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하다 - 거짓과 미신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힘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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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은 없어서는 안 될 학문이다.

직감이 아닌 과학적 사실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학이 꼭 필요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Ⅰ 과학을 믿을까, 직감을 믿을까?


v 직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

v 이성적인 사람이 잡아먹혀 버리기 쉬운 이유

v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스스로 엄청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유


-> 우리는 직감과 과학을 구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서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직감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해 보라, 직감에 의한 일상생활을.

몇 분만 얘기해도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읽는다던가, 생화학적 측정 기기가 없어도 맛을 보지 않아도 감에 의해 요리 하나 뚝딱 만들어 낸다던가 그리고 공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생일 선물로 양자 역학 책을 선물하면 상대방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예측할 수 있다던가.

이렇듯 우리의 감은 참 대단하기에 직감을 신뢰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감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가끔 믿을 수는 있겠으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맨손으로 손목시계를 수선할 수도 없고 맨손으로 고장 난 컴퓨터를 수리할 수도 없다.

눈으로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가? 눈으로 우주를 관찰할 수 없기에 수학공식과 망원경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직감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신뢰성을 필요로 하는 현대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Ⅱ 팩트를 바탕으로 논쟁해야 한다


과학과 직감을 구별할 수 없거나 아예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는 문제 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오롯이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에 누가 믿건 안 믿건 과학에게는 전혀 상관없기 일이다.

코로나에 대해 황당한 기사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에서는 소의 소변을 마시면 코로나가 완치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녀 그것을 마을 사람들끼리 마신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와 관련하여 말도 안 되는 완치법들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세상에는 수많은 논쟁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평화로운 공존은 논리적, 이성적으로 기본 규칙을 준수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공동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종류의 논거를 신뢰할지 먼저 합의해야 한다.

민주적인 토론의 경우 건설적인 기여와 파괴적인 행동을 구별지어야만 하는데, 절대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 궤변들이 꼭 나오곤 한다.

이번 대선 또한 초반부터 다들 네거티브하다 보니 신뢰할 만한 후보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이 옳다고 느끼며 자신들이 우수하다고 확신에 차 그런 네거티브를 펼친 것이겠지만 우리는 사실 그러한 견해를 인정할 순 없다.

어떤 의견들은 단순히 팩트를 무시한 모호한 감정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의견들의 차이를 구분할 때에만 기능할 수 있는데, 이렇기에 과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어떤 단어의 정의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으로 민주주의, 페미니즘 등이 이에 해당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누군가 무엇을 믿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설파한다면 그것은 과학이라 할 수 없다.

혼자서만 알고 있는 사실이 옳다고 판단하는 성급한 확신은 진실 추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즉, 과학은 우리 모두 공동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는 활동이다.




Ⅲ 논리학은 여전히 옳다


괴델이 불완정성 정리를 발표한 이후부터 수학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수학적 논리학을 일상에서 부르는 '논리'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

무언가 자명하고 간단할 때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논리학은 수사학의 한 분야로서, 옳은 논증을 궤변과 구별하게 해주는 학문이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 O

'기발한 생각은 언제나 모순에 부딪힌다. 내 생각은 모순에 부딪힌다. 따라서 내 생각은 기발하다.'             -> X

전자는 맞고 후자는 틀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논리적 추론을 하는 '삼단논법'에 몰두했었다.

반면 수학적 논리학은 일상적 발언에 국한된 학문이 아니다.

수리 논리학자들은 특수 문자와 기호를 사용한 형식 언어를 개발해 새로운 원리를 도출해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단순한 기본 규칙을 따르지만, 마지막이 되면 의외의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수리 논리학이 현대 정보과학(컴퓨터 과학)에 특히나 중요해지게 된다.

주어진 논리 규칙에 따라 특정한 수학적 진술을 증명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는 컴퓨터 프로그램, 특정 코드가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건에서 올바른 결과를 제공하는지 증명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즉, 이 모든 것이 형식 논리학 덕분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인 진술이 있고 거짓인 진술이 있다.

우리는 참이지만 결코 증명할 수 없는 진술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Ⅳ 일반화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v 두루 일반화하는 것이 문제인 이유

v 체리의 까마귀스러움을 테스트해야 한다면?

v 칼 포퍼와 더불어 착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 무언가를 증명할 수 없을 때, 대신 반박해 볼 수는 있다.


규칙을 찾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일반화'이다.

다수의 까마귀를 관찰한 뒤, 그들의 색이 모두 검은색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규칙을 내린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

이것이 바로 여러 개별 사례에서 일반적인 원리는 이끌어내는 귀납적 추론이다.

반대로 일반적인 원리에서 개별적인 경우를 유추하는 것을 연역적 추론이라고 한다.

귀납법, 연역법, 귀추법은 모두 다른 추론들로, 신뢰성에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까마귀가 검고 제이슨이 까마귀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이슨은 분명히 검을 것이다.

