 읽기에는 내용이 묵직하다.

전체적으로 읽은 뒤, 글쓰기 노트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돌아가 훑어 읽고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을 정도로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만큼 '아, 좀 읽었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내용을 매우 알차고 좋았다.

인류의 역사를 깊이있게 돌아보며 수많은 예시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P.S. 「창조적 유전자」와 「인류의 여정」 또한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인류의 여정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06598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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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의 정의 및 발견


뉴클레오타이드의 중합체인 두 개의 긴 가닥이 서로 꼬여있는 이중나선 구조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 물질의 일종이다.

세포 핵에서 발견되어 핵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지만 미토콘드리아 DNA와 같이 핵 이외의 세포소기관도 독립된 DNA를 갖고 있는 것이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 DNA의 이동의 편리를 위해 DNA가 엉겨붙으며 굵직한 구조체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염색체라고 한다.

또한,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 그 자체유전자라고 한다.

DNA는 스스로를 복제하고 유전정보를 통해 유전자 발현이 일어나게 한다.

DNA가 직접 유전자 발현을 실행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발현 과정은 DNA에서 전사된 전령 RNA(mRNA)가 지닌 코돈에 의해 진행된다.

DNA는 1869년 스위스의 프리드리히 미셔가 처음 발견하였고 이후 DNA는 유전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1944년 오즈월드 에이버리의 형질전환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물질임이 확인되었고 1952년 앨프리드 허시와 마사 체이스의 허시-체이스 실험으로 확정되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네이처지에 실은 논문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DNA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모형을 짜맞추다 실제 구조에서 겉과 속을 뒤집은 형태의 모형을 만들어서 발표했는데, 소수성 염기가 물과 접촉하고 친수성 인산들이 안에 들어간 데다가 인산끼리 서로 반발하는 힘이 강해 구조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화학적으로 검증된 DNA의 안정성과는 배치되는 형태였다.

사실 왓슨과 크릭은 당시에 본인들이 직접 실험을 할 수도 없고, 다른 학자들로부터 데이터를 얻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종이를 잘라 모형을 만들어 끼워맞추다가 적절한 구조를 만들어내면, 나중에 누군가가 실험으로 증명할 것이라는 발상을 했다.

이는 관찰 및 실험으로 입증하여 자연의 현상을 탐구하는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따라야 하는 당시 과학자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그러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가졌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찍었었는데, 이 결정적인 증거자료를 프랭클린과 모리스 윌킨스가 일하던 킹스 칼리지 런던 산하 랜달 연구소에서 얻게 된다.

왓슨과 크릭은 윌킨스에게 논문 공동저자가 되자고 권했지만 윌킨스는 거절했다.

왓슨과 크릭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출판되지 않은 자료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각주로 간단하게 언급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프랭클린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녀의 자료를 이용한 것 때문에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녀와 앙숙이었던 동료 과학자 윌킨스가 프랭클린의 사전 허락 없이 회절사진을 분석하고 왓슨과 크릭에게 제공했던 것이었다.

어떠한 데이터도 없었고 DNA 구조에 대한 그들의 추론과 직접 그린 DNA 구조, 그것도 무슨 화학물질이 들었는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선만 그려놓은 것이 전부였던 논문을 완성한 왓슨과 크릭은 네이쳐 편집장이었던 학장에게 부탁하여 결국 2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결과적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왓슨, 크릭, 윌킨스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1962년에 수상한다.

(DNA 구조 발견에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58년에 37세에 난소암으로 요절하여 수상하지 못했다.)

왓슨은 노벨상 수상 이후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 이중나선의 발견 과정이 상세히 알려지면서 공로에 대한 논란이 더 커졌다.

실험 데이터를 모두 뽑아냈던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업적이 예측과 결과 분석을 수행한 왓슨과 크릭보다 훨씬 높고 왓슨과 크릭은 그 두 사람의 연구를 사실상 도둑질하여 재구성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던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프랭클린의 영광을 도둑질했다"는 비판을 고스란히 받으며 끝없이 해명과 자기변호를 해야만 했다.



▶ 유전자의 정의 및 발견


유전자 gene 는 유전의 기본단위로 모든 생명체가 세포 내에 가지고 있는 유전체 DNA의 특정 부위에 위치하는 정보서열로서 세포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단백질 등을 생산해낼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으며 각 개체 고유의 특징을 나타내게 할 뿐만 아니라 복제를 통해 다음 세대의 자손에게 유전된다.

