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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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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이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같이 먹는 것임을 알게됐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켜켜이 쌓여진 먼지의 두께만큼이나 책도 그 값어치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맨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그 제목에 마음이 쏠려, 그리고 책의 첫장에 시작되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항에 매몰되어 모든 내용이 그것을 주제로 한 변형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토마스를 주축으로 가벼움의 대변자 사비나, 무거움의 대변자 테레사의 삶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의 삶이란 그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혹은 무거움이었던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책을 접하게 되니 주인공은 이들 외에도 카레닌이 더 있음을 알게됐다. 토마스와 테레사가 키우던 개, 카레닌. 그(그녀)는 행복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맴돌지 않고 직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키취적 발상을 하게됐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1회적이며 그 1회적 인생 또한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어 자신이 그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한 번 결정된 사항은 돌이켜지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처음 만나는 두려움, 이것이 인간의 삶을 가볍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반복, 재생산되는 키취의 욕구를 통해 행복을 갈구한다. 반복에의 욕구는 실은 예측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그 안에서 점진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무거운 것은 실은 낙관적이며 밝은 것이다. 반대로 한번만으로 끝나버리는 인간의 삶은 어찌됐든 일단 선택되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버리기에 가벼운 것이지만 그속에선 비관적이며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그토록 가벼우면서도 우울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네 삶은 무겁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금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놓여진 나는 선택의 순간을 계속 거쳐야 하며 그것이 되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그 고민의 무게가 나의 어깨를 세차게 짓누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때론 울부짖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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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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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부분 일상속에서의 탈일상들이다. 너무나 근접한 우리네 삶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세심하게 써내려가는 글 속엔 어느덧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삶의 진실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때론 그런 삶의 진실조차도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의 간결하고 날아갈듯한 문체로도 나의 이 무게를 덜어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쥐스킨트를 읽을 땐 또하나의 다른 생각으로 책을 접하게 된다. 그냥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삶의 한 방식, 방법으로서의 실용서로 말이다.

이번 <깊이에의 강요>에는 전부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세이가 들어있는데,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삶의 방편이 들어 있다. 그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그냥 흘려버려. 그게 때론 너를 위해 좋을거야'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고 사는 한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순 없다.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계속되는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피드백이 이루어졌을 때 사회는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때론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단 말이야.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 갈등도 생기고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와중에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낄때가 있단 말이야. 그래,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다들 그래. 누군가의 무심한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자신은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결말이야 뻔하지 않겠어. 그렇게 온 몸을 걸었으니 결국 사그러들 수밖에.
그래, 때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그들이 뭐라고 지껄여대든 그냥 흘려보내는 거야. 내가 왜 그들의 안개같은 말에 휩싸여 나의 길을 잃고 헤매야 되는 거냐구. 그냥 놔둬버려. 그러면 머지않아 안개는 사라질 거야. 안개가 사라진 후에 나의 길을 가자구. 잘 봐, 얼마나 잘 보이니. 그래, 그냥 흘려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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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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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어디어디가 결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절대 이런 말이 없다. 즉 몸에서 느끼는 통증이라는 것도 그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면 그 지각또한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가 그 결린다는 것을 말할 상대가 없다면 그 언어라는 것 또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누군가가 결린다는 말을 들어주고 그 말에 대해 어떤 행동(가령 침을 놓는다거나)을 취해 주었을 때만이 결린다는 말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소설 <포세시옹-소유라는 악마>는 언뜻 보기엔 추리소설로 보이지만 단순히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언어와 지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죄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적 심리상태와 행동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앞에서 말한 언어가 지각을 유도하고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 필요한 말을 경청하는 사람의 자세에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속 몇 대목을 살펴보자.

언어를 자극하는 것은 지각이 아닙니다. 그 반대예요. 언어가 지각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육체에 앞선다는 것을 인정할 용의는 있었다.
말이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말은 경청하는 사람의 사랑에서 생성된다.

이런 소설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체 구도속에서도 드러난다. 목을 잘린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은 미궁에 빠져있다. 화자인 기자이자 사립탐정은 점차 범인의 폭을 좁혀 나가고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범죄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된다. 이 범인은 바로 죽은 여자의 아이를 자신의 사랑으로 키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가정교사였다. 언어능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를 어머니는 애정을 갖지 못하고 더군다나 아이를 미워하는 새로운 남자에게만 정신을 쏟고 있자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 사랑하던 동생을 잃고나서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그녀는 그 아이를 통해 동생을 찾게되고 그녀의 이런 사랑은 아이에게 말(언어)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도 많은 소설속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속의 사랑은 대부분 개인적 감정 상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것도 장밋빛이거나 그 장미속의 가시만을 이야기 할 뿐이다. 반면 포세시옹은 사랑이라는 소유욕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 성격과 함께 그것이 가져다 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관계속에서만(이것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관계로 보아도 된다.) 이루어진다는 것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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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bee 2006-09-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인밝히기는 스포일링입니다.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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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귀신이야기가 최고다. 오싹한 귀신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열대야는 저만치 사라져간다. 그런데 꼭 귀신이야기라고 해서 납량물일 이유는 없다. 사랑의 따스함이 온건히 가슴에 와 닿는 동화같은 귀신이야기도 있는 법.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에 나오는 단편들이 바로 그렇다.

어렸을 때 죽어버린 아이가 귀신이 되어 성장한 모습을 차례차례보여주는 '철도원', 망자가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죽은 이의 편지가 마음 속 깊은 암흑으로부터 뚫고 나와 빛이 되는 '러브레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대신해주는 '백중맞이' 등등.

<철도원> 속 단편 주인공들은 저마다 아픈 현실속에서 살아가다 망자를 맞이한다. 그들은 망자를 보면서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그 망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나타난 것이기에. 망자의 이러한 사랑은 그들을 맞이하는 주인공들의 망자에 대한 이해로 더욱 빛나게 된다. 왜 그들이 현실 속에 나타나 자신을 돕는지를, 위로하는지를 깨달아 주기 때문에 그들의 출현은 빛을 발한다. 서로간의 자리를 이해해주는 사랑의 정신이 소설 전체에 깔려있어 그 따스함을 책을 잡고 있는 손끝에서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아~, 사람에 대한 사랑이란 이렇게도 따스한 것이구나. 죽어서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 미움과 한이 가득찬 귀신이 되기 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갖는 귀신이 된다는 것. 소설이 직접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귀신이 될 수 있다면 죽는것조차도 두렵지 않을듯 싶다. 가슴 한 켠을 따뜻이 적셔주는 동화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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