주어진 전제를 의심할 순 있겠지만 앞서 열거한 두 가지 가정이 진실이라고 인정되면 제이슨이 검다는 것은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연역적 추론이다. 셋 중에서 연역적 추론이 가장 명확한 추론이다.


그럼 귀추법은 어떤 추론일까? 귀추법은 연역적 추론과 달리 매우 불안정한 추론이다.

믿을 만한 진실이 아닌 그냥 있을 법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지 않은 아이가 독감이 유행하는 기간에 고열과 감기 증상을 보이면 독감일 수도 있다.

'-수도 있다'라고 했으니 이는 물론 추측일 뿐이다.

이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게 되면 더 확실해지는데, 이후 다시 연역적 추론을 적용하게 된다.

'독감에 대한 항체가 있는 사람은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이 아이는 독감에 대한 항체가 생겼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귀납적 추론 역시 논리적 정확성을 놓고 볼 때 신뢰할 순 없다.

큰 나무 하나가 있다. 까마귀 나무라 불릴 정도로 까마귀들이 둥지를 틀고 앉아있어 오래전부터 매일같이 보았다.

그런데 내일 새빨간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 둥지 위에 앉아있을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매일같이 앉아있던 까마귀들이 어느새 참새로 둔갑해있을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귀납법은 경험적 지식에 근거하기에, 모든 종류의 경험적 지식은 신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신뢰해야만 한다. 왜일까? 다른 수가 없다.

개별 사례를 바탕으로 귀납적으로 일반 규칙을 추론하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귀납적 추론을 신뢰하는 이유는 과거부터 개별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규칙을 도출했고 이러한 규칙들이 잘 통했기에 미래에도 잘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귀납적인 결론이긴 하다.

농부가 모이를 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닭은 농부가 자신에게 매우 잘해준다고 생각하는 확신에 들어차게 된다.

그렇게 그 확신이 절정에 달한 순간 농부는 닭을 닭고기로 만들어버린다.

지난 몇백 년간 행성들의 궤도 운동에 근거하여 다다음 주 목요일에 일어날 행성의 운동을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할 순 없다.

모든 기술 발전이 장기적으로 인류의 삶의 질을 높였다고 말한다면 지금까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이미 인간이 일으킨 환경 문제는 인류의 존속에 위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순진하게 귀납법을 믿는다면 앞서 얘기했던 닭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온 인류는 우정을 나누고 협동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너른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과학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내는 세심하게 연결된 진리의 망이다.


사실 내게 과학이라 함은 단순히 학창 시절에 배우는 학문에만 불과했다.

딱 거기까지였는데, 대학교 때 칼 세이건의 책을 계기로 과학의 의미를 확장시켰으며 지금은 낯설면서도 굉장히 익숙한, 더 알고 싶어지는 학문이 되어버렸다.

(이런 마음가짐을 중, 고등학교 때부터 가졌어야 했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하는 것,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이듯 우리는 과학을 놓치고 살 순 없다.

어느새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합리적 증거가 무시되고 진실 또한 왜곡되다 보니 우리는 음모론을 시작으로 가짜 뉴스에 계속해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합리적 증거에 도달할 수 있게끔은 해준다.

그것이 과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 우리의 다음 생각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두고두고 영향력을 발휘한 착상, 역사에 길이 남은 정신적 영감, 대단한 진리는 어느 날 '별로 나쁘지 않은데?' 싶은 작은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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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하라 2022-04-0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04-0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즐거운 독서 많이 하세요 ^^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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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과학은 분명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한 분야인 것 같다.

특정 소재를 가지고 펴낸 세계사가 요새 줄지어 출간되면서 역사책에 한동안 푹 빠져 지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신간 소개에서 보게 된 균과 관련된 과학서에 대해 흥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책을 펼친 나는 균이 만드는 생태계의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저자, 멀린 셸드레이크는 식물학, 미생물학, 생태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분야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갖춘 생물학자이자 작가이다.

스미소니언 열대 연구소의 전임 연구원으로 파나마 열대 우림의 지하 균류 네트워크를 연구했으며, 이 연구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열대 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인간 외 유기체 사이의 관계에 매료되어 균류생물학, 아마존 민족식물학의 역사 등을 연구한다.




버섯과 곰팡이가 퍼져나가는 방법


사람의 눈은 수백만 가지의 색을 구분하고 귀는 오십만 가지의 톤을 구분한다.

인간의 감각 중 시각, 청각보다 더 뛰어나게 발달한 것이 있으니 바로 후각이다.

무려 코는 일조 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분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코는 매우 섬세한 기관으로 식물, 곰팡이, 동물 모두가 비슷한 수용체로 화학 물질을 감지한다.

동물이 냄새를 맡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자라도 후각 상피에 닿아야 한다.