현대 유전학에서 유전자는 게놈 서열의 특정한 위치에 있는 구간으로서 유전형질의 단위가 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게놈 서열 안에서 유전자는 DNA 서열의 일부분을 이루며 조절 구간, 전사 구간, 기타 기능이 부여된 구간 등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유전자를 대립형질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대립형질은 유전자 서열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형질의 한 종류이다.

유전형질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되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유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고어 멘델(Gregor 의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형질의 발현이 통계적으로 예측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실제로 전달되는 유전인자 genetic element 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1950년대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멘델은 완두콩을 이용한 7년 간의 실험을 정리하여 1865년 <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소위 멘델의 유전법칙을 제시하였으나 이때는 아직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했고 대신 특질 trait 이라는 용어로 유전형질의 매개체를 묘사하였다.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1911년 덴마크의 식물학자인 빌헬름 요한센이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이라고 제안했다.

유전적으로 똑같은 콩이라도 토양과 빛의 조건이 다르면 다르게 자라지만 그 후손들을 같은 조건에서 심으면 크기와 형태가 다시 같아진다는 사실을 그가 밝혀낸 것이다.

부모가 얻은 형질이 자식에게 전달될 거라 믿은 유전학자들과는 달리 요한센은 유전 단위가 밀봉되어 전달되며 부모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멘델의 믿음을 입증하였는데, 당시 이에 대한 단위 이름이 없었기에 요한센은 유전자라고 부르게 된다.

유전자는 집단이 되어 유전형을 형성하는데, 특정 환경에서 유전형이 표출된 것을 표현형이라 불렀다.


 창조적 유전자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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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1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있는 분야의 도서네요. 일독하려 합니다.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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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난 달, 국제학술지에서 100일간 냉동 보관했던 쥐의 신장을 다른 쥐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과거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만들었던 영화를 보면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이야기같았겠지만 지금은 곧 다가올 이야기로 느껴진다.

특히 생명공학의 기술 발달은 그 끝이 어딜지 몰라 한편으로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생명공학 기술이 불러올 충격에 대비하여 과학의 발전사를 더 넓게 인문적 시선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안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 전주홍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한다.

호기심과 교차적 아이디어가 혁신적 과학연구의 밑거름이며, 패러다임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를 양성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저자’로서 논문을 쓰고 ‘독자’로서 논문을 검토하고 ‘실험자’로서 가설을 세우며 실험하고 ‘예술가’로서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토론자’로서 자료와 해석을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는 과학자를 희망한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제도혁신기획단 위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위원, 제4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연구윤리심의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음 HEART


스페인 한 동굴에 남겨진 후기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보면 고대인들이 심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벽에 그려진 매머드의 모습을 살펴보면 겉모습뿐만 아니라 몸 안에 있는 심장까지 그린 것을 볼 수 있는데 희한한 것이 몸속 장기 중 오직 심장만 그렸다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심장에 관한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구애하지만 그는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이슈타르는 하늘의 황소를 보내 응징하게 된다.

길가메시와 친구 엔키두는 날뛰는 황소를 죽여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태양의 신 샤미쉬에게 제물로 바친다.

하늘의 황소가 죽었다는 사실에 신들은 엔키두를 죽이는데, 이때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가슴에 손을 얹어 심장이 뛰는지 확인부터 한다.

엔키두의 죽음에 충격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여기서 나오는 심장은 신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길가메시와 엔키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물이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 짓고 영혼과 마음을 담고 있는 장기였다.


이집트는 바다와 사막에 둘러싸여 있어 외세를 막기에 유리한 지리 조건을 갖춘 덕분에 통일국가를 유지하면서 내세의 삶과 영혼의 영원함에 관한 고유한 사상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예컨대 부유층이 사망하면 <사자의 서>라는 파피루스 책을 미라와 함께 석관에 넣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영생의 신인 오시리스 앞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으며 그 심판이란 심장의 무게를 재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무덤의 벽화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자칼의 머리를 가진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죽은 자를 안내하고 따오기 머리를 가진 지혜와 정의의 신 토트가 서기를 본다.

저울 위에는 토트의 아내이자 정의의 여신인 마트를 상징하는 깃털이 올려져 있는데 이 저울이 심장의 무게와 평형을 이루면 죽은 자의 영혼은 내세인 두아트로 갈 수 있다.

