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이응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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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맨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 손가락 끝에선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도대체 이 소설가의 나이는 몇이나 됐을까? 책의 맨 첫장을 펴고 약력을 살핀다. 70년생이라~, 아 그런데 이 책의 단편들이 94년부터 나왔으니 20대 중반에 쓰여진 것이군. 그래 나의 20대도 이렇게 외로웠던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처럼 체질을 나누듯 누군가는 고독체질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날지도 모른다. 정말 그 근거를 알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 하지만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생을 포기하거나 그것을 잊으려 거짓 인생을 살지 않는 자들이 지녀야 할 고독과의 친분. 소설은 외로움에 맞서 싸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비가 쏟아지고 나서 하늘이 유독 푸르듯 외로움이 자연스레 휩쓸고 지나가면 무엇인가 빛이 보이리라. 외로움은 그렇게 비처럼 자연스런 무엇일터이다.

책 속에 나오는 단편들의 맨 끝 구절들만 모아본다.

별빛같은 아픔이.
평생 고래 꼬리만 바라보고 살아가던 한 외로웠던 사나이에게, 난 결코 그가 실망할 수 없는 고래의 몸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숙취로 머리가 잠시 아팠을 뿐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책을 쓰는 사람은 외로운 인간이라 생각하며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
봄이 되어도 집은 옮기지 않기로 맘먹고 있었다.
사랑과 평화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젠 적어도 꿈꿀 순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세상을 허무하게 바라보면서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아직 작가가 젊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외로움의 희망은 도대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선 그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포옹이지 않을까 싶다. 외로운 자들끼리 손을 내밀어 가슴을 끌어안는 것, 달의 뒤편엔 그런 따스함이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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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콘라드 그리폰 북스 1
로저 젤라즈니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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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는 한때 미국의 51번째 주로의 편입을 국민투표로 실시한 바 있다. 현재 갖고 있는 시민권 이외에 실질적인 권력행사라 할 수 있는 대통령선택권까지를 쥠으로써 명실 상부한 미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푸에르토리코의 완전한 독립을 표방하며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는 부류도 있다. 소설은 지구가 핵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계 선진행성의 노예로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다. 주인공인 콘라드는 나이가 몇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 삶을 강인한 체력과 정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과거 지구 독립을 위한 데지탕스 활동을 했고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입장에 서 있게 된다.
소설의 내용은 외계의 주요인물이 지구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를 탐사하는 것은 그들이 지구를 사 들임으로써 완벽한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인지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회복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지구로의 귀환을 장려하려는 것인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의 지구인들은 어찌보면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푸에르토리코의 사람들과 닮아있다. 비록 독립된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할지라도 현재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다면 굳이 독립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 주인공은 독립된 삶이 현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택했을때만이 진정한 자아로서의 삶과 행복을 만들 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한 노예와 불행한 주인우리는 어떤 삶을 택해야만 하는 것일까?자유가 주는 괴로움, 구속이 주는 편안함. 지금까지 인간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이었을까?갑작스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한국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망언을 한 한국인이 머릿속에 떠 오른다. 그의 말을 어이없게 받아들이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일까? 자유에의 무조건적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정말 어려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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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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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이기고 체스 세계챔프가 된 뇌신경학자가 바로 그날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이 죽음을 범죄로 보고 살인자를 찾는 과정과 체스세계챔프의 변모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해서 치밀한 구성으로 전개해나간다.

이 두 과정은 한가지 질문에서 출발하는데 '인간의 행동은 무엇을 동기로 해서 이루어지는가'이다. 도대체 난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지금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그 동기를 13가지로 분류하는데 기실 그 기본은 첫번째 이유였던 쾌락에 있다고 하겠다. 최후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뇌를 자극하는 것도 실상 그것이 주는 쾌락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가장 중요한 소설의 요소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삶의 동기로서의 쾌락이란 결코 육체적 원초적 쾌락 그 이상의 쾌락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바로 그런 점에서 삶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즐겁게 간주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바로 정신적 쾌락상태, 어찌보면 니르바나의 세계로 이끌어나가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쾌락에 함몰되어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 상태의 추구, 그것은 소설 속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다른 세가지 요소가 있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웃음, 꿈, 어리석음.

웃을 줄 안다는 것은 쾌락을 안다는 것이요, 꿈을 갖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언제나 현실의 삶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리석음이란 쾌락의 상태에 계속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열반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저한 금욕도 쾌락도 아닌 삶의 즐거운 상태, 컴퓨터는 이런 상태를 오류라고 볼 것이다. 우리네 삶은 그런 오류 덩어리였을때 행복한 것임을 우리는 바보처럼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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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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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괜찮지만 ......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괸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P228)

소설은 콜필드라는 학생이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몇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학교친구들과 선생님, 가족은 물론 모텔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마치 일기장을 훔쳐보는 즐거움과 함께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에 미소를 그칠줄 모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미소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조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다. 콜필드의 조롱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식의 옷이라는 구속복을 입고 자유를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탐독했다는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챔프먼은 아마도 존 레논이 위의 변호사처럼 자신이 엉터리인줄 모르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터이다.

거울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한번 보자. 모든 옷을 벗어버린채 발가벗은 모습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거기엔 정말 내가 있는가, 세상이 나에게 준 가식의 옷을 잔뜩 껴 입은 내 모습만이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내가 대학을 나왔는데...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남자가 말이야... 벗어도 벗어도 끝이 없는 가식의 옷들. 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콜필드가 지켜주고 싶어한 호밀밭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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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난다
장 에슈노즈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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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을 읽고나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서평이나 홍보문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감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도대체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든다.

이번 <나는 떠난다>라는 책 또한 나의 책읽기에 대한 능력부족을 절실히 깨닫게 해줬다. 어떤 부분에서 해학이 있으며 또 일상에 대한 탈주라는 주제의식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단 말인가? 일상과 심리에 대한 묘사는 고전소설처럼 지루하리만치 한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묘사가 정말 소설속의 독특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 대해 실망했다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읽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일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는 나만의 느낌은 간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나에게 지속적 관계의 단절에 대해 가르쳐주려 한 것 같다. 주인공은 어떤 사람과도 특히 여자관계에 있어서는 오랜 시간을 같이 나눈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마치 시계추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질 뿐 그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지는 것은 보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그런 연유로 인하여 소설속에서는 가족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 듯하다.

이런 관계의 단절은 만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술판매의 흐름이 그렇고 주인공의 북극탐험이 그렇고 조수의 변신이 그렇다. 계속되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집착할 그 무엇도 없이 아무것에도 기대치 못한채 부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은 그래서 나그네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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