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번 도로 위에서 - 2004년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공모 당선작
이경숙 지음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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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에서 나온 이민 상품이 불같이 팔려나가는 나라.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고 지금은 캐나디안 드림을 꿈꾼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내가 디디고 있는 이 땅을 벗어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단지 이 땅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상은?

여기 미국에 이민간지 30년이 된 한 여성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이 있다.  <475번 도로위에서> 인생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렇다고 뒤돌아본 모든 것이 후회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선 이곳과 다르지만 또한 너무나도 닮아있는 그저 그런 삶이 있을뿐이다.  세탁소 운영으로 돈 좀 벌었건, 교수로 있건, 의사로 있건 이민 간 사회의 상류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모여살게 마련이다. 미국 속의 또 다른 한국이랄까? 하지만 분명 다른 것은 그곳의 삶은 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이 아니지만 한국적 정서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래서 살기가 더 팍팍한 그들.

책을 읽어가면서 점차 동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 서경보다는 오히려 그의 남편에게 시선이 쏠린다. 고지식한 사람. 믿었던 자식에게 실망하고 기대했던 제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했는데 한순간 용서를 빈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마음.  마음 속 깊숙히 성자를 숨겨놓자.

어울려 사는 것이 갈대뿐이냐는 마종기 시인의 시처럼 어깨를 부대끼고 산다는 것은 그 어깨를 빌려주고 빌리는 믿음과 정이 있어야지만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다. 그것은 한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리 저리 흔들리는 외로운 갈대는 서로 모여있을때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바람에 꿋꿋이 버텨낸다.

행복은 유토피아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국이 유토피아인 것도 아니다. 행복은 사람에게서 얻어질 것이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속엔 사람의 미소가 있다. 체온이 느껴지는 말, 그리고 마음을 녹여주는 미소. 행복의 나라로 떠나지 말자. 행복한 사람이 되자. 행복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이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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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톨
와타야 리사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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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3학년 입시생,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똑같음을 알아차린다. 학교에 가서 똑같은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똑같은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방송을 듣고 또 똑같은 시간에 학교를 향하는 쳇바퀴 같은 나날. 남들과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돌아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에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엄마 몰래 학교를 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방 안을 모두 치워버리고 쓰레기 장에서 마치 쓸모 없어진 자신의 가구들 마냥 눕는다. 남들과 다르지 않는 삶이란 그렇게 쓸모없는 삶이라 생각되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초등학생 꼬마 녀석. 그 꼬마에게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고장난 컴퓨터를 줘 버린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으로 꼬마의 엄마를 찾아간 집에서 고장난 줄로만 알았던 컴퓨터가 인스톨만으로 생명을 얻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그렇게 새 생명을 얻은 컴퓨터 마냥 인스톨 되어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꼬마의 얼토당토 않은 채팅 알바를 허락한다. 남자들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역할. 아침엔 그녀가, 오후엔 꼬마가, 그리고 현실에선 술집의 실제 작부가. 세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의 역할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채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다지 색다른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세상 사람들, 정말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생각하는 그런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그저 평범함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를 꿈꾸지만 실은 평상의 삶 속에서야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생활이 남들과 다를지라도 그것은 그저 일탈일 뿐이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틀어져 존재할 뿐이다. 틀어졌을땐 인스톨시켜 다시 평상으로 복귀한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전진>이라고!