(사람의 경우, 그 막이 코 안쪽 윗부분에 위치해있다.)

냄새 분자가 수용체와 결합하면 신경이 자극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식별된 화학물질에 반응하여 뇌가 개입하게 된다.

코나 뇌는 갖고 있지 않지만 곰팡이도 여러 가지의 다른 기관을 갖추고 있다.

표면 전체가 후각 상피와도 같아 분자 하나만 수용체와 결합해도 무수한 신호를 보내 곰팡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수많은 화학 정보의 밭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버섯 그리고 곰팡이는 자기들끼리 의사소통할 때 이러한 화학 물질을 이용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냄새를 통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분자를 이용하는 곰팡이의 대화법을 엿볼 수 있다.


트러플은 오래전부터 섹스와 연관지어졌다고 한다.

나 또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트러플 truffle 이라는 말은 여러 언어에서 '고환'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태초에 트러플은 동물을 한껏 들뜨게 만들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래야만 종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러플이 동물을 흥분시킬 순 있지만 동물이 트러플을 흥분시킬 순 없다. 마치 일방통행하는 것과도 같다.

트러플은 조상 곰팡이가 만들어낸 가장 덜 복잡한 의사소통의 경로로, 곰팡이의 균사가 균사체 네트워크가 되는 데 두 가지 핵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바로 가지치기와 융합이다. '입으로 준비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균사가 얽혀드는 과정을 융합이라 한다.

균사가 가지 치지 못하면 하나의 균사가 여러 개의 갈라지지 못하는데, 반대로 균사가 다른 균사와 융합하지 못한다면 복잡한 네트워크로 확장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융합 전에 먼저 다른 균사를 찾아야 하는데 이 때 서로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귀소성이라 한다.

자기정체성은 중요치 않다. 유전적으로 충분히 유사하다면 언제든 다른 균사체와 융합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뒤엉켜 진화한 미생물


지의류는 살아 있는 수수께끼로, 정체성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하고 하나의 유기체가 끝나고 다른 유기체가 시작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식물학자 시몬 슈벤데너는 지의류가 한 종류의 유기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유기체가 섞여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서 두 종류의 유기체란 곰팡이, 즉, 균과 조류였다.

지의균인 균류공생자가 물리적 보호 기능을 하고 자신과 조류 세포를 위한 영양분을 획득한다고 밝혔는데 그의 관점에서 곰팡이 파트너는 '지도자의 지혜를 가진 기생생물'을 의미했다.

두 종류의 유기체가 합쳐져 가시적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니 결국 함께함으로써 혼자서는 살 수 없었던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후, 수년 간 여러 과학자들이 새로운 공생설을 내놓기도 했는데 수년 후에는 박테리아 내부에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미세지의류'라 이름을 붙였다.

어느새 지의류는 공생이라는 아이디어로 가는 통로 유기체가 되었다.


지의류의 우주 생존 능력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는데 대부분 연구 결과는 비슷했다.

예로서, 방사능으로서 지의류를 죽일 순 있었지만 지의류 세포를 파괴하는 데 필요한 방사능 양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번식 능력에 장애가 나타난들 끄덕없었고 심지어 광합성 하는데도 문제가 없었으니깐.

한 과학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지의류가 우리를 가르친다니까요."

식물의 조상은 광합성 능력을 가진 박테리아에서 획득했던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유기체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기체의 결합으로 발생했다.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이제는 어느 한 쪽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렇듯, 곰팡이 균사가 융합 또는 접합되었듯이 진핵세포 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나무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 분리 불가능한 새로운 계통으로 녹아들게 된 것이다.

지의류가 진핵세포의 기원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더라도 진핵세포의 기원과 '보조'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분명한 것은, 집중하면서 읽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팡이라는 소재가 매우 독특해 첫 장부터 충분히 매력적인지라 금세 매료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은 보이지 않는 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수적으로 제일 많은 것이 곰팡이일지도 모르겠다.

돌을 먹고 흙을 만들며 식물을 자라게 한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주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으며 지구 대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관심있게 봐야 할 이유가 있는데, 바로 우리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

잦은 장마와 가뭄 등 심각해진 지구 온난화 그리고 플라스틱 급증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 등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를 '곰팡이'를 이용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나무를 보면 흙 바로 아래에는 엄청난 나무뿌리가 존재하고 있다.

지표면 바로 아래 얽히고 설킨 가늘고 굵은 나무뿌리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 있다.

복잡하게 퍼진 나무뿌리는 곰팡이, 즉, 균의 네트워크가 그대로 이어져 있다.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거미줄이 없다면 나무는 살지 못했을 것이고, 나무가 살지 못하는 땅은 곧 죽음의 땅이며, 결국 인류 또한 살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흙 속의 뿌리부터 대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관련있는 균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문득 생물이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였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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