반대로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죽은 자는 사자, 하마, 악어가 합쳐진 모습을 한 괴물 암무트에게 잡아먹힌다.

이렇듯 살아생전의 마음과 행실이 고스란히 담긴 심장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사후에도 심장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카밀로 골지는 우연히 발견한 염색법으로 뇌 조직을 염색하여 신경세포가 그물망 모양으로 연결된 체계를 이룬다는 신경그물설을 제안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가 개발한 염색법을 개선해 신경그물설의 오류를 밝혀, 신경세포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신경세포설을 주장했다.

서로 다른 이론이지만 이들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실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염색법을 개발한 공로와 모든 신경 연구의 근간이 된 센경세포 이론을 밝힌 공로를 모두 인정해 준 것이었다.

이후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전달물질 수용체가 발견됨으로써 신경세포의 활성이 스냅스라는 신경세포 사이의 접합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나타난 것을 알게 된다.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해 여러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는데,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감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생물학적 발견은 마음도 생화학적 작용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통증 PAIN


통증이란, 자극이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픈 느낌을 의미한다.

통증은 몸의 이상을 알려주기도 하고 회피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경고 장치, 보호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2006년, 한 소년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나트륨 이온 채널의 기능이 사라져 통증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통증이 무감각해진 소년은 지붕에서 뛰어내릴 때 입은 부상으로 14살 생일을 맞이하기도 전에 사망하게 된다.

이렇듯 통증에 대한 경험과 연상은 위험을 회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날 의료 서비스를 찾는 주된 이유가 바로 통증으로 인한 것이다.

이때 통증을 완화하거나 차단하기 위해 진통제와 마취제를 주로 사용한다.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와 비마약성 진통제로 구분되는데,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자극하며 통증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다만, 효과는 크지만 오남용의 위험이 있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중추 억제 작용이 약하고 흔히 염증을 억제하여 진통 효과를 낸다.

마취제는 진통제와 달리 감각의 소실을 유도하여 통증을 못 느끼도록 하는 약으로 수술이나 시술 전에 통증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전신마취의 경우 한시적으로 의식과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만든다.

그렇다면 과거 진통제와 마취제가 없는 삶은 어땠을까?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출혈과 감염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수술은 엄청난 통증을 동반해 말그대로 잔혹 그 자체였다.

16세기 파라켈수스의 <외과 수술>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외과의사가 톱으로 무릎 아래 부위를 절단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수는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고 환자는 엄청난 통증에 몸부림치며 뒤로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취제조차 없으니 당시 사람들에게 수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보스턴에 가면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발견한 업적을 기리는 에테르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에테르 흡입이 통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처음으로 입증되다."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1846년, 에테르 돔이라는 이름이 붙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수술 극장에서 모턴이 에테르 마취에 성공을 거두게 되어 지금까지 10월 16일을 '에테르의 날' 혹은 '세계 마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모턴은 화학자 찰스 잭슨의 조언에 힘입어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연구하는 데 매진하였고 1846년 9월 30일 에베네저 프로스트를 에테르로 마취한 후 무통 발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어 에테르의 날에 열린 공개시연에서 존 워렌은 모턴이 마취한 20세 환자 애벗의 목에 난 혈관종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는데 수술이 끝난 뒤 의식을 찾은 애벗은 어떤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1846년 11월, 헨리 비글로는 이 공개 시연 결과를 《보스턴 의학 및 외과 학술지》에 발표하는데, 그 덕분에 모턴의 발견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에테르 마취를 발견한 공적은 모턴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해 보이나 얽히고설켜 있다.

16세기 파라켈수스는 에테르를 닭에게 주입해 마취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다만 수술에 활용할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모턴은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임상적 가치를 증명해냈다.

여기서 에테르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자 명성과 금전적 보상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에테르 마취 연구를 조언한 찰스 잭슨은 특히 욕심을 드러낸 인물 중 한 명인데, 1846년 모턴과 잭슨이 공동명의로 특허를 발급받았지만 잭슨의 금전적 욕심이 과해지면서 둘의 관계는 틀어지게 된다.

조지아주 출신의 의사 크로포드 롱은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 에테르를 흡입하고 유흥을 즐기게 되는데, 그때 고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주목해 마취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에테르를 이용해 한 환자의 목에 있는 낭종을 고통 없이 없애게 된다.

시기 상 2년 앞선 것인데,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우선권과 공적을 인정받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최초 발견이라는 우선권과 공적은 누가 가지게 되었을까?