이크크! 열일곱에 삶의 비밀을 알아채버린 것은 너무하다. 열일곱엔 평상을 알아채기 보단 모험의 세상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세상이 모험을 허락하지 않으니 쉽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열일곱의 나이에 인스톨시킨 삶이라는 건 가혹하다. 서른, 마흔이 넘어도 모험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열일곱엔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입시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들에게 평상은 여전히 지옥일테니까. 인스톨이 아니라 딜리트해버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기를. 평상의 삶은 그 이후에도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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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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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유교적 합리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종교가 없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분명 우리가 버리지 못할 종교의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듯 그 폐단 또한 만만치 않음을 생각해보면 설득력을 지니는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제국주의와 맞물려온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라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자기 스스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 보네거트는 기독교에 메스를 들이대고, 자본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단지 실업을 없애기 위해 우주시대를 제창하며 우주선을 만들어 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화성으로 끌려가 기억마저 제거된채 그저 안테나로 조정되어진다. 마치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에 의해 자아를 상실한채 그들의 메시지대로 움직이는 현대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영화 올드보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대중매체를 통해 습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꼭 들이맞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험하다) 엔트로피만을 증가시키는 소비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 있어 한번쯤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또 운명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핸디캡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설정은 맹목적 평등의 사상의 위험성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의도는 이런 평등을 바라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몸에 몇킬로그램이나 하는 쇠덩이를 핸디캡이라고 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가?

또 작년 열풍이 불었던 로또라는 복권처럼 어떤 행운이 우리에게 다가왔을때 그 행운을 양심의 가책없이 받아들이는 경우, 선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선 행운이라는 것이 선행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행운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듯하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지면 곳곳에 흐르는 무정부주의적이며 허무한 생각에 사로잡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대신 인생의 목적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결말로 치닫는 듯하지만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인생이란 사랑의 기다림이요 사랑의 창조임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이렇게 고독한 우주에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수 없다면, 언젠가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우리는 바로 옆에서 항상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의 향기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찬찬히 옆의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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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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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특히 '엘리베이터에~'는 계속되는 우연이 어떻게 맞물려 황당함을 가져오는지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피뢰침'의 경우는 죽음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경험에서 살아남음으로써 무엇인가 남다른 삶으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집단을 통해 일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우리는 일상을 탈출하는 꿈을 꾼다.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기다려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 볕들날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즉 양적 변화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법칙이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마음 한구석에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네 일상은 그 일상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이런 일상의 그물망을 보여준다. 결코 부서지지도 넘어서지도 못하는 견고한 일상의 벽은 그래서 수많은 우연들이 자신들에게 닥치더라도 여전히 그대로다.

혹시나 지금 일어난 이 일이, 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야말로 질적 변화는 양적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질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질적 변화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양적인 축적에만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은 오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덧없이 계속 쌓아가고 있기만을 반복하고 있음을 소설은 웃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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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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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서재응은 마이너에서 5년을 고생했다. 박찬호나 김병현은 이미 메이저로 갈 사람들이지만 마치 통과의례처럼 마이너를 거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가는 길은 누구나에게 열려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수많은 마이너 선수들중 과연 몇명이 메이저로의 진입이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는 메이저의 화려함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희경의 소설은 4명의 동창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그것도 한자리에 모여 있는 바람에 다들 숙제를 해오지 않았을 거라는 오해로 안심하다가 봉변을 당한다-으로 어느 순간 묶이더니 평생을 같이하는 죽마고우로서의 삶을 살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미 숙제를 하지않았다는 비주류라는 낙인을 가슴에 새겨둔채 평생을 그 낙인을 지우려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을 얽어매고 있는 마이너라는 계급성은 벗어나지 못한다.

메어저로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남미국가와의 공연계획은 그야말로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방송국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린다. 메이저가 버티고 서 있는 한 마이너는 도저히 도약을 꿈꿀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방에 메이저로 진입하기 위해 고시에 목매달고 있지 않은가? 또는 땅 투기라도 해서 경제적으로 메이저로 진입을 꿈꾸기도 한다. 계급이 없는 자유국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급에 묶여 있으며 그 진입의 통로 또한 지극히 제한적임을 소설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다른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왜 사람들은 그토록 메이저를 꿈꾸는지를? 마이너의 고달픔과 메이저의 달콤함이 주는 극도의 차이가 사람들의 탈출 욕망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녁형 인간에 다시 아침형 인간까지 살아서라도, 자신의 몸을 완전히 소진해서라도 탈출해야만 하는 그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바로 이곳임을 생각하니 서글픔이 든다. 메이저도 마이너도 살기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계급이 존재하더라도 차이는 있데 차별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그저 헛된 몽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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