현대 의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오슬러는 "과학에서 공적은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최초로 납득시킨 사람에게 돌아간다."라는 프랜시스 다윈의 말을 인용해 모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턴은 금전적 이익에 골몰해 상당 기간 에테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 과한 모턴의 행동에 대해 미국의사협회는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잭슨 또한 유럽 의학계에 호소해 프랑스 과학원으로부터 마취제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긴 했으나 정치적 술수가 깊이 개입된 결과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롱은 술책도 쓰지 않고 상업적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또한 현대 산부인과의 아버지인 제임스 마리온 심스가 롱의 성과를 자세히 조사한 논문을 발표에 큰 찬사를 보냈고 결국 역사적 평가를 거쳐 사후 빛나는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조지아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뽑혀 국회의사당 스태추어리 홀에 그의 조각상이 전시되었으며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롱이 처음 에테르 마취에 성공한 3월 30일을 국가 의사의 날로 지정하게 된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생물학은 여러 학문과 만나 독특하고 복잡한 과학으로 발전하였다.

무엇보다 그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질병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과학자 대부분이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과 역사를 놓고 보면 뭔가 상이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과학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책을 통해 과학자에게 역사적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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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뼈, 드러난 뼈 - 뼈의 5억 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 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
로이 밀스 지음,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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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뼈는 인류의 유산인 동시에 전설이며, 세계 최고의 건축자재다."


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층 속에 묻힌 뼈는 수백만 년 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해주고 동굴 속에서 발견된 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준다.

뼈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 자재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숨겨진 뼈 드러난 뼈』를 통해 인간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인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들려주고 있다.


저자, 로이 밀스는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간 조직, 특히 뼈에 대해 연구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한 바 있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수부외과(Hand Surgery) 펠로우십을 마쳤으며, 현재 UCLA 정형외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수부외과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뼈의 역사적?문화적 측면에 관심을 가져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49개국을 여행하며 연구했다.

환자를 진료하거나 연구를 하지 않을 때는 가드닝, 자전거, 조깅을 하면서 자신의 뼈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




Ⅰ 숨겨진 뼈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의사 겸 철학자인 갈레노스는 뼈가 정자로 만들어졌다고 썼는데, 그 이유는 색깔이 하얘서였다. 그로부터 1000년 후,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겸 의사 겸 다작 작가인 아비센나는 뼈가 차갑고 건조하므로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관념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비센나는 중요한 원칙을 하나 언급했는데, 그 원칙에 따르면 뼈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인체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도 훌륭한 조언으로 남아 있다.


뼈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면 인체에서 분리한 뒤 화학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5개의 탄소 원자가 2개의 산소, 1개의 질소, 9개의 수소 원자와 결합하여 프롤린이라는 아미노산이 생성되는데, 이는 인체에서 합성되기도 하고 단백질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후 특정 세포들이 아미노산 혼합물을 이어 붙여 인체 내에서 가장 흔한 단백질인 콜라겐 분자를 만든다. 뒤이어 수많은 프롤린 분자에 많은 수소-산소 부속물들이 부착되면 분자 사슬이 일정 간격으로 구부러져 나선형으로 변신한다.

콜라겐 분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세포 속에서 조립되는데 그중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도 포함된다. 콜라겐 분자가 생성되면 조골세포는 이 분자를 세포막 밖으로 밀어내 조골세포 사이의 미세한 공간에 배치하며 여러 가닥의 섬유를 생성한다. 콜라겐 섬유들은 기계적 중첩과 화학적 결합을 총동원해 단단히 잠겨 있다.

힘줄과 인대의 주요 성분인 콜라겐은 인장강도가 매우 큰데 대개 우리는 뼈가 뻣뻣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뼈의 주성분인 콜라겐은 신축성이 있고 질기다.

그렇다고 뼈가 구부러지거나 납작하게 눌리지는 않는다. 이는 콜라겐 그물 위에 칼슘 결정이 수북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체질량에서 뼈는 약 15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그중 약 3분의 1이 콜라겐이고 3분의 2가 칼슘-인 결합체의 결정이다.


유아의 정강뼈 길이는 약 8센티미터였다가 성인이 되면 약 6배쯤 길어진다.

평생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는 뼈지만 태아기 초부터 청소년기 말까지 모든 차원으로 확대된다.

개인의 뼈가 성장하는 정도는 고유한 유전적 구성의 영향을 받곤 하는데 대개 키 큰 어린이들은 키다리 부모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식생활 개선, 의료 발달 등으로 부모의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고도 크는 경우도 많다.

성장판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도 확인하여 아이가 조금 더 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경우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뼈의 말단에서 연골모 바로 아랫부분을 지칭하는 성장판은 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성장기 동안 새로운 뼈세포를 만들어 연골모를 앞으로 밀고 나간다.

이는 청소년기 말이 되면 궁극적으로 소진되어 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소년보다 소녀들의 성장판이 더 일찍 사라진다.

앞서 성장판이 열려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듯이 성장판이 사라지는 시기는 엑스선 촬영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정형외과 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는 어떤 성장판이 살아 있는지를 관찰해 사람의 나이와 골격이 성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유추할 수 있다.

신속히 성장하는 기간 동안 새로 자란 부분은 골절에 취약해 심한 부상은 성장판을 손상시켜 손상된 부위와 부상 입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초기 해부학자와 의사들은 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원후 150년경인 갈레노스의 시대부터 1500년 후인 르네상스기에 이르기까지 이성이 관찰을 뛰어넘는다는 관념이 지배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예정 수술이 사혈만큼이나 치료 효과도 없었고 해부학을 이해할 필요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교회에서 인체 해부를 금했으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중세 해부학자들은 갈레노스와의 이견 차이가 생기면 결과는 싹 무시한 채 갈레노스 편에 서거나 갈레노스의 시대 이후 해부학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갈레노스는 당시 곰의 넙다리뼈를 보고 인간의 넙다리뼈 또한 곡선을 이룬다고 썼는데, 해부학자들이 갈레노스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인간의 넙다리뼈는 직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곡선을 이룬다고 결론내리며 합리화했었다.

다행히 인쇄술의 발명으로 암흑시대의 종지부를 찍을 순 있었다.

1493년 최초의 인체 해부도가 등장했으며, 이후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학문이 융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관찰 과학이 확립되고 최초의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자주 해부하지 못했어도 범죄자의 시신을 사용한 인체 해부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갈비뼈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흉곽과, 갈비뼈를 들어낸 후 흉곽 안에서 바라본 흉추를 그린다. 위에서, 아래에서, 앞에서, 뒤에서, 앞을 향해 바라본 2개의 어깨뼈를 그린다."

다빈치가 메모장에 이렇게 기록했듯이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이 사상 최초로 원근법과 명암법의 개념을 이해하였다.

세부 사항을 강조한 분위기는 인체해부학이 정확히 묘사된 해부학 책의 출판으로까지 이어져 해부학 지식이 널리 보급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700년, 뼈는 모든 인체해부학의 시각적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외과 의사였던 윌리엄 체슬던은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치다 강의 노트를 엮어 「인체해부학」을 출판했는데 부분적으로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쓰여져 있어 100년 동안 외과해부학의 믿을 만한 참고서로 자리매김했었다.

이후 사진술의 등장으로 수천 가지 의학적 상태를 정확히 기록하게 되었으며 컬러사진술과 전문화된 렌즈들 그리고 엑스선의 등장으로 살아 있는 뼈를 촬영하는 데에 이르렀다.




Ⅱ 드러난 뼈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자연사박물관과 인류학박물관에는 지금으로부터 320만 년 전 지구상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 루시의 뼈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골격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후 잇따른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루시는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적 발견 중 하나를 선사했으니, '인류의 첫 번째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으며, 커다란 뇌를 갖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드물게 온전한 표본의 속하는 루시의 골격은 성별, 뇌의 크기, 보행 자세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갈비뼈는 12쌍이 아니라 5쌍인데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각각 1개밖에 없고 골반도 반쪽만 있어 무심한 관찰자에게는 감흥이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뼈들은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고, 나머지 뼈는 어디에 있을까?"

화석과정학자는 루시의 뼈를 본다면 이러한 의문을 품을 것이다.

(고생물학의 하위 분야인 화석과정학은 화석이 생겨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시간과 자연의 변화로 인해 뼈가 말해주는 이야기는 혼란스러움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화석과정학자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임무이다.

공기와 햇빛에 노출된 뼈는 속도가 훨씬 느릴 뿐 피부나 내장과 마찬가지로 분해되기 마련이다.

수분이 증발한 후, 뼛속 지방은 1-2년 이내에 분해된다. 이후 표면에 균열이 생기면서 조각조각 떨어져나가 결국은 푸석푸석한 조각으로 쪼개진다.

만약 뼈가 손상되지 않았다면 기온, 습도, 광도, 동물의 크기에 따라 6-15년 동안 진행되는데, 동굴에서 발견된 골격에서 볼 수 있듯이 직사광선에서 보호된 뼈는 수백 년 동안 보존될 수 있다.

또한 한 곳에 온전히 자리 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하이에나가 뼈를 통째로 삼켜 상당히 먼 곳으로 이동한 후 뒤처리를 할 수도 있고 까마귀도 뼈를 둥지에 보관했다가 몇 년 후에 뼛조각을 뿌리기도 하니 뼈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거나 이상한 장소에 모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고생물학자와 인류학자는 이러한 뼈들을 어떻게 발견할까?

첫 번째 방법은 뼈가 많은 곳으로 가서 땅을 파헤치는 것이다.

예컨대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 LA의 라브레아 타르연못, 도처의 공동묘지와 원주민 흙무덤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강둑과 북아메리카 한복판인 침식과 노출이 만연한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뜻밖의 행운이다. 건설업자가 작업 도중에 유물을 발견하게 되면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달려와 샅샅이 뒤지는 것이다.

이렇듯 루시는 골격이 불완전하지만 계획과 행운이 어우러진 소중한 발견물이다.

아마 루시의 나머지 뼈는 노출되어 침식되었거나 떠내려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뼈에 불과하지만, 뼈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수많은 정보를 안겨주었다.

임자가 세상을 떠난 후 펼쳐진 뼈의 두 번째 삶은 46억 년에 걸친 지구의 역사 중 최근 5억 년간의 정보를 제공해줬다.

또한 뼈는 최근 10만 년에 걸친 인류 발달 및 문화사가 기록되어 있다.

뼛속에 들어 있는 정보에 비하면 우리가 지금껏 뼈에 배운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많은 것을 발견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극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오래된 뼈의 소유를 둘러싼 호사가와 전문가 사이의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알려진 종에 더욱 완벽한 골격이 발굴되는 것과 새로운 종의 발견을 기대하며 일각에서는 비옥한 화석 출토지를 보호하자고 제안하곤 한다.

그렇다면 멸종한 동물의 뼈에서 추출된 DNA를 통해 고생물을 복제하거나 재도입하는 날이 다가올까?

정답은 '동물이 얼마나 오래전에 멸종했는가'에 달려 있다.

DNA는 화석화를 견딜 수 없다는 도그마가 지배하고 있지만 연구자들은 더 오래된 공룡의 화석에서도 DNA 단편을 추출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기다란 DNA 조각이 추출될 수 있다는 설에 매우 회의적이다.


드러난 뼈의 다른 능력, 즉 인류의 문화를 기록하는 뼈의 미래는 어떨까?

호사가들을 제외하면 뼈가 바늘, 머리빗 등의 재료로서 집권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많은 박물관은 인류 문화의 아이콘을 영구적으로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미래의 연구자들은 현대에 만들어진 뼈 단추나 화살촉을 발견해 연구할 기회는 없겠지만 문화적 표지로서 새로운 역할을 하는 빈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뼈의 아름다움과 효율성과 무한함은 아무리 해를 거듭해도 퇴색하지 않을 것이며 많은 면에서 경외와 찬탄의 대상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간단한 퀴즈를 내보려고 한다.

스스로 자라고 가벼우며 내구성이 좋은 것은?

바로 뼈이다.


우리는 체내에 숨겨진 뼈를 신뢰하며 든든하게 여긴다.

이렇듯 뼈는 세계 최고의 구조적 버팀대이며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원소인 칼슘을 저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뼈의 내구성과 편재성은 드러난 상태를 숨겨진 상태만큼이나 흥미롭게 만든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살아 있는 상태에서 보기 힘든 만큼 불가사의한 측면 또한 있다.

무엇보다 외부로 드러난 뼈는 인체의 든든한 버팀목 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인류 문화의 탁월한 기록자가 되어준다.


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뼈에 관한 교양서는 처음인만큼 읽는 내내 신비로움과 흥미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국어, 영어, 역사를 제일 좋아하는 문과생이었던 나는 지구과학만 애정했을 뿐 다른 부분은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독서를 통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공부 이전에 책으로 이렇게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나, 과학 좋아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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